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Von:  오월이Gerade aktualisiert
Sprach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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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해인은 고태겸을 7년 동안 사랑했다. 그러나 태겸은 새로운 여자를 얻자, 아무 망설임 없이 그녀를 버렸다. 그래서 해인은 미련 없이 돌아섰고, 자신만의 인생을 다시 시작했다. ... 강해인의 눈에 한유호는 타고난 거친 기운을 지닌 남자, 감히 건드릴 수 없는, 가장 위험한 존재였다. 하지만 불이 꺼진 방 안에서... 유호는 해인의 가느다란 손목을 단단히 움켜쥐고 부드러운 몸을 벽에 밀어붙였다. 입꼬리를 비틀어 올린 채, 나지막하게 웃으며 말했다. “내가 누군지 모른다더니?” “윽...” 그는 해인의 입술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미친 듯이, 숨 돌릴 틈도 없이. 이성이란 건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 어느 날 모임에서 태겸은 술에 완전히 취해 있었다.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그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자, 태겸은 비틀거리며 다가갔다. “해인아... 너무 보고 싶었어. 우리 다시 잘해보면 안 될까?” 그 순간, 해인은 몸을 돌려 태겸의 평생 라이벌 품으로 파고들었다. 태겸이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바라보는 앞에서 해인은 발꿈치를 들어 올려 그 남자의 입술에 키스했다. “소개할게.” “한유호, 내 남편이야.” 그제야 태겸은 깨달았다. 자신이 손수 키웠다고 믿었던 그 장미를... 적이 송두리째 가져가 버렸다는 사실을. ... 그 후, 누군가가 보았다. 폭우가 쏟아지는 밤. 최고 명문가 출신인 태겸 도련님이 해인을 기다리며 밤새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을. 그저 그녀가 한 번만이라도 뒤돌아보길 바라면서. 문이 열렸다. 유호는 셔츠 단추를 몇 개 풀어헤친 채 서 있었다. 몸에는 아직 식지 않은 온기와 욕망이 남아 있었고, 차가운 눈동자 속에는 잔향처럼 욕정이 어려 있었다. 그는 얇은 입술을 비틀며 냉소했다. “뭐가 그렇게 시끄러워?” “한 번만 더 불러 봐. 그럼 네가 그렇게 그리워하던 그 입술에, 네 대신 내가 마음껏 키스해 줄 테니까?” ... 한유호는 한때 고태겸을 질투했다. 미쳐버릴 만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미를 그가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이제... 그 장미는 한유호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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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pitel 1

제1화

달빛이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

버려진 제약 공장 안, 강해인의 몸은 거칠게 꼬인 밧줄에 묶여 있었다.

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기댄 채, 여자의 가느다란 손목은 높이 들어 올려진 채 벽에 고정돼 있었다.

그리고 뒤에서 다가온 남자가 해인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얇은 여자의 허리가 남자의 손아귀 안에서 움츠러들었고, 남자의 입가에는 음습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

“강해인 씨. 아무도 몸값을 들고 안 오면, 그땐 미안하지만 말이야.”

해인의 뒤쪽에서 벨트를 푸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해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고태겸한테... 한 번만 더 전화하게 해 줘.”

납치범이 비웃듯 웃었다.

“열 번을 전화해도 안 오는 인간인데 뭐가 달라져? 돈이든 몸이든, 하나는 내가 가져가야 할 거 아냐.”

그 말이 해인을 자극한 듯해서 몸을 비틀며 간신히 저항했다.

“고태겸은 올 거야. 말귀 못 알아들어? 나한테 손만 대 봐. 고태겸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죽여 버릴 거야.”

해인의 눈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 숨기지 못한 공포를 드러냈다.

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납치범은 잠시 고민한 뒤 짜증 섞인 얼굴로 핸드폰을 던졌다.

“진짜 마지막이다.”

이번에는 신호가 이어졌다.

스피커폰으로 연결된 전화에서 해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태겸의 낮은 목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

[해인아, 예주 쪽에 일이 좀 생겼어. 생일은 나중에 다시 챙기자.]

해인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핸드폰 화면의 시간을 훑었다.

밤 10시 반.

한 시간 반만 지나면 생일은 끝이었다.

해인은 하루 종일 정성껏 차려입은 채 레스토랑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던 태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레스토랑을 나서는 순간 납치범에게 붙잡혀 차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

지금 해인은 울음이 섞일 것 같은 목소리를 억눌러 말했다.

“나 납치당했어. 나 좀 살려줘.”

전화기 너머가 몇 초간 조용해졌다.

이내 태겸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예주가 교통사고를 당했어. 손목이 골절됐어.]

“그래서?”

해인이 전화기를 향해 소리를 질렀다.

“나 지금 죽기 직전이야, 고태겸. 말이 그렇게 어려워? 네 아내가 납치범 손에 죽게 생겼다고!”

다시 침묵.

