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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dos los capítulos de 가면을 쓴 남편: Capítulo 611 - Capítulo 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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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1화

송남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자신을 가두고 있던 팔을 밀어내며 물었다.“왜 웃어요? 그렇게 좋아요?”하정훈은 의기양양하게 송남지의 뒤를 따르며 대답했다.“당연히 좋지. 네가 이제 질투라는 것도 할 줄 알게 됐으니까.”송남지가 바로 대꾸했다.“질투는 무슨, 여자가 꼬인 것도 아닌데 내가 왜 질투를 해요.”하정훈은 여전히 그녀의 뒤를 바짝 쫓으며 말했다.“질투라는 게 꼭 다른 사람 때문에만 하는 건 아니잖아. 다른 것 때문에 질투가 날 수도 있는 거지.”그러고는 뒤에서 송남지의 손목을 낚아채 욕실로 향하는 걸음을 멈춰 세웠다.정곡을 찔린 송남지는 민망했지만 짐짓 오기를 부렸다.“내가 무슨... 질투를 했다고 그래요. 안 했어요.”하정훈은 말없이 웃기만 하다가 화제를 돌렸다. “그럼 질투 안 했다는 우리 사모님, 나랑 같이 씻을래?”송남지가 요리조리 핑계를 찾았다.“욕조가 작아서 둘이 씻기엔 너무 좁아요.”훤칠한 키에 떡 벌어진 어깨와 탄탄한 허리를 가진 하정훈이 갑자기 태세를 전환해 엄살을 부렸다.“하지만 나 혼자 씻는 건 너무 무서운데.”송남지가 눈살을 찌푸리며 따졌다.“서른이나 된 사람이 혼자 씻는 게 무섭다는 게 말이 돼요?”하정훈은 배 째라는 식으로 나왔다.“아 몰라, 난 무조건 여보랑 같이 씻을 거야.”어쩔 수 없다는 듯 송남지는 반쯤 못 이기는 척 그에게 이끌려 욕조가로 갔다.욕조 옆으로 맨성의 화려한 밤거리가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실내의 에어컨 바람은 맨성의 찜통더위는 차단했지만 하정훈의 가슴이 뿜어내는 뜨거운 불길은 막을 수 없었다.욕조에 물이 콸콸 쏟아져 채워지는 동안에도 하정훈은 쉬지 않고 송남지의 입술 위로 촘촘하고 은밀한 낙인을 찍어 내렸다.쏟아지는 입맞춤에 다리가 풀려버린 송남지가 욕조 난간에 그대로 걸터앉자 하정훈은 기다렸다는 듯 몸을 숙여 그녀의 허리를 단단히 감싸 안으며 파고들었다.송남지는 욕조 안이 전장이 될 거라 짐작했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욕조 밖이라고 뜨거운 전장이 되지 말란 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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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2화

욕조 안에서 거센 물보라가 일었고 튀어 오른 물방울이 욕조 가에 널브러진 옷가지 위로 속절없이 쏟아졌다.애초에 한 줌 천에 불과했던 송남지의 옷은 하정훈이 거칠게 찢어발긴 탓에 형체를 알아볼 수 없는 헝겊 조각으로 변해 있었다.물에 젖어 엉망이 된 그 잔해들은 기묘하게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며 두 사람 사이의 열기를 한층 더 뜨겁게 달구었다.물결에 흔들리는 해초처럼 매끄럽게 늘어진 송남지의 머리카락이 물줄기를 따라 유려하게 흘러내렸다.하정훈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을 대하듯 그녀의 뺨을 조심스레 감싸 쥐었다. 그의 눈에는 금방이라도 넘쳐흐를 듯 벅찬 애정이 서려 있었지만 자욱하게 피어오른 수증기 탓에 송남지는 그 눈빛을 선명하게 읽어낼 수 없었다.그녀는 그저 그가 이끄는 대로 몸을 맡긴 채, 끊임없이 몰아치는 쾌락의 정점에 도달했다.다음 날.송남지는 온몸이 부서질 것 같은 통증을 느꼈다.깨어보니 하정훈의 자리는 비어 있었다.대신 서재 너머로 그가 회의를 주재하는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그때 송남지의 휴대폰이 요란하게 울렸다. 