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찾았어. 현우를 찾았다고.”
“네?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리를.”
소망이의 눈이 동그랗게 커졌다.
3년 내내 멈춰있던 시간을 살던 은재가, 갑자기 미친 사람처럼 장롱 깊숙한 곳에서 먼지 쌓인 캐리어를 끌어내는 모습은 당혹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은재의 눈은 그 어느 때보다 형형하게 빛나고 있었다.
“넌 당장 이 영상에 나오는 바 이름을 알아봐. 난 그동안 짐을 싸고 있을 테니까.”
“언니! 잠깐만, 진정 좀 하고! 얼굴도 제대로 안 나오는 영상 하나 봤다고 지금 어딘지도 모르는 데를 가겠다는 거예요?”
소망이는 은재를 붙잡으려 했지만, 은재는 이미 캐리어 지퍼를 열고 옷가지를 쑤셔 넣고 있었다.
“진정하게 생겼어? 저 손가락, 저 음색… 세상에 강현우 말고 또 누가 저렇게 노래를 해?”
“그거야 요즘 세상에 닮은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아휴, 알았어요! 일단 찾아나 볼게요!”
소망이는 은재에게 무슨 일인지 꼬치꼬치 캐묻고 싶었지만, 지금 말리지 않으면 은재가 맨몸으로라도 집을 뛰쳐나갈 기세라 서둘러 노트북 앞에 앉았다.
자판을 두드리는 소망의 손가락이 바빠졌다.
“…찾았다! 여기 루나(Luna)라는 카페겸 라이브 바예요. 지도 보니까… 세상에, 진짜 멀긴 하네. 완전 구석진 바닷가 마을인데요?”
“어디야. 어디냐고.”
은재가 짐을 싸다 말고 소망의 어깨 너머로 모니터를 뚫어지게 바라봤다.
화면에는 낡은 페인트가 벗겨진 작은 바의 전경과 함께 주소가 떠 있었다.
“가게 정보 보니까… 사장님은 김도윤이라는 분이고, 영상 속 남자는 여기서 일하는 라이브 가수인가 봐요. 이름은 윤해솔… 근데 언니, 이거 봐요. 이 사람 사진.”
소망이 클릭한 가게 홍보물 구석, 기타를 메고 찍은 윤해솔의 사진은 은재가 기억하는 현우와는 사뭇 달랐다.
현우는 늘 차갑고 예민한 국민가수의 아우라를 뿜어냈지만, 사진 속 남자는 낡은 체크 남방을 걸치고 동네 백구와 장난을 치며 바보처럼 환하게 웃고 있었다.
“현우오빠는 강아지를 싫어해서 강아지 근처에도 안 갔잖아요. 근데 이 남자는… 대형견한테도 잘 가는데요? 그냥 얼굴만 닮은 거 아냐?”
은재의 손이 멈췄다.
사진 속 남자의 미소는 낯설었지만, 그 눈매만큼은 지독히도 선명했다.
“아니, 맞아. 그럴 리가 없어.”
은재는 확신에 찬 목소리로 가방 지퍼를 채웠다.
***
그 시각, 강원도 고성.
바닷바람에 낡은 간판이 끼익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카페 겸 라이브 바 루나(LUNA).
“해솔아. 오늘 예약 손님 좀 있다. 준비됐어?”
바 카운터에서 앞치마를 두른 채 잔을 닦던 도윤이 무대 쪽을 향해 나직한 목소리로 물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듬직한 체격에 니트가 잘 어울리는 그는, 존재만으로도 바 안의 공기를 차분하게 만드는 묘한 힘이 있었다.
무대 뒤에서 기지개를 켜며 나타난 해솔이 그를 향해 싱긋 웃었다.
“걱정 마세요, 형. 오늘 목 상태 최고거든요.”
햇살 아래 부서지는 해솔의 웃음을 바라보던 도윤의 눈매에 아주 잠깐, 알 수 없는 그림자가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내 그는 평소처럼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무리하지 말고.”
도윤은 다시 잔을 닦는 손길에 집중했다.
마치 무언가 깊은 생각에 잠긴 듯, 그의 시선은 해솔이 떠난 빈 무대에 한참을 머물렀다. 밀려오는 파도 소리와 함께, 루나의 아침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
강원도로 향하는 차 안, 조수석에 앉은 소망은 창밖 풍경을 즐길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평소라면 휴게소 맛집 리스트를 읊으며 은재를 귀찮게 했겠지만, 지금 운전석에서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핸들을 움켜쥔 은재의 손가락 마디마디는 피기 없이 하얗게 질려 있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앞차를 들이받고서라도 목적지에 닿겠다는 듯, 은재의 시선은 정면의 아스팔트에 무섭게 고정되어 있었다.
