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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신승우 씨, 아웃: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강씨 가문 강하준에 대한 뉴스 있어요?”전화 너머의 상대는 무언가를 검색하는 듯하더니 잠시 후 대답했다.“하나 있어요. 어젯밤에 강하준이 자기 클럽에서 실려 나와 병원으로 이송되는 걸 누가 찍었더라고요. 맞아서 그런 것 같은데, 보도 통제가 걸렸어요.”한서윤이 묻기도 전에 상대는 은밀하게 덧붙였다.“걔 누나 전 남친의 뜻이라더군요.”신승우였다.한서윤은 전혀 놀라지 않은 채 낮게 읊조렸다.“어느 병원인지 알아요?”“신주 그룹 산하 병원이에요. 듣자 하니 신승우가 사람들을 깔아놓고 철통같이 감시 중이라더군요. 황실 귀족이 입원한 것도 아닌데 아주 난리도 아니라니까요.”한서윤은 구름 사이로 희미하게 고개를 내민 석양을 바라보았다. 비스듬히 쏟아지는 햇살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떴다.신승우는 그녀가 포기하지 않고 강하준에게 해를 입힐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양이었다.하지만 신승우는 여전히 그녀를 너무나 몰랐다.어젯밤 그가 제지하지 않았더라도 그녀는 정말로 강하준의 목숨을 뺏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쓰레기 같은 인간을 상대로 자신의 남은 인생을 도박에 걸 가치는 없으니까.그녀는 단지 신승우가 강율희를 위해 어디까지 망가질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결과는 예상대로였고 반전은 없었다.다만 그 후 집으로 돌아온 신승우가 미친 사람처럼 폭주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그것은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그녀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신승우의 모습이었다.경호원이 약을 가지고 돌아오자 한서윤은 간호사 스테이션에 앉아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귀에 약을 발랐다.“돌아가시면 꼭 푹 쉬셔야 해요.”간호사는 한서윤의 눈부신 미모를 보며 호의로 당부했다.“고마워요.”차에 타기 전, 한서윤은 길 건너편에 있는 약국을 발견했다.“잠깐만 기다려요, 뭐 좀 사 올 테니까.”경호원이 차 문을 열며 말했다.“먼저 타십시오. 필요하신 물건은 제가 다녀오겠습니다.”한서윤이 느릿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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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내 골칫거리를 해결해줘? 자기 분수를 알아야지!”신승우는 두말없이 그녀의 손목을 거칠게 움켜쥐고 약국 밖으로 끌어내 길가에 세워진 검은색 세단에 쑤셔 넣었다.차 문이 쾅 소리를 내며 닫혔고 윤진혁이 중앙 잠금장치를 거는 동시에, 차 안의 칸막이가 올라왔다.넓고 긴 차량의 구석에서 한서윤은 문을 열려던 손을 멈추고 더 이상의 헛된 저항을 포기했다.찰칵, 소리와 함께 신승우는 담배를 입에 문 채 팔걸이에 라이터를 던지고는 고개를 돌려 바람에 머리가 헝클어진 한서윤을 쳐다보았다. 구석에 외롭게 앉아 있는 그녀의 모습은 오래전 길가에서 주웠던 작은 유기견과 꼭 닮아 있었다.한서윤은 자신이 산 피임약이 신승우의 손에 의해 차 안 쓰레기통으로 버려지는 것을 보고 망설임 없이 손을 뻗었다.하지만 손목이 채 닿기도 전에 남자의 단단한 손에 붙잡혔다.“쓰레기통에 처박은 것까지 주워 먹고 싶어? 그렇게나 간절해?”신승우는 그녀의 손목을 꽉 틀어쥔 채 짙게 가라앉은 두 눈으로 한서윤의 얼굴을 훑어내렸다. 하지만 찰나의 순간, 한서윤이 내뱉은 말에 그의 안색이 점차 싸늘하게 굳어졌다.“먹고 싶어서 먹는 게 아니라 당신 아이를 가지기 싫어서예요.”한때 그녀는 자신과 신승우 사이의 아이를 그토록 간절히 원했었지만 애석하게도 하늘마저 그녀의 뜻대로 따라주지 않았다.