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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면을 쓴 남편 のすべてのチャプター: チャプター 621 - チャプター 630

777 チャプター

제621화

“은지영 씨, 안녕하세요. 이렇게 늦은 시간에 정훈 씨를 찾아오셨나요? 그이는 지금 동남아 출장 중인데.”은지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 그 눈매에는 삼십 년 가까이 곱게 자란 사람 특유의 여유로움이 어려 있었다.“네, 오빠가 아직 동남아에 출장 중인 건 알고 있어요. 전 그냥 미란 이모를 뵈러 왔어요.”말을 마친 은지영은 그제야 느릿하게 몸을 일으켜 이미란의 팔짱을 끼고 애교를 부렸다.“이모, 이모표 갈비찜이 먹고 싶어요. 베란에서는 그 어떤 셰프도 이모 맛을 못 내더라고요. 얼마나 먹고 싶었는지 몰라요!”이미란은 자애로운 눈빛으로 웃으며 은지영의 손을 잡았다.“지영 씨, 다 큰 아가씨가 어린애처럼 먹을 거 타령하면 못써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그래요.”은지영은 천진난만한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여기 다른 사람도 없잖아요!”은지영의 스스럼없는 모습에 송남지는 순간 멍해졌다.이미란은 주방에 있던 사람들을 비키게 하고는 직접 솜씨를 발휘하겠다며 송남지에게도 무엇을 먹고 싶은지 물었다.송남지는 은지영과 한껏 신이 난 이미란을 차례로 훑어봤다.솔직히 은지영과 밥 먹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그저 이미란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을 뿐이었다.“전 뭐든 괜찮아요. 가리는 거 없어요.”그 말을 들은 은지영이 휙 고개를 돌려 송남지를 바라보았다. 날이 서 있던 그녀의 눈빛이 어느새 한결 부드럽게 풀려 있었다.“역시 정훈 오빠가 찾은 아내답네요. 가리는 것도 없고 성격도 좋아 보여요.”이미란이 곧바로 말을 이었다.“그럼요, 우리 작은 사모님 성격이야 백 명 중 한 명 있을까 말까 할 정도로 좋으시죠. 나무랄 데가 없어요.”은지영은 그저 웃어 보였다.하지만 송남지의 눈에 그 미소는 꽤 의미심장하게 비쳤다.이미란이 주방으로 들어가자 은지영에게서 느껴지던 부드러운 기운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그녀는 곁에 있던 가정부를 쳐다보며 아까보다 엄격해진 말투로 지시했다.“멍하니 서서 뭐 해요. 얼른 가서 사모님 짐 정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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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2화

송남지는 일단 하정훈에게 잘 도착했다는 메시지를 보냈다.은지영의 이야기를 어떻게 꺼내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지만, 늘 칼같이 답장을 보내던 그에게선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기묘한 이질감에 전화까지 걸어보았으나 공허한 수신음만 돌아올 뿐이었다.아마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었다. 순간, 고작 은지영 같은 여자 때문에 연락 한 통에 일희일비하며 목을 매는 스스로가 못 견디게 어리석게 느껴졌다. 혼자 처리할 수 있는 일이라면 굳이 하정훈에게 짐을 지울 이유가 없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송남지는 그를 찾으려던 마음을 갈무리했다.그가 동남아에서의 업무에만 몰두할 수 있게 배려하는 것이 지금의 최선이라 믿었다. 잠시 업무를 보고 있자니 아래층에서 이미란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사모님, 내려와서 식사하세요!”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싶어 시계를 보니 이미란의 손놀림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노트북을 덮고 1층으로 내려간 송남지의 눈에 띈 것은 평소 자신이 앉던 통유리창 앞자리를 버젓이 차지하고 있는 은지영이었다.이미란이 자리를 잘못 앉았다고 주의를 주려 했지만 그녀가 미처 말을 꺼내기도 전에 은지영은 참을 수 없다는 듯 젓가락을 들어 갈비찜을 입에 넣었다.“이모가 만든 갈비찜 진짜 최고예요! 제가 딱 그리워하던 맛이에요!”은지영은 송남지를 쳐다보며 천연덕스럽게 권하기까지 했다.“빨리 와서 드세요, 식으면 맛없잖아요.”체할 듯이 급하게 먹는 은지영의 모습에 자리에 대해 말하려던 것도 잊어버린 이미란이 가볍게 웃으며 타이르듯 말했다.“지영 씨, 천천히 좀 드세요. 그러다 사레들려요. 남들이 보면 웃겠네, 그렇게 맛있어요?”은지영은 송남지에게서 시선을 거두고 이미란을 보며 즐겁게 대꾸했다.“웃든 말든 상관없어요, 맛있는 걸 어떡해요. 이모의 솜씨는 왜 밖의 내로라하는 셰프들도 못 따라갈까요? 진짜 미스터리라니까요.”이미란은 쑥스러운 듯 가볍게 웃어 보였다.“제 요리가 뭐 특별할 게 있나요. 지영 씨가 고향 음식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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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3화

