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3년의 배신 vs 10년의 순애보: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하필이면 그날 갑작스러운 폭설이 내렸다.서희주는 낯선 숲속에 고립되었고, 다리까지 다친 상태였다.눈보라 치는 밤, 지독한 고열에 시달려 의식마저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이대로 숲에서 얼어 죽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던 찰나, 누군가 그녀를 찾아내 등에 업고 한 걸음 한 걸음 눈 덮인 숲을 걸어 나갔다.바로 차도윤이었다.그날 이후로 서희주의 마음속에는 짝사랑의 씨앗이 싹트기 시작했다.오랜 세월 동안 두 사람 사이에는 수많은 마찰과 갈등이 있었다.하지만 고1 눈 내리던 밤, 자신을 업고 묵묵히 눈길을 헤치던 그를 떠올리면 마음을 다시 다잡게 되었다.어둠 속에서 몇 번이고 고꾸라지면서도 끝내 그녀를 놓지 않았던 뒷모습, 그 기억 하나만으로 서희주는 조금만 더 버텨보자고 다짐했다.그래서 지난 몇 년간, 두 사람의 관계에서 양보하고 타협하는 쪽은 언제나 그녀였다.결국 세월이 흘러 오늘의 국면에 이르렀다.사랑은 한순간에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마모되어 바닥을 드러내는 법이다.서희주는 냉정할 만큼 이성적인 사람이기에 원칙에 어긋나는 일에는 결코 타협할 생각이 없다.하지만 이 순간에도 눈발을 가르던 소년의 단호한 발걸음과 등에 닿았던 그 온기를 떠올리면 여전히 가슴 한구석이 아려왔다.다음날, 그녀는 아침 일찍 은행을 찾았다.40억이 예치된 통장이 하나 있었는데 절반을 차도윤의 계좌로 송금했다.같은 시각, 사무실에 앉아 업무를 처리하던 차도윤은 휴대폰 진동 소리에 화면을 확인했다.다름 아닌 은행 알림 문자였다.계좌에 찍힌 숫자는 20억, 입금자명은 서희주였다.차도윤의 입꼬리가 서서히 올라가더니 의기양양한 미소가 번졌다.마치 전쟁에서 승리라도 거둔 듯싶었다.그렇게 큰 소란을 피우더니 결국 항복했군.이런 방식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되돌리려 하는 건 가당치도 않았다.다만 서희주가 언제 20억 원이라는 목돈을 따로 챙겨두었던 걸까? 자신도 모르게 말이다.그러다 문득 서희주의 집안 배경이 떠올랐다.투자사 회장인 그녀의 아버지는 수조 원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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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단순히 어마어마한 가격을 넘어 특별 제작된 커스텀 모델이었다.하지만 결혼 후, 차도윤은 비즈니스 미팅에서 체면을 세워야 한다는 핑계로 이 차를 가져가 몰기 시작했다.그때만 해도 함께 출퇴근하던 사이였으니 딱히 이상함을 느끼지 못했다.하지만 1년 뒤, 전업주부로 생활하게 되면서 각자 차가 필요해졌을 때도 차도윤은 롤스로이스를 돌려주지 않았다.이 차를 끌고 시장 가면 긁히기에 십상이고, 사람만 몰려 피곤해질 거라는 이유였다.그러면서 아담하고 실속 있는 차를 사주겠다며 생색을 내더니, 정작 그녀에게 차려진 건 이 초라한 경차였다.사실 서희주는 겉치레에 연연하는 성격이 아니었다.차란 그저 이동 수단일 뿐이니까.예전에는 미처 몰랐으나, 이제 정신이 번쩍 들었다.허영심만 가득하고 이기적인 차도윤의 추악한 민낯을 똑똑히 보게 되자, 지난날의 어리석음이 뼈아프게 다가왔다.이때, 차도윤이 차에서 내렸다.머리부터 발끝까지 완벽하게 슈트를 갖춰 입은 모습이었다.그는 차체에 살짝 기댄 채 금색 커프스단추를 매만지더니 손가락 끝으로 넥타이 매듭을 살짝 밀어 올렸다.그 움직임에 따라 셔츠 깃 너머로 울대뼈가 꿀렁거렸다.겉모습만 봐서는 우아하고 고귀한, 영락없는 귀공자의 자태였다.예전 같았으면 저 무심한 몸짓 하나에도 설렜을지 모른다.하지만 콩깍지가 벗겨진 지금, 서희주의 눈에 비친 그의 모든 행동은 철저히 계산된 가식과 작위적인 허세에 불과했다.차도윤은 내심 당황했다.서희주가 마중 나오기는커녕, 차에서 내릴 기척조차 보이지 않았다.