이곳에 온 지 벌써 4일째, 재스민 쪽에서 누군가 그녀를 찾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었다.민지현의 전화였다.통화 버튼을 누르자마자 민지현이 수화기 너머로 목청을 돋우며 투덜거렸다.“관장님, 휴가 언제 끝나요? 빨리 안 오시면 제가 직원들 선동해서 화가님이랑 핵심 인력 데리고 다 나가버릴 거예요. 관장님 돌아오시면 텅 빈 껍데기만 보게 되실걸요.”송남지는 욱신거리는 몸을 매만졌다. 밤새 어찌나 시달렸는지 정말이지 성한 구석이 없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린 채 씻을 준비를 하며 대꾸했다.“그래요? 그럼 사람들 데리고 나갈 때 마땅한 사무실 못 구하면 말해요. 재스민을 임대해 줄 테니까.”민지현이 픽 웃음을 터뜨렸다.“관장에서 건물주로 전직하시게요? 그렇게 머리 안 쓰고 돈 버는 꼴은 제가 못 보죠.”장난기를 거둔 민지현이 본론으로 돌아왔다.“진지하게 여쭤보는 건데, 관장님 언제 오실 생각이에요? 재스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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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3화

통화가 끊기기가 무섭게 등 뒤에서 뻗어 나온 팔이 송남지의 허리를 감싸 안았다.맞닿은 등 너머로 그의 가슴팍에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가 고스란히 전해졌다.송남지가 고개를 들자 거울 속에는 자신을 품에 안은 하정훈의 얼굴이 선명히 비쳤다.짙은 눈썹 아래 별처럼 빛나는 눈동자에는 넘치는 생기가 가득했다. 어젯밤의 격렬함이 마치 꿈이었던 것처럼 하정훈은 지친 기색 하나 없이 눈부신 활력을 띠고 있었다. 정말이지, 그의 체력은 바닥이 없는 것만 같았다.송남지는 고개를 살짝 기울여 그의 뺨에 얼굴을 맞대고 코끝에 스치는 숨결을 느꼈다.“이렇게 일찍부터 미팅이에요? 아직 처리할 게 남았어요?”하정훈은 송남지의 목덜미에 얼굴을 묻었다. 지금 이 순간에만 허락된 유일한 나약함이었다.갈라진 음성이 귓가에 울렸다.“어, 골치 아픈 일이 한두 개가 아니네. 다들 내 입만 쳐다보고 있어. 내가 하는 건 무조건 옳다고 믿는 눈친데, 나라고 미래를 알겠어? 그저 내가 내린 결정이 정답이 되도록 애쓰는 것뿐이지.”평소엔 절대 내비치지 않던 무력감이 묻어나는 목소리였다.그건 하정훈이 송남지를 그만큼 믿는다는 증거기도 했다.그의 말투에 섞인 감정을 알아챈 송남지의 가슴이 저릿해졌다.제아무리 강인한 사람도 무너지고 싶을 때가 있는 법이다.송남지는 몸을 돌려 하정훈을 정면으로 마주하고는 손을 들어 그의 뺨을 쓰다듬으며 애틋하게 속삭였다.“정훈 씨, 적당히 실수도 좀 해야 사람 같지, 매사 그렇게 완벽하면 신이나 다름없잖아요. 괜찮아요. 실수 좀 하면 어때요. 당신한텐 그 정도는 충분히 감당할 능력이 있잖아요. 당신한테 그리 큰 타격도 아닐 텐데 제발 스스로를 너무 몰아세우며 애쓰지 말아요.”하정훈은 송남지를 품에 가득 안고 그녀의 머리카락에 밴 향기를 거칠게 들이켰다.송남지는 그가 하는 대로 얌전히 안겨 있었다.방전된 배터리가 충전기를 만난 듯, 두 사람은 서로에게 그런 존재였다.한참이 지나서야 하정훈은 아쉬운 듯 송남지를 놓아주었다.그는 어느새 평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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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4화

오후 3시 반, 하정훈의 개인 전용기가 맨성을 떠나 서경으로 날아올랐다.기내 라운지는 웬만한 6성급 호텔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호화로웠고 이륙할 때의 붕 뜨는 느낌만 없었다면 송남지는 여전히 호텔 방에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창밖으로 끝없이 펼쳐진 구름이 마치 거대한 솜사탕 바다 같았고 하정훈은 비행 중에도 쉴 새 없이 노트북을 두드리며 일에 매달렸다.송남지는 사려 깊게도 그를 방해하지 않았으나 3시간이라는 비행시간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무료함을 달래려 태블릿으로 뉴스를 뒤적이던 그녀에게 때마침 최보라의 문자가 도착했다.