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5년 동안 완벽한 부씨 집안의 작은 사모님으로 살아온 임시유. 사랑하는 딸이 태어난 지 한 달이 되는 날, 시유는 마침내 깨달았다. 남편 부여준의 지극한 다정함은 전부 첫사랑에게 향했고, 시유에게 돌아온 건 늘 ‘당신이 이해해’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시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판을 뒤엎었다. “이혼해. 지난 5년 동안...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하지만 여준은 차갑게 웃었다. “당신까지 왜 이렇게 속물이 됐어? 입만 열면 이혼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여준은 몰랐다. 시유가 사라진 뒤, 자신의 세상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지. 늘 당연하게 곁에 있던 시유가 없자, 여준의 모든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 국제 건축 서밋에서 다시 만난 시유는 모두가 주목하는 건축 거장이 되어 있었다. 여준은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무릎 꿇고 다시 시작하자고 시유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시유는 다른 남자의 팔짱을 낀 채, 미소만 남기고 스쳐 지나갔다. 얼마 뒤 여준에게 도착한 금박 청첩장.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다름 아닌 여준의 친구 품에 기대어 있었다. 핏발 선 눈으로 결혼식장에 뛰어든 여준이 들은 말은 단 하나였다. “부여준, 나는 착하게 사는 데에 너무 지쳤어. 이제 난 나를 위해 살 거야.”
View More시유도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도 선생님이 예전부터 외손자가 미술에 천재적인 재능이 있다고 줄곧 말씀하셨어요. 어릴 때부터 선과 형태를 보는 감각이 남달랐고, 특례로 진학을 거듭하면서 어린 나이에 이름을 알렸다고요.”“세계 곳곳에서 멋진 건축물도 많이 설계했다고 하셨는데, 그게 영우 씨였네요!”영우가 웃으며 손을 내밀었다.“그럼 저희도 같은 스승 밑에서 배운 셈이네요. 시유 씨가 보내 주는 디자인을 볼 때마다 이상하게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알고 보니 외할머니에게 영향을 받은 거였네요.”시유는 얼른 영우의 손을 잡았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새나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지만, 어느새 그런 감정은 말끔히 사라졌다.대신 같은 분야에서 일하는 사람끼리만 느낄 수 있는 묘한 친근감이 생겼다.“반가워요. 앞으로 영우 씨가 아니라 선배님이라고 불러야겠어요.”영우가 크게 웃었다.“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어요. 중요한 건 우리가 생각보다 인연이 깊다는 거죠.”시유도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정말 그렇다는 생각이 들었다.두 사람은 다시 도서향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옛날 일을 하나씩 꺼내 놓을수록 이야기가 잘 통했다.마치 오랜만에 만난 친구처럼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다.어느새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가 있었다....반면 다른 한쪽에서는 전혀 다른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새나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계속 울면서 잘못했다고 빌었지만, 여준은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대로 차를 몰아 새나를 호텔로 데려갔다.호텔에 방 하나를 잡은 여준은 새나를 방 한쪽에 내버려 두었다.그리고 굳은 얼굴로 진명화와 진지원에게 차례로 전화를 걸었다.당장 와야 한다며, 할 말이 있으니 빨리 오라고 했다.이런 창피한 일을 집에서 이야기하고 싶지 않았기에 일부러 호텔 방을 잡은 것이었다.진지원과 진명화를 기다리는 동안 여준은 호텔 창가에 서서 담배만 연달아 피웠다.도대체 이 일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영우와 강씨 집안에 뭐라고 설명해야 할지 아무리 생각해도 답이 나오지 않았
