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키워온 장미를 숙적에게 빼앗긴 밤: Chapter 751 - Chapter 7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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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1화

희정은 곧바로 알아들었다. 건훈은 모든 일을 서진에게 뒤집어씌우라는 뜻이었다.“당연히 네가 아니지.”희정은 건훈의 눈을 마주 보며 웃었다. 웃고 있지만 눈에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서진은 나한테 진심이야. 넌 뭐야? 내 몸이나 탐내는 주제에.”“서진한테 여자는 평생 나 하나뿐이었어. 근데 넌? 몇 여자 손을 거쳤는지도 모르잖아. 더러워.”희정도 바보는 아니었다. 누가 진심으로 자신을 아끼는지 정도는 알았다.서진은 늘 희정을 세심하게 챙겼고, 일이 터진 뒤 가장 먼저 떠올린 것도 희정 대신 자신이 죄를 뒤집어쓰겠다는 방법이었다. 그 정도까지 해 줄 사람은 서진뿐이라는 걸 희정도 잘 알고 있었다.그 말이 건훈의 신경을 제대로 건드렸다. “내가 더럽다고?”건훈이 웃었다. 하지만 웃음에는 날이 서 있었다. 정확히 아픈 곳을 찔린 사람처럼 표정이 거칠어졌다.“내가 더러워? 침대에선 너도 좋다고 매달렸잖아. 내가 안을 때 정신없이 소리 내던 건 잊었어?” “우리 집 카메라에 네가 내 밑에서 떨던 모습도 다 남아 있는데. 꺼내서 보여 줘?”희정은 건훈을 매섭게 노려봤다. 정말 미친 사람 같았다. “그만해!”듣고 싶지도 않았고 떠올리고 싶지도 않았다. 희정에게 그 기억은 다시 꺼내 보고 싶지 않은 과거였다.그때는 대체 무슨 생각이었는지 건훈과 잠자리를 가졌다. 희정은 그 뒤로 셀 수도 없을 정도로 후회했다.이런 인간과 엮인 것도, 그때의 충동 하나로 인생이 완전히 망가진 것도 모두 후회스러웠다.결국 건훈의 인내심도 바닥났다.건훈은 목에 맨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더니 자리에서 일어나 방 안의 유일한 의자에 앉았다.“둘 중 하나 골라. 나랑 자든가, 아니면 살인 건을 서진한테 전부 뒤집어씌우든가. 네가 선택해.”희정은 입술을 깨물었다. 언젠가 자신이 이런 협박까지 받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건훈은 하필 서진을 빌미로 희정을 협박하고 있었다.그런데 희정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인정하기 싫어도 이미 서진을 사랑하게 됐고, 서진이 잘못되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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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2화

건훈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느긋하게 물었다. “그 조건, 내가 싫다고 하면?”희정은 눈을 감았다 뜨더니, 모든 걸 포기한 사람처럼 갑자기 건훈의 목을 끌어안고 건훈의 무릎 위에 올라앉았다.건훈에게 약점을 잡힌 건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그래도 건훈이 서진에게 누명을 씌우는 것만큼은 막아야 했다.희정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지켜야 했다.이런 모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건훈의 화를 가라앉혀야 건훈도 함부로 움직이지 않을 터였다.힘을 뺀 채 건훈의 가슴에 기댄 희정은 서툰 몸짓으로 건훈의 욕망을 자극하려 했다.건훈이 희정의 의도를 모를 리 없었다. 지금 희정은 다른 남자를 지키려고 자신에게 맞춰 주고 있었다.그 사실을 생각하자 속이 뒤틀릴 만큼 불쾌했다.건훈의 눈빛이 가라앉았다.희정은 능숙하지 않았지만, 온갖 여자를 겪어 본 건훈에게는 오히려 그 서툰 동작이 욕망을 부추겼다.건훈의 목울대가 크게 움직였다. 희정을 끌어안은 건훈은 입맞춤을 깊게 하며 침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곧 건훈의 몸이 희정 위로 기울었다.