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안녕, 나의 도플갱어: Chapter 1 - Chapter 8

8 Chapters

[제1화] 그의 닮은꼴, 이름은 윤해솔.

끼이이익—!비명보다 날카로운 마찰음이 고막을 난도질했다.빗물에 젖은 아스팔트 위를 거대한 쇳덩어리가 비릿하게 미끄러지는 소리.뒤이어 들려온 건, 사람의 뼈와 살이 짓이겨질 때나 날 법한 둔탁하고 기괴한 파열음이었다.차체를 타고 올라온 잔혹한 진동이 은재의 발바닥을 타고 뇌수까지 짜릿하게 파고들었다. “어머, 저게 뭐야! 사람 친 거 아니야?” “피…! 피 나와요, 어떡해!” 방금 전까지 빗줄기를 뚫고, 품 안에 무언가 소중한 것을 꼭 감춘 채 해맑게 손을 흔들던 현우의 실루엣이 순식간에 시야에서 사라졌다.높은 버스 창문에 매달린 은재의 눈앞엔 오직 죽음처럼 회색빛인 장대비만이 유리창을 난도질하고 있었다.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가장 완벽한 지옥이었다.보이지 않기에, 은재의 머릿속에선 현우의 몸이 차갑게 식은 도로 위를 굴러가는 환영이 수천 번씩 재생되며 그녀를 찢어발겼다. ‘현우야. 안 돼, 현우야…!’ 이름을 불러야 하는데, 심장이 목구멍 끝까지 치밀어 올라 숨조차 쉬어지지 않았다.버스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리지 않았고, 은재는 과부하가 걸린 회로처럼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오직 덜덜 떨리는 손끝으로 유리창을 긁어내릴 뿐이었다.그 순간, 찰나의 환상 같은 기억들이 비릿한 빗물 속으로 처참하고도 형체 없이 번져가고 있었다. ‘금방 올게, 은재야. 먼저 타서 기다려.’ 오직 은재 앞에서만 가면을 벗고 무방비하게 웃던 남자.은재에게 들려줄 마지막 선물이라며 수줍게 미완성 곡을 흥얼거리던 그 눈부신 눈동자.그 모든 찬란함이 지금, 역한 타이어 타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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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네 노래가 들리는 곳으로.

“…찾았어. 현우를 찾았다고.” “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소망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3년 내내 멈춰있던 시간을 살던 은재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장롱 깊숙한 곳에서 먼지 쌓인 캐리어를 끌어내는 모습은 당혹 그 자체였다.하지만 은재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넌 당장 이 영상에 나오는 바 이름을 알아봐. 난 그동안 짐을 싸고 있을 테니까.” “언니! 잠깐만, 진정 좀 하고! 얼굴도 제대로 안 나오는 영상 하나 봤다고 지금 어딘지도 모르는 데를 가겠다는 거예요?” 소망이는 은재를 붙잡으려 했지만, 은재는 이미 캐리어 지퍼를 열고 옷가지를 쑤셔 넣고 있었다. “진정하게 생겼어? 저 손가락, 저 음색… 세상에 강현우 말고 또 누가 저렇게 노래를 해?” “그거야 요즘 세상에 닮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휴, 알았어요! 일단 찾아나 볼게요!” 소망이는 은재에게 무슨 일인지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지만, 지금 말리지 않으면 은재가 맨몸으로라도 집을 뛰쳐나갈 기세라 서둘러 노트북 앞에 앉았다.자판을 두드리는 소망의 손가락이 바빠졌다. “…찾았다! 여기 루나(Luna)라는 카페겸 라이브 바예요. 지도 보니까… 세상에, 진짜 멀긴 하네. 완전 구석진 바닷가 마을인데요?” “어디야. 어디냐고.” 은재가 짐을 싸다 말고 소망의 어깨 너머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봤다.화면에는 낡은 페인트가 벗겨진 작은 바의 전경과 함께 주소가 떠 있었다. “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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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전 윤해솔이라고 합니다.

