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뒤늦은 사랑은 대표님을 미치게 해: Chapter 1 - Chapter 10

30 Chapters

제1화

병원. 온지은은 갓 받아온 검사 결과지를 손에 꼭 쥔 채 TV 앞에 서 있었다. 결과는… 온지은의 난청은 낫기는커녕 더욱 심각해진 상태였다. 굳어있는 그녀와는 다르게. TV 속 여자는 화려한 무대 위에서 막힘없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었다. 그녀의 움직임 하나하나에서 지성과 우아함, 아름다움이 드러나고 있었다... 무대 아래에 앉아 있는 고귀한 남자는 온지은의 남편인 박시현이었다. 그와 결혼한 지도 3년. 이토록 다정한 눈빛으로 한 여자를 바라보는 남편의 모습은 처음이었다. 그녀의 마음은. 심연으로 추락하고 말았다. 곁에서 그녀의 어머니인 임태란이 투덜거리며 그녀를 나무랐다. “왜 점점 더 심각해지는 거야? 약은 제때 챙겨 먹고 있어? 재활은 제대로 하고 있고? 박시현의 첫사랑이 네 머리 꼭대기까지 기어오르는 데 위기의식조차 느끼지 못하는 거야? 계속 귀머거리로 지낸다면 박씨 가문에서 쫓겨나고 말 거라고! 네가 박시현과 이혼한다면 온씨 가문은 어떡해? 네 아빠는 어떡하고? 말 좀 해 봐…” 임태란이 그녀를 밀쳤다. 하지만 온지은은 아무런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사과만 할 뿐이었다. “실망하게 만들어서 죄송해요.” “미안하다는 말은 듣기도 싫어. 얼른 완치되어서 박씨 가문 사모님 자리를 단단히 지키란 말이야!” “하지만 전 이미 최선을 다했어요.” 온지은은 의사 선생님의 권유에 따라 꼬박꼬박 많은 양의 약을 챙겨 먹고 있었다. 재활 치료도 열심히 받고 있었다. 하지만 난청은 나아질 기미는커녕 점점 더 심해지고 있었다. 그녀는 점점 처참해지고 있었다. 반대로 박시현의 첫사랑은 점점 멋진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다. 어쩔 도리가 없었다. TV 속 화면은 스테이지 뒤로 옮겨갔다. 하연수를 둘러싼 기자들이 그녀와 인터뷰를 하고 있었다. “하연수 씨, 왜 귀국하신 겁니까?” 하연수는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찬란하게 웃었다. “한 사람 때문에 돌아왔어요. 아쉬움을 남기기도 싫었고요.” 그 사람이 누굴까. 모녀는 아주 잘 알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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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온지은은 박시현에게 어젯밤 어디 있었는지 묻지 않았다. 박시현 역시 말하지 않았다. 마치 헤드라인 속 그와 하연수의 스캔들이 아내인 그녀와는 아무런 상관조차 없는 일인 것처럼. 박시현은 우아하게 식사했다. 하지만 온지은은 흙이라도 씹는 듯 아무런 맛도 느껴지지 않았다. 대충 몇 입 뜬 온지은이 그에게 물었다. “대표님 점심에 시간 되나요? 함께 윤이의 생일 케이크 고르러 가고 싶어요.” 온지은은 그를 대표님이라 불렀다. 처음부터 대표님이라 불렀고 박시현 역시 그 호칭을 바로잡으려 하지 않았다. 박시현은 온지은을 보지도 않고 대답했다. “점심에 협력사 분들과 식사 약속이 있어.” “그럼 오후는요?” 숟가락을 든 남자의 손이 멈칫하더니 드디어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 아름다운 그의 두 눈은 마치 얼음처럼 차가웠다. “윤이의 생일 케이크는 내가 사람을 시켜 준비할 테니 신경 쓸 필요 없어.” “하지만 제가 직접 고르고 싶어요.” 항상 얌전하기만 하던 온지은은 그의 말을 거스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들의 생일 선물이었기에 이번만큼은 고집을 부려보고 싶었다. 하지만 박시현은 그녀에게 그럴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 잘생긴 그의 미간이 찌푸려졌다. “온지은, 쓸데없이 일 벌이지 마.” “대표님, 저 윤이 엄마예요.” 그와 결혼한 지도 어언 3년, 처음으로 부려보는 고집이었다. 역시나. 온지은 때문에 화가 난 박시현은 입맛조차 사라진 듯했다. 그는 숟가락을 던졌다. 박시현은 느릿느릿 휴지로 입가를 닦으며 담담하게 한마디 던졌다. “그렇게 한가하면 나가서 쇼핑을 하든지 영화를 보든지 뭐든 해.” 