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권세를 품은 용대비: Bab 81 - Bab 90

100 Bab

제81화

민 대비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크게 꾸짖었다.“후궁에 이처럼 악독한 여인을 어찌 더 두겠느냐. 당장 냉궁에 가두고 처분은 추후에 정하겠다.”이 말을 들은 이들은 모두 속으로 숨을 죽이며 놀랐다. 냉궁에 들어간다는 것은 머지않아 백릉을 하사받아 생을 마감하라는 뜻이나 다름없으니 말이다.양 귀인은 힘이 풀려 그 자리에 주저앉고 얼굴에는 죽음보다 더한 절망이 깃들었다.궁녀들이 양 귀인을 붙잡아 끌고 나가자 그 자리에 물이 고여 있는 것이 보였고 겁에 질려 그만 실례를 한 듯하였다.허나 양 귀인의 처지가 너무도 참담하여 그 자리에 있던 누구 하나 그녀를 비웃지 않았다. 민 대비가 양 귀인을 처결한 뒤 어두운 눈빛으로 용지안을 바라보며 이르렀다.“내가 이 일을 이렇게 처리하였는데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용지안은 차분히 미소를 머금고 답했다.“단호하게 처분하신 점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네.”민 대비가 다시 말을 이었다.“방금 중전이 잠시 남의 꾐에 넘어가 원빈이 양 귀인의 유산을 꾀한 줄로 오해하였소. 이제 모든 진상이 드러났으니 자네도 이만 경책하는 선에서 그치면 어떻소.”용지안은 담담히 맞받았다.“내가 중전을 벌하고자 함은 잘못된 심문 때문이 아니라 내게 함부로 무례를 범하였기 때문이네.”민 대비는 두 손을 힘껏 움켜쥐며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분을 참다가 차가운 시선으로 중전을 돌아보며 호령하였다.“아직도 사죄를 올리지 않고 무엇을 하느냐. 어서 무릎 꿇고 잘못을 빌어라!”중전은 마음이 편치 않았으나 민 대비의 명을 어길 수 없어 힘겹게 앞으로 나아가 무릎을 꿇었다.“방금은 신첩이 경솔하였으니 대비마마의 너그러운 용서를 구하옵니다.”용지안은 고요하게 일렀다.“중전, 네 자리가 어디인지 아느냐?”중전의 신분으로는 ‘대비’가 아니라 반드시 ‘어마마마’라 불러야 했다.중전은 이를 악물고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어마마마, 잘못하였습니다. 한순간 놀라 실수한 것이니 일부러 거역한 것은 아니옵니다. 어린 마음에 경솔하였으니 넓은
Baca selengkapnya

제82화

원빈은 용지안의 뒤를 따라 여란궁으로 들어섰다.“무릎 꿇어라.”용지안이 냉랭히 일렀고 원빈은 재빠르게 바닥에 엎드렸다.“어마마마의 가르침을 받들겠나이다.”“네 죄를 아느냐?”용지안의 목소리는 한 치 흐트러짐 없었다.“스스로의 죄를 알고 있나이다.”원빈은 고개를 깊이 숙였다.“좋아. 여란궁 문 앞에 나가 한 시진 동안 무릎을 꿇고 있어라. 내가 허락하기 전에는 일어서지 마라.”용지안이 단호히 명하였다.“아가씨...”진여가 놀란 듯 조심스럽게 막으려 했으나 곽옥현이 손을 내밀어 살짝 말렸다.곽옥현은 고개를 저으며 가만히 있으라고 눈짓을 주었다.“어마마마의 은혜, 평생 잊지 않겠나이다.”원빈은 세 번 머리를 조아리고 눈가에 눈물이 맺힌 채 밖으로 물러났다.여란궁 문 앞, 긴 회랑에 원빈이 무릎을 꿇자 궁인들은 회화나무 그늘에서 조심스레 고개를 내밀며 살폈다.원빈이 자리를 뜬 뒤, 진여가 곽옥현을 조용히 바라보며 물었다.“아가씨께서 어찌하여 원빈을 벌하신 것입니까? 그분 또한 억울한 피해자가 아니십니까?”곽옥현이 살며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용씨 부인께서는 원빈을 보호하신 것입니다. 오늘 용씨 부인께서 직접 나서서 중전의 간계를 밝혀내셨으니 중전께서는 당장 부인을 어찌하지 못하시겠지요. 허나 훗날 분명 원빈에게 화살이 돌아갈 터이니 이렇게 미리 벌을 내리면 중전께서 보기에는 원빈이 용씨 부인의 노여움을 샀다고 여기실 것입니다. 설령 해코지를 하더라도 크게 손을 대지는 못하시겠지요.”진여는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이제야 아가씨의 깊은 뜻을 알겠군요.”잠시 생각에 잠기던 진여가 다시 조용히 물었다.“하지만 이번 일이 정말 중전의 계략이었습니까? 저는 양 귀인이 스스로 아이를 잃었다고 들었습니다. 중전께서도 속으신 줄로만 알았는데요.”곽옥현이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옵니다. 양 귀인이 정말 죽은 아이를 가졌으리라 생각하십니까? 실은 양 귀인은 처음부터 중전께 휘둘리고 있었던 것이지요.”진여가 놀라며 되
Baca selengkapnya

