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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혼 후, 빛나는 삶: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온서린은 시어머니가 내민 ‘배려’의 진심을 정확히 알아챘다.먼저 가문의 도리를 들먹이며 죄책감을 심어주고 기다렸다는 듯 육채원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노련한 수법.그것은 육채원을 온서린의 자리에 앉히려는 속셈인 동시에 온서린을 회사 일에서 떼어내 전업주부로 만들려는 속셈이었다.천장에 매달린 크리스털 샹들리에의 빛에 온서린은 눈이 부셨다. 동시에 마음 한구석에는 차가운 조롱이 내려앉았다.그녀는 고개를 들어 오나영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담담하게 말했다.“어머님의 염려는 잘 알겠어요.”온서린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은 채 품위 있는 태도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저는 제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요. 그것은 제 전문 영역이자 온서린이라는 존재의 가치이기도 하니까요. 게다가 아이에게 부모가 각자의 자리에서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은 그 어떤 말보다 중요한 교육이에요. 아린이는 충분히 이해할 만큼 영특한 아이고요.”그 순간 온서린의 품에 기대어 눈치를 보던 심아린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할머니~ 할머니는 나이가 많으니까 일 안 해도 되지만 우리 엄마는 아직 젊고 예쁘니까 당연히 일해야죠!”오나영은 당혹감에 반사적으로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철저한 관리 덕에 평생 늙었다는 소리를 들어본 적 없는 그녀였다.오나영은 불쾌감을 억누르며 아무렇지 않은 듯 화제를 돌렸다.“아까 아린이한테 물어보니 동생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하더구나. 심씨 가문에 대를 잇는 아들 하나 더 낳는 건 어떻겠니?”온서린은 잠깐 멈칫하다 입술을 가볍게 깨물었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때, 정적을 깨고 집 밖에서 엔진 정지 소리가 들려왔다. 심아린은 환한 표정으로 온서린의 품에서 벗어나 현관으로 달려 나갔다.어둠이 깔린 계단 위로 심강후가 회색 조끼에 흰 셔츠, 같은 색상의 정장 바지를 입고 계단을 올라오는 모습이 보였다. 잘생긴 얼굴에서 고급스러운 분위기가 물씬 풍겼다.그런데 세트로 되어 있는 그의 양복 상의는 아직도 육채원의 어깨에 걸쳐져 있는 듯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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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뭘 보고 그렇게 확신하는 거야?”오나영은 심강후의 태도가 답답하게 느껴졌다. 어떤 아내라도, 남편이 다른 여자에게 마음을 쓰는 것을 모르는 척할 수는 없을 테니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전 내뱉은 말은 반드시 지켜요.”심강후는 온서린의 감정에 대해 더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그래, 그럼 서린이 잘 좀 설득해. 채원이랑 사사건건 너무 따지지 않도록.”오나영의 마음은 이미 불쌍한 큰며느리 쪽으로 기울어 있었다.“그럴 일 없어요. 원래부터 이해심이 많은 사람이잖아요.”심강후는 말을 마치고 곧장 위층으로 올라가 침실로 들어갔다.침대 위에서는 심아린이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고 욕실에서는 물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심강후는 옆으로 누워 심아린과 함께 놀아주었다.“아빠, 언제면 엄마랑 동생 하나 만들어 줄 거예요?”심아린은 갑자기 툭 말을 던지고는 진지한 얼굴로 심강후를 바라봤다.“우리 반 친구들은 다 동생이 있는데 나만 없단 말이에요.”심강후는 딸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었다.“그러면 아린이는 남동생이 좋아 여동생이 좋아?”“둘 다요! 한 번에 두 명은 안 돼요?”