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811 - Chapter 820

836 Chapters

제811화

은희는 잠시 멍해졌다.유건의 다정한 말투에 순간 당황했지만, 마음속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설렘이 더 컸다.‘나한테 이렇게 신경 써준 적이 있었던가?’고개를 살짝 저으며 말했다.“아니요, 괜찮아요.”시연을 못 본 척 지나친 유건의 태도를 확인하자, 은희는 더 이상 긴장할 필요가 없다는 걸 느꼈다. ‘내가 왜 그렇게 조마조마했지? 설마 고유건이 다시 지시연한테 마음을 돌릴까 봐?’‘내가 너무 깊이 생각했던 거야.’“그럼 다행이네.”유건은 은희를 데리고 게임 테이블 앞으로 걸어가 자리에 앉았다.그러고는 자연스럽게 메인 자리를 은희에게 양보했다.“오늘은 나 대신 해줘.”유건은 관자놀이를 손끝으로 문질렀다.“술을 좀 마셨더니 머리가 살짝 어지럽네.”“괜찮으세요?”은희는 즉시 걱정스러운 얼굴로 다가가며 말했다.“제가 마사지라도 해드릴까요?”그 말과 동시에 은희의 손이 유건에게 향했다.“괜찮아.”유건은 손짓으로 가볍게 막으며 웃었다.그 표정엔 살짝 달래는 기색이 담겨 있었다.“은희 씨는 그냥 나 대신 카드만 쳐줘.”“하지만...”은희는 망설이며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저... 진짜 잘 못 쳐요. 아마... 질 것 같은데요.”“상관없어.”유건은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지는 거 무서워할 것 같아?”“편하게 해. 이기면 은희 씨 덕이고, 지면 내 탓이야.”“하하!”주변 사람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와! 고 대표님 진짜 스윗하시다!”“은희 씨, 더 이상 사양하지 마세요!! 이제 와서 고 대표님더러 직접 치라고 하면 우리가 더 난감해요.”은희는 하는 수 없이 카드를 집어 들었지만, 말한 대로 실력이 좋진 않았다. 몇 판 지나지 않아 꽤 큰 손해를 만들었고, 급기야 테이블 분위기가 묘하게 가라앉을 뻔했다. “저... 저 이제 안 할래요.”은희는 눈치를 보며 손을 놓았지만, 유건은 전혀 개의치 않았다.“뭐가 어때서? 잘하고 있는데.”“이런 게임은 원래 이길 때도 있고 질 때도 있는 거야. 괜찮아, 계속 해.”그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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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2화

시연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지며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불편하니까, 손 좀 놔주시죠.”‘이대로라면 그냥 넘어가긴 글렀어.’시연은 허리에 차고 있던 무전기를 살짝 만지작거렸다.매니저에게 연락해서 도움을 청하려던 순간, 손이 멈칫했다.‘지금 매니저님을 부르면 상황은 정리되겠지.’‘하지만... 오늘처럼 갑작스러운 부탁을 받은 입장에서 문제까지 만들면...’‘앞으로 내가 부탁할 일도 많을 텐데... 괜히 눈 밖에 나는 건 아닐까?’‘잘못하면 오늘부로 잘릴 수도 있어.’바로 그때 들려온 한 사람의 목소리.“잠깐.”낮고 단단한 목소리가 공간을 뚫고 들려왔다.시연은 깜짝 놀라 고개를 들었다.유건이었다.유건 역시 시연을 보고 있었고, 그들의 시선이 한순간 정확히 마주쳤다.하지만, 유건의 눈빛엔 어떠한 감정도 담겨 있지 않았다.‘나를 보고 있는 건 맞는데, 마치 그냥 사물 하나를 보는 것 같은... 차갑고, 무표정한 눈.’유건이 입을 열자, 주변 사람들의 분위기가 단번에 얼어붙었다.남자는 시연을 잠시 더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은희를 봤다.“닮았나?”“하, 하하...”누구도 유건의 속내를 알 수 없었기에, 다들 눈치만 보고 있었다.유건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아니, 하나도 안 닮았어. 눈도, 코도, 입도... 어디 하나 닮은 데가 없어.”“그, 그렇죠. 안 닮았죠.”“그럼요. 어딜 봐서...”시연을 붙잡고 있던 남자는 당황한 듯 침을 꿀꺽 삼켰다.‘안 닮았다고?... 분명 닮았다고 생각했는데...’유건은 마치 무언가를 기억해 낸 듯,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근데 너, 이 여자보고 은희 씨랑 닮았다고 해놓고, 손까지 잡고 있었지?”“예?”남자는 화들짝 놀라며 손을 허둥지둥 놓았다.“아, 아니에요! 그런 뜻은 절대 아니었어요! 제가 어떻게 감히... 그런 게 아니라 그냥...”“그래?”유건은 콧소리로 짧게 웃었지만, 그 웃음이 더 무서웠다.‘그 말을 믿으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하지만 확실한 것이 하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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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3화

