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apítulo 41 - Capítulo 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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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화

어차피 곧 해인이 손봐 놓은 그 집에 예주가 들어와 살게 될 터였다.이미 자신을 불쾌하게 만들었으니, 돈으로 보상하는 것도 충분히 말이 됐다.게다가 이 몇 년 동안 태겸은 YD그룹에서 벌어들인 돈도 적지 않았다.돈은 나왔던 곳으로 돌아가는 것뿐이었다. 그저 에너지 보존 법칙일 뿐이었다.해인은 더 이상 이곳에 머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그녀는 걸음을 멈추지 않은 채 덧붙였다.“고 대표님, 돈 다 준비되면 연락해. 그때 계약서 쓸 테니까. 최소 육천억이야. 한 푼도 깎을 생각하지 마. 그 이하라면 내가 널 우습게 볼 거니까.”이렇게까지 서둘러 선을 긋는 해인의 태도에 태겸의 가슴속에 답답함이 차올랐다.해인의 웃음에는 노골적인 조롱이 담겨 있었다.예전의 해인은 시선도 마음도 전부 태겸만 향했던 사람이었다.태겸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 뭔가가 이미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느낌이 분명히 들었다.해인이 나가자 집 안은 급격히 조용해졌다.한때는 그렇게 애착을 보이던 공간이었는데, 이번에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떠나버렸다.태겸은 벽을 향해 주먹을 내리쳤다.속에 쌓인 감정이 가득한데, 풀 곳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몇 분 뒤, 핸드폰이 울렸다.전화기 너머에서 예주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오빠, 아직 회사예요? 전 오빠 회사 앞에서 거의 두 시간째 기다리고 있어요. 위로 올라가도 돼요?]태겸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제야 오전에 예주가 보냈던 메시지가 떠올랐다.읽기는 했지만 회의 중이었고, 그 뒤로는 완전히 잊고 있었다.조금 전까지 해인이 보여준 차가운 태도와 달리, 예주는 모든 말과 행동에서 태겸을 치켜세우고 있었다.태겸의 표정이 조금 누그러졌다.“나 회사 아니야. 내 신혼집으로 와.”그 말을 듣자 예주의 마음이 들떴다.[네, 바로 갈게요.]예주는 곧장 태겸이 있는 곳으로 가지 않았다.먼저 집으로 달려가 옷을 갈아입었다.그 원피스는 2년 전, 해인이 사준 것이었다. 예주에게 잘 어울릴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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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화

집 앞에 도착한 예주가 초인종을 눌렀다.태겸은 당연히 해인이 다시 돌아온 줄 알았다.하지만 문을 열고 보니 예주였다.태겸의 시선이 잠시 가라앉았다.오늘의 예주는 평소와 어딘가 달라 보였지만, 태겸은 주의 깊게 보지 않았다. 잠깐 눈길을 준 뒤 곧바로 시선을 거뒀다.태겸은 의아한 듯 물었다.“네가 왜 왔어?”예주는 잠시 멈칫했다가, 눈에 억울함이 스쳤다.“오빠가 오라고 하셨잖아요. 벌써 잊으신 거예요?”태겸은 그제야 기억이 났다.저녁에 술을 조금 마셨고, 해인이 떠난 뒤에는 아예 한 병을 다 비웠다. 정신이 흐릿한 상태로 샤워를 하고 나와, 막 잠자리에 들려고 하던 참이었다.태겸은 잠옷 차림이었다. 머리는 반쯤 마른 상태라 물기가 아직 남아 있었고, 평소보다 날이 서 있지 않아 보였다.그제야 예주가 도움을 부탁할 일이 있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태겸이 돌아서서 안으로 들어가며 말했다.“일단 들어와.”예주의 얼굴에 수줍은 기색이 번졌고, 곧장 뒤를 따랐다.“오빠는 ZC그룹 후계자잖아요. 평소에 ZC그룹 일도 직접 챙기세요?”태겸의 눈에 잠깐 놀라움이 스쳤다.“갑자기 그건 왜 물어?”