까만 눈을 반짝이며 심각한 표정으로 묻는 아이의 모습에 심강후는 순간 웃음을 터뜨렸다.“그건 좀 어렵겠는데.”“왜 어려워요? 아빠, 빨리 엄마랑 뽀뽀 많이 해요. 그러면 두 명이 생길 거예요.”심강후는 딸의 말에 결국 웃음을 참지 못했다. 욕실에서 막 나오려던 온서린은 그 대화를 듣고 손잡이를 잡은 채 그대로 멈춰 섰다.“그래, 아빠가 노력해 볼게. 아린에게 여동생 아니면 남동생을 만들어줄게.”웃으며 대답하는 심강후의 목소리에 온서린은 심장이 아래로 꺼지는 것 같았다.추모식 날, 육채원은 심강후에게 온서린이 더 이상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었다.‘그걸 뻔히 알면서 지금 아린이한테 동생을 만들어주겠다고 약속한 거야?’“그러면 엄마한테도 물어볼래요. 엄마가 동의하는지.”심아린은 신이 나서 침대 위에서 폴짝폴짝 뛰었다.“아린아, 이 일은 엄마한테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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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3화

“아빠랑 엄마가 옆에 있으니까 너무 좋아요.”아이의 작은 마음속에 안정감이 스며들었다.심아린은 한 손으로는 아빠의 손가락 하나를 꼭 붙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온서린의 팔을 감싸안은 채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눈을 감았다.온서린과 심강후는 아이가 깊이 잠들 때까지 조용히 그 자리를 지켰다.아이의 숨소리가 고르게 가라앉자 온서린은 조심스럽게 손을 빼내고 대신 심아린이 가장 좋아하는 토끼 인형을 팔 안쪽에 놓아주었다.“옆방에 가서 일 좀 마무리할게요. 당신이 아이랑 같이 자요.”그녀는 낮게 말한 뒤, 심강후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방을 나갔다.다음 날은 심아린의 검진이 있는 중요한 날이었다.온서린은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 세수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옆방에서 갑자기 아이의 울음소리가 들려왔다.아빠와 엄마를 찾으며 흐느끼는 목소리에 그녀는 급히 방으로 달려갔다.어두운 방 안에서 심아린은 토끼 인형을 꼭 안고 침대에서 내려올 엄두도 내지 못한 채 울고 있었다.“엄마, 어디 갔어요? 엄마가 안 보여요...”온서린은 울먹이는 심아린을 품에 꼭 끌어안은 채 아이의 이마에 연달아 가볍게 입을 맞췄다.“엄마 여기 있어. 괜찮아, 무서워하지 마.”“엄마, 가지 마세요. 나 혼자 있는 거 싫어요...”심아린은 눈물 어린 얼굴을 온서린의 어깨에 묻고 잠옷을 꼭 움켜쥐었다.온서린은 아이에게 옷을 입혀 아래층으로 내려왔다. 그때 계단 옆에 서 있던 오나영이 그들을 불렀다.“아린이 벌써 일어났니? 할머니가 올라가 보려고 했는데.”“심강후는요?”온서린은 기가 막혔다. 아이와 같이 자면서 하룻밤만 지켜 달라고 했을 뿐인데 새벽에 일어나 보니 사람은 온데간데없고 자리는 비어 있었다.온서린의 차가운 목소리에 오나영은 잠시 멈칫하다 말했다.“채원이가 밤에 배가 아프다고 해서 내가 강후를 보냈어.”오나영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을 이었다.“채원이가 나한테 전화해서 내가 가려고 했는데 강후가 마침 물 마시러 내려왔길래 대신 보냈어.”온서린은 그 말에 이내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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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4화

심강후는 순간 멈칫하더니 곧바로 양손에 나눠서 들고 있던 물건들을 한데 모아 쥐고 비어 있는 팔로 심아린을 부드럽게 안아 올렸다.온서린과 강도윤의 시선이 동시에 그 장면을 향했다.그 곁의 육채원은 흐트러진 듯하면서도 철저히 계산된 긴 머리를 늘어뜨리고 있었고 옅은 병색이 감도는 화장은 그녀의 얼굴에 연약함과 요염함을 묘하게 덧입혀 놓았다.“서린 씨, 아린이랑 같이 병원에는 무슨 일로 온 거예요?”육채원이 아무렇지 않게 다가와 물었다. 온서린의 시선은 찰나의 순간 심강후를 스쳤다가 이내 미소 짓는 육채원의 얼굴에 머물렀다.“어젯밤에 채원이가 배가 좀 아프다고 해서 검사받으러 온 거야.”심강후가 짧게 상황을 설명하자 육채원이 투정 섞인 웃음을 띠며 말을 보탰다.“괜찮다는데 강후 씨가 기어이 데려왔잖아요. 덕분에 피도 두 통이나 뽑았고.”그녀는 생긋 웃으며 시선을 돌려 강도윤을 바라보았다.“도윤아, 너희 병원은 올 때마다 점점 더 좋아지는 것 같네.”