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온지은은 날 때부터 사람들의 멸시를 받는 귀머거리였다. 20살이 되던 그해, 그녀는 어머니의 계략으로 한 장의 임신 결과 보고서를 들고 박씨 가문의 후계자와 3년간 결혼 생활을 하게 되었다. 박시현은 그녀를 사무치게 미워했으나 온지은과 결혼할 운명을 피하지는 못했다. 결혼 뒤 박시현은 여러 여자를 만나고 다녔다. 하지만 오직 온지은만은 제대로 바라보지 않았다. 좋은 아내 역할을 훌륭하게 해내기 위해, 아이를 위해 온지은은 참고 또 참았다. 그의 첫사랑이 찾아오기 전까지 말이다. 목숨을 걸고 낳은 그녀의 아들은 박시현의 첫사랑을 양엄마라 부르며 따랐다. 그제야 온지은은 깨닫게 되었다. 그녀가 얻지 못한 그의 마음이 줄곧 다른 여자를 향해 뜨겁게 불타오르고 있었다는 사실을. 온지은은 이혼 협의서를 남겨둔 채 결연히 떠나버렸다. 하지만 박시현이 그런 그녀에게 다시 다가오기 시작했다. 쌀쌀맞은 태도로 온지은에게 다가간 그는 그녀를 몰아붙였다. "온지은, 결혼이 장난이야? 하고 싶으면 하고, 이혼하고 싶으면 이혼하게?" "이혼하고 싶어? 둘째 낳고 나서 다시 말해."
View More온지은과 유지민은 깜짝 놀라고 말았다. 두 사람은 동시에 하연수를 쳐다보았다. 아무도 그가 어쩌다 넘어진 건지 알지 못했다. 하연수는 이마에 피를 철철 흘리고 있었고 신고 있던 하이힐마저 망가져 있었다. 하연수는 고통에 몸을 웅크리며 신음하고 있었다. 온지은은 천성이 착한 사람이었다. 그녀는 본능적으로 다가가 하연수를 부축하려 했다. 온지은의 손가락이 하연수의 팔에 닿으려는 찰나, 멀지 않은 곳에서 급박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수야!" 곧 온지은은 강한 누군가의 힘에 의해 밀쳐졌다. 얼굴이 바닥에 쓸리며 넘어진 탓에 고막이 몹시 아파왔다. "지은아!" 얼른 달려와 온지은을 부축한 유지민은 화를 내며 박시현을 노려보았다. "박시현 씨, 미쳤어요? 왜 지은이를 밀치는 거예요?" 하지만 박시현은 두 사람이 있는 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눈물을 그렁그렁 매단 채 온몸을 덜덜 떨고 있는, 품에 안긴 하연수만 살피고 있었다. "괜찮아?" "시현 오빠, 머리가 너무 아파. 발도... 너무 아파." "움직이지 마. 내가 병원으로 데려가 줄게." 박시현은 두 손으로 하연수를 꼭 끌어안았다. 그녀를 안고 일어난 박시현은 떠나기 전 맞은편의 두 사람을 노려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 눈빛은. 분명 일부러 사람을 다치게 만든 두 사람을 나무라는 것이었다. "잠깐만, 무슨 뜻이죠?" 유지민은 그를 향해 한 걸음 다가갔다. 그의 품에 안긴 하연수를 훑어보던 유지민이 말했다. "저 얌체 같은 여자가 일부러 넘어진 건데 설마 우리 지은이에게 그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건 아니죠? 소설을 얼마나 많이 봤기에 연기를 이렇게 잘하지." 하연수는 더욱 서럽게 울었다. 박시현의 표정 역시 어두워졌다. 그는 싸늘하게 유지민을 쳐다보았다. "유지민 씨, 이런 행동이 온지은을 돕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해친다는 생각 해 본 적 없어요?" "..." "시현 오빠, 온지은 씨 탓이 아니야. 그러니 온지은 씨에게 뭐라고 하지 마." 하연수는 얼른 박시현의 옷깃
케이크는 아주 작았지만 정교하고 고급스러웠다. 박윤이 가장 좋아하는 상어가 그려져 있는 케이크는 딱 봐도 박윤을 위해 준비한 선물이었다. "네, 우리 윤이도 지금 당장 먹고 싶어 해요." 하연수는 '그제야' 곁에 서 있는 온지은을 발견했다. 그녀는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여기서 다 보네요, 온지은 씨. 전 윤이의 케이크를 사러 왔어요. 지은 씨는요?" 꼭 마치 본인이 박윤의 엄마라도 된 것 같은 말투였다. 똑같은 상황을 온지은은 이미 여러 번 경험했었다. 하지만 여전히 뭔가가 심장을 쥐어짜는 것처럼 고통스러웠다. 온지은은 앞에 서 있는 여자와 그녀의 손에 들린 케이크를 쳐다보고는 나지막이 말했다. "윤이는 초콜릿케이크를 좋아하지 않아요." 하연수는 여전히 예의 바른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말은 무척 잔인한 것이었다. "온지은 씨는 윤이와 함께 보낸 시간이 고작 며칠밖에 안 되잖아요. 아마 저보다도 함께 보낸 시간이 적을 것 같은데. 그런 당신이 어떻게 윤이가 초콜릿케이크를 좋아하는지 아닌지 알겠어요?" "게다가 사람의 입맛은 사람의 마음처럼 변할 수도 있는 거예요. 예전에는 초콜릿케이크를 좋아하지 않았다고 해도 요즘엔 잘 먹을 수도 있잖아요." 하연수는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점점 찬란하게 웃어 보였다. "온지은 씨는 걱정하지 말고 일이나 보세요. 윤이는 제가 잘 보살필게요." 말을 마친 하연수는 케이크를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 온지은은 그 자리에 얼어붙은 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머릿속에는 여전히 하연수의 말이 맴돌았다. '사람의 입맛은 사람의 마음처럼 변할 수도 있는 거예요.' 그게 무슨 뜻이지? 박시현이든 박윤이든 결국 하연수의 것이 될 거라는 암시인가? 하지만 하연수는 이미 그녀의 자리를 차지했는데. 왜 아직도 온지은을 놓아주지 않는 걸까. 주차를 마친 유지민은 가게로 들어가려던 그때 케이크를 들고 나오는 하연수와 마주치게 되었다. 불안한 예감이 싹텄다. 유지민은 본능적으로 하연수의 뒤를