까놓고 말해 은지영은 그녀의 분노 따위는 안중에도 없는 듯했다.은지영은 겉으로는 전혀 공격성 없는 무해한 미소를 지어 보였으나, 그 이면에는 승리를 확신하는 듯한 여유로운 자신감이 깔려 있었다.“사모님은 어쩜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 정훈 오빠가 푹 빠질 만하네요.”송남지는 나긋나긋한 척하면서 속을 긁는 은지영의 음침한 화법이 딱 질색이었다.그녀는 오히려 어른답게 솔직하고 시원하게 털어놓고 말하는 편을 선호했다.오늘 밤에 끝낼 수 있는 이야기는 굳이 내일까지 끌고 갈 이유가 없다고 판단한 송남지가 말을 건넸다.“은지영 씨, 오늘 밤 여기 오신 게 미란 이모랑 옛날이야기 나누고 싶어서인 건 알겠어요. 하지만 이왕 이렇게 된 김에 재스민 후원 건에 대해 얘기 좀 하죠. 저랑 약속 잡으셨잖아요.”은지영은 짐짓 놀란 기색을 보였다.“정훈 오빠랑 결혼하신 지도 꽤 되셨길래, 사모님 성격도 오빠를 좀 닮아갔을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네요?”송남지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물었다.“음? 그건 무슨 소리죠?”이미란이 앞에 있을 때만 음식을 맛있게 먹는 척하던 은지영은 그녀가 자리를 뜨자마자 젓가락을 내려놓은 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애당초 갈비찜을 그렇게 좋아했던 것도 아닌 듯했다.은지영은 특유의 낭창낭창한 말투로 덧붙였다.“정훈 오빠는 사적인 시간에 일 얘기 꺼내는 거 질색하잖아요. 그건 능력 없고 비효율적인 사람들이나 하는 행동이라고 했거든요.”그 말속에는 교묘하게 누군가를 깎아내리면서 다른 누군가를 은근히 치켜세우려는 의도가 다분했다. 동시에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비아냥거림이 서늘한 독기처럼 묻어 있었다.송남지는 목에 솜털 같은 가시가 걸린 듯한 찝찝한 불쾌감을 느꼈지만 이내 속으로 스스로를 다독였다.‘참자, 은지영이 재스민에 후원하는 한 갑일 수밖에 없잖아. 갑이 이야기하기 싫다는데 굳이 꺼낼 필요는 없지.’송남지가 입꼬리를 억지로 끌어올렸다.“좋아요. 공적인 이야기가 싫으시다면 하지 말죠.”이미란은 가정부가 의자를 가져오는 것을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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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4화