“…언니? 언니, 왜 그래요? 또 어디 아파?” 소망의 다급한 목소리에 은재가 번쩍 정신을 차렸다.핸들을 쥔 손등 위로 차가운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아니. 그냥… 그날 현우가 가지러 갔던 게 뭔지, 이제야 알 것 같아서.” “그게 뭔데요? 언니, 진짜 이상해. 언제 다시 예전에 이은재로 돌아올래요?” 소망이 투덜대며 창밖을 가리켰다.어느새 차는 해안도로에 접어들어 있었고, 짙푸른 동해 바다가 성난 파도를 몰아치며 모습을 드러냈다. “다 왔어요. 저기 앞에 보이는 마을이죠? 루나 바 있다는 데가.” 소망의 말대로 낡은 이정표가 바닷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은재는 눈물을 닦아내고 시선을 정면으로 고정했다.3년 전 현우가 주머니에 넣고 끝내 전하지 못했던 그 진실이, 비릿한 바닷바람을 타고 은재의 심장을 기괴하게 두드리고 있었다.은재의 차가 비릿한 소금기를 머금은 마을 어귀로 천천히 들어섰다.3년 전 그 터미널에 버려졌던 은재의 시간이, 비릿한 소금기를 머금은 채 다시 사납게 흐르기 시작했다. ***낡은 바의 문을 열었다.끼익, 비명을 지르는 경첩 소리가 정막한 실내를 가로질렀다.바깥의 세찬 바닷바람과는 대조적으로, 바 안은 낮게 깔린 재즈 선율과 함께 묵직한 나무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카운터에서 잔을 닦고 있던, 사장같이 보이는 남자가 고개를 들어 은재와 소망이를 향해 인사했다. “어서 오세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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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3년을 멈춰 선 채로 너의 이름만 불렀다

해솔은 그대로 등을 돌려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은재는 숨 쉬는 법조차 잊은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그런 은재의 어깨를 소망이 다급히 감싸 안으며 해솔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소망의 눈엔 분노보다 깊은 관찰력이 서려 있었다. “모른다라…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윤해솔 씨.” 해솔의 발걸음이 멈췄다.소망은 비난하는 대신, 그저 팩트를 짚어내듯 담담하게 물었다. “그쪽이 누군지, 여기서 무슨 일을 겪었는지는 모르겠어요. 하지만 사람 인생 3년이나 멈춰 서게 만든 얼굴을 하고 나타났으면, 최소한 그 당혹감 정도는 이해해 주셔야 하는 거 아닌가요? 모른다는 말 한마디로 사람 바보 만드는 게 아니라요.” “…당혹감?” 해솔이 흥미롭다는 듯 고개를 비스듬히 꺾었다. 소망은 흔들림 없이 말을 이었다.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거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만약 조금이라도 짚이는 게 있는데 모른 척하시는 거라면 그건 좀 잔인하네요. 우리 언니, 당신 목소리 하나에 매달려 여기까지 달려왔거든요. 그 간절함이 보인다면 저렇게 무책임하게 선부터 긋지는 마시라고요.” 카운터의 도윤이 끼어들려 했지만, 소망의 차분한 기세가 그를 가로막았다.해솔은 소망의 눈동자를 가만히 응시하다가, 낮게 실소를 흘렸다. “글쎄요. 누군지 모르는 분들의 간절함까지 제가 책임져야 한다면, 그건 저한테 너무 가혹한 예의 같은데요.” 해솔은 짧은 묵례를 남기고 무대 뒤 커튼 너머로 사라졌다.소망은 그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노려본 뒤에야, 넋이 나간 듯 서 있는 은재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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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당신을 최고로 만들어줄게, 내 밑에서.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붉은 노을이 고성의 바닷가를 붉게 감쌌다.은재는 창가에 앉아 타오르는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보며 해솔의 라이브를 기다렸다.낮에는 간단한 식사를 팔던 소박한 공간이 어스름한 어둠과 함께 은은한 조명으로 탈바꿈하며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유명한 유튜버 스타라는 말이 증명이라도 되듯, 라이브 시간이 다가오자 적막하던 낡은 바 안으로 손님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고요했던 공간은 금세 사람들의 낮은 웅성거림으로 채워졌다.그때, 사람들의 환호와 박수 소리 사이로 해솔이 천천히 무대 위로 올라섰다. “안녕하세요.” 마이크를 타고 흐르는 낮은 중저음.그 짧은 인사 한마디에 은재의 심장이 또다시 기괴하게 요동쳤다.그 목소리를 듣는 순간, 은재는 자신도 모르게 3년 전의 지독한 과거 속으로 침잠했다.현우가 실종된 후, 은재는 환청 같은 그의 목소리를 쫓아 안 가본 곳이 없었다.비 오는 거리에서, 이름 모를 라디오 채널에서, 심지어 낯선 이의 대화 속에서도 그의 음색을 찾아 헤맸던 끔찍한 3년이었다.하지만 지금 무대 위에 선 남자는, 은재가 그토록 갈구하던 목소리로 은재를 전혀 모르는 타인처럼 내려다보고 있었다.은재는 카운터 모서리를 꽉 쥔 채, 조명 아래 선 해솔의 입술이 다시 열리기를 숨죽여 기다렸다.그가 마이크를 고쳐 쥐는 사소한 손짓조차 은재의 기억을 난도질했다.마이크 헤드를 감싸 쥐는 손가락의 각도, 입술과 마이크 사이의 아슬아슬한 거리감까지.그것은 오직 강현우만이 가진 고유한 버릇이었다. “오늘 들려드릴 첫 곡은… 저번에 예고해 드린 대로, 아직 제목을 붙이지 못한 노래입니다.&rdq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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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수면 위로.

