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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مؤلف: 별똥별
오늘은 병원 진료 예약이 있는 날이자 노윤슬이 떠나기로 한 날이기도 했다.

노윤슬이 단정하게 옷을 차려입고 아래층으로 내려갔을 때 마침 고재형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의 뒤로 고주율과 임소이가 따라 들어왔다.

그녀는 고재형이 그녀의 눈 진료를 위해 돌아올 것을 알고 있었다. 최근 들어 노윤슬이 보인 평소와 다른 태도 때문에 꽤 불안해하고 있었으니까.

“여보, 나랑 주율이 왔어.”

고재형이 노윤슬을 번쩍 안아 들고 거실을 빙글빙글 돌려 했지만 노윤슬이 그를 밀어냈다.

가족이 돌아왔음에도 그녀의 얼굴에 기쁜 기색이 티끌만큼도 없었다.

고재형이 불안한 목소리로 불렀다.

“여보?”

“엄마.”

고주율이 건축물 모형 장난감을 노윤슬의 손에 쥐여주었다.

“엄마 주려고 사 온 기념품이에요. 마음에 드는지 한 번 만져봐요.”

노윤슬이 장난감을 옆에 내려놓으며 서늘하게 대꾸했다.

“병원 갈 시간이야. 다녀와서 얘기해.”

고재형이 다시 그녀를 끌어안았다.

“그래. 병원 같이 가줄게.”

아이가 그녀의 다리에 매달렸다.

“나도 갈래요. 엄마랑 오랫동안 같이 못 있었잖아요.”

차에 오르기 전 노윤슬이 마지막으로 별장을 돌아봤다. 그 모습을 본 고재형이 걱정스레 물었다.

“왜 그래?”

그녀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고현 병원이 바닷가와 인접한 시 외곽에 자리하고 있었다. 차가 탁 트인 도로를 매끄럽게 달렸다.

고주율이 배시시 웃으며 말했다.

“아빠가 엄마 병원 같이 가준다고 엄청 서둘러서 돌아왔어요.”

노윤슬이 창밖을 내다봤다.

“유치원 단체 체험학습이라고 하지 않았어? 마음대로 일찍 돌아와도 돼?”

그제야 말실수했다는 걸 깨달은 고주율이 입을 꾹 다물었다. 고재형이 노윤슬의 손을 잡으며 수습에 나섰다.

“응. 된다고 해서 우리만 먼저 왔어. 너랑 한 약속은 지켜야지.”

‘나를 영원히 사랑하겠다던 약속도 했었지. 절대 배신하지 않겠다고도 했고. 약속을 너무 많이 해서 다 잊어버린 거야?’

노윤슬이 더는 뭐라 하지 않았다.

차 안에 숨 막히는 정적이 감돌던 그때 고재형의 휴대폰이 갑자기 울렸다.

그는 발신자를 확인하지도 않고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런데 상대가 무척이나 끈질겼다. 끊으면 다시 걸었고 그렇게 십여 차례나 반복했다.

노윤슬이 덤덤하게 말했다.

“받아봐. 회사에 급한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잖아.”

고재형이 창문을 내리자 엄청난 소음이 차 안을 가득 채웠다. 상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고재형의 안색이 급변하더니 운전기사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차 세워.”

거친 마찰음과 함께 차가 급정거했다.

고재형이 애써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노윤슬을 바라보았다.

“윤슬아, 회사에 갑자기 일이 터져서 지금 당장 가봐야 할 것 같아. 주율이랑 도로변에서 잠깐만 기다려. 바로 다른 기사 보내서 병원까지 데려다주라고 할게.”

그러고는 차 문을 열었다.

영특했던 고주율은 아빠의 마음속에 회사 일이 엄마보다 중요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임소이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했다.

고주율이 재빨리 그럴싸한 핑계를 댔다.

“나도 갈래요. 난 고현 그룹의 후계자잖아요. 아빠 옆에서 미리미리 배워둘 거예요.”

“너까지 가면 엄마는 어쩌고?”

노윤슬의 치맛자락이 바람에 펄럭였다. 그녀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괜찮아. 가서 볼일 봐.”

고재형이 몇 초 동안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여보, 도로변에서 꼼짝 말고 서 있어야 해. 딱 10분만 기다리면 기사가 데리러 올 거야.”

