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뒤늦은 사랑은 대표님을 미치게 해: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고성그룹에서 생산력의 질적인 제고를 위해 산하에 있는 공장의 작업복을 새로 맞추기로 했어요. 다음 달에 그 프로젝트의 입찰이 열릴 거예요." "그건..." 온지은은 어색하게 웃었다. "고은택 씨, 솔직하게 말씀드리자면 저희 스튜디오에는 저와 제 친구 두 사람뿐이에요. 우리 두 사람의 힘만으론 작은 공장의 작업복을 만드는 일조차 버거울 거예요." 온지은과 유지민은 직접 디자인하고 재단한 옷을 그들의 사이트에서 판매하는 게 다였다. 사이트가 유명하지도 않았고 주문량도 많지 않았기에 두 사람만으로도 충분했던 것이다. 아직 대량 생산은 시도해 본 적도 없었다. "괜찮아요. 디자인만 해준다면 그 옷을 대량 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연결해 줄 수 있어요. 물론 작업복 디자인의 저작권만 팔 수도 있고요. 두 사람의 스튜디오는 아직 걸음마를 떼는 시기이니 천천히 나아가는 게 더 좋겠죠." "하지만 이렇게 작은 스튜디오도 고성그룹의 입찰에 참여할 자격을 얻을 수 있나요?" "고성그룹은 모두를 평등하게 심사하고자 노력할 겁니다." 사실 온지은은 은근히 기대하고 있었다. 디자이너로서 새로운 도전이나 마찬가지였으니. 하지만 기대 뒤엔 불안이 따랐다. 고은택이 왜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하는 걸까? 디자이너가 부족해서? 절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유가 뭐지? 그의 태도를 보아하니 임태란이 과거 그에게 공사를 치려고 했다는 사실은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고은택 씨, 왜 저를 도와주시는 거죠?" 그녀는 진심으로 의문을 던졌다. "당신과 친구로 지내고 싶어서요." 고은택은 웃으며 말했다. "이 일을 통해 우리 사이에 더욱 많은 접점이 생길 테니까요." "그럼 저는 낙하산인 건가요?" "아니죠." 고은택은 진지하게 설명했다. "고성그룹의 일은 저 혼자 결정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당신 때문에 고성그룹의 임원들을 뒤흔들고 싶지도 않고요. 다만 당신에게 이런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것뿐이에요. 그 기회를 따낼 수 있을지 없을지는 당신의 실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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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그의 말은 무척 모욕적이었다. 하지만 온지은은 화를 내는 대신 덤덤하게 물었다. "윤이는 이미 하연수 씨를 엄마라고 생각하잖아요. 하연수 씨도 윤이에게 잘해주고. 저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 "몇 번이나 설명해야 해. 하연수는 그저 윤이의 가정교사일 뿐이야. 윤이가 하연수를 양엄마라 부르는 건 연희가 재미로 가르친 거고." "대표님, 본인은 그 말을 믿으세요?" 온지은은 냉소를 지었다. "아가씨가 하연수 씨를 양엄마라 부르라 윤이에게 가르쳤다면, 하연수 씨와 윤이를 데리고 승마를 하고 불꽃놀이도 보고 쇼핑도 한 건... 그것도 아가씨가 가르친 건가요? 분명 하연수 씨는 윤이의 선생님이니 하루 종일 곁에 붙어있는 게 당연하지 않냐고 하겠죠. 하지만 제가 하고 싶은 말은 그거예요. 저에게 일일이 해명할 필요 없어요. 전 하연수 씨에게 고마워하고 있어요. 윤이에게 윤이를 사랑하는 새엄마가 생기기를 바라기도 하고요." 온지은은 고개를 쳐들고 박시현과 같은 높이에서 그를 바라보려 애썼다. "대표님, 이혼 얘기는 장난이 아니에요." 그는 키가 너무 컸다. 그녀보다 족히 20센티는 컸던 것이다. 온지은이 아무리 고개를 빳빳이 쳐들어도 여전히 그와 같은 기세로 마주하기가 힘들었다. 오히려 박시현이 그녀의 뒷덜미를 잡을 빌미를 만들어 주었다. 박시현은 살짝 힘을 주어 온지은을 품에 끌어당겼다. 그가 고개를 숙이자 박시현의 싸늘한 눈빛이 화가 잔뜩 나 있는 그녀의 작은 얼굴에 닿았다. "이렇게까지 질투를 하다니. 