제83화

“양 귀인도 그 사실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으나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걸고 모험을 해본 것이지. 그녀의 아이가 떨어졌든 아니든, 어찌 되었든 원빈이 향낭에 사향을 넣어 태아가 불안정해졌다고 밝혀지면 결국 죄를 물을 수밖에 없었으니 말이다.”용지안이 천천히 말했다.“그런데 어의는 어찌 그 일을 알게 된 것입니까?”진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양 귀인은 어의를 은밀히 매수해 중전의 눈을 피하려 하였지. 허나 그 어의라는 자는 양 귀인에게서 은을 받아 놓고 다시 그 사실을 중전에게 고해바치더구나. 이런 자라면 백 번을 죽여도 아깝지 않지.”용지안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그럼요!”진여도 분노에 찬 목소리로 응했다. 잠시 머뭇거리다, 진여는 조심스럽게 용지안을 올려다보았다.“아가씨께서는 어찌하여 이런 사정을 다 아시게 되었습니까?”용지안은 미소를 머금고 손에 든 야명주를 굴리며 답했다.“이 세상에서 내가 모르고자 하는 일 외에, 내가 모르는 것은 없지.”용지안의 말에 곽옥현과 진여는 동시에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아가씨께서 움직이시는구나’ 진여가 다시 물었다.“사실 아가씨께서는 원빈을 구하지 않으셔도 됬습니다. 그간 편히 지내셨으니 무엇 때문에 굳이 민씨 가문들과 얽히려 하십니까?”용지안이 진여를 바라보며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답했다.“진여, 네가 내가 선왕께 어떤 약조를 했는지 잊은 것이냐? 1년이라는 시간 동안, 서종대군이 민가의 손에서 나라의 절반을 되찾았으나 그만큼으로는 역부족이지. 내가 나서서 거들지 않으면 민씨 가문이 언제든 다시 주도권을 쥘 수 있다. 호랑이의 송곳니를 뽑으려면 우선 후궁에 있는 민씨 가문 세 여자의 기세를 하나하나 꺾는 게 상책이지.”곽옥현이 미소로 화답했다.“그렇지요. 대왕대비, 민 대비, 중전, 이 셋이 뒤에서 버티지 않으면 민씨 가문은 더는 큰일을 도모할 수 없겠지요.”진여도 고개를 끄덕이며 탄식했다.“서종대군께서도 그리되면 단숨에 민가의 뿌리를 뽑고 무용 가문의 왕좌를 지켜낼 수 있을 것입니다.”
Baca selengkapnya

