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착한 아내는 오늘부로 그만둡니다: Chapter 11 - Chapter 20

30 Chapters

제11화

시유가 병실 밖으로 뛰쳐나온 순간, 병실 밖 복도에서 도우미가 밀어주는 휠체어에 앉은 새나와 마주쳤다.새나는 품에 아이를 안고 있었다. 막 테어난 지 얼마도 안 된 아기는 병동이 떠나가라 울고 있었고, 울음소리는 가슴을 찢어 놓을 듯 처절했다.시유를 본 새나의 눈이 확 밝아졌다. 새나는 마치 마지막 동아줄이라도 붙잡은 사람처럼 급히 도우미를 재촉해 시유 앞으로 다가왔다.“언니, 제발 부탁드려요. 우리 리오한테 모유 한 번만 먹여 주세요. 제가 열이 나서 해열제를 먹은 바람에 제 젖은 못 먹이는데, 분유는 죽어도 안 먹으려고 해요. 밤새도록 울었어요.”새나는 금방이라도 울 것처럼 다급했다. 눈가에는 밤을 꼬박 새운 흔적이 짙게 내려앉아 있었다.시유는 말없이 새나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입가에 서늘한 웃음이 천천히 걸렸다.“그래. 그럼 따로 병실 하나 잡자. 사람 많은 데서는 수유하기 불편하잖아.”새나의 두 눈에 곧장 기대가 차올랐다. 새나는 기다렸다는 듯 품에 안고 있던 아들을 시유에게 떠넘기듯 안겼다.“언니, 정말 고마워요. 리오 좀 부탁드릴게요.”시유는 품 안에 안긴 포동포동한 아기를 내려다보았다. 이 아이가 빛나에게 돌아가야 했을 사랑을 모조리 빼앗아 갔다고 생각하자, 가슴속에서 말로 설명하기 힘든 감정이 뒤엉켰다.시유는 아이를 안은 채 몸을 돌려 자신의 병실로 향했다. 목소리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새나야, 들어와. 다른 사람들은 다 나가.”“네.”새나는 얌전히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마리는 시유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렴풋이 눈치챘다. 마리는 곧바로 장순영에게 빛나를 안고 따라오라는 눈짓을 보냈고,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문을 닫았다.품 안의 아이는 계속 울었다. 목이 다 쉬어 버린 울음소리는 듣는 사람 마음이 약해질 만큼 가엾었다.시유는 무표정한 얼굴로 아이를 안고만 있었다. 옷깃을 여밀 생각도, 풀 생각도 하지 않았다.새나는 애가 타서 견디지 못하고 재촉했다.“뭘 그렇게 보고만 있어? 빨리 먹여. 우리 리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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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화

단호하고 책임감 있는 태도로 나오는 여준은 당시 시유에게 큰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지난 5년 동안 시유는 기꺼이 여준의 뒤를 따랐다. 어디서든 여준을 사랑했고, 지켜 주고 싶어 했고, 우러러보았다. 시유에게 여준은 하늘 같은 사람이었다.하지만 진실이 피가 되어 뚝뚝 떨어질 만큼 잔인하게 드러난 지금... 시유는 이제야 깨달았다.시유가 믿어 왔던 책임감이라는 것은... 결국 여준이 홧김에 한 선택이었다.여준은 시유를 좋아했던 것이 아니었다. 상처받은 마음을 버티게 해 줄 임시 버팀목처럼 시유를 붙잡았을 뿐이었다.시유는 무겁게 눈꺼풀을 들어 올렸다. 목소리는 심하게 쉬어 있었다.“그러니까 네 말은... 부여준이 널 좋아했는데, 네가 다른 남자랑 결혼해서 부여준도 홧김에 나랑 결혼했다는 거야?”마음속으로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다. 그래도 시유는 다시 한번 확인하고 싶었다.새나는 입가에 웃음을 머금었다. 버릇없이 굴면서도 당당한 말투였다.“당연하지. 오빠는 어릴 때부터 나를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만큼 소중하게 아꼈어. 내가 강영우랑 결혼한다고 집안에 알린 날에도, 오빠가 눈이 벌게져서는 강영우한테 으름장을 놨거든. 