이미지 따위 신경 쓰지 않는 거야?" "질투하는 게 아니에요. 읍..." 이어지는 말은 갑작스러운 남자의 키스에 삼켜졌다. 익숙한 숨결이 갑작스럽게 그녀의 안을 침범해 들어왔다. 영민하게 움직이는 그의 혀끝과 함께. 여전히 강압적인 태도였다. 온지은은 순간 숨조차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 화가 난 나머지 눈물이 흘러내릴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짓이지? 새 애인이 생겼으면서. 그랬으면서 아무런 존재감도 없는 전 부인을 농락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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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하긴, 같은 재벌가의 사람이었으니 서로 모를 리가 없었다. 온지은은 고은택과의 관계를 설명하기도 귀찮아졌다. 그녀는 박시현이 뒤돌아 차 문을 여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온지은은 담담하게 박시현을 불렀다. "박시현 씨." 차 문을 열던 박시현이 움직임을 멈추더니 고개를 비스듬히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후회하는 건가?" "시간 날 때 함께 이혼 등기하러 가요." 부영그룹의 후계자인 박시현은 어딜 가나 사람들의 추앙을 받았다. 그동안 온지은 역시 그에게 감히 불경하게 대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의 온지은은 달랐다.마치 무엇에 홀리기라도 한 듯이 자꾸만 그에게 이혼을 재촉하고 있었다. 이대로 놔두다간, 세상을 살아갈 체면조차 잃게 될 것이다. 남몰래 입꼬리를 끌어올린 그가 싸늘하게 대답했다. "언제든지." "좋아요. 내일 9시 구청에서 만나요." "..." 빠른 걸음으로 멀어지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박시현은 화가 나 차 창문을 부술 뻔했다. ...다음 날. 온지은은 아침 일찍 구청에 도착했다. 그녀는 망설이지도 않았고 후회도 없었다. 그저 조용히 의자에 앉아 박시현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온지은의 휴대폰이 울렸다. 하연수의 문자였다. [온지은 씨, 저와 시현 오빠가 어제 밤새 윤이의 곁을 지켰어요. 이제 열이 내렸으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돼요.] 그 아래로 하연수와 박시현이 함께 박윤에게 약을 먹이는 사진이 첨부되어 있었다. 열이 올라 작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박윤은 조금도 불쌍해 보이지 않았다. 온통 사랑으로 둘러싸인 아이였다. 그러니 불쌍해 보일 리가 없었다. [고생하셨어요.] 그렇게 답장을 보낸 그녀는 휴대폰을 닫았다. 갑자기 여자의 감탄 섞인 비명이 들려왔다. "어머나, 너무 잘생겼다. 저 사람 결혼하러 온 걸까 이혼하러 온 걸까?" 여자의 곁에 있던 남자가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 "뭐가 잘생겼어? 내가 보기엔 그저 그런데." "너 그거 질투야." 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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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네." "이혼 조정을 원하시나요?" "아니요." 온지은이 답했다. 박시현은 반대하지 않았다. 직원은 별다른 질문 없이 온지은이 건네주는 신청서를 확인한 뒤 도장을 꽝꽝 박았다. 그 붉은 색의 도장은. 마치 곧바로 온지은의 심장에 찍히는 것 같았다. 가슴이 욱신거렸다. 저 도장으로부터 결혼 생활의 시작과 끝이 결정되었다. 그녀는 제지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유리창에 비춘 남자의 모습을 보고 있었다. 남자는 꼿꼿한 자세로 한 손을 주머니에 찔러 넣은 채 그녀의 옆모습을 뚫어져라 보고 있었다. 그 역시 막지 않았다. 그녀가 그의 호적에 올라와 있는지 아닌지는 박시현의 마음속 온지은의 존재처럼 별로 중요할 것도 못 되는 일이었다. 