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대군, 사랑에 살다: 무수리의 반격: Bab 1921 - Bab 1930

1932 Bab

제1921화

김단은 윤귀의 이런 모습을 한동안 바라보다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더는 캐묻지 않고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려, 조금 떨어져 서 있던 암위에게 낮게 한마디 일렀다.얼마 지나지 않아, 약이 담긴 사발을 들고 있는 다른 암위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그 암위는 체구도 평범했고 얼굴도 낯설었다.윤귀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었다.그는 감옥문 앞까지 다가가, 잔잔한 목소리로 말했다.“사제, 이 탕약은 경맥을 다스리는 데 기효가 크다. 특히… 어릴 적부터 뼈가 어긋나고 살이 다시 붙는 고통을 견디며 축골변형법을 익혀 온 우리 같은 자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약이지.”축골변형법이라는 말이 벼락처럼 윤귀의 귀에 쾅 하고 내려쳤다.그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동공이 움찔 줄어들며, 감옥문 밖에 서 있는 그 낯설고 아무 특징도 없는 얼굴을 노려보았다.순간 번개가 스치는 듯, 한 이름이 머릿속으로 치밀어 올랐다.“너… 너는… 야효냐?!”그가 이름만 들어왔을 뿐, 단 한 번도 얼굴을 본 적은 없었던 사형이었다.야효의 얼굴에는 여전히 별다른 표정이 없었다.다만 깊게 가라앉은 눈빛으로 윤귀를 바라볼 뿐, 그 말이 틀리지 않음을 조용히 인정하고 있었다.그는 소리를 낮추고, 말 속도를 재촉하듯 더했다.“윤귀, 민승안이 너에게 대체 무슨 몽혼탕을 먹였고 어떤 약속을 내걸었는지 나는 모른다. 하지만 약왕곡의 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또 너를 어떻게 대했는지는 네가 가장 잘 알 것이다. 더는 미혹에 빠져 허우적대지 마라. 잘못 위에 또 다른 잘못을 쌓지 말아라.”김단도 다시 입을 열었다.쇳소리가 섞일 만큼 힘이 빠진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사람 가슴을 꿰뚫는 힘이 실려 윤귀의 팽팽하게 당겨진 심장을 두드렸다.“윤귀, 이 며칠 동안 아원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아시오? 그 애는 날마다 자네 처소 사랑채 처마 밑에 앉아서 해가 뜰 때부터 해가 질 때까지 널 기다리고 있소. 눈이 울고 또 울어서 벌겋게 붓도록 울어도, 누가 뭐라 달래도 돌아가려고 하지 않더군.”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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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2화

지하옥 안의 공기가, 윤귀의 청천벽력 같은 자백과 함께 굳어 버렸다.김단은 윤귀가 그토록 입을 열지 않던 까닭이, 이런 사연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입을 떼려다 말문이 막힌 채, 그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숨을 고를 뿐이었다.그때 윤귀의 눈가에서 눈물이 한 줄기 흘러내렸다.“나는… 나는 감히 아원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가 없소.그 애가 알게 되면, 자기 베개를 나누는 사람이 이런 사악한 자라는 걸 알게 되면… 분명 나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오…”바로 그 순간에야, 김단은 비로소 하나의 답을 찾아낸 듯했다.윤귀가 처음부터 끝까지 두려워하고 있는 대상은 내내 아원 한 사람뿐이었다.김단은 최지습의 품에 몸을 기대고 있었다.쇠약한 기운과 지하옥의 냉기가 뒤섞여 몸이 가볍게 떨려 왔지만, 시선만큼은 윤귀의 괴로움에 일그러진 얼굴에 단단히 걸려 떨어질 줄 몰랐다.가슴 깊은 곳에서, 아주 가는 연민이 실처럼 피어올랐다.그녀를 부축하고 있는 최지습은 미간을 깊게 찌푸린 채, 매처럼 예리한 눈빛으로 윤귀를 지켜보고 있었다.윤귀의 이야기는 비록 참혹했고, 말의 흐름도 앞뒤가 맞아 보였다.그러나 가장 중요한 증거 한 가지가 빠져 있었다.그래서 그가 낮게 물었다.“윤귀, 말만으로는 못 믿겠다. 네 말이 거짓이 아님을 어떻게 증명하겠어?”윤귀는 눈가에 아직 마르지 않은 눈물과 비웃음 섞인 쓸쓸한 미소를 함께 걸친 채, 번쩍 고개를 들었다.마치 이런 질문이 나올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곧바로 입을 열었다.“한양 서쪽 삼십 리 밖에 난장지가 있습니다. 그중 가장 동쪽 끝에 서 있는 말라죽은 늙은 느티나무가 하나 있습니다. 그 나무 아래에서 남쪽으로 열 걸음 내려가 땅을 파 보십시오. 그의 시체가… 거기에 있습니다.”말을 들은 최지습이 곧바로 낮게 불렀다.“영칠.”“예.”늘 어둠 속에 숨어 있던 영칠이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냈다.“지금 당장 인원을 데리고 그자가 말한 곳으로 가서 파 보고 확인하시오. 반드시 시신의 신원을 가려야 하오.”“알겠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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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3화

