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5년 연애와 3년 결혼 생활. 송남지는 평생 윤해진과 함께할 거라 믿었다. 비행기 추락 사고 소식이 들려왔을 때 죽음조차 둘을 갈라놓지 못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진실은 너무도 잔인했다. 윤해진은 죽은 게 아니라 이미 다른 여자의 남편이 되어 있었다. 송남지가 믿어온 사랑은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송남지는 끝내 모든 감정을 내려놓고 스스로 이 어리석은 사랑의 막을 내렸다. 그리고 집안에서 정해준 결혼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서경 상류 사회의 중심, 하씨 가문의 장남 하정훈이 이혼녀를 아내로 맞았다는 소식은 곧 세간의 입방아에 올랐다. 송남지조차도 생각했다. 하정훈이 자신을 택한 건 단지 몸에 병이 있어 어쩔 수 없이 결혼을 치른 것이라고 말이다. 하씨 가문에서 원하는 걸 얻은 만큼 송남지는 아내로서 최소한의 체면은 지켜줘야 한다고 다짐했다. “당신 몸이 허락하지 않으면... 우리 아이 하나 입양하죠. 제가 당분간 몸을 숨기고 지내다가 세상에는 제 친자식이라고 하면 되잖아요.” 그 말에 하정훈은 송남지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낮게 웃었다. “그렇게 원하면 그냥 솔직히 말해. 자기가 원하는 걸 내가 못 들어줄 이유가 없잖아.” 주변 사람들은 잘나가는 재벌 도련님이 왜 굳이 아내에게 매달리며 자신을 낮추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수군거렸다. 하지만 하정훈은 조금도 개의치 않았고 오히려 입꼬리를 비웃듯 올리며 말했다. “아내한테 매달려서 뭐가 나빠? 결국 내가 원하는 건 다 얻을 수 있는데.” 사람들은 하정훈을 조롱했지만 아무도 알지 못했다. 그토록 오랫동안 가슴속에 묻어온 짝사랑이 얼마나 쓰라린 기다림이었는지 그리고 그 끝에 마침내 손에 넣는 일이 얼마나 어려운 길이었는지.
View More재스민 갤러리 개관 커팅식이 대성공을 거두며 마무리됐다.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완벽한 결과였다.온라인은 온통 이 소식으로 도배되었고 반달 동물원 벽화로 유명해진 천재 소녀가 서경 중심가에 재스민 갤러리를 오픈했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은 열광했다.대다수의 사람이 트래픽이 정말 이렇게 빨리 돈으로 전환될 수 있다는 사실에 부러움을 표하는 반면 이성적인 사람들은 송남지를 옹호했다. 그녀의 유명세는 결국 실력에서 나온 것이고 탄탄한 재능이 있기에 대중의 관심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라고 말이다.세상 사람들은 송남지를 그저 자본의 선택을 받은 운 좋은 예술가로만 여겼다. 그러나 그녀가 원하기만 한다면 스스로가 곧 자본이 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걸 꿰뚫어 보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송남지는 명가원의 홀 두 개를 빌려 성대한 뒤풀이 자리를 마련했다.스승인 류무영과 온유미를 배웅하고 나서야 송남지는 참았던 숨을 길게 내뱉었다.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온종일 팽팽하게 긴장하고 있다가 이제야 겨우 마음이 놓였던 것이다.사람들이 대부분 빠져나가자 하정훈도 답답했던 모자와 마스크를 벗었다.임소훈이 하정훈과 함께 송남지 쪽으로 걸어와 장난스럽게 말을 건넸다.“축하 파티에 나 끼워줄 자리도 있어요?”