잠시 후, 태겸의 말투가 누그러졌다. 달래듯 낮아진 음성이었다.

[예주는 여기 연고도 없어. 손도 다친 채로 길바닥에 누워 있어. 내가 예주를 놔두면 예주는 어떡해? 해인아, 이런 걸로 농담하지 마.]

해인은 숨이 멎은 듯 굳었다.

‘농담이겠지?’

눈가에 시큰한 감각이 차오르면서, 머리가 어지럽게 흔들렸다.

숨이 막혀 오는 느낌에 가슴이 조여 왔다.

“하예주는 손목이 부러진 거지, 죽은 게 아니야.”

해인의 입꼬리가 힘없이 올라갔다.

목소리에는 비통함이 배어 있었다.

“용호지구에서 북쪽으로 오십 킬로. 버려진 제약 공장이야. 고태겸, 내일 아침에 시신 수습하러 와.”

해인의 마지막 말이 끝나자마자 통화는 끊겼다.

납치범의 얼굴이 일그러지면서 이를 악물고 강해인을 내려다봤다.

“지금 이 상황에서도 잔머리 굴릴 여유가 있나 보네?”

해인은 스스로를 비웃듯 웃었다.

“뭘 걱정해. 고태겸은 안 와.”

...

하예주는 누구인가?

처음 예주를 도왔을 때, 해인은 자신이 그런 존재를 곁에 들였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예주는 집안 형편이 어려웠지만 성적이 뛰어났다.

해인은 태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대며 예주를 후원했다.

반년 전, 학업을 마친 예주가 직접 찾아와서 은혜를 갚고 싶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태겸의 회사 건물 아래에서 기다렸다.

“무슨 일이든 하겠습니다. 말 그대로 소처럼 일해서라도 은혜를 갚고 싶습니다.”

고씨 가문 같은 최상위 재벌가에게 기부는 체면과 명분을 위한 일일 뿐이었다. 대가를 바라지 않는 것이 당연했고, 태겸 역시 깊이 신경 쓰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이후로 예주는 자꾸 태겸의 시야에 모습을 드러냈다.

얌전한 얼굴에 고개를 숙인 태도, 도움을 청하는 눈빛.

아마 그런 모습이 예주만의 무기였을 것이다.

해인이 이상함을 느꼈을 때, 이미 태겸은 예주 때문에 세 번이나 약속을 취소한 뒤였다.

세 번째는 구청에서 혼인신고를 하기로 한 날이었다.

태겸은 오지 않았고, 혼인신고는 무산됐다.

하지만 사흘 뒤, 해인은 결국 결혼을 했다.

주변 모두가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태겸이 해인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두 사람이 20년 넘게 함께 자라온 사이라는 것을.

예주는 고작 석 달 남짓 나타났을 뿐이었다.

20년과 석 달.

어디를 봐도 강해인이 질 이유는 없어 보였다.

그러나 해인은 자신과 태겸의 관계를 지나치게 믿고 있었다.

지금은 패배했을 뿐 아니라 목숨까지 걸린 상황이었다.

해인의 속눈썹 끝에 눈물이 매달려 있었다.

슬픔과 실망, 체념과 분노가 선명한 얼굴 위에서 뒤섞였다.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바라보고 있는 모습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위태로움을 품고 있었다.

납치범은 침을 한 번 삼켰다.

망설임 없이 강해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손에 힘이 들어가며 천이 찢어지려는 그때.

쾅!

총성이 차가운 밤공기를 갈랐다.

바깥의 나무에 앉아 있던 새들이 나뭇가지에서 일제히 날아올라 사라졌다.

조금 전까지 거친 말을 내뱉던 납치범은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습기 어린 바닥 위에 반듯하게 누운 시신.

머리에 정확히 한 발이 박혀 있었다.

튀어 오른 피가 강해인의 뺨에 묻었다.

본래도 창백하던 얼굴에 더 깊은 파열감이 더해졌다.

두려움을 느낄 틈도 없이, 해인은 본능적으로 총성이 들려온 방향을 바라봤다.

연녹색 군복을 입은 남자가 어둠 속에 똑바로 서 있었다.

남자의 모습은 밤의 어둠과 거의 동화되어 있었고, 달빛 아래에서 어깨의 훈장이 차갑게 빛났다.

역광을 등진 채, 남자는 천천히 강해인 쪽으로 걸어왔다.

마른 낙엽을 밟는 군홧발 소리가 멀리서 가까워졌다.

그러다 발걸음이 멈췄다.

맑고 차가운 나무 향이 공기를 가르며 스며들었다.

코끝에 남아 있던 피 냄새가 흐려졌다.

놀라 고개를 든 해인이 마주친 남자의 눈은 고귀한 기품이 깔려 있었다.

남자는 한미터쯤 떨어진 곳에 멈춰 섰다.

압도적인 기세 탓인지, 숨이 막히는 듯한 긴장감이 공간을 채웠다.

