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건은 잠시 벙쪘다.‘지금... 뭐라고 했어?’“정말이야? 거짓말 아니지?”“아니야.”그렇게 말하는 순간, 시연의 가슴 끝이 스르르 떨렸다.‘이게... 잘하는 선택인지 모르겠어.’‘하지만 지금은,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이야.’시연은 마음을 다잡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조건?”유건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조건이 뭐든, 한 개든, 백 개든, 천 개든, 만 개든 다 들어줄게.”“좋아. 그 말... 꼭 기억해.”시연은 티 나지 않게 깊은숨을 들이켰다.그리고 평온하게 말했다.“당신 말대로 할게. 주재호 변호사님이 알려준 대로, 경찰 조사에서도 그대로 진술할게. 하지만...”그 말끝이 끊기자 유건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당신은 이혼 서류에 서명해. 우리, 정식으로 이혼하자.”유건의 숨이 멎었다.‘이 여자가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막 출산한 얼굴... 여전히 아름답고 고요한 시연이 유건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하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눈보다 차가웠다.며칠 전까지 눈이 계속 내리던 G시, 오늘은 맑았지만 길 위엔 얼음이 얼어 있었다.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유건의 가슴 속이 더 차가웠다.불과 몇 시간 전, 오선화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산후우울증 초기 증상이 보인다’는 말.‘이것도 그 일환인가?’유건은 혀끝이 쓰고, 목구멍이 마르다 못해 아팠다.“여보... 결국 아직도 나를 못 믿는구나.”“맞아, 못 믿겠어.”시연은 해맑게 웃었다.눈은 반달처럼 예쁘게 휘어졌지만, 그 안엔 아무런 온기도 없었다.그 말투는 너무도 담백해서, 마치 ‘오늘 날씨가 좋네요’라고 말하듯, ‘밥 먹었어요?’라고 묻듯, 그냥 일상적인 얘기처럼 가볍기까지 했다.“어떻게 믿어? 처음부터... 당신은 날 원해서 결혼한 게 아니었잖아. 혼인신고도, 결혼식도, 다 억지로 했고... 다른 여자랑 계속 엮여 있었잖아. 그건... 부정할 수 없잖아?”모든 말이 다 사실이었다.유건은 변명할 수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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