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dos os capítulos de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apítulo 31 - Capítulo 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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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화

30분쯤 지나 예주는 숨이 가쁜 채로 그 바 안으로 들어왔다.바 카운터에 축 늘어진 채 앉아 있는 태겸을 보는 순간, 예주는 눈을 크게 뜨고 바텐더를 바라봤다.“어쩌다 이렇게까지 마신 거예요?”바텐더는 어깨를 으쓱하며 자신도 잘 모르겠다는 뜻을 내비쳤다.카운터에 기대 잠들어 있는 태겸의 얼굴은 마치 조각처럼 고요했다. 선이 또렷한 이목구비는 너무나 완벽해서, 예주는 괜히 심장이 빨라지는 걸 느꼈다.바텐더의 도움을 받아 예주는 태겸을 부축해 밖으로 나섰다. 발걸음 하나하나가 쉽지 않았다.태겸은 오늘따라 누구와도 함께 있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주변에 사람 하나 없었고, 늘 곁에 있던 기사마저 돌려보낸 상태였다.예주는 택시를 타고 태겸이 머무는 집으로 향했다. 태겸의 손가락을 잡아 지문으로 문을 열고, 온 힘을 다해 침대 위로 옮겨 놓고 나자 예주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맺혔다.잠시 욕실에 들어가 찬물로 얼굴을 씻고 나왔을 때, 태겸은 이미 몸을 옆으로 돌린 채 깊이 잠들어 있었다.이렇게까지 취했는데도 오는 길 내내 아무 반응도 없었다는 게 오히려 놀라웠다.예주는 그대로 돌아가지 않고 침대 옆에 앉아 한동안 태겸을 바라봤다.처음 태겸을 본 순간부터, 예주는 이미 마음을 빼앗긴 상태였다.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으니 참는 게 더 어려웠다. 예주는 조심스럽게 몸을 기울여 태겸의 입술에 입을 맞추면서, 살짝 한숨을 내쉬었다.태겸에게는 사람을 끌어당기는 묘한 힘이 있었다. 이유를 따질 새도 없이 가까이하고 싶은 설명하기 힘든 끌림이었다. 그를 보기만 해도 몸에 힘이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침대로 올라간 예주는 태겸의 허리를 뒤에서 끌어안았다. 뺨을 태겸의 등에 붙인 채 예주는 아무 말도 없이 그대로 안고 있었다....다음 날 아침, 주방 쪽에서 고소한 냄새가 퍼져 나왔다.눈을 뜨자마자 다른 사람이 침대를 사용한 흔적을 본 태겸은 잠시 멍해졌다가, 이내 놀라움과 기쁨이 뒤섞인 감정에 휩싸였다.숙취로 머리가 지끈거렸지만, 그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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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화

예주는 야채죽을 그릇에 담아 식탁으로 옮겼다. 곁에는 소박한 반찬 두 가지도 함께 올려두었다.태겸은 속이 확실히 편치 않았다. 전날 밤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술을 마셨던 탓이었다.죽을 한 숟갈 떠서 입에 넣자, 은은한 단맛이 퍼지면서 잔뜩 찌푸렸던 태겸의 미간도 서서히 풀렸다. 예주의 요리 솜씨가 생각보다 괜찮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예주는 주방에서 나와 서둘러 나갈 채비를 했다.“오빠, 저 출근 늦겠어요. 출근 시간대 버스는 너무 붐비거든요. 오빠 집에서 정류장 가려면 길도 많이 돌아가야 해요.”태겸이 고개를 들었다.“뭘 그렇게 급해. 앉아. 나랑 같이 먹어.”이 집은 한동안 인기척도 없었다. 4층짜리 집에 태겸 혼자 살다 보니, 지나치게 조용해서 오히려 불안할 때도 있었다.예주는 잠시 멈칫했다. 태겸이 먼저 붙잡을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래도... 저 새 회사 들어간 지 며칠 안 됐는데요...”“이따가 내가 데려다 줄게.”태겸은 그저 누군가와 이야기를 나누며 신경을 돌리고 싶었을 뿐이었지만, 예주의 마음은 살짝 들떴다.