시간이 멈춘 것 같았다. 오직 구청 직원만이 맡은 바 임무를 다해 열심히 등기를 처리하고 있었다. 처리가 거의 마무리되어 갈 때쯤 문밖에서 갑자기 날카로운 욕지거리가 들려왔다. "온지은, 누가 감히 이혼하라고 했어?" 온지은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등을 돌리자마자 상대방이 그녀의 뺨을 때렸다. 예고도 없이 뺨을 맞은 온지은은 휘청거리며 바닥에 쓰러졌다. 팔꿈치가 먼저 바닥에 닿았고 아픔이 밀려왔다. 온지은이 몸을 일으키려던 그때. 임태란이 달려들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기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년. 여기까지 이혼을 하러 와? 정신 나갔어?" 임태란이 휘둘러대는 탓에 귀가 먹먹해졌다. 보청기가 바닥에 떨어졌다. 그녀는 고통에 온몸이 떨렸지만 여전히 몸부림치며 반항하고 있었다. "엄마, 이건 제 인생이에요. 저도 제 인생을 선택할 권리가 있다고요!" "네 인생이라고? 네 성씨가 뭔지 똑똑히 봐. 감히 네 인생이라고 말할 자격 있어?" "온씨 가문이 없었다면 넌 벌써 몇 번이나 굶어 죽었을 거야!" 임태란은 말을 하면 할 수록 화가 더 치밀어 올라 손을 들어 또다시 그녀를 내리치려 했다. 직원들이 달려와 그런 임태란을 말렸다. "이 봐요, 폭행은 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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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그게 바로 계급이었다. 온지은과 박시현 사이의 계급. 온지은은 씁쓸하게 생각에 잠겼다. 박시현에게 아부를 마친 임태란은 표정이 싹 바뀐 채 온지은을 잡아 일으켰다. "따라와!" 온지은은 차에 강제로 태워졌다. 반항도 해보고 거절도 해 보았다. 하지만 임태란에게 휘둘리는 운명을 피할 수가 없었다. 그녀는 차 한 쪽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웅크리고 앉아 임태란이 퍼붓는 온갖 욕지거리를 듣고 있었다. 온지은은 차가 멈추고 임태란에게 끌려 나오고 나서야 도착지가 병원이라는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임태란은 그녀에게 설명하기도 귀찮은지 곧장 그녀를 질질 끌고 아버지의 병실로 갔다. 온지은을 아버지의 병상 앞에 패대기친 그녀가 욕을 늘어놓았다. "이혼? 두 눈 똑바로 뜨고 네 아버지를 봐. 그 이혼 감히 할 수 있겠어?" 온지은은 강제로 아버지의 병상 앞에 무릎을 꿇었다. 몹시 야윈 아버지의 얼굴을 보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아버지가 깨어 계셨다면 분명 그녀의 모습을 보며 마음 아파했을 거라 믿었다. 이 세상에서 그녀를 사랑하는 사람은 아버지뿐이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녀를 가장 먼저 버린 사람이기도 했다. 임태란은 두 손으로 옷매무시를 정리하고는 온지은을 흘겨보았다. "네 아버지는 너 때문에 교통사고를 당했어. 그를 구하지 못한다면 너 역시 편하게 살지는 못할 거야." 말을 마친 임태란은 하이힐을 또각거리며 병실을 빠져나갔다. 허영이 심하고 꾸미기를 좋아하는 임태란은 병원에 오래 있는 건 딱 질색이었다. 그동안 온수호는 줄곧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평소에는 간병인이 그를 돌봐주었고 온지은은 매주 그를 찾아와 그와 대화를 나누고 안마를 해주었다. 일주일 동안 느낀 고통과 기쁨, 서러움과 즐거움을 전부 그에게 들려주었다. 온지은의 마음속에 아버지는 항상 존재했다. 그녀는 단 한 번도 아버지를 포기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병 때문에 온기라곤 없는 결혼에 묶여 있고 싶지도 않았다. 온지은은 자신의 능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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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온지은은 그 소리를 들었다. 하지만 모른 척할 생각이었다. 