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랑의 덫에 빠진 운명: Chapter 791 - Chapter 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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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1화

시연은 병실에서 안정을 취한 후, 계속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그 시각, 유건은 딸을 보고 돌아오던 참이었다. 조산으로 태어난 아이는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했지만, 눈을 감은 채로도 젖병을 잘 빨고, 한없이 얌전하고 조용했다.‘아빠는 처음인데... 우리 딸, 왜 이렇게 대견하지...’그때, 문이 조심스레 열리고 주재호 변호사가 들어섰다.“왔어요? 앉아요.”유건이 소파를 가리키며 말했고, 그의 앞에 마주 앉았다.주재호가 이 자리에 온 이유는 하나였다.바로, 시연의 사건 처리 문제.오는 길 내내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정리해 둔 주재호는 차분히 말을 꺼냈다.“대표님, 지금처럼 사모님이 출산을 막 끝낸 상황은 아주 유리한 조건입니다. 일단 사모님이 고의가 아니었다고 진술만 하면...”“조산, 건강 악화, 시력 문제까지 감안해서 집행유예로 충분히 갈 수 있습니다. 장소미 측에는 보상금을 좀 더 올리면 조정 여지도 있고요.”논리적으로는 완벽했다.하지만 유건은 조용히 눈을 감고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내가 원하는 건 집행유예가 아니에요. 나는 내 아내가, 그 어떤 기록도 남기지 않길 원합니다. 변호사님,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재호는 순간 말을 잃었다.‘그럼... 사모님이 장소미를 밀지 않았다는 입장으로 가겠다는 건가?’“하지만, 사모님 본인이 이미...”그는 시연 본인이 그 자리에서 밀었다고 인정한 걸로 알고 있었다.그게 고의인지 실수인지는 본인 외에 아무도 단정할 수 없었고, 목격자도 많은 상황이었다. 재호는 조심스럽게 완곡한 표현을 택했다.“사실, 당시 상황은 서로의 몸이 부딪히는 와중에 벌어진 사고였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사모님이 일부러 그런 건 아니라는 쪽으로...”“사고?”유건은 냉소를 흘리며 눈을 가늘게 떴다.“변호사님, 지금 내 아내한테 ‘실수로 사람을 다치게 한’ 낙인을 찍으려는 거예요? 감옥은 안 가더라도, 평생 사람들한테 손가락질당하면서 살라고요? 변호사님 능력이 그 정도밖에 안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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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2화

“이게 괜찮은 거라고 생각해요?”병실에 들어오기 전, 레오는 이미 간호사 스테이션을 들러 시연의 상태를 모두 확인했다.조산, 산후 대량 출혈, 시력 소실까지.‘어떻게 이렇게까지...’“도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시연은 한숨을 작게 내쉬었다.“임신 상태가 안 좋았어요.”레오는 조용히 손을 들어 시연의 눈앞에서 살짝 흔들어 보았다.그녀가 전혀 반응하지 않자, 미간이 더 깊게 찌푸려졌다.“그 얘기 말고요.”시연은 순간 멍해졌다.“혹시... 그 일까지... 알고 있어요?”‘설마...’시연이 경찰 조사를 받았다는 건... 유건이 언론을 철저히 막아놔서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레오 선생님이... 어떻게?’시연의 의심을 눈치챈 듯, 레오가 담담히 말했다.“제가 말했죠? 시연 씨가 생각하는 것보다 제가 할 수 있는 게 많다고... 제가 궁금하면, 어떤 정보든 알아낼 수 있어요. 그 얘긴 됐고... 시연 씨는 앞으로 어떻게 할 계획이에요?”“계획이요?”‘내가... 무슨 계획이 있겠어?’‘앞도 안 보이고, 몸도 맘대로 못 움직이는 내가...’시연은 말없이 고개를 숙였고, 레오는 한숨을 삼키며 다시 물었다.