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281 - Chapitre 289

289

제281화

“몸에 태어날 때부터 있던 모반 같은 건 없었습니까? 알아볼 만한 물건이라도요.”백정란은 질문을 받자 속이 뜨끔했다.온통 심건훈 생각뿐이었는데, 자신의 딸을 직접 돌봤을 리 없었다. 백정란에게 육아란 여자를 늙게 만드는 일이었다. 아이를 돌보느라 지친 얼굴을 심건훈에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딸이 태어난 뒤에도 기분이 좋을 때만 잠깐씩 어르곤 했다. 아기가 울기 시작하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하면, 곧바로 가사 도우미 주영래에게 떠넘겼다. 백정란은 돌아서서 값비싼 핸드크림과 얼굴에 바를 크림을 챙겨 발랐다.기억을 떠올린 백정란이 정재를 바라봤다. 눈에 복잡한 감정이 스쳤다.직접 돌본 적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정재가 태어난 첫해에는 백정란도 손수 아들을 돌봤다. 첫아들이었다. 눈처럼 희고 보드라운 작은 아기를 보고 있으면, 짧게나마 모성애가 일기도 했다. 밤잠을 설쳐 가며 한밤중에 일어나서 젖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던 고된 날들도 있었다.하지만 그 뒤로 심건훈이 백정란을 찾았다. 몰래 만날 시간을 내야 했기에, 정재를 돌보는 일은 차츰 뒷전으로 밀렸다.한 번은 정재를 침대에 내버려 둔 채 심건훈과 애틋한 마음을 나누고 있었다.그런데 정재가 새까만 눈으로 빤히 바라보자 마음이 켕겼다. 백정란은 돌도 지나지 않은 정재의 머리에 겉옷을 덮어 버렸다. 눈에 안 보이면 신경도 덜 쓰일 것 같아서였다.그대로 세 시간이 지났다.어린 아기는 그동안 소리 한 번 내지 않았다.심건민이 갑자기 집에 돌아와서 아들을 보겠다고 하지 않았다면 어찌 됐을까?백정란이 그제야 정재를 안아 들었을 때는, 이미 숨이 막혀서 호흡이 가늘어진 뒤였다.비슷한 일은 그 뒤로도 몇 번이나 더 있었다.정재는 점점 더 싸늘한 눈으로 백정란을 바라봤고, 전혀 다가오려고 하지 않았다. 고작 한 살짜리 아기였다. 아무것도 모를 나이였는데도, 백정란은 그때부터 정재의 눈빛이 무서웠다.그 뒤에도 정재가 울고 보채는 바람에, 심건훈과의 관계를 심명산이 차츰 의심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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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2화

정재의 손이 허공에서 굳어지면서 표정은 더없이 험악하게 가라앉았다.정재가 어머니와 한 차를 타고 올 리는 없었다. 그래서 차 두 대가 함께 움직였다.조금 전 차에 오르려 할 때, 백정란은 딸과 회포를 풀어야겠다며 주예를 붙잡고 기어이 함께 타려고 했다.정재 쪽으로 돌아서서는 다짜고짜 욕설을 퍼부었다.“이 못된 놈, 재수 없는 놈. 다 너 때문이야. 우리 가족이 이렇게 오랫동안 생이별한 게 누구 때문인데!” “네 아비가 일찍 죽은 것도 당연하고, 네 할아버지가 병원에서 큰 병을 앓는 것도 당연해!”모진 말들이 날카로운 바늘처럼 정재의 가슴을 찔렀다.그런데도 정재는 말 한마디 없이 잠잠했다.백정란은 심건훈에게만큼은 한없이 다정하고 애틋했다. 하지만 정재 앞에서는 번번이 사나운 성정을 억누르지 못하고 거친 말을 쏟아 냈다.지금까지 풍족한 생활을 누리며 건강하고 무사하게 살아 있는 이유는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정재가 백정란에게 아직 얼마간의 관용과 인내를 베풀고 있기 때문이었다.주예는 백정란이 그렇게 정재를 몰아세우는 모습을 처음 봤다. 정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주예의 가슴이 덜컥 조여들면서 촘촘한 통증이 번져 갔다. 주예의 표정이 굳어지면서 백정란에게 잡혀 있던 손을 단번에 빼냈다. 그녀의 눈빛은 날카로웠다.“여사님은 정재 오빠를 모욕할 자격이 없으세요. 정재 오빠는 불행을 몰고 오는 사람이 아니에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이건 알아요.”“여사님이 사랑하지 않으셔도 정재 오빠를 사랑하는 사람은 있어요.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니까요!”백정란의 얼굴이 붉어졌다가 곧바로 하얗게 질렸다.반명에 정재의 눈에 깔려 있던 어둠은 단번에 걷혔다.주예는 아무 망설임도 없이 곧바로 정재의 편을 든 것이다.차에 오른 두 사람은 모두 말이 없었다. 저마다 마음에 담아 둔 일이 있었다.진석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태연하게 운전했다. 하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었다. ‘남매만은 아니게 해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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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3화

