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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 온 뒤 맑음

비 온 뒤 맑음

بواسطة:  봉소안مكتمل
لغة: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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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서진과 배도현이 결혼 3주년 기념일을 맞던 날, 배도현은 친구들을 불러 모아 축하 파티를 열었다. 다만 윤서진이 들뜬 마음으로 파티장에 도착했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배도현이 글쎄 어릴 적부터 줄곧 마음에 품어왔던 첫사랑 최지영 앞에 무릎을 꿇고 청혼을 하는 것이었다. 윤서진은 목소리를 내리깔고 그에게 따져 물었다. 하지만 이 남자는 귀찮다는 듯이 그냥 게임 중에 벌칙 하는 거라며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말라고 했다. 어쨌거나 남편인지라 이 말을 믿어주려 애썼거늘 배도현은 첫사랑을 위한답시고 임신한 그녀를 계단에서 밀어뜨렸다. 아이는 유산되었고 윤서진도 비로소 정신을 차렸다. 그녀는 배도현에게 다섯 번의 기회를 주겠다고 했다. 어느덧 기회가 전부 소진되었다. “배도현, 우리 그만 이혼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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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فصل الأول

제1화

윤서진과 배도현이 결혼 3주년 기념일을 맞던 날, 배도현은 친구들을 불러 모아 축하 파티를 열었다.

다만 윤서진이 들뜬 마음으로 파티장에 도착했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배도현이 글쎄 어릴 적부터 줄곧 마음에 품어왔던 첫사랑 최지영 앞에 무릎을 꿇고 청혼을 하는 것이었다.

커다란 룸 안에서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

“받아줘! 받아줘!”

“야, 이참에 둘이 뽀뽀해 그냥. 도현아, 우리도 이만하면 기회 준 거다. 너 결혼하고도 계속 최지영 좋아하는 거 여기 모르는 사람 있냐?”

“됐어, 그만해. 서진이가 보면 어떡하려고... 걔 진짜 화낸단 말이야.”

최지영이 수줍은 듯 고개를 푹 숙였다.

“서진이 임신 중이라 절대 화나게 해선 안 돼.”

“야, 배도현, 뭘 엉거주춤하고 있어? 게임 졌으면 벌칙 받아야지. 이거 절호의 찬스다! 뽀뽀해, 얼른!”

친구들이 끊임없이 분위기를 띄우자 배도현은 눈앞의 최지영을 보며 마음이 동한 듯 망설임 없이 입술을 갖다 대려 했다.

이제 막 뽀뽀하려던 순간, 문가에 서 있던 윤서진이 차갑게 물었다.

“지금 뭐 하는 짓이야?”

화들짝 놀란 뭇사람들은 너도나도 배도현을 위해 상황 수습에 나섰다.

“아니야, 서진아. 오해하지 마. 우리 그냥 장난 좀 친 거야.”

“뭐? 너희들은 장난으로 키스하니? 너무 심한 거 아니야?”

윤서진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버리자 배도현의 친구들도 눈치를 보며 뿔뿔이 흩어졌다.

“나 볼일 있어서 먼저 간다.”

“나도 이만 가봐야겠다. 저기 도현아... 서진이랑 결혼 3주년 축하해!”

그녀의 등장으로 친구들이 전부 나가버리자 배도현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너 진짜 왜 이래? 게임에 져서 벌칙 좀 한 거 같고 뭘 이렇게까지 정색하냐고! 어이가 없네.”

윤서진은 살짝 불러 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실망 어린 눈길로 배도현을 쳐다봤다.

임신한 지도 3개월째, 그녀는 줄곧 오늘 이 파티를 기대해왔다. 아이가 생긴 기념으로 배도현이 더 큰 이벤트를 해줄 줄 알았다.

하긴, 이 또한 예기치도 못한 ‘빅 이벤트’였다.

“도현아, 화 풀어. 서진이가 오해해서 그런 거잖아.”

이때 최지영이 물컵을 들고 다가오더니 윤서진에게 건넸다.