“지금 이 상황에서도, 여전히 제 도움이 필요 없다고 생각해요?”시연은 움찔했다.앞이 보이지 않아도, 레오의 방향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그 시선은 희미하지만 분명히 흔들리고 있었다.레오는 조급해 하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그녀의 대답을 기다렸다.한참을 망설이다가 시연이 겨우 입을 열었다.“정말... 뭐든 가능한 거예요?”‘정말... 믿어도 될까?’여자의 떨리는 목소리에 레오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요, 어떤 거든...”“하지만...”시연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정말 이 사람을 믿어도 괜찮은 걸까...’‘겨우 몇 번 만난 사이인데... 왜 날 돕는 거지?’그 순간, 레오가 조용히 말했다. 마치 시연의 생각을 다 꿰뚫고 있는 듯한 어조였다.“절 못 믿겠죠?”“네?”“왜 도와주는지 궁금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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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3화

시연이 앞을 보지 못한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유건의 목소리는 더더욱 부드러워졌다.“걱정하지 마. 눈도 곧 나아질 거야. 모든 게... 다 괜찮아질 거야.”시연이 혹시 또 무거운 생각에 빠질까 봐, 유건은 다시 아이 얘기를 꺼냈다.“조산이라도, 우리 아기 태어날 때 울음소리 어마어마했어. 작은 몸으로 그렇게 크게 울 수 있다는 게... 신기하더라.”시연은 가만히 듣다가 입꼬리를 아주 살짝 올렸다.‘맞아... 그때, 나 너무 아파서 정신도 없었는데...’‘그 울음소리는 확실히 들었어.’“아, 맞다. 아기 이름 생각해 봤어?”시연은 고개를 멍하니 흔들었다.그건 정말 생각도 못 했던 일이었다.“그렇지...”유건은 고개를 끄덕였다.“정식 이름은 나중에 정하자. 아마 할아버지 쪽에서도 정식 작명은 따로 하실 거니까... 일단 애칭이라도 하나 지어두는 게 어때?”시연은 말이 없었다. 솔직히 그 순간, 머릿속이 하얘져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았다.“내가 하나 생각해 본 게 있어.”유건의 목소리에 살짝 웃음기가 섞였다.“우리 공주는 조산이었잖아. 그만큼 세상에 나올 준비가 빨랐던 거지. 아빠, 엄마 빨리 보고 싶어서 서둘러 나온 거니까... ‘조이’라고 부르면 어때? 조금 이르게 왔다는 의미에서, 조이. 예쁘지 않아?”‘조이...’시연은 마음속으로 그 이름을 몇 번 되뇌었다.‘조금 빠르게... 조금 서툴게...’‘하지만 누구보다 강하게 세상에 와 준 아이...’그 모든 피와 눈물, 고통이 ‘조이’라는 두 글자에 스며든 듯했다.마치... 이 아이가 이 세상에 온 이유와 의미가 그 이름 안에 담긴 것처럼 느껴졌다.“마음에 들어?”유건은 시연의 표정을 살피며 조심스레 물었다.“그냥... ‘조이’라고 부르자. 우리 아기랑 잘 어울려.”시연은 대답 대신, 아주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그걸로 충분했다.유건은 그녀의 얼굴빛이 조금 나아진 걸 느끼고 조금 안도한 듯 숨을 골랐다.하지만 손을 놓진 않았고, 이내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사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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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4화

