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아내는 오늘부로 그만둡니다

착한 아내는 오늘부로 그만둡니다

By:  숲속의사슴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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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년 동안 완벽한 부씨 집안의 작은 사모님으로 살아온 임시유. 사랑하는 딸이 태어난 지 한 달이 되는 날, 시유는 마침내 깨달았다. 남편 부여준의 지극한 다정함은 전부 첫사랑에게 향했고, 시유에게 돌아온 건 늘 ‘당신이 이해해’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시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판을 뒤엎었다. “이혼해. 지난 5년 동안...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하지만 여준은 차갑게 웃었다. “당신까지 왜 이렇게 속물이 됐어? 입만 열면 이혼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여준은 몰랐다. 시유가 사라진 뒤, 자신의 세상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지. 늘 당연하게 곁에 있던 시유가 없자, 여준의 모든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 국제 건축 서밋에서 다시 만난 시유는 모두가 주목하는 건축 거장이 되어 있었다. 여준은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무릎 꿇고 다시 시작하자고 시유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시유는 다른 남자의 팔짱을 낀 채, 미소만 남기고 스쳐 지나갔다. 얼마 뒤 여준에게 도착한 금박 청첩장.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다름 아닌 여준의 친구 품에 기대어 있었다. 핏발 선 눈으로 결혼식장에 뛰어든 여준이 들은 말은 단 하나였다. “부여준, 나는 착하게 사는 데에 너무 지쳤어. 이제 난 나를 위해 살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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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여보, 우리 아기 오늘 태어난 지 한 달 됐잖아. 나랑 아기 데리러 올 수 있어?”

임시유는 속싸개에 싸인 딸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

수화기 너머에서 부여준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다.

감정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갑자기 일정이 생겼어. 기사한테 당신이랑 아기 태우고 집까지 오라고 할게.]

출산할 때도, 산후조리 기간 내내 여준은 회사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시유와 아기의 곁에 없었다.

이제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어 조리원에서 퇴원하는 날인데도, 여준은 끝내 오지 못한다고 했다.

가슴이 쓰리게 조여 왔다. 시유는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

“그래. 알았어.”

[우리 여보는 원래 혼자서도 잘하잖아. 나는 믿어. 출산 정도는 당신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었을 거야. 힘내. 여보는 최고의 엄마니까.]

여준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

부하 직원을 격려하는 듯한 말투가 시유의 가슴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

그때, 여준의 친구 진주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제수씨, 오늘 저녁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미안해요. 별온호텔 생후 한 달 축하 자리에는 못 갈 것 같아요. 두 분 아들 얻으신 거 정말 축하드립니다!]

‘생후 한 달 축하 자리?’

‘아들?’

시유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더 물어보려던 때, 주찬은 이미 전화를 끊어 버렸다.

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주찬이 축의금으로 100만 원을 보냈다. 그런데 1분도 지나지 않아 황급히 송금을 취소했다.

[죄송해요, 제수씨. 제가 착각했어요. 아이 낳은 사람이 제수씨가 아니었네요.]

주찬은 곧장 음성 메시지로 사과했다.

이어 허리를 굽혀 사과하는 이모티콘을 열 개도 넘게 연달아 보냈다.

하지만 시유는 그 연이은 저자세의 이모티콘들 사이에서 이상한 낌새를 읽었다.

불길한 짐작이 시유의 머릿속에 떠올랐다.

오전 11시, 시유는 검은 롱패딩을 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H시 별온호텔 최고급 연회장 입구에 정확히 도착했다.

연회장 앞은 떠들썩했다. 사람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었다.

입구에는 커다란 아기 포스터가 세워져 있었다.

포스터에는 ‘강리오 아기 생후 한 달 축하연’이라고 적혀 있었다.

오가는 하객 중 시유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시유는 자신이 괜한 오해를 한 줄 알고,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몸을 돌려 떠나려던 바로 그때,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직 산후조리 끝난 지 얼마 안 됐잖아. 말 들어. 리오는 내가 안을게. 조금 있다가 리오한테 엄청 근사한 선물도 줄 거야.”

시유의 발걸음이 그대로 멎었다.

이어 급히 고개를 돌리자, 멀지 않은 곳에서 한 남자가 한 여자에게서 희고 통통한 아기를 받아 안고 있었다.

그 남자는 한 달 내내 시유 앞에 나타나지 않던 남편, 부여준이었다.

시유의 온몸에서 피가 얼어붙는 듯했다.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크게 떴다.

