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늦은 후회

너무 늦은 후회

Oleh:  일세종환Baru saja diperbarui
Bahas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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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넘는 결혼 생활을 지나다가 그 여자가 돌아왔을 때에야 강나래는 비로소 알게 되었다. 아내와의 잠자리를 거부하며 얼음처럼 차갑기만 굴던 모습은 남편의 본성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매달 70만 원의 생활비만 주던 남편은 첫사랑의 연구 사업을 위해 통 크게 매달 7억 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대하는 남편의 태도가 너무 분명한 나머지 그녀는 깊은 상처를 입고 말았다. 심인혁은 첫사랑이 결혼이라는 감옥에 갇혀 재능을 썩히는 게 가슴 아프다고 했다. 하지만 강나래에게는 쥐꼬리만한 월급이나 받는 직장 따위 당장 치우고, 집에서 살림이나 하라고 강요했다. 그녀가 아무런 미래도 없는 퇴물로 살기를 바랐던 것이다! 하지만 심인혁이 모르고 있는 사실이 하나 있었다. 강나래는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었다. 지난 4년간 그녀는 국가 기밀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이끌어왔다. 직급이 너무 높은 나머지 심인혁의 첫사랑마저 강나래의 부하 직원으로 프로젝트에 참여해야 했다. 게다가 그는 아무렇게나 사인한 서류가 두 사람의 이혼 협의서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한 달 뒤. 과학계 거물이라는 강나래의 신분이 공개되고 조정 기간을 거쳐 두 사람의 이혼 역시 성사되었다. 줄곧 다정하고 점잖던 심인혁은 이혼 서류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이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그는 시뻘게진 두 눈으로 분노를 터뜨렸다. "나 말고 또 누가 이혼한 그 여자를 원하겠어?" 고집을 부리며 센 척하는 사람도 그였고 무릎 꿇은 채 다시 합치자고 사정하는 사람 역시 그였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났을 때, 강나래는 최고 명문가의 실세인 하준혁의 팔짱을 끼고 있었다. 전남편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동자 속에 더 이상의 흔들림은 없었다. 하 대표는 짙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두 사람의 따끈따끈한 혼인관계증명서를 꺼내 들었다. "심 대표님, 자중하시죠. 이 사람은... 제 아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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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b 1

제1화

"임서연이 돌아왔으니 이제 형수는 어떡해?"

집 앞, 열린 문틈 사이로 남편 심인혁과 친구의 목소리가 은밀하게 들려왔다.

퇴근한 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려던 강나래는 멈칫하고 말았다.

임서연? 보름 전 그녀의 프로젝트에 낙하산으로 합류한 전문가의 이름과 똑같았다.

절묘한 우연이었다.

방 안, 심인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형, 내가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첫사랑인 임서연을 잊지 못했잖아. 그렇게 아껴 쓰면서 매달 남몰래 7억 원을 임서연에게 보내 연구를 도왔고.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임서연은 이제 국가 기밀 프로젝트의 전문가로 특별 임명되었어. 지금 임서연을 찾아가 입찰에 관해 물어본다면 형은 성우테크 대표 자리를 완전히 꿰찰 수 있는 거야. 아무도 그 자리를 넘보지 못할 거라고."

강나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7억 원이라고?

매달 그녀에겐 70만 원밖에 주지 않는 심인혁이 다른 여자에겐 매달 7억 원을 주었다고?

하지만 방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는 너무나도 똑똑히 강나래의 귀에 꽂혔다. 심인혁 역시 반박하지 않았다.

순간 강나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심인혁은 시계를 확인했다.

"서연이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됐어, 서연이가 퇴근할 시간이야. 데리러 가봐야 해. 탁자 위의 것들은 치우지 않아도 돼. 나래가 돌아와서 정리할 테니까."

"형, 형수님은 정말 현모양처야. 집 안을 깔끔하게 정리할 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과 시동생까지 살뜰하게 챙기잖아. 정말 형수님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린 적 없어?"

강나래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숨을 죽였다.

심인혁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난 강나래처럼 집안일만 하면서 남편만 바라보는 현모양처는 좋아하지 않아. 서연이처럼 본인의 일에 몰두하며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어낸 빛나는 여자만 좋아하지."

