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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l Chapters of 이혼 후, 빛나는 삶: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샐러드를 집어 들던 온서린의 손끝이 찰나의 순간 멈칫했다.“그런 사람들은 원래 모든 걸 자기 뜻대로 통제하려는 부류거든. 조금이라도 자기 뜻대로 안 되거나 본인들이 공들여 연출해 놓은 화목한 가정이라는 연극에 맞춰주지 않으면 곧바로 사람을 몰아가. 철이 없다느니, 배려가 없다느니 하면서.”진소민의 말에 온서린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어졌다.친구가 묘사한 그 통제적인 모습이, 심강후가 육채원을 지키던 방식과 기묘하게 겹쳤기 때문이었다.“나는 지금 오히려 커리어를 위해 아이를 갖지 않은 걸 다행이라 생각해. 아이가 있었다면 이렇게 쉽게 끝내지도 못했을 거야. 그런 말이 있잖아. 자는 척하는 사람은 영원히 깨울 수 없다고. 아무리 애를 써도 사람의 마음은 어쩔 수 없더라.”온서린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딸에게로 향했다.서툰 손놀림으로 포크를 쥐고 주먹밥을 집으려 애쓰는 아이의 얼굴에는 아무런 걱정도 없는 맑고 천진한 미소만 남아 있었다.온서린은 오늘 점심이 왠지 목구멍으로 잘 넘어가지 않았다.예전 같았으면 그녀는 그저 친구에게 침착하라고, 감정적으로 휘둘리지 말고 조금만 더 참아보라고 위로했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온서린은 진소민이 흘려놓는 모든 말들을 단 한 마디도 빠짐없이 머릿속에 받아 적고 있었다.이혼 과정에서 필요한 증거 수집 방법, 믿을 수 있는 변호사를 고르는 기준, 재산을 지키는 방식 그리고 세상의 시선과 비난을 견뎌내는 법까지.월요일 아침, 한생 제약 회사는 또다시 긴장되고 분주한 분위기로 가득 차 있었다.인사부에서 소식 하나가 전해졌는데 정확한 사실관계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누군가 육채원이 인사부를 찾아가 사직서를 제출하는 것을 목격했다는 이야기였다.더불어 육채원이 아침 일찍 사직서를 제출했다는 소문은 자연스럽게 지난번 프로젝트 분쟁과 연결되며 또 다른 추측을 낳았다.온서린이 무리하게 프로젝트를 빼앗는 바람에 육채원이 결국 설 자리를 잃고 쫓겨나게 되었다는 식의 이야기였다.온서린은 심아린을 등교시킨 뒤 출근 시간에 맞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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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쨍그랑하는 소리와 함께 온서린의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이 탁자 위로 내던져졌다.비난의 화살이 자신을 향하는 건 괜찮았다. 하지만 딸은 아니었다.유하림은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온서린을 보며 허둥지둥 제 입을 몇 번이고 내리쳤다.“온 박사님, 제 입이 방정이었어요. 마음에 넣어두지 마세요. 저런 사람들은 본인이 잘 살지 못하니까 다른 사람 집안일을 함부로 떠들고 다니는 것뿐이에요.”“저 잠깐 나갔다가 올게요. 알려줘서 고마워요, 하림 씨.”온서린은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탕비실 근처로 다가갈수록 낮게 깔린 목소리들이 문틈 사이로 새어 나왔다.“온 박사님 딸이 선천성 심장병이라던데 진짜예요? 처음 듣는 소리인데.”“당연히 진짜죠. 그런 병은 상태에 따라 다르지만 수술해도 오래 살 수 있을지는 모른대요. 완치된 환자가 극히 소수라던데.”“쉿, 이 일은 여러분들한테만 알려주는 거예요. 함부로 소문내고 그러지 마세요. 만약 심 대표님 귀에 들어가면 우린 끝이에요.”“그런데 사실이라면 심 대표님도 참 운이 안 좋네요. 누구나 다 건강한 아이를 원할 텐데.”“그러니까 결국 엄마가 문제라는 거예요. 그렇게 모진 사람이니까 애도 문제 있는...”문 앞에 멈춰 선 온서린은 조용히 녹음을 마치고 차갑게 문을 밀어젖혔다.안쪽 탁자 위에는 누군가 마시다 남긴 커피잔이 놓여 있었다.온서린은 망설임 없이 그 잔을 집어 들어 가장 앞장서서 입을 놀리던 여자의 얼굴을 향해 그대로 내용물을 쏟아부었다.그녀는 육채원 팀의 일원이었고 온서린은 소문의 근원이 바로 이 여자일 것으로 의심했다.