한편. 온지은 때문에 억지로 통화를 마친 유지민은 화가 나 발을 동동 굴렀다. "왜 그 나쁜 놈을 걱정하는 거야? 네가 너무 착하니까 자꾸만 그 못된 내연녀와 함께 널 괴롭히는 거잖아!" "그를 걱정하는 게 아니야. 그저 이 일에 너까지 연루시키고 싶지 않아서 그래." 온지은은 유지민이 그녀를 대신해 화풀이해 주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박시현은 유지민이 감당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입이 찢어진 사촌 여동생. 손발이 골절될 정도로 맞은 엄마와 동생. 피의 교훈들이 아직 병원에 누워 있었다. "난 그가 두렵지 않아!" 유지민은 물을 한 모금 마셨다. 온지은은 그녀의 손에서 컵을 빼앗아 탁자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화내지 마. 내가 밀크티 사줄게." "지금 당장 마실래." "그래 내가 사다 줄게." "쇼핑하면서 마실래." "그것도 좋지."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유지민이 온지은을 달래고 있었으나 이제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어 있었다. 게다가 온지은은 유지민을 아주 성공적으로 달랬다. 두 사람은 내친김에 일을 내팽개치고 쇼핑을 하러 나갔다. 온지은은 유지민에게 밀크티를 사주었다. 유지민은 그녀에게 밥을 사주었다. 밥을 먹고 쇼핑몰에서 구경을 하며 요즘 유행하는 패션에 관해 연구도 했다. 온지은은 패션 디자인을 좋아했지만 차림새는 아주 소박했다. 영원히 블랙과 화이트, 그리고 회색의 캐주얼한 차림이었다. 임태란의 말에 의하면 생기라곤 하나도 없는 노친네같은 차림새였다. 그래서 박시현이 온지은을 싫어하는 거라는 말에 온지은 역시 변화를 주려 노력했었다. 하지만 천성이 그러했으니 바꾸려 할수록 괴로워졌다. 그래서 온지은은 바꾸지 않고 그대로 살아가기로 결심했다. 유지민이 아주 예쁜 원피스를 그녀에게 건네주며 입어보라 했을 때 온지은은 본능적으로 거부했다. 하지만 유지민은 기어코 온지은을 탈의실로 들여보냈다. 시크하지만 단정함을 잃지 않은 흰색의 원피스는 푹 파인 넥라인에 허리선을 강조한 스타일이었다. 그 원피
박시현이 온지은을 찾아가기 위해 사무실을 나섰다는 사실 역시 알고 있었다. 하지만 하연수는 그를 온지은에게 보내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성공적으로 박시현이 온지은을 찾아가지 못하게 막았을 뿐만 아니라 온지은의 가슴에 새로운 상처를 새겨주었다. 이게 바로 일거양득이라는 거겠지. ... 유지민은 기분이 가라앉은 채 돌아온 온지은을 발견하게 되었다. 펜을 내려놓은 유지민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왜 그래? 엄마랑 동생 많이 다쳤어?" 온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상태가 심각한 건 사실이었다. 하지만 온지은은 두 사람 때문에 괴로운 게 아니었다. 유지민은 온지은이 엄마와 동생을 걱정한다 생각했다. 가슴이 답답해진 유지민은 온지은의 볼을 꼬집었다. "너도 참. 도대체 언제까지 그리 착하게 살 거야? 엄마와 동생이 널 그런 식으로 대하는데도 그들이 많이 다쳐서 걱정하는 거야?" 온지은은 고개를 숙였다. 눈가에 맺힌 눈물을 유지민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울먹이는 목소리는 감출 수가 없었다. "지민아, 윤이를 보았어. 박시현이 하연수와 함께 윤이의 병을 보이러 병원에 왔더라." "..." 유지민은 심장이 턱 막히는 것 같았다. 온지은을 위로하던 손길마저 멈춰버렸다. 온지은은 유지민이 그녀를 멸시할까 봐 나지막이 덧붙였다. "지민아, 너무 줏대 없는 짓이라는 걸 알아. 나도 완전히 내려놓고 싶어. 하지만 난..." "자식이잖아. 이해해." 유지민은 그녀를 품에 안은 채 등을 토닥여 주었다. "지은아, 널 탓하려는 게 아니야. 과거를 잊어버리라 강요할 생각도 없고. 난 그저... 그 빌어먹을 연놈을 죽여버리고 싶을 뿐이야! 자, 일단 앉아서 마음 좀 추슬러." 온지은을 소파로 데려와 앉힌 유지민은 그녀를 위해 따듯한 물을 떠다 주었다. 그러고 나서야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갔다. 유지민은 곧바로 박시현에게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몇 번 울리자마자 통화가 연결되었다. 박시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유지민이 욕지거리를 퍼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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