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비 온 뒤 맑음: Chapter 11 - Chapter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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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화

“대표님, 저는 그냥 변호사일 뿐입니다. 윤서진 씨와는 친구라고 할 수도 없는데 어디로 가셨는지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배도현은 여전히 못 믿는 눈치였다.“아니요! 변호사님은 분명 알고 있을 겁니다. 말씀해 주세요. 얼마 드릴까요? 원하는 대로 다 드릴게요.”그는 지갑에서 수표 뭉치를 꺼내 흔들어 보였다.“얼마면 될까요? 2천만? 1억? 2억? 20억?”배도현은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서진이가 어디 있는지만 알려줘요. 원하는 건 뭐든 다 해드릴게요.”서강인은 차분한 눈길로 그를 쳐다보았다.“정말 모릅니다, 대표님. 게다가 설령 안다고 해도 알려드릴 순 없어요. 변호사로서의 직업윤리잖아요.”“윤리는 개뿔! 이 돈이면 못할 게 없는데 윤리 따위 신경 쓸 필요 있어요?”“죄송합니다. 정말 모릅니다.”서강인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대표님도 이제 그만 윤서진 씨의 결정을 받아들이세요. 이혼까지 결심한 이상 어디로 간 건지 말해줄 리가 없잖아요. 대표님께도 비밀로 하신 걸 제가 어떻게 알겠습니까?”“알았어요.”배도현은 끝내 기력을 잃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다.“이만 가보세요, 변호사님.”“네. 가능한 한 빨리 서명해주세요. 저 곤란하게 하지 마시고요. 그럼 이만 나가보겠습니다.”변호사가 돌아가자마자 배도현의 휴대폰이 울렸다.“서진아!”그는 고민도 없이 윤서진일 거로 믿었다.“도현 씨 맞으세요? 저 지영이 매니전데요 지영이가 교통사고를 당해서 병원에 실려 왔어요. 꼭 도현 씨를 만나고 싶다고 하는데 이리로 와주실 수 있을까요?”“교통사고요?”배도현은 미간을 구겼지만, 지금은 최지영의 일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최지영과 윤서진 사이에서 놀랍게도 윤서진을 택하다니. 그도 처음 자신의 이런 모습을 보게 되었다.“많이 심각한가요?”“그게...”상대는 잠깐 망설이다가 이내 빠르게 말을 이었다.“꽤 심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지영이는 여배우라 교통사고를 당해서 흉터라도 남으면 평생 커리어를 망칠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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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뭐라고?”최지영은 잠시 멍해졌다.‘뭐야... 윤서진 유산한 것 때문에 이렇게까지 저기압이라고?’그녀는 뒤늦게 깨닫고 눈가에 찰나의 희열이 스쳤다. 아이가 없다니 더 좋은 거 아닐까? 안 그래도 어떻게 하면 저 두 사람을 이혼시킬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이제 아이라는 장애물마저 사라졌으니 마침내 배도현과 함께할 수 있게 되었다.“그날 술집에서 네가 다치지만 않았어도 난 서진이한테 크게 화내고 계단에서 밀치는 일 없었을 거야. 그럼 우리 아이도 지켜냈을 텐데.”배도현은 말할수록 그녀의 팔을 더욱 세게 움켜쥐었다.이에 최지영은 고통에 찬 비명을 질렀다.“도현아, 진정해. 그날 일은 네 잘못이 아니야. 서진이가 일부러 나한테 뜨거운 물을 쏟았어. 그때 너도 말했잖아. 서진이가 몹쓸 짓 하니 배 속의 아이도 조만간 천벌 받을 거라고. 어쩌면 이게 바로 걔 업보일 수도 있겠다.”“뭐라고?”배도현의 얼굴이 험상궂게 일그러졌다. 순진하고 착하기만 했던 최지영이 어떻게 이런 가혹한 말을 내뱉을 수 있을까.분위기가 점점 심각해지자 옆에 있던 매니저가 재빨리 두 사람을 떼어놓았다.“도현 씨, 일단 진정하세요. 지영이가 아직 애라서 철이 없어요. 두 분 줄곧 사이좋으셨잖아요. 이런 일로 화내실 필요는 없죠...”