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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해온아, 걱정하지 마. 너 대신 엄마가 나설게. 내가 그 자식 아주 단단히 혼쭐내줄게!”말을 마친 뒤 안명화는 여해온이 대답하기도 전에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여수린을 끌고 가면서 화가 난 목소리로 말했다.“네 언니는 진도훈 그 자식이 바람을 피웠다는 걸 알고 이혼하려고 한 걸 거야. 빌어먹을 자식, 우리는 네 언니 대신 화풀이를 하러 가자!”여수린도 씩씩대며 말했다.“가요!”두 사람은 진도훈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엄마? 엄마!”여해온은 안명화가 전화를 끊자 큰일났다는 생각이 들었다.안명화의 성격을 잘 알고 있는 여해온은 안명화가 진도훈에게 따져 물으러 갔다는 걸 알 수 있었다.그러나 이혼 얘기를 먼저 꺼낸 건 여해온이었고, 설령 진도훈이 정말로 바람을 피웠었다고 해도 굳이 그 일로 그에게 따지고 싶지 않았다.사실 여해온은 진도훈에게 미안한 점이 꽤 많았는데 진도훈이 정말로 바람을 피웠다면 그에게 더 이상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었으니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만약 안명화가 무슨 짓이라도 한다면 또 어떤 문제가 생길지 몰랐다.초조해진 여해온은 안명화에게 전화해 진도훈을 찾아가지 말라고 말할 생각이었으나 다시 전화를 걸기도 전에 누군가 여해온에게 전화했다.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이현오였다.그 이름을 본 순간 여해온은 살짝 당황하면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 해온아. 천우 그룹이랑 협력하는 건 어떻게 됐어?”전화 너머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말도 마. 이제 막 회의실에서 나왔는데 우리 레빈 그룹은 탈락했어.”여해온은 쓴웃음을 지으며 힘없이 말했다.“그럴 리가. 너 이번에 그것 때문에 엄청 공들였잖아. 며칠 동안 잠도 잘 자지 못했는데 레빈 그룹이 아니라 다른 곳을 선택했다고?”이현오는 분한 듯이 말했고 여해온은 마음이 따뜻해졌다.그동안 여해온은 회사 규모가 점점 커지면서 교운시의 유명한 여성 기업가가 되며 영광을 누렸지만 그만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그러나 남편인 진도훈은 그녀의 짐을 덜어주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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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여해온은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번에는 천우 그룹과 협력하지 못하게 되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노력해서 앞으로 나갈 거야. 내가 더 나은 사람이 된다면 일도 잘 풀리겠지.”이현오는 웃으며 말했다.“맞아. 그게 맞지. 네 태도는 굉장히 좋아. 그런 마음이라면 앞으로 어떤 난관에 부딪쳐도 다 잘 해결할 수 있을 거야.”여해온은 짧게 대답한 뒤 뭔가 말하려고 했는데 이현오가 먼저 말을 이어갔다.“그런데 오늘 천우 그룹 그 프로젝트 말이야. 어쩌면 네게 다시 기회가 생길지 몰라.”여해온은 당황해하면서 이상한 듯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이현오는 자랑스럽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전에 얘기했었지? 교운대학교병원의 안준혁 교수님이 내 스승님이라고 말이야.”“응, 알지. 안 교수님은 교운시 신경과에서 권위 있는 전문의시잖아. 그런데 그게 천우 그룹 프로젝트와 무슨 관련이 있는데?”여해온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이 물었다.이현오가 말했다.“천우 그룹 민서웅 회장님이 얼마 전 의식불명 상태가 되었는데 안 교수님이 자신의 의료팀을 데리고 민 회장님을 치료하러 가셨대. 