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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너무 늦은 후회: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뭘 기다려? 칩?" 하지현의 두 눈이 반짝였다. "하성그룹에서 연구해 낸 거야?" "아니." "음..." 하지현은 낮게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쓸모없는 오빠 같으니." "맞고 싶어서 환장했구나?" 하준혁의 눈빛이 날카로워지자 하지현은 머리를 감싸 쥔 채 저 멀리 부모님의 품으로 도망쳐 버렸다. 그녀는 우는 척을 하며 부모님에게 어리광을 부렸다. 부모님은 그저 웃기만 할 뿐이었다. "오빠가 어쩌다 집에 돌아왔는데. 왜 자꾸 싸우고 그래." "체, 누가 싸웠다 그래. 갑자기 돌아온 걸 보면 분명 좋은 일은 아니야." 하지현은 실눈을 뜨며 추측했다. "사고 친 거지? 얼른 말해!" 하준혁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로봇 연구 계속하고 싶어?" "오빠! 오빠는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오빠야! 당연히 엄마 아빠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고 싶어서 돌아온 거겠지! 오빠 정말 효자다!" 하지현의 태도가 180도로 변해버렸다. 하준혁은 주변을 훑어보더니 말했다. "둘째 고모는 안 계셔요?" 그에게는 고모가 둘, 삼촌이 하나 있었다. 그의 아버지는 셋째였다. 큰고모는 부영시로 시집을 갔고 둘째 고모는 본가에 남았다. 둘째 고모는 평소 할 일이 없으면 오페라를 보러 다니는 게 취미였다. 막내인 삼촌과 숙모는 유학을 간 아이를 따라 외국에서 살고 있었다. 겉보기엔 평온해 보이는 가족이었지만 매년 주주총회가 열릴 때마다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는 사람들은 항상 가족들이었다. "테일러가 왔어. 새 드레스를 맞추기 위해 치수를 재고 있는 거야." 하지현이 말했다. "오빠, 둘째 고모는 왜 찾아?" "물어 볼 게 있어서." "뭘 물어 보고 싶은데?" 쪽 진 머리를 하고 원피스 입은 하은혜가 나타났다. "고모." 하준혁은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건넸다. "직원 하나가 갑자기 사직서를 제출했는데, 고모가 채용한 사람이더라고요. 그 직원이 퇴사한다는 사실을 고모는 알고 있나 싶어서 물어보려고요."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가족 모두 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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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밤. 문을 닫은 뒤. 심인혁은 강나래를 추궁하기 시작했다. "왜 배달 음식으로 날 속인 거지?" 입을 잠옷을 고르던 강나래가 멈칫했다. 그녀는 원피스 잠옷을 지나 잠옷 바지 세트를 꺼냈다. "무슨 배달?" "오늘 밤 그 음식들은 당신이 한 게 아니잖아." 심인혁이 말했다. "당신이 해준 음식을 먹은 지도 벌써 4년이야. 당연히 알아차릴 수 있지." '당신도 내가 당신을 위해 4년 동안 음식을 차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구나.' 강나래는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대단해." 그녀는 덤덤한 말투로 말했다. "미식 평론가로 취직해도 되겠어." 그 말은 심인혁에겐 조롱과 다름이 없었다. "굳이 그런 표정과 말투로 말을 해야겠어? 강나래, 당신 예전엔 이러지 않았잖아." "난 어려서부터 이랬어." 강나래는 분노로 가득 찬 심인혁과 시선을 마주했다. 그가 왜 화를 내는 건지 알 수가 없었다. 강나래는 그의 첫사랑이 그들의 집에 들어와 사는 것도 참아줬는데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귀기 시작한 뒤 지금까지 당신은 그런 적이 없었어." 심인혁은 그가 우산을 건네주었을 때 마치 빗속에서 피어난 목련처럼 웃고 있던 강나래의 모습을 기억했다. 함께 은사님의 장례식에 참석했을 때 그의 어깨에 기대었던 온기를 기억했다. 함께 보육원으로 돌아갔을 때 그에게 생수를 건네며 환하게 웃던 모습을 기억했다. 결혼을 한 뒤에는 더욱 그랬다. 