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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부군의 형님: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한옥관 속 사내의 눈빛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귓가에서 부인과 동생의 거친 숨소리가 들렸지만 그는 한치의 동요도 보이지 않았다.내공을 운용했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아직 체내의 독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은 모양이었다.사실 그는 이미 오래전에 청력을 회복했고 자신을 구한 사람이 누군지도 알고 있었다.다만 그 사람이 왜 자신에게 이런 걸 들려주는지는 이해할 수 없었다.발소리가 들려오자 고준형은 스르르 눈을 감았다.“아씨, 조심하세요. 저는 밖에서 망을 보고 있을게요.”아민은 이 시간이면 본채에서 한창 남녀가 즐기고 있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소녀는 그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아씨는 참 대단한 분이야. 그런 상황에서 능숙하게 침술을 시전할 수 있다니.’유소영은 익숙하고도 차분하게 사내의 옷을 벗겼다. 사실 불편한 건 아민뿐이 아니었다.그녀 역시 본채에서 들려오는 낯부끄러운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았다.해서 앞으로는 침술 시간을 좀 더 늦춰야겠다고 생각했다.한편, 영향원.고 부인은 오랫동안 조용히 자리를 지키고 앉아 있었다.그녀는 손에 쥔 염주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장훈이는 여전히 청우각에 있느냐?”“예, 마님.”고 부인은 그저 한숨만 나왔다.전에는 임유정이 하루라도 빨리 회임하여 장남의 작위를 이어주기만을 바랐다.하지만 지금 가문에 차려진 작위는 오직 하나뿐, 고 부인은 망설일 수밖에 없었다.“나으리께서 언제쯤 돌아오시는지 혹시 들은 적 있느냐?”이 일은 필히 충용 후작과 상의해야 했다.“아마 이삼 일 안에 돌아오실 것 같습니다.”고 부인은 가슴이 갑갑해졌다.그래도 임유정이 아이를 가진다면 이는 후작부의 대를 잇는 것이니 좋은 일이라고 스스로 위안할 수밖에 없었다.작위 문제는 당장 급한 것은 아니니 조금 미뤄도 아무 상관이 없었다.이틀 후, 충용 후작이 돌아왔다.차남의 작위 승진이 무산된 일은 오는 길에 들어서 이미 알고 있었다.옷을 갈아입기도 전에 고 부인이 급히 그를 찾아왔다.“나으리, 이 일을 어찌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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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유소영은 평소처럼 담담하게 아민을 위안했다.“괜찮다. 우리보다 더 급한 사람이 있을 테니.”아민이 머리를 굴리더니 물었다.“임유정 말씀이신가요?”유소영은 문밖을 힐끗 보며 그녀에게 신호를 보냈다.“이만 물러가거라.”“예, 제가 당장 가서 소식을 흘리고 오겠습니다!”해시가 되어 고장훈이 난향원으로 왔다.문을 열고 들어서기도 전에 그는 창가에 비친 가녀린 그림자를 보고 마음이 동했다. 사실 용모를 따지면 유소영은 흠잡을 데 없이 아름다웠다. 그게 아니라면 아버지의 압박에 그렇게 쉽게 타협하고 그녀를 부인으로 받아들이지도 않았을 것이다.그러나 마음 속 억울함은 여전히 존재했다.그가 원하는 부인은 형수처럼 학식이 깊고 단아하며, 그와 함께 차를 마시고 창밖의 눈을 감상하며 시를 읊을 수 있는 여인이었다. 오로지 장사만 할 줄 알고 몸에서 동전 비린내 나는 여인은 그의 옆에 설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유소영의 존재는 매순간 그에게 당초 후작부가 빚진 십만 금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혼사를 받아들여야 했던 굴욕의 순간을 떠올리게 했다.고장훈은 다시 정신을 추스르고 안으로 들어섰다.이 시간에도 유소영은 여전히 장부를 보고 있었다.