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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너무 늦은 후회: Chapter 1 - Chapter 10

30 Chapters

제1화

"임서연이 돌아왔으니 이제 형수는 어떡해?" 집 앞, 열린 문틈 사이로 남편 심인혁과 친구의 목소리가 은밀하게 들려왔다. 퇴근한 뒤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려던 강나래는 멈칫하고 말았다. 임서연? 보름 전 그녀의 프로젝트에 낙하산으로 합류한 전문가의 이름과 똑같았다. 절묘한 우연이었다. 방 안, 심인혁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형, 내가 뭐라 하는 게 아니라. 그동안 첫사랑인 임서연을 잊지 못했잖아. 그렇게 아껴 쓰면서 매달 남몰래 7억 원을 임서연에게 보내 연구를 도왔고.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임서연은 이제 국가 기밀 프로젝트의 전문가로 특별 임명되었어. 지금 임서연을 찾아가 입찰에 관해 물어본다면 형은 성우테크 대표 자리를 완전히 꿰찰 수 있는 거야. 아무도 그 자리를 넘보지 못할 거라고." 강나래는 고개를 번쩍 들어 올렸다. 그녀의 눈빛이 경악으로 물들었다. 잘못 들은 줄 알았다. 7억 원이라고? 매달 그녀에겐 70만 원밖에 주지 않는 심인혁이 다른 여자에겐 매달 7억 원을 주었다고? 하지만 방 안에서 들려오는 대화는 너무나도 똑똑히 강나래의 귀에 꽂혔다. 심인혁 역시 반박하지 않았다. 순간 강나래는 숨조차 쉴 수 없었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난 심인혁은 시계를 확인했다. "서연이를 곤란하게 만들고 싶지 않아. 됐어, 서연이가 퇴근할 시간이야. 데리러 가봐야 해. 탁자 위의 것들은 치우지 않아도 돼. 나래가 돌아와서 정리할 테니까." "형, 형수님은 정말 현모양처야. 집 안을 깔끔하게 정리할 뿐만 아니라 시부모님과 시동생까지 살뜰하게 챙기잖아. 정말 형수님에게 조금이라도 마음이 흔들린 적 없어?" 강나래는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며 숨을 죽였다. 심인혁은 덤덤하게 대답했다. "난 강나래처럼 집안일만 하면서 남편만 바라보는 현모양처는 좋아하지 않아. 서연이처럼 본인의 일에 몰두하며 자기 분야에서 성공을 이루어낸 빛나는 여자만 좋아하지." 그 말은 마치 칼날처럼 강나래의 가슴을 찔렀다. 강나래의 두 눈에 눈물이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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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간만에 강나래가 연구와 남편을 제외한 일에 관심을 가지는 것을 본 이세희는 흥미진진하게 암암리에 퍼져 있는 명품관의 비밀 수칙을 늘어놓았다. 강나래는 그 이야기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온통 밤새 집으로 돌아오지 않았고 아침 갑자기 가방에서 아무런 포장도 되어 있지 않은 스카프를 꺼내주던 남편의 모습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녀는 다시 임서연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긴 듯 말했다. "임서연 씨의 가방 말이야. 새것 같은데." "당연하죠, 어제 산 거니까요." 이세희가 얼른 대답했다. 강나래는 이세희에게 시선을 돌렸다.성 교수 역시 물었다. "그걸 세희 씨가 어떻게 알아?" "점심에 마침 듣게 되었거든요. 김 교수님도 그 가방이 눈에 띄었는지 이미지 관리에 신경 써야 했대요. 임서연 씨는 어제 친구가 선물해 준 거라면서 선물을 해준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면 안 된다고 대답했고요." 이세희는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수억 원이 넘어가는 가방이잖아요. 왜 저에겐 그런 친구가 없는 걸까요!" 강나래는 나지막이 '친구'라는 단어를 읊조렸다. 오늘 아침 심인혁 역시 그런 말을 했다. 그녀는 질문을 이었다. "저 가방을 살 때 스카프도 실적에 포함돼?" 이세희가 말했다. "당연하죠. 더 많은 걸 사야 하거든요. 