“오해하지 마, 서진아. 우리 방금 진짜 게임에 져서 벌칙 한 거야. 애들이 뭐 도현이가 아직도 날 좋아하네 어쩌네 해도 마음에 새겨두지 마. 장난치느라 그런 거니까 내가 대신 사과할게, 미안해.”

배도현의 친구들이 나불거린 그 말을 행여나 못 들었을까 봐 이토록 친절하게 곱씹어주는 최지영!

윤서진은 그녀가 가까이 다가오자 본능적으로 자신의 배를 감쌌지만, 별안간 최지영이 날카로운 비명을 질렀다.

“으악! 내 손...”

최지영은 느닷없이 바닥에 쓰러지고 뜨거운 찻물이 손등에 쏟아지면서 벌겋게 부어올랐다.

배도현이 경악한 표정으로 달려와 최지영을 품에 안고 속상한 투로 물었다.

“지영아, 괜찮아? 많이 아파?”

“괜찮아... 서진이 탓 아니야. 일부러 그런 게 아닐 거야.”

가여운 척하는 최지영의 몰골을 쳐다보며 윤서진은 간신히 웃음을 참았다.

그야말로 여배우 뺨치는 연기였다. 아까는 손끝 하나 닿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윤서진, 너 미쳤어? 불만 있으면 나한테 말해. 지영이 다치게 하지 말고. 애까지 뱄으면서 이런 파렴치한 짓을 하고 싶어? 아이가 벌 받을까 두렵지도 않아?”

최지영을 감싸려고 자기 자식까지 저주하는 이 인간!

말을 마친 배도현은 최지영을 안고 룸 밖을 나섰다.

윤서진이 재빨리 그 뒤를 따라 계단을 내려가며 팔을 꼭 붙잡았다.

“어디 가? 우리 오늘 결혼기념일이야! 딴 여자 둘러업고 나가는 게 말이 돼?”

“이거 놔! 지영이한테 무슨 일 생기면 진짜 너 가만 안 둬!”

“일은 무슨 일! 손 좀 덴 거 가지고 무슨 일이 난다고 그래. 게다가 나 아까 최지영 건드리지도 않았어. 얘 혼자 넘어진 거라고!”

윤서진은 분노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 자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 남편이란 자가 다짜고짜 최지영의 편만 들어주다니.

3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그의 마음은 최지영에게서 떠난 적이 없었다.

“아직도 변명이야? 꺼져 당장!”