그 말은 마치 칼날처럼 강나래의 가슴을 찔렀다.

강나래의 두 눈에 눈물이 차올랐다. 옆으로 축 늘어뜨린 손이 바들바들 떨려왔다.

"그럼 애초에 왜 강나래를 쫓아다닌 거야? 게다가 결혼까지 하고."

"그땐, 서연이가 기어코 나를 버리고 출국했잖아."

"임서연을 화나게 하려고 그런 거란 말이야?"

심인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묵인이었다.

"이제 임서연이 돌아왔으니 강나래와 이혼할 거야?"

그의 친구는 이제 강나래를 형수님이라 부르지도 않았다.

다시 침묵에 빠진 심인혁은 한참이 지나서야 입을 열었다.

"네 말이 맞아. 강나래는 날 아주 잘 챙겨 주었어. 지난 2년 동안 위병이 도진 적도 없었지. 엄마와 여동생의 일도 잘 처리해 주고 있고. 집안일 때문에 신경을 써본 적도 없어."

심인혁은 성우테크 창립자 가문의 사람도 아니었다. 그가 대표 자리에 앉게 된 건 오로지 접대 자리에서 술을 진탕 마셔가며 이루어 낸 노력의 결과였다. 때문에 젊은 나이에 벌써 위병을 달고 살게 되었던 것이다.

그게 마음 아팠던 강나래는 매일 아침 한 시간씩 일찍 일어나 위에 좋다는 보양식을 만들었고 저녁 다섯 시가 되면 늦지 않게 집으로 돌아와 남편에게 먹일 국을 끓이고 저녁을 준비했다.

남편이 야근이라도 하는 날에는 음식을 성우테크로 가져다주고 다시 연구소로 갔다.

결혼 4년 내내 그런 나날들이 이어졌다.

그리고 지금, 비밀리에 진행되던 '자체 개발 칩' 프로젝트가 4년 만에 드디어 성공을 이루어 냈다.

연구소는 곧 대외적으로 입찰 경쟁을 열 예정이었다. 칩이 시장에 나오기만 한다면 나라와 국민 모두에게 득이 되는 일이었다.

그 프로젝트의 핵심 책임자인 강나래는 적지 않은 금액의 상금은 물론 국가급의 명예도 얻게 될 것이다.

강나래는 당장이라도 집으로 돌아가 남편에게 그 희소식을 전하고 싶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강나래는 상금으로 남편에게 어떤 선물을 할지 결정까지 마쳐 두었다. 조금 더 귀한 선물로 준비해야 성우테크의 대표인 심인혁의 신분에 걸맞을 것이다.

심인혁이 말을 이었다.

"서연이처럼 똑똑하고 빛이 나는 여자는 번잡하기 그지없는 결혼생활에 묶여 살아서는 안 돼. 마음이 아파서 그 모습을 지켜볼 자신이 없어."

사랑하는 여자와 사랑하지 않는 여자를 대하는 태도가 이토록 분명할 줄이야. 가슴이 아려왔다.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씁쓸함이 입가에 맴돌았다.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자 강나래는 몸을 돌려 구석에 숨어버렸다.

그들의 기척이 멀어지고 나서야 강나래는 천천히 집으로 들어갔다. 탁자 위는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

심인혁은 강나래를 아내가 아닌 도우미라 여기고 있었다.

강나래는 청소를 하고 싶지 않았다. 온몸에 힘이 빠져 그저 자고 싶을 뿐이었다.

침대에 누웠지만 잠이 오지 않았다. 지난날들이 자꾸만 눈앞에 떠올랐다.

처음 심인혁을 만났을 때, 그는 비를 맞고 있었고 그녀에게는 마침 우산이 있었다.

다시 심인혁을 만났을 때, 그녀는 차를 타기 위해 급히 달려가고 있었고 그는 마침 차를 타고 그곳을 지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또 다음, 그들은 자꾸만 우연히 마주쳤다.

은사님이 돌아가셨을 때, 강나래의 곁을 지킨 사람은 심인혁이었다.

보육원으로 인사를 갔을 때도 심인혁이 함께였다.

