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351 - Chapter 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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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1화

지안은 병원 입원 병동 복도에서 태상이 지도교수와 거칠게 언성을 높이며 다투는 모습을 보았다.실험실은 R국에 있었고, 태상이 쓰는 말도 R국어였다. 지안은 그 말들을 한마디도 알아듣지 못했다. ‘대체 무슨 일이지?’통화를 끊은 뒤, 지안이 이상하다는 듯 물었다.“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까지 흥분한 거야?”태상은 원래 누구하고도 잘 지내는 사람이었다. 평소에 화를 내는 일도 거의 없었다. 적어도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지안이 알기로 태상은 누군가와 저렇게 심하게 부딪친 적이 한 번도 없었다.“별거 아니야.”태상은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기색이 뚜렷했다. 머리가 아픈지 미간까지 살짝 찌푸리고 있었다.“지도교수님이랑 의견이 좀 안 맞았어.”지안은 태상이 외국에서 연구를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 태상은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곧장 지도교수의 실험실로 들어갔다. 그 자리도 야마모토 교수가 태상을 강력하게 추천해서 성사된 것이었다.지안이 집으로 돌아가려 하자 태상이 말했다.“먼저 가. 난 처리할 일이 좀 있어.”지안이 차에 오르는 걸 끝까지 지켜본 태상은 굳은 표정으로 병원 최상층에 있는 사무실로 향했다. 문 앞에 멈춰 선 태상이 손등으로 문을 두드렸다.“들어와.”서진은 의자에 앉아 있었다. 태상과 시선이 마주쳤지만, 태상이 찾아올 걸 이미 알고 있었다는 듯 조금도 놀라는 기색이 없었다.서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야마모토 교수님한테 이미 전화는 받았겠지. 난 칩의 각종 데이터를 계속 모니터링할 팀이 필요해.”“듣자 하니 너는 해외에서 원래 그 일만 맡아 왔다며. 그래서 교수님이 이 일을 너한테 넘긴 거야.”서진과 태상은 동갑이었다. 두 사람이 같은 고등학교를 다녔지만, 같은 반은 아니었다. 서로 얼굴만 아는 사이고 가깝다고 할 수는 없는 사이였다.태상은 불과 몇 분 전에서야 서진이 자기 지도교수인 야마모토 교수에게서 거액을 주고 칩을 사들였고, 그 칩을 멀쩡한 사람의 뇌에 이식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방금 전 태상이 지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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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2화

‘이거, 스스로 골칫거리를 끌어안는 짓 아닌가?’서진이 다시 못을 박듯 말했다.“넌 데이터 모니터링만 해. 다른 건 전부 신경 끄라고!”태상은 어깨를 으쓱했다.“미안한데, 난 그럴 의무도 없고 네 개인적인 행동까지 대신 책임질 이유도 없어.”말을 마친 태상은 그대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했다.서진이 태상을 붙잡듯 말을 던졌다.“그 칩, 너희 실험실에서 만든 거잖아. 진짜 무슨 문제라도 생기면 너희 연구도 중단되는 거 아니야?”서진은 조금도 동요하지 않은 채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다. 태상의 걸음이 멈춘 걸 본 서진의 태도에는 여유까지 배어 있었다.“그래서 내가 너희한테 데이터 모니터링을 요구하는 거야. 상대 생체 징후를 안정적으로 확인하려는 거니까.”“어떤 의미에선 우리도 이해관계가 걸린 한편이거든. 수많은 연구자들이 공들여 쌓아 온 결과물이잖아. 어떻게 할지는 네가 알아서 판단해.”서진은 믿는 구석이 있었다. 연구자에게 프로젝트가 멈추거나 실험에 문제가 생긴다는 게 어떤 뜻인지, 서진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그건 곧 지난 세월 동안 쏟아 부은 노력이 한꺼번에 무너지는 일이었다. 