두 사람은 끊길 듯 이어질 듯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태겸이 물었다.“회사 옮겼다며. 적응은 좀 돼?”예주는 고개를 끄덕였다.“네. 동료들도 다들 괜찮고, 회사도 규모가 커요.”“회사 이름이 뭐야?”“HJ그룹이요.”손에 들고 있던 숟가락을 내려놓는 태겸의 표정에 놀란 기색이 스쳤다.“왜요?” 예주가 어리둥절하게 물었다.“아니야.” 태겸은 다시 죽을 떠먹었다. ‘우연일 수도 있지.’잠시 뒤에야 태겸이 덧붙였다.“해인이도 그 회사야. 몰랐어?”예주는 잠깐 멍해졌다.예주는 입사한 이틀 동안, 회사에 영향력 있는 인물이 결혼 휴가 중이라는 얘기만 들었을 뿐이었다. 동료들 사이에서는 존중이 자연스럽게 묻어났고, 예주는 그 사람이 돌아오면 관계를 잘 만들어야겠다고만 생각했다.그 대상이 해인일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예주는 눈앞의 죽이 더 이상 잘 넘어가지 않았다. 태겸을 향해 애써 미소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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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3화

태겸의 눈에는 당혹감이 어렸다. 그가 아직 상황을 제대로 받아들이기도 전에, 예주가 먼저 몸을 떼면서 말했다.“어젯밤에 오빠가 취했을 때부터 이렇게 하고 싶었어요.”예주의 두 눈에는 숨기지 않은 애정이 담겨 있었다. 예주는 태겸의 시선을 정면으로 마주한 채 조심스럽지만 간절하게 말했다.“저한테 자리 하나만 주세요. 오빠 곁에 계속 있고 싶어요.”예주의 행동은 태겸의 예상과는 완전히 달랐다. 태겸의 눈에 스친 거리감을 예주는 애써 외면했다. 태겸이 뭔가 말하려고 입을 열려는 순간, 예주는 손가락을 뻗어 그의 입술 위에 가볍게 올렸다.“지금 바로 거절하지 마세요. 천천히 생각해 주세요. 저는 기다리는 거 괜찮아요. 계속 기다릴 수 있어요.”말을 마치자 예주는 뒤에 선 태겸의 반응에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그리고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미소를 보인 뒤, 그대로 돌아서 HJ그룹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연이어 벌어진 일들에 예주를 아는 몇몇 동료들은 그대로 굳어버렸다.입사 첫날부터 예주는 동료들의 호기심 섞인 질문 속에서 자신에게 남자친구가 있다고 분명히 밝혔었다.소문을 좋아하는 동료들은 발걸음을 재촉해 예주를 따라붙었다.“하 대리님, 남자친구 차가 롤스로이스 팬텀이었어요?”“저 정도면 진짜 대단한데요? 직접 데려다 줄 정도면 사이가 엄청 좋아 보이는데요.”“그럼 조만간 재벌가에 시집가는 거 아니에요? 재벌가 사모님 되는 거 아닌가요?”“...”동료들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었다. 예주는 얼굴을 살짝 붉힌 채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였다.“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아직 한창 연애 중이라서요. 그렇게 빨리 결혼하진 않아요.”가장 뒤에서 걷고 있던 해인의 시선이 롤스로이스 팬텀에 머물렀다.해인은 입가를 살짝 비틀며 스스로를 비웃었다.‘굳이 내가 일하는 데까지 와서 저런 모습을 보여주는 거야?’‘일부러 내 기분을 상하게 하려는 거겠지?’방금 전의 장면을 해인은 모두 보고 있었다.해인은 과거의 자신이 떠올라 씁쓸함이 밀려왔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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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화