그 풍경을 지켜보던 강도윤은 기이한 이질감을 느꼈다.조금 전 아이가 ‘아빠’라고 부르지 않았다면 겉모습만으로는 누가 진짜 가족인지 분간하기 어려울 만큼 두 사람의 모습은 자연스러웠다.“아린이 검사 결과는 어때? 아까 전화했을 때 안 받던데.”심강후의 시선이 온서린에게 향했다. 낮게 깔린 목소리에는 염려가 묻어 있었다.“이상 없어요.”온서린은 짧고 간결하게 답했다.“다행이네.”심강후는 부드러운 눈빛으로 심아린을 바라보며 물었다.“이제 집에 가는 거야?”온서린이 대답하려던 찰나, 육채원은 손등으로 입가를 가린 채 가벼운 기침을 내뱉으며 말했다.“강후 씨, 서린 씨랑 아린이 데려다줘요. 난 그냥 택시 타고 가면 돼요.”그 말에 심강후의 미간이 좁아지며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아주머니한테 같이 다니면서 좀 보살펴 달라고 하지. 너 이렇게 혼자 보내면 내가 마음이 놓이겠어?”육채원은 살짝 불만이 섞인 눈빛으로 그를 쏘아보며 말했다.“안 마신다고 대답했으면 됐잖아요.”“대답만 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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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화

강도윤은 전송된 파일 몇 장을 천천히 넘겨본 뒤 고개를 들었다. 그의 눈빛에는 칭찬과 호감이 묻어났다.“서린아, 네가 수정한 부분 아주 좋아. 회의에서 논의해 보고 결과 정리해서 다시 알려줄게.”“오빠는 이번 협력 가능성을 어떻게 보세요?”온서린의 목소리에는 이 프로젝트를 반드시 성사하고 싶어 하는 진심이 담겨 있었다.강도윤은 금테 안경을 가볍게 고쳐 썼다. 단정한 얼굴 위로 이성적인 판단이 깊게 내려앉았다.“초안 기준으로 보면 충분히 실행할 수 있는 안이야. 다만 예산이 예상보다 커질 거야. 특히 네가 제안한 정밀 바이오마커 분석이랑 장기 추적과 조사 부분은 한주 쪽에서도 자원이 많이 들어가거든. 선택지는 두 가지야. 일부 항목의 우선순위를 조정해서 단계적으로 진행하거나 아니면 외부 자금을 추가로 확보하는 방법.”온서린은 그 말의 핵심을 즉각 이해했다.“알겠어요. 회사 쪽에 정식으로 신청하고 예산 문제는 제가 해결해 볼게요.”강도윤은 그녀의 확신에 찬 눈빛을 잠시 바라보다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너는 정말 한생 그룹의 미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구나.”온서린은 잠깐 멈칫하다가 이내 담담하게 웃어 보였다.“제 몫의 배당금은 챙겨야 하니까요. 돈 문제에 있어서는 꽤 확실하게 챙기는 편이거든요.”강도윤이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알기로 너를 데려가려는 곳은 사방에 널렸어. 네가 정말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돈일까, 아니면 사람일까?”그의 말에 온서린의 심장이 쿵 하고 내려앉으며 굳게 닫혔던 기억의 문이 조용히 열렸다.사람들은 모두 그녀가 이익 때문에 심강후와 결혼했다고 생각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그녀의 마음 어딘가에는 심강후라는 이름이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몇 년 전, 바이오 업계 정상회의에서 지도교수의 갑작스러운 병가로 대신 무대에 올랐던 온서린은 한약재 단일 성분 분리 연구 자료를 발표하고 있었다.손에 쥔 마이크는 미세하게 떨렸고 그녀는 그저 이 자리를 빨리 끝내고 내려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그런데 앞줄에 앉아 있던, 짙은 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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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6화

