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온서린은 오랫동안 짝사랑한 남자와 마침내 결혼에 성공했다. 그녀의 마음은 온통 설렘과 기대로 가득 차 있었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어느 날, 온서린은 남편과 과부가 된 형수님의 은밀한 대화를 우연히 듣게 되었다. “강후 씨, 당신의 아이를 낳게 해줘요.” 그 짧은 한마디는 그녀가 그토록 공들여 지켜온 평화로운 일상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온서린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이 애정을 쏟고 양보로 유지해 온 결혼생활이 실은 처음부터 치밀하게 꾸며진 한 편의 연극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남편의 마음은 이미 다른 곳에 가 있었고 ‘옛정'이라는 욕망은 탐욕스럽게 그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그녀의 가정과 연구 성과 그리고 그녀의 미래마저도. 하지만 온서린은 울거나 매달리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조용히, 지금까지 지녀왔던 모든 온정을 거둬들이고 냉정한 눈으로 현실을 똑바로 마주했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사직서와 이혼 서류를 내밀었다. 아이를 데리고, 오로지 다른 여자에게만 다정한 이 남자를 완전히 떠나기로 결심했다. 삶의 중심을 다시 일로 되돌리자 신기하게도 그녀 주변에는 새로운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 잘생긴 외교관, 마음 깊은 부원장, 그리고 그림자처럼 밤낮으로 그녀 곁을 지키는 어린 추종자까지. 심강후는 그제야 자신이 아내에게 얼마나 소홀하고 차가웠는지를 깨달았다. 그녀가 던지고 간 이혼 서류는 그를 순간적으로 정신 차리게 했다. 자신만을 바라보던 아내는 자신이 형수님에게 지나친 마음을 쏟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미 떠날 결심을 굳혔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았다. 마침내, 누군가 온서린 앞에 무릎을 꿇고 청혼하는 그 순간. 두 눈이 벌겋게 충혈된 심강후가 달려와 그녀를 거칠게 품 안에 가두며 말했다. “나 아직 이혼 서류에 도장 안 찍었어. 중혼죄로 감옥 가고 싶어?”
view more“그러니까 심씨 가문의 자원을 총동원해 육채원 씨의 앞길을 닦아 주고 명분까지 세워주는 걸로도 모자라, 경영상 리스크까지 감수하면서 심씨 가문에 남을 이유를 만들어주겠다는 뜻인가요?”온서린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는 이전보다 한층 더 서늘해져 있었다.“그래.”심강후의 대답에는 티끌만큼 망설임도 없었다.“좋아요.”온서린은 형수님을 향한 그의 유별난 배려까지도 기꺼이 수용하기로 했다.심강후는 그녀가 자신의 결정에 동의하자 비로소 한숨을 내쉬었다.“지분 보상 외에 추가로 두 가지 조건이 더 있어요.”온서린은 운전대를 단단히 쥐고 또렷한 목소리로 말을 꺼냈다.“좋아, 말해봐.”심강후는 의외라는 듯 잠시 그녀를 응시했다. 온서린은 언제나 다투거나 욕심을 부리는 법이 없었다.물처럼 부드러우면서도 강인한 그 성정이야말로 그가 그녀를 가장 높이 사는 부분이었다.그러니 그녀가 내놓는 요구 또한 자신을 크게 곤란하게 만들지는 않으리라 믿고 있었다.심강후는 술기운이 남아 있었다. 그는 온서린이 조건을 내놓기만을 기다렸지만 그녀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이내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별장에 도착했을 때, 심아린은 홀로 계단에 앉아 있었다.