그리고 조금 전에 얘기 들어보니까 민 회장님이 오늘 오전에 정신을 차렸대. 틀림없이 안 교수님이 민 회장님을 구했을 거야.”이현오는 웃으며 말했다.“그래서 민 회장님을 직접 찾아가서 안 교수님과 아는 사이라고 한다면 그 체면을 생각해 레빈 그룹과 협력하려고 할지도 몰라.”여해온은 마음이 흔들려서 머뭇거리며 물었다.“그래도... 될까?”“한 번 해봐. 원래 살다 보면 다 그런 법이잖아. 게다가 목숨을 구해준 사람이니 민 회장님은 틀림없이 네게 프로젝트를 맡길 거야.”여해온은 입술을 깨물다가 힘껏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 한 번 해볼게. 정말 고마워. 내게 엄청 큰 도움이 되어줬네.”이현오가 말했다.“우리 사이에 고맙다는 말은 필요하지 않지. 너도 알잖아. 널 향한 내 마음.”여해온은 미소를 드러냈다.“일 다 끝내면 좋은 소식을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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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그러나 조금 마음에 걸리는 점은 매우 젊어 보이는 용태규를 여해온이 어른이라고 표현했다는 점이었다. 설마 항렬 때문에 그렇게 표현한 것일까?...알리나 레스토랑. 진도훈과 민아름은 식사를 거의 끝마쳤다. 중간에 그들은 술을 몇 잔 마시기도 하면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선생님, 그러면 남강 어르신을 위해 엘리나의 구조를 바꿔주었단 말인가요? 정말 대단하세요!”민아름은 호기심에 진도훈에게 주방에서 있었던 일을 물었고 진도훈은 간단히 설명해 주었다. 그 말을 듣고 민아름은 깜짝 놀랐다.특히 자라의 원념 때문에 사람들이 도끼로 목을 치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는 말을 들으니 등골이 오싹했다.그 일들은 민아름에게 너무나도 신비롭고 환상 같아 진도훈이 말하지 않았더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별거 아니에요. 민아름 씨 아버지를 구한 것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니죠. 오늘 전 민아름 씨 아버지를 구하기 위해 많은 기운을 소모했으니 말이에요.”진도훈은 손을 저었다.그러고 보면 정말 괘씸했다. 만약 안준혁이 멋대로 은침을 하나 뽑지 않았더라면, 진도훈이 체내의 진귀한 영력을 소모하여 비술인 기사회생을 써서 심장이 멎은 민서웅을 저승 문턱에서 다시 끌어낼 필요가 없었다.민아름은 진도훈이 민서웅을 구할 때 상황이 얼마나 위급했는지를 떠올리고는 미안한 마음이 들어 진도훈을 향해 잔을 들며 감사 인사를 했다.이때 안명화와 여수린 두 사람이 그들을 향해 다가왔다.안명화는 진도훈이 들고 있던 술잔을 쳐내더니 헛웃음을 치면서 말했다.“어머, 이게 누구야? 여기서 다른 여자랑 밥을 먹고 술을 마셔? 정말 팔자 좋네.”여수린은 민아름이 들고 있던 술잔을 쳐내면서 욕했다.“유부남을 꼬시다니 아주 뻔뻔하네요!”민아름은 화가 났다. 교운시 재벌가 딸인 그녀는 이런 수모를 당한 적이 없었다.민아름이 화를 내려는 순간 옆에 있던 진도훈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며 중년 여성을 향해 말했다.“어머니, 여긴 어쩐 일이세요?”‘어머니?’민아름은 당황했다. 그녀의 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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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민아름은 눈을 반짝이며 고개를 들어 진도훈을 바라보다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말했다.“물어볼 필요 없어요. 아는 사이에요. 그것도 아주 깊이 얽힌 관계예요.”민서웅은 짧게 말했다.“그래.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다.”말을 마친 뒤 민서웅은 전화를 끊었다.