그는 노윤슬의 대답조차 기다리지 못하고 차에 오를 준비를 했다. 그때 노윤슬이 갑자기 그의 옷자락을 움켜쥐었다.

“안 가면 안 돼?”

고재형이 그녀의 손을 매정하게 떨쳐냈다.

“회사에 진짜 중요한 일이 생겨서 그래. 철없이 굴지 말고 얌전히 있어. 알았지?”

그러고는 차에 올라타 문을 닫아버렸다. 차가 순식간에 도로 저편으로 사라졌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재형의 차가 사라진 방향에서 대형 트럭 한 대가 달려왔다.

노윤슬이 뒤로 한 걸음 물러서자 기사가 트럭에서 내려 신원 미상의 여성 시신 한 구를 툭 내려놓았다.

기사가 다시 차에 올라타 그 시신을 짓밟고 지나가려던 그때 커다란 손이 노윤슬의 두 눈을 가렸다.

노윤슬이 그 손을 밀어내자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처참하게 훼손된 시신이 시야에 들어왔고 바닥에 피가 흥건했다.

‘이따가 고재형이랑 고주율이 이 끔찍한 현장을 마주하게 되면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다른 여자에게 정신이 팔려 앞이 보이지 않는 노윤슬을 도로 한복판에 내다 버린 바람에 교통사고를 당해 죽은 것으로 꾸밀 생각이었다.

오늘이 그들과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앞으로 남은 길고 긴 인생 동안 그들은 이 순간을 떠올릴 때마다 심장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듯한 고통에서 몸부림치게 될 것이다.

“그만 봐. 얼른 가자.”

노윤슬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

앞으로 펼쳐질 그녀의 인생은 저 높고 푸른 하늘처럼 한없이 자유로울 것이다.

‘고재형, 이제 영원히 안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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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가 다시 눈을 뜬 이유   제24화

    이기성이 노윤슬의 미간에 잡힌 주름을 다정하게 펴주었다.“결혼식을 좀 미루고 나랑 같이 잠깐 다녀올래?”노윤슬이 고개를 저었다.“아니, 됐어. 나에 대한 미련이라도 품고 있어야 조금이라도 더 버티지. 내가 가면 미련도 사라져서 그냥 다 내려놓을지도 몰라.”보름 뒤 노윤슬과 이기성이 해변의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렸다.피아노 선율이 흐르고 노윤슬이 그녀가 직접 디자인한 웨딩드레스를 입고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로 천천히 걸어갔다.이기성이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줄 때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오랜 세월 가슴 속에만 품어왔던 짝사랑이 비로소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윤슬아, 나랑 결혼해줘서 고맙고 내 꿈을 이뤄줘서 고마워.”노윤슬이 복받치는 감정에 울면서 이기성의 목을 감싸 안았다.“고마워. 나한테 다시 가정을 선물해줘서.”성당 신부와 지인들 앞에서 두 사람은 평생을 약속했고 뜨거운 입맞춤을 나누었다.같은 시각 고재형의 병실, 심장 모니터가 날카로운 경고음을 쏟아냈다.의료진이 최선을 다했으나 끝내 고재형을 살리지 못했고 모니터 위의 요동치던 선이 이내 곧게 뻗은 직선이 되었다.고명철이 뇌경색으로 일상생활이 불가능해졌다. 고씨 가문의 두 기둥이 한꺼번에 무너지면서 김은혜와 시력을 잃은 고주율만 남게 되었다.고재형의 장례식에 노윤슬과 이기성도 참석했다. 그들은 멀찍이 떨어져 서서 고재형이 땅에 묻히고 비석이 세워지는 걸 지켜보았다.많은 사람이 다녀갔고 고주율이 마지막까지 남아 자리를 지키며 떠나지 않으려 했다.고주율이 허공에 대고 코를 킁킁거렸다.“엄마, 엄마 왔어요?”노윤슬이 그늘에서 걸어 나와 고주율을 품에 안고 비석에 새겨진 사진을 봤다. 고재형의 유언인지, 아니면 가족들의 뜻인지 알 수 없으나 사진 속의 그는 열여덟 살에 머물러 있었다.교정의 큰 나무 아래에 서서 환하게 웃던 기억 속 가장 순수했던 소년의 모습이었다.“윤슬아. 내가 평생 잘해줄게. 절대 배신하지 않아. 만약 내가 약속을 어기면 천벌 받을 거야.”이 순간

