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뒤늦은 사랑은 대표님을 미치게 해: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물어보는 김에 고창석에게 사생아를 교육하는 게 어렵지는 않은지, 내 도움이 필요하지는 않은지 물어보고." "알겠습니다, 대표님." 이혁수는 고분고분 대답했다. ... 온지은은 밤을 새웠다. 이튿날 디자인이 완성되었다. 유지민은 놀라며 그녀와 디자인을 번갈아 보았다. "설마 밤 새운 거야? 목숨은 중요하지도 않은 거야?" "잤어." 온지은도 본인이 일을 너무 열심히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녀는 얼른 스튜디오를 일으켜 돈을 번 뒤 아버지의 병을 치료하고 싶었다. 다시는 박씨 가문에 기대고 싶지 않았다. "예쁜 것 같아?" 그녀는 화제를 돌렸다. "예뻐. 예쁘고 편한 느낌이야." 유지민은 고개를 끄덕이며 칭찬했다. "역시 과에서 실력이 뛰어나다 이름을 날리던 여자다워. 아무렇게나 그려도 이토록 훌륭한 작품이 나오다니." "양심에 어긋나는 칭찬을 억지로 할 필요는 없어." 온지은은 잘 알고 있었다. 디자인 업계에는 날고뛰는 사람이 널리고 널렸다는 걸. "진짜야. 그럼 내가 패턴을 떠볼까?" "그래." 퇴근 시간. 누군가 아래층에서 온지은을 부르기 위해 클랙슨을 울리고 있었다. 그 소리를 따라 밖을 내다보니 김혜순의 전용차가 길에 서 있었다. 잠시 멈칫하던 그녀는 밖으로 걸어 나갔다. 호화로운 차 안, 김혜순은 우아하게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다. 온지은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은 채였다. 온지은은 이미 습관이 되어 있었다. "어머님, 무슨 일로 찾아오셨어요?" "타라." 김혜순은 담담하게 말했다.저 카리스마, 저 말투... 박시현은 그녀를 꼭 닮아 있었다. 온지은은 얌전히 차에 올랐다. 김혜순은 그녀에게 아이패드를 건넸다. 받아 들고 보니 이상한 영상 하나가 재생되고 있었다. 여러 명의 의사가 함께 흥분하고 있는, 얼굴에 피 칠갑을 한 여자의 구급치료를 하고 있었다. 여자는 엉엉 울며 자기 얼굴이 망가지지는 않았는지 계속 물었다. 온지은은 그 여자를 알고 있었다. 박씨 가문 친척 고모의 양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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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김혜순이 대답하기도 전에 그녀는 차에서 내려버렸다. 온지은은 예의 바르게 차 문을 닫았다. 조급해하지도 않고 예의 바르며 온화한 그녀의 모습은 김혜순을 화나게 만들었다. 하지만 온지은을 어떻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조수석에 앉아 있던 박씨 가문의 오래된 도우미 김순자가 김혜순을 위로했다. "사모님, 온지은 씨가 이렇게 대담하게 나오는 건 시현 도련님께서 이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에요. 온지은 씨의 말이 맞아요. 도련님부터 설득해야 하는 일이에요." 김혜순은 심호흡을 한 뒤 이를 악물고 말했다. "미천한 것. 무슨 수를 써서라도 혼내주지! 온씨 가문으로 가자." 운전기사는 얼른 시동을 걸었다. 김혜순은 온씨 가문을 탐탁지 않게 여겼기에 온씨 가문에 방문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오늘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임태란은 너무 기뻐 어찌할 바를 몰랐다. 그녀는 김혜순을 열정적으로 맞이하며 아부를 떨었다. "사돈어른, 너무 갑자기 찾아오셔서 제대로 대접도 못 해 드리네요. 제... 제가 당장 지은이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오라고 할게요." "사돈어른?" 김혜순은 꼿꼿이 서서 마치 윗사람처럼 싸늘하게 그녀를 노려보았다. "감히 그럴 자격이나 되나? 온씨 가문이 감히?" "아니... 사돈어른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임태란은 겉으로는 공손한 태도를 보였지만 속으로는 욕지거리를 늘어놓고 있는 중이었다. 임태란 역시 몇십 년 동안 재벌가의 사모님으로 지낸 사람이었다. 대놓고 모욕을 주는 것은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온씨 가문이 어떻게 박씨 가문과 연을 맺게 되었는지 설마 모른다고 발뺌을 하는 건 아니겠지?"김혜순은 에돌아 말하기도 귀찮아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한 달 내로 당신 딸과 내 아들을 이혼시켜. 그게 아니라면 온씨 가문의 그 망할 회사를 없애버릴 테니까." "뭐라고요?" 그 말에 임태란은 다급해졌다. "사돈어른, 우리 지은이가 뭘 잘못했나요? 그 아이가 뭘 잘못했다면 때리거나 욕을 하셔도 돼요. 이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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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더 위협적인 말투로 협박 문자를 몇 개 더 보낸 뒤 임태란은 집에서 온지은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10시가 넘어가도록 온지은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온병철이 찾아왔다. 