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 여자아이가 누군지 알고 있었다. 바로 진세라의 여동생 진슬기였다.순간 눈살을 살짝 찌푸렸지만 곧 평정을 되찾았다.한때는 나도 이런 상상을 했었다. 정민규와 가정을 꾸려서 평범하고 소소한 아침, 햇살이 쏟아지는 날에 아이의 손을 잡고 학교에 데려다주는 그런 모습을.하지만 나는 그런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되었고 정민규를 내 반쪽으로 생각해서는 더더욱 안 되었다.두 사람이 점점 가까이 왔고 정민규도 나를 신경 쓰기 시작했다. 나는 돌아서서 다른 아이의 손을 잡았다.“자, 선생님이 무용 슈즈 갈아 신겨 줄게.”내가 몸을 숙여 웃으면서 말하자 아이도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아이의 발에 부드러운 무용 슈즈를 신겨 주었다.두 사람이 내 곁으로 다가왔고 정민규는 나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그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지만 나는 여전히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여기서 아르바이트해?”그가 갑작스러운 질문에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차가운 태도가 불편했는지 눈빛이 더욱 깊어졌다.방학이 지나면 우리는 각자의 길을 갈 것이다. 앞으로 만날 일도 별로 없어서 그와 거리를 두고 싶었다.내가 무시하자 정민규는 진슬기를 내게로 밀었다.“고 선생, 슬기 무용 슈즈 좀 신겨 줄래?”기대에 찬 그의 눈빛에 나는 얼굴을 찌푸렸다. 하지만 뭐라 하진 않고 진슬기가 내민 무용 슈즈를 갈아 신겨 주었다.진슬기는 진세라와 많이 닮긴 했지만 진슬기가 좀 더 밝아 보였다.사랑하면 상대의 가족도 다 예뻐 보인다고 했던가. 미래의 가족과 잘 어울리려고 노력하는 듯싶었다.나는 어리석게도 진세라를 사랑하는 정민규의 마음이 얼마나 깊은지 알아보지 못하고 졸졸 쫓아다니다가 결국 비참한 결말을 맞이했다.“고 선생, 슬기 춤에 재능이 좀 있어?”정민규가 또 물었다. 돈 버는 게 우선이라는 생각에 쳐다보진 않고 대답만 했다.“슬기 잘해.”짧게 대답하고는 그가 반응하기도 전에 아이들을 데리고 교실로 들어갔다.문 너머로 정민규의 뜨거운 시선이 느껴졌다.‘내가 슬기를 괴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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