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321 - Chapter 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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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1화

입으로는 동현을 바보라고 했지만, 최수나의 눈가에는 뜨거운 눈물이 맺혀 있었다.그런 최수나를 보고 있자니 해인은 너무나 괴로웠다.마치 커다란 손이 가슴을 거칠게 움켜쥐고 뒤흔드는 것 같았다. 심장까지 저며 오는 듯이 아팠다.최수나는 사랑이라는 말을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그런데도 최수나의 말마다, 최수나의 숨결마다, 동현을 얼마나 사랑했는지가 그대로 배어 있었다.해인도 미처 몰랐다.최수나와 동현 사이에 그런 지난날이 있었고, 그 시간이 그렇게 아름다웠다는 걸.만약 마지막에 한원랑이 최수나를 눈여겨보지 않았더라면. 최수나가 동현까지 휘말릴까 봐 먼저 이별을 말하지 않았더라면.그 마지막 세 달 사이에 동현은 아마 최수나를 강씨 가문 사람들에게 정식으로 소개했을지도 몰랐다.어쩌면 약혼 이야기까지 오갔을지도 몰랐다.해인은 시선을 들어 최수나의 고운 얼굴을 바라봤다.해인은 천천히 다가가 최수나의 손을 가볍게 감싸 쥐었다.“언니, 큰오빠가 이제 이 세상에 없다고 해도... 언니는 제 가족이에요.”해인이 교통사고 현장에 도착했을 때, 동현은 이미 숨이 꺼져 가고 있었다.동현은 병원으로 옮겨지는 길에 끝내 숨을 거뒀다.죽는 그 순간까지도 손에는 그 펜던트를 힘껏 쥐고 있었다.펜던트에는 동현의 피가 잔뜩 묻어 있었다.그때 동현은 해인을 바라봤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은 눈빛이었다.하지만 동현은 끝내 그 말을 꺼낼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그렇게 끝내 눈을 감지 못한 채, 억울함을 그대로 남긴 채 숨을 거두었다.해인의 눈시울이 붉어졌다.그날을 떠올리기만 해도 눈 안쪽이 따끔하게 아팠다.해인은 콧소리가 짙게 밴 목소리로 말했다.“큰오빠도 언니가 잘 살길 바랐을 거예요. 언니는... 이 집에서 나갈 생각은 안 해 보셨어요?”최수나에게 이곳은 좋은 곳이 아니었다.여자 셋이 모이면 조용할 날이 없는데, 한원랑은 예순을 바라보는 나이에 아직도 옛날식으로 여자들을 거느리고 있었다.세 여자 다 제대로 된 자리는 없었다.다른 두 사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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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2화

“게다가 한원랑은 아버지 노릇을 할 자격도 없어. 해인이 너도 이미 봤잖아. 한원랑이 친아들한테 손 대는 거.”그 말이 나오자 해인은 입을 다물었다.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보자면, 한원랑은 분명 한참 모자란 사람이었다.천하솜이 조우를 낳은 것도 결국은 자신의 손에 쥔 카드를 하나 더 갖기 위해서였다.자신의 앞날을 위해 쓸 수 있는 카드가 필요했던 거였다.하지만 그 세월 동안 한원랑이 한 일이라고는, 천하솜과 조우 모자가 먹고 사는 데 부족하지 않게 해 주고, 매달 용돈을 챙겨 주고 아이 학비를 대 주는 것뿐이었다.딱 거기까지였다.그룹 일과 관련된 얘기는 한원랑은 입도 떼지 않았다.조우는 그룹 지분도 없었고, 한씨 가문 사람들에게 해마다 돌아가는 배당금조차 한 푼도 받지 못했다.천하솜은 원래 한원랑의 비서였다.그런데 임신을 한 뒤부터는 한원랑은 천하솜을 회사에도 못 나가게 했다.최수나는 그걸 똑똑히 보고 있었다.그런데도 천하솜 그 멍청한 여자는, 한원랑이 여자를 바깥으로 내돌리고 싶지 않아 하는 소유욕 때문이라고 믿고 있었다.하지만 그게 어디 그런 이유겠는가?한원랑은 천하솜을 자신의 회사에 드나들게 하면, 업무를 핑계 삼아 회사 일에 손을 뻗고 틈을 타서 해를 입힐까 봐 경계한 거였다.이런 쪽에서는 남자들이 여자보다 훨씬 영악했다.