나한테 조금이라도 함부로 하면 가만두지 않겠다고.”새나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아쉽지 뭐. 오빠랑 나는 피 한 방울 안 섞였어도 서류상으로는 사촌 남매잖아. 아니었으면 언니한테 이런 횡재가 돌아갈 일도 없었을 텐데.”시유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품 안의 아이는 이미 목이 쉬도록 울고 있었다. 하지만 새나는 크게 마음 아파하는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눈가와 입가에는 우월감과 조롱이 가득했다.‘소새나 같은 여자의 손에 건축계에서 손꼽히는 두 남자가 휘둘리다니...’시유는 지난 5년이 갈수록 허무하게 느껴졌다.결국 참지 못하고 차갑게 웃었다.“결국 네가 진짜 좋아하는 사람은 부여준이네. 강영우랑 결혼한 것도 홧김이었고. 맞지?”새나는 자신의 손목에 찬 팔찌를 내려다보았다.시유는 눈썰미가 좋았다. 단번에 알아볼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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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화

새나의 표정이 그대로 굳었다. 곧 날카로운 비명이 터져 나왔다.“뭐? 임시유, 너 정말 비열하다! 지워. 당장 지우라고!”조금 전까지의 가녀린 모습은 흔적도 없었다. 새나는 거칠게 몸을 던지듯 다가와 시유의 손에 들린 휴대폰을 빼앗으려 했다.부드럽고 여려 보이던 얼굴은 사납게 일그러져 있었다.“넌... 날 못 이겨! 강영우도 나를 사랑하고, 여준 오빠는 나 없이는 못 살아! 네가 감히 나랑 싸워서 이길 수 있을 것 같아? 꿈도 꾸지 마!”“게다가 나는 소씨 집안 외동딸이야. 친딸이 아니면 어때? 우리 부모님께 딸은 나 하나뿐인데!”“네가 나를 건드리는 건 강씨, 부씨, 소씨 세 집안을 한꺼번에 적으로 돌리는 거야. 네 엄마가 유흥업소 한다고 너를 지켜 줄 수 있을 것 같아? 잘 생각해.”새나는 시유의 옷깃을 움켜쥐었다. 눈빛은 매섭고 독했다.“내 아들 유모 노릇 하기 싫으면 H시에서 꺼져. 사흘 안에 오빠가 너랑 이혼하게 할 거야.”“내가 기회를 주는 거야. 고마운 줄 알아. 빨리 그 휴대폰 내놔.”새나는 목소리를 바짝 낮췄다.시유는 눈꺼풀을 느리게 들어 올렸다. 목소리에는 비웃음이 섞여 있었다.“소새나, 너 정말 겁도 없이 날뛰는구나.”영우는 새나를 사랑하고, 여준은 새나를 아끼고, 소씨 집안은 새나를 감쌌다.그러니 새나가 저토록 안하무인으로 두려울 것 없이 굴 수밖에 없었다.새나는 득의양양하게 시유를 바라보며 차갑게 웃었다.“나는 그럴 만한 배경이 있어. 그런데 너는? 네 엄마는 H시 사모님들 사이에서 입에 오르내리는 유흥업소 마담이고, 너는 부씨 집안 문턱은 넘었어도 한 번도 부씨 집안 사람으로 인정받은 적 없잖아. 결혼식도 못 올렸고, 안 그래?”다른 말은 다 참을 수 있었다.하지만 유흥업소 마담이라는 말은 시유의 마지막 선을 단숨에 짓밟았다.새나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시유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시유는 울다 지친 리오를 침대 위에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곧바로 새나의 머리채를 움켜쥐었다. 그대로 잡아당겨 새나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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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시유는 부딪힌 허리를 감싸 쥐고 온몸을 떨었다. 입가에는 차가운 웃음이 걸려 있었다.그러고는 무의식적으로 앞으로 걸음을 옮기려 했다. 하지만 두 걸음도 채 떼지 못한 채 몸이 비틀렸고, 그대로 바닥으로 무너졌다.시야가 까맣게 잠겼다.여준은 새나를 병실로 데려다주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여준의 어머니 진명화가 한방 전복 닭백숙을 들고 병문안을 왔다.