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mua Bab 내 인생에 태클을 걸지 마: Bab 11 - Bab 20

30 Bab

제11화

“예하얀!”고시윤은 완전히 이성을 잃은 듯 보였다.성큼 다가온 그가 내 손에 들려 있던 골프채를 거칠게 빼앗아 옆으로 던졌다.그리고 그대로 손을 들어 올렸다.하지만 그 손은 끝내 내려오지 못하고 공중에서 멈춘 채 떨리고 있었다.나는 입꼬리를 천천히 올렸다.“왜 멈췄어? 때릴 수가 없어?”고시윤이 굳은 채 아무 말도 하지 못하는 사이, 이번에는 내가 그의 뺨을 세게 올려쳤다.이건 그가 나 그리고 우리 아이에게 빚진 거였다.이 정도로 끝날 빚이 아니었다.처음부터 그가 나와 똑같이 슬퍼해 주기만 했어도 내 고통의 아주 일부라도 느껴주기만 했어도, 나는 여기까지 무너지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는 소아인과 그 아이를 감싸는 데만 바빴다.내 아이를 위해 흘린 눈물은 단 한 방울도 없었다.고시윤은 입가에 맺힌 피를 혀로 훑어내고는 차갑게 말했다.“이 사람은 제정신이 아닙니다. 방으로 데려가서 혼자 좀 진정하게 놔둬요.”이미 모든 힘이 빠져 있었다.저항할 기력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나는 비틀거리며 내 방으로 걸어갔다.얼마 걷지 않았을 때, 등 뒤에서 소아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시윤 오빠, 제 얼굴이 이렇게 됐어요. 다음 달에 촬영 들어가야 하는데 어떡해요? 루비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니고, 아직 아이잖아요. 예하얀 씨가 이렇게까지 날뛸 필요가 있었어요? 완전히 미친 사람처럼...”그 말을 듣자, 고시윤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루비는 아이야. 그럼 너는 뭐야? 어른이잖아. 그때 넌 도대체 뭘 하고 있었어?”...방으로 돌아온 뒤, 한 시간이 지나도록 몸의 떨림이 멈추지 않았다.그때 유자영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유자영의 두 손에는 부서진 유골함이 들려 있었다.유자영은 깊게 숨을 내쉬며 말했다.“사모님, 대표님 지시로... 주울 수 있는 만큼 주웠어요. 꽤 오래 걸렸고, 이게 전부입니다.”나는 망가진 유골함과 눈에 띄게 줄어든 유골 재를 바라봤다.가슴이 죄어왔다.나는 떨리는 손으로 유골함을 몇 번이고 쓰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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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나는 급히 노트북을 덮었다.고시윤이 천천히 방 안으로 들어왔다.오른손에는 불주를 들고 있었다.언제나처럼 차갑고 단정한 모습이었다.그는 노트북을 한 번 힐끗 보았을 뿐, 다행히 더 이상 묻지 않았다.“얘기 좀 하자.”그는 내 앞에 앉았다.지금껏 느껴본 적 없는 피로에 휩싸여 있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얘기하자.”하지만 그 입에서 나온 말은 오늘 밤 소아인과 아이가 저지른 일에 대한 사과도, 설명도 아니었다.“불당을 부순 일은 다시는 없었으면 해. 너도 성인이잖아. 이제 감정 조절을 배워야지.”내려놓았던 두 손이 자기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었다.나는 되물었다.“그럼 너는? 나한테 손댄 건 뭐야. 그건 감정 조절을 잘한 거야?”고시윤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때 상황에서 너는 루비를 다치게 하고 있었어. 난 네가 진정하길 바랐을 뿐이야.”그 말에 내 안에 쌓여 있던 분노와 원망이 한꺼번에 힘을 잃었다.“고시윤, 이제 그만 나가줘.”말끝이 흐려졌다.“나... 너무 피곤해. 자고 싶어.”그리고 거의 애원하듯 덧붙였다.“제발, 나 좀 놓아주면 안 돼? 정말 너무 힘들어.”‘내 가장 소중한 걸 부숴 놓고 왜 이 타이밍에 또 한 번 찌르는 거야.’고시윤의 시선이 부서진 유골함으로 옮겨졌다.그가 떨리는 손을 내밀고 뭔가 만지려는 듯했지만, 나는 상자를 끌어당겼다.