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른 길에 오른 너와 나의 모든 챕터: 챕터 341 - 챕터 350

448 챕터

제341화 분수도 모르고 날뛰지 마세요

시아는 은채의 돌발적인 비난에 말문이 막혔다. 이런 상황에서도 원망만 가득한 은채가 기가 막혀 당장 따귀라도 갈기고 싶었다.“정말 말이 안 통하네요.”지호가 성큼 다가와 시아를 뒤로 감쌌다.“진은채 씨, 분수도 모르고 날뛰지 마세요.”지호의 목소리는 얼음처럼 차가웠다.“당신 아이는 이미 오래전부터 유산 조짐이 있었어요. 그런데도 재산 욕심에 억지로 붙잡으려 했던 건 당신이잖아요. 근데 이제 와서 남을 탓한다고요? 우습지도 않나요?”안영과 은산도 급히 달려와 시아 앞을 막아섰다.“헛소리 그만둬요. 또 떠들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거니까.”은산은 아예 휴대폰을 꺼내 들고 카메라를 켰다.“좋아, 계속 해봐요. 당신이 어떤 사람인지 모두에게 보여주지.”순간 은채의 얼굴이 더 창백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던 은채의 눈에 승준이 들어왔고 서둘러 다가오는 그를 보자, 은채는 동아줄이라도 잡은 듯 울음을 터뜨렸다.“승준아! 다들 나 괴롭혀! 우리 아이를 해치려 해!”검은 정장을 말끔히 차려입은 승준이 인파를 헤치고 들어왔다. 미간은 깊게 찌푸려져 있었고 은채의 피 묻은 드레스를 흘끗 보고는, 이어 주변 사람들을 훑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시아에게 시선이 머물렀다.“무슨 일이죠?” 승준의 목소리는 낮고 무거웠다.“승준아, 저 사람들 날 괴롭혀.”은채는 흐느끼며 승준의 넥타이를 움켜쥐었다.“시아, 시아가 날 질투해서...”“그만!”승준의 호통이 홀 안에 울렸고 관자놀이의 핏줄이 불거졌다.“이리 망신당했는데 이 정도로 부족한 거야?”은산은 팔짱을 낀 채 서서 비웃었다.“구 대표님 잘 오셨어요. 어서 아내 데리고 나가세요. 제 몸도 못 챙기면서 기어이 참석하더니, 일이 터지면 남 탓이라뇨. 이런 연기력이면 상이라도 줘야겠네요.”은채는 분노로 고개를 번쩍 들었다.“당신! 당신이!”“내가 뭐요?” 은산이 말을 끊었고 구두굽이 바닥을 치자 맑은 소리를 냈다.“처음부터 숨이 넘어갈 듯한 얼굴로 서 있던 게 누군데요? 다들 바보로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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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벌써 가려는 거예요?

파티장 안의 공기는 숨 막히도록 기묘했다.샴페인 타워는 여전히 우뚝 세워져 있었고, 정갈하게 놓인 디저트들도 그대로였지만, 손님들은 이미 입에 대지도 못했다.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렸고 시선은 어김없이 마씨 집안 쪽으로 쏠렸다.오늘 원래는 성대하게 체면을 세우려던 자리였지만, 결국 이런 웃음거리만 남았다.마지원과 도경란만 창피한 게 아니었다. 이 자리에 발걸음한 손님들마저 격이 떨어진 기분이었다.마지원은 체면이 땅에 떨어진 듯 부랴부랴 파티를 끝내겠다고 선언했다. 애초에 공개하려 했던 재산 분배안도 더는 읽지 않았다.손님들은 웅성거리며 자리를 떴고 기자들은 오히려 아쉬운 듯 끝까지 카메라 셔터를 눌러댔다.시아는 홀 한쪽 구석에 서서 직원들이 서둘러 난장판을 치우는 모습을 바라봤다.이윽고 시아의 입가에는 차가운 웃음이 번졌다.오늘 이 파티에서 단 한 사람, 후회도 부끄러움도 없는 이는 자신일 터였다.이건 애초에 잘 짜인 연극이었다. 자신도 그 무대 위 인물 중 하나였지만, 욕심과 계산으로 뒤엉킨 자들보다는 훨씬 담담했다.이제 떠날 때라 생각한 순간 시아의 길을 막아서는 사람들이 있었다.경수와 천호가 좌우에서 다가왔고, 뒤에서 경수는 비아냥 섞인 목소리를 흘렸다.“누나, 벌써 가려는 거예요?”경수의 얼굴엔 가짜 미소가 걸려 있었지만 말투는 살얼음 같았다.“연기 제법이던데요. 일부러 이런 소동을 일으킨 거죠? 재산 혼자 차지할 생각인가 봐요?”천호도 한발 다가섰고 잘 다려진 정장 아래로 숨길 수 없는 살기가 흘러나왔다.“잘난 척 그만 해요. 은채 누나 유산시킨 게 누나 짓 아니에요? 그래야 몫이 늘어나니까요.”시아는 두 사람을 차갑게 훑었다. 말로 설명할 가치조차 없다고 여겨,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려 했지만 경수가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었다.“이렇게 쉽게 가면 서운하죠. 우리 형제가 누나랑 아직 얘기가 남았거든.”경수는 ‘얘기’라는 단어에 힘을 주며 손가락에까지 힘을 싣자 시아의 손목이 욱신거리며 아프게 조여왔다.이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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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그럼 맞혀봐

