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Bab 1901 - Bab 1910

1932 Bab

제1901화

지붕 위에서 들려온 소리는 크지 않았다. 그러나 윤귀에게는 벼락처럼 가슴을 치고 내려왔다.“누구야?”목욕통 안에 있던 윤귀는 반응이 빨랐다. 소리가 나자마자 옆에 걸려 있던 겉옷을 홱 끌어당겨 몸에 둘러 감았다.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하고 경계로 가득 찼다. 놀라 깨어난 독사처럼, 날카로운 시선이 곧장 지붕을 겨눴다.그는 몸을 제대로 말릴 겨를도 없었다. 축축한 손이 이미 옷 속에 숨겨 두었던 얇은 비수 몇 개를 움켜쥐고 있었다.아원은 놀라 비명을 삼키듯 짧게 내뱉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최지습은 속으로만 큰일 났다고 느꼈다. 그러나 더는 숨을 수 없었다. 그는 몸을 살짝 날리더니 지붕의 구멍 사이로 가볍게 내려와 방 한가운데에 발을 디뎠다. 표정은 침착했으나, 온몸이 물에 젖어 눈빛이 서늘해진 윤귀와 정면으로 마주섰다.“대군자께서요?”윤귀는 내려온 이의 얼굴을 확인하자 잠시 놀란 기색을 보였다. 곧 짙은 의문이 그 자리를 대신했다.“대군자는 이게 무슨 뜻이십니까?”아원은 허둥지둥 윤귀 곁으로 달려갔다. 무언가 설명하고 싶었으나 어디서부터 말을 꺼내야 할지 몰라 눈가가 벌써 붉어졌다.최지습은 윤귀의 물음을 곧장 받지 않았다. 대신 고개를 돌려 막 문을 밀고 들어오는 김단을 바라봤다.“약왕곡의 주인?”윤귀는 더더욱 놀랐다. 김단까지 여기에 있을 줄은 상상도 못했다.김단 역시 이렇게 들켜 버릴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그녀는 서둘러 방 안으로 들어와 바닥에 흩어진 깨진 기와 조각을 한 번 훑어본 뒤, 서로를 마주 보고 선 두 사람과, 겉옷으로 몸을 가렸음에도 분노와 놀람을 감추지 못하는 윤귀의 얼굴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깊게 한숨을 삼켰다.일이 여기까지 온 이상, 더 숨기는 건 아무 의미가 없었다. 괜히 의심과 경계만 더 키울 뿐이었다.김단은 윤귀 앞까지 걸어가 깊게 숨을 들이쉬었다.복잡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가 입을 열었다.“윤귀, 우린 자네 허리 옆에 있는 그 불꽃 모양 붉은 반점이 대체 무슨 연유인지 알고 싶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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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2화

“예? 민천우 말씀이십니까?”윤귀는 꼬리를 밟힌 고양이처럼 벌떡 일어났다. 목소리가 순식간에 치솟았다. 어이없음과 거센 거부감이 뒤섞여 있었다.“말도 안 됩니다. 절대 그럴 리가 없습니다. 도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겁니까. 제가 어떻게 민승안의 아들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 그 사람이 제 아버지라고요? 우스운 말씀 하지 마십시오. 이건 말도 안 되는 헛소리입니다.”그는 흥분한 나머지 팔을 마구 휘저었다. 격한 감정이 치밀어 올라 얼굴까지 붉게 달아올랐다.그 사람이, 어떻게 자기 아버지란 말인가.그 사람은 줄곧 그를 괴롭혔다. 사흘이 멀다 하고 굶겼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리고 욕했다. 심지어 틈만 나면 목숨이 달린 위험한 일들만 골라 시켰다.이런 사람이, 어떻게 자기 아버지일 수 있단 말인가.윤귀가 이토록 흥분해 무너진 모습을 보자 이들 모두 그가 지금 얼마나 버거운지 알고 있었다.아원은 허둥지둥 다가가 윤귀를 살며시 끌어안았다. 조금이라도 위로를 건네고 싶었다.최지습은 아주 작은 한숨을 내쉰 뒤에야 낮게 말했다.“호랑이군이 뒤쫓아 보니까 그해 민천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떠돌이 도사를 따라 한양을 떠난 뒤 끝내 행방이 묘연해졌다고 하더군. 윤귀.”여기까지 말한 그는 눈빛을 번뜩이며 윤귀를 똑바로 응시했다.“잘 떠올려 보시오. 자네 스승이 예전에… 떠돌이 도사로 행세한 적은 없었소?”떠돌이 도사라는 말은 마치 열쇠처럼 불쑥 튀어나와 윤귀 기억 깊숙이 먼지 쌓인 한구석을 비틀어 열어젖혔다.그의 얼굴에 떠올랐던 격앙된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 버렸다. 대신 오래된 기억 속으로 빠져드는 멍한 기색이 서서히 번져 갔다.떠돌이 도사. 허름한 도포 차림에 작은 깃발을 손에 들고, 길모퉁이에서 차갑고 딱딱한 찐빵 하나를 그의 손에 쥐여 주던 흐릿한 그림자.그 얼굴은 이미 가물가물해졌지만, 그때 스며들던 느낌만은 또렷했다.자비로운 표정 아래 숨겨져 있던 살얼음 같은 시선과 냉정한 심사였다.“……그렇습니다.”윤귀의 목소리는 바싹 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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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3화