하지만 시연은, 후회하지 않았다.‘사람은 자기 행동에 책임져야 하니까.’다만 억울한 건...‘내가 감옥 갈지도 모르는 상황인데, 장소미는 여전히 멀쩡하게 살아 있다는 것.’그게 참을 수 없이 분했다.그런데 지금, 유건은 그런 시연에게 말했다.“넌 아무 일도 없을 거야.”단지 손짓 한 번, 말 한마디면 유건은 이미 모든 걸 정리해 놓았다. 시연은 그저 입을 맞추기만 하면 되는 상황.시연은 비웃듯 작게 웃었다.‘장소미도 이렇게 지켰겠지. 이 남자가...’그렇게 생각하니, 다시금 속이 뒤집혔다.‘역겹고, 미워.’하지만 시연은 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달라질 것도 없으니까.어차피 유건은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럴 게 뻔했다.‘이미 여러 차례 시도했던 일... 더는 의미 없어.’지금 시연 앞에 놓인 진짜 문제는...‘정말 고유건은 이런 ‘보호’를 받아들여야 할까?’아이만 없었으면, 시연은 분명 단호히 거절했을 것이다.하지만...‘딸이 있어. 태어난 지 며칠도 안 된, 눈도 못 뜬 내 아이...’‘내 아이에게... ‘엄마가 감옥에 있다’는 삶을 줄 순 없어.’그렇게 생각한 시연은 자신에게 물었다.‘정말, 내가 거부할 이유가 있나?’‘장소미는 온갖 악행을 저질렀는데도 멀쩡하게 잘살고 있어.’‘근데 내가 벌을 받는다고? 그건 정의도 아니고, 납득도 안 돼.’시연은 조용히 눈을 감았다.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줘.”유건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 불안함이 느껴졌지만, 강하게 밀어붙이지는 못했다.“그래, 생각해 봐.”‘네가 생각할 수 있을 만큼... 난 시간을 끌면 그만이니까.’...오후가 되자, 유건은 회사로 돌아가야 했다. 밤에 다시 오겠다고 말한 뒤 병실을 나섰다.유건이 떠나자마자, 시연은 침대 옆 서랍을 더듬어 핸드폰을 꺼냈다.음성 명령 앱을 열고, 천천히 말하기 시작했다.“레오 선생님에게 전화해 줘.”기계음이 곧바로 반응했다.잠시 뒤, 연결음.[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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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5화

유건은 잠시 벙쪘다.‘지금... 뭐라고 했어?’“정말이야? 거짓말 아니지?”“아니야.”그렇게 말하는 순간, 시연의 가슴 끝이 스르르 떨렸다.‘이게... 잘하는 선택인지 모르겠어.’‘하지만 지금은, 이게 내가 할 수 있는 방식이야.’시연은 마음을 다잡고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대신, 한 가지 조건이 있어.”“조건?”유건은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조건이 뭐든, 한 개든, 백 개든, 천 개든, 만 개든 다 들어줄게.”“좋아. 그 말... 꼭 기억해.”시연은 티 나지 않게 깊은숨을 들이켰다.그리고 평온하게 말했다.“당신 말대로 할게. 주재호 변호사님이 알려준 대로, 경찰 조사에서도 그대로 진술할게. 하지만...”그 말끝이 끊기자 유건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당신은 이혼 서류에 서명해. 우리, 정식으로 이혼하자.”유건의 숨이 멎었다.‘이 여자가 지금, 아무렇지도 않게...’막 출산한 얼굴... 여전히 아름답고 고요한 시연이 유건을 바라보며 웃고 있었다.하지만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은 눈보다 차가웠다.며칠 전까지 눈이 계속 내리던 G시, 오늘은 맑았지만 길 위엔 얼음이 얼어 있었다.그러나 그 어느 때보다 유건의 가슴 속이 더 차가웠다.불과 몇 시간 전, 오선화 교수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산후우울증 초기 증상이 보인다’는 말.‘이것도 그 일환인가?’유건은 혀끝이 쓰고, 목구멍이 마르다 못해 아팠다.“여보... 결국 아직도 나를 못 믿는구나.”“맞아, 못 믿겠어.”시연은 해맑게 웃었다.눈은 반달처럼 예쁘게 휘어졌지만, 그 안엔 아무런 온기도 없었다.그 말투는 너무도 담백해서, 마치 ‘오늘 날씨가 좋네요’라고 말하듯, ‘밥 먹었어요?’라고 묻듯, 그냥 일상적인 얘기처럼 가볍기까지 했다.“어떻게 믿어? 처음부터... 당신은 날 원해서 결혼한 게 아니었잖아. 혼인신고도, 결혼식도, 다 억지로 했고... 다른 여자랑 계속 엮여 있었잖아. 그건... 부정할 수 없잖아?”모든 말이 다 사실이었다.유건은 변명할 수 없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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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6화