그러나 마치 시집을 읽는 것처럼 등불 아래에 아름다운 풍경을 이루고 있었다.고장훈은 가볍게 기침을 했다.그제야 유소영은 비로소 고개를 들고 그를 바라보았다.그녀의 입가에 담담한 미소가 피어올랐다.“장군.”고장훈은 가까이 다가가 그녀의 팔을 잡았다.“장부는 이제 그만 보고 이만 쉬러 가지!”유소영은 몸을 돌려 손길을 피했다.“하오나 저는….”고장훈은 그녀의 손에서 장부를 빼앗았다.“부인으로서 해야 할 일은 장부를 읽는 게 아니라, 부군인 나를 모시는 것이오!”아민이 밖에서 뛰어들어오며 소리쳤다.“장군, 아씨께서는 오늘 몸이 불편하십니다!”고장훈은 싸늘한 목소리로 아민을 꾸짖었다.“무례하다! 내가 부인과 취침에 들려는데 감히 뭐라고 끼어들어? 당장 밖으로 꺼지지 못할까!”오늘 밤, 그는 어떻게 해서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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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유소영은 노부인 앞으로 다가가 자세를 낮추어 노인의 어깨에 여우털 망토를 덮어드리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날씨가 추워져서 할머니의 건강이 걱정되어 문안드리러 왔습니다.”“그게 무슨 말이니?”노부인의 표정이 엄숙해졌다.노인은 임종을 앞둔 사람이고 친정도 세력을 잃었다.후작부에서 노인을 걱정하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친자손들마저도 마찬가지였다.서원 한구석에서 외로이 여생을 마칠 줄 알았건만, 소영이 시집온 이후, 이 어린 소녀가 자주 찾아와 약밥을 만들어 주고 이야기를 나누며 심심함을 달래주었다.노인이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모두 소영 덕분이었다.그래서 노인은 이 아이를 진심으로 좋아하고 더 이상 소녀에게 민폐를 끼치고 싶지 않았다.노부인은 그녀를 타일렀다.“한 살이라도 젊을 때 빨리 아이를 낳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난 신경 쓸 필요 없어.”유소영은 일부러 상심한 표정을 지었다.“할머니는 제가 싫으시나요? 제가 할머니의 곁에서 시중을 드는 것을 원치 않으시나요?”노부인이 다급히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냐? 나야 네가 매일 서원에 있기를 바라지….”이야기가 여기까지 이르자, 노부인도 갑자기 말투를 바꾸며 진지하게 물었다.“혹, 장훈이가 너를 속상하게 했느냐? 만약 그런 거라면 이 할미가 가만두지 않겠다!”유소영은 가슴이 먹먹해졌다.이 넓은 후작부에서 그녀를 진심으로 아껴주는 사람은 오직 눈앞의 노인뿐이었다.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비록 그녀가 바로 부인했지만, 노부인은 이미 모든 것을 꿰뚫어보고 자애롭게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알았다. 그럼 네가 원하는 만큼 이곳에 머무르렴.”영향원.뒤늦게 아들이 어젯밤 청우각에 들었다는 얘기를 전해 듣고 오늘 유소영이 서원에 문안드리러 갔다는 소식을 접한 고 부인은 한동안 격분을 참을 수 없었다.“당장 소영을 불러들여라!”‘멍청한 것, 사내 마음 하나 잡지 못해서 이 사단을 만들어?’한참 후, 유소영이 도착했다.고 부인은 그녀에게 자리를 권하지도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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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유소영이 떠난 후, 고 부인은 분노하며 책상을 두드렸다.“내 저년을 너무 얕보았구나!”행화골목에 있는 그 여인은 새로운 처소를 옮겨야 했다.심복 시녀가 말했다.“작은 마님이 노부인께 가신 것은, 동침을 원하지 않아서가 아닐까요?”고 부인은 냉소를 지었다.“어젯밤 장훈이 또 자기를 버리고 청우각에 갔으니, 심통이 난 것이지!”유소영이 고장훈을 연모하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렇게 큰 수고를 들여 후작부에 시집을 왔는데 어찌 장군 부인의 자리를 쉽게 포기하겠는가.