남자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나는 고시윤을 똑바로 보며 말했다.“고시윤, 너는 자격 없어.”고시윤의 얼굴에 옅은 분노가 스쳤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는 조용히 방을 나갔다....다음 날 아침, 거실에는 여전히 웃음소리가 흘렀다.이른 시간부터 루비는 몇몇 젊은 여자 고용인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있었다.낯선 얼굴들이었다.유자영에게 묻자 그제야 알았다.고시윤이 아이를 위해 따로 고용한 사람들이라고 했다.어젯밤, 내 딸의 유골함이 깨졌던 일은 마치 없었던 일처럼 취급되고 있었다.그 일로 무너진 사람은 나 하나뿐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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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유자영이 그릇에 죽을 담아 내 앞에 내려놓는 바람에, 흩어져 있던 내 생각이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나는 전혀 손이 가지 않는 흰죽과 채식 반찬을 밀어내며 고시윤을 바라봤다.“왜 내 밥은 저 사람들이랑 달라?”그제야 고시윤이 눈을 들었다.나를 한 번 흘겨보더니, 다시 옆에 앉은 루비에게 숟가락을 들이밀며 말했다.“네가 어제 굳이 루비 앞에서 고기를 먹지만 않았어도, 애가 네 방까지 들어가서 먹을 걸 찾지는 않았겠지. 유골함이 깨진 건, 네가 자초한 일이야.”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를 탓하는 말.그리고 노골적인 이중 잣대.그런 말을 고시윤은 너무도 자연스럽게 내뱉고 있었다.나는 깊게 숨을 들이마신 뒤 자리에서 일어났다.“앞으로 집에서는 밥 안 먹을게. 내 밥도 만들지 마.”‘이제 와서 내가 이 사람한테 밥 한 끼 얻어먹어야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잖아.’밖에는 식당도 넘치고, 마트도 넘쳐난다.먹고 싶은 걸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데, 왜 여기서 이걸 참아야 하지?그렇게 생각하며 몸을 돌리는 순간, 세상이 크게 흔들렸다.나도 머리를 붙잡고 버텨보려고 했지만 소용없었다.눈앞이 캄캄해지면서 그대로 뒤로 쓰러졌다.의식이 끊기기 직전, 단단한 뭔가에 부딪친 느낌만 남았다....나는 눈을 뜨자 병원 천장이 보였다.곁에는 유자영만 있었다.주사기 줄을 따라 짙은 색의 피가 내 몸으로 들어오고 있었다.내가 수혈까지 해야 할 정도로 상태가 나빴다는 사실이 그제서야 실감이 났다.“사모님, 깨어나셨어요?”유자영은 안도의 숨을 내쉬며 말했다.“정말 놀랐어요. 아침도 안 드셨잖아요. 죽이라도 좀 드세요. 여기 만두도 있어요.”나는 식판을 내려다보다가 미간을 찌푸렸다.여전히 고기 하나 없는 음식이었다.고시윤은 소아인을 위해서는 원칙을 깨면서, 왜 나에게는 끝까지 자기 습관을 강요하는 걸까?내가 이렇게까지 망가졌는데도, 그는 부작용 없는 식이요법 대신 약과 수혈을 택했다.나는 유자영에게 말했다.“나도... 저 사람들이 먹는 거랑 똑같이 해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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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이모님.”나는 유자영을 붙잡으며 말했다.“그 사람한테는 말하지 마세요. 아무 의미 없어요.”유자영이 뭐라고 전해도 고시윤은 분명 내가 일을 키운다고 생각할 것이다.아니면 소아인과 다투기 위해 아픈 척 연기한다고 여길지도 모른다.설령 유자영의 말을 믿는다 해도 고시윤의 후회나 연민 따위는 이제 내게 필요하지 않았다.내 말에 유자영은 결국 전화를 내려놓았다....30분쯤 지나 송희서가 병원에 도착했다.내 얼굴을 보자마자 그녀는 화를 냈다.“내가 뭐랬어. 걔랑 같이 채식하지 말랬지. 지금 네 꼴 좀 봐. 원래 그렇게 예뻤던 애가 지금은 얼굴에 핏기가 하나도 없잖아.”말을 마친 뒤, 송희서의 눈가가 붉어졌다.“고시윤, 그 인간 진짜 각오해. 그 불륜녀의 애는 우리 어린이집 절대 못 들어와.”