그런데도 여자들은 자꾸만 자신의 마음을 속였다.남자가 자기를 아껴서 그러는 거라고, 제멋대로 믿고 싶어 했다.해인은 말 없이 서 있었다.해인은 유산이 최수나의 몸에 얼마나 큰 상처를 남겼을지 알고 있었다.더구나 뱃속의 아이를 잃은 것도, 최수나가 자신의 몸을 거의 망가뜨리다시피 한 끝에 벌어진 일이었다.해인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몸은 제대로 검사해 보셨어요?”“그럴 필요 없어. 어차피 나는 다시는 안 낳을 거니까.”최수나가 잠깐 말을 멈췄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맞다. 동현이 사고가 나던 날, 나한테 전화를 한 통 했었어. 해인이 너는 알고 있었어?”막 나가려던 해인의 발걸음이 바로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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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3화

“왜 돌아온 뒤부터 계속 기운이 없어 보여? 누가 너 괴롭혔어?”해인이 돌아온 건 제법 늦은 시각이었다.밖은 이미 완전히 어두워져 있었다.유호는 오늘 회사에 들러 회의를 하나 마치고 집에 돌아왔다.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해인이 들어오지 않았다.운전기사에게 물어보고서야, 해인이 오늘 아무 말도 없이 본가에 다녀왔다는 걸 알게 됐다.“본가에서 날 괴롭힌 사람은 없었어.”해인은 잠시 말을 멈췄다.최수나에 관한 일은 유호에게 말하지 않았다.유호를 믿지 못해서가 아니었다.감정이라는 건 원래 아주 사적인 것이었다.최수나가 그때 동현에게 먼저 이별을 말한 것도, 결국은 동현을 지키기 위해서였을 것이다.그 비밀 역시 그래서 끝까지 감추고 싶었을 테니까.처음부터 두 사람은 가족들 몰래 만나는 사이였다.그 일은 이미 오래전 일이었고, 동현은 이제 세상에 없었다.굳이 그 상처를 다시 끄집어내 헤집을 필요는 없었다.게다가 최수나는 유호 어머니의 대리인처럼 여겨지는 사람이었다.그런 관계까지 겹쳐 있으니, 해인은 최수나와 동현 사이의 일을 유호에게 꺼내는 게 왠지 이상하게 느껴졌다.“그럼 누가 내 여자를 이렇게 우울하게 만들었지? 눈도 왜 이렇게 빨개.”유호가 해인의 눈을 들여다봤다.손가락이 해인의 눈썹뼈를 따라 가볍게 스쳤다.“이렇게 예쁜 눈이, 조금 전까지 울었던 눈 같은데?”“그냥... 갑자기 오빠들 생각이 나서.”해인은 입술을 깨물다가 고개를 숙여 유호의 어깨에 살며시 기대었다.“지금 에너지가 좀 필요해. 빨리 나한테 좀 나눠 줘.”해인은 유호에게서 나는 맑고 서늘한 우디 향을 천천히 들이마셨다.유호가 입꼬리가 비스듬히 올라갔다.일부러 해인의 말을 다른 뜻으로 받았다.“어떻게 나눠 줄까?”유호가 목을 약간 젖혔다.한 손으로 해인의 허리 뒤를 끌어당기면서, 해인의 몸이 더 바짝 닿게 만들었다.아무 대비도 하지 못했던 해인은 그대로 유호의 품 안에 안겼다.그러다 붉은 입술이 뜻하지 않게 남자의 목덜미에 살짝 닿았다.“이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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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4화

해인은 침대 머리맡 탁자 위에 놓인 빈 피임약 상자를 바라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어젯밤 마지막에, 한유호가 정말 피임을 했던가.’해인은 기억을 더듬어 봤다.이미 너무 지쳐서 정신이 몽롱했고, 거의 잠들기 직전이었다.그런데 그때 유호가 뒤에서 해인을 끌어안더니, 귓불을 천천히 머금은 채 조용히 속삭였다.“여보, 깨물지 말고 힘 빼.”그 말이 떠오르자 해인의 뺨이 금세 달아올랐다.해인은 급히 일어나 찬물로 얼굴을 몇 번이나 두드렸다.그래도 얼굴에 오른 열기는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해인은 다시 서둘러 샤워를 마쳤다.