김단은 말없이 입을 다물었다. 최지습의 말이 사실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그래서…”최지습의 목소리가 한층 더 낮아졌다. 그 안에는 결연한 기운이 스며 있었다.“어쩌면 약재 연못이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일 자체가 잘못인지도 모르겠소. 단이, 내 생각에는 그 약재 연못은… 더 이상 세상에 남아 있어서는 안 되오.”김단의 온몸이 크게 떨렸다. 그녀는 화들짝 고개를 들어 최지습을 바라보았다.약재 연못. 그곳은 약왕곡이 대대로 지켜 온 성지였다. 수많은 선인들의 피와 땀이 응축된 보물이자, 죽은 이를 살리고 흰 뼈에 살을 돋게 하는 치유의 성경이었다.그걸, 스스로 손으로 부숴 버리라니. 그 생각이 스치기만 해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다. 마치 자신의 전승 일부를 직접 목 졸라 끊어 버리는 것만 같았다.그러나 최지습의 말은 경종처럼 계속해서 귓가를 울렸다. 민승안의 그림자, 탐욕에 일그러진 얼굴들, 허망한 살육과 희생의 장면들이 한 폭 한 폭 눈앞을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눈을 감고 깊게 숨을 들이켰다. 다시 눈을 떴을 때, 그 안에는 여전히 지울 수 없는 아쉬움이 어렸지만 이미 맑고 단단한 빛이 자리 잡고 있었다.“말씀하신 게 맞습니다.”쉰 기운이 섞인 목소리였지만 또렷하게 울렸다.“사람의 탐욕은 끝없이 부풀려집니다. 약재 연못이 이 세상에 하루 더 남아 있는 한, 강호 위에 매달린 거대한 먹잇감처럼 수많은 꿍꿍이를 품은 자들을 불러들이겠지요. 오늘은 민승안 한 사람일 뿐이지만 내일은 또 둘째, 셋째가 나타날 것입니다. 약재 연못이 있는 한 약왕곡에 평안은 없을 것이고, 이 강호 역시 진정한 태평을 누리기 어려울 것입니다.”그녀는 말끝을 잠시 삼키고 어쩔 수 없다는 듯 옅은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다만 약왕곡은 저 김단 한 사람의 약왕곡이 아닙니다. 약재 연못은 약왕곡의 지보라 그 무게가 너무 큽니다. 없앨지 말지, 저 혼자 마음먹었다고 함부로 정할 수는 없습니다. 약왕곡의 장로들과 핵심 제자들을 모두 불러 함께 상의한 뒤에야 비로소 결단을 내려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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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4화