나는 송희서를 말렸다.“별나라어린이집 대주주가 고해그룹이야. 나 때문에 그 사람이랑 정면으로 부딪힐 필요 없어. 설령 거기 안 보낸다 해도 다른 데를 얼마든지 알아볼 거야.”송희서는 유자영을 힐끗 봤다.혹시라도 말이 전해질까 경계하는 눈치였다.그때 마침 집에서 유자영에게 전화가 왔다.고시윤이 경매에서 희귀 산삼과 고급 한방 보약 세트를 낙찰받아, 막 집으로 들여보냈다는 말이었다.그 때문에 소아인은 유자영을 불러서 직접 보약을 달여 달라고 했다고 했다.집에 일하는 사람은 충분히 많았다.그럼에도 소아인이 유자영을 불러들인 건...내가 지금 누구에게 기대고 있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그녀는 나를 혼자 남기려 했다. 남편뿐 아니라 나를 편들어 주는 사람들마저 모조리 빼앗아 가겠다는 태도였다.나는 유자영에게 말했다.“돌아가세요. 여긴 희서가 있어요. 괜찮아요.”유자영은 결국 걱정스러운 눈길로 나를 보면서 말했다.“사모님, 무슨 일 있으면 꼭 전화 주세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유자영이 나간 뒤에야 송희서는 본론을 꺼냈다.“너 원래 이렇게 참는 성격 아니잖아. 자영 이모 말로는 그 여자 지금 네 집에 산다며? 그걸 어떻게 견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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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병실 문을 두드리지도 않고 고시윤이 그대로 문을 열고 들어왔다.너무 갑작스러워서 우리는 서로 눈빛을 맞출 시간조차 없었다.대응할 방법을 상의할 여유도 없었다.송희서를 본 고시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시윤이 놀란 기색을 드러낸 건, 지보아를 발견했을 때였다.잔뜩 가라앉은 남자의 눈에 의심이 스쳤다.송희서는 그걸 눈치채자마자 서둘러 말을 받았다.“하얀이 예전 직장 동료야. 아프다고 해서 문병 온 거고. 걱정 마, 입 무거운 애야. 하얀이하고 고 대표 비밀결혼 얘기 같은 거 밖에 흘릴 사람 아니야.”“고 대표님, 안녕하세요.”지보아는 침착하게 인사하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조금의 흔들림도 없었다.고시윤은 예의상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 시선은 송희서에게로 향했다.말투는 차분했지만, 거절할 여지가 없는 어조였다.“내 딸 앞으로 별나라어린이집 다니게 될 거야. 좀 챙겨줘. 괜히 상처받는 일 없게.”그 말이 전부였다.그는 더 할 말이 없다는 듯 서 있었다.송희서는 잠시 말을 잃었다가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물었다.“고 대표, 설마 그 말 하려고 여기까지 온 거야?”고시윤은 되물었다.“그럼 뭐가 더 있어야 해?”그리고 단호하게 덧붙였다.“잘 들어. 내 딸 일로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송씨 집안에서 감당 못 할 일 생길 수 있어.”그는 이미 알고 있었다.오늘 송희서가 나를 찾아왔다는 걸.그리고 나와 송희서의 관계를 아는 만큼 혹시라도 루비가 불이익을 받을까... 미리 못을 박으러 온 것이 분명했다.송희서는 분노에 가까운 표정으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고시윤은 목적을 달성했다는 듯 그대로 돌아서려고 했다.그런데 문 앞에서 걸음을 멈추더니, 돌아서서 나를 보며 형식적으로 물었다.“몸은 괜찮아? 의사는 뭐래?”의사의 사무실은 바로 옆이었다. 조금만 마음을 쓰면 직접 물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고시윤은 그러지 않았다.그는 바쁜 와중에도 루비를 위해 여기까지 와서 송희서에게 한마디를 남겼다.즉, ‘내 딸 건드리지 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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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나는 병원에서 사흘을 보냈다. 