윤귀는 걱정이 가득한 얼굴의 아원을 한 번 바라보고 다시 굳은 표정의 김단과 최지습을 차례로 바라보았다. 그러다 마치 온 기운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어깨가 툭 하고 내려앉았다.한참을 말없이 서 있었다. 밤바람에까지 서늘함이 배어들 즈음에서야 그는 간신히 목을 울리며 쉰 목소리를 짜냈다.“……알겠소. 약속하겠소. 만약… 만약 그 사람이 정말로 나를 찾아온다면 그때는 그대들에게 말하겠소.”최지습과 김단은 가볍게 눈을 맞추었다. 더 밀어붙였다가는 오히려 상처만 깊어질 뿐이라는 걸 둘 다 알고 있었다.“밤이 많이 늦었소. 오늘은 이만 쉬시오.”최지습이 입을 열어 얼어붙은 공기를 풀어 놓고는 김단과 함께 방을 나섰다.윤귀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여전히 불안에 떨고 있는 아원을 가만히 끌어안았을 뿐이다. 하지만 그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아원은 그 모습을 보자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다. 눈물이 금방이라도 넘칠 듯 그렁그렁 맺혔다.“윤귀, 미안해요. 저…”“그대 잘못이 아니오.”윤귀는 아원의 말을 잘랐다. 그는 깊게 숨을 들이켜고는 스스로를 다독이듯 동시에 아원을 달래듯 애써 말을 이었다.“현면객과 얽힌 일이라면 원래부터 끝까지 파헤쳐 보는 게 맞소. 다만, 아원… 나, 나는…”윤귀의 얼굴빛은 유난히 어두웠다.아원은 그 표정만 봐도 무엇을 말하려는지 알아버렸다. 재빨리 손을 뻗어 그의 입을 살며시 막았다.“윤귀가 누구시든, 누구의 아들이시든 저는 한 가지만 알고 있어요.”아원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 그러나 그 안에는 묘하게 사람을 붙드는 힘이 깃들어 있었다.“윤귀는 제 남편이세요. 제 윤귀예요. 저는 언제나 윤귀랑 같이 있을 거예요. 살든 죽든 끝까지요. 윤귀, 절대로 저를 버리시면 안 돼요. 아니, 윤귀는 절대로 저를 버리실 수 없어요.”그 말을 듣는 순간 윤귀의 가슴속에는 이루다 말로 옮기기 힘든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무엇을 어떻게 답해야 할지 알 수 없어서 그는 그저 팔을 뻗어 아원을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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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4화

