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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너무 늦은 후회: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하지만, 아픈 것도 좋았다. 강나래는 계속해서 고개를 숙인 채 밥을 먹기 시작했다. 하준혁은 강나래를 이대로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심인혁이 세 번째 잔을 비웠을 때 그가 물었다. "심 대표님께서는 이미 결혼을 하셨다 들었습니다." 술잔을 내려놓으려던 심인혁은 멈칫하며 무의식적으로 강나래를 쳐다보았다. '나래가 말한 건가? 결혼 상대가 누군지 알리지 않겠다 약속하지 않았나?' "하 대표님, 어디서 소문을 들으신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우리 심 대표님께서는 결혼하지 않으셨어요. 결혼했다면 우리가 모를 리가 없지요." "그래요. 심 대표님께서는 아직도 사랑하는 여... 습!" 곁에 앉은 남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심인혁이 몰래 그의 발을 밟았다. 남자는 의아한 듯 심인혁을 쳐다보았다. 심인혁은 미소를 지으며 더 이상 말하지 말라는 신호를 보냈다. 저들은 심인혁과 자주 몰려다니면서도 소식은 하준혁보다도 더 느린 듯했다. 당연하게도 하준혁은 심인혁이 외부에는 결혼 사실을 철저히 숨겼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의 지인 역시 강나래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재밌군. 이럴 거면 결혼은 왜 한 거지? "관심 고맙습니다, 하 대표님 바쁘실 텐데 제 인생까지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심인혁은 웃으며 다시 잔을 들어 올렸다. "하 대표님께서 주최하시는 과학기술 전람회가 원만한 성공을 이루기를 바랍니다." 하준혁은 상징적으로 잔을 들며 말했다. "전람회가 끝난 뒤 업계 사람들이 모인 애프터 파티가 열릴 예정입니다. 모두 파트너와 함께 참석해 주세요." 하준혁이 그렇게 말하자 모두 수긍하며 대답했다. "물론이지요." 사람들이 잔을 들었다. 강나래 유독 튀게 행동할 수가 없어 따라서 잔을 들었다. 심인혁은 긴장한 표정을 지었다. 더 이상 이것저것 잴 겨를이 없었다. "강 비서님은 술을 드시면 안 될 텐데요." 술을 마시려던 강나래는 멈칫하더니 심인혁을 쳐다보았다. 심인혁은 설명을 덧붙였다. "여성분들은 술을 마시지 않는 게 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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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사직서를 제출한 건 사실이야. 퇴사 처리까지 한 달이 걸린다는 것도 인사팀의 서아영 씨가 말해준 거고. 대표 사무실로 부서를 옮기는 건 나 같은 평범한 직원이 결정할 문제가 아니야. 하 대표님께서 결정한 거지." 강나래는 바람이 가장 강하게 물어오는 곳에 서 있었다. 가을바람이 싸늘하게 불어와 그녀의 머리카락을 흐트러뜨렸다. 강나래는 당당한 눈빛으로 심인혁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인혁은 그녀의 눈에서 거짓을 읽어내지 못했다. "하 대표가 왜 당신을 비서로 발탁한 거야?" "구체적인 건 나도 몰라." 강나래는 하준혁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아무튼 강나래는 그가 한 얘기를 믿지 않았다. 심인혁 역시 하준혁을 잘 알지 못했다. 하성그룹은 그에게는 너무 먼 존재였다. 평생을 노력해도 하준혁의 옷자락조차 스치지 못할 만큼 멀었다. 그저 하성그룹을 움직이는 하준혁이 고고하고 각박한 사람이며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는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이었다. 사업을 진행할 때면 더욱 결단력이 대단한 사람이었다. 친척마저 거침없이 잘라버리는 그는 사업을 진행하는 안목 역시 탁월했다. 모두 심인혁의 안목이 탁월하다고 말했다. 투자하는 족족 성공을 이루어냈으나 사실 적지 않은 사업은 그저 보잘것없는 이익만 얻고 끝났을 뿐이었다. 