민아름은 민서웅이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는 알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처럼 얼어붙은 분위기 속에서 민서웅과 길게 통화할 수는 없었다.“왜 말이 없어? 내가 다 알아맞혀서, 찔리는 게 있어서 아무 말도 못 하나 보지?”진도훈이 가만히 있자 안명화가 차갑게 웃으며 물었다.진도훈은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천천히 말했다.“어머니, 저 찔리는 거 없어요. 저는 해온이랑 결혼한 뒤로 단 한 번도 해온이에게 미안한 짓을 한 적이 없어요.”“헛소리하지 마! 미안한 짓을 안 했다고? 우리한테 덜미까지 잡혀놓고 그런 말을 잘도 하네. 예전에는 네가 이렇게 위선적인 사람이라는 걸 왜 몰랐을까?”안명화는 테이블을 내리쳤다. 그녀는 화가 나서 진도훈의 뺨이라도 때리고 싶었다.여수린은 가슴 아픈 얼굴로 말했다.“엄마, 그만 얘기하고 얼른 구청으로 데려가요. 언니도 불러서 빨리 이혼신고를 한 뒤 완전히 연을 끊게 하자고요!”“네 말이 맞다. 지금 바로 네 언니한테 연락해서 구청으로 오라고 해.”안명화는 고개를 힘껏 끄덕이면서 진도훈의 팔을 잡고 말했다.“이리 와! 지금 당장 구청으로 가.”안명화는 진도훈이 이혼신고를 하지 않으려고 할까 봐 두려운 듯했다.진도훈은 자조하듯 웃으면서 민아름을 향해서 말했다.“민아름 씨, 오늘 추한 꼴을 보여서 죄송하네요. 그러면 전 이만 가보겠습니다.”민아름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괜찮아요.”“어머니, 이거 놓으세요. 제 발로 따라갈게요.”진도훈이 안명화에게 말했다.안명화는 짜증을 내며 진도훈의 팔을 놔주었다.“그래. 그것 참 잘됐네. 누구는 너 붙잡고 싶은 줄 알아?”세 사람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여수린은 그 와중에 여해온에게 전화를 걸었는데 전화가 연결되자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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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진도훈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성태영 등 사람들을 바라보았다.안명화와 여수린 두 사람은 겁을 먹고 안절부절못했다.“흑호 형님, 바로 이 자식이에요. 이 자식을 혼쭐내주세요!”성태영은 진도훈의 앞으로 달려가서 그를 손가락질하며 까만 피부에 짧은 머리, 정장을 입은 남자를 향해 말했다.“태영 씨, 걱정하지 마세요. 저 자식이 태영 씨 손목을 부러뜨렸으니 제가 저 자식의 사지를 잘라버리도록 할게요.”흑호는 잔인한 미소를 지으며 안명화와 여수린을 힐끔 바라보았다. 그는 음흉한 눈빛으로 말했다.“아주 예쁜 모녀네요. 잠시 뒤 저 자식을 해치우면 저 두 여자를 데리고 제 룸살롱으로 가야겠어요.”흑호 뒤에 있던 십여 명의 부하들이 크게 웃으며 음험한 눈빛으로 안명화와 여수린을 바라보았다.그들의 노골적인 시선은 안명화와 여수린의 옷 너머 그들의 맨몸을 보는 듯했다.“엄마, 어떡해요? 저 너무 무서워요!”여수린은 아직 대학교를 졸업하지도 못한 젊은 여자라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었기에 겁을 먹고 몸을 덜덜 떨면서 눈물을 흘렸다.안명화 또한 등골이 서늘했다. 그녀는 겁먹은 얼굴로 여수린의 손을 힘껏 잡으면서 그녀를 위로했다.“괜찮아. 걱정하지 마. 지금은 법치 사회야. 저 사람들은 우리에게 함부로 손댈 수 없어!”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진도훈을 바라보며 호통을 쳤다.“진도훈, 너 대체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녔길래 저런 인간들을 건드린 거야? 나랑 수린이 모두 너 때문에 큰일 나게 생겼어! 이런 망할 놈!”진도훈은 화가 치밀어올라 싸늘한 눈빛으로 흑호를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세상에는 건드리면 안 되는 사람들이 존재해. 그러니까 방금 한 말에 대해 사과해. 그리고 당신 부하들을 데리고 얌전히 떠나도록 해.”이곳이 길거리가 아니었더라면, 그의 등 뒤에 있는 여수린과 안명화가 겁먹을까 봐 걱정되지 않았더라면 진도훈은 흑호를 이미 백 번이고 죽였을 것이다.