희정은 절망했다. 차라리 배 속의 아이가 이대로 사라졌으면 좋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방 안에서 거친 움직임이 이어지는 동안, 밖에는 서진이 멈춰 서 있었다.서진은 굳게 닫힌 방문을 뚫어지게 바라봤다.안에서 너무도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었다.고양이처럼 새어 나오는 희정의 낮은 신음은 서진에게 너무 익숙했다. 바로 전날 밤에도 희정은 서진의 귓가에서 밤새 그런 소리를 냈다.서진의 관자놀이에 핏줄이 도드라졌다.결국 자신만이 유일한 남자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서진은 눈물 섞인 웃음을 흘렸다.서진은 몸을 돌려 아래층 프런트로 내려갔다. “308호 투숙객인데 카드키를 방 안에 두고 나왔습니다. 하나 더 받을 수 있을까요?”직원은 예약자 이름을 확인해 달라고 했다.서진은 건훈의 이름을 댔다.직원은 전산을 확인한 뒤 고개를 끄덕이고 새 카드키를 서진에게 건넸다.서진의 가슴이 무겁게 가라앉았다.방 안에 있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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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3화

희정은 이런 비참한 장면을 서진에게 직접 들킬 줄은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희정이 건훈과 거래하려고 한 이유는 영상을 손에 넣기 위해서였다. 그래야 자신과 서진 모두를 지킬 수 있었다.희정은 다급했다. 얇은 이너웨어만 걸친 채 서진에게 달려가 허리를 와락 끌어안았다.“서진아, 내 말 좀 들어줘. 네가 본 그런 게 아니야. 화를 내도 되는데, 나 버리지만 마.”희정의 얼굴은 눈물범벅이었다. 이렇게 두려운 적은 처음이었다.서진이 더는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까 봐, 서진을 잃을까 봐 무서웠다.“진건훈이 억지로 한 거야. 내가 원한 게 아니야. 나 협박 당했어...”희정은 울면서 정신없이 설명했다. 말이 앞뒤가 맞지 않을 만큼 다급했다.하지만 서진은 희정을 안아 주지 않았다. 희정이 이렇게 먼저 매달렸는데도 차갑게 반응한 건 처음이었다.희정은 막막했다. 대체 어떻게 해야 서진의 마음을 돌릴 수 있을지 몰랐다.손가락 사이로 모래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아무리 꽉 움켜쥐어도 더 많은 것이 흘러내리는 기분이었다.“서진아, 뭐라도 말 좀 해. 나 때려도 되고 욕해도 돼. 제발 이렇게 모른 척만 하지 마.”늘 희정에게 부드럽고 웬만한 부탁은 다 들어주던 서진이었다. 희정이 눈앞에서 이렇게 우는데도 아무 반응이 없는 모습은 처음이라 더 무서웠다.반면 침대 위의 건훈은 태연했다.건훈은 혀로 볼 안쪽을 밀며 느긋하게 바지를 주워 입었다.상체는 그대로 드러나 있었고 단단한 가슴에는 여자가 남긴 붉은 흔적이 보였다.등에는 방금 희정의 손톱에 긁힌 자국까지 남아 있었다.건훈이 서진을 향해 웃었다. “형, 오랜만이네. 이 동네에서 지내는 건 좀 어때?”과시였다.건훈의 눈에는 서진을 비웃으면서 이겼다고 과시하는 기색이 가득했다.눈앞의 모든 것이 서진의 분노를 끌어올렸다. 건훈의 몸에 남은 흔적은 대놓고 도발을 던진 것이나 다름없었다. 서진은 앞으로 다가가 건훈의 뺨을 주먹으로 세게 후려쳤다.건훈은 피하지 않고 그대로 맞았다.건훈은 혀끝으로 어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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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4화

