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아, 저기 있는 작은 칼 좀 가져오거라.”허정안이 책상 위에 있는 과일용 칼을 가리키며 촛불을 밝혔다. 소영은 어리둥절했지만, 일단 지시에 따랐다.“아... 아가씨! 지금 뭐하시려고... 조심하세요!”허정안이 칼을 불에 달군 뒤, 손가락 위로 가져가는 것을 본 소영이 창백한 얼굴로 외쳤다.“영왕의 방문은 오늘 내 계획의 변수였다. 그는 매우 속이 깊고 예리한 사람이야. 어떠한 허점도 남겨선 안 돼.”허정안이 손가락 끝과 엄지 검지 사이에 있는 굳은살을 도려내며 말했다. 그러자 피가 배어 나오며 바닥에 방울방울 떨어졌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소영이 준 흉터 연고 덕에 손등의 흉터는 많이 사라진 상태였고, 갈라졌던 다른 피부도 많이 부드러워진 상태였다. 그렇게 굳은살을 모두 도려내자, 남 보기엔 꽤 흉측해 보이는 상처가 생겼다. 하지만 허정안은 눈썹 하나 까딱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소영이 더 가슴 아파하며 지혈 연고를 발라주고 상처를 손수건으로 동여매었다.“아가씨, 안 아프세요?”“안 아파.”회귀 전에 겪은 고통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통증 덕에 정신이 더 또렷해졌다. 허정안은 오늘 있었던 일을 다시 머릿속에서 복기했다. 영왕의 등장 외에는 모두 그녀의 계획대로 진행되었다. 허명진은 이런 큰 사건을 저질렀으니, 허함철과 허 부인의 추궁을 피할 수 없을 터였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허명진이 스스로 빚진 일을 고백하는 것이었다. 허 부인이 아무리 허유진을 아낀다 하더라도, 결코 친아들과 비교할 순 없었다.만약 허명진이 도박에 빠지는 것을 허유진이 방조했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굳이 허정안이 손을 쓰지 않더라도 두 모녀의 관계는 파투 날 것이다.모든 것은 겉보다는 안에서 무너뜨리는 편이 가장 유리했다. 허정안은 자신이 가져야 했던 것을 모두 되찾을 생각이었다. 손님들이 모두 돌아간 뒤, 허명진은 반 시진 째 안채에 있는 내당에서 매질을 당하고 있었다. 허유진은 불안한 표정으로 복도에 무릎 꿇은 채 상황을 지켜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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