배도현이 말하면서 그녀를 거칠게 밀쳤다. 이에 윤서진은 균형을 잃고 그만 계단을 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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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윤서진과 배도현이 결혼 3주년 기념일을 맞던 날, 배도현은 친구들을 불러 모아 축하 파티를 열었다.다만 윤서진이 들뜬 마음으로 파티장에 도착했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은 충격 그 자체였다. 배도현이 글쎄 어릴 적부터 줄곧 마음에 품어왔던 첫사랑 최지영 앞에 무릎을 꿇고 청혼을 하는 것이었다.커다란 룸 안에서 모두가 환호성을 질렀다.“받아줘! 받아줘!”“야, 이참에 둘이 뽀뽀해 그냥. 도현아, 우리도 이만하면 기회 준 거다. 너 결혼하고도 계속 최지영 좋아하는 거 여기 모르는 사람 있냐?”“됐어, 그만해. 서진이가 보면 어떡하려고... 걔 진짜 화낸단 말이야.”최지영이 수줍은 듯 고개를 푹 숙였다.“서진이 임신 중이라 절대 화나게 해선 안 돼.”“야, 배도현, 뭘 엉거주춤하고 있어? 게임 졌으면 벌칙 받아야지. 이거 절호의 찬스다! 뽀뽀해, 얼른!”친구들이 끊임없이 분위기를 띄우자 배도현은 눈앞의 최지영을 보며 마음이 동한 듯 망설임 없이 입술을 갖다 대려 했다.이제 막 뽀뽀하려던 순간, 문가에 서 있던 윤서진이 차갑게 물었다.“지금 뭐 하는 짓이야?”화들짝 놀란 뭇사람들은 너도나도 배도현을 위해 상황 수습에 나섰다.“아니야, 서진아. 오해하지 마. 우리 그냥 장난 좀 친 거야.”“뭐? 너희들은 장난으로 키스하니? 너무 심한 거 아니야?”윤서진의 얼굴이 차갑게 굳어버리자 배도현의 친구들도 눈치를 보며 뿔뿔이 흩어졌다.“나 볼일 있어서 먼저 간다.”“나도 이만 가봐야겠다. 저기 도현아... 서진이랑 결혼 3주년 축하해!”그녀의 등장으로 친구들이 전부 나가버리자 배도현은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너 진짜 왜 이래? 게임에 져서 벌칙 좀 한 거 같고 뭘 이렇게까지 정색하냐고! 어이가 없네.”윤서진은 살짝 불러 오른 배를 쓰다듬으며 실망 어린 눈길로 배도현을 쳐다봤다.임신한 지도 3개월째, 그녀는 줄곧 오늘 이 파티를 기대해왔다. 아이가 생긴 기념으로 배도현이 더 큰 이벤트를 해줄 줄 알았다.하긴, 이 또한 예기치도 못한 ‘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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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극심한 고통이 윤서진을 덮쳤다. 멀어져 가는 배도현의 뒷모습을 보며 애처롭게 그 이름을 불러보았다.“도현아, 가지 마... 배가... 내 아이가...”배도현이 대뜸 걸음을 멈추더니 서늘한 눈빛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서진아, 나 지금 너랑 이런 짓거리 할 시간 없어. 지영이 연예인이야. 여배우 손에 흉터 남으면 안 되는 거 알잖아! 대체 왜 이렇게 못됐니?”그 말을 끝으로 배도현은 최지영을 안고 매정하게 자리를 떠났다.남자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윤서진은 절망 속에서 눈을 감았다.몸 아래로 고통이 점점 강렬해지자 그녀는 마지못해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했다.“살려주세요! 제 아이 좀 살려주세요 제발...”다리 사이로 뜨거운 액체가 흘러내리고 피비린내가 강하게 코를 찔렀다. 윤서진은 고개를 숙여 짙게 번져가는 핏물을 내려다보았다.“안 돼...”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쏟아지고 극도의 공포가 밀려들었다.‘내 아이, 아이만은 지켜야 해!’“이봐요, 괜찮으세요? 구급차 불러드릴게요!”혈흔 속에 쓰러진 윤서진을 발견한 누군가가 즉시 119에 전화를 걸었다.구급차 안, 윤서진은 이제 곧 쓰러질 지경이었지만 필사적으로 의사에게 매달렸다.“의사 선생님, 제발 부탁이에요. 