스카프는 그저 그중 하나일 뿐. 근데 그런 스카프도 단독으로 팔기는 하죠." 강나래의 마음은 이세희의 말과 함께 오르락내리락 파동을 쳤다. "성 교수님, 오늘 회식은 못 가겠네요. 집에 일이 좀 있어서요." 성 교수는 하려던 말을 다시 삼키며 물었다. "큰 일이에요?" 강나래가 대답했다. "네." 곧 하늘이 무너질 만큼. 성 교수가 그녀를 위로했다. "그렇다면 임서연 씨에겐 내가 전달할게요. 나래 씨 오롯이 집안일에만 신경 써요. 이제 프로젝트도 막바지라 예전처럼 바쁘지도 않으니 매일 연구소에 나오지 않아도 돼요. 중요한 일이 생기면 연락할 테니까." "그래요." 강나래는 마스크를 낀 뒤 홀로 연구소를 떠났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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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이름이 겹쳤을 뿐이야. 내 아내는 그저 평범한 직장인이야." 심인혁은 덤덤하게 설명했다. "하지만 팀원과 이름이 겹친다니 그것 역시 나래의 영광이네." "영광이지." 임서연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우리 팀의 강나래 씨는 아주 대단한 사람이거든." 너무 대단해서 짜증이 나는 사람이었다. 프로젝트의 책임자라는 신분으로 임서연을 배척할 뿐만 아니라 핵심 영역에는 참여하지도 못하게 막고 있었다. 역시, 강나래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은 혐오스러운 존재였다. 강나래는 임서연을 빤히 보며 물었다. "임서연 씨, 어떤 프로젝트를 이끌고 계시죠?" 임서연이 대답하기도 전에 심인혁이 투덜거렸다. "잘 모르면 물어보지도 마. 국가 기밀 프로젝트라 대외적으로는 비밀이니까." "국가 기밀이라면서 왜 당신이 그걸 알고 있는 거지?" 강나래는 냉담하게 반문을 던졌다. 임서연은 움찔 놀라고 말았다. 강나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변했다. 임서연은 고개를 돌려 심인혁을 보며 말했다. "네 아내, 꽤 재밌는 사람이구나?" 미간을 찌푸린 심인혁은 또다시 강나래의 체면을 구겨버렸다. "말해도 모를 거라 했잖아. 왜 계속 물어보는 거야?" 강나래는 코끝이 시큰거렸다. 심인혁은 강나래를 쳐다보지 않았다. 그의 시선은 온통 임서연에게 향해 있었다. 우쭐하며 미소를 지은 임서연은 이내 억지웃음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 "인혁아, 난 결혼했다는 네 말이... 농담인 줄 알았어." 마지막 구절은 몹시 쓸쓸하게 들렸다. 심인혁의 표정이 다시 한번 굳었다. 두 사람은 묵묵히 서로를 바라보았다. 주변의 분위기 역시 어둡게 가라앉았다. 심인혁이 말했다."농담이 아니었어." 또다시 침묵이 이어졌다. 임서연은 애매모호한 대답을 했다. "나 조금 후회가 돼." 강나래는 임서연에게 닿아 있는 심인혁의 손이 살짝 떨리고 있음을 보아냈다. "오해하지 말아요. 제 뜻은, 인혁이가 결혼한다고 전화를 걸었을 때 외국에 있었던 탓에 두 사람의 결혼식에 참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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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강나래가 예쁘고 몸매도 좋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다. 가끔 서로의 몸을 탐할 때면 그 역시 자제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몸을 섞는다는 생각만 하면 사랑하는 여자를 배신한다는 죄책감이 들어 참고 견뎌왔다. 하지만... 강나래는 합법적인 그의 아내였고 충분히 욕망을 불러일으키는 여자였다. 강나래는 그가 자신을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오직 첫사랑과 아이를 낳고 싶어 하는 남자였으니 그녀에겐 별다른 흑심을 품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강나래는 아주 자연스럽게 심인혁의 앞을 돌아다녔다. 그녀는 헤어드라이어를 꺼내 들었다. 심인혁은 그 자리에 서서 강나래를 따라 시선을 옮겼다. 등을 돌린 여자는 폭포처럼 긴 머리카락을 한쪽으로 넘겼다. 그러자 하얗고 가느다란 목이 드러났다. 