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541 - Chapter 550

558 Chapters

제541화

사흘 뒤, 해인은 집에서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챙겨 주고 있었다. 그때 현관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문을 열자 밖에는 뜻밖에도 태상이 서 있었다.“어떻게 왔어요?”해인의 얼굴에 의아함이 스쳤다.“자료는 다 봤어요? 실험실에서 정리하다 보니까 빠진 게 몇 개 있더라고요. 그래서 바로 가져왔어요. 갑자기 와서 불편한 건 아니죠?”불편하든 아니든 이미 집 앞까지 와 있었다. 해인은 태상의 말이 예의상 덧붙인 인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자료 양이 제법 많았다. 해인은 옆으로 비켜서며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자료는 안으로 가져오세요.”집 안으로 들어온 태상의 시선이 사료를 먹고 있는 고양이에게 닿았다.“며칠 못 봤는데 더 통통해진 것 같네요. 해인 씨가 정말 잘 돌봐 주나 봐요.”해인은 담담하게 대답했다.“자료는 식탁 위에 두면 돼요. 나중에 천천히 정리할게요.”“네. 화장실 좀 써도 돼요?”해인이 고개를 끄덕였다.태상은 욕실로 들어갔다. 세면대 위에 남성용 클렌저가 놓여 있었다.‘한유호도 여기서 지내는 건가?’욕실에서 나온 태상은 아무렇지 않은 듯 물었다.“한 대표랑은 화해한 거예요?”두 사람이 얼마 전까지 다투고 있었다는 건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일이었다.해인은 고양이를 품에 안고 작은 머리를 천천히 쓰다듬었다.“화해라고 하긴 애매해요. 제가 만삭이니까, 그 사람이 아버지로서 할 일을 하겠다는 것뿐이에요.”“그렇군요.”태상이 자리에 선 채로 쉽게 돌아갈 기색을 보이지 않자, 해인이 조용히 물었다.“또 할 말 있어요?”“아니요. 그럼 저는 이만 갈게요.”태상은 현관으로 향하다가 뭔가 떠올랐다는 듯 다시 돌아보았다.“배가 전보다 많이 나온 것 같아요. 출산까지 얼마나 남았어요?”“두 달쯤요. 왜요?”“분만할 병원은 정했어요?”“네.”“아는 산부인과 전문의가 있어서 소개해 주려고 했는데, 정했다면 괜찮겠네요.”태상의 부드러운 눈길이 해인의 얼굴에 머물렀다.설령 태상이 정말 병원을 소개해 준다 해도 해인은 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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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2화

[응? 네가 갑자기 예지안한테 왜 관심이 생겼어?]“원래 시끄럽게 굴던 사람이 너무 오래 조용해. 평범한 일은 아닌 것 같아서.”태상은 빈틈이 없었다. 하지만 지안은 태상과 정반대였다. 뚫고 들어갈 틈이 훨씬 많은 사람이었다.어쩌면 지안 쪽에서 시작하면 뜻밖의 단서가 나올 수도 있었다.승아는 예전에 연예부와 사회부를 오가며 취재했던 기자답게 사람을 찾고 확인하는 속도가 빨랐다.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승아가 전부 알아냈다.[예지안 아픈 거 맞아. 요즘 계속 집에서 쉬고 있고, 밖에도 안 나간대.]태상이 한 말과 같았다.“무슨 병인데?”[정신적인 문제 같아. 예태상이 예지안을 데리고 상담 치료도 받으러 갔대. 정확히 어떤 병인지는 확인이 어렵더라. 병원 쪽 환자 정보 관리가 꽤 철저해.]승아가 짐작하듯 말했다.[예씨 집안이 하루아침에 무너졌잖아. 예지안은 이제 예전처럼 집안의 공주 노릇 못 하니까, 그걸 못 견뎌서 우울증 같은 게 온 건 아닐까?]지안 같은 사람이 우울증을 앓는다고?해인은 잠시 말이 없었다.칩과 관련된 모든 일을 밝혀내고 싶은 마음은 컸다. 그렇다고 정신 질환을 앓고 있는 사람을 이용할 만큼 선을 넘고 싶지는 않았다.지안 쪽으로 파고드는 건 쉽지 않아 보였다....한편, 실험실로 돌아간 태상은 곧바로 서진에게 전화를 걸었다.“한유호가 나를 의심하기 시작했어. 이미 알고 있었지?”그날 병원에서 대현이 던진 말 한마디 한마디는 전부 떠보는 질문이었다. 태상은 유호가 자신을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걸 알았다.수술이 그의 실험실에서 이루어졌으니, 언젠가 유호가 자신에게까지 올 거라는 건 태상도 예상하고 있었다.하지만 서진은 배후에 숨어 있었다. 태상은 자신이 결국 앞에 내세운 희생양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서진이 말했다.[너를 의심한다는 걸 알면서도 나한테 전화를 해?]희정은 집에 갇힌 채 외출금지를 당하고 있었다. 서진은 이 기간 내내 희정을 꺼내 올 방법을 찾느라 머리가 복잡했다.이미 신경이 곤두서 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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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3화