손에 들린 총에서는 아직 희미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강해인의 얼굴에 남아 있는 공포를 본 남자는 입꼬리를 올렸다.

총을 허리 쪽에 꽂으며 한 발 물러섰다.

시선이 얽힌 채 한유호가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머리 위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떨어졌다.

“강해인, 오랜만이네.”

...

해인이 신혼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벽 한 시였다.

해인은 곧바로 피 냄새가 아직 가시지 않은 드레스를 벗어 던졌다.

그리고 욕실에 들어가 샤워기를 틀자, 차가운 물줄기가 머리 위에서 그대로 쏟아졌다.

그제야 얼어붙어 있던 몸이 조금씩 제 온도를 되찾았다.

해인은 젖은 얼굴을 한 번 훔쳤다.

‘조금만 어긋났어도, 다시는 못 돌아올 뻔했네.’

열여섯 살 이전의 해인은 가족 손바닥 위에서 자란 공주 같은 아이였다.

하지만 열여섯이 되던 해, 모든 것이 무너졌다.

아버지와 두 오빠가 동시에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재혼을 선택했다.

연달아 닥친 불행은 한때 완전했던 가정을 산산조각으로 만들었다.

그때 해인을 진흙탕에서 끌어올린 사람이 태겸이었다.

지금도 그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다.

그 시절, 해인을 바라보던 태겸의 눈빛.

아프게 젖어 있던 얼굴.

태겸은 그렇게 말했다.

“해인아, 나랑 같이 집에 갈래?”

그 말은 캄캄한 어둠 속에서 갑자기 켜진 불빛 같았다.

태겸의 가족은 곧 해인의 가족이 됐고, 태겸의 부모는 자연스럽게 엄마와 아빠가 됐다.

그날 이후 해인은 태겸의 집에서 살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는 날, 불안해하는 해인을 위해 태겸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해인아, 내 여자친구가 돼 줘. 평생 잘할게...”

조명 아래에서 태겸의 눈은 흔들림 없이 단단했다.

꽃을 좋아하는 해인을 위해서, 태겸은 수천 평의 꽃밭을 통째로 샀다.

오직 해인을 위해 피어나는 꽃들이었다.

명문가 집안 사람들은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

두 사람은 타고난 한 쌍이라고.

하지만 현실은 망설임 없이 뺨을 후려쳤다.

결국 증명된 건 하나였다.

남자의 약속이란... 호르몬이 가장 왕성할 때 내뱉는 말에 불과하다는 것.

귀로는 들을 수 있어도, 믿을 가치는 없었다.

이제 태겸의 마음에는 예주라는 다른 여자가 자리하고 있었다.

태겸이 해인에게 질렸을 수도 있고,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을 수도 있다.

이유야 어떻든, 태겸은 변했다.

마음이 떠난 남자는 변기 닦은 칫솔보다 더 더러운 법이다.

해인은 화장대 앞에 앉아 꼬박 하루 밤낮을 보냈다.

태겸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해인이 포기하는 건 당연히 힘들었다.

고태겸이라는 남자는 강해인의 인생에서 너무 많은 중요한 장면에 함께 있었으니까.

해인이 멍하니 앉아 있는데, 핸드폰이 울렸다.

화면을 한 번 본 해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전 고태겸이랑 이혼할 생각이에요.”

전화기 너머가 잠시 조용해졌다.

이내 돌아온 말.

[너희 언제 결혼했어?]

해인은 시선을 떨궜다.

‘숨겼지.’

혼인신고를 하던 날도 그랬다.

태겸은 예주에게서 걸려온 전화 한 통에 자리를 떴고, 그대로 일주일간 출장을 갔다.

어제 해인의 생일이 되어서야 돌아왔다.

결혼식은 없었지만 태겸의 부모와 식사를 했고, 해인은 사실상 고씨 가문의 작은 안주인으로 인정받은 상태였다.

해인의 눈가가 붉어졌다.

“어쨌든... 그 사람이랑 끝낼 거예요.”

목소리에 묻은 억울함을 알아챈 도수희가 조용히 말했다.

[언제 나올 거야? 엄마가 차 보내 줄게.]

길고 짙은 머리카락에 얼굴을 가린 해인이, 희고 매끈한 턱선을 드러낸 채 말했다.

“제 일에 엄마는 관여하지 마세요. 엄마한테 갈 생각도 없어요. 부탁이니까 저랑 좀 거리를 두세요.”

그 말을 들은 도수희의 목소리가 한층 가라앉았다.