습한 공기 속에 향기가 퍼지고 있었다. 심인혁은 침을 꿀꺽 삼켰다. 순간 뜨거운 손이 강나래의 허리를 감싸안았다. "나래야, 아이를 갖고 싶다고 했지?" 심인혁은 헤어드라이어를 빼앗아 전원을 끈 뒤 강나래를 뒤에서 안았다. 강나래는 사랑하는 사람과 아이를 갖기를 간절히 바라왔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메스껍기만 할 뿐이었다. "필요 없어." 그녀는 나지막이 대답했다. 미간을 찌푸린 심인혁은 강나래의 턱과 목을 가볍게 잡았다. 부드러운 피부는 손을 떼기 싫을 만큼 매혹적이었다. 그의 몸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강나래는 깜짝 놀라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요즘 집안일에 회사 일까지 하느라 너무 힘들었지? 아이를 갖고, 회사 일 그만두고 앞으로 잔업주부로 살자, 어때?" 강나래는 더 이상 그에게 음식을 만들어주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씨 가문의 일도 제쳐두었다. 게다가 그가 알지 못하는 생각까지 하기 시작했다. 이래선 안 된다. 그는 집안일을 도맡아 줄 현모양처가 필요했고 심씨 가문 역시 부려 먹기 좋은 며느리가 필요했다. 강나래가 아이를 원한다면 아이를 가지는 것도 큰 문제는 아니었다. 게다가 아이는 아내를 완전히 집에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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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왜 이유를 묻지 않으시죠?" 강나래는 눈물을 훔쳤다. 오연홍을 소파에 앉힌 그녀는 물을 따르러 갔다. 오연홍이 대답했다. "인혁이 말로는 두 사람이 아이 때문에 다툰 뒤로 밤새 돌아오지 않았다고 하던데. 인혁이는 아직도 아이가 싫대?" 강나래는 고개를 저었다. "이번엔 제가 싫은 거예요. 저에게 사직서를 내고 집에서 임신 준비나 하면서 가정주부로 편안히 지내라고 하더군요." "어쩜 나보다도 사상이 구시대적일 수가 있어?" 오연홍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 "사회적 지위 좀 높아졌다고 널 얕보는 거지? 감히 너를 얕보고 있어? 프로젝트가 발표된다면 숱한 사람들이 널 만나기 위해 기를 쓸 텐데. 우리 남편의 보물단지가 그 자식 눈에는 단지 도우미와 다름없을 뿐이라니." 그 말에 강나래는 코끝이 찡해졌다. 그녀는 오연홍에게 진짜 이유를 털어놓았다. "싸움의 진짜 이유는 그게 아니에요. 그가 사랑하는 사람은 제가 아니에요. 저와 결혼한 것도 그저 임서연의 질투를 유발하기 위해서였어요. 하지만 아쉽게도 결혼식 날 임서연은 돌아오지 않았죠." "누구라고?" 오연홍은 그 이름이 익숙하다 생각해 두어 번 발음한 뒤 다시 물었다. "외국으로 유학을 갔다는 김한수의 손녀?" "네." 강나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사실을 어떻게 알게 됐는데?" "들었어요." 강나래는 그날 몰래 훔쳐 들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야기가 끝을 맺기도 전에 오연홍은 그녀의 손을 잡고 밖으로 이끌었다. "사람을 괴롭혀도 유분수지. 국내에서 가장 유명한 변호사에게 데리고 갈 테니 얼른 이혼 협의서를 작성하고 빨리 이혼해 버려!" 이혼 협의서는 아주 빨리 작성되었다. 갓 인쇄된 종이는 아직 따끈따끈했다. 서류를 받아 든 강나래는 열기에 손이 데는 것 같았다. 서류에 적힌 글자를 멍하니 바라보던 그녀는 결국 서류에 사인을 했다. 변호사 사무실을 나선 뒤 강나래는 오연홍과 함께 쇼핑하며 옷을 사고 저녁 식사를 했다. 날이 완전히 어두워지고 나서야 그녀는 찬바람을 맞으며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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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그래서요? 저와 이혼하라고 할 건가요?" 강나래의 반문에 임서연은 마음이 찔렸다. 보름 동안 여러 차례 돌려가며 심인혁에게 물었지만 심인혁은 이혼에 관한 생각을 내비친 적이 없었다. 하지만 심인혁은 임서연에게 예전과 다름없이 잘해주며 심지어 예전보다 더 잘해주고 있었다. 