문을 열고 들어선 진명화는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새나야, 몸은 좀 괜찮아졌니? 내가 집에 계신 아주머니한테 한방 전복 닭백숙 푹 고아 오라고 했...”말을 잇던 진명화의 눈이 새나의 얼굴에 꽂혔다.“얘! 얼굴이 왜 이래? 왜 이렇게 부었어?”진명화는 새나의 뺨에 선명하게 남은 붉은 손가락 자국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곧바로 다가가 새나의 얼굴을 감싸 쥐고 이리저리 살폈다.“이거 맞은 거지? 누가 그랬어? 빨리 말해 봐. 이모가 가만 안 둬.”겨우 울음을 그쳤던 새나는 그 말을 듣자 다시 훌쩍이기 시작했다.“이모...”새나는 억울한 눈으로 여준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하나만으로도 진명화는 바로 알아차렸다.진명화는 몸을 돌려 매서운 눈으로 여준을 쏘아보았다.“시유가 한 짓이야?”여준은 반사적으로 말을 돌리려 했다.“어머니, 그게 아니라...”“이미 다 알겠다.”진명화가 차갑게 말을 잘랐다.“리오 돌잔치도 아니고, 겨우 한 달 된 애 축하하는 자리에서 난리를 치더니 집에 돌아와서는 하마터면 집까지 태워 먹을 뻔했잖아. 시유가 아니면 누가 이러겠니?”“질투해도 정도가 있지. 새나는 네 사촌 동생이고, 영우 아내야. 대체 뭘 그렇게까지 시샘하는 거야?”진명화는 처음부터 시유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 진명화에게 지금 상황은 더없이 괘씸했다.새나는 코를 훌쩍이며 낮게 흐느꼈다.“이모, 제가 열이 나서 리오한테 모유를 못 먹이잖아요. 그래서 언니한테 조금만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언니가 저를 때리기까지 하고...”진명화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때리기까지 하고 뭐? 새나야,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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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5화

예전의 시유라면 언제 어디서든 진명화의 전화가 울리기만 해도 세 번 안에 받았다.하지만 이번에는 벨이 한 번 울리자마자, 수화기 너머로 기계적인 안내 음성이 흘러나왔다.[죄송합니다. 고객님께서 전화를 받을 수 없습니다. 잠시 후 다시 걸어 주시기 바랍니다.]짧은 신호음 뒤 바로 이런 안내가 나오는 걸 보면, 십중팔구 수신 차단이었다.진명화는 온몸을 부들부들 떨 만큼 분노했다.“아들아, 봤지? 네가 데려온 여자가 이런 애야. 감히 내 번호를 차단해? 시유 지금 어디 있어? 내가 직접 찾아가서 제대로 가르쳐야겠다!”“이모, 너무 화내지 마세요. 언니가 아이 낳고 산후 우울증이 온 걸 수도 있잖아요. 아니면 저를 그렇게 열 대 넘게 때리진 않았겠죠.”진명화의 두 눈이 크게 뜨였다.“뭐라고? 열 대 넘게 때렸다고? 새나야, 내가 네 엄마랑 얼마나 너를 금이야 옥이야 키웠는데. 나도 애지중지하느라 손끝 하나 댄 적 없는 애를 시유가 감히 때려?”새나는 억울한 듯 코를 훌쩍였다.“됐어요. 그래도 언니니까, 제가...”진명화는 더는 참을 수 없다는 듯 병실 안을 거칠게 오갔다.“너는 시유를 올케라고 생각하는데, 시유는 너를 뭐로 보는 거니? 정말 기가 막혀서. 여준아, 너는 대체 저런 여자가 뭐가 좋다고 붙잡고 있는 거야? 내 눈에는 이혼하는 게 낫겠다!”여준의 위압적인 시선이 진명화를 향했다. 목소리는 낮고 서늘했다.“그만하세요.”진명화는 여준의 눈빛과 마주하자 목구멍까지 치밀어 올랐던 말을 자신도 모르게 삼켰다.부강그룹의 명목상 회장은 여준의 아버지였지만, 그룹을 실제로 움직이는 사람은 여준이었다.진명화가 여준의 어머니라고 해도, 여준 앞에서 함부로 굴 수는 없었다.진명화는 새나의 퉁퉁 부은 얼굴을 바라보며 속상함과 분노를 함께 삼켰다.“여준아, 이번 일은 네가 반드시 새나 편을 들어줘야 해. 안 그러면 우리가 소씨 집안과 강씨 가문에 뭐라고 설명하겠니?”여준은 차갑게 진명화를 흘겨보았다. 칼날 같은 눈빛에 산처럼 무거운 압박감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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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6화