결국 민망해진 그가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서희주는 차도윤이 다가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차에서 내렸다.차도윤은 곁에 선 서희주를 쳐다보지도 않은 채 일부러 손목시계를 확인하며 거들먹거렸다.“다음부터 나를 불러내고 싶으면 미리 말해. 알다시피 지금 회사가 상장을 앞둔 중요한 시기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거든. 원래 9시에 주주 총회가 있었는데, 특별히 회의까지 취소하고 온 거야.”서희주가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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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당시만 해도 친구들, 부모님, 친척들까지 하나같이 반대하며 서희주에게 이별을 권유했다.그때의 기억은 지금까지도 차도윤의 심장 깊숙이 박힌 가시였다.왠지 모를 서늘함에 그는 슬슬 긴장감이 몰려오는 것을 느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앞뒤가 맞지 않았다.정말 이혼이 목적이었다면 법원이 아니라 구청에 가서 서류부터 접수하는 게 상식 아닌가.게다가 방금 제 입으로 ‘이혼 조정 조서’를 받으러 왔다고 했다.‘조정이라...’결국 이혼할 마음이 눈곱만큼도 없다는 반증이었다.혼자의 힘으로는 도저히 그의 마음을 돌릴 자신이 없으니, 법원의 권위를 빌려 설득하거나 압박하려는 속셈이 뻔했다.김칫국을 사발째 들이켠 차도윤은 다시 기세등등해졌다.‘그럼 그렇지, 서희주가 감히 나를 떠날 리 없지.’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그에게 푹 빠져 헤어 나오지 못했던 여자였다.그렇게 10년을 보내왔는데 어떻게 하루아침에 돌아선단 말인가.하물며 그녀의 기억 속에 자신은 여전히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 아니던가.과거를 떠올리는 차도윤의 눈동자에 어두운 기색이 스치고 지나갔다.이내 그는 당당하게 안으로 발을 들였다.그 무렵, 서희주는 이미 조정실 안으로 들어간 뒤였다.가사조정위원은 자기 자리에 앉아 두 사람을 기다리고 있었다.서희주와 차도윤을 발견한 조정위원이 물었다.“이혼하시기로 마음 굳히신 건가요?”서희주가 먼저 입을 열었다.“네, 이미 합의 마쳤습니다. 바로 조정 조서 써 주세요.”조정위원이 이번에는 차도윤을 향해 시선을 옮겼다.“남편분도 조정 조서 작성에 동의하시나요? 두 분, 정말 다시 생각해보지 않으셔도 괜찮습니까?”차도윤의 얼굴에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자신을 이런 곳까지 끌고 오면, 법원이라는 위압감에 겁이라도 먹을 줄 알았나 본데 천만의 말씀이었다.“서희주, 어디 네 마음대로 해봐. 하지만 내가 타협할 일은 절대 없을 거야. 설아는 지금 혈혈단신에 갓 해산까지 한 상태야. 그런 사람을 내가 어떻게 모른 척해? 고작 산후조리 음식 좀 해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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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하지만 차도윤은 이 조정 조서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여전히 감도 못 잡은 눈치였다.서희주도 딱히 설명해 줄 마음이 없었다.어차피 머지않아 스스로 알게 될 테니까.차도윤의 얼굴엔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서희주가 먼저 20억을 입금했을 때만 해도 그는 당연히 화해를 청하는 신호라고 믿었다.너그럽게 넘어가 주려고 마음까지 먹었건만, 끝까지 냉담한 태도로 일관하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대체 무슨 꿍꿍이를 꾸미는 거지?차도윤이 입을 열었다.“20억 보내놓고 내가 무조건 참아줄 거로 생각했어? 아니면 그까짓 푼돈으로 내 원칙을 흔들 수 있을 줄 알았나 본데, 착각하지 마. 