방 안은 서늘했다.크리스탈 샹들리에에서 쏟아지는 냉한 불빛이 방 전체를 이글루처럼 만들고 있었다.도경란은 전면 유리창 앞에 서 있었다. 역광 속에서 드러난 시아의 윤곽은 날카로웠고, 검은색 개량한복에 새겨진 무늬는 빛을 받아 은은히 드러났다.“사모님, 참 대단한 계략이군요.”시아는 문가에 서서 눈빛을 얼음처럼 차갑게 던졌다.“배 속의 아이까지 이용하잖아. 목적만 이루면 수단은 가리지 않겠다는 거지.”도경란이 낮게 웃으며 몸을 돌리자 치맛자락이 매끄러운 곡선을 그렸고, 팔목의 비취 팔찌가 부딪혀 맑은 소리를 냈다.“은채는 멍청하고 욕심만 많아. 모든 건 자업자득이야. 세상에서 제일 우스운 게 뭔지 알아?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스스로 기꺼이 말판에 올라가는 바보지.”도경란은 천천히 소가죽 소파로 걸어가더니 손끝으로 팔걸이를 쓰다듬었다.“차 마실래? 갓 딴 명전 용정차야.”시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짙은 초록빛 개량한복 자락이 고요히 흔들렸고, 그 자세는 대나무처럼 꼿꼿했다.“이렇게 공을 들여 판을 짜고, 날 불러낸 이유가 겨우 차나 나누려는 건 아니겠죠?”“이유?”도경란은 웃음을 터뜨렸다. 눈가 주름이 모여드는 순간에도 날 선 기운은 줄지 않았다.“난 그저 평생 심혈을 쌓아 올린 걸 다른 사람 손에 빼앗기고 싶지 않을 뿐이야.”“심혈이요?”시아가 비웃자 귓불의 작은 검은 점이 빛에 드러나며 또렷했다.“애초에 다 사모님이 벌려놓은 짓이잖아요. 설계와 조작, 그게 없었다면 지금 같은 웃음거리는 없었을 거예요. 결국은 탐욕과 의심이 스스로를 이 지경으로 몰아넣은 거죠.”도경란은 금빛 무늬 찻잔을 들어 올렸고 피어오르는 김이 얼굴을 반쯤 가려 감정을 숨겼다.“넌 아직 젊어서 세상의 규칙을 몰라.”“규칙이요?”시아는 한발 다가섰는데 하이힐이 대리석 위에 부딪히며 날카로운 소리를 냈다.“은채를 이용해 아이를 잃게 만든 게 그 규칙이에요?”“그건 자기가 선택한 거야.”도경란은 태연히 차를 한 모금 마셨다. 붉은 입술이 잔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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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살해당한 거야