그동안 송희서는 하루도 빠짐없이 병실로 찾아와 내 곁을 지켰다.고시윤은 다시는 병원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유자영 역시 오지 않았다.내가 유자영에게서 들은 바로는, 소아인은 그녀에게 매일 보약을 지어 오라고 시키면서 사소한 일 하나하나까지 꼬투리를 잡았다고 했다.그 탓에 유자영은 병원에 한 번 들를 여유조차 없었다고 했다.오늘 의사는 퇴원해도 된다고 했다. 다만 앞으로는 반드시 고기와 채소를 골고루 먹어야 하고, 다시는 절대 순수한 채식만 해서는 안 된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약속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마트에 들러 전기 냄비와 신선한 식재료를 샀다. 고기와 채소를 가리지 않고 챙겼다.다행히 손님방이라고 해도 공간이 넉넉해서, 방 안에 냄비 하나 두고 간단히 끓여 먹기에는 전혀 무리가 없었다.내가 집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저녁 식사가 준비된 상태였다.그리고 다이닝 룸 앞을 지나며 식탁을 힐끗 보니, 고기 요리와 채소 요리가 함께 놓여 있었다.고시윤은 여전히 채식만 하고 있었고, 루비와 소아인은 고기와 채소를 가리지 않고 먹고 있었다.예전이라면 이 집의 냉장고에 고기 재료가 들어오는 일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그런데 지금은 소아인과 루비가 고시윤이 바로 곁에서 고기를 먹고 있는데도, 고시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제야 나는 알았다. 고시윤이 과거에 그렇게 엄격하게 지켜 왔던 모든 규칙들은 그 곁에 규칙을 깨고 싶을 정도의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는 걸.‘참 잔인하네.’더 이상 이 가슴 아프고 아이러니한 장면을 보고 싶지 않아, 나는 내 방으로 올라가려 했다.그때 소아인이 나를 발견했다.“예하얀 씨, 퇴원하셨어요? 몸은 좀 괜찮아지셨어요? 저도 루비 데리고 병원에 가보려고 했는데요.”나는 걸음을 멈추고 그녀를 차갑게 바라봤다.“덕분에 아직 살아 있어. 내 자리를 노린다면, 아마도 좀 더 기다려야 되겠어.”소아인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가 곧 연약한 목소리로 바뀌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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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고시윤은 못마땅한 기색으로 나를 보며 말했다.“루비가 얼마나 어린데 왜 그래? 애가 뭘 알아서 그런 말을 하겠어. 넌 그런 말까지 다 신경 쓰는 거야?”그러고는 루비를 타이르기는커녕, 다시 자기 무릎 위에 앉히더니 직접 숟가락을 들어 밥을 먹여 주었다.소아인은 입가를 살짝 올리며 부드러운 태도로 말했다.“예하얀 씨, 루비가 요즘 사극에 빠져 있어서 그래요. 너무 마음에 두지 마세요. 그리고 그날 경매에서 시윤 오빠가 가져온 희귀 산삼이랑 한방 보약 세트 기억하시죠?”“제가 먹어 보니까 정말 좋더라고요. 그래서 예하얀 씨 드시라고 조금 남겨 뒀어요. 이따가 유자영 이모가 가져다드릴 거예요.”나는 똑같이 웃어 보이며 대답했다.“됐어. 난 남이 손댄 건 잘 못 먹어. 너처럼 가리지 않는 편도 아니고.”말을 마친 뒤, 손에 들고 있던 냄비와 그릇들을 챙겨 내 방으로 들어왔다.‘내 손으로 해 먹는 게 제일 속 편하지.’얼마 지나지 않아 사골 국물에 면을 넣고, 달걀과 햄을 곁들인 국수를 끓였다. 향도 좋았고, 맛도 나쁘지 않았다.식사를 마친 뒤에는, 그날 지보아가 내게 했던 말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고시윤의 재산을 어떻게 확인할 것인가?그리고 루비가 정말로 소아인과 고시윤의 친딸이라는 걸 어떻게 증명할 것인가?차분히 생각을 정리해 보니, 두 번째가 오히려 더 쉬워 보였다.지금 나는 이 집에 살고 있고, 기회만 있다면 머리카락 정도는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DNA 검사를 하는 데에는 그걸로도 충분했다.문제는 고시윤의 재산이었다.