그 옆얼굴에서 느껴지는 서슬 퍼런 집념은 흡사 추격전이라도 벌이는 액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위태롭고 날카로웠다.
“언니, 진짜 괜찮겠어요? 거기 갔는데 만약 현우오빠… 아니면 어쩔 건데?”
소망이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은재는 대답 대신 엑셀을 조금 더 깊게 밟았다.
“아니면, 아니라고 확인하면 돼. 내 눈으로 직접 보고, 목소리 직접 듣고… 그래야 내 3년도 여기서 마침표를 찍든, 아니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든 할 거 아니야.”
“아이고, 말은 잘하지. 3년 내내 헤어진 거 아님만 카톡 프로필에 적어놓고 프로필 한 번을 안 바꾼 사람이 누구더라?”
소망이가 짐짓 얄밉게 대꾸하며 등받이에 몸을 깊숙이 기댔다.
하지만 시선은 슬쩍 은재의 눈치를 살피고 있었다.
3년 만에 처음으로 은재의 눈에 생기가 돌고 있었다.
비록 그게 광기 섞인 집념일지라도, 죽은 듯이 가라앉아 있던 모습보다는 백배 나았다.
소망이가 잠시 창밖을 응시한 사이, 차 안에는 낮게 깔린 엔진음만이 맴돌았다.
그 단조로운 소음 위로 은재의 시야가 흐릿해지며, 3년 전 그해 여름의 기억이 무섭게 밀려들었다.
나지막한 목소리가 은재의 귓가를 스쳤다.“내 노래가 들리는 곳이면 어디든 내가 있는 거야. 꼭 기억해.”
3년 전, 사고 당일 오후 현우의 작업실.
에어컨 바람조차 닿지 않는 뜨거운 오후였지만, 두꺼운 방음벽 너머 작업실 안은 세상의 열기와 완벽하게 차단되어 있었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강현우가 유일하게 무거운 가면을 벗고 아이처럼 굴 수 있는 공간.
현우는 곡 작업에 몰두하다 말고 은재의 무릎을 베고 누웠다.
“은재야, 나 가끔 무서워. 사람들이 내 노래는 사랑하는데, 진짜 나라는 사람은 모르는 것 같아서.”
현우가 은재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리며 나른하게 물었다.
은재는 그의 헝클어진 머리칼을 정리해주며 웃었다.
“국민 가수께서 무슨 배부른 소리야? 다들 너만 바라보는데.”
“아니, 그런 거 말고. 내가 어디서 뭘 하든 내 목소리 하나로 네가 날 찾아낼 수 있었으면 좋겠어. 세상이 다 나를 잊어도, 너만은 내 목소리만 듣고도 나인 걸 알아봐 준다고 약속해줘.”
현우는 은재의 손등에 제 뺨을 부비며 아이처럼 속삭였다.
그날따라 현우의 눈빛은 유독 깊었고, 마치 무언가 예감이라도 한 사람처럼 절박했다.
“내 노래가 들리는 곳이면 어디든 내가 있는 거야. 꼭 기억해. 그게 내가 너한테 남기는 유일한 신호니까.”
그 진심 어린 약속을 뒤로하고, 두 사람은 짧은 여행을 위해 터미널로 향했다.
버스에 오르기 직전, 현우가 아차 싶었는지 제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은재를 먼저 버스 계단 위로 밀어 올렸다.
“차에 뭘 좀 두고 왔어. 금방 올게, 은재야. 먼저 타서 기다려.”
해맑게 웃으며 멀어지던 뒷모습.
현우는 작업실에서 미처 챙기지 못한 그 실버 링을 꺼내기 위해 달려갔다.
은재의 약지에 끼워주며 그 약속을 완성하려 했던 그 비밀을 기어이 제 주머니 속에 챙겨 넣고, 다시 버스를 향해 돌아오던 길이었다.
은재는 버스 창문에 이마를 맞댄 채, 현우가 사라진 주차장 입구만을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금방 온다던 사람의 그림자는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
그저 아무도 나타나지 않는 텅 빈 아스팔트 위로 빗줄기만 굵어지는 것을, 은재는 넋을 잃고 지켜보았을 뿐이었다.