분위기가 팽팽하게 얼어붙자, 이를 견디지 못한 이미란이 서둘러 중재에 나섰다.“사모님, 지영 씨는 예전부터 도련님이랑 워낙 각별한 사이였잖아요. 그러니 도련님 걱정하는 마음도 무리는 아니죠.”이미란의 의도는 순수했다. 송남지가 불필요한 오해를 하지 않길 바라는 선의였을 뿐이다.하지만 그 말은 의도치 않게 은지영에게 가장 강력한 방패를 쥐여주고 말았다.하씨 가문에서 수년간 일해온 가정부들이 모두 자신의 편이라는 확신 말이다.은지영의 얼굴에서 당황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그 자리에 도리어 억울하다는 표정이 떠올랐다.그녀는 어쩔 수 없다는 듯 두 손을 펼쳐 보였다.“역시 미란 이모가 절 제일 잘 아신다니까요. 하지만 사모님, 오해는 마세요. 저와 정훈 오빠는 어릴 적부터 쌓아온 우정일 뿐이에요. 그땐 우리가 사랑이 뭔지 알 나이도 아니었잖아요.”은지영은 그것만으로는 직성이 풀리지 않는 듯했다.화려한 샹들리에 조명 아래, 그녀의 눈망울이 아련하게 빛나며 당장이라도 억울함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를 자아냈다.“그저 십 대였고 그냥 어른들이 보기 좋고 양가 수준도 맞으니까 약혼하라고 하셨던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은지영은 겉으로는 송남지를 위로하는 척했지만, 실상은 과거의 그 일을 교묘하게 들쑤시고 있었다.표면적으로 송남지는 이 일에 대해 그 어떠한 감정도 내비칠 수 없었다. 상대가 이미 선수 쳐서 그 시절의 일은 그저 양가 어른들이 집안 수준과 나이가 비슷해 맺어준 것뿐이라고 선을 그어버렸기 때문이다.여기서 송남지가 불쾌한 기색이라도 보인다면, 은지영은 언제든 더없이 무고한 피해자로 둔갑할 태세였다.송남지는 입술을 가볍게 오므리며 은지영에게 담담한 미소를 돌려주었다.“은지영 씨가 그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제가 마음에 담아둔다면 오히려 제가 속 좁은 사람이 되겠네요.”말을 마친 그녀는 손목을 들어 올려 단아한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바늘은 이미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시계를 보는 그 행동의 의미는 굳이 말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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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5화

“사모님 말씀이 맞네요. 만약 밤에 저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하씨 가문에서 책임을 져야 할 테니까요. 역시 매사에 빈틈없는 분이세요. 정훈 오빠의 안목이 정말 탁월하네요.”은지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확실히 늦긴 했네요. 귀국하자마자 아빠가 관리하라고 회사를 하나 맡기셨거든요. 푹 쉬어야 회사 일도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 테니, 전 이만 가볼게요.”은지영이 돌아가겠다고 하자 오히려 안도한 쪽은 이미란이었다.아슬아슬했던 조금 전의 분위기에 행여나 두 사람이 싸우기라도 할까 봐 내심 조마조마했기 때문이다.이미란이 배웅을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지만 송남지는 그 자리에 미동도 없이 앉아 있었다.은지영은 융숭하게 대접할 만큼 중요한 손님이 아니었기에 이 같은 행동 자체가 곧 그녀의 단호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었다.몸을 돌리던 은지영이 송남지를 힐끗 노려보자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함께 보이지 않는 암투가 거세게 소용돌이쳤다.은지영은 다정하게 이미란의 팔짱을 끼며 보란 듯이 입을 열었다.“이모, 다음에 오면 그 상간녀 얘기 꼭 마저 해 줄게요. 남의 가정 파탄 내놓고 자기가 무사할 줄 알았나 보죠? 십 년 넘게 내 새엄마 노릇 하다가 결국 쫓겨났잖아요.”말을 마친 은지영은 상냥한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 송남지를 바라보았다.“사모님, 배웅은 이모가 해 주면 되니까 늦었는데 그만 쉬세요.”송남지가 고개를 끄덕이며 지그시 눈매를 좁혔다.5분쯤 뒤 은지영을 배웅하고 돌아온 이미란은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송남지를 발견하고 물었다.“사모님, 아직 안 올라가셨어요? 차라도 한잔 내올까요?”송남지는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그녀는 휴대폰으로 시선을 돌렸다.이즈음 하정훈의 귀국행 비행기도 맨성에 도착했을 터였다.‘일이 덜 끝났나 보네. 문자를 아직 확인 못 했을 테니 답장이 없는 게 당연하지.’그녀는 스스로를 납득시켰다.씁쓸해 보이는 송남지의 기색을 살피던 이미란은 은지영의 갑작스러운 등장이 불쾌감을 준 것이라 여겨 서둘러 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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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6화