예주는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큰일은 아니고요... 저희 회사에 프로젝트가 하나 있는데, ZC그룹이 발주처예요. 회사에서 ZC그룹이 제 기술을 쓰기로 하면 승진시켜 주겠다고 했어요.”“그런데 오빠 아버지가 회장님이시잖아요. 고 회장님께서 해인 언니 일 때문에 저를 좋게 안 보시는 것 같아서요...”“오늘 오후에 비서실로 연락해서 미팅을 잡으려고 했는데, 아예 응답도 없었어요.”말을 잇는 사이, 예주의 눈가가 붉어졌다.“원래 양쪽 다 협업 의지가 있었던 프로젝트예요. 만약 저 때문에 이 기회를 놓치게 되면, 그건 저희 회사 손해이기도 하고 ZC그룹에도 손해잖아요.”태겸은 잠시 생각했다.“그렇다면, 내가 아버지한테 말해 볼 수는 있어. 편견 내려놓고 한 번만 만나 보시라고.”하지만 그 말을 듣고도 예주는 기뻐 보이지 않았다.고민건을 만난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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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화

태겸의 손가락이 무심코 예주의 뺨을 스쳤다.남자의 손길이 닿은 걸 느끼자 예주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예주가 갑자기 태겸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이어서 두 팔로 태겸의 허리를 끌어안고,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오빠, 정말 저를 여자친구로 받아줄 수 없어요? 저 오빠를 정말, 정말 사랑해요.”자신만을 바라보는 여자.그런 존재는 분명 남자의 허영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하지만 그 말을 듣는 순간, 태겸은 미간을 자연스럽게 찌푸렸다.해인은 이런 순간에 태겸에게서 뭔가를 요구한 적이 없었다.예주를 단번에 밀어낸 태겸이 소파에서 일어나며 단호하게 말했다.“늦었어. 나 쉬어야 해. 너도 이제 가.”예주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태겸이 이렇게까지 강하게 반응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여자의 눈동자에 상처받은 기색이 스쳤다. 오늘 밤, 예주는 돌아갈 생각이 없어서 이렇게까지 신경 써서 꾸미고 온 것이었다.하지만 태겸의 표정에는 냉기가 서려 있었고, 그녀를 붙잡을 마음은 전혀 없어 보였다.예주는 그를 더 자극할까 봐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며 집을 나섰다....한밤중.해인이 하늘빌에 있는 집으로 돌아왔을 때, 이미 밤 12시가 훌쩍 넘은 시간이었었다.슬리퍼로 갈아신고 곧바로 3층으로 올라갔다.새집에서 맞는 첫날 밤이었지만, 해인은 깊이 잠들지 못했다.자다 깨기를 반복하며 밤을 보냈다.다음 날 아침, 해인은 고민건과의 약속이 있어 이른 시간에 집을 나섰다.회사에 들러 자료를 정리할 생각이었다.현관문이 닫히는 소리가 나자, 거의 동시에 아직 침대에 누워 있던 유호가 눈을 번쩍 떴다.‘기분 탓인가?’집 안에 누군가 들어왔다 나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하지만 여기는 고급 주거 단지였다. 출입은 철저히 통제되고, 경비원도 상시 배치되어 있다. 침입자가 들 확률은 높지 않았다.유호는 상체를 일으켰다. 미간을 찌푸린 채 집 안을 살폈다. ‘조금 전 들린 소리가 단순한 꿈은 아닌 것 같은데.’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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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화

