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us les chapitres de : Chapitre 11 - Chapitre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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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공지환은 숨이 턱 막혔다.‘이혼 합의서라니?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 난 왜 몰랐지? 나희가 언제 이혼 합의서에 사인했어?’한참이 지나서야 공지환이 간신히 목소리를 쥐어짜 물었다.“이혼 합의서 지금 어디에 있어?”공찬우가 눈물을 훔치며 아래층으로 달려가 차 안에 두었던 이혼 합의서를 챙긴 다음 공지환에게 건넸다.“이거 엄마가 준 생일 선물이에요. 내 소원을 들어줄 수 있는 거라고 했어요. 아까 열어봤는데 이혼 합의서라고 적혀 있더라고요...”공찬우의 목소리가 점점 기어들어 갔다. 백지장처럼 새하얀 공지환의 얼굴을 처음 본 아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공지환의 시선이 이혼 합의서에 정갈하게 쓰인 온나희라는 세 글자에 머물렀다. 날벼락이라도 맞은 것 같은 충격이 온몸을 덮쳤다.온나희가 정말로 이혼 합의서에 사인했을 줄은 생각지 못했다. 심지어 그것을 아들의 생일 선물로 줄 거라곤 더더욱 몰랐다.공지환은 그제야 파티장에서 온나희가 했던 소원이 이루어질 거라는 말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강겨울이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공찬우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온나희는 이혼 합의서에 사인하여 자리를 양보했다.공지환의 눈동자에 막연함이 서렸다.‘하지만 그건 철없는 아이가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말인데 어떻게 진담으로 받아들일 수 있어? 그리고 내가 아직 사인하지 않았으니 이 이혼은 성립되지 않아.’공지환이 이혼 합의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나희랑 절대 이혼하지 않아. 지금 잠시 질투 때문에 이성을 잃고 충동적인 결정을 내린 거야. 진정되면 반드시 돌아오게 돼 있어.”그가 쪼그리고 앉아 다섯 살 난 아들을 진지하게 쳐다봤다.“찬우야, 잘 들어. 네 엄마는 오직 온나희뿐이야. 다른 사람은 절대 네 엄마가 될 수 없어. 아빠는 엄마랑 이혼 안 해. 이혼하면 엄마랑 다신 같이 살 수 없게 되는데 엄마를 영영 안 보고 살아도 정말 괜찮겠어?”어린 공찬우는 이혼하면 엄마를 영영 볼 수 없다는 걸 알지 못했다. 공지환의 설명에 아이가 긴장하기 시작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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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공찬우의 질문에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던 공지환은 그저 달래는 말밖에 할 수가 없었다.“엄마 금방 돌아올 거야.”그때 공지환의 휴대폰에 메시지 알림음이 울렸다. 확인해보니 강겨울이 보낸 메시지였다.온나희가 질투 때문에 가출한 후 공지환은 그의 불분명한 태도가 오해를 불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나름대로 자제하고 있었다.일주일 동안 공찬우와 함께 강겨울의 회복 상태를 살피러 병원에 간 것 외에는 거의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다.시무룩한 공찬우의 모습에 병원에 갈 때 공찬우도 데려갈 생각이었다. 어쨌거나 공찬우가 강겨울을 무척이나 따르니 말이다.그런데 집을 나서려던 그때 집사 장진호가 태블릿 PC를 들고 다급히 달려왔다.“도련님, 이건 사모님께서 일주일 전에 도련님께 보여드리라고 했던 CCTV 영상입니다. 메모리카드에 문제가 생겨 복구하느라 며칠 늦어졌어요.”온나희의 이름을 듣자마자 공지환이 발걸음을 멈췄다.태블릿 PC에 생일 파티 당일 수영장 근처에서 대화를 나누는 온나희와 강겨울의 모습이 담긴 영상이 재생되고 있었다.