“맞아요! 항상 애처럼 생각해서 여태껏 눈감아준 거죠.”배도현은 헛웃음을 터뜨리며 자조적으로 말을 이었다.“그래서 서진이가 나한테 실망하고 이혼까지 요구한 거고요.”“뭐? 윤서진이 너랑 이혼하겠대?”최지영은 이 남자의 슬픔과 후회 따위 전혀 눈치채지 못한 채 오히려 들뜬 마음으로 물었다.“그럼 너도 승낙한 거야? 두 사람 언제 절차 밟을 건데?”“지영아!”매니저가 그녀의 팔을 잡아끌며 그만하라고 곁눈질했다.하지만 최지영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어차피 너도 윤서진 안 좋아하잖아. 늘 나만 좋아한 거 아니었어? 나도 너 좋아! 얼른 서진이랑 이혼해. 그리고 우리 바로 결혼하자.”배도현은 그제야 깨달았다. 최지영은 내내 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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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배도현은 정신없이 집으로 내달렸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기 바쁘게 안방으로 뛰어갔다.예전에도 대판 싸웠을 때 윤서진이 집을 나간 적은 있지만, 일부러 모든 짐을 그대로 두고 나갔었다.그러고는 물건 가지러 왔다면서 다시 집에 돌아와 배도현에게 화해의 여지를 주었고 둘은 곧 사이좋게 지냈었다.배도현은 그녀가 옷을 다 챙겨갔는지 확인하려고 다급하게 옷장 문을 열어젖혔다.이번에도 똑같을 거라고, 자신을 떠보는 거라고 여겼으나 옷장을 활짝 연 순간 머리가 백지장이 되었다.윤서진은 단 한 벌도 남기지 않고 집을 나가버렸다. 이번엔 진짜 안 돌아오려나 보다.전에 말했던 다섯 번의 기회가 진짜일 줄이야.그에게 기회를 다섯 번 준다고 했는데 이 남자는 모조리 써버렸다.윤서진은 과연 돌아올까? 그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줄까?막대한 고통이 온몸을 휩쓸었다. 배도현은 자리에 주저앉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별안간 무언가 생각난 듯 휴대폰을 꺼내 윤서진에게 전화를 걸려고 했다.그런데 아무리 뒤져도 그녀의 번호가 보이지 않았다. 분명 저장해두었는데 왜 사라진 걸까?그래, 뭐 없어졌다 해도 번호쯤이야 외울 수 있을 줄 알았다.하지만 곰곰이 되새겨도 좀처럼 떠오르지 않았다.대신 최지영의 번호만 머릿속을 맴돌 뿐이었다.수년이 지나도 최지영의 번호는 선명하게 각인되어 있었지만 윤서진의 번호는 단 한 번도 제대로 외우려 노력한 적이 없었다.그는 결혼 초, 윤서진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도현아, 내 전화번호부터 주민등록번호까지 꼭 다 기억해줘야 해.”그때 배도현은 코웃음을 쳤었다.“뭣 하러! 설마 내가 너를 못 찾을까 봐?”말이 씨가 된다고 이제 정말 그녀를 찾을 수 없게 되었다.머리를 쥐어짜도 번호가 떠오르지 않아 어쩔 수 없이 가장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뭐래? 윤서진 남편은 너야. 너도 모르는 번호를 우리가 어떻게 알아?”“야, 장난 좀 그만 쳐. 윤서진 네 와이프잖아. 어떻게 와이프 번호도 모르냐?”“그럼 서진이 친구들 찾든가. 우린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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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배도현한테 연락이 왔을 때 윤서진은 한창 몬디브의 눈부신 백사장에서 여유롭게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이곳의 풍경은 꿈만 같았다. 바다를 처음 본 그녀는 온통 새로운 세상에 매료되었다.소중한 아이를 잃은 깊은 슬픔에 잠겨있었지만 몬디브에 발을 들여놓은 순간, 마치 묵은 체증이 풀리듯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그때, 코앞으로 다가온 코치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제 곧 스노클링 하러 갈 거예요!”윤서진의 휴대폰은 쉴 새 없이 울려댔다. 배도현의 번호가 뜨자 비로소 모든 것을 직감했다.