제 아이 꼭 살려주세요. 겨우 3개월밖에 안 됐어요. 꼭 좀 부탁드릴게요!”“환자분, 걱정 마세요. 저희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바로 남편분께 연락해서 병원으로 오시라고 할게요!”의사는 아이가 유산될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했기에 그녀를 자극하지 않으려 신중하게 말했다.“여보세요? 윤서진 씨 남편분 맞으신가요?”다만 전화 너머로 최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이시죠?”“실례지만 누구세요? 윤서진 씨 남편분 바꿔주실래요? 윤서진 씨가 지금 심한 출혈로 병원에 이송 중이거든요. 남편분께 얼른 병원으로 와달라고 전해주세요!”전화를 받았을 때 배도현은 이미 최지영을 병원에 데려다준 뒤였다.그녀의 가방에 휴대폰을 넣어두고 수납하러 간 참에 이런 전화가 걸려왔다.“참나! 윤서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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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아이 아빠는 어디 계시는 거예요? 제가 전화해볼게요. 와서 환자분 돌봐주셔야죠.”윤서진은 두 눈을 깜빡이며 힘없는 목소리로 답했다.“아빠 없어요.”“네?”의사가 그녀의 기록을 뒤적였다.“결혼하신 거로 나오는데 남편분 있으면서 왜 같이 안 오셨대요? 산부인과 검진 때도 한 번도 안 오시더니 어쩌면 오늘도...”윤서진은 그제야 알아챘다. 그동안 산부인과 검진은 전부 홀로 다녔었지.3개월 전 임신 사실을 알았을 때, 배도현은 처음에 무척 기뻐하며 첫 초음파 검사에 함께 가자고 약속했었다.하지만 그날 최지영이 돌아왔다.이 여자가 돌아온 후, 배도현의 마음은 윤서진한테서 거의 떠나버린 셈이었다.산부인과 검진 때마다 바쁘다고 핑계를 둘러대는 인간!사실 윤서진도 남편이 최지영과 여러 번 만났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이를 봐서 굳이 입 밖에 꺼내지 않았다.이제 소중한 아기마저 잃었으니 더 이상 이 남자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배도현과 이혼할 때가 되었다.7년 동안 꽁무니만 쫓아다니면서 그녀도 지칠 대로 지쳤다.“가족분 없으시면 환자분께서 직접 수납하셔야 합니다.”의사가 입원 기록을 떼주었다. 윤서진은 이불을 걷어내고 허약해진 몸을 이끌고서 침대에서 내려왔다.다만 몇 걸음 옮기기도 전에 복도에서 마주 걸어오는 배도현과 최지영을 보게 됐다.배도현은 조심스럽게 최지영을 부축하다가 그녀를 보자마자 재빨리 본인 뒤로 감쌌다.“어떻게 여기까지 쫓아와? 지영이 손 다친 거 안 보여? 뭘 더 어쩌자는 건데?”경계 가득한 이 남자의 눈빛을 보면서 윤서진은 가슴이 차갑게 식어갔다.“도현아, 서진이한테 너무 심하게 그러지 마. 얘도 일부러 그런 건 아니잖아. 아마 나한테 사과하러 온 거겠지.”최지영은 배도현에게 거의 몸을 기대다시피 하고 말했다.“괜찮아, 서진아. 네 탓 아니야.”“사과하러 온 거면 나가서 지영이 먹을 거라도 좀 사 와. 애가 손을 다쳐서 입원해야 한대잖아!”윤서진은 최지영의 손을 힐끔 쳐다보았다. 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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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별 거 아니야.”윤서진은 서류를 주머니에 챙겨 넣고 다시 발걸음을 옮겼다.문득 배도현이 그녀의 등 뒤에서 소리쳤다.“며칠 뒤에 산부인과 검진이지? 일단 지영이부터 챙기고 검진 날 같이 병원 오자.”순간 윤서진은 온몸이 굳어버렸다. 참았던 눈물이 끝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그때 가서 얘기해.”그녀는 뒤돌아서서 배도현을 쳐다봤다.“도현아, 다섯 번의 기회 이제 다 썼어.”“뭐라고?”배도현은 미간을 찌푸렸다.“다섯 번은 무슨! 그거 그냥 농담이야. 진지하게 받아들일 거 없어! 지영이 손 다 낫거든 돌아가서 너랑 아이랑 같이 있어 줄게!”