서진은 긴 시간을 버틴 끝에 마침내 바라던 사랑을 얻었다고 믿었다. 하지만 전부 다 우스운 꿈에 불과했다.거짓말이었다. 전부 거짓이었다.희정은 서진을 사랑한 적도 없었고 계속 가지고 놀았던 것이다. 서진은 희정을 위해 죄까지 대신 뒤집어쓰려고 했고, 가족과 연락을 끊고 일까지 버릴 각오를 했다.그런데 희정은 서진이 보는 앞에서 서진의 사촌동생과 관계를 맺었다.서진은 자신이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인간처럼 느껴졌다.서진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지만 눈에는 웃음기가 전혀 없었다. “둘이 오래오래 잘 살아. 애도 건강하게 낳고.”희정은 얼어붙었다. “뭐라고? 나보고 건훈이랑 잘 살라고?”서진의 시선이 희정의 배로 내려갔다. “임신했잖아. 열 달 지나면 애도 태어나겠네. 셋이 잘 살아. 난 빠질게.”그 한마디가 방 안을 뒤흔들었다.놀란 사람은 희정만이 아니었다.건훈도 눈을 크게 뜨고 희정의 배를 바라봤다. “너 임신했어?”희정은 입술을 깨물며 고개를 저었다.서진이 임신 사실을 언제 알았는지 희정은 몰랐다.분명 들키지 않게 잘 숨겼다고 생각했다.그래도 지금은 인정할 수 없었다.서진은 차갑게 웃더니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몸을 돌린 서진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밖으로 나갔다.희정은 멀어지는 서진의 뒷모습을 보며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저대로 보내면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았다. 이제는 정말 희정을 버릴 것 같았다.서진은 희정을 사랑했다. 그렇기에 배신을 더 받아들일 수 없었다.희정의 배신은 서진의 세계를 뿌리째 무너뜨렸다.희정은 망설이지 않고 뒤쫓았다. “서진아, 나 두고 가지 마. 잠깐만 기다려!”희정은 신발조차 신지 않은 상태였다.건훈은 맨발로 뛰쳐나가는 희정을 보자 눈을 가늘게 뜨며 소리쳤다. “지금 뭐 하는 거야?”차가운 표정으로 따라간 건훈이 희정을 번쩍 안아 들었다.희정은 복도까지 나갔다가 건훈에게 붙잡혀서 다시 방으로 끌려왔다.희정은 반사적으로 몸부림쳤다. “놔!”건훈은 놓지 않았다.“내 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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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5화

한편 위층 객실에서는... 건훈이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의 손바닥을 내려다봤다.‘내가 방금 뭘 한 거지?’자신이 희정 앞에 몸까지 숙이고 직접 신발을 신겨 줬다.건훈 스스로도 믿기지 않았다.한 손은 허리에 올리고 다른 손으로 관자놀이를 꾹 눌렀다.‘대체 왜 이래?’건훈이라면 수많은 여자를 만나도 누구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는 사람이었어야 했다.그런데 희정이 서진을 쫓아 나가려고 하자,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맨발이라 발이 시릴 거라는 걱정이었다....작은 목조 주택.희정은 혼이 빠져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었다.‘서진은 어디로 간 걸까?’희정은 서진에게 전화하려고 핸드폰을 찾았다.하지만 핸드폰이 사라졌는지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았다.결국 희정은 서진이 자신을 버렸다는 사실을 받아들여야 했다.아내가 다른 남자와 함께 있는 장면을 직접 본 수치심은 누구라도 견디기 힘들 것이다. 상대가 서진이 늘 못마땅해하던 사촌동생이라면 충격은 훨씬 더 클 수밖에 없었다.친척이라는 관계까지 얽혀 있으니 서진은 더 참담했을 것이다.희정의 얼굴에서 핏기가 가셨다. 자신이 서진에게 상처를 준 것이다.희정은 입술을 깨문 채 바닥에 웅크리고 앉아서 울음을 터뜨렸다.‘왜 이렇게 된 거야?’‘왜 마지막까지 나한테 잘해 준 사람조차 붙잡지 못한 거야?’‘나 이제 어떡하지?’‘겨우 행복해질 수 있을 것 같았는데...’모든 걸 희정 자신의 손으로 망쳐 버렸다.희정은 분명 건훈과의 관계를 끊으려고 했다. 그런데 건훈이 억지로 붙잡았고 서진의 안전까지 들먹이며 협박했다.‘나도 어쩔 수 없었어... 오늘 여기에서 그런 것도 전부 강요당한 거야.’‘나는 나랑 서진을 지키려고 그런 거였어.’하지만 서진은 설명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다.희정은 바닥에 앉아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렸는지도 몰랐다.가슴 속에서는 절망만 깊어졌다.‘이제 갈 곳도 없는 것 같아. 왜 다들 나를 버리는 거야...’‘이렇게까지 애썼는데... 사랑 하나만이라도 곁에 두고 싶었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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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6화