전화는 금세 연결됐다. 낮고도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주예야, 드디어 나한테 연락했구나.]주예가 드디어 직접 연락했다는 사실에 목소리부터 들떠 있었다.[무슨 일이야? 내 생각이 났어?]주예는 그 말을 흘려듣고 곧장 물었다.“지난번에 내 부모님 얘기했잖아. 이제 말해 줄 수 있어?”전화 너머에서 난처한 웃음이 흘렀다.[지금 너 어디야? 내가 갈게. 일단 얼굴부터 보면 안 될까?]진후가 여전히 한마디도 흘리지 않자, 주예는 떠보는 수밖에 없었다.“나한테... 친오빠가 있어?”전화 너머가 오랫동안 조용했다. 진후는 뜻밖에도 아니라고 하지 않았다.그 침묵에 정재와 주예는 다시 가슴이 조마조마해졌다.“나 다 알았어. 당신도 계속 숨길 거야?”주예가 거듭 몰아붙였다.하지만 진후는 떠보는 말에 넘어가지 않았다.[떠보지 마. 알고 싶으면 나 보러 와.]그러면서 목소리를 낮췄다.[걱정하지 마. 너 싫다는 일 억지로 안 시켜. 나한테 너랑 함께 있을 기회만 한번 줬으면 해.]심씨 본가에서는 일행이 서둘러 나간 뒤 가사 도우미들이 식탁을 치우고 있었다. 그중 한 명이 일행이 떠난 쪽을 계속 바라봤다. 불안해하며 일하다가 그만 금테를 두른 도자기 그릇 하나를 깨뜨렸다.“조심해.”집사가 때맞춰 주의를 줬다.“네.”가사도우미는 잔뜩 긴장한 채 다시 눈앞의 일에 집중했다. 그래도 불안한 기색은 가시지 않았다....병원에서는 정재가 온다는 연락을 받고 미리 최상층의 사람들을 비워 둔 상태였다.의사가 곧바로 두 사람의 피를 뽑아서 유전자 검사를 진행했다. 백정란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정재는 직접 지켜보며 수를 쓸 틈을 조금도 주지 않았다.정재는 주예의 피를 더 뽑아서 어디가 아픈지 알아보라고 의사에게 따로 일렀다.검진 결과를 물을 때마다 주예가 뭔가 말하려다 삼키던 표정이 정재의 마음에 걸렸다. 도무지 안심할 수가 없었다.이번 기회에 주예가 뭘 숨기고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혈액으로 확인할 수 없다면, 그 뒤에는 다른 검사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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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4화

정재는 꼼꼼하게 살폈다. 백혈구 수치가 조금 높기는 했지만 정상 범위 안이었다. 수치가 높아지는 원인도 다양했다. 염증 때문일 수도, 피로 때문일 수도 있었다.“알겠습니다.”정재는 고개만 끄덕였을 뿐 더 말하지 않았다.심씨 본가로 돌아왔을 때, 정재는 멀리서 가사도우미 주영래가 딸과 또 뭔가를 두고 다투는 모습을 봤다. 하지만 힐끗 보기만 할 뿐, 이내 시선을 거뒀다.주영래는 딸과 늘 사이가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정재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관심을 둘 이유도 없었다.정재 일행의 차들을 보자, 주영래는 급히 딸을 옆으로 잡아당겼다. 딸의 모습을 가리려는 듯했다.동시에 목소리를 억누르면서 으르렁거렸다. 말 한마디 한마디에 혐오가 배어 있었다.“뭘 하러 또 왔어? 이쪽에 자꾸 들락거리지 말랬지!”딸은 20대였다. 하얀 면 원피스를 입고 숱이 많은 머리를 길게 풀어 내리고 있었다. 주영래는 딸의 청초한 얼굴을 보고도 어머니다운 다정함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오히려 머리채를 덥석 잡았다. 거친 손이 쇠집게처럼 머리카락을 움켜쥐고 당기자 딸이 아파했다. 주영래는 욕설까지 퍼부었다.“허구한 날 어디다 꼬리 치려고 이따위로 입고 다녀? 천한 년이! 머리 묶으랬지. 풀고 다니는 꼴이 그게 뭐야?” “네 엄마는 가사 도우미인데, 넌 주인이라도 될 생각이야?”원피스까지 찢어 버릴 듯이 거칠게 잡아당겼다.“이거 벗어! 바지로 갈아입어!”아프게 잡아당기는데도, 딸은 이런 모욕에 이미 익숙한 듯했다. 창백한 얼굴로 한 번 움츠러들더니 말했다.“엄마, 저 월급 또 받았어요. 이번 달 월급 드리려고 왔어요.”그 말에 주영래의 표정이 조금 풀어졌다.“네 동생 장가보내려면 요즘 돈 들어갈 데가 많아. 그래도 눈치는 있네!”딸이 내민 현금 다발을 받아서 세어 본 주영래가 입술을 삐죽거렸다.“왜 이것밖에 없어?”딸이 겁먹은 듯 입술을 다물었다가 답했다.“엄마, 지난주에 아파서 약 사는 데 조금 썼어요.”주영래는 바로 욕을 했다.“아프면 참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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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5화