여자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오빠는 나랑 리오한테 정말 잘해 줘. 임신한 내내 내 옆에 있어 줬고, 맛있는 것도 매번 만들어 줬잖아.”

“내가 아이 낳을 때도 분만실 밖에서 끝까지 기다려 줬고, 산후조리까지 살뜰하게 챙겨 줬고. 영우 씨가 귀국하면 오빠가 나랑 아기 돌봐 준 거 정말 고마워할 거야.”

“네가 내 사촌동생이고, 영우는 내 가장 친한 친구잖아. 영우가 국내에 없는데 내가 너를 돌보는 건 당연한 일이야.”

누군가 시유의 심장에 총을 쏜 것 같았다.

시유는 제자리에 선 채, 심장이 찢겨 피투성이가 되는 듯한 통증을 느꼈다.

온몸은 얼음 창고에 갇힌 것처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차갑게 식어 갔다.

그러니까... 지난 거의 1년 동안 여준은 회사 일로 바쁜 것이 아니었다.

친구의 아내이자 사촌동생인 소새나를 돌보느라 바빴던 것이었다.

여준과 새나는 아이를 안고 웃으며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시유의 핸드폰에서 카카오톡 알림음이 울렸다.

시유는 멍한 손길로 핸드폰을 열었다. 여준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힘내! 강한 엄마가 되어야지. 오늘 일만 끝내고, 내일은 꼭 집에 들어갈게.]

그 문장을 보자, 조금 전 새나에게 다정하게 굴던 여준의 모습이 겹쳤다.

시유는 거대한 조롱을 정면으로 맞은 기분으로 손끝을 화면에 갖다 댔다.

대화창이 저절로 위로 밀려 올라가며, 예전에 여준이 보냈던 메시지들이 하나씩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임신 8개월인데도 H시 세오름타워 설계안을 기한에 맞춰 끝내다니, 당신 정말 대단해. 충분히 칭찬받을 만해.]

[벌써 5개월이야? 당신은 임신도 참 수월하네. 다른 여자들처럼 예민하게 굴지도 않고. 당신이 자랑스러워.]

[매일 씩씩하게 잘 걸어 다니고, 입덧도 심하지 않아 보이니까 업무량 조금 늘어도 괜찮겠지. 힘내. 설계안은 당신이 봐 줘야 내 마음이 놓여.]

[...]

사실 임신 기간 내내 시유는 대부분의 임산부가 겪는 증상들을 전부 겪었다.

입덧, 다리 부종, 혈압과 혈당 상승, 어지럼증까지.

이 모든 증상이 시유를 거쳐 갔다.

그럼에도 시유를 버티게 한 것은 여준의 격려와 인정이었다.

시유는 여준의 말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임신부터 출산까지, 쉬는 날은 이틀을 넘긴 적이 없었다.

시유 역시 마음속으로 작은 의문을 품은 적이 있었다.

‘우리 남편은 왜 나를 아내가 아니라 부하 직원처럼 대할까?’

‘남편이라면 보여 줘야 할 다정함과 배려가 왜 이렇게 없을까?’

하지만 그것이 시유와 여준 사이의 오랜 방식이었다.

시유는 그 방식에 익숙했다.

여준은 누구에게나 그러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시유는 여준이 원래 그런 남자라고 믿었다.

방금 전까지는...

시유는 직접 보았다.

여준이 다른 여자 손에서 아이를 조심스레 받아 안는 모습을.

여준이 세상 부드러운 목소리로 안부를 묻는 것을.

여준이 새나가 넘어질까 봐 가느다란 허리를 조심스레 받쳐 주는 것을.

그제야 시유는 뒤늦게 깨달았다.

여준도 누군가를 아낄 줄 아는 사람이었다.

다만 여준이 아끼는 사람은 시유가 아니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리자, 시유의 가슴은 맨손으로 커다랗게 뜯겨 나가는 듯했다.

통증은 살을 찢고 피를 흘리듯 선연했다.

자신도 모르게 발을 내디뎠다.

오가는 사람들 틈에 섞여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다.

그녀는 직접 확인하고 싶었다.