적어도 희정과 서진이 붙잡히고, 도수희의 몸 상태가 좀 더 좋아질 때까지는 기다려야 했다....희정은 작은 목조 주택 바닥에 앉은 채 밤이 깊도록 꼼짝도 하지 않았다. 서진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달은 높이 떠 있었다. 시골 밤하늘의 달은 유난히 둥글고 밝아 작은 마을을 고요하게 비췄다.사방은 적막했고 멀리서 개 짖는 소리가 한두 번 들릴 뿐이었다.서진이 곁에 있을 때는 무서운 줄 몰랐다. 이제 집 안에 희정 혼자만 남자, 사방에서 싸늘한 기운이 스며드는 것 같아 온몸이 차갑게 식었다.희정의 눈은 오래 울어서 퉁퉁 부어 있었다. 낮부터 밤까지 바닥에 앉은 채 계속 울기만 했다.그러다 시선이 배로 내려갔다. 희정의 눈에 증오가 차올랐다.건훈 때문이었다.그날 건훈이 일부러 희정을 흔들지만 않았어도 잘못된 선택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다.한 번 잘못 디딘 발은 계속 더 깊은 곳으로 빠져들었다.배 속에 건훈의 아이가 있다는 생각만 하면 속이 뒤집힐 듯 메스꺼웠다.희정은 망설임 없이 일어나 집 밖 우물가로 향했다.낮에 진료소에서 받아온 임신중지 약을 꺼내서 차가운 우물물과 함께 그대로 삼켰다.얼음처럼 찬 물이 목을 타고 위장까지 내려갔다. 희정은 오히려 커다란 짐 하나를 치웠다는 기분이 들었다.이 아이는 세상에 태어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건훈의 아이를 낳을 마음은 조금도 없었다.희정은 입술을 깨물며 서진과 한 달 가까이 함께 지낸 작은 집을 돌아봤다.그곳에서 셀 수 없이 웃었고 행복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게 어떤 감정인지도 그제야 제대로 깨달았다.하지만 서진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서진이 없는 집에는 단 한 시라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서늘한 바람이 정면에서 불어와서 희정의 풀어진 긴 머리카락을 흩뜨렸다.희정은 산길을 목적도 없이 걸었다.어디로 돌아가야 하는지도, 끝내 어디에 닿게 될지도 몰랐다.“서진아... 나 사랑한다며. 왜 설명 한마디 들을 기회도 안 줘... 대체 어디 있어?”희정의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울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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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7화

희정이 읍내 쪽으로 막 들어섰을 때, 멀지 않은 곳에서 순찰차 여러 대가 줄지어 달려왔다.경찰차를 보자 죄를 지은 사람답게 몸이 먼저 반응했다. 희정은 길가에 쌓인 볏짚 뒤로 몸을 숨겼다.아랫배가 은근하게 아파 오기 시작했다. 아까 먹은 약이 듣기 시작한 듯했다.희정은 배를 감싸 쥐었다. 하체 쪽에서 뜨거운 것이 한꺼번에 흐르는 느낌이 들었다.피였다. 허벅지 안쪽을 타고 붉은 피가 흘러내렸다.진료를 봤던 의사는 임신 초기라 출혈이 생리처럼 보일 수 있다고 말했었다.약효가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아이가 없어진 건가?’희정의 입꼬리가 올라갔다.‘드디어 이 아이를 없앴어.’희정은 아픔도 잊고 멀리 달려가는 경찰차들을 바라봤다. 차량이 향하는 방향은 아무리 봐도...희정과 서진이 살던 곳이었다.조용한 작은 읍내에 경찰차가 저렇게 한꺼번에 들어오는 건 평범한 일이 아니었다.희정의 표정이 굳어졌다. 경찰이 자신과 서진을 잡으러 온 게 틀림없다고 확신했다.하지만 희정은 계속 조심했다. 