퇴근해 집으로 돌아올 때마다 주방에서 바삐 돌아치는 강나래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의 기척을 느낄 때면 그녀는 항상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고는 부드러운 목소리로 심인혁에게 안부 인사를 건넸다. "왔어?" 마침 식탁을 다 차려놓은 뒤였다면 너무 보고 싶었다는 듯 다가와 그를 안고는 했다. 강나래의 두 눈엔 온통 기대뿐이었다. 심인혁이 그녀가 만든 음식을 하나하나 맛보기를 바라는 그런 기대 말이다. 강나래는 다른 사람 앞에서는 냉랭하게 굴어도 그에게만은 부드럽고 따듯한 사람이었다. 그의 부모님에겐 더욱 효심이 대단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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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이미 지나간 일이야. 그 얘긴 더 이상 하지 마. 널 탓하지 않아." 임서연은 갑자기 심인혁을 안았다. 안방 문을 계속해서 보고 있는 심인혁은 눈에 띄게 긴장하고 있었다. "안고 있게 해줘, 잠시면 돼. 친구끼리 포옹하는 거라 생각해." 고개를 든 임서연의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 있었다. 한숨을 내쉰 심인혁은 임서연이 그를 안고 있게 내버려두었다. "손이 아파. 나 좀 안아 줘." 심인혁은 천천히 손을 들어 올려 가볍게 임서연의 등을 토닥여 주었다. 안방의 문을 여는 사람은 없었다. 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심인혁이 임서연을 걱정하며 가슴 아파하고 있을 거란 걸. 아픈 가슴보다 더욱 중요한 건 다가오는 심인혁을 피할 방법이었다. 처음과 두 번째 모두 임서연 때문에 피할 수 있었지만 또다시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임서연이 제때 방해하지 않는다면? 강나래는 오연홍을 떠올렸다. … 심인혁이 안방으로 돌아왔을 때 강나래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 그가 다가가 강나래를 불렀으나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침대에 누웠다. 등을 돌린 심인혁은 강나래를 품에 안았다. 벌써 보름이나 강나래를 안고 잠들지 못한 것 같았다. 이렇게 안고 있으니 마치 고양이를 안고 있는 것 같았다. 고양이는 도도해서 사람에게 치대지 않는다. 하지만 안아보면 보드랍고 나른하여 분명 애정을 느끼게 만드는 존재였다. 심인혁은 강나래를 더 힘주어 안았다. 강나래는 밤새 제대로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옅은 잠에 들었다가 등 뒤에서 기척이라도 느껴지면 깜짝 놀라 잠에서 깼던 것이다. 이튿날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할 때 서아영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나래 씨, 인수인계를 하는 동안 회사에 출근해 줘야겠어요. 안 그럼 제가 일처리를 하기가 조금 어려울 것 같아요.] 강나래는 마침 집에서 벗어날 이유를 찾고 있었다. 하여 그녀는 얼른 에코백을 메고 방을 나섰다. "좋은 아침이에요, 나래 씨." 임서연은 문에 기대선 채 나른하게 하품을 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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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강나래는 시장을 한 바퀴 돌아보았다. 그리고 국밥 집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돼지국밥에 다대기 두 스푼을 넣었다. 강나래는 매운 음식을 즐겨 먹었다. 하지만 심인혁 때문에 4년 동안 담백한 음식만 먹어왔다. 몇 년 동안 먹어보지 못한 매운맛이라 고작 다대기 두 스푼에 매워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드디어 음식의 맛이라는 것이 느껴졌다. 국밥 한 그릇을 깨끗하게 비운 강나래는 다시 느릿느릿 회사로 향했다. 강나래는 손에 메밀전병을 들고 한입씩 베어 먹으며 길을 걷고 있었다. 그러다 고개를 숙인 순간, 빠르게 달려오던 누군가와 부딪히고 말았다. 강나래는 무사했다. 하지만 그녀와 부딪힌 여자는 휘청거리다 들고 있던 서류를 전부 날려 버리고 말았다. 강나래는 얼른 여자를 붙잡았고 자기 쪽으로 끌어당기며 허리를 감쌌다. "괜찮아요?" 