“온... 온 박사님!”모여 있던 사람들은 마치 깜짝 놀란 새 떼처럼 혼비백산하여 뒤로 물러났다.“온 박사님, 왜 이러시는 거예요?”커피를 뒤집어쓴 김수연이 끓어오르는 분노를 억누르며 묻자 온서린은 차가운 눈빛으로 그녀를 노려보며 말했다.“입이 참 싸네요.”“나는...”김수연은 순간적으로 당황하며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온서린은 몸을 돌리며 마지막 경고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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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육채원은 눈가가 순식간에 붉게 달아올랐으나 치밀어 오르는 감정을 간신히 억눌렀다. 그녀는 떨리는 숨을 들이마시며 입을 열었다.“아마 제가 떠나는 게 심씨 가문과 회사 모두에게 가장 좋은 선택일 거예요.”그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심강후는 손에 들고 있던 사직서를 반으로 찢어버렸다.그것으로 모자라 종이를 조각내더니 곁에 있는 쓰레기통에 무심히 던져 넣었다.“내가 말했지. 너를 지켜준다고. 난 한번 내뱉은 말은 지켜.”“강후 씨...”육채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그를 불렀다.“사직서는 수리하지 않을 거야.”심강후는 그제야 고개를 돌려 육채원을 바라보았다. 뺨을 타고 흐르는 그녀의 눈물을 보고 그는 휴지 한 장을 집어 들고 다가가 직접 닦아주었다.“울지 마. 어릴 때나 지금이나 억울하면 눈물부터 터지는 건 여전하구나.”“난...”육채원이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나도 심씨 가문을 떠나고 싶지 않아요. 회사도 그리고...”그 순간, 문밖에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육채원은 어쩔 수 없이 ‘당신’이라는 말을 삼킨 채 입을 다물었다.“그래, 이제 어른이잖아. 어릴 때처럼 고집부리지 마. 지난 금요일 가족 만찬에 부르지 않은 것 때문에 서운했다면 앞으로는 달라질 거야. 어떤 장소에든 네 자리는 반드시 있을 거니까.”심강후는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그녀를 달래며 팔을 가볍게 두드렸다.“다시 네 자리로 돌아가. 예전처럼 자신감 넘치고 눈부신 육채원으로.”육채원은 잠시 멍한 표정으로 그를 응시하다가 나직이 답했다.“알겠어요.”그녀가 돌아서서 문을 열자 그 앞에는 온서린이 서 있었다.“서린 씨, 강후 씨 찾는 거예요? 전 그러면 방해하지 않을게요.”늘 그러했듯 부드럽고 맑은 육채원의 목소리에 온서린의 몸이 미세하게 굳어졌다.“들어와.”안쪽에서 심강후의 깊고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온서린은 안으로 걸음을 옮긴 뒤 문을 닫았다.“무슨 일이야?”심강후는 방금 막 골치 아픈 숙제를 끝낸 사람처럼 피로가 역력한 얼굴이었다.온서린은 군더더기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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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팀원들과 공적인 업무를 논의하고 있던 육채원은 김수연이 무례하게 문을 밀치고 들어오자 미간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심 대표님이 저를 해고하시겠대요! 아침에 탕비실에서 온 박사님 딸 이야기했다는 이유로요. 박사님, 그건 그냥 무심코 나온 말이었어요. 잠깐 입이 가벼웠던 것뿐이라고요!”육채원의 눈빛은 얼음장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수많은 부하 직원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녀는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김수연 씨, 회사에서는 늘 말조심하라고 내가 몇 번이나 주의를 줬잖아요. 기억 안 나요?”“저, 그게...”김수연은 순간 얼어붙어 말을 잇지 못했다.“심 대표님의 결정이라면 나도 도울 수 없어요. 김수연 씨도 알잖아요. 아이는 부모한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존재란 걸. 심씨 가문 아이를 함부로 입에 올린 순간 결과는 이미 정해진 거예요.”