[오늘 서경 사교계에 뉴스거리가 꽤 많던데, 너랑 관련된 것 같아.]이 문자와 함께 최보라는 모 소셜 미디어의 게시물을 공유해 주었다.[서경 마씨 가문 도련님, 맨성 유학 중 서경 하씨 가문 잘못 건드려!]대충 내용을 보니 마틴이 하씨 가문의 도련님을 건드려서 다음 날 바로 맨성에서 쫓겨나고 서경에 있는 마씨 집안도 난리가 났다는 얘기였다.송남지는 별일 아니라는 듯 대충 보고 창을 닫았지만 최보라는 잔뜩 신이 나서 그럴듯한 추리를 늘어놓았다.[상식적으로 마틴 같은 애가 하정훈이랑 접점이나 있었겠어? 분명 너한테 무슨 짓 한 거지?]어차피 할 일도 없던 터라 송남지는 그날 밤 있었던 일을 최보라에게 털어놓았고 이야기를 전해 들은 최보라는 화면 가득 육두문자를 날리며 불같이 화를 냈다.마침 그때 하정훈이 몸을 가까이 기대오며 물었다.“뭘 그렇게 뚫어져라 보고 있어?”송남지는 황급히 태블릿 화면을 덮어버리며 대답했다.“별거 아니에요. 그냥 연예 뉴스 좀 봤어요.”하정훈은 의심스럽다는 듯 인상을 쓰며 말했다.“내가 보기엔 누구랑 대화 중이었던 것 같은데...”송남지는 결코 인정할 생각이 없었다. 최보라가 쏟아낸 그 저속한 욕설들을 차마 남에게 보여줄 용기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아니에요, 그냥 대화 내용 캡처한 거라서...”송남지는 유독 하정훈 앞에서 거짓말하는 것에 서툴렀다. 부서지는 별빛을 담은 듯한 그의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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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5화

말을 마친 하정훈은 송남지의 입술을 탐했고 입가에 남은 달콤한 과즙 향을 음미하며 키스에 빠져들었다.키스하는 순간 승무원이 또다시 등장했다가 눈치껏 사라져줬지만 송남지는 또다시 화들짝 놀라 하정훈을 밀어냈다.하정훈은 어이가 없다는 듯 승무원이 사라진 쪽을 보며 심호흡을 하고는 큰 소리로 말했다.“필요하면 호출 벨 누를게요.”승무원은 즉시 눈치를 채고 제자리로 돌아갔고 하정훈은 아예 몸을 일으켜 휴게실 문을 닫아버렸다.구름 위 밀폐된 공간 속 분위기는 순식간에 뜨겁게 달아올랐다.켜져 있던 하정훈의 노트북에서 업무 관련 메시지 알림이 쉴 새 없이 울려 퍼지자 송남지는 하정훈의 노트북을 턱짓으로 가리키며 물었다.“일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하정훈은 노트북을 쳐다보지도 않고 닫아버린 채, 송남지 옆에 바짝 붙어 앉으며 숨 막히는 소유욕을 드러냈다.본능적으로 위험을 느낀 송남지가 옆으로 피하려 했지만 소파 가장자리라 도망칠 곳은 없었다.“정훈 씨... 나 생각해보니 덜 끝낸 일이 있어서.”그녀는 시선을 피하며 태블릿을 집으려 했으나 반쯤 뻗은 손은 허공에서 하정훈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이내 그의 손에 이끌려 닿은 곳에서는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송남지가 화들짝 놀라며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정훈 씨, 여기 비행기 안이잖아요.”하정훈은 그녀의 귓가에 입술을 붙이고 나직하게 유혹했다.“알아, 내 전용기는 우리 침실이랑 다를 게 없어.”침실이라는 단어에 송남지는 더더욱 위험을 직감하고 우물쭈물했다.“이러면 안 돼요. 승무원들도 있는데...”하지만 하정훈의 입술은 귓바퀴를 집요하게 괴롭히며 속삭였다.“괜찮아. 부를 일 있으면 벨 누른다고 했으니까, 다들 알아서 자리 피해 줄 거야.”찌릿한 자극에 송남지가 몸을 움츠리며 그를 밀어내려 손을 뻗었지만, 손끝에 닿은 건 그의 단단한 가슴팍이었고 하정훈은 자연스럽게 그녀의 손을 자신의 복근으로 이끌었다.셔츠 한 장을 사이에 두고도 복근의 굴곡이 선명하게 느껴졌다.얇은 천 아래의 단단한 질감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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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6화