HJ그룹은 신재생 에너지 분야를 주력으로 하는 기업으로, 해인은 개발팀에 몸담고 있었다.이곳은 해인이 사회에 나와 처음 다닌 회사였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진행된 공개 채용을 통해 입사했다.대학 재학 시절 해인이 전공과 밀접한 주제의 논문을 발표했는데, 그 논문이 우연히 회사 임원의 눈에 띄었다.회사는 직접 해인의 지도교수에게 연락해 해인을 지명했고, 그렇게 시작한 직장 생활이 어느덧 2년째였다.이제 곧 과장으로 승진을 앞두고 있었다.해인이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주변에서 낮은 목소리로 오가는 이야기들이 귀에 들어왔다.“진짜야? 롤스로이스 팬텀이라니, 남자친구가 그렇게 대단해?”“내가 직접 봤어. 건물 아래에서 둘이 떨어지기 싫은 것처럼 키스하더라. 완전 연애 초반 같던데.”“들어보니까 학벌도 엄청 좋대. 강 대리랑 같은 학교라던데? 전에 우리 경쟁사에서 1년 일했고, 이번엔 핵심 기술까지 들고 와서 대표가 연봉 엄청 주고 데려왔다더라.”“그럼 그렇게 되면, 강 대리의 과장 승진도 확실한 건 아니겠네?”“그건 좀 애매하지. 강 대리도 결혼한 지 얼마 안 됐잖아. 결혼했으니까 곧 임신 얘기 나올 텐데, 우리 쪽은 임신하면 실험실 못 들어오잖아. 방사선도 있고, 태아한테 안 좋으니까.”“...”사람들은 이야기에 열을 올리느라, 해인이 바로 뒤를 지나가고 있다는 걸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그러다 한 사람이 먼저 해인을 발견하고는 옆 사람의 소매를 잡아당겼다.다들 동시에 뒤를 돌아봤다가 해인을 보자 말소리가 일제히 끊어졌다.“무슨 얘기하고 있어요? 그렇게 재밌어 보이는데요.”해인은 입꼬리를 살짝 올린 채 말하며 사물함 앞으로 가 흰 가운으로 갈아입기 시작했다.해인은 승진 속도가 빨랐고, 외모도 눈에 띄었다. 거기에 회사 대표가 해인의 지도교수와 대학 동문이라는 이유로 유독 신경을 써주는 것도 사실이었다.직장 안에서는 자연히 시선이 집중되었다.시간이 지나자 해인이 실력보다는 인맥으로 HJ그룹에 들어왔다는 말도 돌기 시작했다.최근 진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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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화

누군가가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러게요. 강 대리님이랑 하 대리님 사이에 예전에 무슨 일 있었던 거예요? 강 대리님이 하 대리님한테 ‘은혜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하신 게 좀...”예주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눈물이 하나둘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저도 잘 모르겠어요. 해인 선배님은 학교 다닐 때부터 워낙 유명하셨잖아요. 저는 그냥 계속 존경해 왔을 뿐이에요.”예주는 훌쩍이며 말을 이었다.“아마 선배님이 저를 좀 오해하신 것 같아요.”그 말을 듣고 있던 민하슬이 뭔가 떠올린 듯했다. 휴지를 꺼내 예주에게 건네면서 하슬이 말했다.“그거야 뻔하지 않아요? 아까 우리가 한 말, 강 대리님이 들으신 거예요. 하 대리님이 자기랑 과장 자리 놓고 경쟁하러 온 줄 알고, 위기감 느끼신 거죠. 그러니까 괜히 하 대리님한테 날 세운 거고...”그제야 주변 사람들이 고개를 끄덕였다.예주는 눈가에 맺힌 눈물을 멈춘 채 불안한 표정으로 말했다.“제가 HJ그룹으로 이직한 게 잘못이었을까요? 해인 선배님이 여기 계신 줄 알았으면, 저는...”말도 끝내지 못하고 다시 울음이 터질 듯했다.하슬이 보다 못해 말을 받았다.“과장 자리는 원래 실력 있는 사람이 가는 거예요. 강 대리님이 못 올라가면, 그건 본인 문제지 하 대리님 잘못은 아니죠.”여러 사람의 위로가 이어지자, 예주는 겨우 눈물을 멈췄다.“다들 이렇게 응원해 주셔서 감사해요. 나중에 제가 과장이 되면, 꼭 한 번 제가 밥 살게요.”말 속에는 마치 과장 자리가 이미 예주의 것이 된 듯한 뉘앙스가 섞여 있었다.하슬이 웃으며 말했다.“밥이요? 그럼 롤스로이스 팬텀 타는 그 부잣집 남자친구도 같이 오는 거예요? 남자친구분 형제나 친구들도 좀 데려와서 소개도 해 주세요. 저희도 덕 좀 보게요.”하슬은 명품 스타일의 옷을 즐겨 입는 편으로, 평소에도 허영심이 적지 않았다. 사람들이 웃으며 맞장구를 쳤고, 그렇게 다 함께 탈의실을 나섰다.그 사이, 해인은 이미 업무에 집중하고 있었다.프로젝트는 가장 중요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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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그때, 예주가 입을 열었다.