프로젝트가 멈추고 직업을 잃었을 때, 심인혁은 괜찮다고 강나래를 안아주며 그녀에게 청혼했다.

월급을 고작 150만 원밖에 받지 못하는 말단 직원이 되었을 때, 심인혁은 웃으며 강나래의 머리를 쓰다듬었고 그것만으로도 아주 대단한 것이라 말해주었다.

새벽 두세 시가 되어서야 강나래는 흐리멍덩하게 잠에 들었다.

여섯 시, 늘 그렇듯 남편에게 아침밥을 해주기 위해 정확한 시간에 눈이 떠졌다.

강나래의 두 눈엔 온통 피곤으로 가득 차 있었다.

옆자리는 비어있었고 객실의 이불도 누군가 사용했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어젯밤 심인혁은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던 것이다.

생각에 잠겨 있는데 입구에서 도어락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강나래는 고개를 돌렸다.

집으로 돌아온 심인혁은 자연스럽게 그녀에게 외투를 건네고 허리를 숙이며 강나래를 안으려 했다. 그러다 갑자기 무슨 생각이라도 난 건지 갑작스럽게 움직임을 멈추었다.

"어젯밤 오랜 친구들과 식사를 하느라 온통 담배와 술 냄새가 가득 배었어. 그러니 포옹은 생략하자."

회식을 마치고 돌아온 심인혁은 항상 강나래를 꼭 안아주었다. 그래야 집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이 실감이 난다면서 말이다.

그제야 강나래는 알아차렸다. 심인혁과의 포옹이 보름 전이 마지막이었다는 사실을 말이다.

보름 동안 두 사람은 같은 침대를 쓰고 있었지만 각자 떨어져 잠을 청했다. 강나래는 그의 회사일이 너무 고단해 포옹해 줄 기력마저 없는 거라 생각했다.

우연찮게도 보름 전 임서연이 다시 돌아왔다.

이미 낌새가 보였던 것이다.

강나래는 고개를 숙였다. 긴 속눈썹이 그녀의 슬픔을 가려주었다.

소파에 앉은 심인혁은 어지럽기 그지없는 탁자를 보며 말했다.

"왜 치우지 않은 거야?"

"몸이 좋지 않아서 오자마자 잠들었어."

희미하게 악취가 풍겨왔다. 깨끗한 것을 좋아하는 강나래는 허리를 숙여 탁자를 정리하며 말했다.

"치우고 나면 아침을 할 시간이 없을 것 같으니 배달시켜 먹어."

갑자기 심인혁은 강나래가 어딘가 이상하다 생각했다.

결혼 4년 동안, 출장을 간 날을 제외하면 강나래는 매일 그를 위해 음식을 만들어 주었다. 국 하나에 요리 네 가지, 매주 다른 메뉴들이었다.

'오늘 아침엔 왜 이러는 거지?'

"어제 집으로 돌아오지 않은 것 때문에 화난 거야?"

남자는 갑자기 진지하게 그녀를 불렀다.

"여보."

여보라는 호칭에 강나래의 마음은 더욱 괴로워졌다.

심인혁은 다정하고 말재주가 좋은 사람이었다. 두 사람이 갓 사귀기 시작했을 때 남자는 갑자기 강나래의 귓가에 '여보'라고 속삭였다. 부끄러움에 귓불이 달아오른 그녀는 결혼 전까진 함부로 호칭을 고치면 안 된다 선을 그었다.

심인혁은 강나래의 뜻에 따라 결혼식을 올린 그날 밤이 되어서야 호칭을 고쳤다.

그 뒤로 항상 여보라 불렀다.

"됐어, 여보 화내지 마. 봐, 나 당신 말을 아주 잘 들었어. 친한 친구들과의 식사 자리에서도 술을 마시지 않았다고."

심인혁은 강나래의 뒤통수를 쓰다듬었다.

"하기 싫으면 하지 마. 나 샤워하고 올게."

강나래는 가볍게 '응'하고 대답하고는 그를 쳐다보지 않았다.

미간을 찌푸린 심인혁은 의아함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여보, 당신 오늘 좀 이상해."