아이는 사랑의 결실이어야 했다. 하지만 신승우는 결코 자신을 사랑하지 않았고, 그녀 혼자만의 마음으로는 아이에게 온전한 사랑을 줄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 잘 알았다. 그렇기에 차라리 일찌감치 단념하는 편이 아이에게도, 자신에게도 나은 선택이었다.그녀의 이 한마디에 차 안의 공기는 무섭도록 차갑게 얼어붙었다.청운시의 겨울은 다섯 시만 넘어도 금세 어두워졌다. 길가에 하나둘 가로등이 켜지고 차가 낡은 거리로 접어들자 오래된 가게 간판들에 불이 들어왔다. 희미하고 노란 가로등 불빛 아래로는 짙은 사람 사는 냄새가 배어 있었다.신승우는 속을 알 수 없는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잠시 응시하더니 입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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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제 입맛을 어떻게 아셨어요? 고마워요.”한서윤은 놀란 눈으로 윤진혁을 바라봤다.그녀는 전병에 청양고추를 조금 넣어 느끼함을 잡는 것을 좋아했다.윤진혁의 시선이 순간 멈칫했으나 아무 말 없이 고개를 끄덕인 후 차 문을 닫았다.신승우가 냉소적으로 쏘아붙였다.“소고기를 그렇게 먹어대니 성격도 황소처럼 고집불통이지!”한서윤은 묵묵히 고기 전병을 먹었다. 귓가에선 윙윙거리는 소리가 멎지 않았지만, 신승우가 자신을 폄하하는 말을 희미하게 알아듣고도 대꾸하지 않았다.그녀는 고집이 셌고 외골수였다. 과거 신승우와 결혼하겠다고 버텼을 때, 주선율이 절교까지 각오하며 입이 닳도록 설득했지만 그녀의 결심을 꺾지 못했다.생애 처음으로 사랑에 눈뜨게 한 사람이 바로 신승우였으니까.한서윤은 창밖을 보고서야 이 길이 묵원으로 향하는 길이 아님을 깨달았다. 신승우는 그녀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걸까?차는 신주 그룹 산하의 병원으로 미끄러져 들어갔다.“진료는 이미 받았어요. 검사 더는 필요 없어요.”한서윤은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하지만 그녀에게 돌아온 것은 신승우의 반박을 허용치 않는 목소리였다.“내 눈앞에서 하는 검사라야 마음이 놓여.”그는 한 손으로 차 문을 밀어 열었다.“어쨌든 네가 회복하지 못하면 여러모로 골치 아파지니까.”굳이 묻지 않아도 강하준에게 불똥이 튈까 염려하는 게 뻔했다.그가 그토록 강하준을 감싸고도는 건 결국 그녀의 복수가 두려워서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강하준한테 보복할까 봐 그렇게 겁나면서 여긴 왜 데려왔어요? 내가 미쳐서 그놈 병실에 쳐들어가 찔러 죽이기라도 할까 봐 무섭지도 않아요?”순간 남자의 발걸음이 우뚝 멈추더니 그의 미간에서 싸늘한 냉기가 피어올랐다.“한서윤, 경고하는데, 강하준은 건드리지 마.”한서윤은 마침 칼바람이 부는 곳에 서 있었고 그 바람은 찢긴 심장의 상처 속으로 여지없이 비집고 들어왔다.병원의 전문가팀이 직접 한서윤의 검진에 나섰다.한서윤은 눈을 감고 그날 밤 발로 귀를 걷어차였던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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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한서윤은 열여덟 살이 되던 해, 신승우에게 돈을 빌려달라고 입을 열었다.경매에 나온 어머니의 팔찌를 되찾고 싶어서였다.당시 스물세 살이었던 신승우는 명실상부한 신주 그룹의 후계자였고 아직 그룹의 전권을 쥐진 않았어도 그의 부는 나라에 필적할 정도였다.한서윤은 그가 당연히 돈을 빌려줄 것이라 생각했다.하지만 그녀의 부탁을 들은 그는 사무용 의자에 앉은 채 고개도 들지 않고 빌려줄 수 없다고 말했다.한서윤이 아무리 애원해도 그는 들어주지 않았고 결국 윤진혁을 시켜 그녀를 서재에서 내쫓았다.서재 문이 닫히는 그 순간, 신승우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 그 시선은 바닥이 보이지 않는 만길 심연과 같아 아찔할 만큼 위태로웠다.