결정이 내려진 이상 실행으로 옮겨야 했다.김단은 약재 연못을 없애는 일이 조용히 끝낼 수 있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강호의 사람들 앞에서 그대로 보여 줘야만 했고, 이를 통해 온 세상에 알리고 모두의 미련을 끊어야 했다.그래서 그녀는 약왕곡의 주인 자격으로 이번 소동으로 피해를 입은 각 문파와 강호의 명망 높은 이들에게 널리 서찰을 보내 약왕곡으로 초청했다. 서찰에는 분명히 적혀 있었다. 첫째, 이번 다툼 속에서 입은 상처를 돌봐 약왕곡이 세상을 구제하는 책임을 다하고자 한다는 것. 둘째, 강호의 앞날과 안녕에 관계된 중대한 일을 온 세상에 알릴 것이라는 내용이었다.이 소식이 퍼지자 강호가 술렁이기 시작했다. 누구는 약왕곡의 인심에 고마움을 느꼈고, 누구는 그 중대사가 신비한 약재 연못과 관련된 것이 아닌지 추측했다. 생각은 제각각이었지만 대부분의 문파에서 사람을 약왕곡으로 보냈다.며칠 뒤 김단과 최지습은 약왕곡의 사람들, 그리고 초청을 받고 모여든 수많은 강호 인물들과 함께 다시 약왕곡으로 돌아갔다. 익숙한 땅을 다시 밟자 김단의 가슴에는 여러 감정이 뒤섞여 올라왔다.약왕곡의 풍경은 예전과 다름없었다. 안개가 자욱했고 약향이 골짜기 가득 퍼져 있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예전 그대로인 듯하면서도, 이제 그녀가 서 있는 자리는 이미 달라져 있었다. 그녀는 내공을 잃었고 곡혈도 잃었다. 그리고 오늘은 약왕곡에 대대로 내려오던 지보마저 직접 손으로 없애야 했다. 최지습은 줄곧 그녀 곁을 지키며 말없이 힘이 되어 주었다.사람들이 자리를 잡은 뒤 약왕곡의 제자들은 맡은 바를 다해 각 문파에서 온 이들의 상처를 세심히 살피고 치료했다. 뛰어난 의술과 너른 인품 덕분에 많은 이들의 칭찬을 받았고, 이전의 쟁탈전에서 생겨난 살기 역시 조금씩 누그러졌다.사흘 뒤, 모든 준비가 끝났다. 약왕곡 뒤편 산자락, 해마다 안개가 걷히지 않고 기운이 감도는 약재 연못가에는 약왕곡을 찾은 강호의 인물들 거의 모두가 모여 있었다.약재 연못에서는 짙고도 맑은 약향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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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5화

연못의 물이 순식간에 끓어오르며 뒤집혔다.색은 눈으로 볼 수 있을 만큼 빠르게 탁하고 잿빛으로 변해 갔다.온몸을 파고들던 약향은 코를 찌르는 타는 냄새로 바뀌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원래 기운이 서리고 생기가 돌던 약재 연못은 완전히 기운이 끊긴 탁하고 더러운 웅덩이로 변해 버렸다.신비롭다 부를 만한 기척은 조금도 남지 않았다.온 산골짜기가 숨조차 멎은 듯 고요해졌다.모두가 넋을 잃은 채 그 광경을 바라보았다.가슴속에는 말로 다 할 수 없는 충격과 뒤섞인 감정이 가득했다.안타까움도 있었고, 이해하지 못하는 마음도 있었다.그러나 그보다 더 큰 것은 마치 오랜 쇠사슬이 끊어진 듯한 해방감, 그리고 아직 젊은 약왕곡의 주인 김단이 보여 준 결단과 책임에 대한 진심 어린 존경이었다.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 사람이 허리를 깊이 굽히며 크게 외쳤다.“약왕곡 주인장께서는 강호를 품에 두고 보물을 버리고 의를 택하셨으니, 저희가 어찌 감히 머리 숙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약왕곡 주인장의 가르침을 깊이 새기고, 욕심을 거두어 강호의 태평을 함께 지키겠습니다!”이어서 여기저기서 호응하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더 많은 이들이 몸을 굽혀 예를 올렸고, 그 목소리는 하나로 모였다.“약왕곡 주인장의 가르침을 명심하겠습니다. 함께 강호의 태평을 지키겠습니다!”그 외침은 산골짜기 사이를 울리며 메아리쳤다.마치 그동안 이곳에 드리워져 있던 피비린내와 어둠을 함께 씻어 내리는 듯했다.김단은 눈앞의, 완전히 모습을 바꿔 버린 약재 연못을 바라보았다.가슴 한켠이 텅 빈 것처럼 허전했다.마치 자신에게서 아주 중요한 한 조각이 떨어져 나간 듯했다.그러나 동시에, 한 번도 느껴 본 적 없는 가벼움이 조용히 마음속에서 떠올랐다.그녀는 자신이 옳은 선택을 했음을 알고 있었다.이후 며칠 동안 약왕곡은 남아 머무는 강호의 인물들을 위해 계속해서 상처를 돌보았다.마지막 한 무리까지 모두 기력을 회복하고 떠나 보낸 뒤에야, 드넓은 약왕곡은 문득 예전보다 더 깊은 고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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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6화