[해인아... 그때 엄마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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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달빛이 서늘하게 식어 있었다.버려진 제약 공장 안, 강해인의 몸은 거칠게 꼬인 밧줄에 묶여 있었다.차갑고 단단한 콘크리트 벽에 기댄 채, 여자의 가느다란 손목은 높이 들어 올려진 채 벽에 고정돼 있었다.그리고 뒤에서 다가온 남자가 해인의 허리를 움켜쥐었다. 얇은 여자의 허리가 남자의 손아귀 안에서 움츠러들었고, 남자의 입가에는 음습한 웃음이 걸려 있었다.“강해인 씨. 아무도 몸값을 들고 안 오면, 그땐 미안하지만 말이야.”해인의 뒤쪽에서 벨트를 푸는 소리가 울렸다. 그 소리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아차리는 순간, 해인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고태겸한테... 한 번만 더 전화하게 해 줘.”납치범이 비웃듯 웃었다.“열 번을 전화해도 안 오는 인간인데 뭐가 달라져? 돈이든 몸이든, 하나는 내가 가져가야 할 거 아냐.”그 말이 해인을 자극한 듯해서 몸을 비틀며 간신히 저항했다.“고태겸은 올 거야. 말귀 못 알아들어? 나한테 손만 대 봐. 고태겸이 널 가만두지 않을 거야. 죽여 버릴 거야.”해인의 눈은 붉게 달아올라 있었지만, 미세하게 떨리는 손끝이 숨기지 못한 공포를 드러냈다.그 모습을 잠시 바라보던 납치범은 잠시 고민한 뒤 짜증 섞인 얼굴로 핸드폰을 던졌다.“진짜 마지막이다.”이번에는 신호가 이어졌다.스피커폰으로 연결된 전화에서 해인이 입을 열기도 전에 태겸의 낮은 목소리가 먼저 흘러나왔다.[해인아, 예주 쪽에 일이 좀 생겼어. 생일은 나중에 다시 챙기자.]해인의 시선이 무의식적으로 핸드폰 화면의 시간을 훑었다.밤 10시 반.한 시간 반만 지나면 생일은 끝이었다.해인은 하루 종일 정성껏 차려입은 채 레스토랑에서 기다렸다.기다리던 태겸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레스토랑을 나서는 순간 납치범에게 붙잡혀 차 안으로 끌려 들어갔다.지금 해인은 울음이 섞일 것 같은 목소리를 억눌러 말했다.“나 납치당했어. 나 좀 살려줘.”전화기 너머가 몇 초간 조용해졌다.이내 태겸이 한숨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예주가 교통사고를 당했어.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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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서 차가 멈추는 소리가 들려왔다.해인은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잠시 뒤, 현관문이 열리며 태겸이 들어왔다.실내로 스며든 발소리는 조심스러웠고, 점점 가까워지다가 해인 등 뒤에서 멈췄다.이어 단단한 남자의 팔이 해인 뒤에서 감겨 왔다.해인의 허리가 갑자기 조여 들었다.“여보...”태겸의 입술이 머리칼 위로 내려앉았다.낮고 거친 숨이 섞인 남자의 목소리였다.“여보, 나 진짜 보고 싶었어.”밤공기를 머금은 태겸의 체온이 전해지자 해인의 몸이 본능적으로 움츠러들었다.해인은 그대로 굳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아직 화났어? 너 찾느라 하루 종일 돌아다녔어. 용호지구 쪽도 가 봤는데, 사람 그림자도 없더라.”태겸은 속았다는 사실에 화를 내기는커녕, 다정한 손길로 해인의 코끝을 살짝 긁었다.“다음엔 이런 장난은 하지 마.”해인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그래, 장난이지.’‘사람이 죽을 뻔한 장난.’‘용호지구에서 북쪽으로 오십 킬로...’‘왕복 한 시간이면 충분한 거리인데, 고태겸은 하루나 걸렸어.’‘나를 구하러 오는 동안, 난 이미 끝났겠지.’해인은 목 안쪽에서 올라오는 쓰라림을 삼키며 물었다.“하예주 교통사고 났다며. 많이 다쳤어?”태겸의 움직임이 잠깐 멈췄는데, 곧바로 말을 이었다.“우리 둘이 있는데, 왜 다른 여자 얘길 꺼내?”남자의 허리에 힘이 들어갔다.해인의 몸을 가볍게 들어서, 태겸의 허벅지 위에 올렸다.남자의 손바닥이 해인의 뒷머리를 받치면서 두 사람의 얼굴이 가까워졌다.이어서 해인의 입술을 향해 태겸의 고개가 기울어졌다.해인은 잠시 멈칫하다가 고개를 돌렸다.“왜 그래?”태겸은 이해하지 못한 얼굴로 목을 굴렸다.“처음이라 무서워? 긴장하지 마. 내가 조심해서 할게.”그 눈이었다.수없이 해인을 빠져들게 했던 남자의 시선.누굴 바라봐도 깊어 보이는 남자의 눈동자.지금은 해인에 대한 욕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그런데도 해인의 속은 뒤집혔다. 태겸에게서 풍기는 자신이 아닌 다른 여자의 냄새 때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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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이소정의 안색이 단번에 굳어졌다.