꼭 마치 그의 내연녀라도 된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임서연은 사랑받지 못하는 사람이야말로 내연녀라 생각했다. 정말 따지고 본다면 그녀와 심인혁의 관계에 끼어든 사람은 강나래였다. 대학 시절 심인혁은 임서연을 무척 사랑했다. 모두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유학 때문에 싸웠다. 그리고 심인혁은 길에서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여자를 만나 그 여자와 결혼까지 했다. 임서연에게 이건 모욕이나 다름이 없었다. 그날 병원에서 강나래를 만나지 않았다면, 심인혁이 강나래를 아내라 소개하지 않았다면, 임서연은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 심인혁이 어떻게 나 아닌 다른 여자와 결혼해? 몇 번이고 증명을 거친 뒤 심인혁이 아직 그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었다. 심지어 전보다 더욱 사랑하고 있었다. 임서연이 원하는 건 아무리 비싼 것이라도 전부 사주었다. 임서연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긴다면 심인혁은 가장 빠르게 달려왔다. 지금은 대추차를 끓이는 법을 배우고 있고 임서연을 위한 요리까지 해주고 있다. 심인혁의 돈과 사랑은 전부 임서연의 것이었다. 불쌍한 강나래는 아무것도 가지지 못했다. 아내라는 명분만 가지고 있을 뿐. 아는 사람이 별로 많지도 않은 그 명분 말이다. 이제 임서연은 심인혁의 아내라는 명분을 다시 빼앗아 올 생각이었다. 임서연은 심호흡을 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곧 당신과 이혼할 거예요." "그럼 더없이 고맙겠군요." 강나래는 심인혁이 얼른 이혼 협의서에 사인하기를 바랐다. 같은 집에서 살며 애틋한 사랑을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는 건 일분일초도 견딜 수가 없었다. 강나래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임서연은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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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나래 씨, 뭘 보고 있어요?" "방금 저쪽에서 누군가 우리를 보고 있는 것 같아서요." "음?" 서아영은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강나래가 말했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어요." "엘리베이터? 저 엘리베이터 말이에요?" 서아영은 손가락으로 엘리베이터가 있는 곳을 가리켰다. 강나래가 긍정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이자 그녀는 긴장하며 침을 꼴깍 삼켰다. 그건 대표님 전용 엘리베이터였다! 서아영의 사무실에 도착한 강나래는 문에 붙어 있는 HRVP라는 팻말을 보게 되었다. 인사팀 실장. 승진을 한 모양이었다. 강나래는 웃으며 말했다. "아영 씨, 축하해요." "고마워요." 서아영은 아직도 조금 전 강나래가 했던 말 때문에 심장이 두근거렸다. 다행히 꼼꼼하게 일 처리를 했으니 별다른 빈틈은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사무실에 들어오자마자 강나래가 말했다. "아영 씨, 사직서를 제출하러 왔어요." "사직서요?" 서아영은 강나래가 보여 주기 식의 절차를 밟으려 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녀의 의견을 물었다. "시간은 얼마나 필요할까요?" "규정된 절차대로 진행해 주세요." "규정된 절차대로 처리한다면 정직원은 한 달 전에 사직서를 제출해야 해요. 하지만 인수인계를 다 마친다면 나래 씨 직급에서는 2,3일 만에 퇴사 처리를 마칠 수 있죠." 똑똑-- 누군가 문을 두드렸다. "들어오세요." 서아영은 대표님의 측근이 방으로 들어오자 얼른 공손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주 비서님." "아영 씨, 대표님께서 찾으십니다." '와야 할 것이 드디어 왔구나!' 