본채에서는 한바탕 일을 겪고 돌아온 일행이 피곤한 기색으로 저마다 방에 들어가 쉬고 있었다.정재는 사람을 시켜서 백정란을 별채로 ‘모셔다’ 놓게 했다. 더 소란을 피우지 못하도록 지켜보라는 지시도 덧붙이면서....다음 날 아침, 동도 트기 전에 정재는 병원에서 걸려 온 전화를 받았다.[회장님, 유전자 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임주예 씨와 사모님은 혈연관계가 없습니다. 자세한 보고서는 잠시 뒤에 보내 드리겠습니다.]어제 주예와 나눈 추측만으로도 걱정은 많이 덜었다. 하지만 마음을 완전히 놓게 해 준 것은 오늘 나온 검사 결과였다.문을 열고 나선 정재는 마침 자기 방 문을 열려던 주예와 마주쳤다. 눈 밑에 내려앉은 푸른 다크서클이, 주예 역시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 줬다.“왜 이렇게 일찍 깼어?”정재가 주예를 바라봤다.“그냥.”주예는 길게 말하지 않았다. 눈 밑의 어두운 다크서클만 봐도 지난밤 거의 못 잤다는 것을 바로 알 수 있었다. 그래도 정재에게 얘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걱정만 더할 뿐이었다.그녀는 밤새 뒤척였다. 생각해 봤자 소용없다고, 날이 밝으면 결과가 나온다고 자신을 달래다가도 이내 스스로를 탓했다. ‘심정재를 계속 오빠로만 여겼다면 오늘 이런 지경에 이르지는 않았을 텐데.’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밤이 다 지나가 버렸다.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서 주예가 문을 열어 봤을 뿐이었다. 정재가 앞에 서 있었다. 얼굴에는 피곤함이 묻어났지만, 잘생긴 이목구비는 조금도 흐려지지 않았다.주예가 뭘 걱정하는지 알아본 정재가 한 팔로 품에 끌어당기면서 휴대폰을 꺼냈다.“이거 봐.”병원에서 보내온 검사 결과 안내였다.‘혈연관계 없음’이라는 문구를 확인한 주예가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가슴을 짓누르던 돌덩이가 마침내 사라졌다. 하지만 두 사람 모두 잠은 완전히 달아났다.정재는 이왕 이렇게 된 김에 가사 도우미에게 뒤뜰의 작은 정자로 아침을 준비하라고 했다. 갓 구운 크루아상 냄새에 달콤하고 고소한 버터 향기가 섞여 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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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6화