“사설탐정? 사설탐정을 써서 태겸이를 조사했다는 거야? 해인아, 그런 건 하면 안 되지. 부부 사이에 상처만 남겨.”아래층에서 들려오는 소란이 서재 안까지 전해졌다.문이 열리며 고민건이 모습을 드러냈다. 해인을 보자 자연스럽게 음성이 누그러졌다.“해인이, 왔구나.”고민건을 바라보던 해인의 눈꺼풀이 미세하게 떨렸다.‘우리 아버지가 살아 계셨다면, 지금쯤은 저분처럼 머리가 희끗해졌을까?’그해, 두 회사가 공동으로 추진하던 대형 프로젝트가 있었다. 원래는 고민건이 직접 협력사와 만나기로 되어 있었지만, 급한 일이 생겨 자리를 비웠다. 대신 해인의 아버지와 두 오빠가 고민건을 대신해 나섰다.협력사 측에서 마련한 차량으로 돌아오던 길, 사고가 났다.강씨 집안의 세 사람은 그 자리에서 숨을 거두었다.하룻밤 사이에 해인은 가장 의지하던 아버지와, 늘 곁을 지켜주던 두 오빠를 잃었다.그리고 며칠 지나지 않아, 어머니마저 해인을 떠났다.과거의 기억이 스쳐 지나가자, 해인은 시선을 내렸다.그러나 곧 다시 고개를 들었다. 부드럽게 다듬어진 얼굴 위로 흔들림 없는 표정이 자리했다.“저, 태겸 씨랑 이혼할 생각이에요. 아버지 회사도 제가 다시 가져올 거고요.”목소리는 낮았지만, 시선은 분명했다.말이 끝나자 거실에 침묵이 내려앉았다.고민건이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갑자기 왜 이혼 이야기를 하는 거니? 태겸이가 너한테 잘못이라도 했어?”태겸과 해인이 결혼한 지 따져 봐도 며칠 되지 않았다. 둘이 식은 올리지 않았지만, 절차와 예는 빠짐없이 치렀다.해인에게 친정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고민건은 스스로 결정해 혼례 예물을 해인에게 직접 넘겼다.시가로 상당한 단독주택이었다. 공사비만 해도 2천억 원이 넘는 집이었다.누가 봐도 고씨 가문이 해인을 가볍게 대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해인은 가늘게 미간을 좁혔다.“자세한 이유는 어머니께 여쭤보세요.”그녀는 더 말하고 싶지 않았다.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당시, 해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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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주의 눈동자 깊은 곳에서 미묘한 빛이 스쳤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오빠가 해인 언니한테 너무 잘해 주는 거죠. 언니가 그걸 몰라주는 거예요.”그 말에 태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예주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아까 그 진주 목걸이 말이에요...”태겸은 대답하지 않고 해인 옆자리에 앉았다.곧 첫 번째 경매 물품이 무대 위에 올려졌다.진주 목걸이였다.윤기 좋은 진주들이 조명 아래에서 은은한 빛을 내고 있었다.해인은 한눈에 마음이 갔다.시작가는 4억 원. 해인은 망설임 없이 패들을 들었다.“6억 원.”그러자 뜻밖에도 예주가 함께 패들을 들었다.“6억 5천만 원.”‘산골 출신에 일한 지도 1년도 안 됐을 텐데 저 돈은 어디서 나온 거지?’해인은 다시 패들을 들었다.“10억 원.”예주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해인 쪽을 바라봤다. 붉어진 눈가에는 억울함이 묻어 있었다.“해인 언니, 언니는 그렇게 돈도 많은데 이런 보석이야 얼마든지 살 수 있잖아요. 그냥 진주 목걸이 하나인데, 왜 저하고 경쟁을 하세요?”해인은 가볍게 웃었다.“여긴 경매장이야. 높은 가격을 부른 사람이 가져가는 게 규칙이지. 왜 네가 억울해하는데? 하예주, 자신의 분수에 맞는 자리에 앉아야지.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니야.”예주는 입술을 깨물며 눈시울을 붉혔다.“네, 제가 부족하죠. 촌에서 올라온 사람이 이런 자리에 어울릴 리 없죠. 하지만 이 진주 목걸이는 저희 집안 대대로 내려온 보물이에요.”“백 년 전에 잃어버린 걸 이제야 찾게 된 거예요. 그냥 추억으로라도 갖고 싶었을 뿐인데, 왜 그렇게까지 저를 몰아붙이세요?”‘보물이라고? 백 년 전?’‘이야기가 너무 허술하네.’주변에서도 낮은 목소리로 수군거림이 퍼졌다. 시선들이 예주 쪽으로 쏠렸다.예주의 안색이 점점 흐려졌다.그때, 스태프 한 명이 무대 뒤에서 나와 경매사에게 다가가 무언가를 속삭였다.경매사는 잠시 말을 멈추더니, 이내 장내를 향해 또렷하게 알렸다.“특별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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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말을 꺼낸 사람은 윤준이었다.태겸의 오래된 친구였고, 오늘 이 자리를 만든 당사자이기도 했다.