영상을 보던 공지환의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스쳤다.‘왜 집사님더러 이 영상을 나한테 보여주라고 했지? 설마...’그 순간 화면 속의 강겨울이 스스로 옷을 찢더니 돌연 온나희의 손을 잡고 수영장으로 뛰어들었다.쿠당탕.공지환이 들고 있던 태블릿 PC가 바닥에 툭 떨어졌다. 믿을 수 없는 사실에 망연자실한 채 그대로 굳어버렸다.온나희가 거짓말한 게 아니었다. 정말로 강겨울을 밀치지 않았고 오히려 강겨울이 온나희를 모함하려 했다.바닥에 떨어진 태블릿 PC에서 영상이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공지환은 망설임 없이 물에 뛰어들어 강겨울에게로 향하는 자신의 모습을 보았다. 강겨울을 구해낸 뒤 공찬우와 함께 사색이 된 얼굴로 다급하게 병원으로 달려갔다.그 아수라장 속에서 온나희는 철저히 버려져 있었다. 뒤늦게 달려온 도우미가 물에 뛰어들어 그녀를 구해줬다.공지환은 그제야 깨달았다. 온나희가 이혼 합의서를 건넨 게 일시적인 충동이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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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더 들을 수 없었던 공지환이 문을 거칠게 걷어차고 들어가 기고만장한 강겨울을 노려봤다. 두 눈에 분노의 불꽃이 이글거리고 있었다.“강겨울, 너 원래 이렇게 독하고 속셈이 많은 여자였어?”한창 친구와 신나게 통화 중이던 강겨울이 갑자기 들이닥친 공지환 때문에 소스라치게 놀랐다. 얼굴이 순식간에 창백해지고 심장이 터질 것처럼 뛰었지만 애써 침착한 척하며 변명을 늘어놓았다.“지환아, 네가 잘못 들었어. 친구랑 장난친 거야. 내가 설마...”“그만해!”공지환이 강겨울의 변명을 가차 없이 잘랐다.“내가 바본 줄 알아? 나한테 증거도 있어.”그러고는 CCTV 영상이 재생되고 있는 태블릿 PC를 강겨울에게 던졌다.빼도 박도 못 하는 증거를 들이밀자 강겨울이 이불을 걷어차고 내려와 공지환의 손을 붙잡은 채 울먹거렸다.“지환아, 널 너무 사랑해서 그랬어. 네가 결혼하려던 여자는 원래 나였잖아. 내 자리를 되찾으려 한 게 잘못이야? 온나희만 없었더라면 우린 평생 부부로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고.”공지환이 망설임 없이 강겨울의 손을 뿌리쳤다. 눈빛이 얼음장처럼 차가웠고 목소리에도 예전의 다정함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이 냉기만 흘렀다.“그때 난 너한테 백 번이나 프러포즈했어. 날 거절한 건 너야. 이 모든 게 다 네가 선택한 결과라고. 그리고 난 오래전부터 널 사랑하지 않았어. 내 마음속의 아내는 온나희뿐이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도 오직 온나희 한 사람이야.”강겨울이 공지환의 힘에 밀려 바닥에 털썩 넘어지고 말았다.공지환의 두 눈에 예전의 따뜻함이 사라지고 살을 에는 듯한 한기만 남자 강겨울도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막 나가기 시작했다.“온나희를 사랑한다고? 살면서 들은 말 중에 제일 웃기는 말이야. 온나희를 쫓아낸 게 나라고 생각해? 아니. 바로 너랑 너의 금쪽같은 아들이야.”“내가 돌아온 뒤로 두 사람은 매일 내 주변만 맴돌았고 항상 나부터 챙겼어. 물에 빠졌을 때도 날 먼저 구했고. 온나희는 진작 이미 두 사람한테 정이 떨어졌어.”공지환이 핏줄이 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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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집에 돌아오자마자 공지환은 비서 허시언에게 전화를 걸었다.“나희 지금 어디 있는지 알아봐. 알아내는 대로 즉시 보고하고.”전화를 끊은 뒤 공지환의 시야에 카펫 위에 힘없이 앉아 있는 공찬우가 들어왔다. 품에 온나희가 어릴 적에 선물해주었던 장난감을 꼭 안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순간 공지환은 가슴이 저릿해졌고 후회가 물밀 듯이 밀려왔다.온나희가 자식까지 두고 떠날 정도로 모질게 마음을 먹었다는 건 부자가 그녀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입혔다는 증거였다.