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훈은 동건우를 알지도 못했고 그와 아무런 접점도 없었다.고영훈의 눈에 비친 동건우는 그저 심건모에게 잘 보이기 위해 자신을 몰아세우는 존재일 뿐이었다. 하지만 송서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너무나 복잡했다. 송서윤을 향한 그의 속내를 알 수 없어 고영훈은 마음을 놓을 수 없었다.“안 가?”그때 심건모가 손목시계를 보며 물었다. “7시 30분 아니었어?”동건우는 순간 멈칫하더니 이내 다정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게. 여진이를 너무 오래 기다리게 했네. 어머님께 또 혼나겠어.”“가봐.”동건우가 권총을 줍기 위해 허리를 숙이자 그의 손 위로 즉시 레이저 조준점이 따라붙었다. 순간 표정이 싸늘하게 가라앉았지만 동건우는 온화한 얼굴을 가장하며 몸을 일으켜 뒤로 물러났다. “내일 여진이 생일 파티에서 뵙죠.”“형수님.”그는 형수님이라는 세 글자를 입안에서 한 번 곱씹고 나서야 뱉어냈다. 그 말끝에는 미묘한 서늘함이 서려 있었다.동건우는 발걸음을 옮겨 그들을 지나쳐 갔다. 조금 전의 온화했던 얼굴이 순식간에 우울하게 변했다. 머릿속에는 30년 전 이혜정이 떠나며 그에게 했던 약속들로 가득 찼다.“건우야, 넌 나의 유일한 아이야.”“나를 보내줘. 내가 남는다면 머지않아 네 아버지 손에 죽게 될 거야.”“난 네 아버지의 아내가 아니야. 네 곁에 당당히 서서 네 어머니가 되어줄 수도 없어. 난 그저 이씨 가문이 네 아버지에게 바친 희생물일 뿐이란다.”그때가 몇 살이었던가? 이젠 기억조차 가물가물했다.다만 눈 내리던 밤, 자신이 이혜정을 놓아주었다는 사실만은 선명했다. 그리고 그녀는 마치 존재하지 않았던 사람처럼 완전히 사라졌다.그는 동봉우의 아들이 되었고 세상을 놀라게 했던 이혜정과는 그 어떤 인연도 없는 사람이 되었다.동건우는 한참을 걸어가다 문득 뒤를 돌아 심건모 곁에 서 있는 송서윤을 바라보았다. 동건우도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왜 고영훈을 보자마자 본능적으로 그녀를 감싸고 돌았는지. 혈육의 이끌림인가? 이토록 신비로운 것인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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