여준이 새나를 데리고 나간 뒤였다.시유는 곧바로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깨진 도자기와 찻잔 조각을 하나씩 주워 담았다.그러면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그래도 멀쩡한 게 꽤 있네요. 대부분은 고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오래된 골목에 도자기 수리하는 분이 한 분 계시는데, 조각들을 잘 정리해서 한번 가져가 볼게요. 고칠 수 있는지 물어보면 되겠죠.”말이 끝나기도 전이었다.하얗고 긴 손이 시유의 손목을 잡아당겼다.영우가 시유를 일으켜 세웠다.“그만해요. 손가락 다칠 수 있어요. 제가 할게요.”시유는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다시 바닥에 앉았다.“이 정도 가지고 뭘 그래요. 다쳐 봐야 밴드 하나 붙이면 되는데요. 저 그렇게 연약하지 않아요.”“예전에 신혼집 꾸밀 때도 작은 가구들은 제가 직접 조립했어요. 저는 원래...”영우가 놀란 얼굴로 고개를 들었다.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이었다.“여준이가 이런 일까지 시켰어요? 건축 디자이너가 될 손으로 이런 일을 하게 만들다니.”시유는 별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했다.“어릴 때부터 웬만한 일은 제가 직접 했어요. 이제는 익숙해져서 다른 사람한테 맡기는 게 오히려 불편해요.”영우가 다시 시유의 손을 눌러 잡았다.“앞으로는 그런 생각 하지 마요. 이런 일은 제가 하면 돼요. 외할머니가 여기 두신 재스민차가 맛있어요. 차나 우려 줘요. 이건 제가 금방 정리할게요.”시유가 아무리 도와주려고 해도 영우는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았다.결국 시유는 영우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재스민차를 한 주전자 우려 놓고 의자에 앉아 조용히 영우가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봤다.강씨 집안은 백 년이 넘은 명문가였다.영우는 그 집안의 10대 장손이었다.전통 있는 집안에서 자란 영우라면 어릴 때부터 온갖 일을 남에게 맡기며 귀하게 자랐을 법했다.하지만 지금 영우는 손이 무척 빨랐다.깨진 물건과 멀쩡한 물건을 하나씩 나눠 정리했고, 깨진 다기도 종류별로 따로 챙겨 두었다.그러고는 어질러진 거실까지 빠르게 정리했다.얼
여준은 화가 치밀어 가슴이 터질 것처럼 답답했다.가슴을 움켜쥔 채 새나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짙은 실망이 서려 있었다.뒤에 있던 건달들도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눈치챘다.여준과 영우를 번갈아 바라보니 두 사람 모두 범상치 않은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상황이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건달들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다.하나둘 서둘러 집 밖으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새나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사람들을 데리고 와 집 안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으니까.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고 싶지는 않았다.새나는 뺨을 감싸 쥔 채 울먹였다.“영우 씨가 밤새 집에 들어오지 않았잖아. 그래서 분명 다른 여자가 생긴 줄 알았어.”“오빠가 영우 씨랑 임시유 사이에 뭔가 있는 것 같다고 했잖아. 오래전부터 마음을 주고받은 사이라고까지 했으니까 나도 정말 그런 줄 알았어. 그래서 직접 확인하러 온 것뿐인데...”여준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새나의 허리를 발로 걷어찼다.“그래서 사람들을 데리고 이렇게 쳐들어와서 아무 데나 물건부터 부숴? 새나야, 내가 널 이렇게 가르쳤어? 어릴 때부터 내가 대체 어떻게 가르쳤는데? 남의 집에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와서 물건이나 부수라고 가르쳤어?”여준은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다.당장이라도 속이 뒤집힐 것 같았다.영우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은 채 그 자리에 서 있었다.엉망이 된 집 안을 바라보는 얼굴은 굳어 있었다.가슴이 찢어지는 것 같았다.집은 크지 않았지만, 안에 있던 다기와 화병, 장식품 하나하나가 모두 외할머니가 평생 세계 곳곳을 다니며 모은 귀한 물건들이었다.하나같이 쉽게 구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그런데 지금은 새나가 데려온 사람들의 손에 모조리 망가져 버렸다.영우는 이제 외할머니를 볼 면목조차 없었다.영우의 목소리가 더욱 차갑게 가라앉았다.“네 동생은 나와 5년을 함께 살면서 이런 식으로 난리를 친 게 한두 번이 아니야. 그동안은 네 체면을 생각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 그런데 지