필부가 노하면 피가 멀리 튈 것이고, 천자가 노하면 시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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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죽으려면 혼자 죽어요!”성태영이 이하택에게 무례하게 굴자 흑호는 겁이 나서 몸을 움찔 떨며 성태영의 뒤통수를 후려쳤다.그런데 힘을 많이 쓴 탓에 성태영은 눈앞이 깜깜해지면서 바닥에 쓰러졌다.곧이어 흑호는 빠르게 이하택의 앞으로 달려가 그의 앞에 무릎을 꿇은 뒤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면서 애원했다.“어르신, 저는 저분이 어르신이 아끼는 분이신 줄 몰랐습니다.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흑호가 데려온 부하들은 안색이 창백하게 질린 채 넋이 나간 얼굴로 이하택을 향해 무릎을 꿇었다.그들 모두 교운시와 남강을 휘어잡고 있는 남강 어르신 이하택을 알고 있었다.지금 이 자리에 흑호가 아니라 전성당의 우두머리가 왔었어도 이하택의 앞에서 비굴하게 무릎을 꿇으며 굽신거려야 했다.안명화와 여수린은 겉으로 보기에는 인자한 노인 같아 보이는 이하택을 바라보며 저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특히 안명화는 조금 전 자신이 이하택을 향해 큰소리치면서 무례하게 굴었던 걸 떠올리고는 두 다리에 힘이 쭉 빠졌다.얼마나 무시무시한 사람이길래 흑호처럼 험상궂은 장정마저 저토록 겁에 질린 것일까?진도훈은 이하택이 자신을 대신해 나서자 잠깐 미간을 찌푸리면서 주먹을 푼 뒤 안명화에게 말했다.“어머니, 저희는 이만 가죠.”안명화는 당장 이곳을 벗어나고 싶었기에 여수린의 손을 잡고 빠르게 도망쳤다.“감사합니다, 어르신.”진도훈이 이하택에게 말했다.이하택은 자애롭게 웃으며 말했다.“별거 아닌데 뭘. 볼일 보러 가봐. 이놈들은 내가 대신 처리해 줄게.”“네. 그러면 부탁드리겠습니다.”진도훈은 고개를 끄덕인 뒤 빠르게 안명화와 여수린을 따라갔다....“여 대표님!”천우 그룹 회의실, 민서웅과 통화를 마친 하유성이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는 조금 전과 달리 굉장히 적극적인 태도로 여해온을 대했다.어쩔 수 없었다. 조금 전 민서웅이 그에게 여해온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과 아주 깊은 사이라고 했기 때문이다.민서웅의 말을 들어 보니 그는 자신의 은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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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여해온은 감격했다. 그녀는 이 모든 것이 이현오 덕분이라고 생각했다.이현오의 도움이 없었다면 10%의 이익을 추가로 얻기는커녕 프로젝트 자체를 따내지 못했을 것이다.“감사합니다, 하유성 부대표님. 감사합니다, 민 회장님.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여해온은 빠르게 사인한 뒤 하유성과 악수했다.두 사람은 그렇게 상투적인 말들을 주고받았다. 하유성은 아주 공손하게 여해온을 건물 입구까지 배웅해 준 뒤 그녀와 손을 흔들며 인사했다.차에 탄 방혜나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대표님, 저희 정말 프로젝트를 따낸 거예요? 게다가 수익 비율이 5대5라고요?”“그래요.”여해온은 기뻐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이 선생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천우 그룹과 그렇게 깊은 인연이 있다니, 정말 복덩이예요!”방혜나는 매우 흥분해서 감탄하며 말했다.“그러게요.”여해온은 감정을 추스른 뒤 말했다.“이번에 현오 씨에게 신세를 졌어요. 앞으로 이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할지 모르겠어요.”“간단하죠. 이 선생님은 대표님을 좋아하잖아요. 저도 다 눈치챘어요. 