“먼저, 지난 사고로 많은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아울러 저를 둘러싼 악의적인 루머들의 실체를 이 자리에서 바로잡고자 합니다.”해솔의 목소리는 차분했다.“그동안 유포된 허위 사실들은, 소속사 선배였던 박한결 씨가 악의를 품고 선동한 가짜 뉴스입니다. 이에 대한 증거와 허위 제보 정황은 이미 모두 확보하여 수사 기관에 제출한 상태입니다.”해솔이 대형 스크린을 가리키자, 도윤이 수집해 둔 박한결의 허위 제보 메일과 IP 추적 자료들이 화면에 띄워졌다.기자들 사이에서 거대한 웅성거림이 터져 나왔다.이미 팬의 목격담으로 의심을 품고 있던 터라, 해솔의 폭로는 사실상 확인사살이었다.박한결이 꾸며낸 거짓말들의 실체가 대중 앞에 낱낱이 까발려졌다.정적을 깨고 한 기자가 질문을 던졌다.“그럼 박한결 씨가 기자회견 직전 차량으로 돌진한 이유가, 가짜 뉴스의 실체가 폭로될까 두려워 입막음을 하려 했던 게 맞습니까?”“네, 맞습니다.”해솔은 기자의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대답했다.해솔의 단호한 태도에 분위기는 완벽하게 이쪽으로 넘어왔다.사실상 확인사살이었다.해솔은 옆에 선 은재를 바라보았다.여전히 긴장한 채 정면만 응시하는 옆모습이 보였다.해솔은 테이블 아래로 은재의 손을 찾아내어 힘주어 쥐었다.은재가 놀란 듯 고개를 돌려 마주 보았다.해솔은 가볍게 눈빛을 건넨 뒤,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그리고, 마지막으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은재 씨.”일주일 만에 들려온 해솔의 목소리에 은재는 눈물을 터뜨리며 그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해솔은 평소와 다름없이 다정한 손길로 은재의 등을 토닥였다.3년 전의 기억 같은 건 전혀 모르는 듯, 여전히 다정하고 든든한 연인인 윤해솔의 모습 그대로였다.얼마 후, 은재가 의사를 부르러 잠시 병실을 비운 사이 도윤이 안으로 들어왔다.침대에 걸터앉은 해솔과 도윤의 시선이 무겁게 맞물렸다.도윤은 문을 닫자마자 목소리를 낮춰 면담실에서 들었던 이야기를 조심스럽게 꺼냈다.“해솔아, 의사가 외상 수술 중에 위벽 쪽에서 종양을 발견했다고 하더라. 암이 강하게 의심된대. 환자 의식 돌아오는 대로 정확한 정밀 검사부터 다시 해보자고 하더군.”도윤의 말에 해솔의 눈동자가 잔잔하게 가라앉았다.방금 사고로 죽을 고비를 넘긴 이 타이밍에 찾아온, 잔인한 소식이었다.해솔은 멍하니 닫힌 병실 문을 바라보았다.문밖에는 자신을 위해 일주일 밤낮을 지새운 은재가 있었다.“……은재 씨한테는 비밀로 해주세요, 형.”해솔이 나직하게 입을 열었다.“은재씨랑 약속했거든요. 강현우씨처럼 혼자 두지 않겠다고. 우선 검사부터 조용히 받겠습니다.”도윤은 주먹을 꽉 쥐었다가, 이내 씁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딸칵, 그 타이밍에 맞춰 병실 문이 열렸다.의사를 부르러 나갔던 은재가 서둘러 들어왔다.은재의 시선이
방 안에는 각종 기계장치가 규칙적으로 내는 기계음만이 정적을 깨우고 있었다.은재는 일주일째 의식을 찾지 못하는 해솔의 침대 곁을 지켰다.마른 수건으로 해솔의 창백한 손가락 사이사이를 정성스럽게 닦아내리는 은재의 손길은 조심스러웠다.툭 치면 부러질 것처럼 마른 손목을 보며 가슴이 아려왔다.소나기가 그친 뒤 맑았던 그 여름날, 혼자 두지 않겠다며 다정하게 웃어주던 얼굴이 자꾸만 겹쳐 들었다.“제발… 깨어나기만 해줘요.”은재는 해솔의 이마 위에 덮인 머리칼을 쓸어 넘기며 나직하게 읊조렸다.도윤이 골절 상처가 깊어 회복이 늦어지는 것뿐이라며 안심시켰기에, 은재는 그 말을 믿고 있었다.