제84화

비봉궁.민 대비는 아직 자리를 뜨지 않고 정전의 의자에 앉아 있었다.이 의자는 조금 전까지만 해도 용지안이 앉았던 자리였다. 분노로 온몸을 떨던 민 대비의 본래 검은 얼굴은 더욱 어둡고 음침해 보였고 차가운 눈빛이 곧바로 중전을 향했다.“네가 지금까지 무슨 짓을 한 줄이나 아느냐? 어쩌다 저 천한 계집을 끌어내 이런 꼴을 당하느냐!”중전은 용지안에게 모든 계획이 어그러지고 금족까지 당해 속이 상한 터에 또다시 민 대비에게 꾸지람을 듣자 눈가에 금세 울음기가 어렸다.“고모, 어찌 저런 사람이 이렇게 강할 줄 알았겠습니까? 전에는 마치 겁먹은 토끼처럼 여란궁에만 틀어박혀 있었으니 별 위협도 되지 않을 줄만 알았지요.”민 대비의 어두운 눈빛에 증오가 번뜩였다.“저년은 애초에 내 자리를 빼앗은 것도 모자라 이제는 내 머리 꼭대기에서 제멋대로 군다. 정말 우리 민씨 가문을 우습게 보는 게지!”중전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이제 어찌해야 합니까? 정말 저더러 석 달 동안 금족을 하란 말입니까?”민 대비가 중전을 흘겨보며 말했다.“네가 이번 일로 깊이 반성해야 한다. 원빈이 아무리 총애를 받아도 결국은 빈일 뿐이니 그깟 애를 처리하는 데 뭘 그리 심혈을 기울였단 말이냐. 그리고 네가 설마 양 귀인 뱃속의 아이가 죽은 아이였다는 걸 몰랐다고는 하지 않겠지?”중전은 순간 등골이 서늘해져 고개를 들어 민 대비의 표정을 살폈다. 다행히 민 대비는 다소 책망하는 투였을 뿐 진심으로 화가 난 것은 아니어서 안도했다.‘아, 아직 양 귀비 아이가 원래 무사했다는 사실을 들키진 않았구나’ 중전은 다가가 민 대비의 팔을 붙잡고 한껏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역시 고모의 눈을 속일 수는 없군요. 저도 사실 양 귀인의 아이는 이미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차라리 이번 기회에 그 못된 원빈을 처분하려 한 것이죠. 괜히 전하께서 그 아이만 생각하며 속을 끓이시는 것도 싫었고요.”민 대비는 코웃음을 쳤지만 얼굴빛은 전보다 한결 누그러졌다.중전이 다시 조심
Baca selengkapnya

제85화

민 대비는 한참 생각에 잠기다가 곽계상에게 물었다.“이번에 무슨 일로 무릎 꿇고 벌을 서게 된 건지 아느냐?”곽계상이 고개를 조아리며 답했다.“소인은 자세한 것은 모르옵니다만 문 앞을 쓸던 궁인들 말로는 원빈이 여란궁에 들어섰을 때 보아서는 안 될 일을 본 모양이옵니다. 그 탓에 대왕대비마마께서 크게 노하셨답니다.”“보아서는 안 될 일?”중전이 의아하게 되물었다.“여란궁에 대체 뭐가 그리 감출 만한 일이란 말이냐?”중전은 말을 마치자마자 툭, 혀를 차더니 예전 궁중에 돌던 소문을 떠올렸다.“아마 저 여자가 악사와 몰래 정을 통하다가 원빈에게 들켰겠지.”민 대비가 느릿하게 말했다.“그렇다면 네가 굳이 원빈을 신경 쓸 필요 없겠다. 그 여인은 자신의 치부를 들켰으니 반드시 원빈을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잠시 뜸을 들이다가 민 대비는 다시금 중전을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내가 괜히 그러는 게 아니다. 너도 너무 속이 좁아. 원빈이 딱히 큰 해를 끼치는 아이도 아닌데 어찌 그리 매번 집요하게 구는 게냐. 그러니 전하께서 네 곁을 멀리하시는 것 아니냐.”중전은 억울한 마음에 금세 울분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전하께서 저를 찾지 않는 건 다 저 요망한 원빈 때문입니다. 그 계집만 없어지면 전하께서도 예전 신분이 낮을 때처럼 저를 아껴 주실 텐데요.”민 대비는 궁중의 세월을 겪어 본 사람이라 중전의 마음을 모를 리 없었다. 하지만 전하는 자신의 친아들이니 아무리 조카와 금실이 두터웠으면 싶어도 억지로 마음을 돌릴 수 없는 일, 결국 아들이 상처받는 일만은 두고 볼 수 없었다.“내가 네가 무슨 버릇을 부리든 관여할 생각은 없다만 단 한 가지, 절대로 황실의 자손을 해치는 일은 용납하지 않겠다.”민 대비가 단호하게 말했고 중전은 재빠르게 몸을 낮추며 답했다.“고모, 어찌 감히 그런 일을 저지르겠습니까. 저 또한 전하를 깊이 사모하고 후궁의 아이들도 모두 제 자식처럼 여기고 싶을 뿐입니다. 누가 낳든 다 저를 어마마마라 부를 텐데 어찌 해코지하
Baca selengkapnya