남자의 눈가에 희미한 죄책감이 스쳤지만, 몸은 여전히 최지영에게 기울었다.떠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윤서진은 속으로 다짐했다.‘배도현, 넌 이제 다섯 번의 기회 다 썼어. 오늘부로 더는 너한테 상처받지 않아. 각오해!’아래층으로 내려온 윤서진은 수납 절차를 밟기 시작했다.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몸을 가누지 못하고 휘청거리자 간호사가 쓰러질 뻔한 그녀를 얼른 부축했다.“환자분! 안색이 너무 안 좋으신데 혼자 수납하러 오시면 어떡해요? 남편분은 안 계세요? 제가 대신 도와드릴게요.”“감사합니다.”꽁꽁 얼어붙은 그녀의 마음 한구석에 희미한 온기가 전해졌다.낯선 사람조차 자신의 안색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봐 주는데 정작 배도현은?그의 눈에는 오직 최지영뿐이라 윤서진 따위 안중에도 없었다.사흘 동안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남편 배도현은 연락 한 통 없었다.아마 사흘 내내 집에도 안 돌아갔겠지.“윤서진 씨, 오늘 퇴원이 가능한지 검사 좀 해볼게요.”여러 의사가 병실로 들어와 그녀를 진찰하며 대화를 나누었다.“다들 얘기 들었어요? 그 유명한 여배우 최지영 씨가 우리 병원에 왔대요. 손을 데었다나 뭐라나...”“가벼운 상처라 입원할 필요도 없었어요 원래. 오늘 퇴원한다네요.”“그 옆에 잘생긴 남자분은 누구래요? 남친인가? 완전 훈남이던데.”“그건 저도 잘... 아무튼 최지영 씨한테 지극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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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배도현의 명의로 된 부동산은 꽤 많지만 윤서진은 단 하나뿐이다.배씨 가문에서 그녀의 임신 소식을 듣고 선물해준 바로 옆 별장이었다.이제 곧 이 남자랑도 이혼할 참이라 며칠간 조용히 지내고 싶었다.최지영이든 배도현이든 눈에서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으로 그녀가 제안했다.“바로 옆에 집 한 채 더 있잖아. 지영이 그리로 보내면 더 편하지 않을까?”“그건 네 집이잖아.”배도현이 미간을 구겼다.‘윤서진, 언제 이렇게 너그러워졌대?’“지영이가 필요하다면 그 집에서 지내게 해줘.”말을 마친 윤서진이 위층으로 향하려 할 때, 이 남자가 대뜸 불러세웠다.“죽 안 먹을 거야?”“응.”그녀는 해산물을 싫어한다. 특히 해산물 죽은 더더욱!윤서진이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왔을 때, 거실에는 최지영과 배도현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오직 가정부만이 식탁을 치우고 있을 뿐이었다.“도련님은 최지영 씨랑 함께 옆 별장으로 가셨어요.”“네.”가정부의 말에 윤서진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이어서 배도현의 전화가 걸려왔다.“나 오늘 밤은 안 들어가. 지영이가 어두운 게 너무 무섭대. 그냥 여기서 같이 있어야겠어.”“그래.”배도현은 그녀가 이렇게 순순히 허락할 줄은 몰랐던지 목소리에 약간의 미안함이 섞였다.“미안해, 서진아. 지영이가 좀 애같이 굴 때가 많잖아. 어두우면 귀신 나온다고 하도 무서워하길래 어쩔 수 없이 옆에 남아있는 거야. 내일 네 생일이지? 내일은 꼭 돌아가서 함께 있어 줄게.”“응.”윤서진은 더 말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그녀는 이 집을 쭉 둘러보았는데 벽에 아이에 관한 그림들이 가득 걸려 있었다.임신을 간절히 원했던 배도현의 어머니가 아기 사진을 잔뜩 붙여 놓았던 것이다.애가 빨리 들어선다며 한약도 잔뜩 지어주셨었지. 워낙 임신 체질이 아니었던 그녀는 아이를 갖기까지 오랜 시간 한약을 먹어야 했다.이제 그 소중한 아기마저 잃었으니 배도현과 이혼해야 하고 이 그림들도 더 이상 벽에 걸어둘 필요가 없게 됐다.