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예는 고개를 저었다.“아니.”목소리는 아주 낮았다. 마치 그 시절의 기억을 조용히 잘라 내기라도 하듯.성아는 주예를 흘끗 보더니, 불쑥 손을 들어 주예의 머리를 마구 헝클었다.“됐다. 옛날 얘긴 그만하고, 이제 새 얘기나 하자.”“새 얘기?”“내가 결심했어.” 성아는 핸들을 탁탁 두드리며 선언했다. “너한테 소개할 후보 스무 명은 내가 직접 골라 줄게.”“장난치지 마.”“걱정 마. 내가 붙여 줄 사람들은 다 엄선된 애들이야. 빵빵한 복근에 넓은 어깨, 다리도 길고 말도 잘 통하면서 정서적으로도 기대도 되는 그런 애들.”성아는 잠깐 숨을 고른 뒤, 일부러 더 세게 덧붙였다.“적어도 네 전남편, 아니 네 예비 전남편 같은 한심한 인간은 절대 없을 테니까.”주예는 결국 웃고 말았다.“아직 이혼한 건 아니니까, 예비 전남편이 맞지.”차는 그제야 단지 안으로 들어섰다.단지 안은 조경이 무척 잘되어 있었다. 주변은 조용했고, 오가는 사람도 많지 않았다. 창문 틈으로 스며드는 공기에는 나무 냄새가 엷게 배어 있었다.성아는 주예 짐을 함께 들고 위층까지 올라가 주면서 말했다.“집주인 부부가 거의 늘 외국에 있거든. 네가 그림 그리는 사람인데, 성격도 차분하고 조용히 지낸다고 얘기해 놨더니 엄청 마음에 들어 하더라.”주예가 현관문을 열어 주었다.집 안은 정갈했고 환했고 바람도 부드럽게 들었다.창밖에는 나무가 보였고, 볕이 고르게 내려앉아 있었다. 그 풍경을 마주하자, 주예는 가슴 한가운데가 조금 느슨해지는 기분을 느꼈다.‘이제야 숨이 좀 쉬어지네.’“자기야.”주예가 뒤를 돌아봤다.“왜?”“고생 끝이야, 이제.” 성아가 허리에 손을 얹고 씩 웃었다. “오늘 저녁 나가서 축하라도 할까?”주예도 따라 웃었다.“좋지.”“나 오후에 우리 고객 한 명 만나고 올게. 저녁에 다시 데리러 올게.”“응.”성아가 돌아간 뒤, 주예는 짐을 풀기 시작했다.캐리어를 침대 옆으로 끌어다 놓고, 안에 든 것들을 하나씩 꺼냈다.옷은 옷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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