성큼성큼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온지은의 마음은 마치 뭔가에 물려 살이 뜯긴 것처럼 괴로웠다. 박시현이 시간을 내주지 않았기에 온지은은 홀로 박윤의 케이크를 고르러 갔다. 온지은은 아들을 위한 케이크를 골랐다. 뿐만 아니라 일찌감치 아들의 생일 선물까지 준비해 둔 참이었다. 박윤과 함께 보낸 시간이 그리 많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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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사모님, 도련님… 식사하세요.” 도우미가 주방에서 나오며 공손하게 말했다. 김혜순은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 “밥 먹자. 윤이 배고프겠다.” “윤이 곰돌이랑 같이 먹을래…” 박윤은 주문 제작 인형을 안고 환하게 웃었다. “그래. 선생님이랑 윤이랑 곰돌이랑 같이 밥 먹으러 가자.” 하연수는 웃으며 박윤을 안았다. 그녀는 예의를 갖추며 온지은에게 말했다. “사모님, 저는 윤이 데리고 밥 먹으러 갈게요.” 모두 식당으로 향했다. 온지은은 인형을 손에 꼭 쥔 채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야말로 이 가문의 며느리였다. 하지만 그녀는 영원히 고립되어 있었다. 무시당하고 있었다. 들고 있던 케이크와 인형이 바닥에 떨어졌다. 뒤로 한 걸음 물러난 온지은은 차갑기만 한 이 저택을 떠나려 했다. 그때 박시현이 온지은의 손목을 잡았다. 고개를 들자 명령하는 듯한 그의 눈빛과 마주쳤다. “밥 먹어.” 온지은은 식탁이 있는 쪽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의 자리에 하연수가 앉아 있었다. 온지은은 아무런 대답 없이 손목을 돌려 그의 속박에서 벗어나려 했다. “오붓한 가족 식사에 끼어들지 않겠어요.”말을 마친 그녀는 고개조차 들지 않은 채 그곳을 벗어났다. “온지은!” 박시현은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감히. 그의 앞에서 성질을 부리다니? “내버려둬라.” 김혜순은 입구 쪽을 힐끗 쳐다보더니 말했다. “주제를 모르는 모자란 것. 애초에 집으로 들이지도 말아야 했어.” “그러니까. 오빠.”그때까지 아무 말도 없던 박씨 가문의 큰딸 박연희가 말을 덧붙였다. “못된 수작질로 우리 가문에 들어온 여자와 함께 밥을 먹는 건 가문의 격을 떨어뜨리는 일이야.” 박시현은 온지은을 좋아하지 않았다. 하지만 강아지를 나무라더라도 그 주인이 누군지는 똑똑히 알아야 하는 법. 그는 덤덤하게 입을 열었다. “그럼 매일 온지은과 함께 밥을 먹는 나는 뭐지?” “아…” 말문이 막힌 박연희가 곧 말을 덧붙였다. “오빠, 오빠는 그저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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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눈 부신 불빛 아래. 잘생긴 남자의 얼굴이 눈에 띄게 싸늘해졌다. 그녀의 손목에서 턱으로 자리를 옮겨 온 그의 긴 손가락에 점점 힘이 들어가고 있었다. "온지은, 결혼이 애들 장난 같아? 하고 싶으면 하고 그만두고 싶으면 그만두게? 내가 네 마음대로 휘둘러도 되는 장난감 같아? 결혼하겠다고 한 사람도 너고. 이혼 얘기를 꺼낸 사람도 너야. 내가 네 말에 순순히 따라 줄 거란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온 거지?" "전..." 온지은은 턱이 너무 아파 눈물을 뚝뚝 흘렸다. 그녀는 아픔을 견디며 흐느꼈다. "제 잘못이었어요. 결혼하고 나면 감정이라는 게 서서히 싹틀 줄 알았어요. 이럴 줄은 몰랐어요..." "뭘 몰랐다는 거야? 이렇게 빨리 지칠 줄 몰랐던 거야? 이렇게 빨리 나와 이혼하고 싶어질 줄 몰랐다는 거야?" "그래요. 이제 지쳤어요." 박시현의 눈빛은 무척 사나웠다. 하지만 온지은은 여전히 고개를 빳빳이 들어 올린 채 항변을 늘어놓고 있었다. 박시현이 갑자기 분노를 터뜨렸다.박시현은 온지은의 턱을 잡은 채 그녀를 침대에 밀쳐버렸다. 길고 늘씬한 그의 몸이 온지은의 위로 올라탔다. 그리고 사나운 키스가 이어졌다. 미친 듯이 키스를 퍼붓고 있는 그의 눈빛에는 서늘한 한기가 맴돌고 있었다. 