하정훈은 찌푸린 얼굴로 메시지를 읽어 내려갔다.소파에서 세상모르고 자는 송남지를 따스하게 바라보니 담요를 얌전히 덮고 있는 게 기특했다.사적인 메시지에 답장할 생각은 없다는 듯 그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미처 끝내지 못한 업무를 처리하기 시작했다.비행기는 서경 시간으로 7시 반, 공항 착륙을 준비하고 있었다.승무원이 휴게실 문을 두드리자 하정훈은 재빨리 문을 열고 검지를 입술에 가져다 댔다.“집사람이 아직 자고 있어서요. 내가 깨울게요.”승무원은 눈치 빠르게 알겠다는 신호를 보내며 물러났다.문을 닫은 하정훈의 시선이 다시 송남지의 얼굴에 머물렀다.아까 꽤나 힘들었는지 세상모르고 자는 모습이 안쓰러우면서도 사랑스러웠다.소파 곁으로 다가간 그는 몸을 숙여 그녀의 뺨을 어루만졌다.“여보, 이제 일어나야지. 서경에 도착했어.”송남지가 웅얼거리며 돌아눕자 하정훈의 입가에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창밖으론 붉은 노을이 활주로를 물들이며 익숙하고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었다.그는 고개를 숙여 그녀에게 입을 맞추고 귓가에 속삭였다.“지금 더 자면 밤에 잠 안 올 텐데.”송남지가 미간을 찌푸리며 느릿하게 눈을 떴다. 그러고는 잠기운이 가득한 눈으로 하정훈과 창밖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벌써 도착했어요? 나 너무 오래 잤나?”하정훈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넘겨주며 대답했다.“아니, 고작 두 시간 잤어.”송남지는 아래를 내려다보고서야 자신이 담요 한 장만 걸친 알몸 상태라는 걸 깨달았다.그제야 조금 전 기내에서의 일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고 저녁노을만큼이나 새빨개진 얼굴로 속삭였다.“저쪽으로 돌아서요. 옷 입게...”하정훈은 잠시 멈칫하더니 피식 웃으며 소원대로 몸을 돌려주었다.그가 다시 돌아볼 기미가 없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송남지는 담요를 걷어내고 옆에 놓인 옷을 집어 들었다.그러나 고개를 드는 찰나, 차가운 공기 대신 하정훈의 노골적인 시선이 먼저 닿았다. 그는 이미 돌아앉아 감상이라도 하듯 그녀를 뻔뻔하게 쳐다보고 있었다.송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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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7화

송남지는 옅은 미소를 띠며 순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요. 걱정 말아요.”고작 며칠간의 이별인데 마치 기약 없는 헤어짐 같은 분위기가 감돌자 송남지는 짓궂게 농담을 던졌다.“남들이 보면 우리 아주 오랫동안 헤어져 있는 줄 알겠어요...”그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정훈은 검지로 그녀의 입술을 막으며 단호하게 말했다.“남지야, 네 입에서 헤어진다는 말은 영원히 꺼내지 마.”듣기만 해도 괴롭다는 듯 진지한 그의 표정을 본 송남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고 입술을 막은 그의 손을 잡아 내리며 꽉 쥐고 대답했다.“알았어요. 앞으로는 말하지 않을게요.”하정훈의 눈동자에 그제야 웃음기가 번지며 칭찬했다.“우리 사모님, 참 착하네.”송남지는 휴대폰 시계를 확인하며 그를 재촉했다.“정훈 씨, 벌써 7시가 넘었어요. 이제 비행기 뜨겠다, 얼른 가세요.”하정훈은 주변의 시선 따위는 안중에도 없다는 듯 그녀를 품에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그녀의 체향을 탐하듯 깊게 숨을 들이켰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은은하고 달큼한 치자꽃 향기가 그의 발길을 무겁게 붙잡았다.“아직 멀었어요? 정훈 씨?”그녀가 다시금 재촉하자 하정훈은 그제야 못내 아쉬운 듯 팔을 풀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는 벌써부터 짙은 그리움이 일렁이고 있었다.“남지야, 뽀뽀해 줘.”그의 갑작스럽고 솔직한 요구는 송남지에게 있어 분명 큰 도전이었다.