“어린 것이 벌써부터 혼수 장만할 생각이나 하고, 그렇게 시집이 가고 싶어?”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신승우의 말은 아직도 귓가에 생생했다.그런데 그녀는 그 팔찌를 마지막에 사들인 사람이 그였다는 것을 미처 몰랐다.과거 그가 돈을 빌려주지 않았을 때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에게 자신을 도와야 할 의무 따위는 없었으니까.그가 팔찌를 사들인 것 또한 정당한 대가를 지불한 거래였으니 원망할 마음도 없었다.하지만 그는 그 팔찌가 자신에게 얼마나 소중한 의미인지 알면서도, 그것을 사서 강율희에게 주었다.세상의 수많은 사람 중, 왜 하필이면 강율희란 말인가.강율희가 팔찌를 어디서 구했는지 묻자 신승우는 냉랭하게 답했다.“단 하나뿐이야.”한서윤의 이명이 심해지는 듯 귓가에서 윙윙거리는 소리가 멈추지 않아 주위의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그 팔찌를 보니, 과거 엄마가 눈물을 머금고 그것을 팔며 슬퍼하던 모습이 떠올랐다. 외할머니가 엄마에게 남긴 유일한 유품이었으니까.그때는 어려서 아무것도 몰랐지만, 지금은 엄마의 눈물을 닦아주고 싶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손을 뻗었다. 엄마의 손에 팔찌를 돌려주려는 듯이.“서윤아, 너 왜 그래?”강율희가 화들짝 놀라며 팔찌를 감싸 쥐고는 신승우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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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널 줬으면 네 거지.”신승우는 불도 붙이지 않은 담배를 손에서 부러뜨렸다....한서윤은 차를 몰아 병원 부지를 빠져나왔다. 신주 그룹 소유의 병원은 부지가 넓었고 나오는 길 역시 널찍했다.머릿속이 하얗게 비어버린 채, 둑 터진 듯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을 흘리며 한서윤은 못난 자신을 욕하면서 입술을 깨물었다.신승우가 그 팔찌를 사들인 순간 이미 그것은 그의 소유였고, 그가 사랑하는 여자에게 무엇을 선물하든 그것은 온전한 그의 자유였다.그의 특별한 사랑을 헛되이 꿈꾼, 저 자신의 과한 욕심이 부른 참사일 뿐이었다.한서윤은 거칠게 눈물을 훔쳐냈다.그때, 검은 세단 한 대가 그녀의 차 옆으로 질풍처럼 스쳐 지나갔다.한서윤은 반응할 틈도 없었다.칼날 같은 바람 속에서, 검은 세단은 가로등 불빛 아래 섬광처럼 날카로운 빛을 번뜩였다.끼이익.타이어가 지면에 끌리는 날카로운 마찰음과 함께 차가 급하게 방향을 틀었다.검은 세단은 앞길을 가로막듯 멈춰 섰고 그 바람에 한서윤의 차 역시 속수무책으로 멈춰야 했다.한서윤은 핸들을 꽉 움켜쥔 채 붉게 충혈된 눈으로 앞차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차창 너머, 운전석에 앉은 무테안경을 쓴 남자는 다름 아닌 신승우였다.‘강율희와 같이 있는 거 아니었나? 왜? 내 꼴이 우스워서 구경하려고 쫓아왔나? 아니면 당신과 억지로 결혼한 대가가 이 정도니, 내가 바라는 건 절대 이루어지지 않을 거라고 못이라도 박으러 온 건가?’한서윤은 이를 악물고 비웃음을 터뜨렸다. 그와 동시에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그녀는 입술을 질끈 깨물고 그대로 액셀을 밟았다.핸들을 꺾은 차는 검은 세단을 스칠 듯 말 듯 아슬아슬하게 지나쳐 앞으로 나아갔고 두 대의 차는 순식간에 멀어졌다.한서윤은 액셀을 끝까지 밟았다.하지만 얼마 못 가, 그 검은 세단이 소름 끼치도록 빠른 속도로 다시 쫓아왔고 거의 순식간에 그녀의 차를 앞질러 멈춰 세웠다.한서윤의 내면에서 억눌렸던 분노가 한꺼번에 폭발했고 이미 붉게 충혈된 눈에는 굴욕감으로 눈물이 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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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한서윤은 순간 가슴이 무언가에 막힌 듯 답답해졌다.