이 상황이 싫었던 온지은은 미친 듯이 그를 밀쳐보았지만 그의 힘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결혼한 지 어언 3년, 박시현은 그녀의 몸을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그녀를 함락시키는 건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는 일이었다. 부끄러움과 함께 화가 치밀었다. 온지은은 발로 그를 차려 했다. 손쉽게 그녀의 종아리를 잡아챈 그의 긴 손가락이 치맛자락을 따라 슬금슬금 위로 올라갔다. 그는 그녀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뜨겁고도 싸늘한 그의 숨결이 귓가를 간지럽혔다. "온지은, 이혼 얘기 한 번만 더 해. 잔인하게 죽여버릴 테니까!" 온지은은 너무 아파 낮게 신음을 터뜨렸다. 눈물이 더욱 서럽게 흘러내렸다. 그는 그녀의 보청기를 빼버렸다. 박시현은 온지은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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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오늘은 주말이었다. 박시현은 출근할 필요가 없었다. 그는 박윤을 보러 본가에 갔다. 멀리서 하연수와 박윤의 깔깔거리는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저도 모르게 걸음 소리를 죽였다. 커다란 아이의 방 안, 아이보리색의 편한 옷을 입은 하연수가 양반다리를 하고 카펫 위에 앉아 있었다. 그녀는 손에 카드를 들고 박윤에게 단어를 가르치고 있었다. 하연수는 무척 열심히 가르치고 있었다. 박윤 역시 배우는 게 즐거운 모양이었다. 박시현은 아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이렇게 빨리 아이를 가질 생각 역시 없었다. 온지은의 임신 소식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아이를 지우라는 말부터 꺼냈다. 하지만 온지은은 그걸 바라지 않았다. 박씨 가문의 어른들 역시 그것을 바라지 않았다. 임신 내내 그는 복중에 있는 태아에 별다른 관심을 주지 않았다. 아이가 태어나 처음으로 아이를 본 순간 작고 말랑한 아이의 모습에 시선을 빼앗겼다. 그리고 마음도 움직였다. 그제야 그는 자신이 아빠가 되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온지은을 반쯤 닮은 아이는 그의 자식이었다. 아이는 모든 것을 쉽게 배우고는 했다. 박윤은 어제보다 더욱 많은 것을 배웠다. 방 안에 있는 어른과 아이는. 너무 다정한 나머지 선생님과 제자가 아닌 모자 같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박윤이 박시현을 발견했다. 아이는 깔깔 웃으며 그에게 달려왔다. "아빠!" 박시현은 허리를 숙인 채 두 팔을 벌려 그에게 달려오는 아이를 맞이했다. 항상 싸늘하기만 하던 그의 얼굴에 다정한 미소가 번졌다. "윤이 오늘 얌전히 잘 있었어?" "윤이 얌전했어... 윤이 아빠 보고 싶었어." "아빠도 윤이 보고 싶었어." 박시현은 아이를 높이높이 안아 들었다. 아이는 더욱 즐겁게 웃었다. 하연수는 미소를 지으며 다가와 아이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오빠, 윤이가 오늘 단어를 몇 개나 배웠게?" "몇 개 배웠는데?" 박시현의 시선은 박윤에게 머물러 있었다. 그의 두 눈에는 온통 아들뿐이었다. "족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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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아니에요."박시현은 생각을 거치지도 않고 부정부터 했다. 귀머거리를 좋아하게 되었냐고? 절대 불가능한 일이었다. 김혜순은 다시 말을 이으려 했다. 하지만 박시현이 그런 그녀의 말을 가로챘다. "됐어요, 어머니. 온지은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혼은 생각해 본 적도 없어요." "뭐라고?" 김혜순은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현아, 평생 귀머거리와 함께 살 생각이야? 