시연은 두 팔을 뻗어 유건의 목을 감싸 안았다.그리고 고개를 살짝 들어 올리자, 부드러운 입술이 유건의 것에 닿을 듯 가까워졌다.여자의 목소리는 달콤하면서도 어딘가 나른하고, 위협처럼 간지러웠다.“나한테 증명 안 해주면, 나 그냥 감옥 갈 거야... 그럼 아프지 않겠어?”‘이 사람, 내가 없으면 안 되는 거잖아?’‘그걸 알면서... 난 그냥 찔러보는 거야.’그 말에 유건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말 그대로 벌에 쏘인 듯한 고통이었다.‘나한테... 선택지가 있긴 했던가?’유건은 두 손으로 시연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결국, 이를 악물고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약속할게.”대답을 끝내기도 전에, 유건은 시연의 입술을 거칠게 덮쳤다.그 입맞춤은 격렬하고, 뜨거웠고... 어딘가 절박했다.“읏...”시연이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숨을 토했다.“아파...”유건이 시연의 입술을 조금 세게 깨문 것이다.입술이 붉게 부어오르자, 유건은 당황하면서도 어쩔 수 없는 마음에 낮게 웃었다.“이제 착하게 있을 거지?”남자의 목소리는 달래는 듯하면서도 경계심을 품고 있었다. 유건은 시연의 뜻대로, 처음부터 틀어졌던 둘의 결혼을 끝내기로 했다.그리고 그 끝에서 진짜 시작을 만들어줄 작정이었다.“왜 이렇게 긴장해?”시연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이 꼴로 내가 어딜 가겠어? 나도, 우리 딸도... 당신 도움 없이는 안 되는데.”‘그건 사실이야. 하지만... 감정은 별개니까.’“너, 지금 한 말... 꼭 기억해.”유건은 억울함 섞인 투로 시연의 입술에 또다시 입을 맞췄다.“시작부터 불만이었다면, 끝내줄게. 대신... 다시 시작하자.” 시연은 조용히 웃었다. 작은 어깨를 유건의 품에 기대며 말했다.“정말, 당신 참 착하네. 요즘은 이런 남자 없는데.”오후.주재호 변호사가 병실로 찾아왔다.그는 차분히 경찰 조사에서 어떻게 진술해야 하는지를 설명했고, 시연은 그 내용을 조용히 들었다.그러고는 또박또박,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재호가 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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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7화

“응.”유건은 단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하며 상의를 벗고, 시연의 옆에 조심스럽게 누웠다.“자, 눈 감아.”그 짧은 말 안에 유건의 모든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비록 시연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유건은 느낄 수 있었다.그녀 몸에서 은은히 퍼져 나오는 슬픔을.눈을 감고 있어도, 마음은 울고 있는 듯한...‘다 지나갈 거야. 아니, 내가 그렇게 만들 거야.’‘네 곁에... 영원히 있을게.’...시연의 건강 상태를 고려해, 경찰은 그녀를 경찰서로 소환하지 않고, 병실로 직접 찾아와 조사를 진행했다.진술은 병실 내의 침실에서 이뤄졌고, 변호사인 주재호만 입장이 허락되었다.나머지는 모두 병실 밖, 복도에서 대기해야 했다.유건은 복도 소파에 앉아 있었지만, 그 모습은 영락없는 초조한 남편이었다.다리를 떨었고, 손끝도 떨렸다.한편, 복도 구석에서는 주지한과 정민환, 정기환이 소곤거리고 있었다.“형님, 왜 저리 불안해하냐?”“그걸 몰라서 묻냐?”기환이 눈을 굴리며 말했다.“혹시 형수님이 또 마음을 바꾸면 어쩌나, 그게 걱정인 거지.”“설마.”민환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형수님, 아주 현명한 사람이잖아. 아기도 생각하지 않겠어?” “현명한 사람이 오히려 큰일 칠 수도 있어.”기환은 단호했다.