유호가 집에 들어온 뒤로 해인은 많은 일을 직접 하지 않아도 됐다.예를 들어, 지금도 유호는 청소기로 소파 위의 고양이 털을 빨아들이며 성실한 청소부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그리고 불평 한마디 없었다.반면 해인은 흔들의자에 앉아 모바일 게임을 하고 있었다.게임 회사 대표인 우진이 해인도 자기 회사 게임을 한다는 말을 듣고, 통 크게 게임 캐시 2천만 원어치를 넣어 주었다.해인은 예전에는 게임에 돈을 쓴 적이 없었다.이번에는 처음으로 결제의 즐거움을 제대로 느끼고 있었다.집에는 고양이 네 마리가 있었다. 귀엽기는 정말 귀여웠지만 불편한 점도 적지 않았다.해인은 종종 재채기를 했다.“내가 없을 때 이 집에 다른 남자 왔었지?”유호가 청소기를 내려놓으며 갑자기 물었다.해인은 유호가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몰랐다. 그런데 그런 질문을 듣자 왠지 들키면 안 될 일을 들킨 듯한 기분이 들었다.“어떻게 알았어?”유호는 욕실 쪽을 가리켰다.“들어올 때 슬리퍼 안 갈아 신었더라. 욕실에 남자 발자국이 남아 있었어. 내 발자국은 아니고.”유호는 청소기를 내려놓고 일어나 해인 앞에 섰다.“말해 봐. 그 남자가 누구야? 내가 없는 사이에 다른 남자라도 생긴 거야?”누가 들어도 농담이었다. 유호의 말투도 강압적이지 않았다.하지만 해인은 장난을 받아 줄 기분이 아니었다.“예태상이 왔었어. 실험실 자료 가져다주러.”유호는 그제야 이해했다.“그래서 자료를 그렇게 오래 봤는데, 뭐라도 건졌어? 내가 진작 말했잖아. 예태상은 겉으로는 순해 보여도 속은 여우라고.” “네가 그렇게 나오면, 그 작자는 네가 만만하다고 생각해서 더 밀고 들어올 거야.”유호는 몸을 숙여 해인을 흔들의자에서 끌어올렸다.그러고는 자신이 그 자리에 앉았다.“물론 너한테 찬물을 끼얹으려는 건 아니야. 네가 나 때문에 이렇게 고생하는 게 마음 아파서 그래.”말을 마친 유호는 해인의 허리를 감싸고 자기 무릎 위에 앉혔다.해인은 몸이 무거웠고 중심도 잘 잡히지 않았다. 대비할 틈도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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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4화