이미란은 나지막이 한숨을 내쉬었다.“도련님께서는 이미 사모님과 결혼하셨다지만, 은씨 가문 어르신들이 과거의 약속을 물고 늘어지면 하씨 가문 입장에서도 참 난처한 노릇이 될 겁니다.”송남지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이며 덤덤하지만 힘 있게 대답했다.“전 정훈 씨를 믿어요.”단 몇 글자에 불과했지만 그 속에는 흔들림 없는 확신이 담겨 있었다.그녀의 단호한 태도를 확인한 이미란은 그제야 마음을 놓으며 덧붙였다.“사모님,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건 괜한 위기감을 조장하려는 게 아니라, 지금이 마냥 안심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걸 미리 알려드리고 싶어서예요.”송남지는 이미란의 진심 어린 걱정과 호의를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아마도 이미란의 눈에 자신이 세상 물정 모르는 온실 속 화초처럼 보였으리라.송남지는 오히려 미소 지으며 이미란을 안심시키듯 부드럽게 입을 열었다.“집에 들어와 은지영 씨를 마주한 순간부터 알았어요. 이모가 만든 갈비찜이 그리워 온 게 아니라는 것쯤은요. 이건 저를 향한 경고겠죠. 정훈 씨와 혼약을 맺었던, 그와 격이 맞는 명문가 영애가 돌아왔으니 알아서 물러나라는 뜻 말이에요.”이미란은 적잖이 당황한 얼굴로 송남지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기억 속 송남지는 그저 순진하고 다정하며 누구에게나 경계심 없이 구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하지만 다시금 찬찬히 살펴보니 지금의 송남지는 자신이 짐작했던 모습과는 사뭇 달랐다. 애초에 자신이 송남지를 오해하고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그 짧은 시간 동안 하정훈의 곁에서 그녀가 눈에 띄게 성장한 것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다.사실 은지영의 존재 따위는 송남지에게 그다지 신경 쓰일 만한 문제가 아니었다.오히려 당장 하정훈에게서 답장이 오지 않는 상황이 훨씬 더 마음에 걸릴 뿐이었다.혹여나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건 아닌지 걱정된 송남지는 계단을 올라가자마자 하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당황스럽게도 여전히 연결되지 않았다.송남지는 서재에 홀로 앉아 밤 10시 반이 될 때까지 기다렸다.이쯤이면 하정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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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7화

“사모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얼굴에 웃음꽃이 피셨네요.”송남지는 토스트를 베어 물고 말끔히 삼킨 뒤에야 대답했다.“좋은 일이 있다기보단, 그냥 어제 푹 자서 그래요.”그 말을 들은 이미란은 내심 졸이던 마음을 조금 내려놓으며 말했다.“사모님께서 지영 씨 일로 신경이 쓰여 밤잠을 설치실까 봐 어젯밤 내내 걱정했거든요. 푹 주무셨다니 정말 다행이에요.”‘은지영? 내가 은지영 일로 잠을 설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그녀도 윤씨 가문에서 산전수전 다 겪어본 인간이었다. 게다가 쓸데없는 걱정으로 사서 고생하는 성격도 아니었다.최미경은 일찍이 그녀를 두고 매사에 너무 초연해서 마치 감정이 없는 사람 같다고 평한 적이 있었다.사실 그녀는 감정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저 남들보다 미련 없이 훌쩍 털어버리는 걸 잘할 뿐이었다.길어야 백 년 사는 인생인데 굳이 자신을 괴롭히며 살 필요는 없었다.하정훈이 사준 핑크빛 마카롱 색상의 차에 다시 올랐을 때, 조수석에 하정훈이 앉아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그녀는 차량 오디오를 연결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괜찮아, 정훈 씨 일 끝나면 곧 돌아올 텐데 뭐.”차는 재스민을 향해 부드럽게 미끄러졌다.갤러리에 도착하자마자 송남지는 제일 먼저 휴대폰부터 확인했다. 혹여 그사이 놓친 메시지라도 있을까 싶어서였다.하지만 어젯밤부터 지금까지, 하정훈에게서는 단 한 통의 연락도 도착해 있지 않았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다시 한번 화면을 훑었지만, 역시나 빠뜨린 메시지는 없었다.송남지는 깊은숨을 내쉬었다. 그는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모양이었다.차에서 내린 송남지는 마침 주차를 마치고 출근하던 민지현과 마주쳤다.민지현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든 채 송남지에게 인사를 건넸다.“관장님, 일찍 오셨네요?”송남지가 손목을 들어 보이며 대답했다. “일찍은 아니죠. 회의 끝나면 서둘러 은지영 씨를 만나러 가야 하거든요.”10분 후, 회의실.박재용이 피곤한 얼굴로 투덜거렸다.“오자마자 사람 달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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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8화