얇은 외투를 걸친 채 손에 쥔 마술봉의 불빛을 연신 켰다 껐다 하며 시간을 보내던 아이의 얼굴이 차 소리를 듣는 순간 환하게 피어났다.차를 세우고 온서린이 막 문을 열고 내리려는 순간 심강후가 그녀보다 한발 앞서 차에서 내렸다.심아린이 환한 얼굴로 심강후의 품으로 뛰어들었다.“아빠! 왜 엄마 차 타고 왔어요?”“아빠가 술을 좀 마셨거든.”아이를 품에 안은 그의 목소리는 한없이 다정했다.“아빠, 이제 술 마시면 안 돼요.”고사리 같은 손이 그의 어깨를 톡 건드렸다. 어른 흉내를 내는 아이의 얼굴이 사뭇 엄숙했다.“제 말 잘 들어야 해요, 알겠죠?”심강후는 낮은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다음부턴 조금만 마시마.”그 광경을 바라보는 온서린의 가슴 한복판이 뜨겁게 타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온서린의 마음에는 그 순간 비웃음 섞인 자조만이 남았다.그녀는 줄곧 한생이 자신을 절실히 필요로 한다고 믿어왔다.하지만 이제 보니 심강후가 손쉽게 영입한 인재 하나만으로도 자신은 언제든 대체될 수 있는 존재였다.이것은 단순한 직업적 위협을 넘어 자신을 향한 모욕이자 숨 막히는 포위망이었다.육채원은 심씨 가문의 딸과 마찬가지라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녀의 영향력은 심강후의 인사권에까지 미치고 있었다.온서린은 더 이상 이 자리에 있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젓가락을 내려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죄송합니다. 집에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보겠습니다.”말을 마친 그녀는 가방과 외투를 챙겨 서둘러 식당을 나섰다. 문밖으로 나섰을 때, 뒤에서 심강후의 낮은 목소리가 들려왔다.“같이 가.”온서린이 뒤를 돌아보자 어둠 속에서 심강후가 걸어오고 있었다.막 재킷을 걸치며 단추를 잠그는 그의 모습은 희미한 불빛 속에서도 눈이 시리도록 선명하고 잘생겼다.온서린은 한때 이 얼굴을 수없이 갈망하며 바라보았다. 베일 아래에서 그의 신부가 되던 그 찰나, 바보처럼 설레던 순간이 스쳐 지나갔다.온서린은 짧게 쏘아붙였다.“당신 차 타고 가세요.”“왜?”심강후는 그녀의 날 선 감정을 알아챈 듯 물었다.“권지한 때문에 화라도 난 건가?”온서린은 대꾸 대신 자신의 차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길가에 세워둔 벤츠에 다가가 문을 여는 찰나, 긴 다리로 따라붙은 그가 자연스럽게 조수석에 올라탔다.“지금 한생은 새로운 관리 체계가 필요해.”시동을 걸자마자 옆자리에서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강녕미래는 독립된 체계야. 우혁이가 추진력은 좋지만 경험은 부족해. 당신이 가서 중심을 잡고 자원을 조정해 봐. 투자 방향이 그룹 전략과 일치하도록 관리하고.”운전대를 쥔 온서린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심강후를 바라보았다.그는 미간을 손으로 꾹 누르며 여전히 낮고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채원이가 또 할머니한테 지적받았어.”온서린
심우혁 일행이 실험실을 떠난 뒤에도 온서린의 마음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차를 마신다는 핑계로 자리를 벗어나 사무실로 돌아온 그녀는 문가에 기대어 잠시 숨을 고르듯 멈춰 서 있었다.권지한의 성정을 그녀는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그는 고작 높은 연봉에 혹해 연구소를 등지고 수익 중심의 의료 기관으로 옮길 위인이 아니었다.그렇다면 가능성은 하나뿐이었다. 심강후가 그조차 거절할 수 없는 파격적인 조건을 내걸었을 거라는 것.창밖의 햇살은 눈부시게 쏟아졌지만 온서린의 내면은 오히려 서늘하게 얼어붙고 있었다.