온병철은 요란하기 그지없는 그의 스포츠카를 정원에 세우더니 다급하게 안으로 들어오며 소리를 질러댔다. "엄마, 나 좀 구해줘!" 임태란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녀의 못난 아들이 이런 말투로 살려달라고 할 때마다 나쁜 일만 벌어졌기 때문이었다. 가뜩이나 기분이 좋지 않았던 그녀는 불퉁하게 말했다. "왜 또 그러는데? 또 도박한 건 아니지?" 온병철은 마음에 켕기는 듯 몸을 움츠렸다. 이어 그는 다가가 임태란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 "엄마, 절대 다시는 하지 않을게. 마지막으로 한 번만 도와줘, 응?" 임태란은 짜증을 내며 그의 손을 뿌리쳤다. "이번에는 또 얼만데?" "4...4 억." "뭐라고--" 임태란은 소리를 지르며 소파에서 몸을 일으키더니 그의 뺨을 때렸다. "우리 집에 금광이라도 있는 줄 알아? 회사가 어떤 상황인지 몰라? 도와주기는커녕 왜 사고를 치고 다니는 거야!" "나도 회사를 위해서 도박을 한 거야. 엄마, 회사도 자금이 필요하잖아. 그 퇴물 같은 누나는 기댈 곳도 못 되지. 도박장에 가서 운을 바라는 수밖에 방법이 있어?" 온병철은 다시 한번 임태란의 팔짱을 끼며 도움을 구했다. "엄마, 도와줘. 일주일 내로 돈을 갚지 못한다면 날 물고기 밥으로 바다에 던져버린대. 회사도 없어질 마당에 하나뿐인 아들마저 잃고 싶은 건 아니지?" "난 도와줄 수 없어." 임태란은 분노와 동시에 무기력함을 느꼈다. "온병철, 네 누나도 기댈 곳이 못 된다는 걸 알고 있잖아. 지난번에 네가 도박으로 돈을 잃었을 때도 가방과 보석을 전부 팔아 겨우 갚았는데. 이제 며칠이나 지났다고 또 4억이야. 내가 어디서 그 많은 돈을 얻어오겠니?" 온병철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러고는 조심스럽게 건의했다. "엄마, 우리 매형한테 가서 달라고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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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그건 얘기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서 경고해. 반드시 중요한 일이여야 할 거라고." "알겠습니다, 대표님." 비서가 나가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태란 모자가 사무실로 들어왔다. 사무실 책상 뒤에 꼿꼿하게 앉아 있는 점잖고 고귀하나 쌀쌀맞은 남자를 보게 된 순간 모자는 저도 모르게 몸을 흠칫 떨었다. 온병철은 하하 웃으며 그에게 다가갔다. "매형, 오랜만이에요. 잘 지내셨어요?" 박시현은 싸늘하게 온병철이 내민 손바닥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는 여유롭게 커피잔을 들어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중요한 일이 있다면서요? 3분의 시간을 줄 테니 얼른 말해보세요." 온병철은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어머니에게 도움을 청했다. 임태란은 얼른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섰다. "시현 사위, 지난번 구청에서는 제가 너무 충동적이었죠. 대표님과 지은이의 이혼을 막지 말아야 했는데." 커피를 마시다 멈칫한 박시현이 그제야 임태란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임태란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 "시현 사위, 이건 어때요? 내일 제가 직접 지은이를 데리고 구청으로 가서 사인을 할게요. 이번엔 분명 이혼할 수 있을 거예요." 온병철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덧붙였다. "그래요, 매형. 우리 누나는 매형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진작에 이혼했어야죠." 사무실의 공기가 순식간에 얼어붙었다. 모자는 그 말을 들은 박시현이 무척 기뻐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박시현은 기뻐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은 남자는 따듯한 햇빛을 받고 있었지만 눈빛은 점점 싸늘하게 변해가고 있었다. 커피잔을 들고 있는 손가락마저 너무 힘이 들어간 나머지 점점 창백해지고 있었다. 모자는 몰래 시선을 마주했다. 그들은 말을 더 이어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떠안은 빚을 떠올린 뒤. 임태란은 뻔뻔하게 말을 이었다. "시현 사위. 지은이와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은 알아요. 하지만 한번 부부의 연을 맺으면 그 인연이 백 년은 간다고 하잖아요. 게다가 지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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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정신없이 맞던 온지은은 기둥에 머리를 박았고 그 탓에 머리에 상처가 나 피가 흘렀다. 