자기 연구가 그렇게 끝나 버리는 모습을 좋아할 연구자는 단 한 명도 없었다.태상은 서진을 잠시 가만히 바라봤다. 결국 태상이 한발 물러섰다.다만 태상이 서진의 요구를 받아들인 이유는 따로 있었다. 모니터링으로 쌓이는 데이터를 보면, 서진이 대체 누구에게 칩을 이식했는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칩의 기술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그런 물건이 인체 안에 남아 있으면 어떤 예측 못 할 일이 벌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태상은 반드시 당사자에게 사실을 알리고 어떻게든 칩도 꺼내야 했다.‘무슨 수를 써서라도 찾아낸다. 모르고 당하게 둘 순 없어.’...유호는 일주일 동안 입원해 있다가 퇴원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유호는 원체 몸이 좋은 편이었다. 오랫동안 꾸준히 운동해 온 습관 덕에 기초 체력이 탄탄했고, 회복도 빠른 편이었다.그날 아침 일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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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3화

유호는 정말 좋은 사람이었다.이번 교통사고는 해인 때문이었다. 그 일로 유호가 크게 다쳤는데도, 유호는 해인에게 원망 섞인 말을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해인은 몸을 돌려 유호의 허리를 가만히 끌어안았다.“나... 우리 여보를 곧 사랑하게 될 것 같아.”유호의 눈빛이 달라졌다. 깊이 가라앉아 있던 눈빛이 더 짙어졌다.“날 사랑하게 된다고?”해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유호는 그럴 만한 사람이었다. ‘유호 씨는 충분히 그럴 자격이 있어.’해인은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조금.”해인은 일부러 두 손가락으로 아주 좁은 틈을 만들었다.“이만큼만.”그런데 유호의 눈빛은 점점 더 깊어졌다.유호는 여기가 공공장소라는 사실도 잊은 듯 해인을 품으로 끌어당겼다. 당장이라도 해인에게 힘껏 입맞추려는 기세였다.“조금이어도 우리 여보 마음을 이렇게 많이 받았잖아. 그걸로 됐어.”해인의 조금은 다른 사람의 많고 많은 마음보다도 더 컸다.해인은 말보다 행동이 앞서는 사람이었다.유호는 그걸 잘 알고 있었다. 실제로는 많고도 많을 텐데, 해인이 인정하지 않을 뿐이었다. ‘분명 저 말보다 훨씬 더 큰 마음이야. 강해인은 원래 그런 사람이니까.’정말로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유호가 입을 맞추려 들자, 해인은 두 손으로 유호의 가슴을 밀어내며 얼른 말했다.“좀 가만히 있어. 여긴 병원이잖아.”“병원이면 어때?”유호가 시선을 낮추면서 해인을 바라봤다.“더 흥분하지 않아?”‘뭐라는 거야?’해인은 유호에 대해 또 하나 새삼스러운 사실을 알게 됐다.이 남자, 생각보다 훨씬 대담했다....한바탕 정신없이 움직이고 나서야 두 사람은 겨우 집에 돌아왔다. 해인이 미리 부탁해 둔 덕분에 아주머니는 몸보신하라고 삼계탕을 일찍 준비해 두었다.유호는 집에 들어오자마자 곧장 씻으러 들어갔다.해인은 병원에서 가져온 검사 결과지를 하나씩 정리했다. 그러다 그 사이에 끼어 있는 초음파 사진 한 장을 발견했다.아기의 첫 사진이었다. 아직은 조그만 점 하나처럼 보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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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4화