"제대로 자지 못해서 그런가 봐."

강나래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올리며 얼른 샤워하러 가라고 그를 재촉했다. 심인혁은 갑자기 스카프 하나를 꺼내 들었다. 로고를 보니 꽤 값비싼 브랜드의 것이었다.

"어제 지나가다가 봤는데 당신 생각이 나서 샀어."

말을 마친 남자는 욕실로 들어갔다.

잠시 스카프를 만지작거리며 멍하니 있던 강나래는 스카프를 파란색의 에코백에 넣고는 출근길에 올랐다.

'자체 개발 칩' 프로젝트는 은사님이 돌아가시는 바람에 얼마간 중단이 되었었다. 다시 프로젝트가 시작되었을 때 강나래는 프로젝트의 핵심 책임자가 되었다. 국가 기밀이었기 때문에 은사님의 아내인 오연홍은 그녀가 하성그룹의 말단 행정직에 위장 취업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심인혁은 여태 강나래가 월급 150만 원을 받는 보잘것없는 회사원이라 알고 있었다.

강나래는 매일 집을 나선 뒤 하성그룹의 동쪽 대문으로 들어갔다. 넓디넓은 과학기술원을 지나 다시 서쪽 대문을 나서면 연구소가 그녀를 위해 고용한 기사가 매일 그곳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실험실에 도착한 강나래는 하루 종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저녁이 될 무렵, 참지 못한 성 교수가 물었다.

"저녁에 임서연 씨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것 때문에 짜증이 나서 그러는 거야?"

"임서연?"

강나래가 고개를 들었다.

성 교수는 깜짝 놀라며 말을 이었다.

"그 이름을 기억하다니! 네 남편 말고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줄 알았어. 모두 만나 인사를 나누었는데 아직 두 사람만 만난 적이 없잖아. 더 이상 만남을 미룬다면 혼자 유별나 보일 텐데."

강나래는 미간을 찌푸렸다.

심인혁을 처음 만났을 때 강나래는 그가 사랑 때문에 상처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보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상대방이 누구인지는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의 상처를 헤집고 싶지 않았기에 한 번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4년 동안 심인혁 역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한 번도 그 여자를 입에 올리지 않았다.

벌써 오래전에 끝난 일이라 생각했다. 과거 없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하지만 어제 비로소 알게 되었다. 심인혁은 그 여자를 잊기는커녕 아내 몰래 돈까지 대주고 있었다.

강나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성 교수는 어쩔 수 없다는 듯 입술을 말아 물었다. 강나래가 임서연에게 큰 불만을 품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이 프로젝트는 그녀의 은사님이 심혈을 기울여 진행하던 것이었고 지금은 강나래의 심혈이 잔뜩 들어간 것이었다. 그러니 갑작스럽게 이 프로젝트에 끼어든 아무개가 불편했을 것이다. 임서연이 이 영광을 함께 누릴 수 있도록 허락한 것만으로도 대범한 처사였다.

그런 강나래에게 임서연과의 식사를 강요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닐 수가 없었다.

성 교수는 그런데도 강나래에게 귀띔했다.

"이번엔 거절하지 마. 김 어르신께서 불쾌해하실 거야."

김 어르신은 연구소 내 가장 직급이 높은 사람이자 임서연의 외할아버지였다.

강나래는 두 사람의 관계를 비서의 뒷담화를 통해 알게 되었다.

팀원들은 낙하산으로 들어온 임서연에게 불만이 많았다. 임서연의 이력은 매우 훌륭했다. 하지만 연구소 직원들 역시 그녀 못지않게 훌륭한 이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은 4년 동안 숱한 고생을 해왔다. 한두 달 뒤면 그 결과물을 세상에 공개하게 될 것이다.

그런 시점에 임서연이 전문가라는 신분으로 갑작스럽게 프로젝트에 끼어든 것이다. 연구 과정에 한 번도 참여한 적이 없으면서 명예를 함께 누리려 하다니. 논문에 제2 저자로 이름을 끼워주는 것보다도 심기를 불편하게 만드는 일이었다.

그랬기 때문에 강나래는 외부 전문가가 연구소의 중요한 구역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연구소에서 일을 마치고 나서는 곧바로 집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임서연은 한 번도 그녀를 만나본 적이 없었다.