남편이 자신 몰래... 다른 여자의 아이를 위해 어떤 서프라이즈를 준비했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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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화
“여보, 우리 아기 오늘 태어난 지 한 달 됐잖아. 나랑 아기 데리러 올 수 있어?”임시유는 속싸개에 싸인 딸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수화기 너머에서 부여준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다. 감정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갑자기 일정이 생겼어. 기사한테 당신이랑 아기 태우고 집까지 오라고 할게.]출산할 때도, 산후조리 기간 내내 여준은 회사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시유와 아기의 곁에 없었다.이제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어 조리원에서 퇴원하는 날인데도, 여준은 끝내 오지 못한다고 했다.가슴이 쓰리게 조여 왔다. 시유는 눈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이를 악물었다.“그래. 알았어.”[우리 여보는 원래 혼자서도 잘하잖아. 나는 믿어. 출산 정도는 당신 혼자서도 충분히 해낼 수 있었을 거야. 힘내. 여보는 최고의 엄마니까.]여준은 그렇게 말하고 전화를 끊었다.부하 직원을 격려하는 듯한 말투가 시유의 가슴을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 같았다.그때, 여준의 친구 진주찬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제수씨, 오늘 저녁에 갑자기 일이 생겨서 미안해요. 별온호텔 생후 한 달 축하 자리에는 못 갈 것 같아요. 두 분 아들 얻으신 거 정말 축하드립니다!]‘생후 한 달 축하 자리?’‘아들?’시유는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더 물어보려던 때, 주찬은 이미 전화를 끊어 버렸다.카톡 알림음이 울렸다. 주찬이 축의금으로 100만 원을 보냈다. 그런데 1분도 지나지 않아 황급히 송금을 취소했다.[죄송해요, 제수씨. 제가 착각했어요. 아이 낳은 사람이 제수씨가 아니었네요.]주찬은 곧장 음성 메시지로 사과했다. 이어 허리를 굽혀 사과하는 이모티콘을 열 개도 넘게 연달아 보냈다.하지만 시유는 그 연이은 저자세의 이모티콘들 사이에서 이상한 낌새를 읽었다.불길한 짐작이 시유의 머릿속에 떠올랐다.오전 11시, 시유는 검은 롱패딩을 입고 모자와 마스크를 쓴 채, H시 별온호텔 최고급 연회장 입구에 정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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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연회장 안.시유의 시선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여준에게 박혀 있었다. 여준은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술잔을 들고, 새나를 데리고 테이블마다 돌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제 친구 영우가 해외 현장에 장기 파견을 나가 있어서, 돌아오려면 1년은 더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제가 영우 대신 인사도 드리고, 술도 대신 받겠습니다.”“새나는 아직 몸조리 중이라 술도, 찬 음료도 조심해야 합니다. 새나 몫으로 주시는 잔은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시유는 입안으로 넘어간 오렌지 주스가 유난히 차갑고 쓰게 느껴졌다. 가슴 안쪽까지 서늘하게 얼어붙는 기분이었다.여준과 함께 일한 세월은 짧지 않았다. 접대 자리마다 여준은 망설임 없이 시유를 앞세웠고, 술이라면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사람이라고 치켜세웠다.시유는 여준이 이렇게 술을 가리지 않고 받아 마시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더구나 여준이 누군가를 위해 먼저 술잔을 막아서는 날이 올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점점 더 붉어지는 여준의 잘생긴 얼굴을 바라보는 시유의 가슴속에 알 수 없는 쓰라림과 비웃음이 뒤섞여 올라왔다.시유가 더는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려던 때, 무대 위 사회자가 큰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이 자리는 리오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마련되었습니다. 리오의 삼촌이신 부여준 대표님께서 아기를 위해 뜻깊은 선물을 준비하셨다고 합니다. 큰 박수로 맞아 주시기 바랍니다.”여준은 어느새 새나와 함께 리오를 안고 사람들 앞에 서 있었다.모든 사람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준은 길쭉한 선물 상자를 열었다. 