오히려 청우각 쪽이 더 걱정되었다.“피임약은 제대로 탔겠지?”“안심하십시오, 마님. 모든 게 순조롭게 진행 중입니다.”“좋아.”고 부인의 눈빛이 차가워졌다.‘작위는 오직 내 아들의 것이어야 해!’그러나 청우각에 있는 임유정은 이미 그들의 계획을 간파하고 있었기에 약이 든 음식은 건드리지 않았다.춘화가 물었다.“부인, 음식은 바꿀 수 있지만, 만약 장군께서 이후에 부인과 동침을 하지 않는다면….”임유정은 냉소를 머금었다.“저쪽에서 약을 탔다면 우리도 똑같이 할 수 있지.”장훈은 원래 그녀를 연모하니, 조금만 정욕을 돋우는 향을 피우면 그가 참을 수 있을 리 없었다.이 정도의 흥을 돋우는 향은 몸에 해가 되지 않으니, 후작부가 추궁하더라도 그녀를 나무랄 수 없을 것이다.춘화가 물었다.“들리는 바에 의하면 작은 마님은 서원으로 가셔서 노부인의 병수발을 든다고 합니다. 혹 뭔가 꿍꿍이가 있는 걸까요?”임유정의 표정은 여유로웠다.“장훈은 아버님과 어머님의 압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던 거야. 그는 본래 유소영에게 시선도 주기 싫어하는 사람이야. 그게 아니라면 어젯밤 내가 아프다는 말을 듣자마자 내 처소로 달려와 밤새 돌봐주지도 않았겠지.”“유소영은 할머님께 아부하러 찾아간 게 분명해. 의지할 사람이 할머님뿐이니, 할머님을 이용해 장훈을 압박하고 동침을 하려는 게지.”“참으로 우습구나. 나이 든 할머니께서 무슨 힘이 있다고.”춘화도 고소한 표정을 지었다.“작은 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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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고장훈은 어젯밤 밤새 청우각에 머무르다가 날이 밝자 바로 군영으로 갔다.그는 저녁에 집에 돌아오면 난향원으로 가서 유소영에게 설명할 생각이었다.그런데 그녀가 서원에 병수발을 들러 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방 안, 사정을 모르는 노부인은 유소영에게 간곡히 말했다.“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 않니.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대화로 해결하렴. 늘 마음에만 담아두면 서로 간극만 벌어질 뿐이다.”“가서 장훈이랑 잘 이야기해 보렴.”유소영은 참지 못하고 끼어들려는 아민을 눈빛으로 제지했다.마침 고장훈이 안으로 들어섰다.“할머니.”노부인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이 할미는 노곤하니 이만 쉬러 가야겠구나.”이씨 어멈이 노부인의 의자를 밀고 안방으로 들어갔다.노부인이 자리를 뜨자, 고장훈도 더 이상 눈치 볼 필요가 없었다.그는 유소영의 팔을 잡고 분노한 어투로 따졌다.“서원에는 왜 온 거요?”‘내가 무슨 속셈인지 모를 줄 알고?’그는 유소영이 어젯밤 일로 앙심을 품고 할머니에게 고자질을 하러 왔다고 생각했다.그는 평소에 서원에는 거의 발을 들이지 않았지만 웃어른인 할머니가 이런 잡다한 일로 근심 걱정에 휩싸이길 바라지 않았다.고장훈은 목소리를 낮추어 그녀에게 경고했다.“할머니께서는 아직 형님이 돌아가신 줄도 모르시는데, 씨를 빌려 형님의 대를 잇게 하려는 우리의 계획을 아신다면 큰 소란이 일 것이오.”“이기적이게 굴지 말고 대국을 생각할 수는 없소? 당장 나와 함께 돌아가시오!”말을 마친 그는 억지로 유소영을 잡아끌었다.아민이 곧장 그의 앞을 가로막았다.“장군! 이러실 수는 없….”쾅!고장훈은 곧장 다리를 들어 아민을 걷어찼다.“무례한 것! 감히 장군인 내 앞을 막아?”그는 무예를 익힌 사람이고 전장에서 적을 벤 경험도 있으니 발차기가 결코 가볍지 않았다.아민은 배를 붙잡고 바닥에 쓰러졌다.유소영의 미간이 찌푸려졌다.아민이 걱정되기도 하고 고장훈의 난폭하고 무례한 행동에 화가 났다.이때, 한줄기의 검은 인영이 나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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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고장훈이 놀라며 물었다.“다… 당신이 설 신의의 제자라고?”유소영은 부인하지 않았다.