강나래는 밖에서는 안이 보이지 않는 유리창을 통해 밖을 바라보았다.

작업복을 벗은 임서연이 갈색의 가죽 외투를 걸치더니 밤색의 머리를 찰랑이며 값비싼 흰색 악어가죽 백을 둘러메고 있었다.

오늘 아침 심인혁이 그녀에게 선물한 스카프와 같은 브랜드의 것이었다.

강나래는 저도 모르게 가방에서 스카프를 꺼냈다. 어딘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다.

마침 문을 두드리며 안으로 들어온 비서 이세희가 그 스카프를 보더니 깜짝 놀라며 말했다.

"선배, 상금으로 그 브랜드의 가방을 산 거예요?"

"아니."

강나래는 그녀를 쳐다보며 의아한 듯이 말을 이었다.

"가방 안 샀어."

이세희가 말했다.

"아... 스카프 있길래 가방 산 줄 알았죠. 보통 이 브랜드 스카프는 실적 채우기용으로 사잖아요."

"실적 채우기...?"

강나래의 심장이 욱신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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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서연이 돌아왔으니 이제 형수는 어떡해?" 집 앞, 열린 문틈 사이로 남편 심인혁과 친구의 목소리가 은밀하게 들려왔다. 퇴근한 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려던 강나래는 멈칫하고 말았다. 임서연? 보름 전 그녀의 프로젝트에 낙하산으로 합류한 전문가의 이름과 똑같았다. 절묘한 우연이었다. 방 안, 심인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형, 내가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첫사랑인 임서연을 잊지 못했잖아. 그렇게 아껴 쓰면서 매달 남몰래 7억 원을 임서연에게 보내 연구를 도왔고.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임서연은 이제 국가 기밀 프로젝트의 전문가로 특별 임명되었어. 지금 임서연을 찾아가 입찰에 관해 물어본다면 형은 성우테크 대표 자리를 완전히 꿰찰 수 있는 거야. 아무도 그 자리를 넘보지 못할 거라고." 강나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7억 원이라고? 매달 그녀에겐 70만 원밖에 주지 않는 심인혁이 다른 여자에겐 매달 7억 원을 주었다고? 하지만 방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는 너무나도 똑똑히 강나래의 귀에 꽂혔다. 심인혁 역시 반박하지 않았다. 순간 강나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심인혁은 시계를 확인했다. "서연이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됐어, 서연이가 퇴근할 시간이야. 데리러 가봐야 해. 탁자 위의 것들은 치우지 않아도 돼. 나래가 돌아와서 정리할 테니까." "형, 형수님은 정말 현모양처야. 집 안을 깔끔하게 정리할 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과 시동생까지 살뜰하게 챙기잖아. 정말 형수님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린 적 없어?" 강나래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숨을 죽였다. 심인혁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난 강나래처럼 집안일만 하면서 남편만 바라보는 현모양처는 좋아하지 않아. 서연이처럼 본인의 일에 몰두하며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어낸 빛나는 여자만 좋아하지." 그 말은 마치 칼날처럼 강나래의 가슴을 찔렀다. 강나래의 두 눈에 눈물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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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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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강나래가 예쁘고 몸매도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가끔 서로의 몸을 탐할 때면 그 역시 자제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몸을 섞는다는 생각만 하면 사랑하는 여자를 배신한다는 죄책감이 들어 참고 견뎌왔다. 하지만... 강나래는 합법적인 그의 아내였고 충분히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여자였다. 강나래는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오직 첫사랑과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남자였으니 그녀에겐 별다른 흑심을 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나래는 아주 자연스럽게 심인혁의 앞을 돌아다녔다. 그녀는 헤어드라이어를 꺼내 들었다. 심인혁은 그 자리에 서서 강나래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등을 돌린 여자는 폭포처럼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겼다. 그러자 하얗고 가느다란 목이 드러났다. 습한 공기 속에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심인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순간 뜨거운 손이 강나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나래야,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지?" 심인혁은 헤어드라이어를 빼앗아 전원을 끈 뒤 강나래를 뒤에서 안았다. 강나래는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갖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메스껍기만 할 뿐이었다. "필요 없어." 그녀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미간을 찌푸린 심인혁은 강나래의 턱과 목을 가볍게 잡았다. 