오전 10시, 해인은 약속한 시간에 맞춰 ZC그룹 건물 앞에 도착했다.해인은 곧바로 고민건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연결되지 않았다.어제 만남을 약속할 때, 고민건이 아홉 시 조금 넘어서 회의가 있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아직 회의가 끝나지 않았나 보네.’해인은 로비에 있는 소파에 앉아 기다리기로 했다.그리고 짧게 메시지를 남겼다.[회장님, 저 도착했습니다.]해인은 ZC그룹에 자주 오는 편이 아니었다.안내데스크 직원은 해인을 알아보지 못했지만, 기본적인 응대는 정중했다. 직원은 커피 한 잔을 건네주었다.“감사합니다.”해인은 조용히 인사를 하고, 응접 공간에 앉아 기다렸다.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 예주가 로비로 들어왔다.예주는 미소를 띠고 안내데스크로 다가가 말했다.“저는 고 회장님의 미래 며느리입니다. 아버님께 드릴 말씀이 있어서요. 문 좀 열어 주세요.”그 말을 듣는 순간, 옆에 앉아 있던 해인이 단번에 미간을 찌푸렸다.‘미래 며느리?’‘고태겸이 이렇게 빨리 하예주한테 명분을 준 거야?’‘그래, 그날 배를 만지면서 임신했다고 했지.’‘아이까지 생겼다면, 당연히 명분은 줘야겠지.’해인은 입가를 비틀며 웃었다.‘내가 보낸 그 많은 시간은 정말 아무 의미도 없었네.’‘고 회장은 자기 손주를 가진 하예주를 어떻게 볼까.’해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이 협업이 성사될 가능성이 과연 얼마나 될지, 쉽게 가늠되지 않았다.더구나 고민건이 두 사람을 같은 날, 같은 장소로 불러놓은 의도도 선뜻 이해되지 않았다.예주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자, 안내데스크 직원은 바로 문을 열어주지 않고 예주를 살폈다.ZC그룹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정보에 민감했다.고 회장의 총애를 받는 며느리가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다.하지만 ‘며느리’라는 명목으로 회장을 찾는 사람 역시 적지 않았다.섣불리 판단했다가 문제가 생길 경우를 피해야 했다.“임의로 문을 열어드릴 수 없습니다. 고 회장님의 며느리시라면, 비서실에서 내려오실 겁니다. 전화 한 통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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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5화

태겸의 목소리는 꽤나 날이 서 있었다.“하예주 씨 올려 보내세요.”안내데스크 직원은 이번에는 눈치빠르게 곧바로 말했다.“네, 고 대표님. 제가 바로 작은 사모님을 모시고 올라가겠습니다.”그 말을 듣는 순간, 전화기 너머의 태겸은 잠시 말이 막혔다.‘작은 사모님?’직원은 웃으며 덧붙였다.“네, 하예주 씨께서 본인이 고 회장님의 ‘예비 며느리’라고 하셨습니다.”예주는 핸드폰을 움켜쥔 채 긴장된 시선으로 화면을 바라봤다.‘지금 여기서 부정하면... 창피해지는 건 나야.’다행히도 태겸은 잠시 침묵했을 뿐, 그 말을 바로잡지는 않았다.잠깐 후, 태겸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그래. 이강 대표 사무실로 데려가.]그 말을 끝으로 전화는 끊겼다.예주의 가슴이 들떴다.‘이거... 내 존재를 간접적으로 인정한 거 아닌가?’조금 떨어진 곳에 앉아 있던 해인은 이 모든 대화를 또렷하게 들었다.원래라면 이런 장면을 보고 마음이 흔들려야 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해인의 마음은 이상하리만치 고요했다.‘그래... 아무리 깊은 상처라도 시간 앞에서는 무뎌지기 마련이지.’해인은 이 관계로 이미 충분히 아파했다.어쩌면 너무 오래 아파서, 이제는 아무 감각도 남지 않았는지도 몰랐다.아니면 이미 마음속에서는 오래전에 정리가 끝난 걸지도 몰랐다.안내데스크 직원은 곧바로 예주를 데리고 이강 대표의 사무실로 향했다.하지만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자마자, 정장을 말끔히 차려 입은 중년 남자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왔다.직원은 그를 보자마자 고개를 숙였다.“장 실장님. 이분이 작은 사모님이시라고 하시면서 회장님을 뵈러 올라가시려던 분입니다.”그 남자는 고민건의 수석비서, 장기오였다.비서실 전반을 총괄하는 인물이자 고민건의 최측근이었다.기오는 예주를 위아래로 한 번 훑어보았다. 기오의 시선에는 거리감만 담겨 있었다.“작은 사모님요?”기오는 차분히 말했다.“사람을 잘못 보신 것 같습니다. 이분이 작은 사모님일 리가 없는데요.”고민건은 단 한 번도 예주의 존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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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6화