이제 돈으로 무시당하고 자존심 짓밟던 학창 시절의 그 가난뱅이 놈은 없어.”서희주는 황당한 듯 되물었다.“내가 언제 돈으로 널 무시하고 자존심을 짓밟았다는 거야?”“넌 당연히 모르겠지. 네가 생색내듯 내준 등록금, 내 생활비 전부를 쏟아부어야 먹을 수 있는 그 비싼 식당들, 그리고 명품 옷이며 신발을 받을 때마다 내 자존심이 얼마나 난도질당했는지 알아?”“네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신발 한 켤레, 가방 하나가 시골에서 비바람 맞으며 일 년 내내 피땀 흘리신 우리 어머니의 전 재산이나 다름없었어. 돈 귀한 줄 모르고 펑펑 써댈 때마다 난 죽어라 고생하시는 어머니가 떠올랐다고. 넌 숨 쉬듯 잘난 배경 과시하면서 나한테는 태생부터 비천하다는 걸 뼈저리게 확인시켜 줬지. 이게 모욕이 아니면 도대체 뭔데?”서희주는 눈을 크게 뜬 채 멍하니 차도윤을 응시했다. 정말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오랜 세월을 함께했지만, 차도윤이 이런 속내를 터놓은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사실 그동안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이라는 점 외에도 그에게 진심으로 동경했던 면모들이 있었다.지독할 정도의 끈기와 성실함, 깊은 효심, 그리고 누구 앞에서도 굴하지 않던 그 당당함.그러나 오늘 쏟아져 나온 그의 본심은 서희주가 간직해 온 환상을 처참히 깨부수었다. 차도윤의 내면이 이토록 음침하고 뒤틀려 있을 줄이야.그는 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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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차도윤은 할 말을 잃고 입을 다물었다.스스로 생각해도 서희주에게 내뱉은 논리가 군색하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순순히 물러나거나 지고 싶지는 않았다.“내 말은 그게 아니라, 그냥 우리 어머니가 나 하나 키우느라 정말 고생 많이 하셨다는 뜻이었어...”“어머니 고생하신 게 나랑 무슨 상관인데? 내가 힘들게 했어? 당신 낳고 기른 분이니까 당연히 은혜 갚아야지. 그런데 왜 그 효심을 나한테 떠넘겨? 생판 남인 사람까지 당신 어머니랑 똑같이 고생하길 바라는 거, 완전 변태 같은 심보야. 알아?”“자고로 원인 제공자가 책임지는 게 상식이지. 고생한 부모를 호강시키는 건 자식으로서 도리야. 차도윤, 오늘부터 당신 엄마든 여동생이든 나랑은 눈곱만큼도 상관없는 사람들이야.”“서희주, 너 진짜 이기적이다. 어떻게 그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단물 다 빠지고 독박 씌울 데 없으니까 이제 와서 이기적이라고 비난하는 거니? 차도윤, 너 진짜 구질구질하다. 내가 왜 이런 놈인 걸 진작 몰랐을까?”서희주는 워낙 논리 정연한 데다 머리 회전까지 빨랐다.학창 시절 토론 대회에서 늘 우승을 거머쥐었던 그녀에게 말싸움은 누워서 떡 먹기였다.차도윤의 안색이 하얗게 질렸다.“너... 너 진짜..!”결국 말로는 도저히 서희주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는 걸 깨닫고 씩씩거리며 몸을 돌렸다.하지만 분을 못 이겨 계단을 내려가다 발을 헛디뎠고, 그대로 꼴사납게 넘어지고 말았다.주머니에 있던 차 키까지 바닥에 나뒹굴 정도로 처참한 몰골이었다.그때, 서희주가 급히 계단을 내려왔다.차도윤은 내심 안도했다.‘그럼 그렇지, 네가 독해 봤자지.’그는 서희주가 당연히 제 팔을 붙들고 안쓰러운 표정으로 일으켜 세워줄 거라 확신했다.하지만 예상은 비참하게 빗나갔다.서희주는 차도윤을 투명 인간 취급하며 성큼성큼 지나쳐 갔다.계단 끝까지 내려가서야 허리를 숙여 바닥에 떨어진 롤스로이스 차 키를 주워 들었다.그러고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모닝 키를 꺼내 차도윤의 품에 가차 없이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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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전다은은 걱정하지 않았다.