공지환이 공찬우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씁쓸한 목소리로 속삭였다.“아빠가 꼭 엄마 찾아낼게.”그때 공찬우가 뭔가 생각난 듯 주머니에서 열쇠 하나를 꺼냈다.“이거 엄마가 준 또 다른 생일 선물인데 금고 열쇠예요. 혹시 엄마가 이 안에 주소를 남겨두지 않았을까요?”공찬우의 두 눈에 작은 희망이 피어올랐다. 공지환 역시 그 말을 듣고 눈빛이 흔들렸다.‘그래. 나희가 이렇게까지 매정한 사람은 아니야. 어쩌면 우리한테 용서를 구할 기회를 남겨줬을지도 몰라.’공지환이 공찬우의 손을 잡고 서둘러 금고 앞으로 다가갔다. 열쇠 구멍에 열쇠를 끼워 넣는 순간 공지환의 팔이 미세하게 떨렸다.공찬우도 서서히 열리는 금고문을 숨죽여 지켜보았다.하지만 금고 안의 내용물을 확인한 두 사람은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금고 안에 크고 작은 선물상자 십여 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었다.온나희가 공찬우의 생일을 위해 미리 준비해둔 생일 선물이라는 걸 쉽게 알 수 있었다.공찬우가 겁에 질린 표정으로 울먹이며 물었다.“아빠, 엄마 정말 영영 안 돌아오는 거예요?”공지환이 태어나서 단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불안감에 휩싸였다.‘나희가 찬우의 앞으로의 생일 선물까지 다 준비했어. 정말 이혼을 결심했다는 건가?’그는 그제야 공철용이 했던 아내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말라던 경고가 무슨 뜻인지 제대로 알아들었다. 하지만 이미 늦어버렸다.아들의 두 눈이 그렁그렁한 걸 본 공지환이 두려움을 억누르고 아들을 달랬다.“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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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충안시.온나희가 이곳에 머무른 지도 어느덧 일주일이 흘렀다.오기 전에 인터넷을 통해 개인 카페 한 곳이 매물로 나온 것을 확인했었다.충안시에 와서 집을 구한 뒤 며칠 동안 그 카페를 유심히 살폈다. 매일같이 커피 한 잔을 주문하고 오후 내내 가게에 머물렀다.카페의 인테리어부터 주변 환경까지 모든 것이 온나희의 마음에 쏙 들었다. 결국 온나희가 그 카페를 인수해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온나희는 그녀의 취향대로 카페의 인테리어를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다. 특히 카운터의 공간을 다시 인테리어하여 베이킹 전용 구역을 따로 만들었다.공찬우가 달콤한 디저트나 쿠키를 유난히 좋아해서 제과 제빵 학원에 등록하여 배우기도 했다.그렇게 시간이 흐를수록 베이킹이 잡념을 없애고 마음을 다스리는 취미가 되었다. 그리고 쌉싸름한 커피와 달콤한 디저트의 조합이 아주 환상적이었다.온나희의 베이킹 솜씨가 아주 뛰어났다. 빵을 굽는 시간이 되면 가게 안팎에 달콤하고 고소한 향기가 진동했다.동네 아이들이 그 냄새에 홀려 카페 문 앞에서 기웃거리며 안을 들여다보곤 했다. 그럴 때마다 온나희는 아이들을 불러 새로 만든 디저트를 시식해 보라며 권했다.그렇게 조금씩 이웃들과도 친해졌다.공씨 가문 사람들과 일들이 온나희의 일상에서 서서히 지워지고 있었다.그날 오후 온나희가 갓 구워낸 빵을 꺼냈다.고소한 빵 냄새가 신호라도 된 것처럼 동네 아이들이 참새처럼 지저귀며 카페 안으로 몰려들었다.온나희가 웃으며 아이들에게 빵을 나누어주었다.충안시에서의 생활이 평화롭긴 했지만 때때로 밀려오는 외로움은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낮 동안 아이들이 북적거려주는 덕분에 카페에 늘 활기가 넘쳤다.“나희 언니, 언니가 만든 빵은 왜 이렇게 맛있어요?”“그러게 말이야. 그냥 이 카페에서 살고 싶다니까? 그럼 맨날 빵을 먹을 수 있잖아.”“안 돼. 산다고 해도 내가 먼저 살 거야. 내가 이 카페에 가장 먼저 들어왔어.”“내가 빵을 제일 먼저 먹었거든? 내가 살아야지.”...아이들이 투덕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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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예상치 못한 호칭에 온나희가 충격을 받았는지 그대로 굳어버렸다.