해인은 커피를 거의 다 마시면서 한바탕 구경을 끝냈다.예주의 안색은 창백했다가 새파랗게 질리기를 반복했다. 오가는 사람들마다 예주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노골적인 비웃음이 드러나 있었다.예주는 그 시선 하나하나가 몸에 꽂히는 듯해서 견딜 수가 없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쥐구멍이라도 있다면 파고들고 싶은 심정이었다.해인은 자리에서 일어나 기오에게로 다가갔다. 그녀는 빈손으로 온 건 아니었다. 고민건이 술을 좋아한다는 걸 알기에 오기 전 일부러 좋은 술 두 병을 사 두었다.기오는 그걸 보자마자 곧바로 허리를 굽혀 술병을 받아 들었다. 해인이 직접 들게 하지 않겠다는 듯한 태도였다.직원들의 시선이 자연스레 해인에게로 쏠렸다. 방금 전까지 벌어졌던 일들 속에서 기오가 말하던 ‘작은 사모님’은 줄곧 한쪽에서 모든 걸 지켜보고 있었다.내연녀가 저렇게 대놓고 해인 앞까지 나섰는데도 해인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담담했다. 그 여유와 태도는 확실히 보통 사람이 흉내 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해인과 예주를 나란히 놓고 보니 차이가 분명했다. 해인은 아무 행동도 하지 않았는데도 그 존재만으로 고씨 가문의 작은 안주인이라고 해도 전혀 손색이 없어 보였다. 반면 예주는 어디 하나 내세울 만한 구석이 없었다.이쪽의 해인은 고민건이 따로 배려해서 회장 최측근이 안내하며 맞이하고 있었고, 다른 쪽의 예주는 사람들의 손가락질 속에 서 있었다.ZC그룹은 규모가 큰 회사였다. 내부 직원들뿐 아니라 협력사 사람들도 많았고, 그 중에는 여성들도 적지 않았다. 그런 사람들이 가장 못마땅하게 생각하는 존재가 바로 예주 같은 내연녀였다.“쯧쯧, 세상이 말세네. 내연녀 주제에 고씨 가문의 작은 안주인 행세를 하면서 찾아오다니, 염치도 없지.”“저 촌스러운 차림 좀 봐. 고태겸 대표도 참, 여자가 그렇게 없나?”“고태겸 대표가 그 소꿉친구 약혼자한테 얼마나 잘한다는 소문이었는데, 이런 여자가 설치게 두다니. 결국 남자는 다 똑같아.”“...”사람들은 예주만 욕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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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7화

고민건의 눈빛에는 자애와 걱정이 가득 담겨 있었다.“해인아, 지금은 어디서 지내니?”해인에 대해서 고민건은 늘 마음 한구석이 무거웠다. 그때의 사고는 결국 고민건 때문이었고, 그 일로 해인은 가족을 잃었다. 그 사실이 지금까지도 가시처럼 남아 있었다.고민건은 아직도 쉽게 믿기지 않았다. 해인이 정말로 태겸과 헤어지겠다고 결심했다는 것이. 태겸과 해인은 어린 시절부터 함께 자랐고, 쌓아온 시간과 인연도 정말 길었다.해인이 팔겠다고 한 그 집은 ZC그룹과 다른 개발사들이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였다. 그 일로 고민건은 지인들에게서 여러 통의 전화를 받았다. 갑자기 왜 매물이 나왔느냐, 무슨 사정이 있는 거냐는 질문들이었다.고민건은 계속해서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해인과 단 둘이서 허심탄회하게 이야기를 나눌 기회를.해인은 고민건에게 자신이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사람과 갑작스럽게 혼인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입을 열었다.“회장님, 저랑 태겸 씨는 정말 끝났어요. 태겸 씨 곁을 떠나면 많이 힘들 줄 알았는데, 지금은 오히려 마음이 가벼워졌어요.”