그의 속이 암이라는 잔인한 진단으로 부서지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같은 시각, 도윤은 서울 변두리의 한 폐건물 지하로 향하고 있었다.어두컴컴한 공간의 문이 열리자 먼지 냄새가 훅 끼쳤다.방 한가운데에는 의자에 묶인 채 엉망이 된 박한결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사고 직후 도주했던 그를, 도윤이 움직인 지 반나절도 되지 않아 후배들이 쫓아 낚아챈 결과였다.“어, 어욱…! 당신 이거 미친 짓이야! 당장 안 풀어? 법대로 해, 경찰 불러!”박한결은 덜덜 떠는 와중에도 악을 썼다.하지만 도윤은 대답 대신 의자 앞으로 다가와 뚜벅뚜벅 멈춰 섰다.차갑게 내려다보는 도윤의 눈빛에는 감정이 전혀 실려 있지 않았다.법대로 처리하기 위해 경찰에 넘기는 건 쉬웠다.하지만 구속영장이 기각되거나 훗날 그가 풀려난다면, 눈이 돌아간 박한결이 또다시 해솔에게 어떤 미친 짓을 저지를지
빨간불이 켜진 수술실 문은 굳게 닫힌 채 열릴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은재는 수술실 앞 대기실 의자에 위태롭게 걸터앉아 있었다.옷에 묻은 해솔의 피가 비에 젖어 눅눅하게 굳어가고 있었지만, 추위를 느낄 새도 없었다.초점 없는 눈으로 바닥만 응시하는 은재의 손은 여전히 잘게 떨리고 있었다.“은재 씨!”복도 끝에서 다급한 발소리와 함께 도윤과 소망이 달려왔다.은재의 몰골을 확인한 소망이 헉, 소리를 내며 은재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이게 무슨 일이야, 언니… 해솔 씨는? 수술 들어간 거야?”은재는 대답 대신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도윤은 굳게 닫힌 수술실 문과 은재의 옷에 남은 핏자국을 번갈아 바라보며 턱을 짓씹었다. 박한결을 그렇게 경고하고 짓눌러 놓았는데도, 결국 사달을 내고야 만 것이다.도윤의 눈에 서늘한 살기가 스쳤다.소망이 은재를 다독이는 사이, 도윤은 쉴 새 없이 진동하는 휴대폰을 확인했다.화면에는 이미 스타더스트를 집어삼킨 억측 기사들이 실시간으로 도배되고 있었다.[속보] 스타더스트 윤해솔, 기자회견 직전 의문의 교통사고… 정면돌파 무산?
그날 오후, 스타더스트 사옥 앞.하늘은 잔뜩 흐려 있었고, 아스팔트 위로 굵은 빗줄기가 사정없이 쏟아지고 있었다.정식으로 예고된 기자회견장으로 향하기 위해 해솔이 은재의 배웅을 받으며 로비를 나섰다. 빗속에서도 사옥 앞 도로에는 수많은 취재진의 카메라가 빽빽하게 진을 치고 있었다.해솔이 횡단보도로 발을 내딛는 순간이었다.위이이잉-!빗소리를 뚫고 지독한 엔진 굉음이 울렸다.검은색 차량 한 대가 통제선을 뚫고 해솔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돌진했다.운전대를 잡은 박한결의 눈은 이미 뒤집혀 있었다.비가 내려 어두컴컴해진 시야 속에서, 박한결은 오직 해솔을 끝장내겠다는 광기 하나로 차량의 상향등을 미친 듯이 켠 채 달려들었다.“해솔 씨!”은재의 날카로운 비명이 터진 순간, 쏟아지는 빗줄기를 찢고 돌진하는 차량의 쌍라이트 불빛이 해솔의 시야로 사정없이 쏟아져 들어왔다.수증기를 뚫고 망막을 찌르는 그 강렬한 백색광이 닿는 찰나, 해솔의 머릿속으로 거대한 이명과 함께 지독한 기시감이 몰아쳤다.어디선가 본 듯한 불빛이었다.비릿한 빗물 냄새, 눈이 멀어버릴 것 같던 지독한 광량, 그리고 자신을 향해 맹렬하게 좁혀오던 죽음의 감각.언젠가 한 번 분명히 겪었던 것만 같은 낯익은 공포가 뇌리를 사납게 스쳤지만, 그 형체는 지독한 안개에 가려진 듯 끝내 잡히지 않았다.‘…이 느낌, 뭐지.’잡힐 듯 잡히지 않는 의문의 잔상을 삼킨 순간, 거대한 충격이 온몸을 강타했다.쾅-!둔탁한 마찰음이 빗소리를 집어삼켰다.찰나의 순간, 해솔의 신체가 허공으로 부서지듯 붕 떴다가