“방금 날 뭐라고 불렀어?”여자아이가 계속 온나희의 품에 안긴 채 울면서 엄마를 불렀다.온나희가 낳은 자식이 공찬우 하나밖에 없었다. 그녀에게 네 살배기 딸이 있을 리 만무했다.아이가 사람을 잘못 본 것이라 생각하고 경찰서에 데려가 부모를 찾아주려던 그때 카페 밖에서 남자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김소영!”남자의 목소리에 아이가 고개를 번쩍 들더니 울먹이며 밖을 향해 소리쳤다.“아빠, 나 엄마 찾았어요... 엄마가 돌아왔어요.”한 남자가 황급히 카페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그러고는 온나희의 품에 안긴 김소영을 조심스럽게 받아 안으며 사과했다.“죄송합니다. 소영이가 사람을 잘못 본 모양이에요.”남자가 사과하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데 온나희와 시선이 마주친 순간 화들짝 놀라며 소리를 질렀다.“온나희?”모르는 아이가 엄마라 부른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에 이번에는 아이의 아빠라는 남자가 그녀의 이름을 정확히 불렀다.온나희가 눈앞의 남자를 빤히 쳐다보며 기억을 더듬었으나 도무지 떠오르지 않았다.“죄송하지만 누구시죠?”온나희의 막연한 표정에 남자의 두 눈에 씁쓸함이 스쳤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나 송기훈이야. 너보다 두 학번 위였던 선배. 우리 같은 동아리였던 거 기억 안 나?”남자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온나희의 기억 속 어딘가에 있던 햇살처럼 밝은 미소의 남자가 서서히 떠올랐다.“기훈 선배?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 여기서 선배를 만나다니. 아이가 벌써 이렇게나 컸어요?”송기훈이 김소영을 고쳐 안으며 웃으면서 설명했다.“실은 소영이가 우리 누나 딸이야. 누나랑 매형이 소영이가 아주 어릴 때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거든. 내가 직접 키우다 보니 나를 그냥 아빠라고 불러.”그가 하던 말을 멈추고 김소영의 등을 다정하게 다독였다.“누나가 죽었을 때 소영이가 너무 어려서 엄마에 대한 기억이라곤 맛있는 디저트를 만들어주던 모습뿐이야. 그런데 마침 너도 만들 줄 알아서 엄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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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네 살배기 김소영은 한창 부모의 사랑이 그리울 나이였다. 그래서인지 온나희가 엄마가 아니라는 송기훈의 말에도 온나희의 품에 파고들며 자꾸만 엄마라 부르고 싶어 했다.온나희가 서둘러 아이를 건네받아 등을 부드럽게 토닥이며 달래주었다.공찬우를 낳은 후 그녀가 직접 모든 걸 케어했던 터라 아이를 달래는 손길이 전혀 서툴지 않았다.그 모습을 지켜보던 송기훈의 눈에 놀라움이 스쳤다.친부모가 세상을 떠난 뒤 김소영이 부쩍 내성적으로 변했고 낯선 사람과는 말도 잘 섞지 않았다. 처음 본 사람에게 이토록 마음을 연 게 정말 처음이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김소영이 온나희의 품에서 잠이 들었다. 온나희는 아이를 옮기다가 혹여 깰까 봐 직접 안고 집까지 데려다주겠다고 했다.어느 한 아파트 앞에 도착하고 나서야 송기훈이 온나희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아이를 침대에 조심스럽게 눕히고 이불을 꼼꼼히 덮어준 뒤 두 사람은 거실로 나와 못다 한 얘기를 나누었다.“원래 그 카페 주인이 다른 사람이었는데 충안에는 최근에 온 거야?”온나희가 시원하게 불어오는 밤바람을 느끼며 고개를 끄덕였다.“충안이 참 좋은 곳이더라고요. 안 좋았던 기억들을 잊기에 딱 좋을 것 같아서 마음도 달랠 겸 왔어요.”눈치 빠른 송기훈이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누구에게나 말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있기 마련이니까.낯선 도시에서 우연히 만난 지인이 반가웠던지 두 사람의 대화가 꽤 오랫동안 이어졌다.