막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을 때, 방문 밖에서 조심스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사모님, 대표님이 아침 일찍 사모님 드리라고 선물을 준비해 두신 것 같아요. 얼른 나오셔서 한번 보세요.”집안 청소를 맡는 가사도우미의 목소리였다.해인은 눈을 깜빡였다.“선물이요? 무슨 선물인데요?”궁금증이 확 올라온 해인은 바로 문을 열고 거실로 빠르게 나갔다.이 가사도우미는 유호가 오랫동안 믿고 써 왔던 사람이었다.집안 구조도 훤해서, 손에 걸레를 든 채 테이블을 닦고 있었다.“저도 뭔지는 모르겠어요. 상자에 담겨 있던데요.”가까이 다가가 확인한 해인은 그대로 멈춰 섰다.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 얼굴에 그대로 번졌다.가야금이었다.결 좋은 자단목에서 은은한 나무 향이 배어 나왔다.한눈에 봐도 이름난 장인이 손본 물건 같았다.‘진짜... 기억하고 있었던 거야?’어젯밤 해인이 정신이 흐릿한 채 침대에서 무심코 한마디 했을 뿐이었다.어릴 때 며칠 가야금을 배운 적이 있었는데, 그렇게 놓아 버린 게 조금 아쉽다고.그 말 한마디를 듣고, 유호는 아침부터 배울 도구를 통째로 해인 앞에 가져다 놓은 셈이었다.해인은 가야금 위를 손끝으로 천천히 쓸었다.쉽게 손을 떼지 못했다.‘이걸 정말... 나 주려고 준비한 거야?’가사도우미가 웃으며 말했다.“사모님, 가야금 타실 줄 아세요? 한번 살짝 뜯어보세요. 소리가 어떤지 들어보게요.”해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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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5화

희정은 해인과 최수나의 뒷모습을 줄곧 바라보고 있었다.두 사람이 찻집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에도, 희정은 한동안 시선을 거두지 못했다.‘저 둘이 대체 언제 저렇게 가까워진 거지?’며칠 전 Y시에서 최수나가 해인 편을 들었을 때부터, 희정은 이상하다고 느끼고 있었다.최수나는 원래 고고한 데다 좀처럼 곁을 내주지 않는 사람이었다.한씨 가문 안에서도 늘 한 발 떨어져서, 누구 일에도 깊이 엮이지 않으려는 태도를 유지해 왔다.그런 최수나가 해인을 위해 나섰다.그 안에 이유가 없을 리 없었다.그 이유가 정확히 무엇인지는 희정도 알 수 없었다.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했다.최수나와 해인은 이미 한편이라는 사실이.며칠 전 희정이 최수나에게 보낸 선물도, 손도 대지 않은 채 그대로 되돌아왔다.“감독님, 여기 계셨네요. 한참 찾았습니다.”배가 불룩 나온 중년의 투자자가 다른 룸에서 걸어 나왔다.오늘 희정은 마침 이곳에서 투자자와 미팅을 잡아 둔 상태였다.상대 쪽 의도는 뻔했다. 자기 쪽에서 미는 배우를 작품에 꽂아 넣고 싶은 거였다.촬영 현장에 낙하산 배우가 끼어드는 일은 드문 일이 아니었다.희정이 바로 웃으며 말했다.“안이 좀 답답해서 잠깐 바람 쐬러 나왔어요.”희정은 태연하게 말을 이었다.“아까 말씀하신 건 제가 신중하게 생각해 봤는데요. 추천해 주신 배우분, 괜찮긴 해요. 다만 여자 주인공을 맡기기에는 분위기가 조금 안 맞는 것 같아서요.”“대신 그 배우분한테 훨씬 어울리는 역할이 하나 있어요. 나중에 바로 현장 오디션 보라고 하세요.”좀 이상한 투자자들은 정말 별별 요구를 다 하기도 했다.희정이 저 정도로 말해 준 것도 체면을 세워준 거나 다름없었다.실상은 그저 듣보잡에 가까운 무명 배우였다.성형 티가 심하게 나는 얼굴에 카메라 앞에서 웃기만 해도 표정이 어색하게 굳어졌다.그런 사람이 희정 작품의 여자 주인공을 하겠다고 나선 셈이었다.어이가 없었다.‘정말 분수도 모르고.’속으로는 한참 업신여기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스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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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6화