엘리베이터 문이 완전히 닫히자마자, 유건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싹 사라졌다.눈빛은 금세 어두워졌고, 시선은 엘리베이터 문틈에 박힌 채 차갑게 가늘어졌다.‘박사까지 한 사람이... 당장 의사 일 못 한다고 하더라도, G시에 할 일이 얼마나 많은데.’‘꼭 여기여야 했냐? 사람들 앞에서 고개 숙이고, 술 시중들고.’“고 대표님...?”은희가 조심스럽게 유건을 바라보며 말을 걸었다.“무슨 일 있어요?”“아니.”유건은 정신을 돌리듯 고개를 살짝 젖히고, 은희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봤다.그러다 문득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얼굴, 인제 그만 손대.”“...”은희는 순간 굳었다.살짝 당황한 표정으로 얼굴을 만지작거리며 물었다.“이상해요...? 아니면... 혹시 지시연 때문이에요?”‘맞잖아. 애초에 내 이목구비가 지시연이랑 좀 닮았다고 했었고... 그래서 데뷔 전 예명도 ‘시연’이었지.’하지만 유건은 그 이름을 싫어했고, ‘쓰지 마라’며 단칼에 잘랐다. 그 뒤로 은희는 본격적으로 활동을 시작했고, GP그룹에 캐스팅됐다.그 배경에는 은희의 외모가 시연과 닮았다는 것도 있었다.‘그땐 아무 말도 안 하더니... 이젠 왜... 지시연이 돌아오니까, 갑자기 불만인 거야?’그 생각에 은희의 입술이 파르르 떨렸다.‘억울해. 이 사람 곁에 남고 싶어서, 지시연처럼 보이려고 애썼을 뿐인데...’“잘생겼냐 못생겼냐의 문제가 아니야.”유건은 이마를 찌푸리며 말을 이었다.“대표로서 말하는 건데, 은희 씨 지금 출연 예정인 작품의 감독들, 얼굴에 민감해.”“계속 건드리면, 표정도 안 나오고, 나중에 스크린에선 얼굴 무너져 보여.”그 말은 사실이었다.유건은 사업가였고, 은희를 투자 대상으로 봤다.냉정하게 말해, 배우의 얼굴은 온전히 배우 혼자만의 것이 아니었다.“알아들었지?”“네.”은희는 입을 삐죽이며 대답했다.‘그래도... 지시연 때문은 아니었구나.’조금 마음이 풀린 은희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웃었다.“앞으로는 대표님 말만 들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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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4화