시간은 눈 깜짝할 사이에 흘러 삼 일이 지났다.이 삼 일 동안 한양은 드물게 고요했다.윤귀는 붉은 반점 일로 크게 풀이 죽어 아원과 함께 작은 뜰에만 머물며 꼼짝도 하지 않았다.최지습은 궁 안의 방비를 정비하느라 바빴다.현면객이 다시 손을 뻗어 궁궐 안으로 파고들어 주상을 해칠 가능성을 완전히 끊어 놓기 위해서였다.소하는 고지운과 두 아이를 정성껏 돌보며 짧은 시간 안에 예종원군 관저의 수비를 철통같이 다져 놓았다.무예대회 또한 현면객 때문에 미뤄졌다.무림에 모인 이들은 저마다 머무는 여인숙에만 붙어 있으면서 그 어느 때보다 얌전했다.하지만 이 모든 것이, 너무 조용했다.마치 새벽 직전의 어둠, 폭풍이 몰아치기 전의 고요 같았다.김단은 자신의 방에 앉아 있었다.몸속에 퍼져 있던 충독은 거의 다 정화되었지만, 마음속 불안은 이유도 없이 점점 더 짙어지고 있었다.그 불안은 해 질 무렵, 날카로운 외침 한 줄기에 마침내 깨졌다.“약왕곡의 주인! 큰일났습니다!”시녀 하나가 거의 굴러 넘어질 듯 방 안으로 뛰어들어 왔다.얼굴은 종이처럼 새하얗고, 목소리는 심하게 떨리고 있었다.“숙희 누이… 숙희 누이가… 피를 토하고 쓰러졌습니다!”김단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겉옷을 걸칠 틈도 없이 시녀를 따라 거의 달리다시피 숙희가 머무는 곁방으로 뛰어갔다.침상 위에는 숙희가 두 눈을 꼭 감은 채 누워 있었다.얼굴빛은 섬뜩한 청회색으로 질려 있었고 입가에는 아직도 검붉은 핏자국이 남아 있었다.몸은 미세하게 경련을 일으키고, 숨결은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로웠다.그 증상은 예전에 고지운이 골수잠식 음고에 당했을 때와 하나도 다르지 않았다.“숙희!”김단은 침가로 몸을 날리듯 다가가 곧장 손목에 손가락을 얹었다.역시였다.싸늘한 한기가 순식간에 김단의 온몸을 휘감았다.먼저 임학.그다음은 고지운.이제는 숙희까지.“약왕곡의 주인님!”모 선생이 허겁지겁 달려와 침상 위의 숙희를 보자, 얼굴 가득 당황한 기색이 번졌다.그는 거칠게 숨을 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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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5화

영칠은 치밀어 오르는 불안을 억눌러 삼키며 낮게 입을 열었다.“약왕곡의 주인! 예종원군 관저에서 급보가 왔소! 경조부 대옥에 누군가가 난입해 감옥을 강제로 털어 버렸소..상대는 무공이 극히 높고 수법이 지독하여, 남아 있던 옥졸들이 참혹하게 죽고 다쳤소. 예종원군 전하께서는 이번 탈옥을 시도한 자가… 현면객일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하였소.”그 한마디는 벼락처럼 김단의 귀를 강타했다.탈옥이라니.하필 지금 이때.경조부 감옥에 갇혀 있는 자들은 지난번 예종원군 관저에서 소동을 일으켰던 무림인들이었다.날짜를 따져 보면, 내일이면 모두 풀려나는 날이었다.그런데 이 시점에 누군가가 감옥을 턴 것이다.소하가 현면객일 거라 판단한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그럼 백도령께서는요?”김단이 나직이 물었다.영칠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다.“대군자께서는 이미 그리로 향하셨소. 하지만… 지난번 진맹과 유 사형의 시신 상태를 보아도 알 수 있듯, 현면객 또한 식원비전의 공법을 쓰오. 난 그 점이 걱정되오…”그가 걱정하는 것은, 최지습이 전 내력을 모조리 빨려 버릴지도 모른다는 점이었다.그 말을 듣는 순간, 김단의 가슴이 와락 죄어들었다.민승안 쪽에는 반드시 서둘러 가야 했다.하지만 이곳의 숙희는…“약왕곡의 주인님, 이쪽은 저에게 맡기십시오!”부드러운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원이었다.그녀는 윤귀와 함께 바깥에서 성큼성큼 들어오고 있었다.두 사람의 얼굴에는 짙은 근심이 선명했다.“숙희 누이 쪽은 아직 조금은 버틸 수 있을 겁니다. 약왕곡의 주인님께서는 어서 현면객을 잡으러 가시는 게 좋겠습니다.”곁에 있던 모 선생도 거들어 나섰다.“약왕곡의 주인께서는 걱정 마십시오. 제가 온힘을 다해 숙희의 목숨을 붙들어 두겠습니다. 지금은 무엇보다 현면객을 잡는 일이 급합니다.”그 말을 들은 김단은 살짝 눈썹을 찌푸렸다.둘 다 지킬 수는 없었다.결국 선택을 해야 하는 순간이었다.그녀는 품 안에서 검푸른 빛의 약환 하나를 꺼내 숙희의 입에 조심스레 밀어 넣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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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6화