도경란은 시아 앞에 다가와 석류빛 매니큐어가 칠해진 손가락으로 턱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혹시 알고 있어?”도경란의 목소리는 은밀한 비밀을 속삭이는 듯 부드러웠다.“너와 네 엄마 정말 닮았어. 특히 저 눈빛이.”시아는 단숨에 손을 쳐냈다.“건드리지 마요.”도경란은 전혀 개의치 않은 듯 오히려 즐거운 듯 미소를 지으며 책장으로 향했다.시아는 숨겨진 칸에서 낡은 서류 봉투를 꺼냈다.“이걸 좀 봐.”시아는 경계심을 감추지 않은 채 받아들었다. 그리고 봉투를 열자 빛이 바랜 사진들이 쏟아졌다.사진 속 젊은 여인은 점프대 위에 서 있었고 배는 살짝 불러 있었다. 그리고 허리에는 선명한 거베라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그 여인은 다름 아닌, 시아의 어머니 강이연이였다.“이 사진...”“소중하지 않아?”도경란의 목소리는 낮고 부드러웠다.“네 엄마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모습들이야.”시아의 손가락이 미세하게 떨렸지만, 애써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말을 하려는 거죠?”도경란이 불현듯 가까이 몸을 기울였다. 은은한 향수 냄새와 차향이 뒤섞여 시아의 코끝을 스쳤다.“네 엄마는 우연히 죽은 게 아니야, 시아야.”그 한마디는 망치처럼 도경란의 가슴을 내려쳤고, 시아는 눈을 부릅뜨며 매서운 빛을 뿜어냈다.“뭐라고 했어요?”노하숙에게서 들은 엄마의 죽음은 분명 자신을 낳다 벌어진 사고였다. 그런데 도경란의 말은 지금까지의 모든 믿음을 흔들었다.이미 노하숙은 세상에 없었고, 진실인지 아니면 악의적인 이간질인지 분간조차 어려웠다.머릿속은 웅웅 울렸고 늘 침착하던 시아조차 흔들렸다.“분명히 말할게.” 도경란은 또박또박 단어를 뱉었다.“네 엄마는 살해당한 거야.”도경란은 시아가 쉽게 믿지 않을 걸 알기라도 한 듯, 서류봉투 안에서 문서 한 장을 꺼냈다.“이건 당시 부검 보고서야. 여기에 명확히 적혀 있지. ‘약물 중독 의심’이라고.”시아는 재빨리 낚아채듯 문서를 빼앗아 들었다. 문서를 훑어내릴수록 얼굴은 점점 하얗게 질렸고, 종이를 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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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절대 안 돼

병원 복도의 불빛은 차갑고 눈부셨고, 공기 속에는 소독약 냄새가 무겁게 깔려 있었다.은채가 수술실에서 실려 나왔을 때, 여자의 얼굴은 침대 시트보다도 창백했고, 입술은 모든 혈색을 잃어 갈라진 땅처럼 바싹 말라 있었다.“아이, 내 아이는요?”은채가 힘없이 간호사의 손을 붙잡았고, 목소리는 갈라져 제대로 소리도 나오지 않았다.이에 간호사는 눈을 피하며 낮게 말했다.“아이는 지키지 못했어요. 일단 푹 쉬세요. 앞으로 또 기회가 있을 거예요.”그 말은 무딘 칼날이 가슴을 깊이 찌르는 듯했다.‘또 기회가 있을까?’그 아이가 어떤 아이인지는 누구보다 은채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손아귀에서 힘이 빠져나갔고 은채는 허공을 응시한 채 눈물을 흘렸다. 눈물이 흘러내려 관자놀이의 머리카락을 적셨다.병실은 고요했고 심장 모니터에서 울리는 ‘삑삑’ 소리만이 규칙적으로 이어졌다.창가에 서 있던 승준은 담배 끝이 다 타들어 가도록 들고 있었으면서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승준아...”은채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세우며 떨리는 목소리를 냈다.“우리, 아이가...”그제야 돌아선 승준의 눈빛은 차갑게 얼어붙어 있었다. 그리고 승준은 아이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고 담담히 말했다.“마지원의 친자 공개 파티는 끝났어. 그리고 상속에 대해서는 발표되지 않았고.”그 말은 마지막 희망을 짓밟는 짐짝처럼 은채의 가슴 위에 내려앉았다.이에 은채는 순간적으로 침대맡의 물컵을 잡아 벽에 내던졌다.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유리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다 강시아 때문이야! 전부 다 걔가 망쳐놨어!”은채는 광기 어린 목소리로 울부짖었다. 격렬한 몸짓에 링거 바늘이 뽑혀 손등에서 피가 맺혀 흘러내렸다.“걔가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걔가 다 부숴버리지 않았어도 내가 어떻게!”“그만해.”승준의 목소리는 칼날처럼 차갑게 날카로웠다.“이 모든 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아직도 남 탓만 하는 은채를 바라보며, 승준의 눈에는 깊은 실망만이 드리워졌다.이에 은채는 멍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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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벌을 받아야지