우리 박씨 가문의 체면은?" "박씨 가문의 체면 때문에 온지은과 결혼했잖아요." "3년 전에는 네 할아버지가 억지를 부리셔서 그런 거고. 이제 할아버지는 아무 일에도 관여하지 못해. 그러니 귀머거리 때문에 네 행복을 망칠 필요가 없단 말이야." 자리에서 일어난 김혜순은 그에게 다가와 어깨를 두드렸다. "시현아, 행복은 스스로 챙겨야 하는 거야. 도덕적인 책임감에 너무 매여있지 마." 박시현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박시현은 한참이 지나서야 덤덤하게 대답했다. "알겠어요." 별다른 말은 없었다. 그는 대문으로 걸음을 옮겼다. 박시현은 차를 몰고 마운틴 별장으로 돌아왔다. 커다란 별장은 어제와 다름없이 어둠 속에 잠겨 있었다. 불빛도 없었고 익숙한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그는 단추를 풀며 위층으로 올라갔다. 안방으로 들어가니 산산조각이 난 웨딩사진이 보였다. 김청이 치우려고 했지만 그가 제지했다. 그는 집으로 돌아온 온지은이 직접 사진을 하나하나 붙인 뒤 벽에 걸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박씨 가문의 사모님 노릇을 계속해서 이어갈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 밤에는 온지은이 집으로 돌아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녀는 돌아오지 않았다. 돌아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그에게 문자 한 통 보내지 않았다. 가뜩이나 짜증이 났던 그는 사람 하나 패버리고 싶을 만큼 점점 화가 치밀어 올랐다. 소파에 외투를 던져두고 담배에 불을 붙인 그는 힘껏 담배를 빨아들인 뒤 비서 이혁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곧 이혁수가 전화를 받았다. "대표님, 이렇게 늦은 시간에 무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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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박시현은 화를 억누르며 말했다. "온지은, 아직도 가식 떨고 있는 거야?" "무슨 말씀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별다른 일이 없다면 먼저 끊을게요." "잠깐만." 박시현이 그녀를 멈춰 세웠다. "할 말 없는거 확실해?" 온지은은 오늘의 박시현이 조금 이상하다 생각했다. 말도 조금 많은 것 같고. 평소의 그는 그녀 앞에서 말을 금처럼 아끼는 사람이었다. 엘리베이터 스크린에서 하연수의 공연 계획이 송출되고 있었다. 화면이 바뀌고 하연수의 인터뷰가 이어졌다. 그녀는 배시시 미소를 지으며 이번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동요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귀여운 아가를 위해 특별히 지은 곡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인터뷰어는 그 귀여운 아가가 누구인지 궁금해하며 물었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저의 양아들이에요." 온지은은 시선을 거두었다. 통화는 여전히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휴대폰 너머의 박시현은 이미 인내심을 잃은 뒤였다. "온지은, 모른척하지 말고 대답해." 한숨을 내쉰 온지은은 담담하게 말했다. "대표님, 내일 시간 되세요?" 드디어 그에게 잘 보이려 하는 건가? 겨우 내리누른 박시현의 입꼬리가 다시 올라갔다. 그는 더없이 오만하게 대답했다. "시간 없어." "그럼 시간 날 때 알려주세요. 이혼 신고하러 가요." "뭐라고?" "시간 날 때 이혼 신고하자고요." 온지은은 말을 마친 뒤 미련 없이 통화를 끝냈다. 박시현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온지은은 백지처럼 단순했다. 마음만 단단히 먹는다면 이 결혼 생활을 기필코 끝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임태란의 전화가 걸려 왔다. 