그 순간 현면객은 마치 등에 눈이 달린 듯 김단의 장력이 몸에 닿기 직전에 몸을 기묘하게 비틀었다. 피하지도 물러서지도 않고 오히려 내력을 끝까지 끌어올려 최지습의 한 수와 정면으로 맞부딪쳤고, 그 반동을 타 몸을 팽이처럼 거세게 회전시켰다.쾅.이미 한계에 다다른 최지습은 오래 준비한 이 전력 일격을 맞고 기혈이 거세게 뒤집혔다. 긴 검이 손에서 미끄러질 뻔하며 온몸이 통제할 수 없이 뒤로 날아가 반쯤 무너진 담벼락에 세차게 부딪혔고, 낮게 신음을 흘리며 입가로 선혈 한 줄기가 흘러내렸다.반면 현면객은 그 회전 힘을 이용해 김단의 장력 대부분을 영리하게 흘려보냈다. 동시에 왼손을 번개처럼 뻗어 다섯 손가락을 갈고리처럼 세우고, 장을 내밀며 허술해진 김단의 오른쪽 손목 맥을 정확히 틀어쥐었다.차갑고도 사나운 내력이 순식간에 스며들어 팔의 경맥을 틀어막았고, 그 탓에 몸 한쪽이 싸늘하게 저려 왔다.“단이!”최지습은 눈이 찢어질 듯 휘둥그레지며 진기를 억지로 끌어올려 앞으로 내달리려 했다.“허…”현면객은 낮고 쉰 웃음을 흘리며 다른 손을 귀신같이 빠르게 뻗어 김단의 목덜미 한 혈을 스치듯 눌렀다.김단은 극심한 현기증이 물밀듯이 밀려오는 것을 느끼며 눈앞이 새까맣게 가려졌다. 온몸의 기력이 한순간에 송두리째 빨려 나가는 듯해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그저 최지습의 다급하고 분노에 찬 얼굴과 소하 일행의 경악한 표정이 시야 속에서 빠르게 흐려지고 멀어져 가는 것만을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현면객은 일격에 성공하자 털끝만큼의 미련도 보이지 않았다. 팔을 휘둘러 맥이 풀려 쓰러진 김단을 물건 집어 들 듯 겨드랑이 아래 끼어 올리더니, 몸을 한 줄기 검은 연기처럼 솟구쳐 올렸다. 사람들이 반응해 포위망을 좁히기도 전에 이미 옥리의 높은 담장을 훌쩍 넘어 몇 차례 솟구치고 내려앉는 사이, 짙은 밤빛 속으로 자취를 감추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알 수 없을 만큼 긴 뒤에야 김단은 서서히 정신을 되찾았다.의식은 깊이를 가늠할 수 없는 얼음장 같은 연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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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7화

민승안은 주전자를 들어 올렸다. 뜨거운 물이 천천히 두 개의 투박한 잔으로 흘러 들어갔다. 피어오르는 김이 그의 얼굴 위 미세한 표정을 잠시 가려 버렸다.그는 주전자를 내려놓고 고개를 들어 김단을 바라보았다. 잔잔한 시선이 그녀의 얼굴에 머물렀고, 입가에는 옅은 미소가 천천히 걸렸다. 그러나 그 미소는 눈까지 닿지 못한 채, 오히려 사람의 속을 서늘하게 만들 뿐이었다.“일이 이 지경까지 왔는데, 내가 무엇을 더 못 하겠느냐.”그의 목소리는 여전히 담담했다. 그러나 세월을 통과해 온 자만이 지닐 수 있는 확신이 묻어 있었다. 마치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을 읊조리듯 말했다.“이 천하의 판은 이미 끝을 향해 가고 있다. 나를 막을 수 있는 자는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존재하지 않는다고?”김단은 코웃음을 치며 그를 노려보았다. 눈빛이 칼끝처럼 날카로워, 겉으로는 빈틈없이 고요해 보이는 그의 평정을 찔러 깨뜨리려는 듯했다.“민승안, 자네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것 아니오. 자네 무공이 아무리 절정에 이르렀다 한들, 천하무적은 아니오. 최지습, 소하, 조정의 정예와 강호의 호걸들까지 모두가 손을 잡는다면 그 힘은 산도 뒤흔들 수 있소. 자네가 혼자 힘으로 과연 이 모든 세상을 상대로 버틸 수 있다고 믿는가. 개미도 떼를 이루면 코끼리를 물어 죽이는 법이야.”“손을 잡는다고?”민승안은 어처구니없는 농담을 들은 사람처럼 가볍게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자기 앞에 놓인 투박한 찻잔을 들어 코끝에 가져갔다. 변변찮은 차향까지도 천천히 음미하는 양, 입에는 대지 않았다.그는 다시 눈을 들어 김단을 바라보았다. 그 눈동자 깊은 곳에서 가려지지 않은 탐욕이 한순간에 치솟았다.“내가 네 놈의 내력을 모조리 빨아들이고, 그 몸에 흐르는 백독불침의 곡혈까지 전부 내 것으로 만들고 나면…”그는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시선이 실체를 가진 것처럼 김단을 옭아맸다. 마치 그녀가 더 이상 한 사람이 아니라, 곧 삼켜 힘으로 바꿀 신령한 영약인 양.“그때가 되면 내게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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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8화