윤준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이 있든 오늘만큼은 잠깐 접어 둬. 오늘은 내 여자친구 생일이잖아. 내 체면 좀 세워줘.”곧바로 맞장구가 이어졌다.“맞아. 태겸이 마음속엔 늘 해인 씨밖에 없는 거 다들 알잖아. 둘 사이가 얼마나 좋은데. 해인 씨랑 조금만 삐걱해도, 나중에 태겸이 술 취하면 친구들 붙잡고 난리 나는 거 다들 봤잖아.”“야, 그런 소리 하지 마. 태겸이 언제 울어. 술병 안고 ‘여보, 사랑해’만 반복하지.”“...”룸 안에 웃음이 퍼졌다.태겸이 그들을 한번 훑어보고 말했다.“그만해. 해인이 앞에서 그런 얘기는 하지 마. 해인이 성격 알잖아.”말을 마치고는, 룸 안 남자들을 향해 덧붙였다.“담배 다 꺼. 피울 거면 나가서 피워. 해인이 담배 냄새 싫어해.”고씨 가문은 이 지역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명문가 집안이었다.태겸의 말에는 자연히 무게가 실렸고, 룸 안의 남자들은 별말 없이 담배를 껐다.그 모습만 놓고 보면 태겸은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다.이 타이밍에 해인이 자리를 뜨는 쪽이 오히려 매정해 보일 수도 있었다. 아직 회사 매각이 끝난 것도 아니었다.지금 태겸을 자극해 의심을 사는 건, 해인에게도 좋을 게 없었다.이후 20 몇 분 동안 태겸은 과하다 싶을 정도로 해인 곁을 맴돌았다. 포도를 하나하나 까서 건네고, 차가운 손을 잡아 쥐고 숨을 불어넣기도 했다.예전의 해인이었다면, 이런 모습에 마음이 흔들렸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지금의 해인에게 태겸의 행동은 어딘가 연출처럼 느껴졌다.해인은 내내 말을 하지 않았다. 마치 한 발짝 떨어진 자리에서 장면을 지켜보는 사람처럼 담담하게 모든 걸 바라보고 있었다.그러면서도 문득 생각했다.‘고태겸이 변하지 않았다면, 지금 나는 이 다정함에 안심하고 있었겠지.’그랬다면 분명, 이 온기에 스스로를 맡기고 있었을 것이다.하지만 그런 가정은 더 이상 의미가 없었다.잠시 뒤 태겸이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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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해인은 뒤로 밀리면서 중심을 잃었다.태겸은 뒤쪽에서 급히 끼어들었고, 그때의 반동으로 깨진 유리컵의 날이 해인의 손바닥을 파고들었다.손끝에서 전해지는 통증이 너무나 선명해서 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예주 앞을 가로막고 선 태겸이 난처한 표정으로 해인을 바라봤다.“이게 뭐 하는 거야? 예주는 내가 부른 것도 아닌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 있어?”그 말을 듣자 해인은 쥐고 있던 컵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눈가가 젖은 채 태겸을 향해 말했다.“내가 난리야? 고태겸, 하예주가 방금 무슨 말을 했는지 한 번이라도 들어볼 생각은 있어?”예주는 겁에 질린 얼굴로 태겸 쪽으로 몸을 붙였다. 눈은 붉게 충혈돼 있었고, 크게 상처받은 사람처럼 보였다.“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제가 무슨 말을 했다고요.”예주는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그냥 태겸 오빠가 언니한테 너무 잘해 주시는데, 언니는 내내 차갑기만 하시길래요. 마치 오빠가 뭘 잘못한 사람처럼 굴잖아요.”“그래서 언니한테 지금의 태겸 오빠를 소중히 하시라고 말했을 뿐인데, 갑자기 화를 내시더니 저한테 손을 올리셨어요.”의지할 곳 없는 예주와 맞서 서 있는 명문가 출신의 해인.사람들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약해 보이는 쪽으로 쏠렸다.예주는 그걸 알고 있었다.게다가 아직 가라앉지 않은 뺨의 부기와 손바닥 자국은, 해인을 몰아붙이기에 충분했다.예주는 일부러 얼굴을 가리는 듯하면서도 자국이 보이게 손을 댔다.해인의 시선이 가라앉으면서 눈동자 깊은 곳에서 냉기가 스며 나왔다.“그래, 내가 눈앞의 사람을 소중히 안 여긴다 치자.”해인은 예주를 똑바로 바라봤다.“근데 너랑 고태겸은 무슨 사이인데 네가 나서서 걱정을 해?”말이 점점 날카로워졌다.“고태겸이 나한테 잘하는 거, 네가 불만이면 그냥 참고 있어. 내가 고태겸 아내인 한... 하예주, 너는 절대 떳떳해질 수 없어.”그 말은 예주뿐 아니라 태겸에게도 상처를 남겼다.체면 따위는 남아 있지 않았다.하지만 이미 배신당한 입장인 해인은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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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해인은 말문이 막혔다.오늘의 유호는 그날의 단정한 군복 차림과는 전혀 다른 인상이었다. 