하지현은 두 눈을 깜빡이며 한 손에는 메밀전병을 든 채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있는 여자를 쳐다보았다. 무테안경에 낮게 묶은 머리, 깨끗한 얼굴에 아름다운 이목구비 그리고 조금은 쌀쌀맞은 표정까지. 완벽하게 지적이고 도도한 미녀였다! 딱 봐도 연구를 하는 사람 같았다. 특히 손목의 힘으로 보았을 때 분명 실험실에서 무거운 물건깨나 옮긴 사람 같았다. "괜, 괜찮아요." 중심을 잡은 하지현은 바닥에 흩어진 서류들을 보고는 그것을 줍기 위해 얼른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강나래 역시 그 서류를 같이 주워주다 갑자기 서류에 적힌 일련의 데이터들을 보게 되었다. 하지현은 여전히 허리를 굽힌 채 서류들을 줍고 있었다. 가장 중요한 페이지 몇 개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 하지현은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조금 전 자신을 구해 준 미인이 그 서류를 들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얼른 서류를 빼앗아 왔다. "고마워요, 예쁜 언니! 급한 일이 있어서 이만 가봐야겠어요!" 두어 걸음 걸어가던 하지현은 다시 돌아오더니 물었다. "맞다. 이름이 뭐예요? 오빠에게 볼일을 마치고 나면 제가 커피 살게요!" 찬란하게 웃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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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강나래의 이름을 들은 하준혁의 눈빛이 살짝 흔들렸다. 그는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주 비서가 전화를 받았다. "그 여자 왔어? 들어오라고 해." "강 선생님, 대표님께서 들어오시랍니다." 주 비서는 대표 사무실의 문을 열었다. 강나래는 혼자 안으로 들어갔다. 문이 닫혔다. 강나래가 뒤돌아 닫힌 문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귓가에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예쁜 언니?!" 강나래는 뒤돌아 소리가 들리는 곳을 쳐다보았다. 사무실 책상 옆에 조금 전 일 층에서 허둥지둥하던 여자가 서 있었다. 그리고 검은 셔츠를 입은 남자가 의자에 앉아 있었다. 검은 셔츠, 붉은 넥타이. 그리고 손목에는 상금을 받게 되면 심인혁에게 사주려고 마음먹었던 그 시계를 차고 있었다. 남자는 그윽한 눈빛으로 그녀를 보고 있었다. 또다시 익숙한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생각이 나지 않았다. 어쩌면 어느 잡지에서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하성그룹의 대표인 그는 재경 잡지에 꽤 자주 등장할 테니 말이다. "대표님." "예쁜 언니!" 하지현은 데이터가 적힌 서류를 들고 그녀에게 달려왔다. 하지현은 표시가 되어 있는 곳을 가리키며 물었다. "언니가 표시해 준 거죠?" 강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편하게 이름으로 불러도 돼요." "그럴 줄 알았어요. 나래 언니, 고마워요! 언니가 큰 도움이 되었어요! 우리 오빠보다 나은 걸요... 나래 언니... 강나래??" 번뜩 무엇인가 떠오른 하지현은 홱 하고 고개를 돌리더니 오빠에게 물었다. "그 이름은 오빠가 어젯밤 집에서..." "큼." 하준혁은 헛기침을 했다. 하지현은 눈알을 데굴데굴 굴리더니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 강나래는 어딘가 이상한 남매라고 생각했다. "강나래 씨." 자리에서 일어난 하준혁은 동생이 들고 있던 서류를 넘겨 쥐고는 턱을 살짝 들며 물었다. "바이오닉 로봇에 대해 연구를 하고 있나요?" "아닙니다." 강나래의 연구 대상은 오로지 칩이었다. "저는 한낱 평범한 직원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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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생각이 났다. 호텔 엘리베이터에서 가려는 층을 눌러야 한다 귀띔해 줬던 남자였다. 그때 강나래는 누가 얼굴을 볼까 두려워 일부러 고개를 숙여 머리카락으로 얼굴을 가리느라 자연스럽게 시선 역시 가려져 버렸던 것이다. 