안부 인사도, 걱정도 없이 곧바로 질문이 쏟아졌다. "가출했다면서? 온지은, 주제 파악이 안 돼? 박씨 가문으로 시집을 간 건 네가 전생에 덕을 숱하게 쌓았기 때문이야. 그런 기회를 소중히 여기기는커녕 주제 파악도 못 하고 투정을 부려? 너..." "엄마!" 온지은은 그녀의 말을 끊었다. "제가 왜 이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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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온지은은 야근을 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유지민이 그녀를 의자에서 벌떡 일으켰다. "가자. 마음이나 달래러." "어디로 가는데?" 온지은은 별로 가고 싶지 않았다. "오늘 밤 강변로에서 불꽃 축제가 열린대. 내가 구경시켜 줄게." "네가 보고 싶은 거 아니고?" "그게 그거지. 가자." 온지은은 소지품을 정리하며 어쩔 수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왜 3년을 운영했는데도 스튜디오가 아직 이 모양인지 이제야 알겠네." "그런 말 하지 마. 일은 그저 감초일 뿐 우리의 삶이 가장 중요한 거라고. 게다가 얼마 살지도 못하는 인생 내키는 대로 살아야지." "그래, 네 말이 다 맞아!" 온지은은 동의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그녀는 유지민이 참 부러웠다. 잘사는 집에서 태어나지는 않았지만 그녀를 사랑해 주는 부모님과 오빠가 있었고 그들은 그녀에게 아무것도 강요하지 않았다. 내킬 땐 일을 하고 내키지 않을 땐 집에 누워서 휴식을 취했다. 그저 본인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벌면 되었다. 평생 결혼만 하지 않는다면 쭉 이런 삶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토록 간단하고 즐거운 삶 말이다. 그건 온지은이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것이었다. 그녀의 삶 속엔 오직 아픈 아버지, 이기적인 어머니와 동생, 그녀를 사랑하지 않는 남편과 아이만 있을 뿐이었다... 마음이 고통스러웠기에 불꽃도 썩 아름다워 보이지 않았다. 드론과 함께 만들어가는 불꽃놀이라 전에 없을 장관이라는 유지민의 설명이 있었지만, 불꽃놀이에 감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이질 않았지만... 온지은은 그저 그런 불꽃이라 느꼈을 뿐이었다. 순식간에 사라지는 불꽃 말이다. 아무리 아름다워도 소용이 없는 불꽃일 뿐이었다. 유지민의 흥을 깨지 않기 위해. 그녀는 억지로 놀라는 척을 했다. 불꽃놀이가 절정에 달했을 때. 갑자기 뒤에서 앳된 목소리가 들렸다. "꽃... 예뻐... 양엄마 예뻐!" 그 목소리는 사람들의 환호성에 섞여 들려왔다. 하지만 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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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불꽃 구경은 계속되었다. 다만 이 작은 해프닝으로 인해 온지은은 불꽃놀이에 더욱 흥미를 잃어버렸다. 온지은은 매년 불꽃놀이가 열리던 때를 떠올렸다. 박윤을 데리고 함께 불꽃놀이를 보러 가지 않겠느냐 용기를 내어 박시현에게 물을 때마다 박시현은 박윤이 아직 어리다는 이유로 거절했었다. 하지만 오늘 그는 하연수와 함께 박윤을 데리고 불꽃놀이를 보러 왔다. 박윤의 나이는 이유가 아니었다. 그저 그녀와 함께 오기가 싫었을 뿐이었다. 마음이 쓰라리게 아팠다. 점점 더 차디찬 밑바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 들었다. 이혼해야겠다는 신념이 점점 강렬해지고 있었다. 불꽃놀이가 끝나고 사람들이 흩어졌다. 온지은은 유지민의 팔짱을 끼고 박시현의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그러면 그들을 피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길가에서 그들과 정면으로 마주칠 줄이야. 온지은은 움찔 놀라고 말았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고개를 들어 박시현을 쳐다보았다. 