밖에 나갈 때마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는데, 경찰이 어떻게 이런 외진 곳까지 알아냈을까?또 하나의 가능성이 머리를 스쳤다. 서진이 사라진 몇 시간 사이 직접 경찰에 자수한 건 아닐까?혹은 사랑이 증오로 바뀌어 희정의 위치까지 경찰에 알려 버린 걸까?희정은 입술을 깨물었다가 곧 그 생각을 지웠다.아니다. 서진이 더는 희정을 사랑하지 않아도 그렇게까지 매정한 짓을 할 사람은 아니었다. 그게 서진의 본성이었다.희정이 감옥에 끌려가는 걸 두고 보지는 못할 것이다.이제 그 집으로는 돌아갈 수 없었다.어차피 돌아갈 생각도 없었지만.희정은 고개를 숙였다. 밤공기가 차가워 바람이 스칠 때마다 몸이 떨렸다.핸드폰도 없었고 현금도 얼마 남지 않았다.희정은 다리 사이로 계속 흘러내리는 피를 보면서 눈물 섞인 웃음을 흘렸다.‘마지막으로 머물 곳까지 사라졌네.’...“사람들을 천서진과 차희정이 숨어 지낸 곳으로 보냈는데 둘 다 없었어. 집 안팎에는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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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8화

다른 사람이었다면 집 문턱을 넘자마자 바로 내보냈을 것이다. 유호의 집에서 태연하게 살고, 유호의 침대에서 자면서 아이까지 낳을 수 있었을 리가 없었다.해인의 눈이 반짝였다. “그래서 결국 같이 살다 정든 거라고?”해인은 장난기 어린 눈으로 유호의 뺨을 주물렀다. “그냥 인정해. 당신은 처음부터 계획이 있었지?”겉으로는 대수롭지 않은 행동처럼 보여도 하나하나가 정확히 해인의 마음을 건드렸다.티 내지 않는 걱정,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정확한 배려.해인은 유호와 지나온 시간을 찬찬히 되짚었다. 칩 때문에 스스로를 제대로 통제하지 못했던 시기를 빼면, 유호가 단순히 같이 지내다 마음이 생긴 사람처럼 보인 적은 없었다.유호의 눈이 가볍게 흔들렸다. 그제야 자신이 이미 해인의 말에 말려들었다는 걸 알아차렸다.해인은 서운한 척했지만 사실은 질문으로 덫을 놓고 있었다. 유호는 그대로 덫에 걸려서 자신도 모르게 속마음을 드러냈다.유호는 고개를 숙였다. 어둠 속에서 검은 눈이 더 깊어 보였다. 입꼬리를 올린 유호가 해인의 두 팔을 자신의 허리에 두르면서 말했다.“같이 살다 정든 거든, 처음부터 마음먹고 다가간 거든 그게 중요한 건 아니야. 중요한 건 내 마음이 계속 너한테 있었다는 거야.”유호에게서는 해인을 자기 곁에 두고 싶어 하는 강한 기세가 배어 나왔다.유호는 해인의 머리카락 사이로 손을 넣고 작은 표정 변화 하나까지 놓치지 않으려는 듯 바라봤다.그 자세만 보면 해인이 먼저 유호를 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해인이 품 안에서 고개를 들었다. 아직 할 말이 남은 듯 입을 열었지만, 유호는 예고도 없이 해인의 입술을 덮쳤다.“읏...”갑작스러운 키스 사이로 유호의 낮은 목소리가 귓가에 내려앉았다. “내가 요즘 너무 바빴나 보네. 이런 생각까지 할 틈이 생긴 걸 보면.”해인은 유호가 얼마나 뜨겁게 달아올랐는지 그대로 느낄 수 있었다.하지만 곧 알아차렸다. 유호가 이러는 건 질문에서 관심을 돌리려는 것이었다.유호 특유의 강한 키스가 이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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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59화

그날 밤은 길었다.희정은 인적 없는 볏짚 더미 깊숙한 곳에서 밤을 꼬박 보냈다.새벽 무렵에는 칼로 뱃속을 휘젓는 것처럼 아랫배가 계속 아팠다.하체에서는 피가 멈추지 않았다. 희정은 혀를 깨물고 피가 날 정도로 버티면서도, 혹시 누가 들을까 봐 신음 소리 한 번 제대로 내지 못했다.병원에 갈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경찰차를 본 뒤라 작은 인기척에도 온몸이 긴장했다.다행히 밤새 이어지던 통증은 다음 날 아침이 되면서 조금씩 잦아들었다.희정은 볏짚 아래 고인 피를 내려다봤다.아이는 이미 사라진 게 분명했다. 그 일 때문에 목숨까지 반쯤 빠져나간 기분이었다.