서아영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올해 상반기 하성그룹에서 20억에 달하는 공금을 횡령한 사건이 터졌다. 그 사람은 고위급 인사의 친척이었다. 하여 격노한 대표는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회사 내의 부정당한 관계들을 엄히 조사하고 있었다. 서아영의 상사였던 사람 역시 대표님에 의해 해임이 되었다. 하여 그녀가 인사팀의 실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이다. 아직 권력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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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강나래가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저녁 7시였다. 심인혁은 소파에 앉아 그윽하게 그녀를 바라보았다. "왜 이렇게 늦게 들어와?" "왜 이렇게 일찍 들어왔어?" 이상하다고 느끼는 것은 강나래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인혁은 매일 임서연을 출퇴근시켜 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심인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요즘 내가 집에 늦게 들어온다고 탓하는 거야?" "내가 어떻게 감히." 강나래는 가방을 내려놓았다. 심인혁은 그녀에게 퇴사에 관해 물었다. "사직서 제출했어." 강나래는 물을 한 잔 따른 뒤 천천히 마시며 말했다. "퇴사 절차를 밟으려면 한 달이 걸린대." "한 달 동안이나 인수인계를 할 만큼 하는 일이 많았어? " 심인혁은 가녀린 강나래의 옆모습을 보며 미간을 찌푸렸다. "날 속이는 건 아니겠지?" "당신이 사인까지 마쳤잖아. 내가 왜 당신을 속이겠어. 큰 회사는 원래 그래. 절차가 많고 복잡하지. 나도 어쩔 수 없는 일이야." 잔을 내려놓은 강나래는 방으로 들어가기 위해 등을 돌렸다. 그때 심인혁이 강나래의 옷자락을 잡았다. "나 배고파." 남자의 시선은 부엌으로 옮겨갔다. 강나래는 뒤돌아 심인혁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남자의 얼굴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예전에는 왜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심인혁이 이토록 거들먹거리는 태도로 그녀를 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예전의 강나래는 오로지 심인혁을 굶겨서는 안 된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다. 위가 건강하지 않은 그가 제때 밥을 먹지 않는다면 아프리라는 것만 중요했다. "알겠어." 대답한 강나래는 방으로 들어갔다. 심인혁은 손에 쥐고 있던 옷자락이 스르르 빠져나가는 것을 보며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성큼성큼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는 강나래의 손목을 잡았다. 그가 불만스럽게 말했다. "알겠다는 게 무슨 뜻이지?" "들었다고." 강나래는 고개를 들어 분노로 가득 찬 심인혁의 두 눈과 시선을 마주했다. 다정하기 그지없던 남편은 꼭 마치 한여름 밤의 꿈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저녁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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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이 늦은 밤에 동파육을 어떻게 만들라고. 강나래는 임서연이 일부러 그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난 배가 고프지 않아. 둘이 먹어." 그녀 역시 모른 척을 했다. 다정하기 그지없던 심인혁의 태도가 순식간에 변해버렸다. "내 말은, 동파육을 만들라는 거야. 서연이가 집으로 오면 먹을 수 있게." "심인혁, 내가 도우미야?" 