인터넷에서 수많은 이혼 판례를 찾아봤지만, 어느 것도 내 상황과 정확히 맞아떨어지지는 않았다.‘이혼이 그렇게 간단한 문제일 리가 없지.’조급하게 군다고 될 일이 아니었다.그래서 샤워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은 여기까지 생각하자고 마음먹었다.베개에 머리를 얹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서, 정원 쪽에서 개 짖는 소리가 들려왔다.나는 원래 깊이 잠들지 않는다. 예전에는 고시윤이 밤에 화장실에 가는 발소리만 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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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의사는 말했다. 그래야만 내가 직접 썩어 문드러진 기억을 도려낼 수 있고, 그래야 상처 위에 새로운 살이 다시 돋아날 수 있다고 했다.나에게는 너무 가혹한 방법이었다.그럼에도 나는 치료에 적극적으로 임하기로 마음먹었다.‘이 실패한 결혼 때문에, 앞으로의 인생까지 망가뜨릴 수는 없어.’‘고통 속에서 미쳐 가는 사람으로 살고 싶지 않아.’물론 심리 치료는 단계적으로 진행되는 것으로, 단 한 번에 고시윤과의 모든 기억을 털어놓으라는 건 아니었다.첫 번째 상담을 마친 뒤, 의사는 불안과 우울을 완화하는 약을 나에게 처방해 주었다. 집에 돌아가 규칙적으로 복용하라고 했다.그리고 조심스럽게 한 가지를 더 권했다.고시윤과 함께 아이의 묘지를 마련하고, 유골함을 땅에 묻으라는 제안이었다.그건 아이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고, 나 자신에게도 마침표를 찍는 일이 될 거라고 했다.결혼은 실패했지만, 고시윤이 아이의 아버지라는 사실만큼은 변하지 않는다고도 덧붙였다.사실 내게도 작은 욕심이 있었다.내 아이도 단 한 번쯤은, 고시윤이 루비에게 보여 주는 것과 같은 아버지의 사랑을 느껴 보길 바랐다.정말 단 한 번만이라도.병원에서 약을 받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그런데 뜻밖에도, 대낮인데 고시윤이 집에 있었다.예전의 고시윤은 불당에서 수행할 때를 제외하면 늘 회사에 있었다. 나와 말을 섞는 시간도 아침 식사 때가 전부였다.그런데 소아인과 루비가 이 집에 들어온 뒤로는, 집에 머무는 시간이 눈에 띄게 늘었다.‘결국, 집에 못 올 만큼 바빴던 건 아니었네.’거실 소파에 앉아 잡지를 보고 있던 고시윤은 내가 들어오자 고개를 들었다.나는 반사적으로 병원 이름이 적힌 약 봉투를 등 뒤로 숨겼다.내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걸, 그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곧 깨달았다.고시윤의 마음속에서 내가 차지하는 부분을, 내가 너무 과대평가하고 있었다는 걸.고시윤은 내 손에 들린 약을 봤지만, 내가 왜 약을 받았는지 무슨 약인지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사실 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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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고시윤은 잠시 말을 멈췄다. 시간을 가늠하는 듯하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금요일 오후에 돌아올게. 이틀만 기다려.”나는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이었다. 그는 결국 허락했다.돌아오는 길에 장례식장에 문의해 보니, 매장은 가능하면 오전에 하는 게 좋고 정오가 지나면 좋지 않다는 말을 들었다.하지만 더 이상 고시윤에게 뭔가를 요구할 용기는 없었다.괜히 마음을 바꿀까 봐 두려웠다.그래도 괜찮았다.내 아이는 이틀 뒤 오후에라도 단 한 번은 아버지의 손길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고시윤은 나와 대충 시간을 정해 놓고는, 소아인과 함께 위층으로 올라갔다.나는 손님방으로 돌아와 창가에 섰다.