그날 엘리베이터에서 강나래는 깨끗하게 닦은 붉은 색 밑창의 구두와 훤칠한 옆모습을 제외하고는 남자의 이목구비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 사람이 하성그룹의 하준혁이였다니? 게다가 이제 그는 강나래의 '상사'가 되었다. 세 사람은 카페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강나래는 단정하게 앉아 당당하게 하준혁과 시선을 마주했다. 하준혁은 의미심장하게 강나래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 "기억났어요?" 그가 다시 물었다. 강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기억났어요. 감사합니다, 대표님." "두 사람 무슨 얘기를 하는 거예요?" 하지현은 탁자에 엎드린 채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예쁜 언니, 뭐가 기억났다는 거예요?" 강나래는 그 호칭이 낯설었다. 하지만 반짝이는 눈빛으로 자신을 쳐다보는 하지현을 보고 있자니 뭐라 할 수도 없었다. 심인혁의 동생인 심희연 역시 말이 많은 사람이었다. 강나래는 그런 심희연을 시끄러운 사람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하준혁의 동생은 사랑스럽게만 느껴졌다. "대표님과 만난 적이 있어요." "응." 하준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현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 "어디서 만났는데요? 오빠에게 그런 얘긴 들은 적이 없는데." 강나래가 대답했다. "호텔이요." 하지현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세상에나!! 두 사람 혹시... 아아아아! 이렇게 좋은 일이!" 하지현은 갑자기 펄쩍펄쩍 뛰며 기뻐했다. "우리 오빠에게 드디어 여친이... 읍!" 누군가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 하준혁은 물리적으로 하지현의 입을 다물게 만들고는 눈빛으로 하지현을 위협했다. 하지현은 내키지 않는 듯 억지로 고개를 끄덕였다. "똑바로 앉아. 정신 사납게 굴지 말고."하준혁은 엄히 꾸짖었다. "알겠어." 얌전히 자리에 앉은 하지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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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돈을 집안 살림에 보태느라 휴대폰을 바꿀 여윳돈이 없었어요." "그럼 언니네 가족들은 언니 덕분에 정말 행복하게 살겠어요. 하지만 언니는 행복하지 않잖아요." 하지현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어쩐지 조금 속상한 것 같았다. 하지현이 그녀 때문에 속상해할 줄은 꿈에도 몰랐던 강나래는 가슴이 따듯해졌다.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만 있던 하준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심 대표님께서는 고작 백만 원이면 살 수 있는 휴대폰을 사줄 여유조차 없나 보군요. 게다가 살림살이에 보탬도 되지 못하고. 보아하니 성우테크는 인간미가 전혀 없는 곳이네요." 강나래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하준혁이 그녀의 뒷조사를 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지현 씨, 커피 잘 마셨어요. 고마워요." 강나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대표님, 저는 무슨 일을 하면 되죠?" "주 비서가 알려줄 겁니다." "알겠습니다." 강나래는 카페를 떠났다. 하준혁은 의자에 기대앉아 커피를 한 모금 마시며 동생에게 경고장을 날렸다. "다음엔 아메리카노 주문하지 마." 하지현은 입술을 삐죽거렸다. "아메리카노에 습관이 돼서 그래. 그걸 마시면 피곤이 가시거든. 연구실에서 일을 하는 사람에겐 제격이지. 오빠, 심 대표란 사람은 누구야? 오빠 때문에 예쁜 언니가 화가 난 것 같은데." "어른들 일에 끼어들지 마." 하준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카페를 빠져나갔다. 하지현은 투덜거리며 말했다. "다리가 길면 다인 줄 아나. 예쁜 언니 뒤꽁무니도 쫓아가지 못할걸." 