그리고 그날 하루 종일. 그녀는 상처가 난 채로 묵묵히 결혼식을 마쳤다. 사람을 지독하게 때리는 임태란의 고질병은 여전했다. 그날 구청에서도 같은 힘으로 온지은을 때렸다. 이런 사람을 엄마로 두었다는 건. 그야말로 재난이었다. 박시현은 처음으로 온지은이 조금 불쌍하다 느껴졌다. 그는 소리 없이 무명지에 끼고 있던 결혼 반지를 만지작거렸다. 한참이 지나서야 그는 기대로 가득 찬 모자의 시선 속에 전화기를 들었다. "이 비서 들어오라고 해." 모자는 이 비서를 불러 수표를 떼어줄 거란 생각에 흥분을 감출 수가 없어 입꼬리가 자꾸만 올라갔다. 하지만 박시현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음산하기 그지없는 것이었다. "죽을 만큼 때린 뒤에 내쫓아." "알겠습니다, 대표님." 공손하게 머리를 끄덕인 이혁수는 휴대폰을 꺼내더니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 모자는 얼어붙고 말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정신을 차린 그들은 애원하기 시작했다. "시현 사위, 이게 무슨 뜻이지? 감... 감히 날 때리다니? 난 당신 장모인데!" "그래요, 매형. 전 당신의 처남이라고요!" 온병철 역시 깜짝 놀라고 말았다. 박시현은 아름다운 입술로 미소만 지어 보일 뿐이었다. 말 한마디 섞기조차 혐오스러운 족속들이었다. 곧 대표 사무실로 보디가드 몇이 들어왔다. 이혁수의 눈빛 한 번에 보디가드들이 달려들어 모자를 제압했다. 박시현이 정말 때릴 줄 몰랐던 모자는 다급히 소리를 고래고래 질렀다. "박시현, 당신 왜 이러는 거야? 돈을 주기 싫으면 안 주면 되지 왜 매질까지 하는 거야?" 박시현은 그제야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는 탁자를 지나 두 사람에게로 한 걸음 한 걸음 다가갔다. 온병철이 먼저 무릎을 털썩 꿇더니 박시현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으며 애원했다. "매형, 때리지 말아 주세요... 돈 안 받으면 되잖아요. 제발 때리지 말아 주세요." 박시현은 발을 들어 그의 손을 밟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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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병원 직원들의 일에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 온지은은 병실로 들어갔다. 병실에는 두 개의 침대가 있었는데 마치 미라처럼 붕대로 온몸을 감싼 모자가 각각 침대 하나씩을 차지하고 누워 있었다. 비참하기 그지없는 꼴이었다. 온지은은 어쩐지 웃고 싶어졌다. 참 통쾌했다. 드디어 누군가 이기적인 엄마와 동생을 혼내주다니. "또 그에게 돈 얘기를 하러 갈 건가요?" 온지은은 탁자 위에 올려진 진단서를 확인했다. 어머니는 맞아서 머리가 터졌고 왼쪽 손이 골절되었으며 허리뼈가 비틀어졌다. 온병철은 더욱 심각했는데 머리가 터졌을 뿐만 아니라 사지에 멀쩡한 곳이라고는 없었다. 보아하니. 3개월 안에는 도박장으로 갈 수가 없을 듯했다. "빌어먹을 년, 놀리고 싶니? 네가 이혼하겠다는 말만 꺼내지 않았어도 박시현이 우리에게 이런 짓을 하는 일은 없었을 거야.... 아이고..." 살짝 몸을 움직인 임태란은 고통에 비명을 고래고래 질렀다. 비명을 지르고 난 그녀는 다시 욕을 이어 나갔다. "아버지가 병원에 저러고 계시는데 나와 동생까지 이 지경으로 만들다니. 네 하나뿐인 동생이야! 우리 온씨 가문의 대를 끊어놓으려 작정을 한 거야?" 온병철의 상처는 더욱 심각했다. 욕을 할 기운마저 없었던 그는 비굴하게 애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누나, 살려줘. 의사 선생님 말씀이 다리는 완치되기가 어렵대. 얼른 외국에 있는 병원으로 보내줘. 거기서 치료를 받게." "다리를 쓸 수 없으면 더 좋은 일 아냐? 앞으로 도박장에 갈 수 없을 테니." "몹쓸 년. 그게 사람이 할 소리야?" 임태란은 탁자 위에 놓인 티슈를 그녀에게 건졌다. 온지은은 가볍게 피해버렸다. 온병철은 마음이 조급해졌다. "누나, 왜 그렇게 지독해. 난 누나 친동생이잖아." "내가 독한 게 아니라 정말 능력이 없어서 그러는 거야. 박시현에게 내가 어떤 존재인지 모두 잘 알고 있잖아. 난 곧 박시현과 이혼할 거야. 그러니 더 이상 그를 귀찮게 하지 마. 윤이의 체면을 지켜주는 셈 쳐."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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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박시현이 온지은을 찾아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연수는 그를 온지은에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성공적으로 박시현이 온지은을 찾아가지 못하게 막았을 뿐만 아니라 온지은의 가슴에 새로운 상처를 새겨주었다. 이게 바로 일거양득이라는 거겠지. ... 유지민은 기분이 가라앉은 채 돌아온 온지은을 발견하게 되었다. 펜을 내려놓은 유지민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엄마랑 동생 많이 다쳤어?" 