부드러운 피부는 손을 떼기 싫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강나래는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즘 집안일에 회사 일까지 하느라 너무 힘들었지? 아이를 갖고, 회사 일 그만두고 앞으로 잔업주부로 살자, 어때?" 강나래는 더 이상 그에게 음식을 만들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씨 가문의 일도 제쳐두었다. 게다가 그가 알지 못하는 생각까지 하기 시작했다. 이래선 안 된다. 그는 집안일을 도맡아 줄 현모양처가 필요했고 심씨 가문 역시 부려 먹기 좋은 며느리가 필요했다. 강나래가 아이를 원한다면 아이를 가지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는 아내를 완전히 집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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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왜 이유를 묻지 않으시죠?" 강나래는 눈물을 훔쳤다. 오연홍을 소파에 앉힌 그녀는 물을 따르러 갔다. 오연홍이 대답했다. "인혁이 말로는 두 사람이 아이 때문에 다툰 뒤로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던데. 인혁이는 아직도 아이가 싫대?" 강나래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제가 싫은 거예요. 저에게 사직서를 내고 집에서 임신 준비나 하면서 가정주부로 편안히 지내라고 하더군요." "어쩜 나보다도 사상이 구시대적일 수가 있어?" 오연홍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회적 지위 좀 높아졌다고 널 얕보는 거지? 감히 너를 얕보고 있어? 프로젝트가 발표된다면 숱한 사람들이 널 만나기 위해 기를 쓸 텐데. 우리 남편의 보물단지가 그 자식 눈에는 단지 도우미와 다름없을 뿐이라니." 그 말에 강나래는 코끝이 찡해졌다. 그녀는 오연홍에게 진짜 이유를 털어놓았다. "싸움의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에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에요. 저와 결혼한 것도 그저 임서연의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결혼식 날 임서연은 돌아오지 않았죠." "누구라고?" 오연홍은 그 이름이 익숙하다 생각해 두어 번 발음한 뒤 다시 물었다.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김한수의 손녀?" "네." 강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는데?" "들었어요." 강나래는 그날 몰래 훔쳐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가 끝을 맺기도 전에 오연홍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사람을 괴롭혀도 유분수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에게 데리고 갈 테니 얼른 이혼 협의서를 작성하고 빨리 이혼해 버려!" 이혼 협의서는 아주 빨리 작성되었다. 갓 인쇄된 종이는 아직 따끈따끈했다. 서류를 받아 든 강나래는 열기에 손이 데는 것 같았다. 서류에 적힌 글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결국 서류에 사인을 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나선 뒤 강나래는 오연홍과 함께 쇼핑하며 옷을 사고 저녁 식사를 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야 그녀는 찬바람을 맞으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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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래서요? 저와 이혼하라고 할 건가요?" 강나래의 반문에 임서연은 마음이 찔렸다. 보름 동안 여러 차례 돌려가며 심인혁에게 물었지만 심인혁은 이혼에 관한 생각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심인혁은 임서연에게 예전과 다름없이 잘해주며 심지어 예전보다 더 잘해주고 있었다. 꼭 마치 그의 내연녀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임서연은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내연녀라 생각했다. 정말 따지고 본다면 그녀와 심인혁의 관계에 끼어든 사람은 강나래였다. 대학 시절 심인혁은 임서연을 무척 사랑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유학 때문에 싸웠다. 그리고 심인혁은 길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여자를 만나 그 여자와 결혼까지 했다. 임서연에게 이건 모욕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날 병원에서 강나래를 만나지 않았다면, 심인혁이 강나래를 아내라 소개하지 않았다면, 임서연은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심인혁이 어떻게 나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해? 몇 번이고 증명을 거친 뒤 심인혁이 아직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전보다 더욱 사랑하고 있었다. 임서연이 원하는 건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전부 사주었다. 임서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심인혁은 가장 빠르게 달려왔다. 지금은 대추차를 끓이는 법을 배우고 있고 임서연을 위한 요리까지 해주고 있다. 심인혁의 돈과 사랑은 전부 임서연의 것이었다. 불쌍한 강나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아내라는 명분만 가지고 있을 뿐.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도 않은 그 명분 말이다. 