“그런 눈으로 보지 말고 대답이나 해 봐. 아내가 중요해, 네 자존심이 중요해? 자존심 세우다가는 아내 못 잡는다니까.”“여자들은 자기한테 한결같이 매달리는 남자, 생각보다 쉽게 못 밀어내. 네가 끝까지 버티면 돼.” “달달한 말 좀 한다고 어디 덧나냐? 부부 사이엔 그런 맛도 있어야지.”유호는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래도 이 기간 동안 함께 지내며 느낀 게 있었다. 해인의 마음속에는 여전히 자신이 있었다.해인은 그를 위해 힘들게 칩을 조사하고 있었다.칩은 언젠가 반드시 꺼내야 했다. 그대로 두면 어떤 후유증이 생길지 알 수 없었다.유호 본인보다 해인이 더 조급했다. 만삭의 몸으로도 쉬지 않고 계속 방법을 찾고 있었다.해인이 자기 무릎 위에 앉아 있자 유호의 목젖이 가볍게 움직였다. 그는 문득 몸을 숙이고 한 손으로 해인의 턱을 잡은 뒤 입술에 키스하려 했다.해인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뭐야... 당신...”“쉿. 말하지 마.”유호의 숨이 조금 거칠어졌다. 입맞춤에는 감정이 실려 있었다.“우리 오래 안 했잖아. 안 그래?”해인의 심장 박동이 빨라졌다.“기억났어?”“조금.”유호의 낮은 목소리는 거칠었고, 눈빛은 사람을 홀리는 듯했다.“조금은 기억났어.”해인은 이제 키스에 신경 쓸 정신이 없었다. 유호가 조금 기억났다고 하자 마음이 들떴다.해인은 유호를 밀어냈다.“뭐가 기억났는데?”유호가 대답했다.“너랑 키스할 때 심장이 뛰던 느낌.”‘이건 뭘 떠올린 게 아니라 그냥 억지잖아!’‘이 남자, 언제부터 이렇게 능청스러워진 거야?’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지금 날 가지고 노는 거야?”유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그게 왜 가지고 노는 거야? 못 믿겠으면 한 번 더 해 보면 되지.”말을 마치며 유호가 다시 해인에게 다가왔다.분명 이 틈을 타서 만지고 싶어 하는 게 뻔했다.대비하고 있었던 해인이 손을 들어 유호의 뒤통수를 한 대 쳤다.예전 같았으면 이렇게까지 거칠게 굴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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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5화

해인은 방으로 돌아왔다. 방금 유호가 남긴 입맞춤 때문에 마음이 어수선했다.‘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어떻게 저렇게 아무렇지 않게 입을 맞출 수 있지?’해인은 유호가 입 맞춘 뺨을 가볍게 만졌다. 그제야 자기 얼굴이 무섭게 달아올랐다는 것을 알았다.스스로도 이런 반응이 당황스러웠다.‘아직 화가 나 있는데, 그 사람이 내 뺨에 한 번 입을 맞췄다고 이렇게 부끄러워하다니.’‘정말 한심해!’그날 밤, 해인이 침대에 누워 깊이 잠들어 있을 때 방문이 살짝 열렸다.옆자리가 푹 꺼지더니 유호가 누웠다.해인은 깊이 잠들어 전혀 알아차리지 못했다....다음 날 아침, 해인이 흐릿하게 눈을 떴다. 놀랍게도 자신은 유호의 품에 안겨 있었다.유호는 뒤에서 해인을 감싸 안고 있었다. 한 손은 해인의 배 위에 가볍게 얹혀 있었다. 뱃속의 아이는 해인보다 먼저 깨어난 듯했다. 그리고 작은 발로 부지런히 배를 차며 이제 밥 먹을 시간이라고 알려 주는 것 같았다.해인이 몸을 돌렸다.유호는 이미 깨어 있었다. 깊은 눈으로 해인을 바라보고 있었다.“아기가 계속 차는 것 같아.”해인이 물었다.“언제 들어왔어? 소파에서 자기로 했잖아.”유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손을 빼서 자기 뒤통수 아래에 받쳤다.“어젯밤에 네가 몽유병처럼 나와서 말했잖아. 잠들었는데 방 안에서 누가 네 뺨을 때리는 것 같다고, 들어와서 봐 달라고.” “그러다 무섭다면서 내 옆에 누워 있으라고 했고. 기억 안 나?”그럴 리가 없었다.해인은 자신이 몽유병이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뺨을 때린다는 말은 더 말도 안 됐다. 이 남자가 뻔뻔하게 지어낸 말이라는 걸 바로 알 수 있었다.하지만 유호의 멘탈은 대단했다.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죄책감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입꼬리가 휘면서 해인에게 웃어 보였다.해인은 유호를 흘겨보고 돌아서서 옷을 갈아입었다.하지만 만삭의 몸은 무거웠다. 신발과 양말을 신는 일조차 쉽지 않았다.마침 유호가 욕실에서 씻고 나오다가, 옷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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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6화