윤서진은 몸을 일으켜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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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왜 거기서 한숨 자지 그랬어?”“내 집도 아닌데 뭘.”배도현은 겉옷을 벗어 자연스럽게 윤서진에게 건넸다.“게다가 오늘 네 생일이라 와서 함께해주기로 했잖아.”윤서진은 코트의 향수 냄새를 맡았다. 짙고 자극적인 향수 냄새에 그녀는 무심코 인상을 찌푸렸다.코트를 소파 위에 대충 내던지고 배도현과 조용히 거리를 두었다.“아, 맞다. 너 산부인과 검진 언제라고 했지?”배도현이 다가와 그녀의 배에 손을 얹었다.“우리 아가, 아빠 보고 싶어? 다음엔 아빠랑 엄마랑 같이 가면 우리 아기 볼 수 있겠다. 엄청 기대되네, 아가야.”이 남자의 행복한 모습을 보고 있자니 윤서진은 가슴이 차갑게 식어내렸다.아이? 제 손으로 직접 죽여놓고 무슨 만남을 기대하는 걸까?“다음 주 월요일에 시간 돼?”“당연하지! 이번엔 꼭 같이 가.”배도현이 일어나 그녀를 뒤에서 껴안았다.“미안해, 요즘 좀 많이 소홀했지. 그러게 왜 그렇게 질투가 많아? 지영이랑 나랑 네가 생각하는 그런 사이 아니야. 우린 그냥 친구야. 게다가 그날 내 친구들 앞에서 그렇게 화내는 게 어디 있어? 내 체면이 뭐가 되겠냐고.”윤서진은 등이 굳어버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결혼한 지 3년이나 된 인간이 친구들 앞에서 최지영에게 청혼하는 건 무슨 경우란 말인가? 아내인 윤서진이 안중에 있긴 한 걸까?한편 배도현은 그녀의 반응을 살피면서 계속 달랬다.“오늘 생일인데 어디 갈래? 나랑 같이 가자, 서진아.”윤서진은 특별히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바다와 멀리 떨어진 도시 부연에 살았던 그녀는 살면서 한 번도 바다 구경을 못 해봤다.배도현은 언젠가 바다 보러 함께 몬디브로 가자고 그녀와 약속했었다.벌써 몇 년 전 일인데 그 약속은 아직도 이루어지지 않았다.“몬디브에 가고 싶어. 바다 보러 가자고 약속했잖아.”순간 배도현이 미간을 찌푸렸다.“거긴 너무 멀어. 왕복하는 데만 시간이 오래 걸리잖아. 그냥 가까운 도시에서 보자. 내가 민박집 예약해 놓을게. 다음 주 월요일에 바로 돌아올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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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그럴 리가! 서진이가 우리 사이를 몰라? 뭣 하러 그런 거로 화내겠어?”배도현이 자리에서 일어나 휴지를 집어 들더니 최지영의 입가에 묻은 소스를 자상하게 닦아주었다.“우리 지영이 왜 아직도 어린애처럼 밥 먹을 때 얼굴에 다 묻히고 그래?”윤서진은 속이 뒤집힐 것 같아서 더 이상 두 인간의 몰골을 쳐다보고 싶지 않았다.“속이 좀 불편해서 먼저 일어날게.”“왜 그래, 서진아?”배도현이 걱정스러운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또 애기 때문이야? 녀석이 왜 자꾸 엄마 힘들게 하는 거야?”그래도 집까지 바래다줄 줄 알았는데 이 남자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곤 상상 그 이상이었다.“불편하면 먼저 들어가. 지영이 다 먹고 나면 나도 돌아갈게.”그를 바라보는 윤서진의 눈가에 자조적인 웃음이 스쳤다.임신한 아내보다 배고픈 최지영이 더 신경 쓰이는 남편, 하긴, 늘 이런 식이었지.그때 갑자기 화재경보기가 울리고 누군가 소리쳤다.“불이야! 빨리 대피하세요. 여기 불났어요.”윤서진이 상황을 파악하기도 전에 수많은 사람들이 혼란스럽게 밖으로 뛰쳐나갔다.아수라장이 된 상황 속에서 그녀는 멍하니 서 있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으니까.본능적으로 배도현을 바라보았지만, 이 인간은 최지영을 꼭 껴안고 재빨리 밖으로 뛰쳐 갔다.처음부터 끝까지 윤서진을 거들떠보지도 않았다.다행히 누군가 담배를 피우다 실수로 경보기를 건드린 것이었다.큰 화재는 발생하지 않았고 곧 모든 사람들이 다시 식사 자리로 돌아왔다.