하준혁은 심인혁과는 달랐다. 하준혁이 눈여겨 본 사업에 투자만 하면 그 이윤은 배로 뛰었다. 22살 때 천문학적인 투자를 진행해 이름을 날린 그는 하성그룹이 신흥 테크 사업에 발을 들이게 만들었다. 하성그룹의 산하에 있는 남영테크는 아예 하준혁의 소유가 되어 버렸다. 하성그룹을 뒷배로 두고 있는 남영테크는 성우테크의 가장 큰 경쟁상대였다. 누군가 이런 비유를 한 적이 있었다. 심인혁은 최고의 노력파이며 하준혁은 날 때부터 이 일로 성공을 이루어 낼 천재라고 말이다. 노력은 그저 천재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입장 티켓에 불과했다. 하여 심인혁은 온갖 노력을 한 끝에 하준혁과 같은 자리에 앉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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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강나래 씨의 퇴사는 수락하지 않을 생각입니다."하준혁은 살짝 고개를 돌리며 그들을 비스듬히 쳐다보았다. "심 대표님께서는 강나래 씨와 그저 아는 사이라면서 왜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시죠? 참견한대도 아내의 휴대폰조차 바꿔 주질 못하고 아내의 박봉까지 살림살이에 보태게 만드는 그 무능력한 남편이 참견해야겠죠." 꽤 독한 말이었다. 고개를 빳빳이 쳐든 심인혁은 할 말이 없었다. 본인이 바로 강나래의 그 무능한 남편이라 칭하고 나설 수도 없었다. "강나래 씨, 화장실에 간다면서 자리를 너무 오래 비웠네요."하준혁은 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얼른 따라오세요." 강나래는 얼른 하준혁의 뒤를 따랐다. 심인혁에게서 멀어지고 나서야 강나래는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남몰래 한숨을 돌리는 강나래의 모습을 본 하준혁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이게 바로 술자리에 따라오겠다 나선 이유입니까?" "뭐라고요?" 고개를 갸웃거리며 어리둥절해하는 강나래의 모습은 조금 멍해 보였다. 곧 하준혁이 부부 사이가 좋지 않을 것이라고 추측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 강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비슷해요." 하준혁이 물었다. "결혼한 지 얼마나 되었죠?" 하준혁은 이미 사실을 알고 있을 테니 더 이상 숨길 것도 없었다. "4년이요." 강나래는 멈칫하다 다시 말을 이었다. "4년 하고도 115일 되었어요." 하준혁이 말했다. "그렇게 자세히 기억하고 있어요?" 강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하준혁이 말했다. "하지만 그는 두 사람의 결혼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있잖아요." 멈칫하던 강나래가 대답했다. "네." 룸으로 돌아왔을 때 강나래는 더 이상 음식을 입에 대고 싶지 않았다. 업계에서 난다긴다하는 사람들을 마주하면서도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심인혁은 머리가 젖은 채로 다시 자리에 돌아왔다. 보아하니 냉수로 세수를 한 모양이었다. 심인혁은 여전히 웃고 대화를 나누며 사람들과 술잔을 계속해서 부딪히고 있었다. 하준혁에게 술을 따를 때 그는 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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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강나래는 그의 말을 듣자마자 완곡히 거절했다. "대표님, 감사하지만 택시를 타고 가면 돼요." "타요." 하준혁의 말투에는 거절할 수 없는 힘이 있었다. 동시에 차 문 역시 서서히 열렸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강나래는 허리를 숙이고 차에 올라탔다. 하준혁에게 가까이 다가가자 술 냄새가 물씬 풍겼다. 조금 전 식사 자리에서 그 역시 적지 않은 술을 마셨지만 취한 티는 내지 않았다. 강나래는 속으로 하준혁이 술을 꽤 잘 마신다고 생각했다. 기사가 강나래를 돌아보며 물었다. "강 비서님, 어디 사십니까?" 