쿵.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손 하나가 안으로 들어왔다. 강나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리고 하준혁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걸어 들어왔다. 강나래는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섰다. "대표님." "네." 하준혁은 곁눈질로 강나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의 신경이 온통 다른 데로 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지만 별다른 질문은 하지 않았다. 강나래 역시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하준혁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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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점심시간이 되기도 전에 강나래는 노트북을 들고 하준혁의 사무실로 들어가 노트북을 하준혁의 앞에 내려놓았다. "대표님, 정리 마쳤습니다." 하준혁은 조금 놀라며 물었다. "벌써요?" "네, 사진을 찍고 인식한 뒤 데이터를 가시화했어요." 강나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실험실의 데이터보다 훨씬 간단한 것들이었다. 하준혁은 노트북 화면에 나타난 숫자와 그래프들을 살펴보았다. 데이터 시각화 뿐만 아니라뿐만 아니라 데이터를 분석하고 그에 관한 대책까지 적혀 있었다. "그럭저럭할 줄 안다고요?" 그는 고개를 들어 강나래를 보며 반문했다. 강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럭저럭할 줄 알아요." 하준혁은 말문이 막혀 버렸다. 그는 더욱 강나래가 보통 사람이 아니라 확신하게 되었다. "오연홍 교수님의 제자면서 왜 그 능력을 썩히며 하성그룹의 말단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거죠?" 자리에서 일어난 하준혁은 강나래의 주위를 한 바퀴 돌더니 갑자기 허리를 숙여 그녀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날카로운 눈빛으로 강나래를 보며 물었다. "누구 밑에서 일을 하고 있는 거죠?" 가라앉은 하준혁의 싸늘한 목소리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하지만 그의 숨결은 무척 뜨겁고 촉촉했다. "둘째 고모인 하은혜? 아니면 성우테크의 심 대표?" 질문을 마친 그는 다시 허리를 곧게 폈다. 표정 역시 평소대로 돌아왔다. "하성그룹이 과학기술 영역에 발을 들인 뒤로 성우테크는 하성그룹의 가장 큰 경쟁 상대였죠. 당신 남편인 심인혁은 우리 회사 매니저들의 손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가로채 갔어요. 그는 업계 기류를 읽는 능력과 프로젝트를 감별하는 능력이 아주 뛰어나 투자하는 프로젝트마다 성공한다고 하더군요. 당신은 심인혁과 결혼하자마자 하성그룹에 들어왔어요. 하지만 이상한 건, 성우테크의 심 대표가 유부남이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 없다는 거죠." 강나래의 자료를 찾아보고 주 비서가 직접 조사하지 않았다면 하준혁 역시 업계의 신흥 귀족이라 불리는 심인혁이 4년 전 이미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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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40만 원짜리가 아니었다. 백만 원짜리 휴대폰이었다. 다시 자리로 돌아온 강나래는 물을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아침에 나올 때 깜빡하고 텀블러를 챙기지 않았다. 텀블러 하나는 집에, 다른 하나는 실험실에 있었다. 탕비실에 일회용 컵이 마련되어 있었다. 강나래는 일회용 컵을 집어 들고 나서야 앞에 기계 세 대가 마련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나는 커피 머신, 하나는 정수기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주스 메이커였다. 