마리는 묘하게 가라앉은 분위기를 알아차리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래. 나 문 앞에 있을게. 무슨 일 있으면 바로 불러.”마리는 병실을 나가 문을 닫았다.진명화가 코웃음을 쳤다.“이분? 너도 간이 크구나. 감히 나를 그런 식으로 불러?”시유는 차갑게 진명화와 눈을 맞췄다. 머릿속에는 지난 5년 동안 진명화의 비위를 맞추려고 애썼지만, 끝내 냉대만 받았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예전 같았으면 진명화가 아무리 시유를 못마땅해해도 시유는 깍듯하게 ‘어머님’이라고 불렀을 것이다. 진명화가 원하는 일이라면 뭐든 비굴할 만큼 맞춰 줬을 것이다.하지만 이제는 달랐다. 딸을 낳던 날, 아이가 딸이라는 걸 확인하자마자 진명화가 등을 돌려 병실을 나가던 모습만 떠올려도 속이 얼어붙었다.‘어머님’은커녕 ‘여사님’이라는 말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예전에 저더러 ‘어머님’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하셨잖아요. 그런데 이제 그렇게 안 부르니까 서운하세요?”“...”진명화는 몇 박자 말문이 막혔다가 더 성을 냈다.“지금 나한테 말하는 태도가 그게 뭐냐, 임시유!”진명화와 말싸움을 길게 끌고 싶지 않았던 시유는 싸늘하게 진명화를 흘겨보았다.“방금 재생된 녹음 파일 들으셨겠죠? 소새나가 직접 말했어요. 아직도 여준 씨한테 마음이 남아 있다고요. 제가 이 녹음을 밖에 풀면 어떻게 될지, 사모님도 모르진 않으실 텐데요.”진명화는 애초에 그 일로 따지러 온 길이었다. 그런데 시유가 먼저 결과를 입에 올릴 줄은 몰랐다.진명화는 잠깐 당황했다.“결... 결과야 나도 당연히 알지. 하지만 새나가 홧김에 한 말이야. 새나랑 여준이는 사촌 사이고, 아무 일도 없는 사이야...”시유가 바로 말을 끊었다.“아무 일도 없는데 왜 그렇게 불안해하세요?”진명화는 또다시 말문이 막혔다. 곧 분을 이기지 못한 듯 목소리를 높였다.“내가 언제 불안해했다는 거야? 나는 네가 왜 있지도 않은 일을 만들어 내서 화가 난 것뿐이야!”“임시유, 난 네가 우리 여준이와 새나의 명예를 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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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분명 눈앞의 진명화는 빛나의 친할머니였다.그런데 시유는 진명화의 표정 어디에서도 손녀를 향한 연민을 찾아볼 수 없었다. 차갑게 계산기만 두드리고 재는 것뿐이었다.지난 5년 동안 시유는 부씨 집안에 며느리로 들어와 살았지만, 먹고 입고 쓰는 모든 비용은 전부 시유 자신의 돈으로 해결했다.여준은 결혼 후 시유에게 카드를 한 장 건넸다. 하지만 그 카드는 다음 날 바로 진명화 손에 들어갔다.진명화는 줄곧 시유를 도둑 보듯 경계했다. 시유가 부씨 집안 재산을 노릴까 봐 눈을 부릅뜨고 감시했다.자기 손녀 빛나에게도 진명화의 태도는 조금도 다르지 않았다.시유의 입가에 비웃음이 번졌다.“제가 사모님과 이야기하려는 게 바로 그 문제예요.”“이혼은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제 딸에게 돌아가야 할 몫은 단 한 푼도 빠지면 안 됩니다. 현재 여준 씨 능력이라면 빛나에게 600억 원 정도는 떼어 줄 수 있겠죠. 지나친 요구는 아니라고 보는데요?”진명화는 화를 이기지 못하고 의자 팔걸이를 세게 내리쳤다. 눈앞이 아찔하게 캄캄해졌다.“600억? 너도 참 대단하다. 그걸 말이라고 해? 너... 차라리 은행을 털지 그러니?”“생각해 보니 600억도 적은 것 같네요. 부씨 집안 재산이 한두 푼도 아니고, 보유한 부동산도 많잖아요. 빛나 명의로 쇼핑몰 몇 군데와 오피스 빌딩, 주택 몇 채 정도 넘기는 것도 무리한 요구는 아니겠죠.”