박시현 역시 불쾌함이 역력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온지은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새로운 애인을 데리고 불꽃놀이를 보러 온 사람은 박시현인데. 왜 오히려 박시현이 불쾌한 얼굴을 하고 있을까. 그의 생각은 항상 알아차리기가 어려웠다. 그리고 그의 생각을 알고 싶지도 않았다. "대표님, 여기서 다 보네요."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건넸다. 박시현은 박윤을 꼭 끌어안으며 그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심통을 부리느라 아들까지 버릴 생각이야?" 온지은은 박윤을 쳐다보았다. 엄마의 시선이 닿자. 박윤은 미간을 찌푸리며 본능적으로 하연수에게 안기려 했다. "엄마 싫어... 양엄마 좋아." 어여쁜 얼굴은 무척 진지했다. 엄마가 상처받는 것 따위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윤이 그런 말 하면 못 써. 윤이를 가장 사랑하는 사람은 엄마인데." 하연수는 아이를 안으며 다정하게 달랬다. "윤이 착하지. 엄마에게 안겨 볼까?" "엄마 싫어..." 박윤은 온 힘을 다해 하연수의 품으로 파고들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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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온지은은 당연히 말을 알아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그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다. 온지은은 그의 앞에서 보청기를 빼버렸다. 박시현은 강제로 말을 할 수가 없게 되었다. 달빛 아래, 잘생긴 그의 얼굴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과거 온지은은 감히 그의 앞에서 화를 내지 못했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의 앞에서 화를 내는 그녀의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일부러 보청기를 빼버리는 게 그녀가 화를 내는 방식이었다. 그 행동이 뭘 뜻하는 걸까? 상대방을 향해 입 닥치라고 외치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온지은이 그에게 그 행동을 보이는 날이 올 줄이야. 가로등에 온지은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졌다. 유지민은 가슴이 아파 그녀를 꼭 끌어안았다. "지은아. 세상에는 박시현과 박윤만 있는 게 아니야. 아름다운 게 많고도 많아. 오늘 밤 불꽃놀이처럼 말이야." 유지민은 온지은에게 아주 가까이 다가가 말했다. 유지민은 겨우 그녀의 말을 알아듣고는 씁쓸하게 웃었다. "알고 있어." 불꽃놀이의 다음 날. 온지은은 연희진에게서 박윤이 감기에 걸렸다는 문자를 받았다. 그녀는 또다시 가슴이 아파왔다. 온지은은 얼른 전화를 걸어 아이의 상태를 물었다. 연희진은 아침까지 멀쩡하던 윤이가 저녁쯤 갑자기 열이 올랐다 알려주었다. "하 선생님은요? 아이의 곁에 없어요?" "아... 하 선생님은 계세요." 온지은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잠시 뒤, 그녀는 덤덤하게 말했다. "고생스럽겠지만 윤이 잘 보살펴주세요." "사모님, 도련님 보러 오지 않으실 건가요?" 연희진이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윤이가 조금이라도 아프면 무척 조급해하던 온지은이었다. 울며 빌며 제발 윤이를 보러 본가에 가게 해 달라 박시현에게 부탁했던 그녀였으니 말이다. "아니요, 제가 의사도 아니고. 당신들이 윤이의 곁에 있어 준다면 그걸로 됐죠." 온지은은 씁쓸함을 억누르며 대답했다. 휴대폰 너머, 연희진은 휴대폰을 꼭 쥔 채 조심스럽게 곁에 있는 박시현을 쳐다보았다. "대표님, 사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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