그 질문을 하는 강나래의 눈빛 속에서 슬픔을 읽어 낸 심인혁의 가슴이 찌릿 아파왔다. 심인혁은 얼른 대답했다. "아니야." "응." "하지만 당신이 서연이를 다치게 했잖아. 서연이가 다 나을 때까지 당신이 책임져야 해." "말했잖아. 내가 그런 게 아니라고." 강나래는 그를 노려보며 한 글자 한 글자 힘을 주어 말했다. 동료 사이에도 시시비비를 제대로 따진 뒤에 잘잘못을 물어야 했다. 하물며 두 사람은 부부였다. 하지만 지금, 하루 끝에서 그녀를 품에 안고 아름다운 미래를 그리던, 가난해도 두 사람이 함께라면 행복하다던 심인혁은, 이제 강나래에게 나눠줄 인내심조차 사라진 것 같았다. 그저 이 말만 반복할 뿐이었다. "동파육을 만들어." 한 달이 남았다. 마지막 한 달이었다. 조금만 참자. 강나래는 끊임없이 자신을 위로했다. "그래. 임서연 씨를 데리러 가. 내가 만들어 둘게." 심인혁은 그제야 만족스러운 듯 강나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수고해." 마치 강아지를 달래는 것처럼 말이다. 강나래는 시선을 아래로 내리고 긴 속눈썹 아래로 요동치는 감정을 숨겨버렸다. 문이 닫히고 나서야 강나래는 천천히 시선을 끌어올렸다. 그녀는 한참 문을 쳐다보았다. 휴대폰을 꺼낸 강나래는 식당으로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동파육 하나랑 사장님이 가장 자신 있는 요리 하나 주문할게요." 심인혁과 임서연이 도착하기 전 배달 음식이 먼저 도착했다. 강나래는 배달 음식을 그릇에 옮겨 담은 뒤 쓰레기를 아래층에 버렸다. 쓰레기통에 쓰레기를 집어넣자마자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는 심인혁과 임서연의 목소리가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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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임서연은 기분 좋게 밥을 먹으며 강나래를 칭찬했다. "나래 씨, 음식 솜씨가 정말 좋은데요. 그래서 인혁이가 매일 칭찬했던 거였어요! 미슐랭 레스토랑의 셰프가 한 요리 못지않게 맛있는데요? 이런 나래 씨가 인혁이 곁에 있다니 너무 마음이 놓여요. 우리 건배할까요?" 임서연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주스가 담긴 잔을 들었다. "그동안 인혁이를 보살펴줘서 고마워요. 인혁이의 위병은 진작에 알고 있었지만 제가 외국에 있다 보니... 이런 얘기는 하지 말죠. 아무튼 고마워요." 말을 마친 그녀는 주스를 마셨다. 강나래는 임서연을 보며 물었다. "그저 건배만으로 고맙다는 인사는 끝인가요?" 멈칫하던 임서연이 웃으며 물었다. "그럼 나래 씨는 제가 감사 인사로 뭘 해주길 바라는 거죠?" 심인혁은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웃음이 또다시 사라져 버렸다. "강나래, 그게 무슨 뜻이야? 우린 부부야. 아내가 남편을 보살피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 서연아, 나래 말은 신경 쓰지 마. 나래는 철이 없어." 심인혁 역시 주스가 담긴 잔을 들고 임서연과 잔을 부딪쳤다. 강나래의 표정이 점점 어두워지자 임서연이 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괜찮아. 다만 부부끼리도 이렇게 따지고 들 줄은 몰랐네." 그 말에 심인혁의 표정이 다시 일그러졌다. 심인혁은 강나래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좀 웃을 수 없어? 왜 하루 종일 불퉁한 얼굴로 있는 거야." "난 천성적으로 잘 웃지 않는 사람이야. 알고 있었잖아?" 강나래는 몸을 일으켰다. "배불러." "강나래!" 심인혁은 고개를 들고 강나래를 꾸짖었다. "왜 성질을 부리는 거야?" "인혁아, 인혁아. 그러지 마." 임서연은 심인혁을 노려보았다. "여자에게 화를 내면 안 돼. 내가 전에 말했잖아." 심인혁은 그제야 감정을 갈무리했다. "퇴사하고 집에만 있으라 했다고 걸핏하면 화를 내잖아. 도대체 그 직업이 뭐 그리 중요하다고. 나보다 더 중요해?" 그는 점점 더 통제 불능이 되어가는 강나래에게 불만을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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