강나래는 아파트 이름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심인혁과 임서연이 먼저 집으로 갔을 거라는 생각에 말을 바꾸었다. "거기로 가지 않을 거예요. 저를 근처에 있는 호텔에 데려다주시면 돼요." 하준혁은 강나래와의 첫 만남이 호텔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게다가 반쪽 얼굴이 부어오른 채로 말이다."지난번에는 심 대표가 때린 건가요?" 멈칫하던 강나래는 그제야 생각이 떠올라 고개를 끄덕였다. 하준혁은 냉소를 지으며 심인혁을 욕했다. "겉모습만 번지르르한 남자군요." 강나래는 묵묵히 눈을 내리깔 뿐 반박하지 않았다. 그 뒤로 대화는 오가지 않았다. 강나래는 벌써 호텔 몇 개를 지나쳤음에도 차가 멈추지 않는 것을 발견하고 나서야 고개를 돌려 하준혁을 쳐다보았다. "저를 어디로 데려가는 건가요?" "가면 알아요." 하준혁은 구체적인 위치를 알려주지 않았다. 강나래는 긴장한 나머지 자세를 꼿꼿이 한 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강나래의 움직임을 알아차린 하준혁이 멈칫하더니 물었다. "뭐 하는 거죠?" "언제든지 경찰에 신고할 수 있게 준비하고 있어요." 강나래 역시 아주 솔직했다. 하준혁은 말문이 막혔다. 그녀와 말을 섞고 싶지 않았다. 차는 계속 달려서 대학로에 있는 광명대 근처에 멈춰 섰다. 강나래는 이 주변이 몹시 익숙했다. 앞에 있는 오피스텔은 월세가 아주 높은 곳이여서 과거의 강나래가 입주하지 못한 곳이었다. "오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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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호텔에서 같은 엘리베이터에 탔었어요. 제가 층수를 누르는 걸 깜빡해서 대표님께서 귀띔해 주셨고요." 사실 강나래는 이 일을 잊고 있었다. 하준혁이 귀띔하고 나서야 생각이 났던 것이다. 하지현은 알겠다는 듯이 말했다. "언니였군요! 우 매니저가 말한 사람이 바로 언니였어요! 예쁜 언니, 우리 오빠, 우리 오빠가... 세상에! 우리 오빠가 드디어 눈을 떴군요!" "뭐라고요?" 강나래는 이해가 되질 않았다. 하지현은 고개를 힘껏 저었다. "아,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날 언니가 묵었던 호텔이 우리 가문 소유예요. 오빠가 특별히 호텔 매니저에게 언니를 잘 보살펴주라고 당부한 다음에..." 그리고 우 매니저는 당장 그 사실을 두 사람의 부모님에게 알렸다. 오빠는 여자를 가까이하지 않은지 꽤 오래 되었고 결혼을 재촉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나가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쩍도 하지 않던 오빠가 갑자기 웬 여자를 걱정하고 있으니 누구라도 호기심이 동했을 것이다. 강나래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날 낯선 이로부터 받았던 호의가 하준혁이 베푼 것이었다니. 강나래는 순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괜찮아요, 괜찮아요.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아요. 우리 오빠는요, 그러니까..." '됐다, 꾸며내지도 못하겠네.' 하지현은 변명을 포기했다. 하지현은 깨끗한 수건과 칫솔을 가져다주며 유쾌하게 말했다. "예쁜 언니, 일찍 자요~" 하지현은 문을 닫자마자 오빠에게 문자를 보냈다. [오빠! 이렇게 좋은 기회에 왜 언니를 우리 집으로 보낸 거야? 두 사람 다 성인이잖아. 성인 둘이 서로 가까이 지내다 보면 사랑이 얼마나 활활 타오르는데. 도대체 알기는 아는 거야?] 하준혁이 답장을 보냈다. [너희 집으로 보내지 않으면. 내일 강나래 씨는 집으로 돌아가서 가족들에게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하지현이 말했다. "음? 언니의 부모님은 엄한 분이시구나?" 타자를 하려던 그때 하준혁에게서 문자가 도착했다. [어린애는 쓸데없는 신경 쓰지 마라. 네가 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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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자기 위해 불을 끄고 잠자리에 누웠지만 자꾸만 그런 생각이 들었다. 