  • 내가 다시 눈을 뜬 이유   제23화

    고재형과 고주율이 귀국하자마자 취재진에게 둘러싸였다.“대표님, 대표님이 임소이 씨를 성폭행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고씨 가문에서는 돈으로 이 사건을 해결할 계획인가요?”“임소이 씨가 줄곧 대표님의 약혼녀로 지냈는데 아직 결혼식을 올리지 않는 이유가 혹시 죽었다 돌아온 전처 노윤슬 씨 때문입니까?”쏟아지는 질문에 고재형은 머리가 윙 했다. 고작 며칠 해외에 나갔다 온 사이 임소이가 또 일을 벌였다.그는 경호원들을 시켜 취재진을 물리친 후 차에 타자마자 변호사에게 연락했다.“내가 없는 동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예요?”“아이가 사망한 이후에 임소이 씨가 가끔 제정신이 아니에요. 임소이 씨 부모님이 이별 비용으로 10억 원을 받고 임소이 씨를 데리고 고향으로 내려갔었는데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다시 돌아와서는 인터넷에 녹음을 하나 공개했더라고요. 들어보니까 차 안에서 대표님과 관계를 가질 때의 녹음이었어요. 내용만 들으면 성폭행한 것처럼 들리긴 해요.”고재형이 휴대폰을 꽉 움켜쥐었다. 임소이가 처음부터 그를 함정에 빠뜨리려 했다는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그때 먼저 유혹한 건 분명 임소이였고 고재형이 끌어안았을 때 거절해서 밀당이라 생각했는데 그게 고재형을 모함하는 증거가 될 줄이야.“임소이가 원하는 게 대체 뭐래요?”“대표님을 만나겠답니다. 대표님이 제시한 조건이 모두 마음에 들면 고소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감옥에 갈 준비를 하라더군요.”고재형과 임소이의 이름이 다시 실시간 검색어에 나란히 올랐다.사생아의 친자 논란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번엔 두 사람이 협상을 위해 만난 카페에서 임소이가 어디선가 칼을 꺼내 고재형을 찌르는 사건이 발생했다.다행히 카페에 있던 시민들이 달려들어 임소이를 제압하여 고재형을 구했다. 그러나 고재형의 등 전체가 피로 흠뻑 젖고 말았다.병원으로 이송된 후 의사가 연달아 세 번이나 위독하다고 알렸다. 열 시간의 사투 끝에 간신히 목숨은 건졌으나 과다 출혈로 혼수상태에 빠져 예후가 좋지 않았다.임소이는

  • 내가 다시 눈을 뜬 이유   제22화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고재형과 고주율은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겨우 노윤슬의 행방을 알아내고 꽃까지 사 들고 달려왔건만 이런 광경을 마주할 줄은 몰랐다.고재형이 무대 위로 성큼성큼 올라가 노윤슬에게 처절하게 매달렸다.“제발 이 사람 받아주지 마. 내가 다 잘못했어. 임소이랑은 완전히 끝냈어. 아이도 죽었고. 이제 우리 사이를 가로막는 건 아무것도 없어. 우리 오랜 세월을 서로 사랑했잖아. 우리한테 아이도 있는데 제발 딱 한 번만 기회를 주면 안 될까?”이기성이 노윤슬의 앞을 막아서서 주먹을 날리자 고재형이 그대로 바닥에 넘어졌다. 그가 무릎을 굽히고 고재형의 멱살을 잡았다.“지난번에 맞고도 정신 못 차렸어? 윤슬이 이젠 내 약혼녀야. 다시 한번 헛소리 지껄였다간 고씨 가문을 가만두지 않을 거야.”지난번에는 이기성의 존재를 몰라서 아무 준비도 못 했지만 이번에는 만반의 준비를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기성이 쳐놓은 방어망을 뚫고 노윤슬의 앞에 나타났겠는가?문밖에서 십여 명의 경호원들이 이기성의 경호원들과 대치했고 시상식장에 있던 사람들은 그들에게까지 불똥이 튈까 봐 구석으로 숨어버렸다.고재형이 아랑곳하지 않고 노윤슬에게 한쪽 무릎을 꿇었다.“윤슬아, 내가 잘못한 거 알아. 하지만 임소이는 나한테 그저 욕구를 해소하는 도구일 뿐이었어. 처음부터 지금까지 내가 사랑한 건 오직 너뿐이야.”어릴 적부터 고재형의 눈에는 오직 노윤슬뿐이었다. 그녀 때문에 다가오는 여자를 수도 없이 거절해왔었다.그런데 그날은 무엇에 홀렸는지 노윤슬보다 화끈하고 당돌하던 임소이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했다.그 후로는 그가 임소이의 첫 남자라는 사실 때문에 모든 걸 용납했고 정신을 차려보니 그녀를 그의 영역에까지 들이고 관계를 지속하는 지경에 이르렀다.심지어 노윤슬이 평생 눈을 뜨지 못한다면 사랑하는 아내와는 정서적 안정을 누리고 임소이와는 육체적 즐거움을 누리겠다는 말도 안 되는 망상까지 했었다.그래서 임소이가 아이를 낳는 걸 허락했던 것인데 그게 임소이의 야망을