날들은 마치 미지근한 시냇물에 잠긴 듯, 느리면서도 고요하게 흘러갔다.아침이면 김단은 최지습과 함께 약왕곡 곳곳에 번지는 약초 향 속 숲길을 걸었다.새소리를 듣고, 아직 마르지 않은 이슬을 바라보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한낮에는 서재에 들어가 고서를 뒤적이거나 모 선생과 의술을 논했다.곡혈과 내력의 속박에서 벗어난 뒤로, 오히려 마음을 더 깊이 가라앉힐 수 있었다.그 덕에 온전히 약리와 의도만을 파고들 수 있었다.해 질 무렵이면 둘은 약초밭 옆 푸른 돌 위에 나란히 앉았다.노을이 하늘 끝을 비단처럼 화려하게 물들이는 모습을 가만히 바라볼 뿐, 굳이 말을 나누려 하지도 않았다.그러고만 있어도 시간이 한없이 평온하고, 세월이 잔잔하게 흘러가는 듯했다.이렇게 담담하면서도 알찬 행복은, 수많은 풍파와 위기를 지나온 김단에게 갈수록 더 소중한 보물처럼 느껴졌다.보름 뒤, 모든 일을 차근차근 정리한 두 사람은 한양으로 돌아갈 길에 올랐다.다시 한양의 익숙한 작은 집에 돌아왔을 때, 김단의 가슴에는 수많은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이번 험난한 일들이 결국 큰 탈 없이 끝나고, 모두 무사히 돌아온 것을 기념하고 싶어 김단은 집 안 작은 마당에서 소박한 연회를 열기로 했다.숙희는 관저 사람들을 데리고 일찌감치 준비에 나섰다.상과 의자, 그릇과 젓가락이 정갈하게 놓였다.호화롭지는 않았지만, 구석구석 정성이 묻어나고 있었다.영칠은 말없이 숙희 뒤를 따르며 물건을 건네고 상과 의자를 옮겼다.여전히 얼굴에는 별다른 표정이 없었으나, 어설프면서도 성실히 거드는 모습은 그를 잘 아는 이들을 내심 놀라게 하면서도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석양의 남은 빛이 작은 마당 위에 따스한 금빛 막을 씌우는 사이, 손님들이 하나둘 도착했다.가장 먼저 도착한 것은 소하와 고지운 부부였다.소하는 여전히 차갑고 담담한 얼굴이었고, 고지운은 꽃이 핀 듯 환하게 웃고 있었다.그녀 품에는 태어난 지 몇 달 되지 않은 고운 세손이 안겨 있었고, 곁에는 이제 겨우 비틀비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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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7화

마지막으로 도착한 것은 호랑이군의 열 명 오라버니들이었다.그들은 들어오자마자 하하 웃고 떠들며 우렁찬 목소리로 마당을 뒤흔들었다.최지습을 가운데 두고 한 상을 빙 둘러앉아 술잔을 주고받으며 호탕한 농담을 쏟아냈고, 순식간에 자리가 뜨겁게 달아올랐다.최지습은 그들 한가운데 앉아 있었다.여전히 기품 있는 분위기는 그대로였지만, 미간에는 좀처럼 보기 힘든 여유와 웃음이 어렸다.오랜 세월 생사를 함께한 형제들과 나란히 있는 이 시간이, 그에게 얼마나 편안한지 누구라도 알 수 있었다.김단은 술잔을 손에 든 채 툇마루에 서서, 이 광경을 미소 지으며 바라보고 있었다.지기, 연인, 오라버니들까지.자신이 마음에 두고 아끼는 사람들이, 거의 모두 이 자리에 모여 있었다.웃음소리와 떠드는 소리가 작은 마당 구석구석을 가득 메웠다.촛불과 노을빛이 한데 엉켜 번지며, 웃음을 머금은 얼굴들을 하나하나 따스하게 비추고 있었다.온몸이 따뜻함과 행복에 감싸인 것 같은 이 느낌이, 그녀의 가슴을 설명하기 어려운 충만함과 안정감으로 가득 채웠다.그러다 문득 시선을 천천히 훑어 내려가던 그녀는, 무언가가 비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아원과 윤귀가 보이지 않았다.김단은 살짝 눈썹을 좁히더니, 손에 쥐고 있던 술잔을 내려놓고 조용히 자리를 떴다.그리고 집 뒤쪽, 윤귀와 아원을 위해 따로 내어 준 작은 마당으로 발걸음을 옮겼다.작은 마당은 앞뜰과는 달리 고요했다.문은 살짝 반쯤 열려 있었다.김단이 조심스레 문을 밀고 들어가자,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잠시 발걸음이 멎었다.마당 안쪽에서 아원이 크지 않은 보퉁이를 등에 메고, 고개를 숙인 채 윤귀의 약간 비뚤어진 옷깃을 정성껏 가다듬고 있었다.윤귀는 몸에 딱 붙는 기동복을 벗어 두고, 평범한 청색 장포로 갈아입은 상태였다.언제나 짙게 서려 있던 냉기와 살기는 상당 부분 옅어져 있었고, 얼굴빛은 여전히 희었으나 눈동자에는 이제껏 본 적 없는 고요함과 부드러움이 어려 있었다.이 모양새로 보아, 떠날 채비를 마친 것이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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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8화