해인 앞에 있는 유호는 검은 셔츠의 단추를 풀어 헤친 상태였고, 언뜻 드러나는 가슴 근육의 선이 거친 생기를 더했다.해인이 앉은 자리에서는 그 모습이 또렷하게 보였다.‘음... 한유호... 몸은 정말 좋네...’유호가 고개를 살짝 돌리며 별생각 없는 듯 물었다.“손은 왜 다쳤어?”해인은 멈칫했다. 고개를 숙이고서야 언제 그랬는지 모를 새, 유리컵에 베인 손바닥에서 선혈이 번져 나온 것을 알아챘다.입술을 살짝 다문 해인은 손등을 위로 하고서 무릎 위에 손을 얹었다. 그리고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조금 베인 것 같아요.”“조금?”갑자기 유호가 여자의 손목을 거칠게 붙잡았다. 놀란 해인이 반응할 틈도 없이, 유호가 고개를 숙이고 살펴보았다. 해인의 손목을 천천히 들어 올리고, 상처를 유심히 내려다보던 유호가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이게 조금이야? 살 속이 다 보이는데.”해인의 등이 미세하게 굳었다. 반사적으로 손을 빼려다가 유호의 깊고 어두운 눈과 마주쳤다.입술을 다시 깨문 해인은 이 자리에 온 목적을 떠올리면서 말을 꺼냈다.“인수 건은...”“급한 거 아니잖아.”유호는 고개를 낮춰 상처 위에 조심스럽게 숨을 불어 주었다. 태도는 느긋했고 손놀림은 이상하리만치 부드러웠다.그때 직원으로 보이는 사람이 손에 구급상자를 들고 문을 두드리며 들어왔다. “강해인 씨, 상처를 처치해 드리러 왔습니다.”‘이게 무슨 상황이지?’해인은 무의식적으로 유호를 바라봤다. 유호는 아까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입술에 문 채, 흐트러진 자세로 해인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해인은 눈을 깜박이다가 고개를 돌렸다.부서진 유리 조각이 살 안쪽에 박혀 있었다. 집게로 유리조각을 빼는 순간, 통증에 미간을 저절로 찌푸린 해인의 입에서 낮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거의 동시에 차가운 유호의 시선이 직원에게 꽂혔다. 말없이 눌러오는 기세에 직원은 몸을 움찔하며 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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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으응...”갑작스레 좁혀진 거리감에 강해인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위로 말린 여자의 속눈썹이 미세하게 떨리며 유호의 피부를 스쳤다.유호의 큰 체격이 해인을 완전히 가로막고 있었고, 둘의 숨결이 서로 얽혔다. 어둠 속에 몸을 낮춘 맹수처럼 유호는 앞에 있는 모든 것을 언제든 물어뜯을 기세였다.열기에 가까운 기세는 통제의 선을 넘었고, 거칠게 몰아붙이던 키스는 멈추지 않고 해인의 입술을 비집고 들어왔다. 상황이 엉켜 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해인은 곧바로 입을 벌리고 힘껏 물어버렸다.남자가 통증에 반응한 틈을 타서 해인은 손을 뻗어 유호를 밀쳐냈다. 곧이어 희고 가는 팔을 들어 유호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변태!”몸을 떨고 있는 해인은 놀라 도망치려는 사슴처럼 경계심이 가득한 모습이었다.날카로운 통증과 함께 비릿한 맛이 유호의 입안에 퍼졌다. 무의식적으로 혀로 뺨 안쪽을 짚으면서, 남자는 흐트러진 웃음을 지었다.‘너무 세게 물었네?’유호는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볍게 훑었다. 손끝에 피가 묻은 것을 확인하고는 고개를 숙여 강해인을 바라봤다.“그렇게 세게 했는데, 손바닥은 안 아파?”공기가 잠시 얼어붙는 듯했다. 해인은 입술을 다문 채 한유호를 똑바로 바라봤다. 마치 어디 크게 잘못된 사람을 보는 눈빛이었다.‘이 사람... 정말 너무 무서워.’해인은 몸을 돌려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곧바로 룸 바깥으로 달려 나갔다. 룸을 나선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진이철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아가씨, 협상은 잘됐습니까?]해인은 한 손으로 가슴을 누른 채 아직 가라앉지 않은 호흡을 정리했다. 인수 이야기를 하러 왔을 뿐인데, 이런 일을 겪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이유 없이 눈가가 시큰해졌다.“아저씨, 번거로우시겠지만 새로 살 사람을 다시 찾아주세요.”진이철이 잠시 말을 잃었다.[얘기가 틀어진 겁니까?]진이철은 이상하다고 느꼈다. YD그룹 매각 소식이 퍼진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KH그룹이 먼저 접촉해 왔다. 이런 경우 성사될 가능성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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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대현은 자신이 말이 너무 빨라서 한유호가 제대로 못 들은 줄 알았다. 