수요일, 시연은 가장 먼저 출근해 출석 체크를 하고 준비를 마쳤다. 매니저가 들어오자 시연은 조용히 다가가 명단을 받았다.“시연아.” 매니저는 시연을 보더니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말했다. “이 손님, 좀 있는 사람이야. 조심해.”“걱정하지 마세요.” 시연은 웃으며 말했다. ‘여기 오는 사람 중에 ‘없는 사람’이 어딨다고...’다 하나같이 돈 많고, 백 있고, 까다로운 손님들뿐이었다.“쳇.” 매니저는 콧방귀를 뀌며 중얼거렸다. “이 사람, 단골이긴 한데 말이지. 잠을 못 자서 머리가 아프다며 우리 마사지가 효과 없다고 또 투덜거렸어.”“진짜 뭐 하는 사람인지... 병원에서 처방한 면제도 안 듣는다면서... 그럼 그건 약도 안 듣는 병이라는 거잖아? 우리가 손으로 몇 번 문지른다고 낫겠냐고?”“그냥 우리한테 스트레스 푸는 거지.”시연은 가볍게 웃었다. “괜찮아요. 뭘 어떻게 말하든, 저는 그냥 듣기만 하면 돼요.”매니저는 시연을 잠시 바라보다가 말했다. “너야 성격 좋아서 문제없겠지만, 괜히 기분 상할까 봐 그렇지.”“일이잖아요. 돈 받는 건데, 기분 상할 것도 없어요.” 시연은 조용히 웃으며 치료 카트를 밀었다. “매니저님, 시간 됐어요. 다녀올게요.”“그래, 얼른 갔다 와.”시연은 카트를 밀고 조용히 룸 안으로 들어갔다.침대 위에는 이미 눈을 감은 오대민이 누워 있었다. 누군가 들어왔는지 알면서도 눈을 뜨지 않았다.오대민은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시작해. 머리... 깨질 것 같으니까.”“네.” 시연은 손을 씻고, 수건을 정리한 뒤 오일을 손에 덜어 천천히 마사지하기 시작했다.잠시 후, 오대민이 눈을 떴고, 시연을 한 번 쓱 훑어보더니 말했다. “전에 봤던 사람이 아니네?”“맞아요.” 시연은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 처음 뵙습니다.”“그럴 줄 알았지.” 오대민은 작게 웃으며 말했다. “처음 손대는 느낌이라 딱 알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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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5화

“혹시 무서우시면, 눈 감으셔도 괜찮아요.” 침을 놓기 전, 시연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응.” 오대민은 눈을 감으면서 웃었다. “무서운 건 아닌데, 이러면 네가 더 편하게 할 수 있잖아.”“네.” 시연은 잔잔히 웃으며 대답하고, 조심스레 침을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잠시 후.“벌써 놓은 거야?” 오대민이 놀란 듯 물었다.“네, 다 됐습니다.”“오?” 오대민은 신기하다는 듯 감탄했다. “하나도 안 아프네. 느낌도 없고... 왠지 예감이 좋아. 이번엔 진짜 효과 있을 것 같아.”“저도 그러길 바라고 있어요.” 시연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 “오늘은 처음이니까, 30분만 해볼게요. 몸이 먼저 익숙해져야 하니까요.”“그래, 네가 하자는 대로 할게.”30분이 흘렀고, 시연은 조심히 침을 모두 제거했다. “이제 눈 떠도 됩니다.”“응... 오...” 오대민은 천천히 눈을 떴다. “나, 네가 말 안 했으면 그대로 잠들었을지도 몰라.”“죄송해요. 괜히 깨운 것 같네요...” 시연이 정중히 말했다.“아니야, 괜찮아.” 오대민은 손을 휘휘 저었다.바로 그때.“어라?” 그는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놀란 얼굴로 말했다. “왜 이래? 앞이 갑자기 맑아진 느낌인데? 머리도 개운하고.”“정말요?” 시연은 조용히 미소 지으며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다행이다, 효과가 있긴 했구나.’“저기.” 이번엔 오대민이 제대로 시연을 바라봤다. “생각보다... 아니, 이렇게 예쁜데 능력까지 있는 사람일 줄은 몰랐네.”시연은 담담히, 그러나 단호하게 말했다. “칭찬 감사합니다. 하지만 두 가지는 상반된 게 아니에요. 외모는 부모님께 받은 거지만, 능력은 제가 만든 거거든요.”“...”오대민은 멍하니 시연을 보다가, 이내 시원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하하하! 그래, 맞는 말이다!”남자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고, 시연은 걸려 있던 외투를 정리해 건넸다. “옷 챙기세요.”“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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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6화