“장군, 밤이 깊었으니 이만 돌아가십시오.”말을 마친 그녀는 노부인이 계신 안방으로 돌아갔다.고장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었다.여전히 믿기지 않았다.고작 상인의 딸에 불과한 유소영이 무슨 수로 설 신의의 문하로 들어간단 말인가?유소영은 검은 옷을 입은 호위가 여전히 자신을 따라오고 있음을 알아차리고 뒤돌아섰다.“너는 이름이 뭐지?”호위는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손을 저었다.아민이 말했다.“아씨, 벙어리인 것 같아요!”유소영의 눈빛이 깊어졌다.“잘 됐구나. 마침 사내가 필요하던 참이었으니.”아민이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아씨, 그런 무서운 생각은….”고장훈이 나쁜 사람이긴 하지만 소녀는 모시는 아씨가 타락하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유소영은 아민을 힐끗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너는 오늘 몸이 불편할 테니 먼저 방으로 들어가 쉬거라. 오늘 밤은 저 아이가 나를 따라 저쪽에 갈 거다.”청우각 지하실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아민은 그제야 이해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어제 유소영은 세자가 침을 맞은 지도 며칠 되었으니 서서히 감각이 돌아올 것이라고 말했다. 그 후로는 죽을 떠먹여야 하고 배변과 몸을 닦는 시중까지 들어야 했다.이런 일들은 여인인 아민이 할 수 없는 일이었다.아민은 벙어리를 힐끗 보며 물었다.“믿을만한 자일까요?”유소영이 이 벙어리를 믿기로 한 이유는 그가 노부인의 사람이기 때문이었다.세자는 노부인의 장손이니 벙어리가 그에게 해를 끼치지는 않을 것이다.청우각.임유정이 사람을 시켜 찾아가기도 전에, 고장훈이 먼저 찾아왔다.그녀의 아픈 몸이 걱정되는 것도 있지만 묻고 싶은 얘기도 있었다.“형수님, 몸은 괜찮으십니까?”임유정은 직접 물을 따라 그에게 주었다.“별일 아닙니다. 지난밤에는 돌봐줘서 감사했어요. 이 일로 동서가 토라지지는 않았겠죠?”고장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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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챙그랑!양지옥 반지가 바닥에 떨어졌다.꼼짝도 못하게 된 벙어리는 곁눈질로 한옥관을 힐끗 쳐다보았다.고준형은 관 속에 앉아 주먹을 입에 대고 살짝 기침을 했다.창백하고 수척한 얼굴이지만 선인 같은 기품이 흘렀다.이어 그의 쉰 목소리가 울려퍼졌다.“내가 깨어난 일은 비밀이다. 비밀을 발설할 시, 네 주인은 죽어.”그가 깨어난 일은 당분간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았다.누가 자신을 독살하려 했는지 밝혀야 하니 숨은 적을 놀라게 해서는 안 됐다.비록 자신을 구해준 유소영일지라도 완전히 신뢰할 수는 없었다.또 한편으로는 그녀를 이 일에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죽 맛이 좋군.’아마도 너무 오래 혼수 상태로 있어서 오랜만에 먹는 음식이라 그런지, 더욱 맛있게 느껴졌다.고준형은 남은 죽을 다 마시고는 지하실을 떠났다.한편, 서원.유소영은 돌아오자마자 잠자리에 들었다.이날은 아주 편하게 잠을 잤다.고준형 체내의 독이 해소되었으니 이제 생신연회 준비에 힘써야 했다.다음 날 아침.유소영은 초대장을 쓰고 하인들에게 각 저택으로 전달하라 지시했다.아민이 물었다.“아씨, 일곱째 숙부께서는 지방에 계신데 그분도 모셔올까요?”유소영은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물론이지. 사람이 많아야 흥겨운 법. 칠숙부는 다리가 불편하시니, 특별히 잘 보살펴 드리도록 해야 한다.”칠숙부는 고씨 집안에서 항렬이 가장 높은 어르신이었다.연회날에 그 어르신을 빼놓을 수 없었다.생신연회 준비로 유소영은 하루 종일 분주하게 보냈다.저녁이 되어서야 그녀는 비로소 긴장을 풀 수 있었다.“아씨, 목욕물은 다 준비되었으니 제가 욕조로 모실게요!”