주위를 살피니 사람들이 오가고 있었다.송남지는 쑥스러움을 꾹 참고 까치발을 들어 하정훈의 얇은 입술에 잠자리가 물을 스치듯 가볍게 입을 맞췄다.짧은 입맞춤이 끝나자 송남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재빨리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하정훈의 입가에 만족스러운 미소가 번졌다.“남지야, 이 순간을 기억해 줘.”송남지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물었다.“무엇을요?”“지금 이 순간, 너를 향한 내 사랑이 얼마나 짙고 변함없는지.”공항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마주 선 두 사람은 세상에서 가장 눈부신 존재였다.민지현은 십여 미터 밖에서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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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8화

민지현이 건넨 서류를 받아든 송남지의 시선이 어느 한 이름 위에 내려앉았다.은지영.송남지의 생각은 중학생 시절로 흘러갔다.십여 년 전만 해도 은씨 가문은 서경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가진, 누구나 아는 명문가였다.하지만 그때 은씨 가문을 뒤흔든 엄청난 스캔들이 터졌는데, 바로 은지영의 아버지 은배석이 바람을 피운 것이다.상대는 파격적인 노출로 이름을 알린, 평판이 좋지 않은 중년의 여배우였다.은배석과 본처의 이혼 소송은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었고 은씨 가문 전체가 여론의 중심에 서게 되었다.그는 이혼에 성공한 후 온 가족을 이끌고 아세르로 이주했고 그 후로 서경에서는 자취를 감췄다.다만 인터넷에는 간간이 은씨 가문에 대한 가십이 떠돌곤 했다. 십수 년의 전쟁 끝에 승리를 쟁취한 은지영의 어머니,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여배우의 말로, 그리고 무엇보다 송남지의 숨을 멎게 한 것은 하정훈과 은지영이 십여 년 전 약혼 관계였다는 사실이었다.서류를 쥔 송남지의 손끝이 미세한 경련을 일으켰다. 그녀는 민지현이 왜 이 일을 자신과 상의하려 했는지 그제야 명확히 납득했다.사실, 중학생 시절의 송남지는 이미 사리 분별에 밝았고 공부 말고는 딱히 할 것도 없는 모범생에게 인터넷 가십은 꽤 쏠쏠한 오락거리였다.송남지가 하씨 가문과 은씨 가문의 약혼을 모를 리 없었다. 한때 ‘왕자와 공주의 만남'이라 불리며 온 나라를 떠들썩하게 했던 이들이 바로 하정훈과 은지영이었으니까. 심지어 두 사람을 모델로 한 인터넷 소설이 범람할 정도로 그들의 결합은 완벽한 판타지였다.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학창 시절 모범생이었던 송남지가 방학 때 킬링타임용으로 몰래 읽던 게 바로 그런 종류의 소설들이었다.민지현은 송남지의 복잡한 표정을 단박에 읽어냈다.그녀는 배려심 깊게 말했다.“관장님, 그쪽과 협업하기 싫으면 안 해도 돼요.”송남지는 서류를 옆으로 밀어두고 미간을 짚었다. 목소리는 언제나처럼 차분하고 냉정했다.“괜찮아요. 원칙대로 진행해 줘요.”송남지의 감정에 큰 동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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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9화