후배의 그 짧은 한마디에 도윤은 지체 없이 기어를 변속했다.엑셀을 밟는 발끝에 힘이 실리며 차가 도로 위를 미끄러지듯 내달렸다.늘 한 박자 늦게 움직이던 시선이 백미러와 내비게이션 화면을 서늘하게 훑었다.본능적으로 가라앉는 호흡이 낯설지 않았다.도윤이 도착한 곳은 강남의 한 한적한 공유 오피스였다.문을 열고 들어서자, 이미 도윤의 후배들에게 사방이 가로막힌 채 사시나무 떨듯 떨고 있는 사내가 보였다.단독 타이틀을 달고 은재를 난도질하는 기사를 써 내려간 가짜 뉴스의 시발점, 김 기자였다.도윤이 뚜벅뚜벅 걸어가 노트북 화면을 덮어버리며 김 기자의 앞에 섰다.낮게 가라앉은 도윤의 눈빛에 김 기자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했다.“말해. 누구 대가리에서 나온 작품이야.”도윤의 건조하고 서늘한 목소리가 좁은 오피스 안에 무겁게 가라앉았다.제 손목을 부러뜨릴 듯 꽉 쥐고 있는 덩치들과 도윤의 포스에 완전히 압도당한 김 기자가 침을 삼켰다.“단독 띄우고 인생 종 치고 싶지 않으면, 묻는 말에만 답해.”“바, 박한결이요…! 박한결이 시켰습니다! 선금받고 소스도 그놈이 다 던져준 겁니다!”김 기자의 입에서 박한결의 이름이 튀어나온 순간, 스타더스트를 발칵 뒤집어놓은 가짜 뉴스의 실체.그 지저분한 선동의 끝에는 박한결이 있었다.도윤은 곧바로 박한결을 파고들기 시작했다.후배들을 시켜 박한결의 주변과 과거 연예계 바닥의 소문들을 샅샅이 긁어모았다.같은 시각, 스타더스트 사옥 내부도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
3년 전, 고성 앞바다, 비바람이 몰아치던 밤이었다.거대한 파도가 집어삼킬 듯 해변을 때렸고, 루나 바의 창문들은 금방이라도 깨질 듯 비명을 질러댔다.“아, 진짜… 도와주는 게 하나도 없네.”도윤은 낮은 욕설을 내뱉으며 비옷을 걸쳐 입었다.해안가 바로 앞에 위치한 창고 뒤편의 배수구가 말썽이었다.폭풍우가 올 때마다 제대로 물이 빠지지 않아 가게 안까지 침수될 위기였다.
그 보고가 채 끝나기도 전, 수화기 너머 서울의 펜트하우스에서는 유리창이 깨질 듯한 비명이 터져 나왔다.“사… 살아있다고? 그럴 리가 없잖아.”한결은 아이폰을 쥔 손을 눈에 띄게 떨고 있었다.방금 전까지 서울의 야경을 안주 삼아 즐기던 여유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그는 수화기 너머의 흥신소 직원이 들으라는 듯 악을 썼다.“뉴스에서 다 그랬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붉은 노을이 고성의 바닷가를 붉게 감쌌다.은재는 창가에 앉아 타오르는 수평선을 멍하니 바라보며 해솔의 라이브를 기다렸다.낮에는 간단한 식사를 팔던 소박한 공간이 어스름한 어둠과 함께 은은한 조명으로 탈바꿈하며 전혀 다른 분위기를 풍겼다.유명한 유튜버 스타라는 말이 증명이라도 되듯, 라이브 시간이 다가오자 적막하던 낡은 바 안으로 손님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했다.고요했던 공간은 금세 사람들의 낮은 웅성거림으로 채워졌다.그때, 사람들의
해솔은 그대로 등을 돌려 무대 쪽으로 걸어갔다.은재는 숨 쉬는 법조차 잊은 채 그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었다.그런 은재의 어깨를 소망이 다급히 감싸 안으며 해솔을 향해 시선을 던졌다.소망의 눈엔 분노보다 깊은 관찰력이 서려 있었다.“모른다라… 진짜로 그렇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윤해솔 씨.”해솔의 발걸음이 멈췄다.소망은 비난하는 대신, 그저 팩트를 짚어내듯 담담하게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