오늘 오후 잠에서 깨어났을 때, 입고 있는 잠옷과 얼굴에 바른 약 때문에 잠깐이나마 신승우가 자신을 조금은 걱정해준 건 아닐까 착각했다.이제는 확실히 알 수 있었다.전혀 아니었다.신승우는 그녀에게 단 한 점의 연민도 없었다.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그렇게까지 매정한 말을 내뱉을 수 있겠는가.한서윤은 오후에 했던 그 잠깐의 착각이 비참하게 느껴졌다.‘어쩌다가 내가 신승우에게서 조금의 연민이라도 얻으려 했던 걸까.’“걱정하지 말아요. 승우 씨랑 결혼한 날부터 이미 제 처지를 알고 있었어요. 하지만 승우 씨, 잘 들어요. 저는 그저 승우 씨를 사랑할 뿐이에요...”말을 하던 한서윤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그녀는 황급히 닦아내며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하지만 저한테도 자존심은 있어요. 승우 씨가 마음대로 짓밟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전 아무것도 안 했는데, 굳이 이렇게 찾아와서 모욕해야 했어요? 제가 무너지는 걸 보고 싶었어요? 제가 상처받고 우는 걸 보고 싶었어요? 그래요. 승우 씨가 이겼어요. 이제 만족해요?”가슴속 감정이 목을 조여 마지막 말은 먼지처럼 가라앉았다.그녀는 차 문손잡이를 잡고 문을 열려 했다.그 순간, 차량 중앙 잠금장치가 내려가며 그녀가 내리는 것을 막았다.“오늘 저녁은 가족 모임이야.”신승우가 입을 열자 차 안의 공기가 갑자기 무거워졌다.한서윤은 손을 잠시 멈췄다.오늘은 음력 동짓달 초하루, 매달 음력 초하루는 신씨 가문의 가족 모임이 있는 날이었다.그가 차를 몰고 와 그녀를 붙잡아 태운 이유가 본가에 가서 식사하기 위해서였다는 걸 그제야 알았다.두 사람이 함께 나타나는 걸 보여 줘서 할머니를 안심시키려는 의도였다.한서윤은 시동을 건 채 반쯤 그림자에 잠긴 남자를 바라보다가, 문득 온몸에서 힘이 빠지는 것 같았다.‘왜 이걸 잊고 있었을까...’평소 두 사람은 거의 마주칠 일이 없었다.신승우는 일이 바빠 자주 출장 갔고, 그녀 역시 취재가 많아 밤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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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한서윤은 혀끝으로 입천장을 눌러 갑작스레 밀려오는 감정을 억눌렀다.“그렇게 다 아는 척하면서 전에 약은 왜 버렸어요?”신승우는 핸들 위에 올려둔 손가락으로 가볍게 두드렸다.“지금 돌려주잖아.”“그럼 고맙다고 해야겠네요.”한서윤은 약을 받아 물도 없이 그대로 삼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오늘은 가족 모임이라 신씨 가문의 어른과 젊은 사람들이 모두 모였다. 김혜정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한서윤은 전실을 지나 별실로 향하다가 뜻밖에도 신남훈을 마주쳤다.한서윤은 돌아가려 했지만 신남훈은 긴 다리로 그녀를 가로막고 별실 문까지 닫아버렸다.이 시간엔 별실에 다른 사람이 없었고, 고용인들도 모두 식당에서 바빴다. 문이 닫히자 밀폐된 공간에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방해되니까 비켜.”한서윤이 냉정하게 말했다.신남훈은 화내지 않았다. 어릴 때부터 그녀와 함께 자라 이런 성격에 익숙했던 그는 그저 그녀의 눈을 내려다보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형수님, 그렇게 예쁜 눈인데 울다가 망가지면 곤란하지.”신남훈은 아름다운 갈색 머리와 비현실적으로 정교한 이목구비를 지닌 미남이었지만, 태도가 너무 오만했다.특히 계산이 빠른 그의 눈은 무엇이든 꿰뚫어 보는 듯 날카로웠다.한서윤이 눈을 찬물로 식혔음에도, 그는 한눈에 울었다는 걸 알아챘다.한서윤은 시간 낭비할 생각이 없었다.“도대체 뭐 하자는 거야?”“우린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잖아. 내가 형수님이라고 부르는 건 존중해서야. 