임신 초기라 그런지 해인은 며칠째 자꾸 잠이 쏟아졌다.해인은 흔들의자에 누워 있었다. 햇볕이 너무 포근해서 몸이 스르르 풀어졌다. 한낮이기는 했지만 날씨도 그리 덥지 않았다. 해인은 그대로 잠이 들 뻔했다. 그런데 유호가 해인을 확 끌어안아 드는 바람에 해인은 화들짝 잠기운에서 깼다.해인은 아직도 정신이 덜 든 눈으로 유호를 바라보다가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이제야 봤어?”유호는 허리를 숙여 해인의 배에 머리를 가져다 댔다.“임신하면 어떤 느낌이야? 어쩐지 아까 너 밥도 얼마 못 먹더라. 입덧 때문이야?”유호는 배에다 한참 귀를 기울여 봤지만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 모습을 보던 해인은 웃음이 나왔다. 어쩐지 유호가 해인보다 더 어리둥절해하는 것 같았다. 해인이 처음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보다도 더 놀란 눈치였다. ‘왜 이렇게 귀엽지.’며칠 동안 해인은 자신이 임산부라는 사실을 자꾸 잊고 지냈다.해인은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조금 입덧이 있나 봐. 확실히 입맛이 별로 없어. 신 게 먹고 싶어.”유호가 바로 물었다.“매실? 오미자 양갱?”해인은 잠시 곰곰이 생각했다. 군것질 앞에 마음이 약해지는 사람처럼 살짝 입술을 핥았다.“오미자편. 어릴 때 먹던 그거 있잖아. 말랑말랑하고 쫀득쫀득한데 네모나고, 붉은빛이 도는 주황색에 투명한 거.”예전에 해인이 그걸 좋아하는 걸 알고 아버지는 자주 사다 주곤 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로는 해인은 그 맛을 아주 오랫동안 잊고 지냈다.그 집은 줄 서기도 쉽지 않았던 걸로 기억했다. 게다가 하루 판매 수량도 정해져 있어서 오래 기다려도 못 사는 날이 많았다.유호는 미간을 찌푸렸다.“근데 오미자편, 임산부가 먹어도 괜찮아?”해인이 조심스럽게 답했다.“조금만 먹으면 되지 않을까?”“알았어. 기다려.”말을 끝낸 유호는 겉옷을 챙겨 입기 시작했다.“내가 사올게.”유호가 셔츠 자락을 바지 안으로 정리해 넣는 걸 보며 해인이 조용히 말했다.“그냥 가지 마.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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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5화

이런 통증은 유호에게도 낯선 감각이었다.유호는 얼마 전 수술을 마쳤다. 의사도 회복이 꽤 괜찮다고 했다.수술이 끝난 지도 벌써 2주 가까이 지났다. 보통이라면 상태가 점점 더 나아져야 맞았다.그런데 머리 전체가 욱신거릴 정도가 아니라 시야까지 흐려질 만큼 심하게 아팠다. 창밖으로 비치는 달빛도 유호의 눈에는 번진 빛덩이처럼 흔들려 보였다.거의 삼십 분이 다 지나서야 그 고통이 서서히 가라앉았다.유호는 멍한 눈으로 침대 위에서 곤히 잠든 해인을 바라봤다.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곁에 있었다. 해인의 뱃속에는 유호와 해인의 아이도 자라고 있었다.앞으로 다가올 시간은 점점 또렷해지는 듯했다. 지나온 어두운 나날은 이제 뒤로 물러났고, 유호와 해인은 분명 행복한 가정을 이루게 될 것만 같았다.‘그런데 이렇게 아픈 걸 보면, 설마 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건 아닐까?’‘설마 아니겠지. 그런데 왜 이렇게 아픈 거지.’유호는 베란다로 걸어 나갔다. 손가락이 몇 번이나 미끄러진 끝에야 라이터에 불을 붙일 수 있었다. 유호는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유호는 어두운 베란다에 서서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유호의 눈빛은 어둡게 잠겨 있었다.예전의 유호는 거칠 것 없이 살았다. 하고 싶은 대로 움직였고, 두려운 것도 별로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소중한 사람이 생겼다. 그러자 유호는 문득 겁이 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자기에게 무슨 일이 생겨 해인을 지켜 주지 못하게 될까 봐, 유호는 그게 두려웠다.“유호 씨?”한밤중에 잠에서 깬 해인은 자신의 옆자리가 비어 있는 걸 보고 얼른 몸을 일으켰다.해인은 곧바로 베란다 쪽을 봤고, 유호가 거기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는 걸 알아차렸다.해인은 잠기운이 남은 눈을 손으로 문지르며 밖으로 나왔다.“이 늦은 시간에 왜 안 자고 있어?”유호는 해인이 겉옷도 걸치지 않고 나온 걸 보자마자, 거의 반사적으로 해인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안 추워? 왜 이렇게 그냥 나왔어. 얼른 들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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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6화