이 말이 나오자 잔칫자리가 순식간에 들썩였다.“그러하오, 대군자가. 이 큰 풍파도 다 지나갔고, 악인들도 다 정리됐고, 약왕곡에서도 자리가 잡혔으니, 두 분도 이제… 평생의 대사를 생각해 보셔야 하지 않겠소?”“맞소, 맞소!”곧바로 누군가가 맞장구를 쳤다.“우리 백도령은 영명하고 무예도 뛰어나고, 단이는 마음씨 곱고 슬기로운데, 그야말로 하늘이 맺어 준 한 쌍이오!”“그렇소! 어서 혼례부터 올려야 하오. 그래야 우리도 제대로 한 번 들썩여 보지 않겠소!”“백도령, 아무리 조정 일이랑 강호 일을 처리해야 한다지만, 우리 단이를 너무 소홀히 하시면 쓰겠소!”소하 역시 드물게 웃음을 띤 채 최지습을 바라보았고, 고지운은 손으로 입을 살짝 가린 채 웃으며 시선을 김단과 최지습 사이에 번갈아 두었다. 눈빛에는 장난기가 가득했다.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두 사람에게로 쏠렸다.최지습은 들고 있던 술잔을 쥔 손이 잠시 멈추었고, 귓불이 눈에 보일 정도로 서서히 붉게 물들어 갔다.그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앉은 김단을 바라보았다. 김단 역시 두 볼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고, 평소 또렷하던 눈은 갈 곳을 잃은 듯 살짝 내려가 있었다. 그녀는 눈을 숙인 채 자기 앞의 술잔만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는데, 마치 그 위에 꽃이라도 피어 있는 듯했다.이렇게 보기 드문 수줍은 모습이 사람들 눈에는 더욱 재미있어 보였고, 그만큼 떠들썩한 분위기도 한층 더해졌다.“백도령, 뭐라도 한마디 하셔야 하오!”“사내대장부가 먼저 입을 여셔야 하오!”“한마디만! 한마디만 들려주시오!”부추기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끊이지 않았고, 모두가 반짝이는 눈으로 최지습을 바라보며 그가 무슨 말을 내놓을지 숨을 죽인 채 기다리고 있었다.모두의 시선이 쏠린 가운데 최지습의 목젖이 한 번 살짝 움직였다.그는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떼었다가, 고개를 숙인 채 두 볼이 붉게 물든 김단의 옆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막 입 밖으로 나오려던 말을 다시 삼켜 버렸다.그는 불현듯 술잔을 들어 남은 술을 단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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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29화