“신호가 가네?!”유건은 번호를 바꾸지 않은 듯했다.핸드폰 너머로 들려오는 신호음에 시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받으면... 뭐라고 해야 하지? 일단 인사부터? 아니면 바로 본론?’“하...”시연은 고민스럽게 이마를 문질렀고, 탈의실 안을 서성거리며 마음을 가다듬었다.하지만... 전화는 끝내 연결되지 않았다....벨이 두 번 울렸을 때, 유건은 이미 전화가 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핸드폰을 꺼내 본 유건은 잠시 멈칫했다.익숙하면서도 낯선 번호.낯선 건, 저장이 안 되어 있어서였고, 익숙한 건, 며칠 전 부지하가 조사해준 자료 중에 있었던 번호이기 때문이었다.시연이 G시 돌아와서 새로 만든 번호.‘시연이가 나한테 전화를?’‘무슨 일이지?’‘받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결국, 유건이 어떠한 선택을 하기도 전에, 벨 소리는 끝이 났다. 유건은 화면을 바라봤지만, 시연은 다시 전화를 걸어오지 않았다.한편, 시연은 허탈하게 핸드폰을 내려다봤다.‘전화를 안 받네.’ ‘바빠서 못 받았을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받기 싫었던 걸 수도 있고.’시연은 생각했다.‘후자일 가능성이 더 크겠지.’잠시 망설인 끝에, 시연은 주지한에게 전화를 걸었다.부디, 지한이 번호를 그대로 쓰고 있기를 바라며.이번엔 다행히, 바로 연결됐다.[여보세요?]지한의 목소리였다.“여보세요... 지한 씨, 맞죠? 저... 시연이에요.”시연의 목소리는 조금 떨렸다.[형수님?]지한은 깜짝 놀라며 무심코 옆에 있는 유건을 힐끔 바라봤다.“형수님이요?”시연은 잠시 멍해졌다.그 호칭이, 너무 낯설게 느껴졌다.‘이젠 그런 사이도 아닌데...’물론 ‘고쳐줘야 하나?’라는 생각도 했다.‘아니야, 그렇게 말하면 괜히 내가 신경 쓰는 것 같잖아.’결국, 시연은 조용히 넘기기로 했다.“저기... 혹시 지금 고 대표님이랑 같이 계신가요? 부탁 하나만 해도 될까요?”“고 대표님께... 저, 드릴 말씀이 있다고 전해주세요. 시간 괜찮으실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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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7화

유건은 리슬을 곁눈질로 힐끔 보며 무심하게 말했다.“참, 얼굴도 두껍네.”“히히.”리슬이 전혀 기분 나빠하지 않고 해맑게 웃자,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그러고는 뺨까지 손으로 살짝 잡아당기며 장난스럽게 물었다.“그거... 칭찬이에요? 고마워요!”이 말에 유건과 지한은 할 말을 잃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뭐... 사람이 팔려 가도 손 흔들겠네.’리슬은 어릴 적부터 해외에서 자랐고, 최근에야 귀국한 사례라 아직 국어 표현에 아주 서툴렀다.말 그대로, 팔려 가면서도 계산해 주는 타입.유건은 한숨을 삼키며 눈을 굴리고 싶은 충동을 꾹 눌렀다.그러고는 말없이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하지만 이번엔, 리슬을 따돌리지 않았다.리슬은 신나서 재잘댔다.“유건 씨, 내가 요즘 좋아졌죠? 혹시... 나한테 마음 생긴 거예요? 나 진짜 괜찮은 사람인 거 알죠?”“조용히 좀 해.”유건은 얼굴을 찌푸리며 낮게 경고했다.“계속 떠들면, 바로 못 따라오게 할 거야.”“으응.”리슬은 입을 양손으로 꽉 막고 고개를 연신 저었다.동그란 눈이 파르르 떨릴 만큼.그날 밤, 유건은 평소보다 술을 많이 마셨다.사실, 유건은 원래부터 담배와 술 가리지 않았지만, 요즘 들어 더 심해졌다.심지어 잔을 비워내며 한 손엔 담배까지 들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리슬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놀랐어?”유건은 가볍게 웃으며 연기를 내뿜었다.입가엔 묘한 비웃음이 섞였다.“원래 이래. 술, 담배 다 하지. 겁나면 멀리 가던가.”“아니에요!”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리슬은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눈빛을 아예 반짝이며 말했다.“진짜 멋져요! 요즘 남자들, 다 가식 떨잖아요. 근데 유건 씨는... 진짜 남자 같아요! 완전히 제 스타일이에요.”유건은 또 한 번 말문이 막히는 듯했다. ‘진심 알다가도 모르겠다. 여자의 마음이란 건 도무지 해석 불가.’연회가 끝나고, 지한은 유건을 차에 태우고는 따라 타지 않았다.유건은 기사에게 맡기고 자신은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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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8화