온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가 심각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온지은은 두 사람 때문에 괴로운 게 아니었다. 유지민은 온지은이 엄마와 동생을 걱정한다 생각했다. 가슴이 답답해진 유지민은 온지은의 볼을 꼬집었다. "너도 참. 도대체 언제까지 그리 착하게 살 거야? 엄마와 동생이 널 그런 식으로 대하는데도 그들이 많이 다쳐서 걱정하는 거야?" 온지은은 고개를 숙였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유지민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울먹이는 목소리는 감출 수가 없었다. "지민아, 윤이를 보았어. 박시현이 하연수와 함께 윤이의 병을 보이러 병원에 왔더라." "..." 유지민은 심장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온지은을 위로하던 손길마저 멈춰버렸다. 온지은은 유지민이 그녀를 멸시할까 봐 나지막이 덧붙였다. "지민아, 너무 줏대 없는 짓이라는 걸 알아. 나도 완전히 내려놓고 싶어. 하지만 난..." "자식이잖아. 이해해." 유지민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등을 토닥여 주었다. "지은아, 널 탓하려는 게 아니야. 과거를 잊어버리라 강요할 생각도 없고. 난 그저... 그 빌어먹을 연놈을 죽여버리고 싶을 뿐이야! 자, 일단 앉아서 마음 좀 추슬러." 온지은을 소파로 데려와 앉힌 유지민은 그녀를 위해 따듯한 물을 떠다 주었다. 그러고 나서야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유지민은 곧바로 박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몇 번 울리자마자 통화가 연결되었다. 박시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지민이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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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한편. 온지은 때문에 억지로 통화를 마친 유지민은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다. "왜 그 나쁜 놈을 걱정하는 거야? 네가 너무 착하니까 자꾸만 그 못된 내연녀와 함께 널 괴롭히는 거잖아!" "그를 걱정하는 게 아니야. 그저 이 일에 너까지 연루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래." 온지은은 유지민이 그녀를 대신해 화풀이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시현은 유지민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입이 찢어진 사촌 여동생. 손발이 골절될 정도로 맞은 엄마와 동생. 피의 교훈들이 아직 병원에 누워 있었다. "난 그가 두렵지 않아!" 유지민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온지은은 그녀의 손에서 컵을 빼앗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화내지 마. 내가 밀크티 사줄게." "지금 당장 마실래." "그래 내가 사다 줄게." "쇼핑하면서 마실래." "그것도 좋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지민이 온지은을 달래고 있었으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온지은은 유지민을 아주 성공적으로 달랬다. 두 사람은 내친김에 일을 내팽개치고 쇼핑을 하러 나갔다. 온지은은 유지민에게 밀크티를 사주었다. 유지민은 그녀에게 밥을 사주었다. 밥을 먹고 쇼핑몰에서 구경을 하며 요즘 유행하는 패션에 관해 연구도 했다. 온지은은 패션 디자인을 좋아했지만 차림새는 아주 소박했다. 영원히 블랙과 화이트, 그리고 회색의 캐주얼한 차림이었다. 임태란의 말에 의하면 생기라곤 하나도 없는 노친네같은 차림새였다. 그래서 박시현이 온지은을 싫어하는 거라는 말에 온지은 역시 변화를 주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천성이 그러했으니 바꾸려 할수록 괴로워졌다. 그래서 온지은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유지민이 아주 예쁜 원피스를 그녀에게 건네주며 입어보라 했을 때 온지은은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하지만 유지민은 기어코 온지은을 탈의실로 들여보냈다. 시크하지만 단정함을 잃지 않은 흰색의 원피스는 푹 파인 넥라인에 허리선을 강조한 스타일이었다. 그 원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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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케이크는 아주 작았지만 정교하고 고급스러웠다. 박윤이 가장 좋아하는 상어가 그려져 있는 케이크는 딱 봐도 박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네, 우리 윤이도 지금 당장 먹고 싶어 해요." 