임서연은 심인혁을 데리고 어디로 갔을까? 강나래와 심인혁의 집? 아니면 임서연이 묵고 있는 곳? 임서연 역시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아마 출퇴근 시간에 편하게 임서연을 데려다주기 위한 심인혁의 뜻이었을 것이다. 다정하게 대하는 심인혁의 태도가 바로 사랑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심인혁은 임서연에게 다정함은 물론 돈도 주었고 그녀를 지지해 주었으며 지켜 주었다. 임서연에게는 숱한 것들을 주었다... 아내인 강나래는 영영 가져보지 못했던 것들을 말이다. 강나래는 명분을 얻기는 했다. 하지만 오늘 밤 술자리에서 심인혁은 결혼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도 않았고 그것 때문에 강나래에게 미안해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녀가 거짓말을 한다고 의심까지 했다. 도대체 누가 누구를 속인 걸까? 이런 생각 저런 생각을 하던 강나래는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해 감정을 억눌렀다. 어차피 이혼 협의서에 사인을 마쳤다. 이제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만 하면 될 일이었다. 기다리면 이혼 접수가 완료될 것이다. 이 늪을 벗어나기만 하면 괜찮아질 것이다. … 임서연은 심인혁을 데리고 그녀의 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곳에서는 무엇을 하든 편할 테니까. 갑작스럽게 돌아온 강나래의 방해를 받을 일도 없었다. 임서연이 심인혁을 데리고 차에서 내린 뒤, 심인혁은 곧바로 그의 집으로 향했다. 그녀가 아무리 소리를 쳐도 소용이 없었다. "인혁아, 이쪽이야." 심인혁은 휘청거리며 끝내 집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임서연은 알고 있었다. 심인혁이 강나래와 살고 있는 그 집을 마음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마치 임서연을 안고 여보를 외치던 것처럼 말이다. 임서연은 그 사실이 불만스러웠다. 하지만 술에 취한 남자를 이길 수는 없었기에 어쩔 수 없이 심인혁과 강나래의 집으로 그를 데려갔다. 심인혁을 소파에 눕히자마자 심인혁이 임서연의 손목을 잡았다. "서연아." "임서연." 이번에는 그녀의 이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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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응." 임서연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제 너 취했었어. 나에겐 널 밀쳐낼 힘도 없었고." 침대에서 내려온 심인혁은 마른세수를 했다. 마치 지금 상황이 곤란한 사람처럼 말이다. 심인혁과 임서연은 그와 강나래의 침대에서 몸을 섞었다. "씻고 올게." 샤워를 마치고 나와 보니 임서연은 이미 옷을 갖춰 입고 있었다. 그녀의 목에 키스 마크가 선명하게 보였다. 임서연은 그를 쳐다보며 볼을 붉혔다. "인혁아, 너 어젯밤에 너무... 마치 오랫동안 하지 않은 사람처럼 굴었어." 말을 마친 임서연은 다가와 그를 안았다. 심인혁은 고개를 숙이고 임서연을 쳐다보았다. 수많은 나날동안 그리워했던 여자였다. 그는 그녀를 가볍게 품에 안았다. "나래와는 잠자리를 가져본 적이 없어." "알아." 임서연은 심인혁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인혁아, 네 마음속엔 항상 내가 있다는 사실 알고 있었어. 내 마음속에도 온통 너뿐이야." 임서연은 고개를 들어 심인혁의 입술에 입 맞췄다. 심인혁의 얼굴에 그제야 미소가 번졌다. 하지만 곧 뭔가 떠오른 듯이 미소는 다시 사라져 버렸다. "어젯밤 나래가 집으로 왔었어?" 임서연은 그 이름을 듣기가 싫었다. 그녀는 심인혁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마치 심인혁이 도망이라도 갈 것처럼 말이다.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어. 