“형수님 같은 사람은 말이야, 너무 똑똑해서 문제야. 인생은... 가끔은 바보처럼 살아야 하는 거라고.”지한도 고개를 끄덕였다.“형수님이 고집부리면... 진짜 어떻게 될지 몰라.”“그렇지?”기환은 더 목소리를 낮추며 속삭였다.“게다가 형수님, 산후우울증이라는 얘기도 있잖아. 뭐가 어떻게 터져도 이상하지 않지...”“야, 입 닫아.”지한이 빠르게 기환을 막았다. 슬쩍 유건 쪽을 흘끗 보며 말했다.“형님한테 들리기라도 하면... 넌 주유소 청소 알바로 바로 투입이야.”“읍!!”기환은 입을 틀어막고 고개를 세차게 저었다....온 복도에 무거운 긴장감이 드리운 그때, 드디어 안쪽 문이 열렸다.유건은 누가 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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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8화

“네.”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그러니까, 산후조리 끝난 다음에요.”‘지금은 아니야. 지금 움직이는 건 무모한 짓이야... 반드시 완벽해야 해.’시연은 죽기 싫었다. 아니, 정확히는 죽기에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았다.산후조리 센터엔 최고급 회복팀이 붙었다.그래서일까? 출산한 지 일주일도 안 된 시연은, 말끔히 정돈된 모습이었다.복부는 거의 원상 복귀되었고, 피부엔 생기가 돌았다.하지만, 눈앞은 여전히 캄캄한 밤이었다.진아가 찾아왔을 때, 시연을 보곤 혀를 찼다.“와... 이 사람이 어떻게 아기 엄마야? 그냥 여고생 아니야? 부러워서 진짜 화난다...”진아는 장난스레 말했지만, 눈동자에는 걱정이 어렸다.시연은 진아의 손을 살짝 잡았다.“진아야, 잘 왔다. 나 좀 도와줘. 아기 좀 보러 가자.”시연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마음은 이미 아이에게 닿아 있었다.“응, 당연하지.”진아는 환하게 웃으며, 휠체어에 앉은 시연을 데리고 신생아실로 향했다.“다 왔어.”진아는 시연의 손을 조심스레 인큐베이터 위에 올려줬다.“느껴져?”“응.”시연은 손끝에 전해지는 온기와 미세한 진동에 미소 지었다.‘아가야... 엄마 왔어.’“안에서 자고 있어. 쪼그만 입으로 쪽쪽 젖병을 빠는 중이야. 꿈에서까지 먹나 봐.”진아의 목소리는 부드러웠고, 묘사 하나하나가 시연의 눈앞에 그려지는 듯했다.시연의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갔다.“어떤 얼굴이야? 날 닮았어? 많이 작아?”질문이 연달아 터졌다.“응, 아주 귀여워. 뒤통수는 동글동글하고, 볼살도 통통해. 진짜 말랑말랑할 것 같아! 눈은 아직 안 떴는데도 존재감 뿜뿜이야.”‘그래... 보고 싶다. 얼마나 작고, 얼마나 예쁜지.’‘내 피와 살, 내 심장이잖아.’시연은 마음속으로 딸을 상상하며 속삭였다.“보고 싶어... 정말.”진아는 시연의 어깨를 다정히 감싸 안았다.“곧 볼 수 있을 거야. 고 대표가 유명한 안과랑 계속 연락하고 있더라. 그 사람 성격 알잖아. 네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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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99화

낮.시연은 산후 회복 검진과 치료를 받으러 가야 했다. 최근 며칠 사이 정해진 일정이었다.정기환이 시연을 병원까지 데려다줬지만, 안까지 따라오진 않았다.남자라 시연이 불편할 수 있었으니까.시연은 진료 침대에 누웠고, 가슴이 점점 더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누군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시연과 똑같은 환자복을 입은 젊은 여자였다.“사모님.”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목소리만으로도 시연은 알아챘다.‘이 목소리는... 설마...’“당신은...?”“네.”여자가 고개를 끄덕였다.“레오 선생님이 저를 보냈어요.”그녀는 시연을 조심스레 일으켜 세우며 문 쪽으로 향했다.그러고는 작고 빠른 목소리로 속삭이듯 말했다.“간호사랑 사모님 보디가드, 전부 잠시 자리 비우게 했어요. 