  • 내가 다시 눈을 뜬 이유   제21화

    일주일 후 공모전 결과가 발표되었다. 주최 측이 참가자 전원을 시상식에 초대했다.노윤슬이 전신 거울 앞에서 드레스를 매만지고 있을 때 이기성이 그녀의 뒤로 다가와 진주 목걸이를 걸어주었다.“너무 아름다워. 마음에 들어?”이기성이 노윤슬의 얼굴에 입을 맞춘 뒤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노윤슬이 반짝이는 진주알을 만지면서 그의 품에서 몸을 돌려 그와 마주 섰다.“오늘 같이 가주면 안 돼? 혹시 내가 상이라도 받으면 옆에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어.”이기성이 아쉬워하며 한숨을 내쉬었다.“미안해. 나도 정말 같이 가고 싶은데 오늘 중요한 일이 있어.”노윤슬이 고개를 떨구었다.“알았어. 바쁜 일 먼저 봐야지.”이기성과 이가연이 노윤슬이 탄 차가 멀어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차가 시야에서 사라지자 이가연이 말했다.“오빠가 바람났다고 새언니가 의심하는 것 같아. 방금 울 것 같은 표정 못 봤어?”이기성이 이가연의 머리를 톡 쳤다.“내가 그런 쓰레기 같은 놈으로 보이냐? 잔말 말고 빨리 가. 이러다 늦겠다.”...시상식장, 노윤슬이 쓸쓸하게 객석에 앉아 있었다. 머릿속이 이기성이 말한 중요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곁에 앉은 사람이 툭툭 치고 나서야 정신을 차렸다.무대 위에서 사회자가 조금 전 했던 말을 다시 한번 반복했다.“축하합니다, 노윤슬 씨. 이번 공모전의 영예의 1위는 노윤슬 씨입니다. 무대 위로 올라와 주세요.”초대형 스크린에 노윤슬의 디자인 작품이 펼쳐졌고 세계적인 명품 브랜드의 대표가 시상자로 무대 위에서 그녀를 기다렸다.노윤슬이 벅찬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명을 받으며 트로피를 들어 올린 그녀는 그 어느 때보다 눈부시게 빛났다.“심사위원분들의 과분한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그리고 이 자리에 꼭 함께하고 싶었지만 사정상 그러지 못한 한 사람에게도 고마움을 전하고 싶습니다. 또한 이번 대회의 상금 전액을 세계 시각장애 아동 복지 재단에 기부하겠습니다. 더 많은 아이가 빛을 되찾을

