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지금 반사적으로 느껴지는 고통과 증오는 결코 거짓된 게 아니었다.한동안 아무 말도 못 하는 민여진에 조현준은 실망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 거야?”“아니요.”민여진은 반사적으로 대답했다. 순간적으로 나와버린 대답에 그녀는 한숨을 길게 내쉬며 마음속에서부터 느껴지는 거북함을 애써 억누르고 웃어 보였다.“좀 의외예요. 오빠가 나한테 이런 질문을 할 줄은 몰랐거든요. 지금 내 상황도 그렇고, 사람 만날 기회도 거의 없었으니까.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는 게 이상하죠.”“정말?”조현준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조심스레 민여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무대 위에서는 여전히 노래가 울려 퍼지고 있었지만 조현준은 목소리를 더욱 낮게 깔며 물었다.“그럼, 여진아. 나는 안 될까?”갑작스러운 고백에 얼어붙은 민여진이 멍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조현준이 말을 이어나갔다.“조금 웃기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너 좋아했어. 네가 너무 멋있었고, 그때의 나한테 너는 햇살 같은 존재였거든. 그래서 나도 모르게 너한테 끌리더라. 하지만 너는 너무 어렸고, 어린 애를 좋아한다는 게 부끄러워서 어떻게든 잊어보려고 공부만 하고 살았거든. 그 덕분에 명문대도 입학했고, 집도 떠났으니까 널 좋아하던 그 감정도 없애보려고 했었어. 그렇게 마음을 다 접은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네 이름을 다시 듣는 순간, 다시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어. 그때 알았지. 난 아직 널 잊은 게 아니구나.”“그동안 연애도 몇 번 해봤지. 그런데 잘 안 됐어. 사람들이 다 그러더라. 나한테서는 연애에 대한 간절함이 없어 보인다고.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몰랐는데, 널 만나니까 조금은 알 것 같아.”조현준은 조심스레 의자 팔걸이에 걸쳐져 있던 민여진의 손을 감쌌다. 조금의 힘도 들어가지 않은 그 스킨십은 민여진에게 충분히 도망칠 여지를 남겨두고 있었다.“이렇게 다시 만난 것도 운명이라면 운명인데. 여진아, 너만 괜찮다면 나랑 만나볼래?”머릿속이 백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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