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정은 마침내 문기당으로 돌아왔다. 전생에는 이 작은 승리조차 온 집안을 떠들썩하게 뒤흔들며 얻어낸 것이었다. 본래 그녀 것이었지만 되찾을 때에는 오히려 백지현이 넓은 아량을 베풀었다는 식이 되어버렸고 그녀의 ‘예쁜’ 마음을 부각시켜주는 계기가 되어버렸다. 그런 각인 덕분에 매사에 나정만 불리하게 궁지로 몰렸었다.하지만 이번 생은 달랐다. 조모 쪽에서 먼저 일용품을 보내왔고 물품을 들고 온 관사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지만 그녀에게 공손히 예를 갖추었다. 그날 밤, 나씨 부인이 문기당을 찾아왔다. 언제나처럼 입가에는 웃음을 머금었지만 마음속에는 날카로운 칼을 숨기고 있는 듯했다.“예전에 네가 쓰던 이급(二等) 몸종들을 다시 쓸 생각이 있느냐?”나정은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저에게는 추화와 추란이 있습니다. 너무 잘 해주는 아이들이라 이급 몸종으로 올리려 합니다. 다른 몸종들은 지현이 익숙하게 부리고 있으니 빼앗을 수는 없지요.”나씨 부인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 그녀의 얼굴에는 얕은 놀람이 스쳤지만 이내 다시 자애로운 어머니의 표정을 덧입었다.“정아, 네가 그리 선을 그어버리면 발 디딜 곳이 없어질 수도 있다. 세상일이 어찌 네 뜻대로만 되겠느냐?”그러나 나정은 아무 말도 없었다. 흐트러짐 없는 표정을 하고 반쯤 덮인 눈꺼풀을 들어 올리며 조용히 자신의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눈동자에는 조롱도, 기쁨도 없었다. 그저 무관심만 존재할 뿐이었다. 나씨 부인의 말은 이제 그녀에게 아무 의미가 없었다. 굳이 반박할 가치조차 느끼지 못할 정도였으니 말이다.“넌 참 고집스럽구나. 그 은덕이 어디까지 갈 줄 알고 이러는 것이냐? 네가 무너질 때가 오면 누가 널 지켜줄 줄 알고...”나씨 부인의 말에 나정은 잔잔히 입을 열었다.“어머니, 진남군 댁이 존재하는 이상 제 은덕도 바닥나지 않을 겁니다. 그렇지 않습니까?”나씨 부인은 입술을 굳게 다물더니 소리 없이 소매를 휘둘며 나가버렸다. 그날 밤, 조모 쪽에서 나정이 부탁했던 사람을 보내왔다. 눈앞에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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