뭐 하러 갔는지 누가 알겠어." 심인혁은 갑자기 임서연의 손을 풀더니 거실로 가 휴대폰을 찾았다. 문자도 전화도 와 있지 않았다. 하. 잘하는 짓이야. 그는 화가 난 나머지 휴대폰을 쥔 손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힘을 주었다. "인혁아, 나래 씨를 걱정하는 거야?" "걱정하냐고?" 심인혁은 싸늘한 표정으로 말했다. "어딜 가든 마음대로 하라지. 광명시에는 딱히 나래가 갈 데도 없어. 보육원 아니면 오연홍에게 찾아갔을 거야." "인혁아, 너 나래 씨를 좋아하게 된 거야?" 그에게 다가간 임서연의 표정은 무척 서글펐다. 순간 멈칫하던 심인혁이 대답했다. "허튼 생각 하지 마. 그저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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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큰 아파트. 심인혁은 가장 먼저 부모님을 위해 커다란 아파트를 샀다. 그리고 동생 심희연의 결혼 선물로 아파트를 하나 봐두었다. 이제 임서연을 위해 아파트를 한 채 사줄 생각인 듯했다. 하지만 4년 동안 곁을 지킨 아내에게는 아무것도 차려지지 않았다. 강나래는 참담하게 웃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거실은 꽤 정돈이 되어 있었다. 아파트는 방이 모두 세 개 있었고 드레스룸은 안방에 딸려 있었다. 문을 열자마자 밤나무 냄새와 비슷한 이상한 냄새가 났다. 아파트 단지에는 밤나무가 없었다. 창문을 열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강나래는 침대 아래에 삐져나온 검은색 레이스를 발견하게 되었다. 강나래는 허리를 숙여 그것을 집어 들었다. 천이 가련하게 적은 검은색의 티팬티였다. 강나래는 이런 팬티를 입지 않았다. 두 사람의 집에는 이런 물건이 존재하지 않았다. 뭔가 알아차린 강나래는 이불을 확 제쳤다. 침대보는 잔뜩 구겨져 있었다. 보아하니 대단한 전투가 치러진 듯했다. 게다가 전투 뒤에 남겨진 흔적까지... 차마 입에 담기도 남사스러운 것이었다. 심인혁과 임서연이 몸을 섞은 모양이었다. 그녀의 침대에서 말이다. "우욱..." 강나래는 순간 메스꺼워져 화장실로 달려갔다. 하지만 아무것도 먹지 않은 탓에 그저 위산만 계속해서 토해 낼 뿐이었다. 메스꺼워. 너무 메스꺼워. 강나래는 눈가가 발개지고 위가 경련할 때까지 구역질을 했다. 간단히 입가심을 한 뒤 강나래는 얼른 그 집을 벗어나 하성그룹으로 출근했다. 아침 일찍 자리에 앉아 물을 반 컵 마시자마자 집에 있는 침대에서 벌어진 일이 떠올라 다시 한번 토기가 치밀었다. 강나래는 입을 틀어막고 밖으로 달려 나가 화장실 세면대에서 구역질을 했다. 조금 전 마셨던 물을 전부 토해내고 말았다. 토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들려왔다. 한 시간 일찍 사무실에 도착해 있던 하준혁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강나래는 어제 입었던 옷을 입고 있었다. 가녀린 허리를 숙이고 있는 그 모습은 마치 꺾여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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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동료들의 호의 앞에서도 강나래는 그저 고맙다는 말 밖에 할 줄 몰랐다. "제가 고맙죠. 어제 저 대신 술자리에 가주셔서 정말 고마워요. 생리 중에 술을 마신다면 생리통이 더 심해졌을 거예요." 김 비서는 뜨거운 물을 떠 와 강나래를 위해 꿀물을 타 주었다. 강나래는 꿀물을 한 모금 마시며 말했다. "어제 술을 마시지 않았어요." "정말요?" 김 비서는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강나래에게 귓속말을 했다. "모두 우리를 뭐라고 하는지 알아요? 대표님의 외교부라고 해요. 우리는 능력이 뛰어날 필요도 없어요. 우선 예쁘장하게 생기고 말도 잘하고 술을 잘 마셔야 하죠. 전에는 저와 박 비서 두 사람뿐이었어요. 박 비서는 귀엽게 생긴 편이고 저는 요염하게 생긴 편이라고 해 두죠. 거기에 강 비서님까지. 