제86화

이튿날, 서종관저.“아, 이거 정말 귀신에 홀린 것도 아니고...!”회윤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먼지투성이로 대청에 들어서자마자 소리를 질렀다.무용경천은 책상 앞에 앉아 있다가 고개를 들었고 검은 눈썹 아래로 번뜩이는 눈빛이 담담히 스쳤다.“또 무슨 일인데 그러냐?”회윤은 주저앉다시피 자리에 앉으며 여전히 놀란 얼굴로 말했다.“오늘 정말 기이한 소문을 들었습니다.”“무슨 소문인지 어서 말해봐.”무용경천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상이가 오늘 와서 전한 바에 따르면 용지안이 어제 여란궁을 나서 비봉궁까지 가서 직접 원빈을 구해내셨답니다. 중전이 꾸민 계략을 모조리 무너뜨린 데다, 민 대비까지 완전히 제압하셨다지요. 그 무서운 민 대비도 용지안 앞에서는 속수무책이었다 하더군요.”“그 과정을 자세히 말해봐라.”무용경천의 눈빛에 미묘한 놀라움이 어렸지만 얼굴빛은 침착했다.회윤은 어제 비봉궁에서 있었던 일을 하나하나 전하며 용지안이 어의를 죽인 일까지도 빠뜨리지 않았다.무용경천이 눈을 가늘게 뜨며 되물었다.“정말로 용지안이 어의를 죽이라고 명한 게 맞느냐?”“예. 단 한마디에 바로 끌려 나가 목숨을 잃었다더군요. 아마 궁에서 위세를 세우려 하신 듯합니다. 헌데 어의를 죽이고 나니 후궁의 그 누구도 용지안을 함부로 보지 못하게 됐다더군요.”무용경천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며 중얼거렸다.“살인을 통해 위세를 세우는 건 확실히 통하지. 근데 그 여자가 어디서 그런 배포가 생긴 걸까? 내가 알기론 용지안은 그저 나약하고 겁만 많던 계집이었는데.”회윤도 고개를 저었다.“저 역시 이해가 잘 안됩니다. 상이의 말에 따르면 용지안은 여란궁에 틀어박혀 매일같이 악사들과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추며 사치스럽게 지내셨답니다. 그렇게 지내던 분이 어찌 갑자기 이처럼 강단 있는 모습으로 변할 수 있단 말입니까?”“설마 우리 둘 다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니겠지?”무용경천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설령 저희 둘 다 사람을 잘못 보았다 하더라도 용씨 관저에서 오랜 세
Baca selengkapnya

제87화

고종 37년 가을.당시 고종의 병세가 깊어지자, 모든 정무를 민 태사가 맡아보고 있었다. 민 태사는 남궁 가문이 역모를 꾀했다는 죄목을 씌워 남궁 가문 3,727명의 목숨을 단칼에 끊어버렸다.남궁 가문의 막내아들은 그때 유모를 따라 성 밖 사당에 나가 복을 빌다가 홀연히 목숨을 건졌고 온 집안에 남은 혈육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다.그가 바로 회윤, 그는 당시 겨우 여덟 살이었다.그리고 남궁 대장군의 딸, 즉, 그때의 운 귀비는 회윤의 친고모였다.고종이 임종에 앞서 아무도 귀비를 죄줄 수 없다는 유지를 남긴 덕에 귀비만은 살아남을 수 있었다.허나 고종께서 승하하신 지 몇 해 지나지 않아 당시의 충헌 대비가 운 귀비에게 독이 든 차를 내렸고 운 귀비는 그 자리에서 두 눈이 멀었으며 손발의 힘줄마저 모두 끊겨 결국 온몸이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이 운 귀비가 바로 무용경천의 생모, 지금은 운 귀인 대비로 봉해져 무용경천과 함께 안성 관저에 머물고 있다.무용경천의 눈에는 독기 어린 원한이 서렸다. 그는 천천히 눈을 감으며 파도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이윽고 차분한 얼굴로 다시 눈을 떴다.“회윤아, 그날이 멀지 않았다.”무용경천이 또박또박 내뱉었고 회윤도 고개를 끄덕였다.“예, 형님. 정말 머지않았습니다.”“약성에 대한 소식은 있느냐?”무용경천이 묻자 회윤이 고개를 저었다.“아직 소식이 없습니다. 이 일 년 동안 무영루 사람을 사서 온 천하에 수소문하게 했으나 아직까지 단서가 없습니다. 떠도는 소문으로는 약성은 이미 세상을 떴다고들 하더군요.”“하지만 그의 제자 말로는 스승이 천하를 두루 떠돈다고 하지 않았느냐?”무용경천의 눈에 아쉬움이 스쳤다.“그렇게는 말했지만 사실 그의 제자도 약성을 본 지 이미 오래라 합니다.”“그러면 약성의 제자는?”무용경천이 재차 물었다.“병증을 모두 이야기했으나 그 역시 이 병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약성뿐이라 하였습니다.”회윤은 잠시 생각하다 말을 이었다.“듣자 하니 요즘 도성에 용씨 가문 다섯째
Baca selengkapnya