유건은 눈을 반쯤 감은 채, 묵직한 목소리로 물었다.“지금 뭐 하는 거야?”“옷 좀 벗기려고요. 겉옷 벗으면 더 편하잖아요. 넥타이도 풀고요.”리슬은 해맑게 설명했다.“필요 없어.”유건은 리슬의 손목을 놓고 고개를 저었다.그러고는 능숙하게 넥타이를 풀고, 재킷을 벗어 던졌다.조용해진 거실.하지만 유건의 눈빛은 여전히 리슬을 정면으로 꿰뚫었다.“왜... 왜 그래요?”리슬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한 번도 누굴 간호해 본 적 없는, 집안에서 공주 대접만 받던 그녀에겐 이런 상황이 익숙하지 않았다.“필요한 거 있어요? 말만 해요.”“물.”유건은 짧게 대답했다.그리고 잠시 후, 덧붙였다.“찬물. 얼음 많이.”“네, 알겠어요!”‘이건 할 수 있어!’리슬은 자신감 있게 주방으로 뛰어갔다.곧 얼음을 가득 넣은 찬물을 들고 돌아온 리슬은 컵을 유건 입가에 가져다 댔다.“여기요, 얼음물 왔어요.”목이 바짝 마른 유건은 컵을 받아 들고 단숨에 들이켰다.리슬은 빈 컵을 들고 일어나려 했지만, 그 순간 손목이 잡혔다.“꺄악...!”리슬은 중심을 잃고 그대로 소파로 넘어졌다.어떻게 된 일인지, 유건의 품에 안긴 자세가 되었다.얼굴을 들자마자, 두 사람의 입술이 닿을 듯 말 듯, 숨결이 맞닿았다.순간, 리슬의 심장이 요동쳤다.‘이건... 고의야. 분명히 날 끌어당긴 거잖아?’‘이 남자... 드디어 마음이 열린 거야?’리슬은 속으로 외쳤다.‘기회다! 이럴 때 밀어붙이지 않으면 안 돼! 원래부터 좋아했잖아...’귀국한 이후, 리슬은 줄곧 유건을 따라다녔지만, 유건은 늘 무관심했다. ‘드디어! 드디어 철벽남이 움직였다!’“유건 씨...”리슬은 숨을 고르며, 조심스레 눈을 감고 입술을 내밀었다.‘좀 더 적극적으로 해도 되지만... 할머니가 그랬잖아, 이 나라 남자들은 너무 튀는 여자 안 좋아한다고...’‘그러니까... 이럴 땐 남자가 먼저 다가오게 해야 해.’속으로 히죽거리는 웃음을 참으며 기다리던 그 순간. ‘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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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19화