밖이 어둑어둑해져서야 온나희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때 송기훈이 냉장고 문을 열고 가득 찬 식재료들을 가리켰다.“오늘 오후에 소영이한테 맛있는 빵을 해줬잖아. 받은 만큼 답례를 해야지. 저녁 먹고 가.”마침 잠에서 깬 김소영이 거실로 쪼르르 달려 나와 온나희의 손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엄마, 저녁 먹고 가요. 아빠가 해주는 요리 진짜 맛있어요.”사슴처럼 맑은 눈망울로 쳐다보는 아이를 온나희는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식탁 앞에 마주 앉자 김소영이 쉴 새 없이 온나희에게 반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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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그날 이후 김소영은 매일같이 온나희의 카페를 찾았다.온나희는 송기훈이 현재 교사로 재직 중이며 낮에는 수업 때문에 바쁘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예전에는 김소영이 혼자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는데 이젠 온나희 덕에 더는 외롭게 혼자 있을 필요가 없었다.카페에 손님이 찾아오면 김소영은 예전처럼 구석에 가만히 앉아 있는 게 아니라 고사리 같은 손으로 메뉴판을 들고 가서 손님들에게 주문을 받곤 했고 온나희가 카운터 뒤에서 정성껏 커피를 내리고 디저트를 만들었다.송기훈이 퇴근할 무렵이면 카페도 문을 닫을 시간이었다. 두 사람은 김소영과 함께 인근 강변을 산책하며 저녁 시간을 보냈다.노을이 온 세상을 붉게 물들이던 어느 해 질 녘, 온나희가 작별 인사를 건네고 귀가하려던 그때 김소영이 온나희의 옷자락을 잡아당기더니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있잖아요, 엄마...”김소영이 말을 하다 말고 송기훈에게 간절한 눈빛을 보냈다. 그러자 송기훈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소영이가 용기를 내서 직접 말해봐.”온나희도 재촉하지 않고 인내심 있게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한참 뒤에야 김소영이 용기를 내어 다시 입을 열었다.“내일이 내 생일인데 아빠랑 같이 동물원에 가주면 안 돼요? 예전에 아빠랑만 가서 친구들이 자꾸 놀렸거든요.”아이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 코끝이 찡해진 온나희가 웃으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당연히 되지. 소영이 생일인데 엄마가 당연히 같이 가야지.”송기훈이 몰래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온나희와 시선이 마주치자 서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다음 날 아침 온나희는 일찍 일어나 정성껏 빵을 굽고 직접 생일 케이크를 만들었다. 케이크 위에 김소영을 닮은 귀여운 캐릭터 얼굴도 그려 넣었다.완성한 후 케이크를 카페에 잘 보관해 두었다. 동물원에 다녀온 뒤에 김소영에게 깜짝 선물을 줄 생각이었다.동물원에 도착하자 김소영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왼손으로 송기훈의 손을, 오른손으로 온나희의 손을 꼭 잡고 짧은 다리로 빠르게 뛰어다녔다.새로운 동물을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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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공철용의 의미심장한 가르침을 받은 뒤 공지환은 강겨울이 귀국한 이후 그가 했던 행동들을 하나하나 되짚어보았다.온나희의 생일에 강겨울의 집으로 가서 바퀴벌레를 잡았던 일, 강겨울과 패밀리 룩을 입고 다정하게 사진을 찍었던 일...그제야 공지환은 그가 얼마나 큰 잘못을 저질렀는지 깨달았다.부모는 자식의 거울이라 했다. 고작 다섯 살인 공찬우가 강겨울이 엄마가 됐으면 했던 이유 역시 전적으로 공지환의 부적절한 처신 때문이었다.남편으로서의 역할도, 아버지로서의 본보기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비서 허시언이 온나희의 행방을 알아내자마자 공지환은 공찬우를 데리고 쉼 없이 충안시로 달려왔다.