물론 배도현과 최지영도 포함해서 말이다.“도현아, 아까는 진짜 너무 무서웠어. 그래도 네가 옆에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최지영은 그의 부축을 받으며 몸을 밀착한 채로 자리에 돌아왔다.애교를 부렸더니 배도현은 긴 생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속삭였다.“그새 잊었어? 평생 널 지켜주겠다고 했잖아.”그 순간 윤서진은 찬물을 확 끼얹은 듯한 기분이 들었다.이제 이 남자에게 남은 건 지독한 실망뿐이었다.문득 3년 전 최지영이 출국하던 날이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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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몇 걸음 나아가던 배도현은 돌아서서 여전히 제자리에 있는 윤서진을 힐끗 보았다.앙상한 몸매에 홀로 서 있는 그녀의 모습은 실로 가련할 따름이었다.배도현은 그제야 깨달았다. 최지영 때문에 그녀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고 약속했건만 단 한 번도 지킨 적이 없었다.‘이번이 마지막이야. 돌아가면 서진이한테 꼭 제대로 보상해야지.’두 남녀가 떠난 후 윤서진은 제자리로 돌아왔다. 이때 웨이터가 2단 케이크를 내왔다.“생일 축하드려요, 손님. 이건 배도현 씨께서 준비하신 케이크예요.”말을 이어가던 웨이터가 주변을 둘러봤지만 배도현은 보이지 않고 윤서진만 덩그러니 남아있었다.“그냥 두고 가세요. 감사합니다.”웨이터는 그녀를 위해 촛불을 달아주고 선물로 작은 인형을 건넸다.윤서진은 눈을 감고 간절하게 소원을 빌었다.‘아가야, 다시 태어난다면 사랑이 넘치는 오붓한 가정에서 태어나 평생 행복하게 살아가렴.’소원을 빌고 나서 케이크도 한 입 먹었다. 달콤해야 할 케이크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쓰지?잠시 후 변호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혼 합의서를 다 작성했다며 언제든 와서 서명하면 된다고 했다.로펌에 도착한 윤서진은 합의서를 훑어보고 망설임 없이 서명했다.“사모님, 이제 대표님과 아이도 있으시고 게다가 대표님을 그렇게 사랑하시면서 갑자기 왜 이혼 결정을 하신 거죠?”변호사는 끝내 마음속의 의문을 내던졌다.“이제 그냥 서진 씨라고 불러주세요. 배도현과는 남남이에요, 저.”윤서진은 미소를 지을 뿐 그의 질문에 답하지는 않았다.“그리고 번거로우시겠지만, 내일 직접 이 이혼 합의서를 배도현한테 전달해 주세요. 사인 마치거든 주소 보내드릴 테니까 우편으로 보내주시면 돼요.”“대표님은 이혼 사실을 알긴 하나요? 반대하면 어떡하죠?”이에 윤서진이 가볍게 웃었다.“아마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저랑 이혼하지 못해서 안달인데 왜 반대하겠어요? 만약 진짜 반대한다면 제가 몇 부 더 서명할 테니 전부 챙겨가세요.”“알겠습니다. 분부대로 잘 처리하겠습니다, 서진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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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최지영을 집까지 바래다준 후, 배도현은 곧장 떠나려 했지만, 이 여자가 한사코 팔을 붙잡고 매달렸다.“또 나 혼자 내버려 두게? 도현아, 나 외로운 거 딱 질색인 거 너도 알잖아.”“매니저 불러줄까 그럼? 이제 진짜 돌아가야 해. 오늘 서진이 생일이야. 함께해주기로 약속했단 말이야.”배도현은 연신 손목시계를 쳐다보았다. 날도 어두워졌는데 윤서진이 집에 돌아갔을지 걱정되었다.실은 오늘 그녀의 모습이 자꾸만 마음에 걸렸다.임신 중이라 보통 사람보다 훨씬 예민할 시기인데 화재 경보가 울렸을 때, 아이와 그녀를 내팽개치다니.생각만 하면 스스로가 한심해서 미칠 지경이었다.이때 최지영이 빨간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알았어. 그럼 내일은 꼭 나랑 같이 있는 거다. 약속해!”