셋 다 이름도 명분도 없이 숨어서 지내는 거라면 그나마 나았다.셋이 서로를 견제하면서 버티는 구도가 유지될 테니까.하지만 그중 누구 하나라도 결국 정식으로 부인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면, 남은 두 사람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된다.왕단영이 가장 중요한 대목을 놓치지 않고 물었다.“방금 뭐라고 했어? 네가 며칠 전 Y시에서 최수나하고 강해인이 같은 식탁에서 밥 먹는 걸 봤다고?”최수나는 틈만 나면 Y시에 한 번씩 다녀오곤 했다.겉으로는 쇼핑하러 간다고 했고, 돌아올 때마다 명품 가방 하나씩 꼭 들고 왔다.겉으로 보기에는 딱히 흠잡을 데가 없었다.그래도 왕단영은 늘 뭔가 수상한 구석이 있다고 느꼈다.사람을 붙여 본 적도 있었다.그런데 이상하게도 최수나를 따라붙은 사람들은 매번 공항에 도착한 뒤 얼마 못 가 사람을 놓쳐 버렸다.최수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자신의 뒤를 밟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희정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이모님. 그때 Y시에서 최 여사님이 강해인한테 무척 잘해 주시더라고요.”왕단영이 곧바로 되물었다.“그래서 둘이 Y시에서 뭘 했는데? 밥만 먹었어? 쇼핑도 하고?”희정이 대답했다.“최 여사님은 공연장에서 가야금을 타셨어요.”왕단영과 천하솜이 서로를 마주봤다.그건 정말 처음 듣는 얘기였다.한원랑은 소유욕이 강했다.집 안에 들인 여자들이 밖에 나가서 사람들 앞에 서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천하솜이 딱 그런 예였다.아이를 낳은 뒤로 천하솜은 줄곧 집에만 머물렀다.예전에 그룹에서 비서로 일하던 자리도 이미 다른 비서가 차지했다.최수나가 Y시에 가는 이유가, 남들 몰래 가야금을 타기 위해서였다는 말을 듣자 천하솜이 탁자를 세게 내리쳤다.“아니, 최수나 저게 간이 배 밖으로 나왔네. 밖에 나가서 웃음까지 팔고 다녀? 회장님 체면을 바닥에 처박는 짓이잖아.”천하솜이 씩씩거리며 말했다.“그 여우 같은 게 감히 부인 자리까지 넘본다고? 회장님 뜻을 거스른 것만으로도 혼쭐이 나기에 충분해.”희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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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7화

자신의 생각이 먹혔다는 걸 알아차리자, 희정은 그제서야 이번에 두 사람을 불러낸 진짜 이유를 꺼냈다.“단영 이모님, 천 여사님. 저도 더는 숨기지 않을게요. 저는 한유호가 좋아요. 한유호하고 결혼하고 싶어요.”상대가 다른 사람이었다면 희정도 어느 정도는 포장했을 것이다.아무래도 유호는 이미 해인과 결혼한 몸이다. 그런 유호를 두고 대놓고 두 사람을 헤어지게 만들고 싶다고 말하면, 남들 눈에는 꼴사나워 보일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왕단영과 천하솜 앞에서는 굳이 그럴 필요가 없다고 희정은 생각했다.‘저 사람들은 이미 한 지붕 아래서 서로의 존재를 받아들이고 사는 사람들이야.’‘그런 사람들 앞에서 뭘 더 감출 필요가 있겠어.’두 사람이 짧게 눈을 마주쳤다. 먼저 입을 연 건 왕단영이었다.“희정아, 그게 무슨 말이야? 유호는 이미 아내가 있잖아. 그런데 네가 어떻게 유호랑 결혼을 해. 그러면 유호 입장만 곤란해지지.”왕단영은 그래도 겉으로는 자애로운 척해야 했다.한때 유호를 돌본 적이 있는 사람이니, 최소한의 체면은 갖춰야 했다.그 말을 들은 천하솜이 곧장 비웃듯 코웃음을 쳤다.“참, 별걸 다 주인 행세하네. 누가 들으면 유호를 네가 키운 줄 알겠다. 애 좀 돌봤다고 무슨 유호랑 대단한 사이인 것처럼 굴기는.”천하솜의 비아냥에도 왕단영은 그저 웃고 넘겼다.왕단영은 이미 이런 말에 상처받을 단계를 초월해 있었다.희정은 두 사람의 반응을 차분히 살피다가, 조용한 목소리로 다시 말을 이었다.“그런데요, 강해인이 회사 지분 전부를 쥐고 있다는 얘기, 두 분도 들으셨죠? 