잘못을 진심으로 뉘우친 부자는 한시라도 빨리 온나희에게 용서를 빌고 싶었다.하지만 막상 카페 문 앞에 서자 공지환은 평소답지 않게 긴장감을 느꼈다. 옆에 선 공찬우도 공지환의 소매를 꽉 잡고 불안한 기색을 내비쳤다.“아빠, 엄마가 우리를 용서해줄까요?”사실 공지환도 확신이 없었다.이미 이혼 합의서에 서명하고 앞으로 십여 년 치의 생일 선물까지 미리 준비해둔 온나희의 단호함을 떠올리면 공찬우에게 희망적인 대답을 해줄 수가 없었다.그래도 공지환은 마음을 굳게 먹었다. 만약 온나희가 당장 용서해주지 않는다면 그녀가 마음을 돌릴 때까지 아들과 함께 이곳에 머물며 사죄할 생각이었다.그런데 고작 한 달 사이에 온나희의 옆에 다른 남자가 생겼을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게다가 여자아이가 그녀를 엄마라고 부르기까지 했다.공찬우의 얼굴에 서러움과 두려움이 서려 있었다.한 달 내내 그리워했던 엄마가 다른 아이의 생일을 축하해주고 있었다. 심지어 그 아이가 온나희를 엄마라고 불렀다.‘엄마가 정말로 날 버리고 다른 아이의 엄마가 되기로 한 거야?’여자아이가 온나희의 품에 안기려 하자 공찬우가 참지 못하고 눈시울이 붉어진 채 먼저 온나희의 품에 안겼다.“드디어 엄마를 찾았어요.”온나희가 품에 안긴 공찬우를 보며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한 달 사이에 아이의 얼굴이 눈에 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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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공찬우가 온나희를 더욱 세게 끌어안았고 눈물이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처럼 그렁그렁 맺혔다.옆에 있던 공지환은 심장이 철렁했다.“나희야...”‘우리야말로 가족인데 왜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는 거야?’온나희가 공지환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김소영을 다독였다.“오늘은 엄마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그러는데 소영이 먼저 아빠랑 집에 가 있을래? 파티가 방해받았으니까 내일 엄마가 놀이공원에 데려가 줄게. 어때?”김소영은 온나희의 손을 놓으면 영영 떠나버릴 것만 같은 불안감에 휩싸였지만 워낙 철이 든 아이였기에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엄마, 거짓말하면 안 돼요.”아이의 떨리는 목소리에 가슴 한구석이 찡해진 온나희가 아이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약속했다.“약속할게. 손가락 걸고 약속해. 이제 마음을 놓을 수 있겠어?”김소영이 그제야 온나희의 옷자락을 잡고 있던 손을 떼고 송기훈의 목을 껴안았다. 그러고는 송기훈의 가슴에 얼굴을 묻고 웅얼거렸다.“그럼 내일 아침에 집에서 엄마 기다릴게요.”송기훈은 별다른 말 없이 김소영을 안고 자리를 떠났다. 다만 공지환과 공찬우 부자의 옆을 지나갈 때 그들을 향해 깊고 서늘한 눈길을 던졌다.송기훈과 김소영의 모습이 완전히 사라지고서야 온나희가 공지환과 공찬우를 돌아보았다.언제나 다정한 미소를 짓고 있던 그녀의 얼굴에 이젠 끝을 알 수 없는 냉랭함만 서려 있었다.한 달 만에 겨우 만난 온나희가 다른 아이의 엄마가 됐을 뿐만 아니라 공찬우를 보고도 조금도 기뻐하지 않자 공찬우가 결국 참아왔던 서러움을 터뜨리며 통곡했다.“엄마, 이제 나 버린 거예요? 엄마의 진짜 아들은 나라고요.”예전이었더라면 공찬우가 울기 시작하자마자 온나희가 아이를 품에 안고 웃음을 되찾을 때까지 달래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그저 가만히 서서 아이를 내려다보기만 했다.아무리 울어도 엄마의 따뜻한 손길이 닿지 않았다. 결국 공찬우가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들었다. 온나희가 여전히 덤덤한 눈빛으로 아이를 응시하고 있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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