민지현은 의아한 듯 미간을 찌푸렸다.“관장님이 직접 연락하는 건 좀 그렇지 않아요?”자칫하면 송남지가 엄지영에게 매달리는 모양새로 보일 수 있었다.은지영이 서경에 돌아오기 무섭게 송남지가 먼저 접근했다고 뒤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또 은지영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를 일이었다.송남지는 손을 저으며 말했다.“괜찮아요. 어차피 일로 얽힌 사이라면 은지영 씨가 ‘갑’이고 우리가 ‘을’이잖아요. 을이 먼저 연락해서 일정을 조율하는 건 비즈니스적으로 지극히 당연한 순서고요.”당당하고 시원시원한 그녀의 모습에 민지현은 진심으로 감탄했다.민지현은 하 대표의 총애가 송남지에게 저런 자신감을 심어준 것이라 생각했다.역시 뒤를 봐주는 사람이 있다는 건 좋은 거였다.그 생각에 미치자, 민지현은 짓궂은 마음이 들어 말을 꺼냈다.“관장님, 이번 맨성 행은 거의 신혼여행 아니었어요? 거긴 분위기도 엄청 개방적이라던데, 두 분 거기서...”민지현은 의미심장하게 눈을 찡긋거렸다.송남지는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민 실장님, 그래서 뭘 꼬치꼬치 캐묻고 싶은 건데요?”민지현이 히죽거리며 물었다.“혹시 꼬마 하 대표님 하나 만들어 온 거 아니에요? 관장님 외모에 하 대표님의 그 극강의 동양미를 더하면, 두 사람 아이는 얼마나 예쁠지 상상도 안 가는데.”민지현의 말이 끝나자 송남지의 눈빛이 푹 가라앉는 게 보였다.민지현은 순간 재벌가의 복잡한 속사정을 떠올렸다.하긴, 아무나 재벌가의 아이를 낳을 자격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니까.하정훈이 만족하는 아내라고 해서, 하씨 가문이 만족하는 며느리라는 보장은 없었다.그녀는 송남지의 상처를 건드린 것 같아 다정하게 위로했다.“괜찮아요, 관장님. 아직 젊은데 뭐하러 벌써부터 애를 낳아요. 젊을 때 실컷 놀고 즐기는 게 최고죠. 애 낳는 순간부터 인생에 애밖에 없다니까요? 두 사람 신혼 즐기기도 벅찰 텐데.”“민 실장님.”송남지가 불쑥 입을 열었다. 목소리에는 옅은 슬픔과 함께 모든 걸 내려놓은 듯한 담담함이 묻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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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0화

서경의 겨울은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를 품고 있었다.정원의 나뭇잎은 빠르게 져버렸지만 상록수인 나한송만큼은 고집스럽게 푸르름을 지켜냈다.살을 에듯 차가운 공기만 아니라면, 계절의 끝자락이 왔다는 사실조차 실감하기 어려운 풍경이었다.차에서 내린 송남지는 민지현에게 집에 들렀다 가라고 권했지만 민지현은 거절했다.“갤러리로 돌아가서 팀 회의해야 해요, 다음에 기회 되면 놀러 올게요.”민지현의 차가 떠나는 것을 지켜본 뒤 송남지는 몸을 돌렸다.본채의 불은 환하게 켜져 있었고 십여 미터 떨어진 곳에서도 사람의 그림자가 움직이는 것이 어렴풋이 보였다.평소 같았으면 벌써 가정부들이 짐을 들어주러 나왔을 텐데 오늘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해서 그녀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본채를 향해 발걸음을 재촉했다.후각이 예민한 그녀는 낯선 향수 냄새가 코끝을 스치는 순간, 집에 손님이 왔음을 직감했다.가정부들은 이렇게 진한 향수를 쓰지 않았다.거실에 들어서는 순간, 송남지는 낯설고 젊으며 맑은 여자의 목소리를 들었다.“미란 이모, 몇 년 만인데 하나도 안 늙으셨네요. 여전히 젊어 보이세요.”이미란은 멋쩍은 미소를 띠고 있다가 송남지를 발견하고는 표정이 굳었다.“사모님! 돌아오셨어요!”송남지는 이미란을 향해 웃으며 답했다.“네, 방금 도착했어요.”이미란은 신나게 달려와 송남지의 몇 안 되는 짐을 받아 들며 말했다.“기사를 보냈는데 기사도 돌아오기 전에 벌써 오셨네요, 정말 빠르시네요...”송남지는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설명했다.“갤러리 동료가 마중 나와서 오는 길에 일 얘기 좀 했어요.”“아, 그러셨구나. 사모님 배고프시죠, 주방에 저녁 준비하라고 할게요.”이미란은 그저 송남지가 돌아왔다는 사실에만 정신이 팔려, 집을 찾아온 손님을 소개해야 할 타이밍이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송남지의 시선이 상석 소파에 앉아 있는 젊은 여인에게 머물고 나서야 상황이 감지되었다.서른이 채 안 되어 보이는 그녀는 유행을 타는 화려한 신상 아이템보다는,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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