잠시 뒤, 우진이 다시 돌아왔다. 왠지 미안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팀장님, 죄송합니다. 저는 팀장님...”해인은 가볍게 웃었다.“내 몸 상태 때문이야. 우진 씨가 뭘 잘못한 건 아니지. 오히려 신경 써준 마음을 내가 제대로 못 받아서, 내가 더 미안해.”우진은 머쓱한 듯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렇게 말하는 해인 앞에서 괜히 더 민망해졌다. 며칠 동안 해인이 출근하지 못한 사이에, 우진은 해인이 처리해야 할 업무를 전부 항목별로 정리해 두었다. 그 자료들은 가지런히 해인 책상 위에 쌓여 있었다.우진은 해인 책상 위에 늘 놓여 있던 커피도 치우고, 대신 따뜻한 우유를 올려두었다.한동안 해인이 화장실에 다녀오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돌아오는 길에 보니, 우진은 컴퓨터 화면으로 임산부용 등받이 쿠션을 검색하고 있었다.그때 우진이 갑자기 물었다.“팀장님, 무슨 색 좋아하세요?”해인은 아직 저런 물건이 꼭 필요할 때는 아니라서 괜찮다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우진은 워낙 진심으로 챙기고 있었고, 그런 마음을 굳이 꺾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서 해인은 짧게 답했다.“핑크색.”우진이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역시 제 감이 틀리지 않았네요.”해인처럼 얌전하고 단정해 보이는 사람은 정말 핑크색을 좋아할 것 같았다. 핑크색은 해인에게 잘 어울리는 색이었다. ‘역시 팀장님한테는 이런 색이 잘 맞아.’우진은 자리에서 일어섰다.“팀장님, 점심은 뭐 드실래요? 요즘 구내식당 음식은 좀 괜찮아지긴 했는데, 팀장님 입에 맞으실지 모르겠습니다.”해인은 웃으며 말했다.“나 그렇게 유난스러운 사람 아니야.”이어서 해인이 덧붙였다.“아, 맞다. 점심은 안 챙겨줘도 돼. 나 볼일이 있어서 잠깐 나가야 해.”해인은 시댁에 가볼 생각이었다.그날 태겸이 해인을 태우고 가다가 사고가 났지만, 해인은 시댁에서 해인을 집까지 데려다 주기로 한 기사가 누군가에게 돈을 받고 움직였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게다가 며칠째 최수나와도 계속 연락이 닿지 않았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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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7화

해인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유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유호는 전화기를 귀에 갖다 댔다. 수화기 너머에서 주헌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됐어.”차 안은 밀폐된 공간이었다. 해인은 그 말을 또렷하게 들었다. 그녀는 흠칫하더니 곧바로 유호를 돌아봤다.“뭐가 됐다는 거야? 그분들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왕단영이나 천하솜은 그렇다 쳐도 최수나는 달랐다.유호는 아직 최수나와 해인의 관계를 모르고 있었다.‘혹시 유호 씨가 수나 언니까지 건드린 건 아닐까?’‘설마 수나 언니까지 엮인 건 아니겠지?’유호는 자세한 얘기를 꺼내지 않았다.“이따 본가에 가면 알게 돼.”...2분 뒤, 차는 본가 앞에 멈춰 섰다.해인은 기다릴 것도 없이 차 문을 열었다. 막 발을 내딛자마자 멀리서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다. 천하솜의 큰 목소리는 한참 떨어진 곳에서도 또렷하게 들릴 정도였다.“회장님! 조우는 이제 겨우 일곱 살이에요! 학교 다닌 지 얼마나 됐다고, 원한 살 일도 없는 애를 대체 누가 납치해 갔겠어요?”“조우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저는 어떻게 살라고요!”조우는 한원랑의 혼외자였다.