이 남자는 이혼 서류를 보았을 테고 어쩌면 아이를 잃었다는 사실까지도 알게 됐을 터.그녀는 딱히 받고 싶지 않아 통화를 끊었다.하지만 배도현은 끈질기게 계속 걸어왔다.“급한 일 같은데 먼저 받아보세요. 기다리고 있을게요.”코치의 재촉에 윤서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그래! 이제 이 지긋지긋한 관계도 확실히 끝낼 때가 되었어.’“여보세요.”“서진아! 드디어 내 전화 받아주네!”휴대폰 너머로 배도현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한편 윤서진은 두 눈을 깜빡였다. 배도현이 이토록 간절한 말투로 자신에게 말해본 적이 있었던가?“무슨 일인데?”“지금 어디야? 너무 보고 싶어. 내가 데리러 갈게. 이만 집에 돌아와, 서진아.”배도현은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알아, 내가 다 잘못했어. 최지영 때문에 너한테 그렇게 상처 준 거 진짜 사람이 할 짓이 못됐어! 미안해, 제발 용서해줘.”남자의 말을 듣는 동안, 윤서진의 마음은 아무런 동요도 일지 않았다. 그 어떤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빈 껍데기 같았다.“도현아, 나 이제 너랑 할 얘기 없어. 하고 싶은 말은 지난 몇 년간 다 한 것 같아. 이혼 문제는 서 변호사님께 전적으로 맡겼으니 합의서 내용에 관해 궁금한 점 있으면 그쪽으로 문의해. 더는 나 찾지 말고!”“한 번만 더 기회를 줄 수는 없을까? 내가 다 만회할게. 맹세해, 앞으론 절대 최지영 만나는 일 없어. 걔랑 두 번 다시 엮이지 않을게.”또 맹세라니!윤서진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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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부연에 살던 윤서진은 창주를 너무나도 좋아한 나머지 배도현이 살고 있는 이곳 창주로 대학을 진학했다.그들은 대학 시절, 학생회에서 만났다. 배도현은 학생회장이었고 그녀는 부회장이었다.처음 그를 만난 날, 하얀 셔츠 차림으로 비 오는 날 신입생들을 맞이하던 남자의 훈훈한 모습에 윤서진은 첫눈에 반해버렸다.조금 더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그녀는 모든 노력을 기울여 자신을 빛나는 존재로 가꾸어 나갔다.배도현의 곁에 딴 여자가 있지만, 그녀는 묵묵히 기다렸다.처음부터 배도현에게 마음을 빼앗겼고 무려 7년을 짝사랑했다.마침내 최지영과 헤어진 배도현은 그제야 윤서진을 받아주었다.결혼 초, 윤서진이 했던 말...“도현아, 나 바다 보고 싶어.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이 없거든. 우리 신혼여행 몬디브로 가면 안 될까? 거기 바다가 엄청 파랗고 예쁘다던데.”그때의 배도현은 윤서진을 전혀 사랑하지 않았다.단지 최지영을 잊기 위해 그녀와 결혼을 강행했을 뿐이다.시간이 흘러 결혼기념일이 다가오자 윤서진이 또다시 몬디브를 언급했다.“도현아, 나 진짜 바다가 보고 싶어. 언제 같이 가줄 거야?”사실 그녀 홀로 충분히 떠날 수 있다는 걸 배도현은 너무 잘 안다.다만 남편과 함께 가고 싶었고 이 남자가 자신에게 조금 더 마음을 써주고 사랑해주길 바랐다.그런 그녀를 줄곧 무시했고 그녀가 한 말은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던 배도현.“몬디브... 진짜 혼자 갔네, 거기까지.”배도현에게 완전히 실망해서 홀로 떠난 걸까?그는 윤서진의 상세 위치를 파악한 후 곧장 짐을 싸서 공항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이제 막 문밖을 나서려는데 최지영의 매니저 김연우가 느닷없이 문 앞에 나타났다.눈시울이 빨개진 그녀가 배도현을 보자마자 대성통곡했다.“도현 씨, 어떻게 이래요? 지영이한테 그래도 진심일 줄 알았는데 어떻게 이럴 수가 있냐고요.”“또 무슨 일인데요?”이제 최지영 이름 석 자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수년간 그 여자에게 쏟아부은 사랑이 진작 사라졌음을 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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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3년 전, 최지영은 해외 연수를 갈 기회를 얻었다. 