아래를 내려다보니, 루비가 소아인과 고시윤의 손을 하나씩 잡고 깡충깡충 뛰어다니고 있었다.그 뒤로는 운전기사와 비서가 커다란 여행 가방 두 개를 끌고 따라가고 있었다.루비가 키우는 하얀 래브라도도 그들 곁을 떠나지 않았다.개마저 함께 여행을 떠나는 모양이었다.나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리고 옆에 놓아 둔 정신과에서 처방받은 약을 집어 삼켰다.약의 쓴맛이 입안에서부터 가슴 깊숙한 곳까지 스며들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어느새 금요일이 되었다.그 사이, 한 회사에서 전화가 걸려 왔다.금요일 오후에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이었다.예전에 넣어 두었던 이력서에, 드디어 답이 온 것이다.하지만 금요일 오후에는 이미 고시윤과 약속이 있었다.아이를 묻으러 가기로 한 시간이었다.나는 조심스럽게 면접 시간을 바꿀 수 있겠느냐고 물었다.돌아온 대답은 예상대로였다.불가능하다는 말이었다.간신히 잡은 기회는 그렇게 사라졌다.그래도 나는 후회하지 않았다....금요일 아침, 나는 평소보다 훨씬 일찍 눈을 떴다.간단히 아침을 먹고 곧바로 묘지로 향했다.매장 전에는 생각보다 처리해야 할 절차가 많았다.고시윤은 오후에나 올 수 있다고 했기에, 그가 번거로워할까 봐 매장 외의 절차는 모두 나 혼자 감당했다.아이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고, 아이를 위해 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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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소아인이 예쁘다는 말, 소아인이 착하다는 말, 그곳의 반려동물 병원을 추천하는 댓글들까지...화면을 내려다보며 나는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참 아이러니했다.고시윤의 마음속에서 우리 잃은 그 아이는 소아인의 개 한 마리보다도 중요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아, 이게 이유였구나.’‘약속을 어기고, 귀국을 미룬 이유가...’나는 침대 위에서 몸을 뒤척이며 계속 스스로에게 생각하지 말자고 되뇌었지만, 가슴 한가운데가 꽉 막힌 것처럼 답답해서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그리고 송희서에게 전화를 걸어 털어놓고 싶었다.하지만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었고, 앞으로 이런 밤이 한두 번으로 끝나지 않을 것 같다는 예감이 들었다.‘매번 희서한테 매달릴 수는 없어.’‘이제는 내가 나를 살려야 해.’나는 다시 책상 앞에 앉아 노트북을 켰다.그때 문득 떠오른 생각이었다.소설을 써서 이 안에 쌓인 감정을 토해내자.나와 고시윤의 결혼을 글로 기록하고, 그 기록으로 지난 스물다섯 해와 작별하자고.나는 필명을 하나 만들었다.‘밤바다’였다.지난 3년 동안 내가 지나온 끝이 보이지 않는 어두운 밤처럼 아무리 걸어도 끝나지 않을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기자로 일했던 덕분에 글을 쓰는 일은 낯설지 않았다.문장을 쌓고, 기억을 정리하는 일도 생각보다 수월했다.새벽 2시가 넘어서야 졸음이 밀려왔고, 그제야 침대에 몸을 눕혔다....다음 날 아침, 핸드폰 울림에 잠에서 깼다.양어머니인 장유원 여사였다.요즘 통 얼굴을 못 봤다며, 나더러 고시윤과 함께 집에 와서 밥을 먹자고 했다.“엄마, 오늘은 고 서방이 좀 어려울 것 같아요. 고 서방이 요즘...”나는 말을 흐리다, 더 이상 설명하지 않기로 했다. 괜히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다.“해외 출장이에요. 아마 바로는 못 돌아올 것 같아요.”장 여사는 잠시도 개의치 않고 말했다.[그럼 고 서방은 못 와도 너라도 와. 엄마가 얼마나 보고 싶었는데...]생각해 보니, 나 역시 한동안 친정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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