소문에 의하면 심우혁은 해외 정상급 경영대학원 출신에 국제 투자 은행에서 수년간 실무를 쌓은 인재라고 했다.일 처리는 날카롭고 매서우며 어떤 틀에도 얽매이지 않는 스타일로, 심씨 가문 젊은 세대 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진 인재로 꼽혔다.온서린에게도 그 이름은 낯설지 않았다. 심씨 가문의 일원이 된 후 집안 연회 자리에서 몇 번 마주친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스물일곱. 젊고 거침없는 기세가 넘쳤으며 눈매에는 가문 특유의 분위기가 깃들어 있었다.하지만 심강후에게서 풍기는 차분하고 무게감 있는 위엄과는 다르게 그는 마치 통제 불가능한 야생마와도 같았다.온서린이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유하림이 조심스럽게 노크하며 들어왔다.“온 박사님, 부대표님이 오후 세 시 반에 아래 카페에서 뵙자고 하십니다.”온서린은 미세하게 눈썹을 치켜올렸다.심우혁은 부임 첫날 그룹의 어른들과 핵심 인사들을 찾아가지도 않았고 앞으로 책임져야 할 업무를 살피지도 않았다.무엇보다 복잡한 직급 체계를 단숨에 무시한 채 고작 연구부 팀장일 뿐인 그녀와 커피를 마시자고 했다.“알겠어요. 시간 맞춰 갈게요.”온서린은 미간을 찡그렸다.‘도대체 무슨 속셈인 거지?’오후 3시 30분, 온서린이 약속 시간에 맞춰 카페에 도착하자 심우혁은 이미 창가 자리에 앉아 있었다.오늘 그는 정장 차림이 아니었다. 질감 좋은 짙은 색 티셔츠와 베이지색 팬츠 차림으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그는 발소리를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형수님...”심우혁은 가볍게 입꼬리를 올리며 인사를 건넸다. 온서린은 심강후와 어딘가 닮은 듯한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상당히 준수하고도 젊은 얼굴이었다.심강후가 태산처럼 묵직하고 냉랭한 위엄을 지녔다면 심우혁은 칼집에서 채 빠져나오지 않은 날 선 검과 같았다.눈빛은 맑고 또렷했으며 그 속에는 세상을 얕잡아 보는 듯한 비릿한 장난기가 서려 있었다.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으며 눈이 부시도록 환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형수님, 앉으세요.”손을 들어 정중히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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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화

온서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얼굴은 여전히 평온하고 담담했다.“대표님의 제안은 고려해 볼 가치가 있겠네요. 하지만 현재 한생 프로젝트의 절반 이상이 제 손을 거치고 있어요. 만약 제가 자리를 옮긴다면 강후 씨가 순순히 동의하지 않을 텐데요.”“형수님...”심우혁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생각엔 형도 동의하실 거예요.”온서린은 잠시 침묵을 선택했다. 그가 내민 손을 섣불리 잡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쳐내지도 않은 채 묘한 여지를 남겼다.그녀는 자신이 한생에서 차지하는 기술적 입지를 고려할 때 심강후가 쉽게 놓아줄 리 없다고 확신했다.심우혁은 온서린의 태도에 당황하지 않고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했다.“형수님께서 왜 망설이는지 저도 이해해요. 급할 건 없어요. 앞으로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오늘 만남은 제 성의를 먼저 보여드리기 위한 자리였다고 생각해 주세요.”온서린은 조용히 미소를 짓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숍을 나선 심우혁은 다시금 싹싹하고 밝은 태도로 그녀의 곁을 걸으며 말했다.“아, 형수님. 이번 주 금요일에 내부 세미나가 하나 있어요. 업계 전문가들을 모시고 고서에 기록된 한약 처방을 현대 약리학 기술로 재탄생시킨다는 주제로 담론을 나누는 자리인데 분명 흥미로우실 거예요. 초대장은 이미 메일로 보내두었어요.”온서린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시간 되면 참석 할게요.”사무실로 돌아온 온서린은 미간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겼다.심우혁은 젊고 날카로웠으며 그 야심 또한 절대 작지 않았다. 그는 심씨 가문 내부의 권력 구도와 복잡한 관계를 어느 정도 꿰뚫고 있는 듯 보였다.그리고 어쩌면 그녀를 이용해 심강후가 그룹 내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에 도전장을 내밀려는 것인지도 몰랐다.혹은 전혀 다른 속내가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어떤 의도이든 새롭게 설립된 ‘강녕미래'라는 독립 플랫폼은 온서린에게 분명 매력적인 기회였다.그곳은 그녀가 자신의 힘을 비축하고 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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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8화