박시현의 집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었다. 자신의 결심을 알려주기 위해 온지은은 보청기를 빼버렸다. 그제야 세상이 조용해졌다. 비에 둘러싸인 그녀의 뒷모습이 너무 고집스러웠던 나머지 임태란이 이를 악물었다. 온지은은 유지민을 찾아갔다. 비에 흠뻑 젖은 온지은의 모습에 유지민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왜 이래? 이혼은 기쁜 일인데 왜 이 꼴이 된 거야?" "지민아..." 오는 길 내내 참고 있던 눈물이 드디어 터져 나왔다. "나 너무 추워. 안아주면 안 돼?" 멍해 있던 유지민은 급히 두 팔을 벌려 온지은을 안았다. 유지민은 젖은 온지은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괜찮아, 괜찮아. 내가 있잖아. 하늘이 무너져도 내가 버티고 있을게." 온지은은 유지민이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감동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유지민은 지금 그녀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안식처이자 따듯함이었다. "들어와서 따듯한 물로 목욕하고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어. 감기 걸리겠다." 유지민은 그녀를 안으로 들였다. 유지민의 도움을 받으며 온지은은 따듯한 샤워를 하고 뜨끈뜨끈한 국수를 먹은 뒤 따듯한 이부자리에 몸을 뉘었다. 그제야 조금 진정이 되는 것 같았다. 귀는 여전히 윙윙거리며 아파왔다. 가방에서 약을 꺼내 먹은 온지은은 그제야 서서히 잠에 들었다. 온지은은 또다시 그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온지은은 박윤을 데리고 꽃밭에서 놀고 있었다. 박윤은 다정하게 그녀를 안고 엄마라 불러 주었다. 화면이 바뀌고 아버지가 곁에서 자애롭게 온지은을 바라보고 있었다. 박윤이 꼭 마치 그녀의 어린 시절처럼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말하면서. 하지만 곧. 박시현이 돌아왔다. 그는 박윤을 안고 곧장 떠나려 했다. 그 뒤를 쫓아간 온지은은 그의 옷깃을 잡으며 아들을 어디로 데려가는 거냐 물었다. 박시현은 혐오스럽다는 듯 그녀를 돌아보며 말했다. "귀머거리 주제에 윤이 엄마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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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3년 동안. 박시현이 온지은을 데리고 본가로 가는 일은 김혜순 때문에 아주 드물었다. 하지만 제삿날에는 꼭 그녀를 데려가곤 했다. 그녀를 데려가면 친척들이 알게 모르게 그가 귀머거리와 결혼했다고 수군거리며 비웃었다. 하지만 데려갈 수밖에 없었다. 온지은은 그의 아내였고 박윤의 어머니였다. 예의범절에는 문제가 생기지 말아야 했다. 제삿날이었기에 본가는 무척 시끌벅적했다. 김혜순은 박윤을 안고 친척들과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그리고 하연수는 곁에서 박윤을 돌보고 있었다. 박시현이 들어오는 것을 본 김혜순은 먼저 그의 뒤를 확인했다. 온지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기분이 훨씬 나아졌다. 그녀는 웃으며 친척들에게 말했다. "우리 시혁이는 일이 너무 바빠서 본가로 오는 날에도 지각을 하는 군요. 지난달 경성으로 할아버지를 보러 갔을 때 할아버지께서 해외시장까지 전부 시혁이에게 맡기겠다 말을 하지 뭐예요. 바빠서 어디 살겠냐고요!" 그녀는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하지만 친척들에게 그건 자랑처럼 들렸다. 재벌가들은 서로 비기기를 즐겼다. 어른들은 우직하여 별달리 말을 얹지 않았다. 하지만 젊은이들은 자기 잘난 멋에 사는 사람들이었다. 신분, 지위가 본인보다 대단할 뿐만 아니라 잘생기기까지 한 박시현을 본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질투가 샘솟았다. 하여 일부러 트집을 잡았다. "형님, 왜 혼자 오신 겁니까? 