그때 해인이 힘들다고 말했어도 유호는 아마 유난을 떤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관심을 끌려는 수단이라고 여겼을지도 몰랐다.‘이 사람...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칩은 아직 머릿속에 있는데. 마치 이미 칩을 꺼낸 사람처럼...’해인은 침묵을 택했다.거실로 나가 고양이들에게 사료를 챙겨 주자, 유호는 생각에 잠긴 얼굴로 주방으로 향했다.해인이 고양이 밥을 다 챙긴 뒤 주방에 갔을 때, 유호는 마침 달걀을 부쳐 놓고 있었다.유호는 달걀을 토스트 사이에 끼우고 닭가슴살도 구웠다. 해인이 병원에 입원했던 일주일 동안 체중이 2킬로 넘게 늘었다며 계속 신경 쓰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아침은 비교적 가볍게 준비했다. 믹서기 안에서는 주스가 갈리고 있었다.“나 먼저 출근할게. 주스는 조금 있다가 꼭 마셔.”유호는 정장을 챙겨 입으며 말했다.“아, 조금 뒤에 집으로 도우미가 올 거야. 네 식사랑 생활을 챙겨 줄 사람이야.”해인이 말하려고 하자, 유호는 이미 거절할 것을 예상했다는 듯 먼저 입을 열었다.“여보, 지금 임신 후반기야. 집에 사람이 없어서는 안 돼. 이럴 때는 괜히 사양하지 말고 내 말 들어.”유호의 말투는 단호했다. 특히 태상이 자신이 없는 틈에 몰래 찾아왔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 유호는 더욱 예민해졌다.집에 누군가 더 있으면 해인도 조금은 안전할 수 있었다.“영지랑 잘 지냈잖아. 조금 있다가 본가에서 영지 데려오게 할게.”겨울방학이 끝나면서 영지의 아르바이트도 마무리됐다. 마침 인턴 자리를 찾던 중이었고, 전공도 맞아서 해인은 영지가 YD그룹에 남도록 도와주었다. 아마 해인 곁에서 도우미 일을 할 시간은 없을 것이다.해인이 조용히 말했다.“영지 못 찾을 수도 있어. 다른 사람으로 바꿔.”유호가 눈살을 찌푸렸다.“영지하고 괜찮았는데 왜 바꿔? 영지로 해. 어떻게든 찾아올 테니까.”...유호가 나간 뒤, 정말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영지가 현관문을 두드렸다.“저 아침에 출근해서 자리 앉자마자 동료들이랑 회의하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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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7화

정수의 일을 마친 유호는 대현의 병실로 향했다.대현의 침대 옆에는 신선한 과일과 꽃이 놓여 있었다. 누가 다녀간 모양이었다.유호는 의자를 끌어다 앉았다.“네 사촌 누나 중에 지난달에 애 낳고 산후조리 끝낸 사람 있지?”대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일이 있긴 했다. 그런데 유호가 왜 갑자기 사촌 누나에게 관심을 갖는지 알 수 없었다.“야, 우리 사촌 누나 애 낳느라 진짜 고생했대. 임신 후반기에는 제대로 잔 날이 거의 없었다더라. 누우면 애가 배 속에서 춤을 췄대.”“한번은 한밤중에 화장실 가려고 일어나서 변기에 앉은 채로 울었대. 매형이 놀라서 왜 그러냐고 물었더니, 소변은 너무 마려운데 애가 방광을 눌러서 도저히 안 나온다고, 죽을 만큼 힘들다고 했다더라.”“옷 입는 것도, 바지 입는 것도 다 누가 도와줘야 하고. 샤워할 때도 발이 안 닿는대.”“...”대현은 유호의 표정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아차렸다.‘혹시 우리 사촌 누나가 유호에게 실수한 일이 있나?’대현은 바로 말했다.“왜 그래, 유호야? 우리 사촌 누나가 너한테 뭐 잘못했어? 그럼 내가 대신 사과할게.”유호의 눈에 차가운 기운이 스쳤다.“그러니까 너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네.”그런데도 임신한 여자가 얼마나 힘든지 말해 주지 않았다.유호에게는 이런 경험이 전혀 없었기에 전부 몰랐다.유호 곁에서 임신을 했던 유일한 여성은 천하솜뿐이었다.하지만 천하솜이 조우를 낳았을 때 유호는 군부대에서 훈련을 받고 있었다.유호가 임신부에 대한 정보를 얻을 경로는 거의 없었다. 게다가 성인 남자인 그가 이유 없이 그런 일을 생각할 리도 없었다.대현은 아직 유호의 감정이 이상해졌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다.아무 생각 없이 물었다.“왜 그래? 그런 건 나도 알지. 직접 겪어 보진 않았어도 얘기는 많이 들었잖아. 그런 건 생각만 해도 알 수 있는 거 아니야?”대현의 말은 유호의 가슴에 칼을 꽂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문제는 유호였다. 남들은 생각만 해도 아는 일을 유호만 몰랐다.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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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8화