은채의 몸이 순간적으로 굳었다.들어온 세 사람 모두 은채가 모르는 얼굴이 아니었다.진씨 가문의 사람들이었고 진성호가 보낸 이들이었다.곧이어 규칙적인 발걸음 소리가 들렸고, 은근한 기세를 풍기는 남자가 지팡이를 짚고 병실로 들어섰다. 그 순간, 은채의 등줄기가 서늘해졌다.“아, 아버지.”은채의 얼굴빛은 눈 깜짝할 새 새하얗게 질렸고, 무의식적으로 침대 안쪽으로 몸을 움츠렸다.진성호는 무표정한 얼굴로 병실을 훑었다. 시선이 잠시 임문철에게 머물더니 단호하게 내뱉었다.“나가라.”임문철은 고개를 푹 숙인 채 허둥지둥 병실을 빠져나갔고 마지막까지 은채를 쳐다볼 용기도 없었다.“유산했다더라고.”진성호가 병상 곁에 앉았는데 목소리는 잔혹할 만큼 담담했다.“거기다 마씨 가문의 상속권까지 잃었다지?”진성호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질책이자 조롱이었다.최근 은채가 얼마나 방탕했는지, 무엇을 저질렀는지 본인 자신이 가장 잘 알고 있었다.이제 아이도 잃었고 승준조차 이혼을 요구했으며 마씨 가문과의 인연도 수포가 되었다. 그렇게 은채는 더 이상 기댈 곳조차 없었고 은채는 몸을 떨며 겨우 입을 열었다.“아버지, 그건 단지 사고였어요. 제가 설명해 드릴 수 있어요.”‘짝!’하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뺨이 강하게 돌아갔다. 곧 은채의 입가에서 선혈이 배어 나왔다.“쓸모없는 것.”진성호는 손수건을 꺼내 손끝을 닦았다.“진씨 집안이 몇십 년을 길러준 게 고작 이 따위 배은망덕한 쓰레기라고?”그러고는 천천히 일어나더니 뒤에 서 있던 경호원들에게 시선을 보냈다.“데려가. 집에서 ‘잘 대접’해 주고.”마지막 말 몇 마디가 더욱 선명히 은채의 앞날을 암시하자 여자는 사색이 되었다.“안 돼요!”은채는 절망에 찬 목소리로 외쳤다.“아버지, 제가 잘못했어요. 한 번만,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그러나 경호원들은 말없이 은채를 부축했다. 마치 부서진 인형처럼 힘없이 끌려가며, 갓 수술을 마친 몸은 저항조차 불가능했다.복도를 지나던 간호사가 놀란 눈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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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우리도 앞으로 저렇게 살자

“쯧쯧, 정말 불쌍하네. 갓 유산하고 곧바로 집안 규율 때문에 맞다니.”“쉿, 목소리 낮춰. 들으면 어쩌려고...”멀어져 가는 발소리가 사라지자 방 안에는 은채의 거친 숨소리만 남았다.은채는 몸을 뒤집으려 했지만, 등 뒤의 상처가 시트에 닿는 순간 날카로운 고통이 파고들어 억눌린 신음을 흘렸다.창밖 달빛이 커튼 틈새로 스며들어 바닥 위에 창백한 빛을 드리웠다.은채는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는데 두 눈은 끝없는 구멍처럼 텅 비어 있었지만, 그 속에 웅크린 고통과 분노는 여전히 선명했다.어릴 적부터 수없이 맞아 온 고통이라 익숙해야 했는데, 이상하게도 맞을 때마다 여전히 아팠다. 그리고 그 아픔이 마음속에 차오른 증오를 더욱 짙게 만들고 있었다.떨리는 손끝이 머리맡 서랍의 비밀 칸을 열었다. 낡은 휴대폰이 드러나고, 푸른 불빛이 은채의 핼쑥한 얼굴을 더 음울하게 비추었다.긴 망설임 끝에 은채는 이름 없는 번호를 눌렀다.[여보세요?]낮고 차가운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저예요.” 은채의 목소리는 쉬어 갈라져 있었다.“아이를 잃었어요. 진성호, 그 늙은이가...”잠시의 정적이 흐른 뒤 남자의 목소리가 이어졌다.[계획에 차질이 생겼나요?]“아니요...” 은채는 입술을 깨물어 피 맛을 삼켰다.“계획은 그대로지만 당신을 통해서 해야 할 일이 있어.”[말해봐요.]“강시아...”은채의 손톱이 손바닥을 깊이 파고들었다. “그 여자를 사람처럼 살게 하고 싶지 않아요. 비참하게 만들어 버리고 싶어요,”전화기 너머에서 비웃음이 번졌다.[대가는 어떻게 하실 건데요?]“원하는 대로 할게요.” 은채의 눈빛은 독사처럼 차갑고 날카로웠다.“무엇이든 줄 수 있어요.”[본인 자신도 포함하나요?]은채는 눈을 감았다.이성이 흐려진 채 눈물 한 방울이 뺨을 타고 흘렀다.“포함해서요.”[좋아요. 사흘뒤, 늘 보던 장소에서 보죠.]뚝하는 신호가 끊기자 휴대폰이 손에서 미끄러졌다.은채는 몸을 움츠린 채 침대 위에 쓰러졌는데 그 모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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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그걸 어떻게 알았어요?