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돈을 노린 납치라고 하기에도 이상했다. 조우가 한씨 가문의 혼외자라는 걸 모른다면 굳이 조우를 노릴 이유가 없었다. 더구나 한씨 가문에는 군 쪽 배경까지 있었다. 그런 집안의 사람을 건드릴 배짱이 있는 사람이 과연 몇이나 되겠는가?해인은 자신도 모르게 유호를 돌아봤다.유호는 느긋하게 서 있었다. 그러면서 턱을 살짝 치켜들었다.누가 봐도 칭찬을 기다리는 눈빛이었다.해인은 어이가 없다는 듯 한숨 비슷한 웃음을 삼켰다. 아이 달래듯 유호의 손을 가볍게 잡아 주었다.유호의 입꼬리가 슬쩍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한편 왕단영도 옆에서 훌쩍이고 있었다.“흐윽, 회장님, 문승이가 오늘 아침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스포츠카 한 대가 끼어드는 바람에 가드레일 쪽으로 몰렸어요.”“그대로 바닥에 크게 넘어져서 허벅지 살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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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8화

조우는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쳤다.“그 사람이 내 엉덩이만 골라서 때렸어! 아주 다 터진 줄 알았다니까! 진짜 아파 죽겠어!”엉덩이는 살집이 많은 곳이라 꼭 심하게 다쳤다고 보긴 어려웠다. 다만 조우는 어려서부터 귀하게만 자란 아이였다. 지금껏 조우에게 손을 댄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이렇게 한 번 크게 얻어맞았으니, 조우의 머릿속에 오래 남을 수밖에 없었다.천하솜은 원망이 가득한 눈으로 유호를 노려봤다. 그렇다고 대놓고 따지지도 못했다.유호는 일을 너무 깔끔하게 처리했다. 꼬투리 잡힐 만한 흔적이 남아 있을 리 없었다. 이 일은 누가 봐도 끝까지 밝혀질 가능성이 낮았다.한원랑도 마찬가지였다. 양쪽 아이들 상처는 시간이 지나면 나을 정도였다. 증거도 없는 일을 두고 정말로 벌을 줄 생각은 없어 보였다.한원랑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건 집안의 겉모습이었다. 조용하고 화목해 보이는 것, 한원랑에게는 그게 더 중요했다.해인은 한씨 가문에 들어온 뒤로 한참이 지나도록 최수나를 보지 못했다. 해인 마음속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불안이 자꾸 고였다.해인이 한원랑을 바라보며 물었다.“아버님, 최 여사님은 어디 가셨어요?”한원랑이 무심히 답했다.“Y시에 갔다. 아직 안 돌아왔어.”‘Y시?’‘또 연주하러 간 걸까?’잠시 뒤, 한원랑은 친구를 만나러 밖으로 나갔다.문승은 아직 병원에 누워 있었다. 왕단영은 문승에게 가져다줄 식사를 챙기느라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왕단영이 유호 곁을 지나칠 때, 고개를 들고 유호를 봤다.“유호야, 아무리 그래도 내가 널 한때 키워 준 사람인데. 조우 일은 그렇다 쳐도, 조우는 네 배다른 동생이잖니?”“문승이는 내가 나중에 데리고 들어온 애라 한씨 가문 피는 한 방울도 안 섞였어. 그런데도 네가 문승이한테 이렇게까지 심하게 할 필요가 있었니?”의사는 문승이 힘줄까지 다쳤다고 했다. 두세 달은 꼼짝없이 누워 있어야 한다는 말도 덧붙였다.조우와는 비교도 안 될 만큼 문승 쪽이 더 심했다.눈썹을 살짝 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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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9화