육채원은 단호하게 말을 끝내고 손을 들어 문을 가리켰다.“나가세요.”김수연은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설명하기 힘든 답답함과 억울함이 가슴을 짓눌렀다.그녀는 육채원이 친구들과 나누던 통화 내용을 몰래 엿듣고 단서를 얻었을 뿐이었다.그리고 온서린에게 불리한 소문을 퍼뜨리면 육채원에게 점수를 딸 수 있을 거라 착각했지만 결과는 참혹했다.육채원이 보여 주는 카리스마에 몇몇 부하들은 순간적으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김수연은 정말 자업자득이었다. 육채원처럼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하는 사람이 그녀를 위해 회사의 철칙을 어길 리가 없었다.그녀는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신세가 되었고 아첨하려다가 되려 역효과를 낸 창피함과 후회에 휩싸인 채 결국 볼품없이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오후 세 시가 조금 넘은 시간.온서린은 모니터 앞에서 비전 3상 재검토 보고서를 살피고 있었다. 그때 문밖에서 심상치 않은 소란이 일었다.자리에서 일어난 온서린이 문가로 향하자 유하림이 급히 달려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온 박사님, 제제 실험실 쪽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아요!”“가서 확인하죠.”온서린은 망설임 없이 유하림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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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오후 세 시 반, 온서린의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화면에 뜬 이름은 심강후였다.그녀는 전화를 받으며 낮게 물었다.“무슨 일이에요?”“아린이 하교시켜 주기로 했는데 채원이가 아직 병원에서 관찰 중이라 내가 자리를 비울 수가 없어. 당신이 데리러 가.”모니터를 응시하던 온서린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딸에게 한 약속이면 무슨 일이 있어도 끝까지 지켜야죠.”“지금은 내가 움직일 상황이 아니라고 했잖아.”온서린은 잠시 그와 더 설전을 벌일까 생각했지만 이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어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녀는 업무를 대강 정리하고 가방을 챙겨 회사 건물을 나섰다.운전대를 잡고 학교로 향하는 길, 그녀의 머릿속에는 문득 한 구절이 스쳤다.‘숨 막히는 자리에서 벗어나야만 비로소 자신의 계절이 온다.’처음 그 문장을 접했을 때는 아무런 감흥도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 글자들이 입안에 맴돌며 자꾸만 되뇌게 되었다.어쩌면 이미 자신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이곳을 이제는 완전히 떠나야 할 때인 듯했다.학교 앞, 하교하는 아이들의 행렬 사이에서 심아린은 머리를 양쪽으로 동그랗게 묶은 채 까만 눈동자로 아빠를 찾고 있었다.온서린이 아이의 앞에 서자 심아린은 작은 입을 삐죽거리며 투덜거렸다.“아빠가 오기로 했잖아요.”“아빠가 갑자기 바쁜 일이 생겨서 오늘은 엄마랑 가자. 외할머니 댁에서 저녁 먹을까?”온서린이 다정한 목소리로 묻자 아이는 금세 표정을 풀며 고개를 끄덕였다.“네, 좋아요! 빨리 가요.”온서린은 집으로 향하는 길에 과일 가게에 들렀다. 계산하던 온서린은 심아린의 손목이 덩그러니 비어 있는 것을 보고 멈칫하며 물었다.“아린아, 시계는 어디 있어?”“깜빡했어요.”심아린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답했다.“아침에 아빠가 데려다줄 때 좀 급했거든요.”그 말에 온서린의 심장이 차갑게 식어 내렸다. 그 시계는 아이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체크하는 장치였다.단 하루도, 한순간도 빼놓아서는 안 되는 생명줄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심강후는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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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심강후 씨.”