심우혁 일행이 실험실을 떠난 뒤에도 온서린의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차를 마신다는 핑계로 자리를 벗어나 사무실로 돌아온 그녀는 문가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춰 서 있었다.권지한의 성정을 그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그는 고작 높은 연봉에 혹해 연구소를 등지고 수익 중심의 의료 기관으로 옮길 위인이 아니었다.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심강후가 그조차 거절할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을 거라는 것.창밖의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졌지만 온서린의 내면은 오히려 서늘하게 얼어붙고 있었다.저녁 시간, 회사 인근의 식당에서 권지한의 환영 만찬이 열렸다. 이번 자리는 심강후가 직접 주최한 것이었다.상석에는 당연하다는 듯 심강후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의 왼쪽으로 심우혁과 육채원 그리고 한생의 주요 임원들이 있었다.온서린이 들어서자 심우혁이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형수님, 이쪽으로 앉으세요.”온서린은 심강후가 이 자리에 있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한생은 그룹 내에서도 순위권에 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룹의 총수인 그가 일개 기술 담당 임원의 환영회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다니 조금은 의외였다.“서린 씨, 여기 앉을래요? 내가 자리 옮겨줄게요.”육채원은 당당하고 거리낌없는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온서린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육채원은 특별히 작업복을 벗고 석양빛을 닮은 은은한 분홍빛 벨벳 롱드레스를 걸치고 있었다.긴 머리카락은 부드러운 웨이브가 더해져 어깨 위로 흩어져 내렸고 정교하게 완성된 얼굴에는 힘을 뺀 여유가 서려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오늘 이 자리가 그녀를 위해 마련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괜찮아요. 전 여기 앉을게요.”온서린은 연구개발부 부부장 옆자리에 조용히 앉으며 이 자리에 온 것을 후회했다.심우혁이 그녀에게 알려줄 때는 그저 가벼운 식사 자리라고만 했다.게다가 그녀와 권지한은 같은 업계인 데다 같은 스승을 둔 인연도 있으니 전문적인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덧붙였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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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화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온서린의 마음에는 그 순간 비웃음 섞인 자조만이 남았다.그녀는 줄곧 한생이 자신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믿어왔다.하지만 이제 보니 심강후가 손쉽게 영입한 인재 하나만으로도 자신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였다.이것은 단순한 직업적 위협을 넘어 자신을 향한 모욕이자 숨 막히는 포위망이었다.육채원은 심씨 가문의 딸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녀의 영향력은 심강후의 인사권에까지 미치고 있었다.온서린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죄송합니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가방과 외투를 챙겨 서둘러 식당을 나섰다. 