“부장님, 모두 같은 프로젝트 팀이고요, 책임도 서로 연결돼 있잖아요. 실험도 원래 두 명씩 짝을 이뤄서 진행하고, 강 대리님이랑 민 대리님은 원래 한 조였고요.”예주는 신승빈을 바라보며, 부드럽고 무해한 미소를 지었다.“민 대리님이 급한 일로 자리를 비우셨다면, 강 대리님이 대신 확인하는 것도 책임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요?”“그리고 회사에서도 다들 이야기하잖아요. 강 대리님은 곧 과장 승진하신다고요. 부장님도 팀에서 가장 많이 애써 주시는 분이시니까, 다들 그 부분은 마음에 두고 있을 거예요.”하슬은 예주의 말이 자신을 두둔해 주는 것임을 알아차리고, 고마운 눈길을 보냈다.예주는 하슬에게도 예의 바른 미소를 돌려주었다. 동시에 신승빈이 팀을 위해 가장 많이 기여하고 있다는 말을 자연스럽게 덧붙이며, 분위기를 누그러뜨렸다.그 말에 신승빈은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해인은 예주의 이런 처세술을 바라보며 속으로 생각했다.‘예전에 그렇게 순하고, 학비 지원해 달라고 조심스럽게 부탁하던 하예주는 이미 없네.’‘지금의 하예주는 예전의 순수함도, 미숙함도 남아 있지 않아. 눈빛 사이에는 계산과 요령만 남아 있지.’해인은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결국, 그때 내가 사람을 잘못 본 거지.’예주를 도운 건 해인의 순간적인 연민 때문이었다.그 무렵, 해인은 아버지와 두 오빠를 잃고 태겸의 부모에게 맡겨진 상태였다.자신의 처지를 떠올리다 보니, 부모 없이 자란 예주가 마음에 걸렸고, 그렇게 학비를 지원하게 됐다.두 사람은 나이 차이도 크지 않았다.처음 지원을 받게 된 예주는 무척 기뻐했고, 해인과 편지를 주고받으며 자주 감사 인사를 전했다.해인은 답장에서 공부 열심히 하라고 격려했다.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었지만, 해인의 마음속에서는 이미 예주를 친동생처럼 여기고 있었다.이후 두 사람은 같은 대학에 합격했다.해인은 진심으로 기뻐했고, 예주는 해인의 전공을 알고는 같은 학과를 선택했다.그렇게 둘은 온라인에서 알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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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화

태겸은 가볍게 웃었다. 태도에는 전혀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그럼 뭘로 갚을 건데?”“저는...”예주는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생각해 보면 20년 넘게 가난하게 살아온 탓에 말투나 행동은 물론이고 옷차림까지도 세련됨과는 거리가 멀었다.해인 곁에 붙어 지낸 지가 벌써 4년이었지만, 배운 것이라곤 겉모습만 흉내 낸 수준에 불과했다.태겸 옆에는 친구들이 여럿 있었고, 그 친구들은 예주의 그런 모습을 보고 하나같이 웃음을 터뜨렸다.그때 다가온 해인이 예주를 대신해서 상황을 정리해 주었다.같은 여자라는 이유도 있었지만, 해인은 예주가 겉으로 드러난 걸로 평가받는 걸 원하지 않았다.예주의 집안 형편이 그녀의 시야를 좁게 만들었을 뿐, 그것은 예주의 잘못이 아니라고 생각했다.그렇게 그 명문가 자제들 눈에 잘 들지 못하던 예주였지만, 반 년이라는 시간 동안 끝내 그 명문가 자제들 무리 안으로 스며들었다.예주와 태겸 사이가 언제부터 달라졌는지, 해인도 정확히 알지 못했다.해인이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이렇게 되어 있었다....회의는 계속되고 있었다.신승빈은 실험 데이터를 한참 동안 분석했다. 내용은 다소 지루하게 들렸다. 서른다섯이라는 나이가 무색하게 신승빈의 머리는 거의 휑한 상태였다.몇 가닥 남지 않은 머리를 긁적이던 신승빈은 회의가 끝나갈 무렵이 되어서야 핵심을 꺼냈다.“다들 알고 있겠지만, 우리 부서에 아직 과장 자리가 한 자리 비어 있습니다. 제가 당분간 출장을 나가게 되어서 제가 돌아오기 전까지는 과장이 연구개발부를 맡아야 합니다.”회의실 안에서 시선들이 오갔다. 그중 몇몇은 자연스럽게 해인에게로 향했다.해인은 평소 상사의 신임이 두터웠고, 이들 중 학력도 가장 높았다. 