계단 중간에 멈춰 선 온서린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거실에 서 있는 남자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아린이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은 건 아빠의 책임을 저버린 거예요. 형수님이 쓰러진 건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죠. 다 큰 어른이라면 자신의 건강과 일은 스스로 책임져야 하는 거 아닌가요?”온서린은 잘생긴 심강후의 얼굴이 점점 굳어지는 것을 보며 잠시 멈칫하다 말을 이었다.“지금 그 말을 나에게 하는 이유가, 내가 죄책감을 느끼길 바라는 건가요, 아니면 이해하거나 책임지라는 건가요?”온서린은 점점 더 구겨지는 심강후의 얼굴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아 다시 천천히 계단을 올라갔다.그 자리에 멍하니 서 있던 심강후의 얼굴이 시퍼렇게 질렀다.형이 떠난 직후부터 온서린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차갑다 못해 온기라고는 한 조각도 남지 않은 타인처럼.그는 문득 6년 동안 함께한 온서린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 채 살아왔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어쩌면, 급하게 한 결혼이 애초부터 잘못된 선택이었는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이어졌다.심강후는 위스키병을 꺼내 잔에 따르고 얼음 몇 알을 던져 넣은 뒤 단숨에 들이켰다.식도를 타고 내려가는 독한 열기가 심장을 거칠게 자극했다. 그는 다시 잔을 채워 들고 서재에 있는 금고 앞에 섰다.비밀번호를 입력하자 금고 문이 열렸다. 안에는 많은 것이 들어 있지 않았다.심강후는 갈색 봉투에 밀봉된 서류를 하나 꺼냈다. 손가락이 그 위에 잠시 머물렀다.잠시 뒤 그는 들고 있던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고 봉투를 풀어 서류 몇 장을 꺼냈다.종이는 세월의 흔적으로 누렇게 바랬지만 제목만은 선명했다.[스테디 플로워 프로젝트 핵심 기술 협력 및 후속 협약서]맨 아래에는 6년 전의 날짜와 함께 심강후와 온서린, 두 사람의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었다.당시 온서린의 서명은 지금처럼 날카롭고 단단한 비즈니스용 서명이 아니라 가지런하고 정갈한, 조금은 수줍음이 묻어나는 글씨체였다.그때 두 사람은 이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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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테이블 위에는 갓 조리된 음식들이 정갈하게 놓여 있었다. 직원들이 물러나자 조각 장식이 새겨진 육중한 나무문이 소리 없이 닫혔다.오나영은 찻잔을 들어 가볍게 한 모금 마신 뒤 입을 열었다.“서린아, 요즘 집안에 큰일이 많아 네가 고생했다.”온서린은 시선을 낮춘 채 차분히 대답했다.“어머님, 제가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어요.”“채원 그 아이 말이다...”오나영이 찻잔을 내려놓고 온서린을 응시하며 말을 이었다.“어제 쓰러진 일로 강후가 혹시 너를 탓했니?”온서린은 잠시 멈칫했다. 오나영은 언제나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보는 예리한 눈을 가지고 있었다. 온서린은 담담하게 물었다.“형수님은 좀 어떠신가요?”“괜찮아. 오늘 퇴원해도 된다고 해서 사람을 보내 집으로 데려왔다.”오나영의 말투에는 묘한 함의가 섞여 있었고 온서린은 그 의미를 어렵지 않게 읽어냈다.세간에는 육채원이 비록 심씨 성을 쓰지는 않지만 오나영이 친딸처럼 아낀다는 소문이 파다했다.명문가 딸들이 가진 것은 그녀도 당연히 가졌고 심지어 그들이 꿈도 못 꾸는 것들까지 육채원은 손쉽게 얻어냈다.“네가 서운했을 거라는 건 안다. 강후 그 아이가 때때로 옛정에 치우쳐 선을 넘을 때가 있지.”오나영은 말을 이으며 온서린을 지긋이 바라보았다.