두 분은 그 지분, 안 갖고 싶으세요?”그 말이 떨어지자 두 사람의 눈에 욕심이 빠르게 스쳤다.그룹 지분을 원하지 않을 리 없었다.그동안 두 사람이 서로 물어뜯고 버틴 이유도 결국은 그것 하나 때문이었다.그룹 지분이 있어야 자기 자리도 확보하고, 앞으로의 삶도 보장받을 수 있으니까.그런데 한원랑은 지분을 몽땅 큰아들 쪽으로 넘겨 버렸다.또 겉으로는 영리해 보이는 유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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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8화

집안에 여자 하나만 줄어도, 나중에 자기들 손에 들어올 지분은 그만큼 더 많아질 수 있었다.게다가 회장님은 원래부터 최수나를 유난히 편애했다.천하솜과 왕단영은 남 좋은 일만 시켜 줄 생각은 전혀 없었다....두 주 연속 주말마다, 해인은 한씨 가문 본가에 가서 최수나에게 가야금을 배웠다.유호는 겉으로는 해인을 응원해 줬지만, 쉬는 날 데이트 시간이 모조리 그쪽으로 넘어가 버리니 속이 영 편할 리가 없었다.해인이 가야금을 메고 또 나가려고 하자, 유호가 눈썹을 슬쩍 치켜세웠다.“언제부터 최 여사랑 그렇게 가까워졌어?”그 말 속에는 은근한 질투가 묻어 있었다.해인이 바로 말했다.“오늘 하루만이야. 내일은 최 선생님이 Y시에 일이 있으시대. 그러니까 내일은 집에서 당신이랑 같이 있을게.”유호가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이제 나는 두 번째야? 최 여사가 바쁘니까 그때서야 나랑 있어 주는 거야?”“그런 거 아니야.”해인은 신발을 갈아 신다가 고개를 돌렸다.유호는 아직도 현관 앞에 서 있었다.해인은 다시 몸을 틀어 유호의 목에 팔을 감았다.해인은 먼저 유호의 입술에 가볍게 입을 맞췄다.“내가 가야금 배워서 나중에 당신한테 들려주고 싶어서 그래.”유호의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나 때문에 배우는 거야?”해인은 잠깐 멈칫했다.‘거기까지는 아닌데... 또 혼자 그렇게 받아들이네.’그래도 해인은 굳이 정정하지 않았다.해인이 집을 나간 뒤, 유호는 집 안에 남아 해인만 기다리는 사람이 됐다.해가 기울고 바깥이 서서히 어두워질 무렵, 유호는 전화 한 통을 받았다.유호의 표정이 급히 바뀌었다.겉옷도 챙겨 입지 못한 채 곧바로 집 밖으로 뛰어나갔다....가야금 연습을 마치고 본가에서 나온 해인은, 기업 경영 관련 서적을 사러 서점에 들를 생각이었다.최수나는 직접 해인을 문밖까지 배웅했다.최수나가 부드럽게 말했다.“도착하면 나한테 꼭 연락해. 기사님, 잘 모셔다 드리세요.”장 기사는 본가 쪽 운전기사였다.그는 고개를 숙이며 앞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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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9화

“기사님, 저는 시내 제일 큰 서점 앞에 내려 주시면 돼요.”해인은 뒷좌석에 앉아 창문을 아주 조금 내렸다.이 계절의 B시에는 곳곳에 꽃 향기가 감돌았다. 향기가 맑고 은은해서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마음까지 탁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늦게 들어가면 유호를 오래 기다리게 할까 싶어, 해인은 핸드폰을 꺼내 유호에게 먼저 전화를 걸 생각이었다.그런데 막 꺼내 보니 핸드폰은 배터리가 다 됐는지 전원이 꺼져 있었다.해인은 입술을 살짝 다문 채 잠시 생각하다가 조용히 말했다.“기사님, 죄송한데 핸드폰 좀 빌려주실 수 있을까요?”장 기사는 잠깐 말이 없었다.망설이는 기색이 스쳤지만, 결국 센터패시아 위에 올려 둔 핸드폰을 집어 해인에게 건넸다.배경 화면에는 어린 남자아이가 환하게 웃고 있었다.8, 9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로, 웃는 모습이 유난히 해맑았다.해인은 핸드폰을 받아 들었다.