이제 임서연은 심인혁의 아내라는 명분을 다시 빼앗아 올 생각이었다. 임서연은 심호흡을 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곧 당신과 이혼할 거예요." "그럼 더없이 고맙겠군요." 강나래는 심인혁이 얼른 이혼 협의서에 사인하기를 바랐다. 같은 집에서 살며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건 일분일초도 견딜 수가 없었다. 강나래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임서연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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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나래 씨, 뭘 보고 있어요?" "방금 저쪽에서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음?" 서아영은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강나래가 말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어요." "엘리베이터? 저 엘리베이터 말이에요?" 서아영은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강나래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긴장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건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서아영의 사무실에 도착한 강나래는 문에 붙어 있는 HRVP라는 팻말을 보게 되었다. 인사팀 실장. 승진을 한 모양이었다. 강나래는 웃으며 말했다. "아영 씨, 축하해요." "고마워요." 서아영은 아직도 조금 전 강나래가 했던 말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꼼꼼하게 일 처리를 했으니 별다른 빈틈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강나래가 말했다. "아영 씨, 사직서를 제출하러 왔어요." "사직서요?" 서아영은 강나래가 보여 주기 식의 절차를 밟으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시간은 얼마나 필요할까요?" "규정된 절차대로 진행해 주세요." "규정된 절차대로 처리한다면 정직원은 한 달 전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해요. 하지만 인수인계를 다 마친다면 나래 씨 직급에서는 2,3일 만에 퇴사 처리를 마칠 수 있죠."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서아영은 대표님의 측근이 방으로 들어오자 얼른 공손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 비서님." "아영 씨, 대표님께서 찾으십니다." '와야 할 것이 드디어 왔구나!' 서아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올해 상반기 하성그룹에서 20억에 달하는 공금을 횡령한 사건이 터졌다. 그 사람은 고위급 인사의 친척이었다. 하여 격노한 대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회사 내의 부정당한 관계들을 엄히 조사하고 있었다. 서아영의 상사였던 사람 역시 대표님에 의해 해임이 되었다. 하여 그녀가 인사팀의 실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 권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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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강나래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 7시였다. 심인혁은 소파에 앉아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강나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인혁은 매일 임서연을 출퇴근시켜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인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요즘 내가 집에 늦게 들어온다고 탓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감히." 강나래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심인혁은 그녀에게 퇴사에 관해 물었다. "사직서 제출했어." 강나래는 물을 한 잔 따른 뒤 천천히 마시며 말했다. "퇴사 절차를 밟으려면 한 달이 걸린대." "한 달 동안이나 인수인계를 할 만큼 하는 일이 많았어? " 심인혁은 가녀린 강나래의 옆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날 속이는 건 아니겠지?" "당신이 사인까지 마쳤잖아. 내가 왜 당신을 속이겠어. 큰 회사는 원래 그래. 절차가 많고 복잡하지.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잔을 내려놓은 강나래는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그때 심인혁이 강나래의 옷자락을 잡았다. "나 배고파." 남자의 시선은 부엌으로 옮겨갔다. 강나래는 뒤돌아 심인혁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남자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예전에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심인혁이 이토록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그녀를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예전의 강나래는 오로지 심인혁을 굶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위가 건강하지 않은 그가 제때 밥을 먹지 않는다면 아프리라는 것만 중요했다. "알겠어." 대답한 강나래는 방으로 들어갔다. 