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만...주용화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곁에 선 하지율을 응시했다.자신과 살아온 궤적부터가 다른 그녀는 본능적으로 피 튀기는 잔혹한 싸움을 질색했다. 그런 그녀의 유순한 성정을 생각하면 손형원을 단칼에 죽여버리는 건 확실히 너무 단조롭고 재미없는 일이었다. 살려둔 채 숨통만 겨우 붙여놓고 평생을 비참한 고통 속에서 기게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는 확신이 들었다.주용화는 말없이 짐을 챙기며 머릿속으로 다음 계획의 밑그림을 정교하게 그려나갔다. 그러다 가방 하나를 정리하던 중 예상치 못한 이질적인 물건이 손끝에 걸리는 것을 느끼고 동작을 멈췄다.그는 의아함이 서린 표정으로 가방 속에서 천천히 물건을 꺼내 들었다.“이건...?”“!”주용화의 나직한 목소리에 무심코 고개를 돌린 하지율은 그대로 자리에 굳어버렸다.주용화의 길쭉한 손가락 사이에 들린 것은 언뜻 봐도 아주 독특하고 기묘한 모양을 한 양초 두 자루였다.하지율은 머릿속이 하얗게 점멸하는 기분을 느꼈다. 찰나의 정적 뒤, 그녀의 하얀 얼굴이 순식간에 붉게 타올랐다.극심한 당혹감이 전신을 훑고 지나갔다.‘설마...’지난번 공구점에서 급하게 물건을 샀을 때 가게 주인이 지어 보이던 그 묘하고 음흉한 미소가 불현듯 뇌리를 스쳤다.당시 계산을 마친 주인은 하지율에게 써보고 효과가 좋으면 또 오라며, 특별히 할인해 주겠다는 의미심장한 말까지 덧붙였었다.당시엔 워낙 경황이 없어 그게 무슨 뜻인지 전혀 몰랐으나 이제 보니 주인이 덤이라며 양초 두 자루를 끼워준 모양이었다.그런데 그 양초는 누가 봐도 평범한 관상용이 아니라 특수한... 성적인 용도의 물건임이 분명했다.하지율은 주용화의 손에서 양초를 낚아채듯 뺏어 가방에 처넣었다.그러나 마음이 너무 급했던 탓일까, 손이 떨리면서 가방 안에 들어 있던 다른 물건들까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쏟아져 내리고 말았다.밧줄, 그리고 수갑...기괴한 모양의 양초와 한데 어우러진 그 물건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온갖 해괴하고 민망한 상상을 불러일으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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