송남지는 회의실 화장실로 향했다.여자 화장실 칸에 들어가기 직전, 그녀는 하정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채 30초도 안 돼서 받지 않는 전화는 뚝 끊겼다.시간을 보니 하정훈이 한창 일할 시간이 맞았다. 바쁜 게 틀림없었다.송남지는 서둘러 메시지를 입력하고 전송했다.갤러리 홍보를 위해 박재용과 방송에 동반 출연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메시지 끝에, 송남지는 귀여운 이모티콘 하나를 덧붙였다.[정훈 씨, 이건 단순히 프로그램 협조일 뿐이에요. 방송 특성상 시청자들이 저희를 커플로 엮어 부르는 일이 생길 수도 있겠지만, 너무 신경 쓰지 마셨으면 해요. ]송남지는 혹여 그가 부담을 느낄까 염려 섞인 말을 덧붙였다.[다른 적임자가 있었다면 당연히 사양했을 일이에요. 그러니 부디 안심하세요. 그리고 요즘 많이 바쁘신 거 알지만 식사 거르지 마시고 건강 꼭 챙기세요.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시고요...]더 이상 말을 이어가면 잔소리처럼 들릴 것 같아 송남지는 서둘러 문장을 매듭지었다.‘내가 언제부터 이렇게 말이 많았지?’스스로도 생경한 모습에 그녀는 거울 속 자신을 향해 씁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마음을 가다듬고 회의실로 돌아가자, 이미 출연 건은 기정사실화된 듯한 열기가 감돌았다.“관장님은 워낙 이미지가 깨끗하셔서 박재용 씨 옆에 서기만 해도 그림이 살 거예요. 선남선녀 구도가 형성되면 팬덤은 알아서 따라올 거고 그럼 재스민의 홍보 효과도 극대화될 겁니다.”송남지는 여전히 프로그램 출연에 망설이고 있었다.그래서 결국 이 상황을 타개할 다른 제안을 던지기로 했다.“저는 민 실장님 이미지도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혹시...”민지현은 곤란하다는 듯 어깨를 으쓱였다.“관장님, 제 외모 칭찬은 감사하지만, 제 스케줄을 보시면 아마 그런 제안은 못 하실 거예요.”민지현이 전체 아트 팀 운영을 맡고 있기에 처리할 일이 태산 같은 건 송남지도 잘 알고 있었다.어쩔 수 없이 송남지는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좋아요, 그럼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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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9화