고등학교 때 월반까지 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였다.그때 하슬이 손을 들었다.“부장님, 제가 실명으로 추천하겠습니다. 하예주 대리님입니다. 하 대리님은 입사한 지 오래되진 않았지만 핵심 기술을 보유하고 있고, 그 기술로 하반기 신제품 발표회를 진행하면 HJ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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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8화

회의실을 나선 해인은 확연히 마음이 다른 데 가 있었다.사실 과장이라는 자리가 해인에게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해인은 애초에 그런 허울뿐인 직함에 크게 의미를 두는 편이 아니었다. 다만 이 연구만큼은 달랐다. 대학 시절부터 손을 대기 시작한 연구였고, 지금까지 꼬박 2년을 매달려 왔다.이제서야 겨우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기 시작했는데, 이 기술 하나를 위해 해인은 셀 수 없을 만큼의 시간과 정성을 쏟아부었다. HJ그룹 역시 해인을 위해 따로 팀을 꾸려 주었다.팀 인원은 많지 않았다. 서너 명 남짓이었지만, 모두가 이 기술의 가능성을 굳게 믿고 있었다.해인은 태겸과의 개인적인 문제 때문에 팀 전체가 몇 년 동안 쌓아 온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는 없었다. 애초에 해인은 사적인 감정과 일을 뒤섞는 사람이 아니었다.해인은 스스로를 다독였다. ZC그룹의 법인은 고민건이지만, 태겸은 그동안 자기 집안 회사 일에는 거의 관여하지 않았다. 둘 사이에 직접적인 연결고리가 있을 가능성은 크지 않았다.게다가 이 연구에 대해서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철저한 사업가인 고민건이 이익이 되는 쪽을 선택할 사람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렇게 생각을 정리하자, 해인의 마음도 한결 가벼워졌다.해인은 핸드폰을 들어 고민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회장님, 저 해인입니다. 언제 시간이 괜찮으십니까? 한 번 뵙고 싶습니다.]해인이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는 사이, 예주 역시 멍한 표정으로 자리에 서 있었다.예주는 ZC그룹이 고씨 가문의 회사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태겸은 졸업하자마자 YD그룹에 들어갔고, 고씨 가문의 회사에는 단 하루도 몸을 담은 적이 없었다. 태겸이 나서서 무언가를 해 줄 수 있을지는 미지수였다.고민건 같은 인물은 예주에게는 그저 텔레비전 속에서나 보던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과 마주 앉아 사업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사실만으로도 예주는 가슴이 조여들었다.예주는 해인과 고씨 가문 사이의 얽힌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해인의 아버지와 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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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9화

해인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할머니가 내게 준 그 팔찌만 해도 값이 꽤 나갔어.’‘내 ‘남편’ 집안이 형편이 안 좋을 리는 없겠지.’해인은 캐리어를 끌고 문을 열었다. 예상했던 대로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다만 집 안은 깔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사람이 드나드는 듯했다.실내 인테리어는 세련됐고, 화려함을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곳곳에서 여유가 느껴졌다.