그때 배도현이 가지 말라고 만류했지만, 최지영은 단호하게 이별을 고했다.꿈이 배우가 되는 거라며 그 꿈을 좇기 위해 더는 뒤돌아보지 않겠다고 했다.배도현은 그녀의 유학을 지지하고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겠다고 말했음에도 최지영은 한사코 거부했다. 몇 년간 외부의 유혹을 못 이겨 딴 남자를 만날까 두렵다면서 끝까지 그와 이별하려 했다.그리고 3년 후, 배도현이 윤서진과 결혼했는데 그녀가 느닷없이 돌아왔다.심지어 돌아오는 길에 배도현에게 공항으로 마중 나와 달라는 문자까지 보냈다.다시 최지영을 마주했을 때, 배도현은 여전히 어린 시절의 설렘을 느꼈다.그들은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랐다. 최지영은 그보다 세 살 어렸고 배도현은 언제나 그녀를 공주처럼 소중히 다뤘다.둘은 크면서 자연스럽게 연인이 되었지만 이런 날이 올 거라고 상상이나 해봤을까.“나 너무 후회돼, 도현아.”최지영의 얼굴은 창백했고 목소리도 기어들어 갈 지경이었다.“이제야 깨달았어. 넌 나한테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사랑해, 도현아. 여전히 널 사랑하고 있었어. 네 마음은 어때?”“미안해. 널 속이고 싶진 않아.”배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단호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3년 전 서진이랑 결혼할 땐 확실히 널 사랑하고 있었어. 하지만 이제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오직 서진이뿐이야. 지금도 그리고 앞으로도 내 마음은 변함없어...”최지영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의 대답이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실은 매니저와 짜고 쳐서 이런 자작극을 벌였다. 이렇게 하면 배도현이 자신을 안쓰럽게 여기고 다시 마음이 돌아설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윤서진만 사랑한다는 폭탄 발언을 날리다니.“난 이제 서진이 찾아가야 해. 더 이상 어리석은 짓 하지 말고 여기서 푹 쉬어. 세 시간 뒤에 비행기 탈 거야. 휴대폰도 꺼놓을 테니 더는 나 찾을 수 없어. 그러니까 자해 같은 거 하지 마.”말을 마친 배도현은 최지영의 애원에도 뒤돌아보지 않고 떠났다.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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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으악!”“떨어졌어!”“지영아, 안 돼!”매니저는 그녀의 팔을 붙잡으려 몸을 날렸지만 이미 한발 늦었다. 최지영이 허공으로 떨어지는 것을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뿐이었다.다행히 안전 에어백이 미리 설치되어 있어서 최지영은 떨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무사했다.매니저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에어백 위에 누워있던 최지영은 몸을 일으켜 멀어져 가는 배도현을 바라보았다.어떻게 저토록 잔인할 수가! 자신이 건물에서 뛰어내렸음에도 단 한 번 뒤돌아보지 않는다니.“저주할 거야, 배도현!”“지영아, 괜찮아? 나 진짜 기절하는 줄 알았잖아!”매니저는 재빨리 아래층으로 내려가 그녀의 팔을 붙잡았다.“미친 거야? 지금 네가 무슨 짓 했는지는 알긴 해? 연기만 하자며? 진짜 뛰어내리면 어떡해? 그러다 죽으면 나더러 그 많은 재벌에게 뭐라고 설명하란 거야?”“흥.”최지영은 고개를 들고 한없이 섬뜩한 눈길로 매니저를 쳐다봤다.“어차피 안 죽었잖아. 뭘 그렇게 호들갑이야?”그녀는 마치 딴사람이 된 양 기괴한 모습으로 변했다.