‘그날 밤 나랑 함께한 거, 너는 후회해?’정재가 속으로는 이어서 이렇게 묻고 있었다.주예는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았다. 그 밤이 없었다면 뱃속의 작은 생명도 없었을 것이다. 주예는 이 어린 생명이 자신의 삶에 찾아와 준 것이 고맙기만 했다.그녀가 가만히 고개를 저었다.“아니...”정재의 눈이 환하게 밝아졌다.“나도 할 말이 있어.”주예는 깊이 숨을 들이마신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엄마한테 그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냈어.”주예가 말하는 엄마는 양어머니 고경란이었다.망설이는 건 정재의 진심을 의심해서가 아니었다. 맞서야 할 상대가 고씨 가문과 서씨 집안이기 때문이었다.정재가 주예 때문에 두 거대 재벌가와 등을 돌린다면, 심씨 가문 총수로서 집안의 반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심씨 가문의 수백억 원대 이익까지 포기해야 할지도 몰랐다.“나도 그때 일을 알아보고 있어. 다 확인하고 너한테 말하려고 했는데.”불안한 주예의 표정을 알아차린 정재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주예의 눈시울이 뜨거워졌다.“당신도 알아보고 있었어?”하지만 곧 정재가 걱정돼 서둘러 말했다.“내 일은 내가 하면 돼. 얽힌 사람이 많아. 당신은 심씨 가문의 총수니까 끼어들지 않는 게 좋겠어.”“너 나를 뭘로 보는 거야? 네 양부모님이 나한테 얼마나 잘해 주셨는데. 두 분한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는 건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이야.”“그럼... 아주 힘센 사람들하고 맞서야 한다면? 심씨 가문 이익을 포기해야 한다면?”주예가 고개를 들었다. 눈에는 걱정이 가득했다.정재는 그제야 주예가 무엇을 염려하는지 알았다. 근심이 가득한 작은 얼굴을 보자 웃음이 새어 나왔다.“나를 그렇게 못 믿어? 응? 우선 진상부터 밝혀 보자. 그 뒤에 어떻게 할지는 같이 의논하고.”두 사람은 각자 알아낸 단서를 하나씩 맞춰봤다.주예는 고경란이 당시 신고했던 일의 경위를 정재에게 들려줬다. 성폭행을 저지른 사람은 서장엽이었고, 약을 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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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7화

“괜찮아. 나한테 맡겨.”정재의 눈에 차갑고 사나운 기색이 스쳤다.정재는 말로만 하지 않았다. 주예가 보는 앞에서 곧바로 전화를 걸어 지시했다. 고천운 일가에 사람을 붙여서 하루 종일 따라다니게 하라는 내용이었다. 약점이라도 잡을 수 있는지 알아볼 생각이었다.정재가 그토록 빨리 움직이는 것을 보자, 주예의 마음이 따뜻해졌다.백정란도 유전자 검사 결과가 신경이 쓰였다. 심건훈은 손발을 쓰지 못하게 된 뒤로 갈수록 의욕을 잃고 있었다. 딸을 데려다 보여 주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터였다.백정란 역시 이른 아침부터 본채에서 정재를 기다렸다.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아무도 내려오는 기척이 없었다.주예와 정재가 마침내 함께 본채로 돌아오자, 백정란이 곧장 달려가 앞을 막았다.아침 햇살 아래서 정재와 주예는 웃으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햇살 속에서 그 미소가 유난히 환해 보여서, 백정란은 눈이 따가울 지경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흐르는 분위기부터 마음에 들지 않았다.백정란을 보자, 정재는 기분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주예부터 올라가 기다리게 한 뒤, 의사가 보내 준 검사 결과를 백정란의 핸드폰으로 바로 전송했다. 목소리는 차가웠다.“직접 보세요.”백정란이 급히 핸드폰을 들고 막 도착한 검사 보고서를 열었다. ‘혈연관계 없음’이라는 문구가 눈을 찔렀다.백정란은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곧바로 발작하듯 정재에게 소리를 질렀다.“난 못 믿어! 너지? 네가 몰래 유전자 검사 결과를 바꾼 거지?”그러다 심씨 가문 총수를 상징하는 블랙골드 반지가 정재의 가운뎃손가락에 끼워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주예를 보던 다정한 눈빛도 떠올랐다.머릿속에서 뭔가가 번쩍 이어졌다.백정란은 그 생각을 놓치지 않았다. 이제 전부 알겠다는 듯 신경질적인 웃음을 터뜨렸다.“알겠다! 네가 네 친여동생을 사랑하게 된 거야! 어쩐지, 내 딸이 아니라고 그렇게 우기더라니. 남매끼리 눈이 맞다니!”“하하하하! 정재야, 역시 내가 낳은 자식다워. 너도 뼛속까지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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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8화