그래서 다시 한번 또렷하게 말했다.“강해인이랑 고태겸이 사귀는 사이라고. 그 둘이...”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호가 갑자기 손을 들어 대현의 어깨를 툭 하고 눌렀다. 처음에는 대현도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하지만 어깨 위로 얹힌 힘이 점점 강해지면서 버티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졌고, 다리에까지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들자 대현의 등에는 식은땀이 배어 나왔다.“유호야?”대현이 조심스럽게 불렀다.“내가... 뭐 잘못 말한 거야?”대현과 유호는 어릴 때부터 함께 놀아온 사이였다. 평소의 유호라면 이렇게까지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렇다면 이유는 하나였다. 대현이 멍청한 소리를 해서 건드려선 안 될 선을 밟았다는 것.유호가 고개를 돌려 대현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그 입, 차라리 기증하는 게 낫겠다.”대현은 눈을 몇 번 깜빡이다가 얼른 미소를 지었다.“에이, 내가 말주변 없는 거 하루이틀도 아니잖아.”유호는 화장실로 들어가 거울 앞에 섰다. 그는 손가락으로 입가에 남은 상처를 몇 번이고 더듬었다. 이가 스쳤던 자리였다.옆에서 그 모습을 한참 지켜보던 대현은 뒤늦게 상황을 이해했다.“야, 설마... 네 상처가 그래서 생긴 거야? 너 강해인이랑 키스했어?”말이 쏟아지듯 이어졌다.“아니, 우리 평생 솔로 하기로 한 거 아니었냐? 이렇게 나 혼자 두고 가는 거야? 근데 강해인이랑 고태겸은...”그제야 대현은 한유호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대현은 정말로 입을 기증하게 될까 봐 급히 말을 바꿨다.“그럼 너희는 대체 뭐야? 몰래 만난 거야? 아니면 네가 끼어든 거야? 남의 여자 뺏은 거냐고.”질문은 줄줄이 이어졌지만, 유호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대현은 거울 속에 비친 한유호를 빤히 바라봤다. 아무리 봐도 이상했다.‘근데... 유호가 강해인한테 뺨을 맞고 기분이 좋은 것 같은데?’‘말이 돼?’대현은 스스로를 진정시키려 와인을 한 잔 따라 단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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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리고 누가 자신의 불행을 일부러 찢어 보이며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어 할까?아무도 진심으로 대신 아파해 주지 않는다. 사람들은 그저 가십처럼 소비할 뿐이다.너의 불행은 결국 타인의 호기심을 채우는 재료가 될 뿐일지도 모른다.승아도 말이 없어졌다. 그녀는 해인을 끌어안았고, 눈빛에 담긴 애틋함을 숨길 수 없었다.“우리 해인이... 나 진짜 네가 너무 아파 보여서 그래.”그 사고 이후, 해인의 아버지와 두 오빠가 세상을 떠났고, 넓던 강씨 집안은 해인 혼자서 버텨야 했다.만약 아버지와 두 오빠가 아직 살아 있었다면, 그렇게 아끼고 감싸주던 공주님 해인이 이런 일을 겪는 걸 절대 그냥 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승아가 물었다.“그럼 앞으로는 어떻게 할 생각이야? 그리고... 너희 어머니는 이 일 알고 계셔?”해인은 담담하게 말했다.“당연히 일 열심히 해야지. 연애 한 번 실패했다고 인생까지 포기할 수는 없잖아. 아빠가 나를 그렇게 키웠는데, 나도 사랑 하나에 무너질 사람은 아니야.”해인은 웃으며 소파 위에 있던 쿠션을 끌어안고 무릎 위에 올렸다. 볼을 살짝 기대었다.“엄마는...”그녀는 시선을 내렸다.“아마 내 일엔 별로 관심 없을 거야. 괜히 말 꺼내서 신경 쓰이게 하고 싶지 않아.”어머니 이야기가 나오자 해인의 눈에는 분명한 허전함이 스쳤다. 승아는 더 말을 잇고 싶었지만, 괜히 상처를 건드릴까 봐 그만두었다.두 사람은 밤늦도록 이야기를 나눴다. 감정 이야기에서 시작해, 최근 연예계 소문까지 이어졌다.그러다 어느새 함께 잠이 들었다.해인의 잠은 깊지 않았다. 의식이 흐릿한 채로 계속 꿈을 꾸고 있었다.꿈속에서 강해인은 어둠 속에 웅크린 채 갈 곳을 잃고 있었다. 그때 태겸이 손을 내밀며 부드럽게 웃었다.“해인아, 앞으로 여기가 네 방이야.”장면이 바뀌어 열여덟 살 성년식 날.드레스를 입은 강해인이 회전 계단을 따라 크리스털 구두를 밟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정장을 차려입은 태겸은 친구들을 두고 서둘러 다가왔다.“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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