제88화

정원 밖, 햇살이 환하게 쏟아지고 있었다.금빛으로 눈부시게 내리쬐는 볕이 온갖 꽃잎 위에 아낌없이 흩어졌다.정원 한가운데 대나무 침대에 한 부인이 누워 있었고 두 눈을 감은 얼굴에는 평온하고 옅은 미소가 번졌다.회색 옷을 입은 중년 여인이 곁에 서서 그 부인 어깨까지 얇은 담요를 살며시 덮어주고 있었다.누군가 다가오는 발소리를 듣자 그녀는 고개를 들어 잔잔한 미소로 다가가 조용히 속삭였다.“경천 도련님, 회윤 도련님, 귀인 대비마마께서 막 잠드셨으니 소란스럽게 하지 마시옵소서.”회윤은 나뭇잎 하나를 따서 조심스럽게 운 귀인 대비의 속눈썹에 살짝 갖다 댔고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웃으며 말했다.“아직도 자는 척하십니까?”운 귀인 대비가 천천히 눈을 떴다. 어두운 눈동자에는 빛이 없었으나 입가의 미소만은 더욱 깊어졌다.“이놈아, 역시 너를 속일 수 없구나.”“마마의 연기가 워낙 서투르십니다. 아까부터 속눈썹이 자꾸 파르르 떨리고 있었거든요.”회윤은 그녀 어깨 위의 꽃잎을 가볍게 털어주었다.“어머님, 오늘은 어떠십니까?”무용경천이 곁에서 부드럽게 물었다.운 귀인 대비는 얼굴을 조금 들더니 미소를 머금은 채 대답했다.“오늘은 한결 좋구나. 햇살이 내리쬐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 빛이 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곁에 있던 회색 옷의 중년 여인이 함께 웃으며 거들었다.“진 의원이 지어준 약이 효과가 좋아 궁의 어의보다 낫다더니 정말 그렇습니다.”운 귀인 대비도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이대로 약을 한두 해 더 먹으면 언젠가는 다시 세상을 볼 수 있을 것만 같구나.”“정말 잘 됐습니다.”무용경천은 조용히 손을 들어 꽃잎 하나를 잡고 운 귀인 대비의 눈앞에 슬쩍 흔들었다. 그녀는 아무 반응 없이 가만히 있었다.무용경천과 회윤은 눈을 마주쳤다. 두 사람의 눈빛에는 말 못 할 먹먹함과 슬픔이 담겨 있었다.지금 이 장면만으로도 귀인 대비의 눈에 아직 아무 빛도 들어오지 않는다는 것을 둘은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회윤은 가져온 차를
Baca selengkapnya