심인혁은 손에 쥐고 있던 옷자락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강나래의 손목을 잡았다. 그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알겠다는 게 무슨 뜻이지?" "들었다고." 강나래는 고개를 들어 분노로 가득 찬 심인혁의 두 눈과 시선을 마주했다. 다정하기 그지없던 남편은 꼭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저녁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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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이 늦은 밤에 동파육을 어떻게 만들라고. 강나래는 임서연이 일부러 그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난 배가 고프지 않아. 둘이 먹어." 그녀 역시 모른 척을 했다. 다정하기 그지없던 심인혁의 태도가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내 말은, 동파육을 만들라는 거야. 서연이가 집으로 오면 먹을 수 있게." "심인혁, 내가 도우미야?" 그 질문을 하는 강나래의 눈빛 속에서 슬픔을 읽어 낸 심인혁의 가슴이 찌릿 아파왔다. 심인혁은 얼른 대답했다. "아니야." "응." "하지만 당신이 서연이를 다치게 했잖아. 서연이가 다 나을 때까지 당신이 책임져야 해." "말했잖아.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강나래는 그를 노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말했다. 동료 사이에도 시시비비를 제대로 따진 뒤에 잘잘못을 물어야 했다. 하물며 두 사람은 부부였다. 하지만 지금, 하루 끝에서 그녀를 품에 안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던, 가난해도 두 사람이 함께라면 행복하다던 심인혁은, 이제 강나래에게 나눠줄 인내심조차 사라진 것 같았다. 그저 이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동파육을 만들어." 한 달이 남았다. 마지막 한 달이었다. 조금만 참자. 강나래는 끊임없이 자신을 위로했다. "그래. 임서연 씨를 데리러 가. 내가 만들어 둘게." 심인혁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강나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고해." 마치 강아지를 달래는 것처럼 말이다. 강나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긴 속눈썹 아래로 요동치는 감정을 숨겨버렸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강나래는 천천히 시선을 끌어올렸다. 그녀는 한참 문을 쳐다보았다. 휴대폰을 꺼낸 강나래는 식당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동파육 하나랑 사장님이 가장 자신 있는 요리 하나 주문할게요." 심인혁과 임서연이 도착하기 전 배달 음식이 먼저 도착했다. 강나래는 배달 음식을 그릇에 옮겨 담은 뒤 쓰레기를 아래층에 버렸다.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집어넣자마자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심인혁과 임서연의 목소리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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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임서연은 기분 좋게 밥을 먹으며 강나래를 칭찬했다. "나래 씨, 음식 솜씨가 정말 좋은데요. 그래서 인혁이가 매일 칭찬했던 거였어요! 미슐랭 레스토랑의 셰프가 한 요리 못지않게 맛있는데요? 이런 나래 씨가 인혁이 곁에 있다니 너무 마음이 놓여요. 우리 건배할까요?" 임서연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스가 담긴 잔을 들었다. "그동안 인혁이를 보살펴줘서 고마워요. 인혁이의 위병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제가 외국에 있다 보니... 이런 얘기는 하지 말죠. 아무튼 고마워요." 말을 마친 그녀는 주스를 마셨다. 강나래는 임서연을 보며 물었다. "그저 건배만으로 고맙다는 인사는 끝인가요?" 멈칫하던 임서연이 웃으며 물었다. "그럼 나래 씨는 제가 감사 인사로 뭘 해주길 바라는 거죠?" 심인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웃음이 또다시 사라져 버렸다. "강나래,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린 부부야. 아내가 남편을 보살피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서연아, 나래 말은 신경 쓰지 마. 나래는 철이 없어." 심인혁 역시 주스가 담긴 잔을 들고 임서연과 잔을 부딪쳤다. 강나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자 임서연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다만 부부끼리도 이렇게 따지고 들 줄은 몰랐네." 그 말에 심인혁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심인혁은 강나래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좀 웃을 수 없어? 왜 하루 종일 불퉁한 얼굴로 있는 거야." "난 천성적으로 잘 웃지 않는 사람이야. 알고 있었잖아?" 강나래는 몸을 일으켰다. "배불러." "강나래!" 심인혁은 고개를 들고 강나래를 꾸짖었다. "왜 성질을 부리는 거야?" "인혁아, 인혁아. 그러지 마." 임서연은 심인혁을 노려보았다. "여자에게 화를 내면 안 돼. 내가 전에 말했잖아." 심인혁은 그제야 감정을 갈무리했다. "퇴사하고 집에만 있으라 했다고 걸핏하면 화를 내잖아. 도대체 그 직업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나보다 더 중요해?" 그는 점점 더 통제 불능이 되어가는 강나래에게 불만을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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