그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 수화기 너머 서울의 펜트하우스에서는 유리창이 깨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 “사… 살아있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 한결은 아이폰을 쥔 손을 눈에 띄게 떨고 있었다.방금 전까지 서울의 야경을 안주 삼아 즐기던 여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그는 수화기 너머의 흥신소 직원이 들으라는 듯 악을 썼다. “뉴스에서 다 그랬어! 사고 현장 혈흔만 봐도 생존 가능성 없다고. 기사마다 사망 추정이라고 도배가 됐었는데, 어떻게 네가 살아있을 수가 있어!” 한결의 목소리가 볼품없이 뒤틀렸다.3년 전 그날, 타임라인을 도배했던 사고 현장의 자극적인 사진들과 렉카들의 라이브 방송이 망막을 어지럽혔다. “그리곤 흔적도 없이 사라졌잖아! 사고 현장에는 피만 가득한데 사람은 없어져버렸고, 그럼 당연히 죽었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 아니야? 상식적으로 그 몸 상태로 사라졌으면 벌써 진작에 죽어 없어졌어야 정상 아니야?” 분명 강현우라는 이름은 그날로 이 바닥에서 영원히 아웃됐다고 믿었다.아니, 그래야만 했다.그래야 그놈 그림자에 가려져 평생 2인자로 썩을 뻔했던 제 자신이, 그때서야 이 바닥의 원탑으로 누구에게나 사랑받을 수 있었으니까.그는 거칠게 넥타이를 풀어헤쳤다. 숨이 막혀왔다.거울 속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마치 남의 인생을 훔쳐 살다 들킨 애송이처럼 창백하게 질려 있었다.한결은 끓어오르는 불안을 억누르지 못한 채, 수화기에 대고 그대로 말을 이었다. “더 알아봐. 샅샅이 뒤져보라고! 뭔가 구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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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당신의 노래가 들리는 가장 완벽한 거리, 0m