손님들은 하나둘 인사를 나누고 자리를 떴다. 작은 안뜰에는 서서히 다시 고요가 내려앉았다.숙희는 하인들을 데리고 재빠르게 어질러진 상과 마당을 정리했다. 영칠은 어느새 또다시 어둠 속으로 몸을 감추었다.김단은 행각 마루에 서서 하늘에 떠 있는 환한 달을 올려다보았다. 밤바람이 살짝 서늘하게 스쳐 가자 마음도 한결 차분해졌다. 연회 자리에서 최지습이 일부러 거리를 두는 듯한 태도는 조금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더 곱씹지는 않았다. 아마 다른 계산이 있겠거니, 아직 때가 아니라고 여긴 것뿐이겠지 하고 넘겼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를 무렵, 익숙한 기운이 실린 가벼운 발걸음 소리가 등 뒤에서 다가왔다. 김단은 돌아보지 않았다. 다만 입매만 살짝 올라갔다.최지습이 그녀 곁으로 다가와 나란히 섰다. 둘은 함께 달빛이 내려앉은 뜰을 바라보았다. 잠시 침묵이 흐른 뒤에야 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단이, 아까 연회에서 그 일은…….”“괜찮습니다.”김단이 그제야 고개를 돌려 그를 향해 미소 지었다.“분명 나름의 이유가 있으셨겠지요.”그녀의 이런 마음 씀씀이가 오히려 최지습의 가슴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다.그는 깊게 숨을 들이켰다. 오래 망설여 오던 결심을 마침내 굳힌 사람처럼, 품속에서 선명한 누런빛의 두루마리 하나를 조심스럽게 꺼냈다.그 두루마리는 좋은 비단으로 단단히 감겨 있었고, 가장자리에는 잔잔한 마모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가 품에 지닌 채 여러 날을 보내 왔음이 분명했다.“이건…… 무엇입니까?”김단은 그 누런 빛을 바라보며 이미 어느 정도 짐작이 갔다. 눈동자에는 잠깐 놀라움이 스쳐 지나갔다.최지습이 두루마리를 살며시 펼쳤다. 맑은 달빛과 행각 아래 아직 꺼지지 않은 등불이 함께 비추는 가운데, 그 위에 선명한 옥새의 붉은 인장이 찍혀 있는 것이 또렷이 드러났다. 바로 두 사람의 혼인을 내리는 어명이 적힌 문서였다.“난… 사실은 우리가 약왕곡에서 돌아오기도 훨씬 전에 이미 주상께 이 어명을 청해 두었소.”최지습의 목소리는 낮게 깔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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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30화

한 달 뒤였다.이른 새벽, 옅은 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김단은 경대 앞에 앉아 놋거울 속의 자신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었다.정홍색 혼례복에는 금실로 복잡한 난봉무늬가 정교하게 수놓여 있었고, 소맷부리와 치맛자락 곳곳에는 잘게 박힌 진주들이 아침빛을 받아 은은한 광을 돌렸다. 붉은 금에 비취를 박은 봉관이 묵직하게 올린 머리 위를 누르고 있었고, 구슬과 비취 장식이 머리 둘레를 에워싼 채 가느다란 보요가 살며시 드리워져 흔들렸다.그녀는 천천히 손을 들어 관에서 내려온 유술을 한 번 쓸어 보았다. 손끝이 아주 조금 떨렸다.“아씨, 오늘은 정말 곱습니다.”숙희가 옷깃을 다듬어 주며 낮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알게 모르게 울음기가 배어 있었다. 김단이 여기까지 오는 동안 얼마나 쉽지 않은 길을 걸어왔는지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김단의 가슴에도 별의별 감정이 한꺼번에 밀려왔다.그녀가 혼례를 치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익숙한 절차와 순서를 이미 한 번 모조리 밟아 본 몸이었다.조금 전 머리를 빗어 준 이도 지난번 그때처럼, 복이 좋다던 그 할미였다.하지만 지난번 혼례는 내린 어명을 피하기 위한 궁여지책이었다.이번만은 달랐다.이번에는 진심으로, 한 사람과 평생을 함께하고 싶어 선택한 혼례였다.어쩌면 그래서일 것이다.지금 이 순간이 유난히 더 긴장되게 느껴지는 것도.그렇게 생각에 잠겨 있던 찰나, 문발이 살짝 흔들리는 소리가 나더니 고지운이 소정원의 손을 이끌고 방 안으로 들어섰다.두 사람은 혼례복을 차려입은 김단을 보자 나란히 걸음을 멈추었다.“단이…”고지운이 성큼 다가왔다. 붉은 빛이 도는 혼례복 차림의 김단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금세 환해졌다. 그는 다가와 그녀의 손을 꼭 잡으며 웃었다.“이렇게 고운 자는 처음 보오.”소정원도 급히 다가와 김단 앞에 서더니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이 혼례복 자수 정말 정교하네요. 궁 안 수장들이 한 솜씨지요? 지난번 우리 오라버니께 시집가실 때 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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