“하지만 채원이는 지금 의지할 곳이 없는 처지다. 큰애가 떠난 이상 채원이는 이제 심씨 가문에서 책임져야 해. 내 뜻을 이해하겠니?”온서린이 고개를 끄덕였다.“압니다. 다만 정당하게 머물 수 있는 명분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오나영의 눈빛이 순식간에 깊게 가라앉았다. 온서린은 찻잔을 들어 목을 축인 뒤 말을 이었다.“아주버님이 돌아가셨으니 차라리 대외적으로 형수님을 심씨 가문의 딸로 맞이했다고 하는 건 어떨까요? 그렇게 관계를 정리하면 함부로 입을 놀리는 사람들도 사라질 것 같은데요.”“그 일은 나중에 다시 논의하자꾸나. 나도 생각은 하고 있다.”오나영이 갑자기 날카로운 시선으로 온서린을 쏘아보았다.“서린아, 너는 강후의 아내이자 심씨 가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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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테이블에는 심강후와 그의 오랜 벗이자 사업 파트너들이 모여 있었다.한 사람은 강도윤의 사촌 동생인 강지후 그리고 나머지 두 사람은 도시의 실권을 쥔 재벌 2세였다. 한눈에 봐도 지극히 사적인 관계를 위한 자리였다.그리고 심강후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사람은 샴페인 색 슬립 원피스를 입은 육채원이었다.온서린은 미간을 미세하게 찌푸렸다.분명 병가 중이라던 그녀에게선 병색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고 오히려 그 어느 때보다 생기 있게 빛나고 있었다.육채원은 고개를 살짝 기울인 채 남자의 이야기를 미소 지으며 듣고 있었다.와인잔을 가볍게 흔들던 그녀는 무슨 말을 들었는지 손가락으로 입술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온서린은 걸음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화장실로 향해 차가운 물에 손을 씻었다. 다시 복도로 나왔을 때 안쪽의 분위기는 한층 더 묘하게 달아올라 있었다.육채원이 애교 섞인 미소를 지으며 남은 와인을 들이키려던 찰나였다.옆자리에 앉아 있던 심강후는 너무도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그녀의 가느다란 손목을 낚아챘다.그러고는 그녀의 손을 그대로 이끌어 잔에 남은 와인을 자신의 입속으로 단숨에 털어 넣었다.그 동작에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었고 지극히 익숙한 소유욕이 스며 있었다.육채원은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이내 얼굴을 붉게 물들였다.그녀는 원망과 기쁨이 뒤섞인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며 슬쩍 손을 뺐지만 특유의 새침하면서도 애교 섞인 손끝으로 그의 손등을 부드럽게 스치고 지나갔다.주변 사람들은 익숙한 풍경을 보는 듯 짓궂은 웃음을 터뜨렸다.심강후는 무심한 표정으로 그녀의 빈 잔을 치워주고는 대신 따뜻한 차 한 잔을 새로 주문해 그녀 앞에 놓아주었다.온서린은 그 모든 광경을 망막에 새기듯 눈에 담았다. 머리 위 조명이 비현실적으로 밝게 느껴져 잠시 시야가 일렁였다.그녀는 얕은 숨을 들이마시며 어깨를 곧게 세웠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자신의 비즈니스 파트너들이 기다리는 회의 자리로 돌아갔다.시선이 레드 와인 잔에 머물렀지만 차를 몰고 귀가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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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육채원은 고개를 들어 심강후를 향해 화사한 미소를 지어 보이더니 이내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자연스럽게 그의 품에 체중을 싣고 허리를 맡긴 채 나란히 출입구 쪽으로 걸어 나왔다.온서린은 본능적으로 이 자리를 피하고 싶었다. 하지만 박윤재가 이미 자신을 발견한 이상 지금 자리를 뜨는 것은 오히려 패배자처럼 보일 수 있었다.온서린은 도망치는 대신 그 자리에 곧게 서 있었다.심강후와 육채원의 시선이 마침내 문 앞에 선 온서린에게 닿았다. 육채원이 먼저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를 띠며 말했다.