김 집사는 그 상자를 해인에게 건넸다.반지 상자처럼 생긴 물건이었다. 해인은 별생각 없이 그걸 가방 안에 넣어 두었다. 천하솜이 유호와 해인에게 관계를 조금 풀어 보자며 보내온 선물쯤으로 여겼다.본가의 점심상은 퍽 푸짐했다. 해인은 아직 입덧이 조금 있는 상태였지만, 그래도 영양은 골고루 챙겨야 한다는 생각에 차려진 음식마다 꼭 맛을 봤다.그런데 두 사람이 본가를 나와 차에 오른 지 채 10분도 되지 않았을 때, 유호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렸다.뒷머리가 바늘로 찌르는 듯 또다시 욱신거리기 시작했다.유호는 눈을 감고 좌석 등받이에 몸을 기댄 채,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리며 버텼다.해인은 유호 표정이 심상치 않다는 걸 단번에 알아챘다.해인이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그래?”유호가 검은 눈을 천천히 떴다. 눈가에는 옅은 물기가 번져 있었지만, 정작 말투만큼은 느슨하고 태연했다.“그렇게 걱정돼?”해인은 유호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맺힌 걸 놓치지 않았다.해인은 장난으로 넘길 생각이 없었다. 더 또렷한 목소리로 물었다.“대체 어디가 불편한 거야? 어디 아픈 거야?”유호는 조금 아프다고 호들갑을 떨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 통증에 유난을 떨면 그게 무슨 사내인가 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별거 아니야.”해인은 유호 얼굴을 잠시 가만히 바라봤다. 그러고는 곧장 결론을 내렸다.“병원으로 가요!”운전기사는 그 말을 듣자마자 빠르게 차를 돌렸다.유호는 그게 우스운지 소리 없이 웃었다.“분명 내 사람들인데, 이제 다 네 말부터 듣네.”앞에서 운전하던 기사는 괜히 코끝을 한번 만졌다. ‘왜 그런지야 대표님이 더 잘 아시잖아요.’‘정작 본인부터 완전히 사모님 말이면 꼼짝 못 하시면서...’해인은 가방 안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우진에게 연락해서 오후에는 회사에 조금 늦게 들어가겠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그런데 손끝에 느닷없이 아까 천하솜이 김 집사를 통해 전해 보낸 작은 상자가 걸렸다.해인은 무심코 그 상자를 열었다.그 안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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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0화

방 문은 잠겨 있었다.해인이 문을 두드린 지 꼬박 2분 정도 지났을 때, 한 가사도우미가 조심스레 이쪽으로 걸어왔다.“작은 사모님, 그만 두드리세요. 안에는 아무도 없습니다.”해인은 곧바로 물었다.“최 여사님은요? 어디 계세요? 사실대로 말씀해 주세요!”해인은 그 가사도우미를 알아봤다. 최수나 곁에서 오래 붙어 시중들던 사람이었다.최수나 곁을 그렇게 오래 있었다면, 아무래도 정이 없을 리 없었다.가사도우미는 금방이라도 말을 꺼낼 듯 입술을 달싹이다가, 결국 주위를 한번 살폈다. 그러고는 남들 눈을 피해 아주 조심스럽게 한쪽 방향을 손끝으로 가리켰다.해인은 고개를 들어 그쪽을 바라봤다.한원랑의 서재였다.얼마 전 해인도 한 번 들어간 적이 있는 곳이었다. 그때 해인은 거기서 선물 하나를 골라 나오기도 했다. 듣기로는 한원랑조차 아무나 발을 들이는 걸 허락하지 않는 장소인데, 안에는 한원랑이 아끼는 물건들만 가득하다고 했다.해인은 곧장 그쪽으로 뛰어갔다.하지만 문은 단단히 잠겨 있었다. 열쇠가 없이는 안에 들어갈 수 없었다.해인의 눈가가 붉어졌다. 해인은 미친 듯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언니? 언니, 안에 계세요?”해인은 문틀에 귀를 바짝 댔다. 하지만 안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정말 사람 하나 없는 것처럼 고요했다.해인은 발만 동동 굴렀다. 그래도 이렇게 애만 태운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었다.그때 해인은 문득 서고 창문이 떠올랐다. 그곳 창문은 전부 한지로 바른 고풍스러운 형태였다. 해인은 예전에 유심히 본 적이 있었다.해인은 바로 반대편 벽 쪽 창문으로 달려갔다. 망설일 것도 없이 손가락으로 창호지에 구멍을 냈다.안쪽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방 안에는 따로 막아 놓은 공간이 있었다. 투명한 유리로 만든 원통형 구조물이었고, 주변에 놓인 진귀한 물건들과는 완전히 분리되어 있었다. 그 안 바닥에 한 여자가 힘없이 주저앉아 있었다. 맨발이었다. 옆에는 줄이 끊어진 가야금이 하나 놓여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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