지호의 형인 자유는 짙은 회색 터틀넥 스웨터 차림으로 거실에 들어섰다.차갑고도 고요한 분위기가 남자를 감쌌고, 시선은 곧장 시아에게로 향했다.“괜찮아요?”자유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묻자 시아는 담담히 고개를 들어 남자를 바라봤다.“괜찮아요. 걱정해 줘서 고마워요, 아주버님.”그 한마디에 두 사람의 거리가 분명해졌다.자유의 손끝이 잠시 떨렸고 무언가 잡고 싶은 듯 움직였지만 끝내 자제했다.“도움이 필요하면...”“필요 없어요.” 시아가 칼같이 끊어냈다.“남편이 알아서 처리할 거예요.”그 말은 단순한 답변이 아니라, 자신에게는 남편이 있다는 선을 분명히 긋는 경고였다.“그래요. 지호라면 잘 처리하겠죠.” 자유의 목소리엔 씁쓸한 기운이 스쳤다.멀리서 이 광경을 보고 있던 지호는 잠시도 주저하지 않고, 성큼 다가와 시아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자연스럽게 품에 감쌌다.“형, 우리 일 걱정하지 말고 형수님이나 더 챙겨. 잘 살든, 각자 길을 가든, 이렇게 끌며 사는 건 답이 아니잖아.”그 시선이 스쳐 지나간 곳은 은산이었다.자유는 침묵으로 답했고, 잠시 시아를 바라보다 복잡한 눈빛을 감춘 채 자리를 떠났다.은산은 그 뒷모습을 보며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도련님, 질투가 너무 티 나는데요?”“그래요?” 지호는 시아를 더 단단히 끌어안으며 되받았다.“난 그냥 당신이 다른 남자랑 서 있는 게 싫을 뿐인데.”그 말에 시아는 지호의 팔을 뿌리치며 얼굴을 찌푸렸다.“정말 유치해요.”저녁 식사 자리, 긴 식탁 위에는 손이 많이 간 요리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안영은 젓가락을 멈추지 않으며 시아의 접시에 음식을 가득 올려주었다.“좀 더 먹어. 살이 많이 빠졌구나.”“감사해요, 어머니.” 시아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으나 젓가락은 무겁게만 느껴졌다.“시아야, 차라리 다시 집으로 들어와 사는 게 어떻겠니? 이곳이 더 안전하고, 내가 직접 챙길 수도 있고.”안영의 제안에 지호가 곧장 맞장구쳤다.“저도 그렇게 생각해요.”그러나 시아는 젓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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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그럴 필요 없어요