대표님은 쓸모없는 진도훈 씨와 이미 이혼하셨으니 이 선생님과 만나면서 은혜를 갚으면 돼요.”방혜나는 싱긋 웃으면서 장난스레 말했다.“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 나랑 현오 씨는 단순히 친구일 뿐이에요. 얘기 그만하고 운전이나 열심히 해요.”여해온은 방혜나를 향해 눈을 흘기며 그녀를 혼냈다.방혜나는 혀를 빼꼼 내민 뒤 입을 다물었다. 그녀는 차에 시동을 걸어 천우 그룹을 떠났다.여해온은 잠깐 생각에 잠기더니 갑자기 뭔가를 떠올렸는지 사색이 되어 서둘러 가방 안에서 휴대폰을 꺼냈다.회의실에서 하유성의 답변을 기다리던 여해온은 동생 여수린에게서 걸려 온 전화를 몇 번이나 끊었었다.일을 다 마치고 나서야 여해온은 비로소 안명화와 여수린이 아직도 진도훈을 붙잡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떠올랐다.여해온은 여수린에게 연락했고 여수린이 말했다.“언니, 드디어 전화를 받네. 어서 동성구 구청으로 와. 나랑 엄마가 진도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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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아침까지만 해도 진도훈과 여해온은 같은 침대에서 일어나 평소와 다름없이 각자 씻었다. 진도훈은 미리 아침을 준비했고 여해온은 아침을 먹은 뒤 출근했다.그러나 저녁이 되니 모든 게 달라졌다.진도훈은 여해온을 힐끗 본 뒤 빠르게 시선을 거두고 걸음을 옮겨 그녀를 지나쳐갔다.여해온과 이미 이혼을 선택했으니 굳이 그녀를 붙잡을 이유가 없었고, 다시 만나도 할 얘기가 없었다.“잠깐.”여해온이 미간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려 진도훈을 불러세웠다.“여기까지 왔으니 같이 올라가자. 나 방금 신분증 챙기러 왔는데 아직 못 찾았어. 집에 있는 물건들 대부분 도훈 씨가 정리했잖아. 올라가서 대충 한 번 얘기해줘. 그래야 앞으로 내가 도훈 씨한테 연락해서 뭐가 어디에 있냐고 묻지 않을 테니까.”진도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래.”결혼 생활 3년 동안 여해온은 사업에 열중했고 진도훈은 집안 살림을 했다. 그래서 여해온은 뭐가 어디에 있는지 잘 알지 못했다. 그녀는 진도훈이 모든 걸 챙겨주던 삶에 이미 익숙해졌다.오늘 저녁만 해도 그랬다. 퇴근한 뒤 밖에서 식사하지 않고 습관적으로 곧장 집으로 돌아간 것이다.예전에는 매일 진도훈이 저녁을 준비해 집에서 그녀를 기다려줬었다.그러나 오늘 집으로 돌아와 집이 텅 빈 걸 보고 나서야 늘 그녀를 위해 따스한 조명을 켜두던 사람이 더 이상 집에 없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이제는 그녀를 위해 정성 들여 저녁을 준비한 뒤 그녀가 집으로 돌아와 저녁을 먹기를 기다려주는 사람도 없었다.아주 잠깐이지만 여해온은 살짝 후회했다.그녀는 진도훈과 이혼하는 것이 옳은 선택인지 아닌지 확신할 수 없었다.그러나 여해온은 이내 그런 생각을 지웠다.진도훈과 이혼한 것은 한순간의 충동이 아니라 오랫동안 고민한 결과였다.적어도 지금은 그렇게 생각됐다.집으로 돌아간 뒤 진도훈은 집안의 물건들을 어디에 뒀는지 여해온에게 차근차근 얘기해 주었고, 여해온은 진도훈의 말에 따라 신분증과 혼인관계증명서 등을 찾아냈다.여해온이 집 안의 물건들을 다 찾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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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도훈 씨는 밖에서 다른 여자랑 데이트를 하고 있었고 깡패들이랑 싸우고 있었어.”진도훈을 바라보는 여해온의 눈빛에 실망이 가득했다.만약 진도훈이 그녀의 발걸음을 따라올 수 있었다면, 조금이라도 발전할 수 있었다면, 사업적인 면에서 그녀에게 관심과 도움을 줄 수 있었다면 여해온도 굳이 이혼을 선택하지는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진도훈은 발전할 생각이 전혀 없었고 심지어 바람까지 피웠으며 깡패들을 건드렸다.그와 비교하면 여해온을 걱정해 주고 사업적으로 성공을 거두게 해준 이현오가 몇 배는 더 나았다.