두 남자가 동시에 승아를 바라보았다.유호는 눈살을 찌푸리고 왜 승아가 여기 있는지 묻듯이 바라보았다.대현은 억울한 얼굴로 말했다.“처음부터 내 병실에 있었어. 이 과일이랑 꽃도 승아 씨가 가져온 거고.”대현은 승아의 말을 곱씹어 보더니 꽤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유호야, 승아 씨 말이 맞아? 네가 제수씨를 제대로 살피지 못해서 자책 중인 거야?”유호는 미간을 찌푸린 채 대답하지 않았다.남자는 체면을 중시한다. 그런데 이렇게 와서 대놓고 대현에게 임신한 여자에 대해 묻고, 그걸 아내의 절친에게까지 들키고 나니 왠지 민망했다.유호가 침묵하자 대현이 다시 물었다.“혹시 제수씨가 너한테 서운하다고 했어? 네가 관심이 부족하다고 화냈어?”유호의 미간이 더 깊게 패였다.해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원망도 없었고, 임신이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하지도 않았다. 전부 혼자 해냈다.바로 그래서 유호는 더 답답했다.다른 사람의 아내들은 남편에게 힘들다고 말하고, 가족 단톡방에 불평도 한다. 그런데 해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밤중에 먹고 싶은 걸 사 오라고 조른 적도 없었다. 해인은 유호에게 바라는 게 하나도 없는 사람처럼 굴었다.그 얌전하고 조용한 모습이 오히려 유호에게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죄책감을 안겼다.아버지로서 아이의 시간에 참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느낌, 남편으로서도 한참 부족했다는 느낌.어쩌면 처음부터 해인은 유호를 믿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혹은 유호가 한동안 보여 준 태도 때문에 마음이 식은 것일 수도 있었다.어찌 됐든 이것은 정상적인 부부 관계가 아니었다.유호는 마음이 불편했고, 설명하기 어려운 초조함까지 올라왔다.이대로는 싫었다. 오히려 해인이 먼저 자신에게 기대 주었으면 했다.오랜 침묵 끝에 유호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해인이는 나한테 아무 말도 안 했어.”그때 승아가 입을 열었다.“해인이는 원래 마음속에 뭘 많이 담아 두는 애예요. 해인이 집안에서 일이 터진 뒤로는 더 독립적으로 변했고요. 혼자 해결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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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49화