그런데 그런 태도로 대하니까 좀 서운하네.”“존중한다면 내 근처에 오지 마.”한서윤은 차갑게 말했다.“그리고 형수님이라고 불러. ‘서윤’은 네가 부를 수 있는 이름 아니야.”신남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녀를 보다가 뜬금없이 말했다.“내가 강씨 그 녀석 죽여줄까?”‘강씨 그 녀석... 강하준...’한서윤의 눈썹이 미세하게 떨렸다. 그녀가 강하준에게 맞은 일을 신남훈도 알고 있었다.“내 일은 내가 처리해. 네가 나설 필요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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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한서윤은 묵원 서재 서랍 속에 있는 이혼 합의서를 떠올리며 잠시 멍해졌다.신남훈은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형이 대체 너한테 무슨 마법을 건 거지?”한서윤은 입 안쪽 살을 깨물었다.가끔은 그녀 자신도 묻고 싶었다. 신승우가 대체 자신에게 무슨 마법을 걸어서 이렇게 오랜 시간 마음이 변한 적이 없게 된 건지.3년의 결혼 생활이 사실상 남남처럼 흘렀음에도 포기할 생각은 한 번도 없었다.하지만 이제는 더 버티고 싶지 않았다.신승우가 직접 그녀의 마지막 선을 끊어버렸다.그녀는 자신의 이름이 지어진 이유를 떠올렸다.부모님은 한서윤의 ‘윤’ 자가 ‘윤택’ 을 뜻한다고 하셨다. 서로를 적셔주듯 함께 살아가는 부부의 깊은 정, 그게 사랑의 결정체라는 뜻이라고 했다.비굴하게 붙잡으며 애원하는 그런 관계가 아니었다.지금은 신승우가 권력을 쥐고 있고, 강율희가 귀국했다.설령 그녀가 두 다리를 못 쓰게 되었더라도, 신승우가 원하기만 하면 신씨 가문에서 그를 막을 사람은 없었다. 강율희와의 결혼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그녀는 생각에 잠겨 신남훈이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숨결이 얼굴에 닿을 정도로 가까워진 순간, 신남훈이 입을 열었다.“서윤아, 네가 후회하는 날을 기다릴게.”한서윤이 정신을 차리고 그의 발을 밟으려는 순간, 별실 문이 밖에서 거칠게 열렸다.문은 벽에 부딪혔다가 튕겨 나오며 큰 소리를 냈다.그 소리에 한서윤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차가운 바람이 날카로운 화살처럼 들이닥쳐 순식간에 실내의 따뜻한 공기를 쓸어버렸다.신남훈은 눈썹을 치켜올리며 문 쪽을 바라봤다. 역광 속에서 신승우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다른 한 손에는 담배를 들고 서 있었다.푸르스름한 연기가 그의 손가락 사이에서 스며 나오며, 길고 늘씬한 손가락이 마치 안개에 싸인 숲속 대나무처럼 보였다. 그의 주변에는 서늘한 기운이 감돌았다.“형, 왔어?”신남훈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한서윤은 신승우를 보는 순간 속이 답답해져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문 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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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김혜정은 그를 보자마자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또 네가 괴롭힌 거지? 밥도 안 먹고 가버렸어. 오는 길에 먹었다고 하는데 뭘 먹었다는 거야?”한서윤은 방송국에서 급히 야근이 생겼다고 했지만 분명 기분이 좋지 않아 보였다.신승우는 안경을 손에 든 채 김혜정을 바라봤다. 렌즈가 없는 그의 검은 눈동자는 더욱 깊고 어둡게 보였다.“뭘 먹었겠어요. 좋아하는 거 먹었겠죠.”한서윤은 먹는 걸 가리지 않는 편이라 좋아하는 음식이 많았다. 키우기 참 쉬운 아이였다.김혜정은 그녀가 밥 먹는 모습을 보는 걸 가장 좋아했다. 한서윤이 함께 밥을 먹으면, 그녀의 좋은 식욕에 영향을 받아 김혜정도 더 잘 먹게 됐다.