제89화

“어서 가거라, 괜히 귀에 거슬리게 구는구나. 너희가 바쁜 거 아니까 굳이 매일 안부 인사 올 필요 없다. 주 상궁이 곁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라.”운 귀인 대비는 오랫동안 이 정녕각에 머물러 있었지만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아가는 이는 아니었다. 바깥세상에서 벌어지는 크고 작은 일도 그녀는 어두운 두 눈으로도 모두 알고 있었다. 비록 시력을 잃었으나 마음만큼은 더욱 밝고 환해진 듯했다.무용경천과 회윤이 자리를 뜬 뒤, 주 상궁이 다과 쟁반을 들고 운 귀인 대비 곁에 다가섰고 살짝 망설이다가 조심스레 물었다.“정말 경천 도련님과 회윤 도련님께 말씀드리지 않을 작정이십니까?”운 귀인 대비는 희미한 미소를 띠며 고개를 저었다.“굳이 말하지 마라. 괜히 내 일로 두 사람이 마음을 쓰게 만들 필요는 없으니라.”그 얼굴 위에 다시 근심의 빛이 어렸다.주 상궁이 걱정스레 말했다.“하지만 오래 숨길 수는 없을 텐데요.”“하루라도 더 숨길 수 있다면 다행이지. 내가 두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일이란 것도 없으니 괜히 짐만 얹고 싶지는 않구나.”운 귀인 대비가 말하는 사이 가슴께가 심하게 들썩이더니 곧 기침이 이어졌고 마침내 피를 뱉고 말았다.주 상궁이 다급히 부축했고 눈에는 눈물이 그렁했지만 목소리는 여전히 침착했다.“어서 들어가 쉬십시오, 마마.”수년간 병을 앓고 약을 달여 마시며 이미 그녀의 몸은 한계에 다다르고 있었다.꽃밭 저편, 한 마리 나비가 가볍게 날아올랐다가 다시 꽃잎 위로 내려앉았다.꽃이 나비를 반기는 건지, 나비가 꽃을 찾는 건지, 둘 사이에는 더할 나위 없는 평화로움과 조화가 깃들어 있었다.봄날, 만물이 소생하는 계절이지만 정녕각에는 은은한 죽음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었다....자안궁.대왕대비가 관음상을 모신 불단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손에 염주를 굴리고 있었다. 불단 위에는 삼족의 금빛 청동 향로가 놓여 있었고 향로의 작은 구멍마다 가는 연기가 피어올라 자안궁 가득히 내음이 감돌았다.“정말이냐?”대왕대비는 눈을 감은 채
Baca selengkapnya

제90화

어의의 대답은 대왕대비의 예상을 조금 빗나갔다.“대비마마의 병환은 오래되어 늘 몸이 편찮으십니다. 지난 1년 동안 약을 거른 적이 한 번도 없었고 소신 또한 열흘마다 꼭 진맥을 들였습니다. 맥이 가늘고 깊으며 느릿하게 흐르고 때로는 잡히지 않을 때도 있었으니 이 모두 오랜 지병의 증상입니다.”대왕대비는 한동안 생각에 잠기다가 조용히 물었다.“혹시 일부러 병을 가장하고 있는 것은 아니냐?”진 어의가 고개를 저으며 답했다.“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마마. 병을 가장한다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얼굴빛이나 목소리, 체형 등은 얼마든지 꾸밀 수 있지만 맥만큼은 사람 뜻대로 속일 수 없습니다. 진맥을 하면 모든 위장이 드러나게 되어 있지요.”대왕대비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여전히 의문이 풀리지 않는 듯했다.“이상하구나. 어제 비봉궁에서 보았을 때는 얼굴도 혈색이 돌고 중기도 강해 오래 병을 앓은 사람이라고는 전혀 보이지 않았는데 말이다.”아진이 곁에서 진 어의를 바라보며 조심스럽게 물었다.“혹시 사람을 갑자기 활기차게 만들거나 성정이 달라지게 하는 약이 있습니까?”진 어의는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실은 있습니다.”대왕대비가 의아한 눈길로 물었다.“그게 무슨 약이냐?”진 어의가 낮은 목소리로 답했다.“마마께 아뢰옵니다. 오석산이라는 약을 복용하면 정신이 한껏 들뜨고 성정에도 큰 변화가 생깁니다. 게다가 남성과 함께 있을 경우 여인의 얼굴에 혈색이 돌아 더욱 화사해 보이기도 합니다.”아진이 놀라서 소리쳤다.“오석산이라고요? 그리고... 쌍수수련까지? 남녀가 동침해 약물의 효력을 배가하는 수련을 말씀하시는 거죠?”대왕대비의 얼굴에는 금세 불쾌한 기색이 돌았다.진 어의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소신이 진맥을 들이러 갈 때마다 대비마마 곁에는 항상 젊은 남자들이 모여 있었는데 솔직히 말씀드리자면...”말을 망설이자 대왕대비가 차갑게 재촉했다.“뭐가 그리 어려우냐. 사실대로 말해도 죄는 묻지 않겠다. 어서 말하라.”
Baca selengkapnya
Sebelumnya
1
...
5678910
Pindai kode untuk membaca di Aplikasi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