저녁 시간, 회사 인근의 식당에서 권지한의 환영 만찬이 열렸다. 이번 자리는 심강후가 직접 주최한 것이었다.상석에는 당연하다는 듯 심강후가 자리 잡고 있었고 그의 왼쪽으로 심우혁과 육채원 그리고 한생의 주요 임원들이 있었다.온서린이 들어서자 심우혁이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형수님, 이쪽으로 앉으세요.”온서린은 심강후가 이 자리에 있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다.한생은 그룹 내에서도 순위권에 드는 회사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룹의 총수인 그가 일개 기술 담당 임원의 환영회에 직접 모습을 드러내다니 조금은 의외였다.“서린 씨, 여기 앉을래요? 내가 자리 옮겨줄게요.”육채원은 당당하고 거리낌없는 태도로 자리에서 일어나 인사를 건넸다.온서린의 시선이 그녀에게 닿았다. 육채원은 특별히 작업복을 벗고 석양빛을 닮은 은은한 분홍빛 벨벳 롱드레스를 걸치고 있었다.긴 머리카락은 부드러운 웨이브가 더해져 어깨 위로 흩어져 내렸고 정교하게 완성된 얼굴에는 힘을 뺀 여유가 서려 있었다.그 모습은 마치 오늘 이 자리가 그녀를 위해 마련된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였다.“괜찮아요. 전 여기 앉을게요.”온서린은 연구개발부 부부장 옆자리에 조용히 앉으며 이 자리에 온 것을 후회했다.심우혁이 그녀에게 알려줄 때는 그저 가벼운 식사 자리라고만 했다.게다가 그녀와 권지한은 같은 업계인 데다 같은 스승을 둔 인연도 있으니 전문적인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고 덧붙였을
온서린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겉으로 드러난 얼굴은 여전히 평온하고 담담했다.“대표님의 제안은 고려해 볼 가치가 있겠네요. 하지만 현재 한생 프로젝트의 절반 이상이 제 손을 거치고 있어요. 만약 제가 자리를 옮긴다면 강후 씨가 순순히 동의하지 않을 텐데요.”“형수님...”심우혁이 낮은 목소리로 덧붙였다.“제 생각엔 형도 동의하실 거예요.”온서린은 잠시 침묵을 선택했다. 그가 내민 손을 섣불리 잡지도, 그렇다고 완전히 쳐내지도 않은 채 묘한 여지를 남겼다.그녀는 자신이 한생에서 차지하는 기술적 입지를 고려할 때 심강후가 쉽게 놓아줄 리 없다고 확신했다.심우혁은 온서린의 태도에 당황하지 않고 여전히 여유로운 미소를 유지했다.“형수님께서 왜 망설이는지 저도 이해해요. 급할 건 없어요. 앞으로 시간은 얼마든지 있으니까요. 오늘 만남은 제 성의를 먼저 보여드리기 위한 자리였다고 생각해 주세요.”온서린은 조용히 미소를 짓고 가볍게 고개를 숙여 보였다.자리에서 일어나 커피숍을 나선 심우혁은 다시금 싹싹하고 밝은 태도로 그녀의 곁을 걸으며 말했다.“아, 형수님. 이번 주 금요일에 내부 세미나가 하나 있어요. 업계 전문가들을 모시고 고서에 기록된 한약 처방을 현대 약리학 기술로 재탄생시킨다는 주제로 담론을 나누는 자리인데 분명 흥미로우실 거예요. 초대장은 이미 메일로 보내두었어요.”온서린은 잠시 멈칫하다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시간 되면 참석 할게요.”사무실로 돌아온 온서린은 미간을 찡그린 채 생각에 잠겼다.심우혁은 젊고 날카로웠으며 그 야심 또한 절대 작지 않았다. 그는 심씨 가문 내부의 권력 구도와 복잡한 관계를 어느 정도 꿰뚫고 있는 듯 보였다.그리고 어쩌면 그녀를 이용해 심강후가 그룹 내에서 행사하는 영향력에 도전장을 내밀려는 것인지도 몰랐다.혹은 전혀 다른 속내가 숨어 있을 수도 있었다.하지만 어떤 의도이든 새롭게 설립된 ‘강녕미래'라는 독립 플랫폼은 온서린에게 분명 매력적인 기회였다.그곳은 그녀가 자신의 힘을 비축하고 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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