진명화는 숨이 턱 막혀 쓰러질 뻔했다. 목소리까지 부들부들 떨렸다.“너 지금 어디서 헛소리니? 내 눈에 흙이 들어가기 전에는 부씨 집안에서 한 푼도 못 가져가!”“나는 진작부터 네가 여준이한테 접근한 속셈이 따로 있다고 봤어. 불쌍한 우리 여준이만 감쪽같이 속아 지냈지!”“이제야 드디어 꼬리를 드러내는구나! 임시유, 내가 바로 오늘을 기다렸어!”진명화는 갑자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손에 쥔 핸드폰을 흔들어 보였다.“녹음할 줄 아는 사람이 너뿐인 줄 알았니? 방금 네가 한 말 전부 나도 녹음했어!”“여준이한테 보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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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화

시유가 진명화 쪽으로 바짝 몸을 기울였다. 전에 없던 날카로운 시선이었다.“제가 뭘 겁낼까요? 어차피 이혼할 건데, 이제 와서 그런 걸 걱정할 이유가 있나요?”시유의 입가에 비스듬한 조소가 걸렸다.“사모님 마음대로 여준 씨한테 말하세요. 제가 처음부터 끝까지 여준 씨 돈을 원했다고요. 이제 딸도 낳았으니, 저와 제 딸이 받아야 할 몫은 원금에 이자까지 붙여서 전부 받아 낼 거라고요.”“여준 씨가 제 앞에 직접 와서 서 있어도, 저는 똑같이 말할 겁니다.”시유는 차갑게 웃었다. 화살 같은 시선이 진명화에게 꽂혔다.진명화는 완전히 할 말을 잃었다. 참지 못하고 시유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아이를 하나 낳았다고 사람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나?’‘이 모습이... 예전에 그토록 내 앞에서 굽실대던 시유가 맞나?’문 앞에는 키 큰 검은 그림자가 조용히 서 있었다.시유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여준의 귀에 그대로 박혔다.깊게 가라앉은 검은 눈동자에는 충격이 가득했다.직접 들은 게 아니었다면, 여준은 이런 말이 시유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지 못했을 터였다.자신이 알고 있던 시유는 자존심이 강했고, 검소했으며, 명품 가방이나 보석에도 욕심이 없던 여자였다. 그런 시유가 어떻게 이런 말을 할 수 있단 말인가?‘대체 무슨 일을 겪었길래 시유가 이렇게까지 변한 거지?’여준의 마음속에 물음표가 꼬리를 물었다.생각이 이어지던 때, 병실 안에서 갑자기 짧은 비명이 터졌다.여준이 고개를 들자 진명화가 시유의 뺨을 내리치려 하고 있었다. 그러나 시유가 진명화의 손목을 붙잡아 사납게 끌어당겼고, 진명화의 머리가 하마터면 침대 모서리에 부딪칠 뻔했다.여준은 곧장 앞으로 나섰다. 한 손으로 진명화를 끌어당겨 제 뒤로 세웠다.여준은 시유를 바라보았다. 본능처럼 분노가 치밀었지만, 곧 그 분노는 시유의 서늘한 눈동자 앞에서 멈춰 섰다.“당신...”여준은 자신도 모르게 시유를 불렀다.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묻어 있었다.“소새나 녹음은 안 지워. 온라인에 올리지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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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화