“지호가 말해줬어요.”자유의 시선은 멀리 드리운 나무 그림자에 머물러 있었다.“혹시 조사가 필요하다면...”“그럴 필요 없어요.”시아가 단호히 끊었다.“내가 직접 처리할 거예요.”이에 자유의 손끝이 움찔거렸고, 손에 들린 찻잔 속 물이 살짝 일렁였다.“나는 제수 씨의 아주버님이잖아요. 그러니 나한테 굳이 그렇게까지 선을 그을 필요는 없어요.”두 사람 사이의 관계는 종이 한 장 차이였다. 그러나 그 얇은 종이를 뚫는 순간, 아마 자유는 시아와 마주 앉아 이런 대화를 나눌 기회조차 잃게 될 것이다.시아는 자유의 말에 담긴 의미를 알아차렸다.“나는 선을 긋는 게 아니에요. 아주버님은 챙겨야 할 사람이 따로 있고, 저한테는 지호 씨가 있거든요.”그 말에 자유는 쓸쓸하게 웃었다.“그래요, 제수씨한테는 지호가 있죠.”시아의 세상에는 이제 자유가 설 자리가 없었다. 그렇기에 자유는 어리석은 체하며 아주버님이라는 이름으로 곁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시아는 그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달빛이 비치는 자유의 옆얼굴은 차갑고도 외로웠다. 시아는 그 고독을 읽을 수 있었지만 실질적으로 해 줄 수 있는 건 오직 냉정한 관계 처리 그뿐이었다.밤바람이 스쳐 지나가며 시아의 머리카락을 휘날리자, 그 틈에서 드러난 귓불의 작은 검은 점이 또렷하게 빛났다.자유의 눈길이 잠시 그곳에 멈추었지만 곧 애써 시선을 거두었다.“어쨌든...” 자유가 말을 덧붙였다.“무슨 일이든 필요하면 말해요. 그리고 늘 조심해요.”그 말을 끝으로 자유는 등을 돌려 걸음을 옮겼고 어둠 속으로 녹아드는 뒷모습만 남았다.시아는 자유의 그림자가 사라지자 비로소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손에 들린 차는 이미 차갑게 식어 있었지만 여자는 그것조차 느끼지 못했다.“이제 끝났어?”귀에 익은 목소리가 등 뒤에서 들려왔다.지호였다. 어느새 그녀 곁에 와 있었고 손에는 겉옷이 들려 있었다.지호는 시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자연스럽게 외투를 걸쳐 주었다.“질투하는 거예요?” 시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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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난 널 저주할 거야

지호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시아의 뒷모습이 어둠 속에 사라지는 것을 끝까지 지켜보았다.이윽고 지호는 주머니에서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라이터 불꽃이 바람에 흔들리자 지호의 눈동자 속 깊숙한 파문을 비췄다.담배가 손가락 끝까지 타들어 가서야 정신을 차린 지호는 바닥에 떨어진 작은 진주 귀걸이를 발견했다. 조금 전 시아가 지호를 밀쳐냈을 때 흘린 것이었다.지호는 몸을 숙여 그것을 집어 들었다. 매끈한 진주 표면을 손끝으로 굴리자, 마치 시아의 은은한 향이 아직도 남아 있는 듯했다.한편, 시아는 하씨 저택을 벗어나 택시 안에서 휴대폰을 꽉 쥐고 있었다. 화면에는 오래된 낡은 사진 한 장이 떠 있었다.시아의 엄지가 사진 속 환하게 웃고 있는 어머니의 얼굴을 천천히 쓰다듬었다. 창밖 네온사인의 빛이 얼굴 위로 스치고 흘렀지만 깊은 눈동자 속까지는 닿지 못했다.다음 날, 주한그룹.시아는 손끝으로 계약서 위를 두드리며 미간을 좁혔다.사무실 창 너머로 쏟아진 햇살이 종이 위 한 조항을 유독 뚜렷하게 비췄다.“뭔가 이상한데...”시아는 낮게 중얼거리며 외환 결제 조항을 다시 훑고, 곧바로 컴퓨터에 띄운 국제 환율 그래프와 대조했다.10분 뒤, 표시를 가득 남긴 서류를 들고 시우의 사무실로 걸어갔다. 시아의 구두 굽이 대리석 위에서 단정한 소리를 냈다.“대표님, 잠시 시간 괜찮으세요?”시아는 문을 두드린 뒤 바로 들어섰는데 목소리는 단호했지만 예의는 잃지 않았다.그러자 곧 시우가 고개를 들어 시아를 바라봤고 금테 안경 너머의 눈빛에 잠시 놀람이 스쳤다.“무슨 일이죠?”시아는 계약서를 시우의 책상 위에 내려놓고, 붉은 펜으로 동그라미 쳐둔 조항을 짚었다.“D국 측과의 이 계약, 겉보기엔 주한그룹이 더 많은 이익을 얻는 구조처럼 보이지만, 결제 통화가 유로로 설정되어 있어요.”“지금 그쪽 정세가 불안정해서 중앙은행이 다음 분기에 통화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큽니다.”그러고는 태블릿 화면을 키자 데이터 그래프가 선명히 드러났다.“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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