해인은 3층을 모두 둘러보았다. 층마다 독립된 구조였고, 동선도 무척 합리적이었다.아마 남편은 이층을 쓰는 듯했다. 집을 살펴보는 동안, 이층에서만 생활의 흔적이 비교적 뚜렷했기 때문이다.이층의 안방은 널찍했고, 드레스 룸도 따로 딸려 있었다. 옷장 안에는 옷들이 색깔별로 정리돼 가지런히 걸려 있었다.해인은 방문을 조용히 닫고 물러났다. 남의 사적인 공간을 함부로 들여다보고 싶지 않았다.마지막으로 해인은 캐리어를 끌고 3층의 안방으로 올라갔다. 3층은 거의 사용하지 않는 듯해서 이곳이 더 편할 것 같았다.남편이 휴가를 나와 집에 돌아오더라도 서로 공간을 나눠 쓰면 불필요한 마찰도 없을 터였다.해인은 자신의 옷을 옷장에 차분히 정리해 넣었다.잠시 앉아 쉬고 있는데, 부동산 공인중개사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강해인 씨, 오늘 고객이랑 약속 있으신 거 잊으신 건 아니죠? 매매 계약서 쓰기로 한 날입니다.]해인은 잠시 멈칫했다. 정말로 깜빡 잊고 있었다.원래는 냉장고를 열어 뭔가 해 먹을지 고민하려던 참이었다.‘계약부터 끝내고 밖에서 대충 먹지 뭐.’“제 집을 사겠다는 그분은 어디에 계세요?”해인이 물었다.부동산 공인중개사가 말했다.[집으로 오시면 됩니다. 이미 단지 안에서 기다리고 계세요.]해인은 태겸이 이미 이 집을 비웠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제 집 안에 다른 사람은 없죠?”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옆에 서 있는 태겸을 힐끗 바라보았다. 스피커폰을 켠 상태라서, 태겸도 대화를 전부 듣고 있었다.태겸의 시선을 느낀 부동산 공인중개사는 얼버무리듯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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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0화

권영자는 사실 어젯밤 해인과 유호가 어떻게 지냈는지 묻고 싶었다.하지만 괜히 이것저것 캐묻다 보면 귀찮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다들 사적인 공간을 중시하지 않는가?해인이 먼저 입을 열었다.“할머니, 저 지금 급하게 나가야 해서요. 나중에 들어와서 말씀드릴게요.”“그래, 그래. 네 일부터 봐.”권영자는 눈이 가늘어질 만큼 웃으며 말했다.“이따가 우리 손자가 너한테 조금이라도 못되게 굴면, 나한테 바로 말해. 내가 대신 혼내줄게.”해인은 잠시 멈칫했다.‘손자가 군에 있는 거 아니었나?’이상하다는 생각이 스쳤지만, 해인은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연세가 있으니 말씀이 헷갈리신 거라고 넘겼다.곧 해인은 팔기로 한 집에 도착했다.그런데 현관에 들어서는 순간, 어딘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이미 해는 완전히 저물었는데, 집 안은 캄캄했다. 불이 하나도 켜져 있지 않아서 사람이 와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다.‘오는 길에 너무 늦었나? 내가 약속을 어긴 줄 알고 그냥 돌아간 건가?’해인은 지문으로 문을 열고 벽을 더듬어 스위치를 찾았다.한참을 만져 봤지만 불은 켜지지 않았다. 집 안은 여전히 어두웠다.‘조명에 문제가 있나?’해인은 전기 쪽을 확인해 보려고 몸을 돌렸다.그때, 뒤에서 누군가가 갑자기 해인을 끌어안았다. 뜨거운 숨결이 바로 닿자, 해인은 본능적으로 몸이 굳어졌다.“왔네?”태겸이었다.남자의 큰 손은 여자의 허리를 움켜쥐고 있었고, 목소리는 나직하면서도 거칠었다. 태겸이 술을 조금 마신 기색도 느껴졌다.해인은 미간을 찌푸렸다. 공인중개사는 분명히 태겸이 이미 이사했다고 했다.곧바로 상황이 이해되었다. 공인중개사가 태겸에게서 뭔가를 받고 일부러 자신을 속인 게 분명했다.이렇게 태겸과 접촉하자, 아침에 HJ그룹 건물 앞에서 봤던 예주와 태겸의 키스가 떠올랐다.해인은 속이 울렁거렸다. 곧바로 태겸의 손을 허리에서 떼어 내고 몸을 돌렸다. 시선에는 차가운 거리감만 남아 있었다.“고태겸, 이게 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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