진도훈은 잠시 침묵하다가 말했다.“어차피 이혼할 텐데 이제 와서 그런 얘기해 봤자 아무 의미 없어.”진도훈은 한때 자신의 집이었던 그곳을 떠나며 고개 한 번 돌리지 않고 말했다.“내일 아침 아홉 시, 구청에서 봐.”아파트에서 나온 진도훈은 택시를 타고 말했다.“골드팰리스로 가주세요.”운전기사는 깜짝 놀랐다. 진도훈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골드팰리스는 교운시에서 가장 비싼 아파트 중 하나로 평균 가격도 높을 뿐만 아니라 기본으로 수십억에서 수백억은 했다.운전기사는 조용히 피우고 있던 담배를 끈 뒤 창문을 닫고 에어컨을 틀며 최대한 좋은 환경을 제공해 주려고 했다.이내 차는 골드팰리스에 도착했는데 경비원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그들을 막았다.“안녕하세요. 이곳은 입주민이 탄 차량이 아니면 안으로 들어가실 수 없어요.”경비원이 택시 옆으로 걸어가서 정중하게 진도훈에게 말했다.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 재벌이나 유명 인사였다. 경비원은 진도훈을 본 적이 없지만 감히 그에게 말을 함부로 할 수도 없었다.이런 곳에서 경비원으로 일한다면 눈치도 빨라야 하거니와 태도도 굉장히 공손해야 했다.입주민 앞에서만 굽신거리면서 입주민이 아닌 사람들 앞에서는 거만하게 굴며 무례한 말을 하는 경우는 아마 흔해 빠진 드라마나 소설 속에서나 볼 법하지, 현실에서는 보기 드물었다.진도훈은 자신의 신분증을 꺼내 경비원에게 보여준 뒤 말했다.“저는 이곳 A동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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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아주 아름다운 톱스타와 우연히 마주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진도훈은 조금 어이가 없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으며 웃기기도 했다.심유하는 조금 맹한 데가 있고 많이 덤벙댔다.길을 걷다가 그와 부딪친 건 물론이고 물건을 줍겠다고 쭈그려 앉았다가 그와 머리까지 부딪쳤으니 말이다.겨우 몇 초 사이에 몇 번이나 부딪치는 것은 절대 쉬운 일은 아니었다.그러나 심유하가 너무 미안해하면서 사과를 하는 탓에 화를 내기도 쉽지 않았다.진도훈은 심유하를 대신해 선물들을 주워 그녀의 품에 쌓아 올린 뒤 한 마디 당부했다.“길을 걸을 때는 천천히 걸으세요. 너무 급하게 걷는 건 안 좋아요.”“죄송해요. 제가 항상 이 모양이라서요. 충고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앞으로 꼭 주의할게요.”심유하는 쑥스러운 듯 웃더니 연달아 고개를 끄덕이며 감사 인사를 했다.진도훈은 말없이 몸을 돌려 1번 별장 쪽으로 걸어갔다.그런데 몇 걸음 가지 않아 곧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별장에 누군가 있는 것처럼 조명이 환히 밝혀져 있었기 때문이다.그리고 그곳에 사는 사람은 아마도 심유하인 듯했다.진도훈이 자신의 집으로 걸어가자 심유하는 의심이 들어 경계하면서 말했다.“저기 선생님, 여기는 왜 오신 거예요?”“여긴 제 집입니다.”진도훈도 미간을 찌푸렸다.골드팰리스는 지어진 지 2년 정도 되었는데 남강 상회 회장인 오은찬이 운영하고 있는 회사에서 지은 것이었다. 오은찬은 이곳이 다 지어진 뒤 그 집을 진도훈에게 선물로 줬었다.그러나 진도훈은 줄곧 여해온과 함께 살았기에 그 집을 계속 비워뒀었다.그리고 진도훈은 여해온에게 자신의 또 다른 신분을 들키고 싶지 않아 관리사무소 직원에게 키를 맡겨두고 대신 집을 정기적으로 청소해달라고 부탁한 뒤 한 번도 그곳에 들리지 않았다.여해온과 이혼한 뒤 지낼 곳이 사라지게 되지 않았다면 그도 이곳에 집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리지 못했을 것이다.“뭔가 잘못 아신 거 아니에요? 여긴 제 집인데요?”심유하가 뒤로 몇 걸음 물러나며 경계하는 눈빛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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