서희주는 멍청한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어릴 때부터 이과 천재였고, 지극히 이성적인 사람이었다.그녀가 평생 단 한 번 크게 잘못된 선택을 한 일이 있다면, 아마 차도윤과 결혼한 일일 것이다.“다른 재산도 차도윤 씨랑 다 정리했어?”서희주가 말했다.“알다시피 우리한테는 공동재산이라고 할 만한 게 별로 없어. 지난 2년 동안 차도윤이 번 돈은 전부 회사 안에 들어가 있었고, 유일한 공동재산이라면 창업 2년 차에 회사 사업이 크게 터지면서 연말에 40억 원의 배당금이 나온 거야. 그때 나는 회사의 기술팀 책임자였고, 거기에 사장 아내이기도 했으니까, 그 돈은 재무팀에서 내 계좌로 입금했어. 우리 공동재산은 이게 전부야. 아침에 이미 그 사람한테 20억 원을 이체했어. 이제 우리가 주고받을 건 다 끝났고, 서로 빚진 것도 없어.”하지만 전다은은 서희주를 대신해 억울한 마음이 들었다.“그동안 네가 바친 게 어떻게 20억 원으로 다 메워져. 게다가 네가 없었으면 그 사람 회사가 어디 있었겠어? 회사 지분도 한 푼도 안 챙겼는데, 이 돈마저 반이나 나눠 주다니. 너무 만만하게 당한 거 아니야?”서희주에게는 애초에 그 20억 원이 크게 필요하지 않았다. 그래도 마음은 도저히 편치 않았다.하지만 서희주는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이 20억 원, 사흘 안에 다시 내 계좌로 돌아올 거야.”한편.차도윤은 모닝을 몰고 라온 산후조리원으로 갔다.윤설아는 방 안에서 산후 요가를 하고 있었다. 방금 출산했는데도 그녀의 가냘프고 늘씬한 몸은 마치 소녀 같았다.차도윤은 문가에 선 채 한동안 넋을 잃고 바라봤다.윤설아는 고개를 돌리다 문가에 서 있는 차도윤을 보고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오빠, 왔어요?”차도윤은 안으로 들어갔다. 윤설아의 맑고 환한 웃는 얼굴을 보자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볼일 보러 나왔다가 여기 지나가는 길이라, 겸사겸사 들러 봤어.”윤설아는 먼저 차도윤에게 커피 한 잔을 따라 줬다.“오빠, 아침 먹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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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윤설아는 금세 말을 돌렸다.“그래도 저는 희주 언니가 곧 알게 될 거라고 믿어요. 우리는 같이 사업을 이뤄 가는 사이일 뿐, 언니가 생각하는 그런 남녀 사이의 감정은 아니니까요. 아, 맞다, 오빠. 저한테 20억 원만 빌려줄 수 있어요?”차도윤의 얼굴에 순간 당혹감이 스쳤다.“20억이나? 그 돈으로 뭐 하려고?”“전에 말씀드렸잖아요. 해외에 투자은행 다니는 선배가 한 명 있는데, 그 선배가 지금 정말 괜찮은 프로젝트를 쥐고 있거든요. 저도 거기에 한몫 끼고 싶어요. 오빠, 이건 제가 빌리는 걸로 해 주세요. 석 달 뒤에 원금이랑 이자까지 다 갚을게요.”지난번 서희주가 20억 원을 요구한 뒤로 윤설아는 이틀 내내 마음이 복잡했다.그녀에게는 애초에 20억 원이 없었다. 설령 있었더라도, 서희주한테 공짜로 넘길 생각은 없었다.하지만 그 돈은 반드시 줘야 했다. 서희주의 손에 녹음 파일이 있었으니까.윤설아는 서희주가 그 녹음 파일을 언론에 넘길 거라고는 그리 믿지 않았다. 설도의 상장에 영향을 주면, 그녀 역시 큰 손해를 보게 될 테니까.하지만 서희주가 그 녹음 파일을 차도윤에게 건넬까 봐 두려웠다.그렇게 되면 차도윤 앞에서 공들여 쌓아 온 자기 이미지가 크게 흔들릴 게 분명했다.그래서 윤설아는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이 돈을 차도윤이 내게 하는 것이었다. 어차피 두 사람이 이혼하기 전까지는 차도윤의 돈도 곧 서희주의 돈이나 다름없었으니, 굳이 그를 대신해 아껴 줄 필요도 없었다.게다가 이참에 서희주에게 되갚는 셈도 됐다.