새나가 대체 어디서 이런 건달들을 데려왔는지 알 수 없었다.하나같이 거칠고 막무가내인 사람들이었다.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거실에 있던 값비싼 도자기와 화병은 물론, 테이블과 의자까지 닥치는 대로 뒤엎었다.쨍그랑!도자기가 깨지는 소리가 연달아 집 안에 울려 퍼졌다.시유는 깜짝 놀라 손으로 입을 막았다.그리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섰지만 이미 늦었다.“미쳤어요? 지금 뭐 하는 거예요? 이건 어르신이 오랫동안 아끼던 물건들이에요. 이러지 마세요!”시유가 다급하게 외쳤다.“소새나, 얼른 말려!”하지만 새나는 말리기는커녕 눈을 반짝였다.그러더니 테이블 위에 놓인 예쁜 장식품을 집어 들고 바닥에 있는 힘껏 내리쳤다.쨍그랑!“부숴! 전부 다 부숴 버려! 영우 씨가 감히 나를 배신하고 여기서 다른 여자를 숨겨 놓고 있었잖아! 내가 그렇게 만만한 사람인 줄 알아?”새나는 머리까지 풀어헤친 채 완전히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날뛰었다.눈앞에서 귀하고 값비싼 다기와 화분들이 하나둘 망가지는 모습을 보자 시유는 속이 타들어 갔다.시유는 필사적으로 사람들을 막아섰다.그런데 앞장서 있던 금발 남자가 시유를 거칠게 밀쳐 버렸다.“어?”시유의 몸이 휘청거렸다.발을 제대로 딛지 못한 시유가 뒤로 넘어졌다.바로 뒤에는 나무 계단이 있었다.이대로 넘어지면 머리부터 계단에 부딪힐 게 뻔했다.그 순간 시유는 본능적으로 비명을 지르며 두 눈을 질끈 감았다.하지만 예상했던 충격은 느껴지지 않았다.대신 따뜻하고 단단한 품에 안겼다.은은한 프리지아 향도 느껴졌다.허리를 단단히 받쳐 주는 커다란 손 덕분에 시유는 바닥에 떨어지지 않고 몸을 지탱할 수 있었다.시유가 조심스럽게 눈을 뜨고 고개를 들었다.눈앞에는 영우가 서 있었다.날카로운 턱선이 유난히 선명했다.평소 온화하던 얼굴에는 지금껏 본 적 없는 분노가 드러나 있었다.차분했던 눈빛도 지금은 매섭게 빛나고 있었다.영우의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가 머리 위에서 들려왔다.“괜찮아요?”시유는 황급히 몸을 일으
여준은 난장판이 된 거실을 바라보다가, 힘이 빠진 사람처럼 소파에 주저앉았다.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지만, 답답하게 막힌 가슴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이모님, 제가 아내한테 그렇게 못했습니까? 시유가 이렇게까지 화낼 일입니까?”유민자는 바닥에 흩어진 파편을 쓸어 담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이 사모님께 못하신 건 아니에요. 두 분 결혼하고 5년 동안 큰소리 한 번 오가는 걸 못 봤으니까요.”“다만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면 마음이 많이 흔들릴 수 있어요. 산후 우울감도 올 수 있고요. 이럴 때일수록
마리는 시유가 더 상처받을까 봐, 여준이 메시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시유가 퇴원하는 날까지도 여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퇴원 후, 시유와 마리는 젖먹이 빛나와 장순영을 데리고 시유가 반년 전 ‘태양파크’ 아파트단지에 사 둔 집으로 들어갔다.마리의 집은 바로 맞은편이었다. 서로 마주 보는 앞집에 살자는 건 대학 시절부터 두 사람이 농담처럼, 하지만 진심으로 꿈꿔 왔던 일이었다.그래서 반년 전 마리의 맞은편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시유는 망설임 없이 그 집을 계약했다.집에는 기본 가
“환자분은 출산 후 체력 소모가 심한 상태입니다. 이전에 대량 출혈로 응급 처치까지 받으셨고요.”“이런 상태에서는 저혈당으로 쓰러지기 쉽습니다. 영양 보충 꼭 잘 하셔야 하고,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일도 피하셔야 합니다.”검사가 끝난 뒤에도 시유는 병실 침대에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의사는 병실 안에서 마리에게 시유의 상태를 차분히 설명했다.장순영이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사모님은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하셨어요. 첫 보름은 젖몸살이 너무 심해서 음식도 마음대로 못 드셨고, 그 다음엔 아기가 소화를 잘 못 시켜서 밤마
“여보, 우리 아기 오늘 태어난 지 한 달 됐잖아. 나랑 아기 데리러 올 수 있어?”임시유는 속싸개에 싸인 딸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수화기 너머에서 부여준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다. 감정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갑자기 일정이 생겼어. 기사한테 당신이랑 아기 태우고 집까지 오라고 할게.]출산할 때도, 산후조리 기간 내내 여준은 회사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시유와 아기의 곁에 없었다.이제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어 조리원에서 퇴원하는 날인데
reviews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