송남지는 웃으며 고개를 돌려 임소훈을 바라보았다.“선배님, 그게 무슨 농담이세요? 선배님이 와주시면 저야말로 영광이죠.”마침 일정도 비어있던 임소훈이 제안했다.“좋아요, 남지 씨가 반겨주니 가서 한 끼 든든하게 먹어야겠네요. 마침 하 대표도 아침부터 지금까지 쫄쫄 굶었거든요.”하정훈은 묵묵히 서서 아무 말이 없었다.모자와 마스크를 벗어 던지자 하정훈의 날카로운 눈매와 차가운 입술이 온전히 드러났다.오직 눈빛 하나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만만한 상대가 아닌지 증명하는 듯했다.하정훈은 송남지의 옆모습을 훑으며 무심하게 툭 던졌다.“난 안 갈래. 네 자리는 있어도 내 자리는 없을 텐데.”그 은근한 가시가 돋친 말에 송남지는 민망함에 어쩔 줄 몰랐다.주위를 둘러보니
비서는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이 정도로 긴박한 시간에 회의를 하시는 걸 보니 정말 중요한 비즈니스인가 보네요.”임소훈은 비서의 말에 아주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을 표했다.그러고는 뒤를 돌아보는 척하며 터져 나오려는 웃음을 간신히 참아냈다.확실히, 아주 ‘중요한 비즈니스’이긴 했다.커팅식이 끝나자 갤러리 안은 그야말로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류무영의 명성은 독보적이었고 오랫동안 대중 앞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던 터라 그의 등장은 현장을 뜨겁게 달구기에 충분했다.매체들은 마치 굶주린 늑대처럼 눈을 번득이며 류무영을 주시했다.누구든 류무영과 단독 인터뷰만 따낸다면 그야말로 대박을 터뜨리는 셈이었다.단상에서 내려오기 전 류무영이 한마디 덧붙였다.“이번에 귀국해서 당분간 머물 계획이니 저라는 노인네에 대한 호기심은 천천히 푸셔도 됩니다. 대신 오늘은 재스민 갤러리에만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좋겠군요. 협조 부탁드립니다.”온유미의 부축을 받으며 내려온 류무영은 무리가 되었는지 심하게 기침을 내뱉었다.이에 온유미가 사색이 되어 권했다.“선생님, 병원에 갈까요?”그러자 류무영이 쏘아붙였다.“기침 몇 번에 병원이면 재채기하면 아주 제사 지내겠구나?”류무영의 까칠한 대꾸에 온유미는 입을 꾹 다물었다.류무영이 눈을 가늘게 뜨고 주위를 둘러봤다.“그런데 남지는 어디 갔지?”송남지가 인파를 헤치고 나오며 손을 흔들었다.“교수님! 저 여기 있어요!”류무영은 달려오는 송남지를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역시 젊은 게 좋구먼, 에너지가 넘쳐.”온유미도 거들었다.“맞아요. 남지 씨는 볼수록 예쁘기도 하지만, 발그레한 두 뺨이 묘하게 분위기 있어서 훨씬 생기 있어 보이네요.”송남지는 쑥스러워하며 두 볼을 감싸 쥐고는 얼른 말을 돌렸다.“죄송해요, 마음이 급해서 뛰어오느라... 제가 조금만 움직여도 얼굴이 잘 빨개지는 편이라서요.”온유미가 송남지의 어깨를 토닥였다.“숨 좀 고르고 올라가요. 안 늦었으니까.”송남지는 웃으며 고개를
송남지는 미친 듯한 파도에 휩쓸렸고 휴대폰은 자연스럽게 소파를 따라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가벼운 소리는 소파가 삐걱대는 소리에 묻혀 사라졌다.하지만 끈질기게 울리는 전화벨 소리만큼은 가릴 수 없었다.입술이 막힌 송남지는 겨우 곁눈질로 바닥을 내려다봤다.환하게 켜진 휴대폰 화면에는 비서의 이름이 떠 있었다.안 봐도 뻔했다. 빨리 나오라고 재촉하는 전화였다.송남지는 다급한 마음에 하정훈의 탄탄한 허리를 꼬집으며 말했다.“정훈 씨, 이제 진짜 늦어요...”하정훈의 키스는 목덜미까지 이어졌고 송남지의 초조함에 비해 그는 유난히 담담했다.