하지만 백정란에게 그걸 말할 수는 없었다. 주영래는 눈을 내리깔며 말했다.“사모님, 제가 소이 아가씨를 돌볼 때는 그런 모반을 본 적이 없습니다.”백정란은 실망했다. ‘정말 모반은 없었구나.’ 콧소리를 한 번 내고는 곧바로 떠났다.멀어지는 백정란을 보면서, 주영래는 이마에 밴 식은땀을 닦았다.삐빅-정재가 주예를 찾아 위층으로 올라가는데, 핸드폰 알림이 또 울렸다.정재는 미간을 찌푸렸다. 이럴 때 누가 방해하는 것이 불쾌했다. 핸드폰을 꺼내 보니 전혀 모르는 번호였다. [정재 오빠, 저 임신했어요. 오빠 아이예요.]지난번 공항에서 메시지를 보낸 번호와 같은 것 같았다.정재는 생각도 하지 않고 곧바로 그 번호를 차단했다.기분이 좋지 않아서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았다.정재가 천천히 이 층으로 올라갔다. 검은 눈동자는 바닥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깊었다. 미처 다 감추지 못한 사나운 기운이 언뜻언뜻 비쳤다.방에 들어간 정재는 등 뒤로 문을 닫았다. 두꺼운 암막 커튼까지 치려고 했다. 숨 막히는 어둠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거칠게 일어나는 감정을 혼자 가라앉힐 생각이었다.다 추스른 뒤 밖으로 나오면, 다시 고고하고 막강한 심씨 가문의 총수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그렇게 모든 준비를 끝냈을 때였다. 문득 부드럽고 따뜻한 목소리가 들렸다.“괜찮아?”정재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 뻣뻣하게 고개를 돌려 보니 주예였다. 옆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정재의 방에 와 있었다.“나가.”정재는 눈을 내리깔았다. 목소리는 심하게 갈라져 있었다. 마음속에서 모든 것을 찢어발기려는 기세로 치미는 사나움을 꾹 눌렀다. 애써 부드럽게 주예를 달랬다.“너 어젯밤에 제대로 못 잤잖아. 옆방 가서 못 잔 잠 좀 자. 내 말 들어.”평소의 주예라면 말을 듣고 쉬러 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움직이지 않았다.정재는 말을 하면서도 마디가 뚜렷할 정도로 손을 꽉 움켜쥐었다. 너무 힘을 준 탓에 손마저 거세게 떨렸다.온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나운 기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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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9화

아직 뱃속의 아이가 안정되지 않은 때였다. 함부로 굴었다가는 큰일이었다.“싫어?”정재의 움직임이 조금 굳어졌다. 검은 눈에 욕망과 사나운 기운이 뒤섞여 일렁였다.“한진후는 되고, 나는 안 돼?”“아, 그게 아니라...”주예가 서둘러 해명했다. 그러다 너무 대놓고 말한 것 같아서 허둥지둥 덧붙였다.“아무튼 안 돼...”목소리에는 울음기가 묻어났다.주예가 거절하자 정재도 조금 정신이 돌아왔다.정재는 깊이 숨을 들이마시면서 아래에 누운 주예를 바라봤다.두 뺨을 붉힌 주예는 더없이 매혹적이었다. 팔은 여전히 정재의 목에 둘려 있었다. 싫어하는 모습으로 보이지도 않았다.이성이 돌아왔어도 이미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라서 그냥 물러나기는 어려웠다. 정재가 인내심을 한계까지 끌어모으면서 물었다.“내가 안 되는 거야, 오늘이 안 되는 거야?”“오늘... 오늘은 안 돼.”주예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정재라서 안 된다는 뜻은 아니었다.정재의 기분이 또 롤러코스터를 타듯 위로 올라갔다. 다시 물었다.“내일은? 모레는 돼?”“다, 다 안 돼...”정재가 잠깐 멈칫했다가, 이내 이유를 알아냈다는 듯했다.“생리 중이야?”“응...”주예가 대답했다. ‘일단 이 핑계로 넘어가자.’‘임신한 걸 알면 정재 오빠도... 고하늘과의 정략결혼을 포기할까?’‘아니면 나는 계속 숨어 지내는 애인으로, 하늘과 정재 오빠가 행복하게 사는 걸 지켜봐야 하나?’‘정말 그렇게 된다면, 난 반드시 멀리 떠날 거야.’그렇게 생각하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여전히 정재를 믿고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정재는 주예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다. 7년 전 말 한마디 없이 버리고 떠났다고 생각했던 일마저, 나중에 알고 보니 그저 자신의 오해였다.‘조금만 더 용기를 내 보자. 정재에게 사실대로 말해 보자.’‘먼저 정재 오빠가 아이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떠보면 되지 않을까.’주예의 머릿속에는 이런저런 생각이 어지럽게 오갔다.정재가 이미 몰래 병원에 주예의 혈액을 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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