너무 배가 고파서 뱃속에서는 꼬르륵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어제부터 제대로 먹은 게 없었다.희정은 우선 뭐라도 먹기로 했다.마스크를 다시 끌어올린 희정은 읍내의 작은 식당 쪽으로 걸어갔다.그런데 식당 주변에 사복 차림의 낯선 남자 몇 명이 보였다.제복은 입지 않았지만 주변 주민들과는 분위기가 확연히 달랐다.희정은 골목 안쪽에 몸을 숨긴 채 더 다가가지 못했다.사복 경찰 한 명이 태블릿 화면을 식당 주인에게 보여 줬다. “이 두 사람 보신 적 있습니까?”화면에는 희정과 서진의 사진이 떠 있었다.식당 주인은 대충 한 번 보고 고개를 저었다. “못 봤는데요.”마침 옆 약국의 직원이 찐빵을 사러 식당으로 들어왔다.사진을 본 직원은 생각에 잠겼다. 여자의 눈매가 낯이 익었고 남자도 어디선가 본 듯했다.약국 직원이 곧 손을 들었다. “저 본 것 같아요! 며칠 전에 두 사람 다 저희 약국에 왔어요.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확실하진 않은데, 눈매도 정말 비슷하고 나이대도 맞아요.”서진과 희정은 누가 봐도 눈에 띄는 외모였다. 나이 든 주민이 많은 작은 읍내에서는 특히 튀었고, 말투나 분위기도 이곳 사람들과 달랐다.사복 경찰은 곧바로 약국 직원을 바라봤다. “무슨 약을 사 갔습니까?”직원이 고개를 갸웃했다. “여자는 아이를 지우는 약을 찾았고, 남자는 위장약이었나... 둘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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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60화

더는 이곳에 있을 수 없었다. 작은 읍내라 소문이 퍼지는 데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그때부터는 희정을 보는 주민 누구나 신고자가 될 수 있었다.희정이 좁은 골목으로 들어섰을 때 갑자기 시야가 캄캄해졌다. 누군가 뒤에서 자루를 씌운 뒤 둔기로 머리를 내리치자, 희정은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요 며칠 읍내는 유난히 떠들썩했다.경찰이 용의자를 찾아다니는 와중에 드라마 촬영팀까지 로케이션 촬영을 위해 들어왔다.약국 직원은 평소처럼 근처 주민들과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이번에 엄청 큰 촬영팀이 왔다며? 요즘 제일 잘나가는 톱배우도 왔다던데. 우리 동네도 이러다 SNS 명소 되는 거 아니야?”“진짜야? 이런 외진 데까지 유명 배우가 촬영을 온다고?”약국 직원이 목소리를 낮췄다. “읍내 여관 한 채를 통째로 빌렸대. 거짓말이겠어? 내 동생이 거기 프런트에서 일하는데 직접 보고 와서 말해 줬다니까.”“그럼 네 동생이 배우도 직접 봤어?”“봤지. 피부가 어찌나 하얗고 매끈한지 달걀 같더라니까. 나랑은 완전히 달라. 대체 관리를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 “요즘 연예인들은 피부 시술도 많이 받는다던데 성형이랑은 또 다르다며? 난 그런 건 잘 몰라.”“그 배우 이름이 뭔데?”“몰라. 성이 송 씨였던 것 같고 젊은 여자였어. 들어오고 나갈 때마다 경호원이 붙어 있더라. 내가 연예인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데 이름까지 어떻게 기억해.”...희정은 차가운 물벼락을 맞고 정신을 차렸다.날씨도 원래 차가운 데다 몸이 크게 상한 직후였다.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에 희정은 덜덜 떨며 멍하니 눈을 떴다.“너희 누구야? 왜 나 납치했어?”희정은 자신이 납치될 줄은 전혀 상상도 하지 못했다.상대가 언제부터 자신을 지켜봤는지, 무슨 목적으로 데려왔는지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다만 눈앞의 사람들은 경찰로 보이지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 희정은 조금 안도했다.화려한 장신구를 두른 여자가 희정 쪽으로 걸어왔다.몸매도 좋고 피부도 하얀 여자였다. 희정은 얼굴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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