형수님은 함께 오지 않았어요?" "좀 아파서 올해는 오지 않았어." 박시현은 덤덤하게 걸어가 소파에 앉았다. 그는 도우미가 가져다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형수님이 왜요? 어디 불편하세요?" 누군가 일부러 물었다. 그리고 또 누군가 일부러 대답했다. "뭘 묻고 그래? 귀가 불편하시겠지. 아, 넌 막 졸업하고 귀국해서 형수님의 귀가 안 들린다는 사실 모르지?" "귀가 안 들린다니요? 귀머거리인가요?" "그래. 어제도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형수님을 보았는 걸. 귀에서 피가 엄청 나더라고." "세상에. 정말 아프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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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시현 오빠, 왜... 왜 그래요?" 사람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얼른 손을 내저었다. "오빠, 그런 뜻은 아니었어요. 저희는 그저... 흘러가듯이 대화를 나눈 것뿐인데." 이상했다. 작년과 재작년에도 박시현의 앞에서 온지은의 흉을 보았지만 박시현이 그들을 제지한 적은 없었다. 심지어 그는 친척들이 온지은을 부려 먹게 내버려두었다. 한번은 사촌 여동생 중 하나가 밀치는 바람에 온지은의 보청기가 떨어졌었다. 그들은 그녀를 사람들 가운데로 내몰았고 친척들이 그녀를 비난하도록 선동했다. 그 모습을 보았을 때도 박시현은 그저 담담하게 귀띔만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 "너무 지나치게 괴롭히진 마." 조금의 책망도 없었던 것이다. 기분 나빠하는 티도 내지 않았다. 하지만 올해는 왜... 가문을 이끄는 것과 다름이 없는 박시현이 화를 내자 친척들은 겁을 먹었다. 박시현은 말이 가장 많았던 사촌 여동생 앞으로 다가갔다. 떡 벌어진 그의 덩치와 타고난 압박감에 사촌 동생은 놀라 다리가 후들거렸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카펫에 넘어지고 말았다. "시현 오빠, 저는..." "어디 쪽 친척이지?" 박시현은 나른한 어조로 물었다. 하지만 그녀가 대답하기도 전에 박시현이 다시 말을 이었다. "맞아, 온지은은 가문도 별로고 귀까지 들리지 않지. 하지만 그녀는 박시현의 아내고 그 아들의 이름은 박윤이야." 사촌 여동생의 예쁘장한 얼굴이 순식간에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김혜순은 잔기침을 하며 박시현에게 눈치를 주었다. "시현아, 그 아이는 네 고모의 양녀야. 겁주지 마." "양녀." 박시현은 의미심장하게 그 단어를 반복하고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제사 천천히 올리세요. 저는 먼저 가보겠습니다." "시현아, 아직 제사 시작하지도 않았는데 어디로 간다는 거야?" 김혜순이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박시현은 고개조차 돌리지 않았다. "윤이가 저를 대신하면 되죠." "허튼소리!""친척도 아닌 이도 제사를 지내러 오는데. 그건 괜찮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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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난 아니야. 난 고은택 씨를 오늘 처음 만나는걸." 고은택은 웃으며 말했다. "그걸 꼭 말해줘야 아나요? 여자들은 이런 거 다 좋아하잖아요." 온지은은 유지민이 반쯤 먹어버린 케이크를 보았다. 유지민이 좋아하는 바닐라 맛이었다. 고은택의 말이 맞는 듯했다. 그는 그저 여자들이 좋아하는 맛을 전부 골라 담았을 뿐 다른 뜻은 없는 것 같았다. 온지은은 처음으로 공장에 갔고 처음으로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과 직접 면담을 나누었다. 그녀는 진지하게 직원들의 건의 사항과 요구를 노트에 적었다. 직원들은 대부분 그녀와 나이가 비슷했다. 고은택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온지은에게 아주 친절했고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그녀를 이상하게 보지도 않았다. 