이 문만 나가시면, 밖에서 사모님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어요. 저는 이 자리에 대신 누워 있을게요. 시간을 최대한 끌어볼게요.”“고마워요.”문 앞에는 이미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어떤 남자였다.“지시연 씨, 저는 레오 선생님의 사람입니다. 이쪽으로 오시죠.”그 남자도, 조금 전 여자도 전부 프랑스어를 사용하고 있었다.시연은 망설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남자를 따라 병원 지하 주차장까지 무사히 도착했다.“시연 씨.”레오가 이미 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었다.“바로 공항으로 갈 겁니다. 따님 걱정은 마세요. 다른 팀이 따로 움직이고 있어요.”시연의 가슴이 미친 듯이 뛰었다.‘지금 이게 진짜 일어나는 일이야?’“네, 알았어요.”차는 산부인과를 벗어나, 곧장 공항으로 향했다.가는 도중, 시연이 갑자기 말했다.“레오 선생님, 강울대병원에 잠깐만 들를 수 있을까요?”레오는 바로 눈치를 챘다.“노은범 사장님을 보러 가시는 거죠?”“네.”시연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이번에 떠나면... 다시는 못 올 수도 있어...’레오는 잠시 고민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습니다.”차는 강울대병원 외과 건물 앞에 멈췄다.레오는 시연을 부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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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00화

“근데 이건...”기환이 주머니에서 조심스레 무언가를 꺼냈다.편지 한 통이었다.“형수님이 베개 밑에 두고 간 거예요. 형님께... 드릴까요?”“줘.”유건이 갑자기 손을 내밀었다.기환은 깜짝 놀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형님, 방금까지 아무 반응도 없었는데... 들으신 거였어?’“형님, 여기요.”기환은 서둘러 편지를 건넸다.유건은 그걸 받아 들자마자 망설임 없이 펼쳤다.자필 편지가 아니었다.프린트된, 시연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수신인은 고유건.[고유건 씨, 당신을 안 지 1년도 채 안 됐지만, 분명 당신을 좋아한 순간이 있었어요. 하지만 당신의 반복되는 태도에 지쳤고, 내가 느끼는 불안과 아픔에도 지쳤어요.][아버지는 세상을 떠났고, 내 가장 소중한 친구는 나 때문에 식물인간이 됐어요.] [나는 너무 지쳤어요. 더는 이 관계를 이어갈 힘도, 이유도 없어요. 그리고 당신을 기다리고 싶지도 않아요.] [무엇보다, 내 친구를 저 지경으로 만든 사건의 ‘공범’인 당신 곁에, 나는 더 이상 설 수 없어요.][그래서 떠납니다. 찾지 마세요. 우리, 이제 서로 놓아줍시다.] [우리, 여기서 끝냅시다. 산은 높고, 길도 멀어요. 다시는 만나지 않기를.]편지는 거기서 끝이었다.유건은 편지를 쥔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처음부터 계획된 탈출이었어.’시연은 먼저 유건에게 이혼을 요구했다.그렇게 고유건의 ‘아내’라는 족쇄를 벗었다.이후엔 마치 유건에게 모든 걸 의지하는 척... 진심을 들인 듯한 태도로 그가 방심하게 했다.그런 동시에 한 달이라는 시간을 들여 준비했다.그리고 유건이 G시를 떠난 그 순간에... 모든 계획을 완성했다.시연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조용히, 아주 치밀하게.“하... 하하...”유건은 손에서 힘을 빼며, 편지를 떨어뜨렸다.낮고 서늘한 그 웃음은 기묘한 광기를 자아냈다. “형님...”지한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괜찮으실 겁니다. 반드시 형수님을 찾을 수...”“찾아?”유건이 고개를 살짝 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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