아직 통화 버튼을 누르기도 전이었는데, 화면 위로 메시지가 떠올랐다.[우리 아들 상태가 더 나빠졌어. 의사가 빨리 수술비 마련하래. 한 회장 댁에서 그렇게 오래 일했으면서 몇 달 치 월급이라도 미리 당겨 달라고 못 해?]해인이 일부러 남의 사생활을 들여다보려고 한 건 아니었다.정말 우연히 눈에 들어온 것이다.해인은 입술을 꾹 다물었다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기사님, 아드님이 어디가 많이 아프세요? 돈이 많이 필요한가요?”장 기사는 본가 쪽 운전기사였다.평소에는 접점이 많지 않았지만, 최근 해인이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한 뒤로는 거의 매번 장 기사가 해인을 집까지 데려다 주곤 했다.장 기사의 얼굴에는 난감한 기색이 떠올라 있었다.이야기를 길게 하고 싶지 않은 눈치가 분명했다.해인도 그런 문제는 개인 사정과 맞닿아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래서 더 깊이 캐묻지는 않았다.해인은 늘 들고 다니는 가방 안을 뒤졌다.잠시 뒤 카드 한 장을 꺼내 장 기사 쪽으로 내밀었다.“기사님, 여기 2천만 원 들어 있어요. 우선 이걸로 급한 데 쓰세요.”부드러운 해인의 목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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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0화

안색이 하얗게 질린 해인이 자기도 모르게 물었다.“누구예요?”장 기사는 고개를 저었다.더는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다.해인도 장 기사에게 장 기사 나름의 사정이 있다는 걸 깨닫고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이번 일은 정말 아슬아슬했다.해인이 잠깐 사이에 품었던 선의 덕분에 간신히 화를 피할 수 있었다.‘만약 그 선의가 없었다면 어떻게 됐을까?’그 생각만 해도 해인의 등골이 서늘해졌다.‘조금만 어긋났어도 정말 큰일 날 뻔했어.’해인은 급히 차문을 열고 내렸다.목숨이 달린 일이었다.해인은 이런 일 앞에서 대충 넘길 수 없었다.장 기사가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돌이켰다고는 해도, 다시 마음을 바꾸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었다.멀어져 가는 해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운전석에 남아 있던 장 기사는 자신의 뺨을 세게 후려쳤다.그런데도 해인과 장 기사 둘 다 알아차리지 못한 게 있었다.두 사람 뒤로 차 한 대가 더 따라붙어 있었다.점점 어둠이 내려앉는 가운데, 그 차 안에 앉은 남자의 옆얼굴이 반쯤 드러났다.막 불을 밝힌 네온사인이 남자의 얼굴 위로 스쳤다.빛이 번졌다 사라지기를 되풀이할 때마다, 남자의 표정도 밝아졌다 어두워졌다를 반복했다. 마음속이 얼마나 뒤엉켜 있는지 그대로 드러나는 얼굴이었다.태겸이 아니면 또 누구겠는가?해인이 앞쪽으로 뛰어가는 모습을 보던 태겸은 곧장 액셀을 밟았다.태겸은 해인이 사라진 쪽을 향해 차를 몰았다.해인은 사거리를 하나 지나고 나서야 겨우 숨을 돌렸다.그제야 긴장이 조금 풀렸지만, 책을 사러 갈 기분은 이미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해인은 길가에 멈춰 서서 택시를 잡아 집으로 돌아갈 생각으로 손을 들었다.그런데 검은 승용차 한 대가 갑자기 해인 앞에 멈춰 섰다.해인이 미처 반응할 틈도 없이 눈앞에 태겸이 나타났다.태겸은 해인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더니, 그대로 조수석으로 밀어 넣었다.남자의 힘은 강했다.해인에게는 제대로 버틸 틈도 없었다.주변에 있던 사람들 역시 두 사람을 연인 사이의 다툼 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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