이 말을 들은 김단의 미간이 번쩍 일그러졌다.심묵이 정확히 얼마를 살았는지까지는 알지 못했다.다만 백 년이 훌쩍 넘도록 살아 있었던 것만은 분명했다.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지만 않았더라면, 어쩌면 지금도 어딘가에서 숨 쉬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그렇다면 민승안은 두 번째 심묵이 되겠다는 뜻인가.그녀가 입을 떼기도 전에, 민승안이 다시 말을 이었다.목소리에는 절대적인 냉혹함과 확신이 서려 있었다.“곁에 아무도 없다, 그 말이냐. 허허, 유치하구나. 내가 지고의 권세를 손에 쥐게 되면 이 세상 만물은 모두 내 쓰임이 된다. 노비도, 사냥개도, 군사도… 나아가 새로 만들어질 자손들, 새로 만들어질 혈육들까지도 내 뜻대로 빚어내어 마음껏 거두고 마음껏 버릴 수 있다.”말을 맺으며, 그의 시선이 다시 김단에게로 돌아왔다.탐욕이 서린 눈빛이 거의 흘러넘칠 듯 일렁였다.이미 승부가 기울었다고 믿는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섬뜩한 확신이 목소리에 묻어 나왔다.“그리고 네 피만 손에 넣으면, 나도 장생의 문턱을 엿볼 수 있을지 모른다. 아주 오래, 아주아주 오래 살아서, 내 손으로 세운 제국이 해와 달처럼 영원히 떨어지지 않게 만들 수 있을 것이다.”그 말을 듣고서야, 김단은 끝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민승안, 자네는 정말 미쳤구나. 감히 장생을 꿈꾸다니. 심묵이 백 년이 넘도록 살았다 한들, 결국은 기름 다한 등불처럼 꺼진 날이 있었는데, 자네는 아직도 그런 꿈을 꾼단 말이오.”“그래서 어쨌다는 거냐.”민승안의 목소리가 날카롭게 치솟았다.“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 단 하루를 더 산다 한들, 그 하루만큼 더 희망이 생기는 법이다. 장생이 허망한 것이라 해도, 나는 백 년, 이백 년은 살 수 있을 것이다. 오직 살아만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어둑한 그의 두 눈에서 다시 한 번 탐욕의 불빛이 번뜩였다.“허황된 망상이야.”김단이 벌떡 일어서며 눈에 불같은 분노를 일으켰다.“민승안, 내가 설령 죽는다 해도 절대로 자네 뜻대로 되게 두진 않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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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09화