승아는 말을 마친 뒤 병실을 나갔다.그녀가 나가자 대현이 서둘러 말했다.“어? 승아 씨, 그냥 가면 어떡해요? 나 심심한데... 내 목을 이렇게 만들어 놓고 책임지고 좀 더 있어 줘야 하는 거 아니에요?”승아는 자신이 손에 힘을 너무 준 탓에 대현이 다쳤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래서 미안한 마음에 며칠에 한 번씩 병문안을 왔다.오늘도 원래 출근 중이었지만 외부 취재 일정이 있어 잠깐 들른 것이었다. 유호와 마주칠 줄은 몰랐다.승아가 말했다.“저 일하러 가야 해요.”“일이 뭐가 문제예요? 여기 와서 저랑 얘기해 주면 제가 돈 줄게요. 시간당 20만 원 어때요? 회사 다니는 것보다 낫지 않아요?”승아가 눈살을 찌푸렸다.“저는 심 대표처럼 누워만 있어도 저 같은 평범한 사람들이 돈을 벌어다 주는 팔자는 아니라서요. 돈이 부족하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벌고 싶지는 않아요.”대현이 말했다.“그 말은 좀 부자 혐오처럼 들리는데요? 돈이 있는 게 잘못이에요?”승아가 눈살을 찌푸렸다.“심 대표가 잘못한 건 아니죠. 제가 가난한 게 잘못이겠네요.”말을 마친 승아는 문을 닫고 사라졌다.대현은 자기 코를 만지작거렸다.“유호야, 승아 씨 나갈 때 화난 것 같지? 내가 뭐 잘못 말했어?”유호는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대현에게 조언을 구했다는 사실이 새삼 한심했다. 이 남자도 눈치가 심각하게 없었다.“네가 보기엔?”대현은 눈을 깜박거리며 억울한 얼굴을 했다.“나도 별말 안 한 것 같은데?”유호가 말했다.“방금 승아 씨 직업을 은근히 깔본 거잖아. 화낼 만하지.”“내가요? 내가 승아 씨를 깔봤다고? 나는 몰랐는데?”대현은 뒤통수를 긁적였다.“진짜 그런 뜻 아니었어. 너무 확대 해석한 거 아닌가?”대현이 승아에게 전화해서 다시 부르려고 하자, 유호가 갑자기 물었다.“요즘 우리 쪽 사람들은 백일잔치 어떻게 해?”백일잔치 얘기가 나오자 대현은 할 말이 많았다. 전날 사촌 누나가 아들 백일잔치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올렸기 때문이다.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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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50화

대현은 자신이 잘못 들은 건가 싶었다. 유호가 갑자기 좀 중2병 같아 보였다.예전의 유호는 이렇게까지 요란한 방식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머릿속에 칩이 들어간 뒤로 성격이 꽤 달라졌다. 일하는 방식도 바뀌었다. 예전 같으면 절대 입 밖에 내지 않았을 말이었다....일이 바쁜 유호가 요 며칠 집에 유난히 일찍 돌아왔다.영지는 낮에 해인을 돌보다가 저녁에 유호가 돌아오면 눈치껏 빠졌다. 두 사람만의 시간을 만들어 주려는 배려였다.아직 밖이 환한데, 유호는 임신부용 간식을 한가득 들고 돌아왔다.해인이 소리를 듣고 방에서 나왔는데, 아이 장난감이 눈에 들어왔다. 유호는 어린이용 자전거까지 사 왔다.“이 간식은 네 거야. 집에 있다 심심할 때 먹어.”유호는 커다란 간식 봉지를 해인에게 안겼다.일부러 유아와 임신부용 매장에 가서 고른 건강 간식이었다. 직원 말로는 입은 즐겁게 해 주지만 살이 덜 찌고, 천연 재료로 만든 것들이라고 했다.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그럼 저건?”해인은 바닥에 쌓인 장난감, 특히 핑크색 자전거를 가리켰다.유호가 대답했다.“우리 딸한테 줄 거야.”해인은 참지 못하고 말했다.“당신 딸이 태어나자마자 자전거 타는 신동이야?”저건 최소 3, 4년은 집에 그대로 놓여 있어야 할 물건이었다. 해인은 유호의 부성애가 이렇게 갑자기 몰아칠 줄은 몰랐다.“집에 아이한테 필요한 건 네가 거의 다 준비해 놨더라. 그래도 우리 첫아이잖아. 아빠인 나도 뭔가 해 줘야지.”유모차와 아기 침대는 전부 준비되어 있었다. 아이 옷도 온통 핑크색이었다. 유호는 해인이 딸을 임신했다고 짐작했고, 그래서 핑크색 자전거를 사면 틀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해인이 눈살을 찌푸렸다.“첫아이? 당신은 아이를 몇 명이나 낳고 싶은데?”“임신이 너무 힘들잖아. 몇 명을 낳을지는 네 뜻에 따를게. 더 낳기 싫으면 하나만 있어도 좋아.”유호는 해인에게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았다.“내가 사 온 자전거 마음에 안 들어? 네가 좋아하는 걸로 다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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