“응, 알고 있어...”‘알면서 왜 안 놔주냐고?’송남지가 거의 애원하듯 속삭였다.“정말 늦는단 말이에요...”하정훈은 바쁜 와중에 고개를 들어 눈썹을 치켜세우며 대꾸했다.“방금 말했잖아. 시간 없는 거 안다고.”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게다가 여긴 언제 누가 들어올지 모르는 VIP 대기실이었으니 초조함보다 긴장감이 더 송남지를 짓눌렀다.머릿속을 헤집는 자극에 모든 감각이 평소보다 수십 배는 예민하게 살아났다.가벼운 스침에도 송남지는 목소리를 삼키며 낮은 신음을 내뱉었다.하정훈의 입가에 미소가 더 짙게 걸렸다.“몸은 아주 솔직하네.”그러더니 그가 해결책을 던졌다.“빨리 끝내고 싶어? 내가 방법 알려줄까?”송남지는 세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나 간절한지 하늘이 알 정도였다.하정훈이 웃음기를 지우고 송남지의 허리를 감싸 안더니 순식간에 위치를 바꿨다.송남지가 위, 그는 아래였다.그는 위에 있는 송남지에게 길을 알려주었다.“네가 주도하면 금방 끝나.”송남지는 여태껏 먼저 주도해 본 적이 거의 없었다.최보라가 비법을 전수해줬던 그날 밤을 제외하면 말이다.생각해보니 그날 밤 하정훈은 평소보다 확실히 좀 빨랐다. 바닥에 떨어진 휴대폰은 여전히 요란하게 울려대며 자잘한 움직임의 소리들을 모두 덮어버리고 있었다.송남지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하정훈의 평소 시간을 생각하면 자신이 먼저 나서지 않
임소훈은 두 사람의 관계를 다 알고 있었다.그런 임소훈 앞에서 남편인 자신을 부정한 셈이니 하정훈에게는 그야말로 설상가상인 상황이었다.송남지는 하정훈을 애틋하게 바라보며 소파 팔걸이를 짚고 있는 그의 손을 살며시 찾아 쥐었다.일종의 화해의 제스처였다.“정훈 씨, 제 입장 좀 이해해 주세요. 교수님께 우리 사이를 숨기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단지 제가 재혼했다는 걸 아시면 선생님이 또 충격받으실까 봐 겁나서 그래요. 연세도 있으신데 혹시라도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떡해요? 선생님은 라쿠에서 사신 지 벌써 몇 년이나 돼서 서경에는 상태를 잘 아는 의사도 없단 말이에요.”말을 마친 뒤, 송남지는 눈을 두어 번 깜빡이며 하정훈을 똑바로 응시하며 말했다.“당신처럼 잘나고 멋진 남편을 나라고 왜 동네방네 자랑하고 싶지 않겠어요!”하정훈은 송남지의 손을 맞잡아 소파 가장자리에 누르듯 고정시켰는데, 그 모습과 태도는 다소 패기 있고 위압적이었다.“오? 정말 온 세상에 알리고 싶어? 그럼 우리 지금 바로 공식 발표해?”말을 하며 하정훈은 눈썹을 치켜올리고 휴대폰을 꺼냈다.인터넷 시대에 공식 발표를 하는 것은 단 1초면 충분했다. 그 찰나의 순간이면 온 세상이 알게 될 것이었다.송남지는 눈동자를 살짝 키우며 다급하게 하정훈을 저지했다.“안 돼요, 절대 안 돼! 하필 이 타이밍에 발표하면 사람들이 다 갤러리 홍보하려고 쇼하는 거라고 수군거릴 거란 말이에요.”사실 하정훈도 딱히 기대는 없었다.송남지가 결코 그들 사이를 밝히지 않을 거라는 걸 이미 알고 있었으니까.예전에도 그랬고 갤러리를 오픈한 지금은 더더욱 그럴 터였다.그녀는 그에게 조금이라도 덕을 보는 게 죽기보다 싫은 모양이었다.단 한 톨의 빚도 지고 싶지 않다는 그 고집에 하정훈은 깊은 상처와 좌절감을 느끼며 시선을 떨궜다.송남지는 어떻게 하정훈을 달래야 할지 몰라 그에게 다가가 그의 얇은 입술 가에 밀착하며 말했다.“내가 뽀뽀해 주면, 기분이 좀 풀릴 것 같아요?”기분이 풀릴 거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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