그러나 차도윤의 얼굴에는 망설임이 비쳤다.20억 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오빠, 어렵다면 괜찮아요. 제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볼게요. 제가 생각이 짧았어요. 희주 언니가 알면 분명 오빠랑 또 싸울 거고, 그러면 언니가 또 오해할 테니까요...”서희주 생각이 스치는 순간, 차도윤은 속에서 화가 치밀었다.거기에 윤설아가 실망과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 채 여린 표정을 짓고 있자, 차마 모르는 척할 수 없었다.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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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오션은 해성시에서 가장 호화로운 클럽이다.로펌에서는 종종 고급 고객들을 접대해야 했고, 그래서 전다은도 자기 상사를 따라 그곳을 자주 드나들었다.서희주는 전다은이 진짜로 가격이 일곱 자릿수나 나오는 룸을 잡았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전다은은 원래 소문난 자린고비였으니까.하지만 룸 안에는 먹을 게 아무것도 없었다.전다은은 서희주의 의아한 눈빛을 보고 말했다.“여기 음식값이 진짜 미쳤거든. 이 룸은 회사랑 오션이 장기 계약을 맺고 있어서 내가 반값으로 잡은 거야.”전다은은 푹신한 소파에 몸을 던지듯 누우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우리 일단 노래부터 부르자. 나 바비큐랑 랍스터, 치킨 시켜 놨어. 좀 있으면 와.”서희주는 피식 웃었다.절약광은 역시 절약광이었다.두 사람은 한동안 노래를 불렀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배달이 도착했다.전다은이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여기 원래 배달 안 되게 하거든. 다행히 내가 여기 매니저를 알아.”테이블 위에는 어느새 음식이 한가득 차려져 있었다.전다은은 가방에서 술 두 병까지 꺼냈다.“이거 내가 직접 담근 매실주야. 도수는 높지 않은데, 너는 딱 한 잔만 마셔.”전다은은 서희주가 술이 약한 데다 주사까지 심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서희주는 입을 삐죽였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취할 때까지 마시자고 해 놓고, 마시기도 전에 벌써 인색하게 구네.”“내가 걱정돼서 그러지. 너 술 취하면 사고 치는 거 모르냐. 진짜 엄청 무섭다고.”“흥, 내가 언제 술 취해서 사고를 쳤다고?”“너 술 마시면 사람 아무나 붙잡고 막 들이대는 거 모르지? 네 첫 키스 잊었어...?”“됐어, 됐어. 나 그냥 주스 마실래.”서희주는 얼른 전다은의 말을 끊었다.전다은은 입을 가리고 몰래 웃었다.서희주가 고등학교를 졸업했을 때, 친구들을 한 무리 불러 술 마시고 노래방에 간 적이 있었다.그날 그녀는 맥주를 꽤 많이 마셨다.원래는 그 기회에 차도윤에게 고백하려고 했다.그런데 그날 커다란 해프닝이 벌어졌다.고백할 사람을 잘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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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게다가 윤승하의 그 말에는 남의 불행을 은근히 즐기는 기색이 다분했다.서희주가 그를 싫어하는 이상, 전다은도 아예 그를 차단해 버렸다.윤승하를 차단한 뒤, 두 사람은 랍스터 껍데기를 까며 신나게 먹어 치우기 시작했다.그런데 30분쯤 지났을 때, 전다은은 갑자기 전화 한 통을 받았다.상사에게서 걸려 온 전화였다. 중요한 고객이 자기를 만나겠다고 하니, 당장 로펌으로 돌아오라는 말이었다.상사가 퇴근 시간에 직접 그녀에게 전화를 거는 일은 없었으니, 분명 몹시 급한 일이 생긴 게 틀림없었다.전다은은 어쩔 수 없이 서희주에게 말했다.