“아마 태겸 씨는 저랑 맞는 사람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저희는 약혼이라는 이유로 묶여 있었을 뿐이에요.”해인은 태겸을 사랑했던 시간을 부정하지 않았다. 진심을 다해 좋아했고, 그 마음 또한 사실이었다.하지만 멀쩡하던 태겸이 무너져 버린 지금, 해인에게는 더 이상 그 관계에 매달릴 이유가 없었다.그동안 고민건이 해인에게 보여 준 배려와 온정이 있었기에 해인은 이렇게까지 솔직해질 수 있었다. 만약 지금 앞에 앉아 있는 사람이 이소정이었다면, 해인은 이 정도의 이야기도 꺼내지 않았을 것이다.고민건은 미간을 좁혔다.“말해 보거라. 도대체 어떤 일을 겪은 거야?”해인은 대답하지 않았다.태겸에게 느꼈던 실망을 하나하나 꺼내 놓고 싶지 않았다. 그런 이야기를 하는 자신이 초라해질 것 같았고, 기억 속의 불쾌한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해인이 입을 다물고 있자, 해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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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화

고민건의 말 한마디 한마디마다 해인을 감싸려는 의지가 분명히 담겨 있었다. 해인은 그런 마음을 느낄 수 있었고, 자연스럽게 고마움이 쌓였다.해인은 미리 준비해 온 계약서를 꺼내 고민건에게 건넸다.“회장님, 오늘은 공적인 일로 찾아뵀어요. 저희 HJ그룹에서 진행 중인 프로젝트가 있는데, 제가 주도해서 개발한 건이에요. 한번 봐 주세요.”고민건은 계약서를 펼쳐보지도 않은 채 바로 말했다.“사인해야지. 우리끼리 무슨 형식이 필요하겠어. 네가 개발한 프로젝트라면 당연히 전폭적으로 밀어줘야지.”이 프로젝트의 기술에 대해서는 고민건도 잘 알고 있었다. 해인이 거의 3년 가까이 매달려 완성도를 끌어올렸고, 각종 지표 역시 충분히 안정적이었다. 고민건은 오래전부터 해당 기술을 잘 파악하고 있었다.처음 HJ그룹과의 협업을 고려했을 때도 결정적인 이유는 바로 이 기술이었다.그런 사정을 모두 제쳐 두더라도 해인에게는 이제 의지할 가족조차 없었다. 연장자로서 그리고 마음에 남은 미안함과 연민으로서, 고민건은 해인을 돕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다.고민건이 말했다.“먼저 돌아가렴. 계약은 내가 처리할 테니까. 나머지 절차는 사람을 붙여서 HJ그룹이랑 계속 진행하게 할게.”해인은 그제야 긴장을 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감사합니다, 회장님.”고민건은 해인의 뒷모습을 바라보다가 문득 오래된 친구의 얼굴이 떠올랐다. 고민건의 가슴 한쪽이 스르르 내려앉았다.“해인아, 태겸이랑 인연이 아니더라도 나는 네 삼촌이야. 나중에 네 힘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일이 있으면 언제든 찾아와. 내가 반드시 네 편이 돼 줄게.”해인의 마음에 고마움이 더해졌다. 고민건은 해인에게 지나치다 싶을 만큼 잘해 주고 있었다.사실 태겸과의 혼인이 이루어지지 않더라도 해인의 마음속에서 고민건은 이미 반쯤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해인이 떠난 뒤, 고민건은 책상 위에 놓인 두 병의 술을 바라보았다.그는 원래 이 브랜드의 술을 좋아했다. 보통 사람에게는 1년 치 연봉에 가까운 가격이었지만, 이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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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9화