하연수는 '그제야' 곁에 서 있는 온지은을 발견했다. 그녀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여기서 다 보네요, 온지은 씨. 전 윤이의 케이크를 사러 왔어요. 지은 씨는요?" 꼭 마치 본인이 박윤의 엄마라도 된 것 같은 말투였다. 똑같은 상황을 온지은은 이미 여러 번 경험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온지은은 앞에 서 있는 여자와 그녀의 손에 들린 케이크를 쳐다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윤이는 초콜릿케이크를 좋아하지 않아요." 하연수는 여전히 예의 바른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척 잔인한 것이었다. "온지은 씨는 윤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 고작 며칠밖에 안 되잖아요. 아마 저보다도 함께 보낸 시간이 적을 것 같은데. 그런 당신이 어떻게 윤이가 초콜릿케이크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겠어요?" "게다가 사람의 입맛은 사람의 마음처럼 변할 수도 있는 거예요. 예전에는 초콜릿케이크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도 요즘엔 잘 먹을 수도 있잖아요." 하연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점점 찬란하게 웃어 보였다. "온지은 씨는 걱정하지 말고 일이나 보세요. 윤이는 제가 잘 보살필게요." 말을 마친 하연수는 케이크를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온지은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하연수의 말이 맴돌았다. '사람의 입맛은 사람의 마음처럼 변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지? 박시현이든 박윤이든 결국 하연수의 것이 될 거라는 암시인가? 하지만 하연수는 이미 그녀의 자리를 차지했는데. 왜 아직도 온지은을 놓아주지 않는 걸까. 주차를 마친 유지민은 가게로 들어가려던 그때 케이크를 들고 나오는 하연수와 마주치게 되었다. 불안한 예감이 싹텄다. 유지민은 본능적으로 하연수의 뒤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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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온지은과 유지민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하연수를 쳐다보았다. 아무도 그가 어쩌다 넘어진 건지 알지 못했다. 하연수는 이마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신고 있던 하이힐마저 망가져 있었다. 하연수는 고통에 몸을 웅크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온지은은 천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다가가 하연수를 부축하려 했다. 온지은의 손가락이 하연수의 팔에 닿으려는 찰나, 멀지 않은 곳에서 급박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수야!" 곧 온지은은 강한 누군가의 힘에 의해 밀쳐졌다. 얼굴이 바닥에 쓸리며 넘어진 탓에 고막이 몹시 아파왔다. "지은아!" 얼른 달려와 온지은을 부축한 유지민은 화를 내며 박시현을 노려보았다. "박시현 씨, 미쳤어요? 왜 지은이를 밀치는 거예요?" 하지만 박시현은 두 사람이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온몸을 덜덜 떨고 있는, 품에 안긴 하연수만 살피고 있었다. "괜찮아?" "시현 오빠, 머리가 너무 아파. 발도... 너무 아파." "움직이지 마. 내가 병원으로 데려가 줄게." 박시현은 두 손으로 하연수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를 안고 일어난 박시현은 떠나기 전 맞은편의 두 사람을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눈빛은. 분명 일부러 사람을 다치게 만든 두 사람을 나무라는 것이었다. "잠깐만, 무슨 뜻이죠?" 유지민은 그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그의 품에 안긴 하연수를 훑어보던 유지민이 말했다. "저 얌체 같은 여자가 일부러 넘어진 건데 설마 우리 지은이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건 아니죠? 소설을 얼마나 많이 봤기에 연기를 이렇게 잘하지." 하연수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박시현의 표정 역시 어두워졌다. 그는 싸늘하게 유지민을 쳐다보았다. "유지민 씨, 이런 행동이 온지은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해친다는 생각 해 본 적 없어요?" "..." "시현 오빠, 온지은 씨 탓이 아니야. 그러니 온지은 씨에게 뭐라고 하지 마." 하연수는 얼른 박시현의 옷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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