송남지가 작게 웃으며 대답했다.“영광이라니요. 재용 씨가 만약 진짜 여자친구를 구한다면, 서경에서부터 라인국까지 줄을 서야 할걸요.”“서경에서부터 라인국까지요?”박재용은 웃으며 생각했다.‘명 짧은 남자를 선택할 여자가 세상에 몇이나 될까. 누가 기꺼이 평생을 과부로 살고 싶어 하겠냐고.’박재용은 마치 오늘이 마지막인 듯,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허무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송남지는 그의 씁쓸한 표정을 놓치지 않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왜 그렇게 씁쓸하게 웃어요? 내 말이 틀렸나요?”그녀는 이미 짐을 챙겨 은지영과의 약속 장소로 갈 준비를 마친 상태였다.박재용은 더 이상 이 주제에 대해 길게 이야기하고 싶지 않아 어깨를 으쓱이며 대답을 피했다.자신의 얼마 남지 않은 수명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네, 네. 제 매력이 좀 넘치긴 하죠, 인정합니다. 그런데 서경에서 라인국까지라니요, 그건 좀 과장이 심하시네. 솔직히 말하면 서경에서 프랑코니아 정도까지죠.”박재용의 능글맞은 태도를 다시 확인한 송남지의 마음이 한결 편안해졌다.그녀는 가방을 들고 일어나며 말했다.“박 작가님, 저 이제 업무 보러 가야 해서요. 제 작업실에 들러 차라도 한잔하고 싶으시면 비서에게 차 좀 내달라고 하세요.”박재용도 재빨리 일어나며 뒤따랐다.“차는 됐고 가는 길에 집까지 좀 태워다주시죠.”송남지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말했다.“제가 가는 곳은 작가님 댁이랑은 좀 동떨어진 곳인데요.”박재용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은지영 씨 만나러 가는 길인가요?”송남지가 고개를 끄덕였다. 은지영이 던진 협업 제안에 대해 재스민의 사람들은 이미 다 알고 있는 모양이었다.“그럼 저도 같이 가죠.”박재용이 왜 은지영을 만나고 싶어 하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송남지는 굳이 그를 막을 이유도 없었다.은지영이 정한 카페는 재스민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서경의 중심부, 도심에 자리한 재스민의 위치처럼 은지영이 선택한 카페 역시 서경 시내 중심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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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30화

송남지는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은지영 씨를 알아요? 너무 오버하는 거 아니에요? 그 여자가 재스민에 관심을 가질 리도 없거니와 뺏을 게 없어서 고작 작은 갤러리를 탐내겠어요?”박재용의 눈빛이 싸늘하게 가라앉았다.잠시 후 그가 나직이 말했다.“예전에 삼촌이랑 베란 출장을 갔을 때, 그쪽 아버지가 식사를 대접한 적이 있었죠. 그때 딱 한 번 봤는데... 식탁 위에 반찬까지 뺏어 먹고서야 직성이 풀릴 인간이더군요. 그런 부류에게 갤러리 하나 집어삼키는 것쯤은 일도 아닐 겁니다.”송남지는 박재용의 말이 너무 과장되었다고 생각했다.은씨 가문은 불륜 이혼 스캔들이 터지기 전까지만 해도 서경에서 손꼽히는 명문가였다.비록 추문 탓에 수년간 해외를 전전했다지만 국내 사업체는 여전히 건재했고 오히려 세를 확장하며 번창하는 중이었다.그런 은지영이 식탁에서 음식을 뺏어 먹는 사람일 리가 없었다.박재용은 거기까지만 말하고 입을 다물고는 송남지를 따라 차에서 내렸다.차에서 내린 그는 송남지의 차를 찬찬히 뜯어보며 물었다.“하정훈이 선물한 거죠?”송남지는 숨기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네.”“정말 관장님의 환심을 사려고 온갖 노력을 다하는군요. 이 차, 제가 알기로는 전 세계에 딱 세 대뿐인 한정판인데.”송남지는 미간을 찌푸렸다. 포르쉐가 비싼 브랜드인 건 알았지만 이 차가 전 세계에 단 세 대뿐인 한정판일 줄은 상상도 못 했다.박재용이 어깨를 으쓱했다.“그래도 핑크색이 관장님과 참 잘 어울려요. 말랑말랑하니.”송남지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지적했다.“그건 음식에나 쓰는 표현이에요.”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카페 안으로 들어섰다.창가 자리에는 이미 은지영이 도착해 기다리고 있었는데 한 손에 잡지를 들고 고요히 책장을 넘기는 중이었다.통유리창으로 스며든 오후의 햇살이 그녀의 어깨 위로 쏟아졌다. 빛을 머금은 머리카락 끝이 은은한 밤빛으로 일렁였고 연한 커피색 정장을 차려입은 모습은 한없이 부드러우면서도 흐트러짐 없이 정갈했다.기척을 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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