진명화의 눈에 득의가 스쳤지만, 일부러 너그러운 척 아들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아들, 말로 잘 풀어. 병원에서 남들 구경거리 되지 않게.”말을 마친 진명화는 시유를 사납게 쏘아본 뒤, 우아한 걸음으로 병실을 나갔다.병실 안은 죽은 듯 조용해졌다.방금 진명화와 맞서던 사이에 시유는 링거가 꽂힌 손을 잘못 움직였다. 바늘이 살짝 틀어지면서 주삿바늘 주변이 심하게 부어올랐다. 그런데도 시유는 아픔을 전혀 느끼지 않았다.시유는 고개를 숙인 채 여준을 보지 않았다.예전에는 목숨처럼 사랑했던 남자였다. 하지만 이제는... 마음속에 남아 있던 모든 감정이 뒤틀려 버렸다. 처음에 느꼈던 사랑은 더 이상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다.여준은 시유의 부어오른 손등을 발견하고 미간을 좁혔다. 이어 앞으로 다가와 침대 가장자리에 앉았고, 시유의 차가운 손을 붙잡고 살폈다. 그리고 비뚤어진 바늘을 제자리로 바로잡은 뒤, 고정 테이프도 다시 붙여 주었다.전부 끝낸 여준은 상처 부위를 향해 가볍게 입김을 불었다. 목소리는 저도 모르게 한결 낮고 부드러워졌다.“아파? 왜 늘 이렇게 덤벙거려? 링거 맞을 때도 조심 좀 하지.”여준은 늘 이런 식이었다.시유가 여준이 화를 낼 거라고 생각할 때마다... 이 남자는 뜻밖의 다정함을 내밀었다. 그러면 시유의 가슴에 쌓여 있던 감정은 솜뭉치를 때린 주먹처럼 갈 곳을 잃고 허공에 흩어졌다.시유는 재빨리 여준에게서 손을 빼냈다. 몸도 본능적으로 뒤로 물러나 여준과 거리를 벌렸다.“할 말 있으면 말만 해. 이런 식으로 굴 필요 없어.”여준은 낮게 한숨을 쉬었다.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당신이랑 나는 부부야. 이제는 딸도 생겼고. 굳이 이렇게 남처럼 굴 필요 있어?”시유는 고개를 들어 여준의 깊은 눈매를 마주했다.예전의 시유라면 이 다정함에 또 빠져들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 감흥도 없었다.“남처럼 된 건 내 탓이 아니야. 여기까지 온 이상 더 할 말도 없어.”여준은 어이없다는 듯 옅게 웃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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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0화

몇 초가 훌쩍 지나서야 여준은 정신을 차렸다. 부드럽던 목소리가 급하게 흔들렸다.“안 돼. 내 딸인데 어떻게 당신 성을 따라?”시유는 차갑게 웃었다. 시끄럽게 들끓던 마음은 오히려 가라앉았다.“당신이 알기는 해? 빛나가 당신 딸이라는 걸? 소새나 아들은 백 번도 넘게 안아 봤겠지. 그런데 내 딸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아빠라는 사람을 딱 한 번 봤어. 빛나가 어딘가에 숨겨야 할 아이야? 아빠한테 안길 자격도 없어?”시유의 코끝이 시큰해졌다. 울고 싶지 않았지만, 눈물이 결국 눈가를 타고 흘러내렸다.자기 일로는 쉽게 울지 않았다. 어떤 일이 닥쳐도 우는 대신 해결책부터 찾으려고 했다.하지만 어린 딸이 겪는 작은 서러움만큼은 견딜 수가 없었다. 숨이 막힐 만큼 아팠다.빛나는 시유가 목숨을 걸고, 사경을 헤매며 서른 살에 낳은 보물이었다.그 소중한 아이가 친아빠에게 이토록 차갑게 외면당한다고 생각하니, 시유의 심장은 뜨거운 기름 위에 올려진 듯 타들어 갔다.“아니, 나는...”여준은 몇 초간 멍하니 시유를 바라보았다. 늘 침착하고 단단하던 낯에 당혹스러움이 번졌다.이제야 여준은 뒤늦게 깨달았다. 자신이 딸과 시유에게 지나칠 만큼 무심했다는 사실을.‘이름...’ 실은 딸 이름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며칠 동안 이름 사전까지 뒤져 가며 고민했다.결정을 미뤘던 건 딸의 이름만큼은 특별해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세상 어디에도 흔하지 않은 이름이어야 한다고 여겼다.“여보, 내 말 좀 들어 봐.”여준은 흔들리던 감정을 가까스로 가라앉혔다. 한 걸음 다가와 시유의 손을 잡았다.“딸 이름, 나도 생각했어. 아직 최종 결정을 못 했을 뿐이야. 내가 우리 딸을 마음에 두지 않은 게 아니야.”“빛나? 그런 이름은 안 돼. 부씨 집안 첫아이 이름을 그렇게 가볍게 지을 수는 없잖아. 우리 첫아이인데, 당연히 아빠 성을 따르는 게 맞지 않아?”여준의 목소리가 다시 부드러워졌다. 시유의 마음을 풀어주려는 말투였다.시유가 거세게 뿌리치지 않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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