매니저는 약간 당황했지만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래, 괜찮다니 다행이야. 아까는 진짜 간 떨어지는 줄 알았어.”“됐고! 아까 저녁에 약속 있다고 했지? 나도 가야 해?”“부동산 재벌들 파티야. 너 그런 모임 싫어했잖아.”최지영은 눈을 깜빡였다.“내가 언제? 그걸 왜 싫어하겠어.”배씨 가문은 부동산으로 큰 부를 쌓았다. 배도현을 무너뜨리려면 반드시 그 재벌들의 힘을 빌려야 한다. 그래야 복수에 성공할 테니까.‘배도현, 먼저 배신한 건 너야. 이제부터 내 탓 하지 마라!’몬디브에서 종일 시간을 보낸 윤서진은 그동안의 모든 안 좋았던 추억들이 말끔히 잊힌 듯했다.호텔로 돌아온 그녀는 휴대폰 전원을 켰다.다행히 배도현한테서는 더 이상 전화가 오지 않았다.윤서진은 이 인간이 또다시 귀찮게 굴까 봐 아예 차단해 버렸다.전원을 켠 지 얼마 되지 않아 부모님께 전화가 걸려왔다.“서진아, 왜 종일 휴대폰을 꺼놨어? 몬디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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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야, 배도현! 너 지금 뭐 하는 거야? 당장 나가.”배도현이 기어들어 오니 윤서진은 분노가 치밀었다.“싫어, 안 가. 네가 용서해줄 때까지 한 발짝도 안 움직일 거야.”배도현은 그녀에게 다가가 품에 안으려 했지만, 그때 윤서진이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나가라고 했다! 여기 내 방이야. 무단침입으로 경찰에 확 신고해버리는 수가 있어!”“그래, 신고해. 용서만 해준다면 뭐라도 다 좋아.”배도현의 진지한 모습에 윤서진은 깊은 피로감을 느꼈다.“너 대체 원하는 게 뭐야? 진상도 떨 만큼 떨었잖아. 내가 여기까지 도망쳐 왔는데 그걸 쫓아와? 최지영이랑 잘해보라고 제발! 왜 이렇게 질척대는 건데?”“나랑 최지영 아무 사이도 아니야. 내가 사랑하는 건 오직 너뿐이라고.”“하하!”윤서진은 마치 굉장한 웃음거리라도 들은 듯 폭소를 터트렸다.“너 뭐 조현병이라도 걸렸니?”웃음기가 가신 그녀의 눈가에 점차 붉은 기가 감돌았다.“사랑한 건 나뿐이라고? 그렇게 사랑해서 내 임신 날짜도 기억 못 했어? 그렇게 사랑해서 결혼 3주년 기념일에 딴 여자한테 프러포즈나 해댔어? 그렇게 사랑해서 최지영 위한답시고 임신한 나를 계단에서 밀어버렸니? 그렇게 애원하는데도... 끝내 우리 아이를 죽였냐고! 나만 사랑해? 오직 나뿐이야?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봐. 네가 한 말이 얼마나 우스꽝스러운지.”“미안해, 서진아... 일부러 그런 게 아니야. 정말 일부러 그런 게 아니었어!”배도현은 그녀 앞에서 털썩 무릎을 꿇었다.“그냥 또 네가 투정 부리는 줄 알았어. 일부러 거짓말하는 거로 여겨서 그랬던 거야.”“그러게! 너한테 난 항상 질투심 많고 예민한 여자였잖아. 최지영 질투해서 손에 뜨거운 물 붓고 네가 최지영 병원 데려다주는 것도 너무 질투 나서 우리 아이가 죽었다고 저주까지 해대면서 관심 끌었지 뭐야. 우리가 알고 지낸 세월이 얼마나 긴데 넌 대체 나에 대해서 제대로 알아보려고, 이해해보려고 한 적은 있었니?”윤서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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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배도현은 쉼 없이 비행기를 타고 귀국했다. 돌아오자마자 비서가 배도현을 대신해 부동산 재벌들과의 만남을 주선했다.“어떻게 됐어? 안 대표랑 이 대표는 언제쯤 시간 된대?”“죄송합니다, 대표님. 두 분 모두 계약 해지만 강행하시고 대표님과의 만남을 거부하십니다.”“왜?”배도현은 도통 이해가 안 됐다. 그들과의 협력에 아무런 문제도 없었기에 이런 상황이 발생할 리가 없었다.뭔가 자신이 모르는 일이 벌어진 것이 분명했다.“그리고...”비서가 잠시 머뭇거렸다.“재무부 장관이 공금을 횡령한 혐의로 체포되었습니다. 또한 회사 소유의 몇몇 건물 현장에서 노동자들이 투신하는 사건이 발생하여 저희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배도현의 표정이 굳어졌다.“알았어.”