하지만 결혼 3년 동안, 한서윤의 식사량은 예전 같지 않았고 밥을 먹을 때도 진심으로 만족하는 표정이 아니었다.한서윤이 너무 힘들었다는 걸 김혜정은 알고 있었다.그녀는 한서윤이 겪은 억울함을 떠올리며 자기도 모르게 신승우를 꾸짖었다.“네 눈은 평생 안 나을 거야! 네가 앞이 안 보이던 시절, 서윤이 얼마나 헌신적으로 돌봤는지 알잖아. 결혼까지 해놓고 왜 그렇게 함부로 대하는 거야!”신승우는 안손을 잠시 멈췄다가 다시 안경을 썼다. 그의 눈동자는 안개 낀 듯 흐릿해졌다.“저랑 그 사람 사이 일이예요. 관여하지 마세요.”...한서윤은 신영 별장을 떠나 묵원으로 차를 몰았다.그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곧장 자신의 침실로 들어가 캐리어를 꺼내 짐을 싸기 시작했다.신승우와 이혼하기로 한 이상, 더는 이곳에 머물 이유가 없었다.그녀는 밖에 집이 하나 있었다. 졸업하던 해에 사둔 집이라 급히 집을 구할 필요도 없었다.사실 챙길 것도 그리 많지 않았다.서랍 속 수면제, 좋아하는 책 몇 권, 갈아입을 옷 몇 벌 정도면 됐다. 나머지는 가져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책상 앞에 선 그녀는 그 위에 놓인 하얀 여우 장식품을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다.그 장식은 오래된 듯 조금 누렇게 변색하여 있었고, 여우의 귀 부분은 자주 만진 듯 매끈하게 닳아 있었다.사실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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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지난번에는 신승우가 갑자기 돌아오는 바람에 제대로 확인하지 못했었다.인제 보니 신승우는 아직 서명하지 않은 상태였다.하지만 그것은 중요하지 않았다.그가 언제 이혼 서류를 내밀지 모르는 채 마음 졸이기보다는 차라리 스스로 서명해 체면을 지키는 편이 나았다.한서윤은 펜을 들어 여자 측 서명란에 망설임 없이 이름을 적었다.혼인신고서를 쓸 때는 한 획 한 획 조심스럽게 썼었다. 혹시라도 잘못 쓰면 신승우가 마음을 바꿀까 봐 두려웠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이혼을 번복할까 걱정하지 않았다. 그럴 가능성은 없으니까.오히려 자신이 흔들릴까 봐 두려웠던 그녀는 후회할 여지를 남기지 않기 위해 빠르게 서명했다.서명을 마친 뒤, 그녀는 내용을 더 보지 않고 서류를 다시 서랍에 넣고 서재를 나섰다.그녀가 캐리어를 끌고 내려오는 것을 본 가정부는 깜짝 놀라 물었다.“사모님, 어디 가세요?”한서윤은 목적지를 말하지 않고 캐리어를 한쪽에 세워둔 뒤, 가정부에게 다가가 가방에서 카드 한 장을 꺼냈다.“아줌마, 어제 통화하시는 거 들었어요. 가족분이 아프시다고요. 일부러 들은 건 아니에요. 돈이 많이 필요하실 것 같은데 이거 급한 데 쓰세요.”최경희는 그 말을 듣자마자 집에 있는 나이 든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하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손사래를 쳤다.“안 돼요. 사모님, 이 돈은 받을 수 없어요. 평소에도 저한테 너무 잘해주시고, 월급도 올려주시며 이것저것 챙겨주시는데 어떻게 이런 돈까지 받아요.”“그동안 저 돌봐주신 거에 대한 정당한 대가예요. 받으세요.”한서윤은 카드를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말했다.“비밀번호는 제 생일이에요.”그녀는 미소 지으며 최경희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리고 돌아섰다.최경희는 이상함을 느끼고 본능적으로 캐리어를 붙잡고 눈물을 닦으며 물었다.“사모님, 도대체 어디 가시는 거예요?”“이사 나가려고요.”한서윤은 담담하게 답했다.최경희는 놀라 눈을 크게 떴다.“이사요? 그럼 대표님은 알고 계세요?”한서윤은 고개를 끄덕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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