“서린 씨, 여기 어쩐 일이에요?”심강후의 시선에도 얕은 의문이 스쳐 지나갔다. 온서린은 흐트러짐 없는 목소리로 담담하게 대답했다.“오늘 건화의 김 대표님 그리고 식약처 관계자분들과 저녁 약속이 있었어요.”심강후는 그제야 잊고 있던 일정이 떠오른 듯 미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육채원은 기다렸다는 듯 심강후의 품에서 몸을 살짝 떼어내며 말을 보탰다.“서린 씨, 강후 씨랑 나는 친구들 모임이 있어서 잠깐 나온 거예요. 서린 씨도 우리가 어릴 때부터 같이 지낸 사이인 건 알잖아요. 내가 쓰러졌다는 소식 듣고 기어이 밥 사 준다고 불러내더라고요.”심강후가 옆에 서 있던 강지후에게 무심하게 지시했다.“지후야, 채원이 집까지 좀 데려다줘. 지금은 가든하임에 머물고 있어.”강지후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알았어. 나한테 맡겨.”육채원은 아이처럼 밝게 웃으며 대꾸했다.“그럼 부탁할게, 지후 동생.”“나 너보다 딱 석 달 늦게 태어났거든?”강지후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육채원이 능청스럽게 대답했다.“그래도 동생은 동생이지.”그녀는 장난스러운 기운을 담아 심강후를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아니면 나 이제 강후 씨도 다시 오빠라고 부를까요? 예전처럼.”심강후의 목소리가 낮고 거칠게 가라앉았다.“장난 그만하고 가서 쉬어.”육채원은 얄밉게 혀를 살짝 내밀어 보이더니 온서린을 향해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서린 씨, 그럼 우리 먼저 갈게요.”심강후는 직접 뒤에 세워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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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문자 알림음이 정적이 감도는 차 안에서 유난히 날카롭게 울렸다.이 순간부터 온서린은 더 이상 심강후의 마음이 어디에 머물고 있는지 궁금해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그와 육채원이 어떤 관계로 어떻게 지내든 이제는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그리고 무엇보다 지긋지긋한 체면 따위는 이제 더 이상 지키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이제 온서린은 자신과 딸 심아린을 위해 이 진흙탕 같은 인연을 끊어내고 온전한 자유를 향해 나아가야 했다.그때 휴대전화가 다시 한번 진동했다. 온서린은 주건우 변호사의 답장이라 짐작하며 다음 신호 대기 중에 전화를 집어 들었다.하지만 화면에 떠오른 발신인은 육채원이었다.[서린 씨, 나 국내에 남아서 회사 일 계속하고 싶어요. 강후 씨는 이미 동의했는데 서린 씨도 동의할 거죠?]속이 뻔히 보이는 능청스러운 문장에 온서린은 메마른 웃음이 비죽 새어 나왔다.예전에 온서린은 육채원을 온화하고 성실하며 삶에 충실한 사람이라 믿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보니 자신은 눈뜬장님이나 다름없었다.그것은 온화함이 아니라 남자들 틈에서 교묘하게 처세하는 약은 여자의 기만적인 행위 예술에 불과했다.결혼이라는 방어막 뒤에 숨어 그저 고요하고 온화하게 햇살을 따라가던 해바라기처럼 살던 육채원은 이제 자신의 버팀목이 사라지자 가면이 하나둘 벗겨지기 시작했다.그리고 드러나는 것은 독초처럼 끈질기게 얽힌 집착이었고 그 뿌리는 지금 심강후를 향해 촉수를 뻗고 있었다.심아린이 본가에 있었기에 오늘 밤 온서린 역시 그곳에서 밤을 지내야 했다.백미러 너머로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붙는 심강후의 벤틀리가 묘하게 신경을 긁었다.교차로에 진입하는 찰나, 온서린은 돌발적으로 핸들을 꺾어 차선을 변경했다.지름길로 치고 나가는 온서린의 차량에 벤틀리는 즉각 반응하지 못한 채 도로 아래로 미끄러지며 방향이 엇갈렸다.“대표님, 사모님 차가...”심강후는 갑자기 방향을 튼 벤츠를 응시하며 담담하게 대꾸했다.“됐어. 그냥 본가로 가.”온서린이 먼저 본가에 도착했을 때 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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