“아, 그리고 대표님, 최지영 씨가 지금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지영이가?”최지영의 이름이 언급되니 배도현의 얼굴에 불쾌감이 스쳤다.“만날 생각 없으니까 지금 시간 없다고 전해.”비서는 몹시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그래도 한번 뵙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대표님께서 출국하신 며칠 동안 거의 매일 찾아오셨거든요.”“알았어.”배도현은 어쩔 수 없다는 듯 한숨을 쉬었다. 뭔가 분명히 말해두지 않으면 그녀도 절대 포기하지 않을 터였다.사무실 문이 열리고 소파에 앉아 있는 최지영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배도현을 보자 그녀는 느긋하게 고개를 들었다.“왔어, 도현아?”“무슨 일이야?”배도현은 눈길 한번 안 주고 곧게 사무실 책상으로 걸어가 서류를 집어 들었다.회사가 지금 아수라장이라 최지영에게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이미 충분히 얘기해둔 것 같은데? 우리 이제 별 볼 일 없으니까 그만 돌아가 봐.”“잔인한 건 여전해.”최지영은 그의 앞으로 다가와 얼음처럼 차가운 시선으로 쳐다보았다.배도현은 그제야 그녀를 올려다보았다. 별안간 이 여자가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진 걸 알아챘다.청순한 이미지였던 최지영은 짙은 화장이라곤 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은 눈에 띄는 레드 립에 머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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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어? 왔어요, 배 대표?”소파에 앉아 있던 남자가 눈썹을 치키며 배도현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배도현도 알아챘다. 뚱뚱한 남자는 바로 안 대표였다.“안 대표.”배도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최지영을 바라보았다. 그녀가 어쩌다 이렇게까지 변해버린 걸까? 어떻게 딴 남자에게 함부로 몸을 허락할 수 있는 거지?“늦으셨으니 벌주 석 잔 마셔야죠.”안 대표는 테이블 위의 술병을 가리키며 배도현에게 마시라고 부추겼다.늦긴커녕 몇 분이나 일찍 도착했음에도 말이다.“뭘 망설이고 있어요? 배 대표가 사업 부탁하려고 이 자리를 마련한 거 아니었나요? 벌주도 안 마실 거면 이거 너무 성의 없는데!”옆에는 또 다른 남자가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품에 여자를 껴안았다.배도현은 그 여자마저 눈에 익었다. 바로 최지영과 함께 데뷔한 여배우인데 지금 남자 품에 안겨서 놀아나고 있는 몰골이었다.이 광경을 본 배도현은 울화가 치밀어 최지영의 손을 확 낚아챘다.“너 대체 무슨 짓이야? 가자, 당장 여길 나가야겠어.”“이거 놔!”하지만 최지영은 그의 손을 뿌리쳤다.“네가 오늘 왜 여기 나왔는지 아직도 감이 안 잡혀? 안 대표한테 사업 부탁하러 왔잖아, 도현아! 정신 똑바로 차리자, 응? 너희 회사에 가 봤는데 돈을 횡령한 사람이 있고 건설 현장에서 사고까지 났더라. 게다가 지금은 협력에 문제가 생겼잖아. 이 상황 어떻게 수습할 건데?”그러게... 배도현은 과연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그의 회사 대정 그룹은 아버지께서 피와 땀으로 일군 사업체인데 이대로 자신의 손에 의해 무너뜨릴 수는 없었다.“안 대표, 대체 원하는 게 뭡니까? 어떻게 해야 우리 대정과 계속 협력하실 거냐고요.”“오늘 이 자리는 우리가 결정하는 게 아니라 전적으로 최지영 씨한테 달렸어요.”안 대표가 느끼한 입술을 최지영의 얼굴에 갖다 댔다.그녀 또한 거절하긴커녕 애교를 부렸다.“아잉, 대표님, 쑥스럽게 왜 그래요.”곧이어 안 대표에게 다시 입을 맞추는 그녀...이 광경을 지켜보는 배도현은 미간이 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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