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 안은 달빛에 젖어 은설처럼 빛났다. 차갑고 고운 은빛이 마당을 덮었고 그 속에 백씨 마님, 나신, 백지현이 나란히 서 있었다. 그들은 말없이 타오르는 불길을 바라보았다. 온 하늘을 붉게 물들인, 끔찍하리만큼 아름다운 불길을 말이다. 나정은 어스름한 시야 속에서 어머니가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았다. 그 눈물은 마치 무언가를 애도하듯 조용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횃불을 창 너머로 던졌다. 그녀를 태워 죽이기 위해서였다. 그 순간 나정의 가슴에 솟구친 원한은 타오르는 불꽃보다 더 뜨거웠다. 그 감정은 그녀가 죽은 뒤에서도 사라지지 않았고 그렇게 영혼이 되어 한양 안을 떠돌며 오랫동안 머물렀다.진남군 관저가 몰락하고 그 집안사람들이 하나하나 죽어간 뒤에야 나정의 혼은 비로소 조용해졌다. 그리고 다시 살아난 뒤 그녀는 모든 원망을 서서히 내려놓았다. 전생의 기억은 뿌옇게 희미해졌고 꿈에서조차 찾아오지 않았다. 오늘 밤 이 악몽이 아니었다면 영영 떠올리지 않았을 것이다.그렇게 울면서 왜 저를 죽인 겁니까, 어머니. 울지 않았다면 차라리 더 편했을 텐데. 그녀는 혼이 되어 방황하던 첫해 줄곧 어머니 곁에 머물렀다. 그저 대답을 듣고 싶어서, 이유를 알고 싶어서. 백씨 마님의 눈물은 죽어서도 그녀를 묶어두는 족쇄가 되어버렸다.그 눈물 한 방울이 그녀를 집착하게 만들었고 이승에 머무르게 했다. 다시 태어난 그녀는 지금 그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백씨 마님이 자신을 끔찍하게 증오했다는 사실도, 불길 속에서 눈물로 자신의 숨통을 끊어버렸다는 사실도. 부정한다고 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나정은 이불을 젖히고 몸을 일으키더니 조용히 야경을 서던 추란을 불렀다. 그녀는 난로 위 물을 덜어내어 따뜻한 물에 수건을 적셔 그녀의 땀을 닦아주었다. 속옷을 갈아입으려는 순간, 나정이 문득 입을 열었다.“모레가 제사일 이지?”“예, 아씨. 작은 제사 날입니다.”추란이 고개를 끄덕였다. 과거, 바로 그 작은 제사 날에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났고 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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