3년 전, 고성 앞바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밤이었다.거대한 파도가 집어삼킬 듯 해변을 때렸고, 루나 바의 창문들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 비명을 질러댔다. “아, 진짜… 도와주는 게 하나도 없네.” 도윤은 낮은 욕설을 내뱉으며 비옷을 걸쳐 입었다.해안가 바로 앞에 위치한 창고 뒤편의 배수구가 말썽이었다.폭풍우가 올 때마다 제대로 물이 빠지지 않아 가게 안까지 침수될 위기였다.그는 랜턴 하나를 손에 쥔 채,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으로 몸을 던졌다.배수구에 걸린 이물질들을 거칠게 걷어내던 그때였다.창고 너머 백사장 쪽에서 둔탁한 파도 소리와는 다른, 이질적인 무언가가 바위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도윤은 본능적으로 손전등의 빛을 해변 쪽으로 돌렸다.그리고 그 끝에, 파도에 밀려온 검은 덩어리 하나를 발견했다.처음에는 그저 파도에 휩쓸려 온 부표나 커다란 목재인 줄 알았다.하지만 거세게 휘몰아치는 빗줄기 사이로 희미하게 드러난 건, 사람의 형체였다.도윤은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쪽을 향해 진흙탕을 박차며 달리기 시작했다.거친 숨소리가 빗소리를 뚫고 터져 나왔다. “이봐요! 이봐요!!” 필사적으로 달려간 그곳에는 한 남자가 폐허처럼 널브러져 있었다.도윤이 남자를 뒤집어 눕히고 손전등 불빛을 비춘 순간, 그는 들이마시던 숨을 그대로 멈추고 말았다.빗물에 젖어 창백하게 질린 남자의 얼굴.뉴스에서, 전광판에서, 그리고 거리의 모든 스피커에서 하루에도 수십 번씩 쏟아지던 그 얼굴, 바로 강현우였다.빗물에 씻겨 내려가는 피와 차갑게 식은 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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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오늘부터 한집 식구하죠.

부동산 사장님과 함께 루나 바 앞에 섰을 때였다.끼익, 경첩이 비명을 지르는 소리와 함께 세월의 흔적이 가득한 낡은 나무문이 안쪽에서 밀려 나왔다.문틈 사이로 쏟아져 나온 것은 눅눅하게 가라앉은 오래된 목재 냄새와 서늘한 공기였다.그 문 뒤에서 도윤과 은재의 시선이 허공에서 날카롭게 맞부딪혔다.도윤은 은재를 곁눈질로 한 번 훑더니, 이내 옆에 서 있는 부동산 사장님에게로 시선을 옮겼다.손때 묻은 앞치마를 대충 툭툭 털어내며,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척 건조한 목소리를 내뱉었다. “오늘은 무슨 일로 찾아오신 거죠?” 사장님이 은재와 소망을 번갈아 가리키며 넉살 좋게 웃었다. “아이고, 김 사장! 마침 잘 나왔네. 여기 이 친구들이 집을 구하고 있는데, 내가 옆에 그 창고 자리를 좀 보여주려고 왔거든. 루나 바랑 붙어 있기도 하고, 주인인 이 사장 의견도 들어봐야 하니까!” 사장님의 설명이 끝나기도 전에, 도윤의 미간이 눈에 띄게 찌푸려졌다.그는 문손잡이를 잡은 손에 힘을 주며 단호하게 잘라 말했다. “안 됩니다. 거긴 사람 살 곳 아니에요. 그냥 창고로나 쓰는 곳이지, 그리고 누구 들일 생각 또한 없습니다.” 예상치 못한 단칼 같은 거절에 부동산 사장님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사장님은 어떻게든 분위기를 수습해보려 중간에 끼어들어 말을 보탰지만, 도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은 채 요지부동이었다.오히려 그의 시선은 더욱 날카로워져, 앞에 선 은재를 차갑게 꿰뚫을 뿐이었다. “괜히 고생하지 말고 다른 깨끗한 집이나 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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