“나 로펌에 한번 다녀와야 할 것 같아. 급한 일 생겼는데, 넌 어떡할래?”서희주는 손을 휘휘 저었다.“빨리 가. 너 이제 막 정식 채용됐잖아. 일이 더 중요하지. 난 이따 혼자 돌아갈게.”전다은은 대답하고는 가방을 집어 든 채 황급히 떠났다.룸 안에는 서희주만 홀로 남았다.그녀는 문득 조금 쓸쓸해졌다.시선이 테이블 위 아직 따지지 않은 매실주에 머물렀다.서희주는 술병을 홱 집어 와 자기 잔에 가득 따랐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도 알 수 없었다.서희주는 머리가 살짝 어질어질한 것만 느껴졌다.희미하게 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서희주는 전다은이 돌아온 줄 알았다.팔로 몸을 짚고 일어나 문을 열러 갔다.“다은아, 내가 말했잖아. 너 이 술...”말을 채 끝내기도 전에 서희주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눈앞에 있는 사람은 전다은이 아니었다.키가 크고 훤칠한 남자였다.남자는 재단이 완벽한 맞춤 정장을 입고 있었다. 안에는 흰 셔츠를 받쳐 입었고, 말쑥하게 차려입은 모습이 제법 근사했다. 문이 열리는 순간, 그의 목울대가 가볍게 두어 번 움직이는 것 같았다.서희주의 시선이 위로 올라갔다.눈에 들어온 건 몹시 잘생긴 얼굴이었다. 뚜렷한 윤곽, 높게 뻗은 콧대, 매끈하게 이어지는 턱선.잔머리 한 올이 높게 솟은 눈썹뼈 위로 흘러내려 있었고, 깊은 두 눈이 웃는 듯 아닌 듯 눈앞의 사람을 바라보고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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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두 사람은 뜻밖에도 무척 말이 잘 통했다.하지만 대부분은 학창 시절 이야기를 했다.그 덕분에 서희주는 한동안 잊고 있던 그 시절이 몹시 그리워졌다. 심지어 그때의 자잘한 악연들조차 시간이 다듬어 놓고 보니 어느새 한 조각 아름다운 추억처럼 느껴졌다.술도 점점 더 많이 들어갔다.결국 전다은이 가져온 매실주 두 병도 전부 바닥이 났다.원래 두 사람은 소파에 앉아 있었는데, 언제부터였는지도 모르게 어느새 카펫 위에 아무렇게나 앉아 있었다.윤승하의 정장 재킷도 이미 소파 위에 벗어 던져져 있었다.그는 셔츠 단추를 두 개 풀어 놓은 상태였고, 그 사이로 섹시한 목울대가 드러나 있었다.피부는 희고 맑았다. 남자한테서 저렇게 흰 피부를 보는 일은 드물었다. 마치 역사가 유구한 가마에서 구워 낸 백자 같았다.그의 한쪽 팔은 구부린 무릎 위에 아무렇게나 걸쳐져 있었고, 셔츠 소매도 걷어 올려져 있었다. 손목은 가늘었고, 손가락 마디는 또렷하게 도드라져 있었다.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런 건지, 서희주는 눈앞의 남자가 꽤 잘생겼다고 느꼈다. 잘생긴 것도 모자라 사람을 홀릴 정도였다.그래도 아주 조금은 이성이 남아 있었는지, 그녀는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너 이제 가. 나 술 취하면 주사 심해. 이따가 너 놀랄 수도 있어.”전다은이 했던, 자기가 술에 취하면 사람한테 막 들이댄다는 말을 서희주는 반쯤 의심하고 있었다.왜냐하면 지난 몇 년 동안 그녀가 제대로 취한 적은 사실 한 번뿐이었으니까.하지만 그 유일한 음주가 하필 지금 눈앞에 있는 이 사람 앞에서였다는 걸 생각하면, 서희주는 괜히 꺼림칙했다.그런데 윤승하는 전혀 개의치 않았다.그는 몸을 늘어뜨린 채 뒤쪽 소파에 기대 있었다. 온몸에 나른하고 제멋대로인 기운이 묻어났다.웃음을 머금은 눈이 서희주의 붉게 달아오른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왜, 또 나한테 키스하고 싶어?”그 한마디에 서희주는 마치 벼락이라도 맞은 사람처럼 온몸이 굳어 버렸다.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려 윤승하를 바라봤다. 눈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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