비웃음에 익숙해져 있었던 그녀는 오히려 이 상황이 어색했다. "사실 악한 사람은 많지 않아요. 환경만 바꾸어도 다른 경험을 할 수 있죠." 전에 온지은은 그 말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오늘은 그 말을 믿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억지로 박시현의 세상에 비집고 들어가 살았던 몇 년 동안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온지은을 싫어하고 비웃었다. 그녀를 대하는 태도 역시 쌀쌀맞았다. 점차 온지은은 장애가 있는 사람은 행복해서는 안 된다는 착각에 빠지고 말았다. 고은택의 말이 맞았다. 어울리지 않는 곳에 억지로 비집고 들어갈 필요가 없었다. 그녀에게 친절한 사람들과 어울리면 되는 것이었다. 한눈을 판 사이. 온지은은 실내 적재 트럭에서 화물이 미끄러져 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은택이 그녀를 잡아당겼다. "조심해요." 화물이 떨어져 고은택의 몸을 덮쳤다. 갑작스럽게 고은택의 품에 안겨 위험을 피한 온지은은 놀라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녀는 얼른 그를 보며 걱정스럽게 물었다. "고은택 씨, 괜찮으세요?" 화물을 운반하던 직원이 얼른 달려와 사과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화물을 제대로 묶지 않았어요." "괜찮아요." 고은택은 팔에 난 긁힌 상처를 만지며 직원에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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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그가 여기까지 찾아온 이유는 모르겠지만. 불필요한 화를 피하기 위해 온지은은 예의 바르게 박시현에게 인사를 건넸다. "대표님, 여긴 어쩐 일로 찾아오셨어요?" "박 대표님, 여기서 뵙네요." 고은택 역시 웃으며 그에게 인사를 건넸다. 두 사람 모두 그를 '대표님'이라 불렀다. 마치 고은택과 온지은이야말로 한 쌍이라는 듯이. 박시현은 심지어 고은택의 미소에서 도전적인 의도를 읽어낼 수 있었다. 그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고은택은 쳐다보지도 않은 그가 담담하게 온지은에게 말했다. "지나가는 길." 말을 마친 그는 차 문을 열고 들어가 앉았다. 이혁수는 온지은을 보고 어색하게 웃은 뒤 따라서 차에 올랐다. 곧 시동이 걸리고 차는 빠른 속도로 그곳을 벗어났다. 그녀의 집 앞을 지나가는 길이었다고? 온지은은 듣자마자 그것이 거짓말임을 알아차렸다. 온지은이 박씨 가문의 제사에 참여하지 않았기에 지금쯤 화가 잔뜩 나 있을 것이다. 아마도 화풀이를 하러 찾아온 거겠지. 고은택이 박시현을 쫓아준 것에 감사를 표해야 할 지경이었다. 무슨 말이 하고 싶은지 자꾸만 움찔거리는 고은택을 본 온지은으 먼저 입을 열었다. "고은택 씨, 집에 도착했어요. 오늘 너무 고마웠어요." "별말씀을요." 박시현이 떠나간 쪽을 힐끗 쳐다본 고은택은 결국 입을 열었다. "지은 씨, 박 대표님과 언제쯤 이혼할 생각인가요?" "그가 사인해주기만 기다리고 있어요." "대표님께서 이혼을 원하지 않는 건가요?" 온지은은 방법이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재벌가 출신이라 결혼이든 이혼이든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네요." 그게 아니었다면 박시현은 그날 임태란이 구청에서 소란을 피우게 내버려두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는 나중에 깨닫게 되었다. 박시현은 이혼을 원하지 않았다. 다만 서로 모르는 사람처럼 지내던 예전의 삶으로 돌아가고 싶을 뿐이었다. 당연하게도 지금은 요구사항이 하나 더 늘어 있었다. 아내인 온지은이 박시현이 곁에 첫사랑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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