고민건은 분노를 억누르지 못한 채 태겸을 가리키며 노려봤다.“고씨 가문 미래의 작은 사모님이라고 떠들고 다니던데, 그거 네가 묵인한 거 아니야?”“어떻게 그런 말까지 나오게 둬? 태겸아, 태겸아, 도대체 어떤 수준의 여자까지 눈에 들어오는 거야?”이 대목에서만큼은 태겸도 변명할 말이 없었다. 예주를 ZC그룹으로 오게 한 사람이 다름 아닌 태겸이었기 때문이다.“기회를 주겠다. 그 여자, 지금 당장 정리해. 그러면 우리 관계는 그대로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나도 더 이상 널 안 볼 테다.”태겸이 반박했다.“제가 오라고 한 것도 아닌데, 제가 어떻게 내보내요?”예주는 스스로 B시의 대학에 합격했고, 졸업 후에도 계속 이곳에 남아 있었다. 태겸이 예주의 진로나 거취까지 통제할 수는 없었다.그 말을 들은 고민건은 오히려 더 격분했다.“그래, 그래. 이제 말도 잘하네? 당장 나가. 더는 네 얼굴 보기도 싫다. 앞으로 고씨 가문에도 발 들일 생각 하지 마.”“그 여자랑 밖에서 알아서 살아. 그리고 어디 가서 내 아들이라고 말하지도 마.”태겸은 믿기지 않는다는 듯 얼굴에 혼란이 스쳤다.“아버지, 도대체 해인이 친딸이에요, 제가 친아들이에요? 해인이가 아까 와서 뭐라고 했길래 이러세요?”고민건은 대답하지 않았다. 차갑게 등을 돌렸을 뿐이었다.태겸 역시 더 말을 잇고 싶지 않았다. 괜히 자존심만 상하는 느낌이었다.다만 태겸은 해인이 오늘 직접 고민건을 찾아와 모든 일을 털어놓았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아버지까지 끌어들이다니... 아직도 어린애처럼 구네.’마음이 복잡해졌다. 예주와 자신은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닌데, 이렇게 한바탕 소란이 벌어지니 오히려 뭔가 있는 것처럼 비칠 것 같았다....해인이 HJ그룹으로 돌아온 건 오후였다.자리에 앉아 컴퓨터를 켜려는 찰나, 신승빈이 다가왔다.신승빈은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팀원들을 향해 말했다.“방금 ZC그룹에서 연락 왔습니다. 오늘부로 HJ그룹이랑 계약 진행하기로 했답니다. 이건 우리 회사가 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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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0화

하슬은 옆에서 말끝마다 가시를 세웠다.“하 대리님, 정말 대단하시네요. 입사한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이런 큰 프로젝트를 따내시다니요. 어떤 사람은 회사에 몇 년이나 있으면서도 별 성과도 없잖아요. 그래도 월급은 꼬박꼬박 받아 가고요.”그 말을 듣고 예주는 해인을 한번 바라봤다.“민 대리님, 강 대리님도 헛일만 한 건 아니에요. 강 대리님이 개발한 기술이 있었으니까 제 기술이랑 비교가 가능했던 거고, 그래서 ZC그룹에서도 더 빨리 결정을 내릴 수 있었겠죠. 그렇게 보면 공은 강 대리님이 반쯤은 세운 거예요.”예주의 말 속에는 해인의 연구보다 자신의 기술이 더 뛰어나서 HJ그룹이 자신을 선택했다는 뉘앙스가 자연스럽게 깔려 있었다.하슬은 얄밉게 웃었다.“에이, 그렇게 겸손하실 필요 없어요. 본인 공은 본인 공이죠. 남한테 나눠 줄 이유가 있나요? 아무튼 하 대리님, 곧 과장님 되시는 거 미리 축하드려요.”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하며 말을 주고받았고, 그 모습은 마치 짜 맞춘 대사처럼 자연스러웠다.신승빈은 속으로는 해인이 과장이 되길 바라고 있었다. 해인은 회사에 오래 몸담았고, 이 프로젝트 역시 초반부터 깊이 관여해 왔다.하지만 이미 내뱉은 말을 뒤집을 수는 없었다. 신승빈은 정리하듯 말했다.“하 대리, 계약 절차가 마무리되면 대표님께 보고해서 하 대리 과장 승진 건으로 진행할게.”“그리고 이왕 이렇게 된 거, 오늘 저녁에 부서 회식 겸 단합 자리 한번 합시다.”회식이라는 말이 나오자 하슬의 눈이 반짝였다.“하 대리님, 전에 말씀하셨잖아요. 부잣집 남자친구 있다고. 오늘 그분 한번 모셔오는 거 어때요?”예주는 잠시 멈칫했다. 최근 태겸이 바빴기에, 올 수 있을지 확신이 없었다.하지만 이미 크게 말해 둔 이상, 예주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제가 이따가 한 번 물어볼게요.”부잣집 남자친구 이야기가 나오자, 눈치 빠른 직원들이 슬그머니 다가왔다.“하 대리님, 남자친구분 친구들도 같이 오라고 해 주시면 안 돼요? 싱글인 분들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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