  • 내가 다시 눈을 뜬 이유   제20화

    임소이가 멍한 눈으로 품속의 아이를 내려다보았다.아이가 마지막으로 울었던 게 언제였던지, 마지막으로 젖을 물린 게 언제였던지 도무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그녀 때문에 아이가 숨 막혀 죽어버렸다.임소이가 아이의 시신을 끌어안고 고씨 가문 부자를 올려다봤다. 그들의 얼굴에 잠깐이지만 기뻐하는 기색이 스쳤다.고재형이 내려다보며 차갑게 말했다.“여기서 완전히 끝내자. 약속한 10억 원에 별장 하나 더 줄 테니까 다시는 내 눈앞에 나타나지 마.”임소이가 매정한 부자를 노려봤다. 그녀가 이 지경이 된 게 모두 저들 때문이었다. 이제 그녀에게 남은 건 분노뿐이었다.10억?보통 사람들에게는 큰돈일지 몰라도 사치스러운 생활에 익숙해진 임소이에게는 푼돈에 불과했다. 그동안 고재형이 사준 명품 시계와 가방 하나가 수억 원을 호가했다.더구나 재벌 사모님으로 긴 시간을 살아서 남 밑에서 일하며 푼돈을 벌어 생계를 이어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그렇다면 돈 많은 남자를 만나는 방법뿐이었다. 그런데 임소이와 고재형의 일이 소문이 날 대로 나서 그녀를 받아줄 남자가 없었다. 그리고 명예가 바닥까지 떨어진 임소이가 자기 남자에게 들러붙는 걸 용납할 사모님도 없었다.고재형을 떠나면 그녀의 삶은 끝이기에 어떻게든 그를 잡아야 했다. 그녀가 원하던 화려한 삶을 줄 사람은 고재형밖에 없었다.힘들게 아이를 낳아 아이로 결혼을 강요한 것도 그 때문이었건만 이젠 가장 쓸모 있었던 아이마저 임소이의 손으로 죽여버렸다.임소이가 미친 사람처럼 아이의 시신을 껴안고 고현 그룹 앞에서 울다 웃기를 반복했다.고재형과 고주율이 F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다시 몸을 실었다. 마침내 모든 방해물이 제거되었다. 이젠 노윤슬에게 용서를 구할 수 있게 되었다....한편 F국.노윤슬이 이기성과 이가연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그녀의 이름을 내건 의류 브랜드를 론칭했다.과감한 색상과 독창적인 디자인 감각이 돋보인 그녀의 첫 번째 의상이 패션계에서 큰 화제를 모았고 동시에 전 세계 의류 디자인 공모전 주최

  • 내가 다시 눈을 뜬 이유   제19화

    임소이가 거액을 들여 아이와 고재형의 친자 확인 검사를 몰래 의뢰한 뒤 친구더러 라이브 방송 장비를 가져다 달라고 했다.한창 산후조리 중이라 몰골이 초췌했지만 그럼에도 최대한 가련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애썼다.모든 준비를 마친 후 임소이가 카메라에 창백하고 부어오른 얼굴을 들이밀었다. 손을 떨며 친자 확인 결과지를 카메라 앞에 보여주면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저는 고현 그룹 고재형 대표의 약혼녀 임소이입니다. 오늘 이렇게 라이브를 켠 건 우리 아이의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예요.”임소이가 포대기에 싸인 아이를 카메라 앞으로 안고 와 흐느꼈다.“이 아이가 태어난 지 일주일도 안 됐는데 아빠인 고재형은 자기 자식임을 인정하지 않고 있어요. 여기 고재형과 아이의 친자 확인 결과지가 있습니다. DNA 일치율이 99.99%예요.”“처음엔 저와 결혼하겠다며 저만을 사랑한다고 맹세해서 이 아이를 낳았어요. 그런데 이제 와서 부인하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아이를 바닥에 던져 죽이려고까지 했어요.”방송을 보던 시청자들은 처음에 그녀가 누군지 몰라 어리둥절해하다가 6개월 전 남의 가정에 끼어들었던 불륜녀라는 사실을 알자마자 분노했다. 뻔뻔스럽게 자신을 약혼녀라 칭하다니.댓글 창에 내연녀 임소이를 향한 비난이 쇄도했고 아이에게는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내연녀의 아이면 사생아지. 같이 죽어버려.][맞아. 남자도 똑같지 않아? 쓰레기 남녀가 세트로 죽었으면... 그리고 저 상간녀를 엄마라고 부르는 애도 같이.][보아하니 저 여자 돈 뜯어내려고 아이를 이용해서 불쌍한 척하는 거네.][어쨌거나 아이는 아무 잘못이 없어.]의견이 갈리는 댓글들을 보고도 임소이는 아무렇지 않았다. 어차피 목적은 달성했으니까.그녀가 뭐라 더 말하려던 그때 방송이 돌연 중단되었다.복도에서 다급한 발소리가 들려오더니 고재형이 병실 문을 거칠게 걷어차고 들어왔다. 임소이가 아이를 안고 그에게 의기양양하게 웃었다.“오빠, 난 여전히 오빠를 사랑해. 진심으로 오빠의 아내가 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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