냉장고에는 여러 과일이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그때, 강나래의 옆으로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나 냉장고의 문을 열었다. 강나래는 옆으로 조금 비켜서며 고개를 돌렸다. 하준혁이였다. 포도를 깨끗이 씻어 주스 메이커에 넣고 버튼을 누르니 신선한 포도 주스가 만들어졌다. 2인분이었다. 하준혁은 그중 컵 하나를 들어 강나래의 앞으로 밀어놓고 나머지 한 컵은 본인이 마시기 시작했다. "이제 쓸 줄 알겠어요?" "뭐라고요?" 강나래는 멍하니 앞에 놓인 포도 주스를 보고 있었다. 달콤한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하준혁이 말했다. "배웠다면 앞으로 스스로 해 먹어요. 이번만이에요. 다음은 없어요." 강나래는 할 줄 안다고 말하고 싶었다. 고작 주스 메이커일 뿐이었다. 강나래는 레스토랑에서 파는 것처럼 과일을 예쁘게 손질하는 법도 알고 있었다. "더 달게 마시고 싶다면 저쪽에 설탕이 있어요."하준혁은 눈빛으로 설탕이 있는 곳을 가리켰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강나래는 포도 주스가 담긴 컵을 들었다. "단 음식을 좋아하지 않아요." "그럼 뭘 좋아하죠?" 하준혁은 무심한 척 그렇게 물었다. 하지만 그는 줄곧 곁눈질로 강나래의 옆모습을 보고 있었다. 강나래는 항상 정신이 다른데 팔린 듯한 모습이었다. "매운 거요." 고개를 든 강나래의 말투가 갑자기 단단해졌다. "매운 걸 좋아해요. 간식도 매콤한 것으로 골라 먹어요." 하준혁은 눈썹을 살짝 추켜세우더니 그곳을 떠났다. 강나래는 훤칠한 하준혁의 뒷모습을 보며 겉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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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심인혁은 곧바로 악수를 청하며 미소를 지었다. "하 대표님." 곁에서 누군가 웃으며 말했다. "하 대표님과 심 대표님께서는 아는 사이셨군요." "처음 뵙습니다. 그 명성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어요." 하준혁은 그 말을 하며 일부러 곁에 서 있는 강나래를 힐끗 쳐다보았다. 강나래는 하준혁이 왜 그러는 건지 알지 못했다. 누군가 하준혁이 앉을 자리의 의자를 빼주고 나서야 강나래는 자신이 직책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이제 그녀가 할 일은 없었다. 하준혁이 자리에 앉고 나서야 다른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하준혁은 곁에 놓인 의자를 툭툭 치면서 강나래에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말했다. "여기 앉아요." 그러자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분분히 그곳을 쳐다보았다. 하준혁의 옆에 앉으려던 다른 회사의 대표는 얼른 자리를 비켜주었다. 편안한 차림에 에코백을 메고 이 자리에 참석한 저 비서는 보통내기가 아닌 듯했다. "하 대표님, 새로 고용한 비서인가요?" 누군가 궁금한 듯 물었다. 심인혁은 두 사람을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특히 강나래는 그의 시선에 몸에 구멍이라도 뚫릴 지경이었다. 사직서를 제출했다면서, 왜 하준혁의 비서가 된 거지? 강나래가 거짓말을 하다니! "행정직에서 갓 승진한 사람입니다." 하준혁은 재미있는 듯 심인혁과 강나래를 번갈아 관찰하고 있었다. 심인혁은 잔뜩 화가 나 있었지만 강나래는 마치 모르는 사람처럼 덤덤하게 굴고 있었다. 보아하니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은 듯했다. 누군가 다시 물었다. "하 대표님의 새 비서분은 성함이 어떻게 되시죠?" "강 비서님입니다." 심인혁은 강나래보다 먼저 대답했다. 질문을 던진 사람이 놀라며 물었다. "심 대표님께서도 아는 분인가요?" 강나래는 심인혁을 보았다. 그녀 역시 심인혁의 대답이 궁금했다. "아는 분이죠." 심인혁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대답은 그것으로 끝이었다. 더 이상 이어지는 설명은 없었다. 고개를 숙인 강나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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