상자 안에는 붉은 보석이 박힌 순금 아기 목걸이가 눈부시게 빛나고 있었다.그 목걸이를 보는 순간, 시유의 온몸을 흐르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시유는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 가장 앞줄에 섰다. 크게 뜬 눈으로 목걸이를 몇 초간 뚫어지게 바라보는 사이, 가슴속 분노가 걷잡을 수 없이 치솟았다.여준의 시원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이 아기 목걸이는 제 아내 집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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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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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유민자가 허둥지둥 방에서 뛰쳐나오며 비명을 지르듯 외쳤다.“지진이에요? 지금 지진 난 거예요?”장순영은 자지러지게 우는 아기를 안고 있다가, 요란한 소리에 놀라 맨발로 가방부터 움켜쥐고 현관 쪽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심지어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었다.유민자와 장순영이 거실로 뛰어들었을 때, 두 사람은 그대로 굳어 버렸다.늘 차분하고 이성적이던 시유가 미친 사람처럼, 한때 그토록 아끼던 장식품들을 하나씩 바닥에 내던지고 있었다.유민자는 다급히 시유에게 달려가 말렸다.“사모님, 그만하세요! 제발 그만하세요! 무슨 일이든 차분히 말로 하셔야죠, 사모님!”장순영은 울음을 멈추지 못하는 아기를 흔들어 달래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말했다.“사모님, 얼른 멈추세요. 아기가 너무 놀랐어요!”아기의 찢어질 듯한 울음소리가 귀에 꽂히자, 시유는 온몸의 힘이 풀려나가는 것 같았다.시유는 손에 들고 있던 청자 화병을 내려놓고 앞으로 다가가, 아기를 품 안에 꼭 끌어안았다.아기는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라 울고 있었고, 작은 두 주먹은 꽉 쥐어져 있었다.장순영이 가까이 다가와 다급하게 재촉했다.“아마 배고픈 것 같아요. 제가 분유를 타 봤는데 젖병은 입에도 안 대요. 모유만 찾는 것 같아요. 사모님, 얼른 수유하셔야 할 것 같아요.”시유는 거의 망설이지 않았다. 본능적으로 윗옷 자락을 올리려 했다.하지만 바로 다음, 시유는 무언가를 깨달은 듯 멈칫했다.고개를 들자, 아니나 다를까 여준의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시선과 마주쳤다.여준은 지난 몇 년 동안 시유의 빈틈없는 모습만 보아 왔다. 일할 때의 시유는 늘 단정했고, 화장은 정교했으며, 판단은 빠르고 행동은 거침없었다. 그런 여준이 시유가 이렇게 흐트러진 모습으로 사람들 앞에서 옷을 걷어 올리고 젖을 물리려는 장면을 본 적이 있을 리 없었다.이 자리에서 여준은 물론이고, 시유 자신도 견디기 힘든 수치심을 느꼈다.하지만 아이의 울음소리는 멈추지 않았다. 시유는 더는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여준에게 등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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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환자분은 출산 후 체력 소모가 심한 상태입니다. 이전에 대량 출혈로 응급 처치까지 받으셨고요.”“이런 상태에서는 저혈당으로 쓰러지기 쉽습니다. 영양 보충 꼭 잘 하셔야 하고, 감정적으로 크게 흔들리는 일도 피하셔야 합니다.”검사가 끝난 뒤에도 시유는 병실 침대에 누워 깊이 잠들어 있었다. 의사는 병실 안에서 마리에게 시유의 상태를 차분히 설명했다.장순영이 옆에서 한숨을 쉬었다.“사모님은 산후조리도 제대로 못 하셨어요. 첫 보름은 젖몸살이 너무 심해서 음식도 마음대로 못 드셨고, 그 다음엔 아기가 소화를 잘 못 시켜서 밤마다 울었어요.”“그래도 사모님이 직접 먹이겠다고 버티셔서, 밤에 한 번도 제대로 못 주무셨어요. 낮에는 일까지 하셨고요. 몸이 회복될 틈이 없었어요.”마리는 그 말을 듣자 속에서 불이 치밀었다.마리는 미친 듯이 여준에게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여준은 끝내 받지 않았다. 마리는 하는 수 없이 병상에 누운 시유의 사진을 찍어 보낸 뒤, 짧은 문장을 덧붙였다.[부여준, 20분 안에 병원으로 와. 안 오면 내가 제일 먼저 네 와이프한테 이혼하라고 할 거야.]하지만 여준은 마치 세상에서 사라지기라도 한 듯 아무 연락도 없었다.마리는 침대 위에 야위어 누운 시유를 바라보다가 코끝이 시큰해졌다. 눈물이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그해 대학 동기들은 모두 시유가 가장 결혼 잘한 케이스라고 말했다.남편인 여준은 시유보다 다섯 살 많았고, 시유가 다니던 회사의 대표였다. 5년 전, 두 사람의 결혼 소식은 갑작스럽게 알려졌다.