이제 완벽하게 다 모였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다른 대표님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우리 대표님만의 좋은 점이 있어요. 매번 우리를 데리고 술자리에 나갈 때면 직접 우리를 다시 집으로 데려다주시곤 하거든요." 김 비서는 거울을 꺼내 립스틱을 바르더니 거울 속 본인을 보며 싱긋 웃었다. "그러니 술을 마시지 않았다는 강 비서님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술자리에서 술을 마시는 건 기본이니까요." 강나래는 어젯밤 확실히 술을 마시지 않았고 게다가 좋아하는 음식까지 먹을 수 있었다. 그녀는 계속해서 꿀물을 마신 뒤 만둣국을 먹었다. 비서직은 강나래에게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녀는 자료 정리를 가장 잘했고 커피 역시 잘 탔다. 그동안 빠지는 곳 하나 없이 세심하게 심인혁을 돌봐온 덕분이었다. 바쁘지도 않고 어렵지도 않은 일자리는 계속해서 다른 여자와 몸을 섞는 심인혁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들었고 여전히 속이 메스꺼웠다. 박 비서는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강나래를 보며 물었다. "강 비서님, 설마 임신은 아니죠?" 사무실의 문을 닫지 않고 있던 하준혁은 그 말에 서서히 고개를 들어 강나래를 쳐다보았다. 그 점은 완전히 생각지 못한 것이었다. 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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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심인혁과 임서연은 강나래를 본 순간 움찔 놀라며 무의식적으로 그녀에게서 한 걸음 멀어졌다. 그래도 부끄러운 줄은 아는 모양이었다. 심인혁은 본인이 이혼 협의서에 사인을 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니 다른 사람들은 더 알 수가 없었다. 그들에게 강나래는 여전히 심인혁의 아내였다. 김 비서는 배시시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심 대표님. 그리고 이 분은, 아내분인가요?" 아내라는 호칭을 들은 임서연은 강나래를 도전적으로 쳐다보았다. "아니에요." 심인혁은 강나래를 보며 그렇게 대답했다. 그 말에 임서연의 미소가 얼어붙었다. "저와 인혁이는 친구 사이예요." 김 비서와 박 비서는 여러 회사의 대표들을 만나왔기에 모두 남몰래 애인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두 사람은 심인혁과 임서연의 관계를 눈치챘지만 웃으며 아무것도 모르는 척 굴었다. 곁에 서 있는 강나래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차갑게 얼어붙는 기분이었다. "강나래." 심인혁이 갑자기 그녀를 불렀다. 임서연 역시 웃으며 말했다. "나래 씨, 왜 저와 인혁이를 모르는 척 하는 거예요? 오해하지 말아요. 우리는 그저 함께 쇼핑 중이에요." 아파트를 산 뒤에 쇼핑을 온 건가? 게다가 심인혁이 약속했지만 한 번도 함께 와 보지 못한 백화점에 말이다. 역시나. 남자의 돈은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흐르는 모양이었다. 김 비서와 박 비서는 놀라며 강나래에게 물었다. "심 대표님과 아는 사이에요?" 강나래는 심인혁을 싸늘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네. 알아요." 강나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드러내지 않았다. 심인혁은 그런 그녀가 기특해야 마땅했다. 하지만 어찌 된 일인지 기쁘기는커녕 가슴이 턱 막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임서연은 하준혁의 직원을 알지 못하기에 웃으며 물었다. "나래 씨 친구분들인가요? 같이 쇼핑을 온 모양이군요. 하지만 나래 씨는 이런 백화점에 와본 적이 별로 없을 거예요. 그러니 이곳에서 격에 맞지 않는 행동을 하더라도 두 사람이 나래 씨를 잘 챙겨줘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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