서원은 따로 욕실이 없어 방 안에 욕조를 놓고 병풍으로 가렸다.유소영은 바로 옷을 벗고 욕조에 들어갔다.따뜻한 물이 몸을 감싸니 잠시 모든 걱정과 근심을 잊게 해주었다.“아씨, 꽃잎 좀 가져올게요!”유소영은 목욕을 할 때 많이 까다로운 편이었다.꽃잎을 넣어 꽃밭에 누워 있는 듯한 기분을 즐기는 걸 가장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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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유소영의 맑은 눈에 예리한 빛이 스쳤다.그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청우각으로 가자!”아민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알 수 없어 고개를 갸웃거렸다.설마 세자에게 무슨 문제가 생긴 걸까?청우각, 지하실.유소영은 아민을 밖에서 망을 보게 하고 홀로 안으로 들어갔다.조금 전 자객의 눈빛은 그녀가 아는 사람과 매우 흡사했다.추측을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이곳에 온 것이다.안으로 들어가니 벙어리가 세자에게 죽을 먹이고 있었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등장에 벙어리가 당황하며 동작을 멈추고 지시를 기다렸다.유소영은 고준형이 있는 한옥관을 살펴보았다.관 속 사내는 시신처럼 소리 없이 평온하게 누워 있었다.창백한 얼굴과 핏기 한점 없는 입술, 그녀의 시선은 몇 초간 그에게 머물러 있었다.“세자께서 깨어나신 적이 있느냐?”벙어리는 무표정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유소영은 그가 지금 모시는 주인이니 진실을 숨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세자는 만약 사실을 말하면 주인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그는 이런 위험을 무릅쓸 수 없었다.유소영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어 그녀는 직접 손을 뻗어 고준형의 맥을 짚어 보았다.맥박으로 보아 완전히 회복된 것은 아니니, 이론상으로는 깨어날 수 없었다.만약 그가 무공이 뛰어나 내공으로 맥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면 모를까.그녀의 시선이 그의 팔로 떨어졌다.자객이 그녀를 위협했을 때, 피 냄새가 진하게 났고 손목이 가볍게 떨리고 있었으니 아마 팔에 부상을 입었을 것이다.벙어리는 조용히 그 자리에 서서 이유 모를 불안감에 긴장한 눈길로 세자를 응시했다.더 이상 숨길 수 없을 거라 생각했을 때, 그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세자를 잘 보살피거라.”그 말을 끝으로 그녀는 자리를 떴다.벙어리는 아무도 들을 수 없게 살며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한옥관 안, 고준형이 눈을 떴다. 그의 입가에는 피가 맺혀 있었다.오늘 밤 조사를 하러 나갔었는데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몸이 통제를 벗어나다 보니 상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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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유소영은 잔잔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에게 말했다.“연회 준비를 해야 해서 이만 가봐야겠군요. 형님도 건강 잘 챙기세요.”그녀가 자리를 뜨자, 임유정은 곧바로 시녀의 따귀를 때렸다.“네가 말했지?”춘화는 겁에 질린 얼굴로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아니에요, 부인. 제가 어찌 감히 부인을 배신하겠습니까?”임유정은 그녀가 감히 그럴 리 없다고 여기며 친히 그녀를 일으켜 세웠다.“그냥 물어본 건데, 뭐 하러 무릎까지 꿇어? 네가 아니면 다른 녀석이겠지. 