문밖으로 나섰을 때, 뒤에서 심강후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같이 가.”온서린이 뒤를 돌아보자 어둠 속에서 심강후가 걸어오고 있었다.막 재킷을 걸치며 단추를 잠그는 그의 모습은 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눈이 시리도록 선명하고 잘생겼다.온서린은 한때 이 얼굴을 수없이 갈망하며 바라보았다. 베일 아래에서 그의 신부가 되던 그 찰나, 바보처럼 설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온서린은 짧게 쏘아붙였다.“당신 차 타고 가세요.”“왜?”심강후는 그녀의 날 선 감정을 알아챈 듯 물었다.“권지한 때문에 화라도 난 건가?”온서린은 대꾸 대신 자신의 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길가에 세워둔 벤츠에 다가가 문을 여는 찰나, 긴 다리로 따라붙은 그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올라탔다.“지금 한생은 새로운 관리 체계가 필요해.”시동을 걸자마자 옆자리에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강녕미래는 독립된 체계야. 우혁이가 추진력은 좋지만 경험은 부족해. 당신이 가서 중심을 잡고 자원을 조정해 봐. 투자 방향이 그룹 전략과 일치하도록 관리하고.”운전대를 쥔 온서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심강후를 바라보았다.그는 미간을 손으로 꾹 누르며 여전히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채원이가 또 할머니한테 지적받았어.”온서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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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0화

“그러니까 심씨 가문의 자원을 총동원해 육채원 씨의 앞길을 닦아 주고 명분까지 세워주는 걸로도 모자라, 경영상 리스크까지 감수하면서 심씨 가문에 남을 이유를 만들어주겠다는 뜻인가요?”온서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이전보다 한층 더 서늘해져 있었다.“그래.”심강후의 대답에는 티끌만큼 망설임도 없었다.“좋아요.”온서린은 형수님을 향한 그의 유별난 배려까지도 기꺼이 수용하기로 했다.심강후는 그녀가 자신의 결정에 동의하자 비로소 한숨을 내쉬었다.“지분 보상 외에 추가로 두 가지 조건이 더 있어요.”온서린은 운전대를 단단히 쥐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좋아, 말해봐.”심강후는 의외라는 듯 잠시 그녀를 응시했다. 온서린은 언제나 다투거나 욕심을 부리는 법이 없었다.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그 성정이야말로 그가 그녀를 가장 높이 사는 부분이었다.그러니 그녀가 내놓는 요구 또한 자신을 크게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으리라 믿고 있었다.심강후는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는 온서린이 조건을 내놓기만을 기다렸지만 그녀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별장에 도착했을 때, 심아린은 홀로 계단에 앉아 있었다.얇은 외투를 걸친 채 손에 쥔 마술봉의 불빛을 연신 켰다 껐다 하며 시간을 보내던 아이의 얼굴이 차 소리를 듣는 순간 환하게 피어났다.차를 세우고 온서린이 막 문을 열고 내리려는 순간 심강후가 그녀보다 한발 앞서 차에서 내렸다.심아린이 환한 얼굴로 심강후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아빠! 왜 엄마 차 타고 왔어요?”“아빠가 술을 좀 마셨거든.”아이를 품에 안은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다.“아빠, 이제 술 마시면 안 돼요.”고사리 같은 손이 그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의 얼굴이 사뭇 엄숙했다.“제 말 잘 들어야 해요, 알겠죠?”심강후는 낮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다음부턴 조금만 마시마.”그 광경을 바라보는 온서린의 가슴 한복판이 뜨겁게 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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