“내일 다시 얘기해.”배도현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거실에 들어섰지만 윤서진의 그림자조차 보이지 않았다.예전 같으면 아무리 늦게 돌아와도 항상 소파에 앉아 기다려주던 그녀인데,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기를 위해 예쁜 옷을 뜨개질하며 밤늦게까지 기다려주던 그녀인데 오늘은 거실이 유난히 썰렁했고 윤서진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다.“서진아?”조심스럽게 불러 보아도 대답이 없었다.불현듯 거실 벽에 걸려 있던 아기 그림이 싹 다 사라진 걸 발견했다.“아줌마!”배도현은 이유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라 가정부를 향해 소리쳤다.“오셨어요, 도련님.”“여기 있던 그림들 다 어디 갔어요? 다 어떻게 된 거냐고요?”“사모님께서 찢으셨어요.”가정부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며칠 전에 이미 찢으셨답니다.”며칠이나 되었다니. 배도현은 자신이 얼마나 무심했는지 비로소 깨달았다.“그래요?”그는 가슴 찔린 듯 미간을 찌푸렸다.“서진이는요?”“사모님은... 나가셨습니다.”“뭐라고요?”배도현은 그대로 얼어붙었다. 가정부의 말을 제대로 알아듣지 못했는지 다시 한번 되묻는 이 남자...“나가다니, 어디를요?”“그건 저도 잘 모릅니다. 며칠 동안 집을 비우겠다고만 하셨거든요.”남자의 안색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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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가정부의 말에 배도현의 안색이 더욱 창백해졌다. 후회와 자책감에 휩싸인 채 스스로의 뺨을 내리쳤다.“다 내 잘못이에요. 그렇게 하는 게 아닌데...”그는 고개를 내저으며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내가 아기를 죽였어. 나 때문에 우리 아이를 잃었다고... 난 인간도 아니야, 젠장!”배도현은 연신 제 뺨을 후려쳤다. 이를 지켜보는 가정부도 안쓰러울 따름이었다.“도련님, 이제 그만 자책하시고 사모님부터 찾아보세요. 어디로 간다는 말씀도 없으셨어요.”가정부의 말을 들은 배도현은 정신을 번쩍 차렸다. 그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걸음을 휘청거리면서 계단을 내려왔다.이제 그만 윤서진을 찾아봐야 한다. 문밖을 나서려 할 때 서강인 변호사가 노크했다.“대표님, 안녕하세요.”“서 변호사님? 여긴 어쩐 일이세요? 서진이 찾으러 오셨어요? 걔 지금 집에 없으니 이만 돌아가세요.”배도현은 윤서진을 찾아 나서려 했지만, 서강인이 대뜸 그를 막아섰다.“아니요, 오늘은 서진 씨 말고 대표님 뵈러 왔습니다.”“서진 씨라니? 호칭 똑바로 합시다.”배도현은 서강인의 말에 발끈했다.“늘 사모님이라고 부르시던 분이 오늘은 어떻게 된 겁니까?”“아마 이걸 보시면 이해하실 겁니다.”서강인은 이혼 합의서를 꺼내 배도현에게 건넸다.눈 앞에 펼쳐진 서류를 본 순간 배도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고개를 저었다.“이게... 뭡니까?”“윤서진 씨께서 준비하신 이혼 합의서입니다.”서강인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서진 씨는 대표님과 이혼하기를 원합니다. 이미 서명하셨으니 대표님만 서명하시면 두 분은 부부 관계가 완전히 종료될 겁니다.”“뭐라고요? 내가 언제 이혼하겠다고 했죠? 웃기지도 않아.”배도현은 미친 사람처럼 합의서를 낚아채 순식간에 갈기갈기 찢어버렸다.한편 서강인은 그의 행동을 제지하지 않았다. 대신 태연하게 가방에서 또 다른 합의서를 꺼내 들었다.“어쩔 수 없습니다, 대표님. 이제 그만 이 사실을 받아들이셔야 해요. 합의서를 찢으실 줄 알고 서진 씨가 미리 여러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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