확실하게 조사하거라.”“예, 부인.”서대영.고장훈은 몹시 갑갑했다.이번 달 군량미가 이미 며칠째 지연되고 있었다.군량미는 호부에서 지급하지만, 워낙 분배하는 양이 많다 보니 누구를 먼저 주고 누구를 나중에 줄지는 역시 인맥에 달려 있었다.그들의 서대영이 냉대 받는 것은 호부가 그들을 소홀히 하고 있다는 뜻이었다.고장훈은 이해할 수 없었다.‘이럴 수는 없어. 승상의 면목을 봐서라도 호부가 우리에게 이렇게 태만할 수는 없어!’그는 호부에 독촉하러 사람을 보냈지만 다들 만남을 피할 뿐이었다.고장훈은 갑자기 달라진 격차가 낯설었다.그가 개선하고 돌아왔을 때는 그에게 아첨하고 추켜세우던 관료들이었다. 당시의 형님과 비교해도 절대 뒤처지지 않았다.그런데 지금은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다.밤이 되자 고장훈은 터덜터덜 저택으로 돌아왔다.그는 청우각에 가지 않고 난향원 서재에서 잠을 청했다.호부의 냉대는 그의 결심을 더욱 확고하게 만들었다.‘위로 올라가야 해. 후작부의 작위를 이어받아서 더 높은 자리로 가야 해.’서원.노부인이 잠든 후, 유소영은 별채로 가서 장부를 살폈다.후작부의 점포는 경영 부실로 모두 적자였다.두툼하게 쌓인 장부를 보고 있자니 아민은 아씨가 안타까웠다.“이렇게 많은 걸 언제 다 보겠어요. 마님은 정말 나쁘네요. 자신의 혼수에 포함된 점포까지 억지로 끼워 넣다니!”유소영은 정신을 집중하며 빠르게 주산을 두드렸다.갑자기 그녀의 얼굴빛이 차가워졌다.그녀는 곧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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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그래서 유소영이 시집온 다음 날에 고 부인은 갖은 핑계를 대어 그녀의 혼수품을 봉인했던 거였다. 처음부터 그녀는 며느리의 혼수를 차지하고 마음대로 쓸 생각이었던 것이다.아민은 치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아씨, 제가 바로 청우각에 가서 혼수품을 확인할게요!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반드시 그 할망구가 배상하게 해야 해요!”“멈춰!”유소영이 아민을 불러세웠다.아민은 가끔 너무 충동적일 때가 있었다.아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아씨, 이대로 아씨의 혼수품이 낭비되는 것을 내버려둘 셈인가요?”유소연은 한치 동요도 없는 평온한 얼굴로 말했다.“네가 봉인 딱지를 떼버리면 나중에 무슨 근거로 따지겠다는 거니?”아민도 그 이치를 알고 있었다.상자 위 봉인이 한번 움직이면 누군가 건드렸다는 증거가 되고 그때가 되면 고 부인은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오히려 역으로 유소영을 물고 늘어질 수도 있었다.그러나 아민은 아씨의 혼수품이 도대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다.유소영에게 꾸지람을 듣고 나서, 아민은 빠르게 진정되었다.“아씨, 이제 어떻게 해야 하죠?”유소영은 장부들을 바라보며 말했다.“아직 확실한 증거는 없어. 하루 이틀에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제대로 활용하는 거지. 예를 들어… 그 혼수품으로 집안 살림의 대권을 바꾸는 것.”아민은 이해할 수 없었다.집안 살림의 대권은 고 부인의 손에 있고 설령 넘겨준다 해도 세자 부인에게 먼저 돌아가지, 둘째 며느리인 유소영에게 돌아갈 리 없었다.‘아씨, 대체 뭘 하려는 거죠?’유소영은 장부를 가지고 영향원을 찾았다.고 부인은 기뻐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유소영이 점포들의 관리를 맡은 후, 보름도 안 되어 매일 짭짤한 수입이 들어왔고 적자 장부가 메워지고 대량의 수익까지 생겼다.“점포 관리를 참 잘했구나. 계속 지금처럼만 하거라.”유소영은 온순하게 답했다.“어머니께서 점포들을 이 며느리에게 맡겨 주셨으니, 당연히 전력을 다해야지요.”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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