대문 앞, 시연은 잠시 멈춰 섰다.여기는, 한때 그녀와 유건의 ‘혼인신고만 했던’ 집.실제로 함께 살아본 적은 없지만, 그래도 이곳에 다시 서 있는 것만으로도 묘하게 가슴이 조여왔다.‘그땐... 전부 끝난 줄 알았는데.’잠깐 숨을 고른 시연은 천천히 손을 들어 초인종을 눌렀다.하지만, 아무런 인기척도 없었다.‘응?’‘경비실에서 분명히 연락했다고 했는데... 혹시 집에 없는 건가?’‘아니면, 샤워 중인가?’시연은 다시 한번 눌러보았지만, 집 안은 여전히 조용했다.‘뭐야, 그냥 돌아갈까...’망설이던 시연의 손이 무의식적으로 현관 옆의 비밀번호 키패드로 향했다.문득, 머릿속에 떠오른 과거의 숫자.‘설마... 아직 그대로일 리는 없겠지?’‘하지만 전화번호도 바뀌지 않은 걸 보면... 혹시 모르잖아?’ 덮개를 열고, 시연은 조심스레 숫자를 눌렀다.잠시 후, ‘삑’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안 바뀌었어.’심장이 철렁하고 내려앉는 느낌.숨을 삼킨 시연은 조심스레 안으로 들어갔다.익숙한 듯 낯선 현관.집 안 공기는 조용했고, 1층엔 유건의 흔적이 없었다.‘2층인가...’계단을 올라가던 시연은 ‘고유건이 어느 방에서 자고 있을까...’ 생각하며 고개를 돌렸고, 안방 문이 활짝 열려 있는 걸 보았다.‘자는 데도 문을 안 닫아?’‘뭐, 덕분에 문 두드릴 일은 없겠네.’살며시 발을 들이민 시연의 눈에 침대 위에 누운 유건의 모습이 들어왔다.상반신과 다리는 이불 밖으로 드러나 있었고, 허리만 겨우 이불 한 귀퉁이로 덮여 있었다.‘지금이라도 나가는 게 맞는 거겠지.’‘아니야, 지금 나갈 거면 뭐 하러 왔어? 부탁할 일이 있어서 왔잖아.’시연은 눈을 살짝 피하며 작은 목소리로 다가갔다.“고 대표님... 자고 계세요?”대답은 없었다.“고 대표님...?”이번엔 살짝 더 조심스러운 톤.‘목소리 크게 했다가 짜증이라도 내면 곤란하니까...’‘그냥... 거실에서 기다릴까?’시연은 뒷걸음질 치듯 고개를 숙이고 돌아섰다.발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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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20화

리슬은 잔뜩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유건 씨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라고요.”“...”유건은 할 말을 잃었다.‘아, 이게 바로 그거구나. 유식한 놈이 무식한 놈 못 이긴다는 말... 진짜, 말이 안 통해.’“옷 입고, 지금 당장 나가. 다시는 이 집에 발도 들이지 마.”이 말을 끝으로, 유건은 잠옷 상의를 걸치고 그대로 방을 나섰다. 1층 거실.시연은 손을 조아리며 불안하게 서 있었다.‘정말... 안 오고 싶었는데.’‘근데 이건 고유건밖에 못 하는 일이니까...’참아가며 서 있었지만, 머릿속엔 아까 그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근데, 여자랑 같이 있으면서... 왜 나를 들여보낸 거야?’‘굳이 오늘이어야 했어?’바로 그때, 계단 쪽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유건이 내려오고 있었던 것.시연은 반사적으로 숨을 삼켰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고 대표님...”유건의 얼굴이 썩은 기색인 걸 보고 시연은 곧장 고개를 숙였다.“죄송해요. 제가 너무 무례했어요. 두 분... 방해해서 죄송합니다.”“지시연.”갑자기 유건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시연을 덮쳤다.“네?”시연은 놀라 움찔하며 고개를 들었다.유건은 눈빛이 차갑게 얼어붙은 채, 무척 불쾌해 보였다.‘나... 뭐 잘못 말했나?’‘이럴 거면 그냥 안 오는 게 나았나...’유건은 속이 더부룩한 감정을 꾹꾹 눌렀다.그 말투, 그 오해에 대해 한마디라도 해명하고 싶었다.하지만...‘굳이 내가 설명해야 하나? 우린 그런 사이도 아닌데.’‘내가 해명하면, 오히려 뭔가 미련 있는 사람처럼 보일 수도 있겠지.’유건은 침묵 속에 거실 소파로 걸어가 앉았다.테이블 아래에서 담배를 꺼내 물고, 불을 붙였다.천천히 한 모금 들이마신 뒤, 시연을 마주 보며 말했다.“앉아.”“네.”시연은 재빨리 맞은편 소파에 조심스레 앉았다.“그래서...”유건은 눈을 감고 관자놀이를 문질렀다.“무슨 일이야?”“그게요...”시연은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더 이상 미룰 이유도 없었고, 돌려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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