민승안은 천천히 눈을 감았다.얼굴에는 거의 도취에 가까운 표정이 떠올랐다.그는 느낄 수 있었다.놀라울 만큼 정제되고, 묵직하면서도 생기로 가득한 내력이 끊임없이 자신의 경맥으로 흘러들어 와, 수십 년 다져 온 공력을 씻어 내듯 채워 주고 있었다.이 느낌은, 그동안 빨아들였던 강호의 고수들 내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황홀했다.그는 곡혈 속에 스며 있는 묘하고도 강대한 생명력이 어렴풋이 손끝에 잡히는 것까지 느꼈다.그럴수록 장생에 대한 갈망은 더욱 뜨겁게 달아올랐다.모든 것이 처음부터 그가 그려 온 대로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김단의 내력을 모조리 빨아들여 곡혈과 하나로 섞어 내기만 하면 된다.그러면 민승안은 이 세상 누구도 발붙이지 못할, 진정한 지고의 존재가 될 터였다.그가 스스로도 흡족해하며, 한 번에 끝을 내겠다는 마음으로 김단을 완전히 말려 버리려는 바로 그때였다.변고가 일어났다.처음에는 거의 느껴지지도 않을 만큼 미세한 냉기가, 거대한 내력의 물줄기 사이에 섞여 슬그머니 그의 경맥 안으로 스며들었다.그 음한한 기운은 원래 김단 몸에 돌고 있던 약왕곡의 중정한 내력과는 도무지 어울리지 않았다.뼈를 갉아먹는 듯한 악의가 서려 있었다.민승안은 미간을 조금 좁혔지만,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다.그저 김단 몸속에 남아 있던, 고지운에게서 옮아 온 골수잠식 음고의 잔재쯤으로 여겼을 뿐이었다.이 정도 독기는, 제 힘만으로도 나중에 얼마든지 몰아내면 그만이라 생각했다.그러나 곧, 그 한 줄기 냉기는 그의 내력에 씻겨 사라지기는커녕, 맑은 물에 떨어진 먹물처럼 빠르게 번져 나가기 시작했다.게다가 그것만이 아니었다.성질이 전혀 다른 음독과 작열, 마비의 기운까지 뒤섞인 온갖 괴이한 기운들이 연달아 고개를 들며, 끝도 없이 그의 몸 안으로 밀려 들어오기 시작했다.“푸헉—!”마침내 민승안의 입에서 피 한 줄기가 거칠게 터져 나왔다.방금 전까지 도취되어 있던 표정이 순식간에 굳어지더니 산산이 무너졌다.그는 번쩍 눈을 부릅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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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10화

김단은 힘이 빠진 몸을 차가운 바닥에 그대로 내던지듯 쓰러졌다.숨을 한 번 들이쉴 때마다 오장육부가 죄다 찢겨 나가는 듯한 통증이 밀려왔다.내력이 강제로 쓸려 나간 뒤 남은 텅 빈 허기와, 균형이 무너진 경맥 속에서 다시 날뛰기 시작한 충독의 역류가 뒤엉켜, 그녀의 의식을 산산이 찢어 놓을 듯했다.심지어 그녀는, 몸속의 피가 조금씩 빠져나가면서 생명력이 함께 스러져 가는 감각까지 또렷이 느끼고 있었다.금세라도 사라져 버릴 거품처럼, 조금만 건드려도 사그라질 것만 같았다.하지만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세상을 다 가진 듯 오만하던 민승안이, 지금은 얼굴이 일그러진 채 온몸을 떨고, 숨결마저 바람 앞의 등잔불처럼 흔들리는 꼴을 보자, 김단의 입가에 서늘한 웃음이 어렸다.슬픔과 비웃음이 뒤섞인 그 웃음이, 꺼져 가는 몸을 억지로 떠받치듯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김단은 힘겹게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허… 콜록, 콜록…”그녀는 독기가 섞인 검은 피를 토해 내며 쉰 목소리로 겨우 말을 이었다.“민승안… 자네 정말, 이렇게까지 공을 들여 이 말도 안 되는 판을 짜 놓고도… 내가 자네가 원하는 게 뭔지 모를 거라 생각했나. 오늘 너를 만나기 전에, 나는 이미 내 몸에 맞춰 직접 만든 독을 삼켜 두었어. 어때… 기분은 좀 어떤가.하하… 하하하… 넌 스스로 모든 걸 계산했다고 믿겠지… 하지만 정작… 네가 그토록 발버둥 치며 손에 넣으려 한 게… 무엇인지조차 모른 채로 여기까지 온 거야…”민승안은 전신의 내력을 쥐어짜듯 운기를 돌리며, 경맥과 생기를 미친 듯이 갉아먹는 기괴한 충독의 폭주를 간신히 억누르려 하고 있었다.그러다 말을 듣자마자 번쩍 고개를 들었다. 새빨갛게 충혈된 두 눈이 김단을 꽉 물어뜯듯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는 극심한 통증과 믿기지 않는 분노, 그리고 스스로조차 인정하고 싶지 않은 알 수 없는 두려움이 뒤섞여 있었다.김단은 그런 민승안의 모습을 바라보았다.힘겹게 입꼬리를 조금 올리며 끊어지는 숨 사이로 말을 이었다.오래된 상처를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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