늘 짧은 머리에 소박한 차림을 고집하던 시유가 부씨 집안 같은 최상류층 가문에 시집간다는 사실은 주변 사람들을 꽤 놀라게 했다.다들 지금의 시유가 좋은 집에서 부족한 것 없이 살고, 집안일을 도와주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편하게 지낸다고 생각했다.하지만 마리는 알았다.지난 5년 동안 시유가 회사에서는 여준에게 혹사당했고, 결혼생활 안에서는 시댁의 차가운 시선에 시달리며 얼마나 힘겹게 버텨 왔는지를.마리는 그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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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마리는 시유가 더 상처받을까 봐, 여준이 메시지조차 확인하지 않았다는 말은 끝내 꺼내지 않았다.시유가 퇴원하는 날까지도 여준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퇴원 후, 시유와 마리는 젖먹이 빛나와 장순영을 데리고 시유가 반년 전 ‘태양파크’ 아파트단지에 사 둔 집으로 들어갔다.마리의 집은 바로 맞은편이었다. 서로 마주 보는 앞집에 살자는 건 대학 시절부터 두 사람이 농담처럼, 하지만 진심으로 꿈꿔 왔던 일이었다.그래서 반년 전 마리의 맞은편 집이 매물로 나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시유는 망설임 없이 그 집을 계약했다.집에는 기본 가구와 가전이 모두 갖춰져 있었다. 다만 사람의 온기가 아직 닿지 않아 조금 휑해 보였다.마리는 곧장 자기 집에서 이불과 전기포트, 컵, 수건 같은 생활용품을 가져왔다.시유는 장순영에게 필요한 물건 목록을 적어 주고 마트에 다녀오게 했다. 이어 용달을 불러 그림빌에 있던 빛나의 아기용품을 전부 옮겨오게 했다.창밖은 이미 어둠이 내려앉아 있었다.그제야 여준의 전화가 걸려 왔다.시유는 화면에 뜬 ‘남편’이라는 저장명을 바라보다가, 망설임 없이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저장명을 지우고 번호를 차단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마리의 핸드폰이 울렸다.마리는 전화받자마자 차갑게 비꼬았다.“부 대표, 참 바쁘시네. 이제야 태어난 지 한 달 된 딸이랑 산후조리도 못 끝낸 아내가 생각났어?”[내 아내 바꿔.]여준의 목소리는 여전히 차분했다. 사무적인 거리감이 짙게 묻어 있었다.그는 막 집에 도착한 참이었다. 한 손에는 딸에게 주려고 일부러 사 온 옷과 장난감이 들려 있었다.그리고 집 안에 따뜻한 저녁 식사와 조용한 분위기가 기다리고 있을 거로 생각했다.하지만 눈앞에 보인 건, 마당 한쪽에 검게 그을린 대리석 기둥과 바닥 가득 흩어진 잿더미였다.거실과 침실은 도둑이 들고 간 것처럼 엉망이었다.여준은 가슴속에 치미는 분노를 눌렀다.‘저 사람... 너무 심하게 굴었어.’마리는 비웃듯 말했다.“우리 시유는 왜 찾아? 네 절친이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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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여준은 난장판이 된 거실을 바라보다가, 힘이 빠진 사람처럼 소파에 주저앉았다.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지만, 답답하게 막힌 가슴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이모님, 제가 아내한테 그렇게 못했습니까? 시유가 이렇게까지 화낼 일입니까?”유민자는 바닥에 흩어진 파편을 쓸어 담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이 사모님께 못하신 건 아니에요. 두 분 결혼하고 5년 동안 큰소리 한 번 오가는 걸 못 봤으니까요.”“다만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면 마음이 많이 흔들릴 수 있어요. 산후 우울감도 올 수 있고요. 이럴 때일수록 남편분이 더 곁에 있어 주셔야 해요.”여준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러니까 시유가 산후우울증이라는 겁니까? 다른 여자들은 아이 낳고도 이렇게까지 변하지 않던데요. 여전히 다정하고 조용히 지내잖아요.”유민자의 손이 잠시 멈췄다.“다른 여자라니요?”여준은 자신이 말을 잘못 꺼냈다는 걸 깨달았다. 눈빛이 흔들렸다.“제 사촌동생도 얼마 전에 아이를 낳았어요. 그런데 성격은 여전히 온순합니다. 이렇게 말도 안 되는 일로 사람을 몰아붙이지는 않아요.”유민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분은 남편이 옆에서 내내 챙겨 줬나 보네요. 사모님은 임신부터 출산, 육아까지 거의 혼자 버티셨잖아요.”“여자가 아이를 낳는 건 인생에서 정말 큰 일이에요. 출산 뒤에는 남편의 보살핌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여준은 말을 잃었다.고개를 숙인 채 한동안 침묵했다. 마음 한구석에 불편한 죄책감이 스치듯 지나갔다.“이모님, 순영 이모님한테 물어봐 주세요. 시유가 아이를 데리고 어디로 갔는지.”유민자가 대답했다.“아까 용달차가 와서 짐을 실어 갔어요. 기사님한테 물어보니 태양파크 쪽으로 간다고 하더라고요.”유민자는 망설이다가 끝내 한마디를 덧붙였다.“대표님, 사모님 곁에 조금 더 있어 주세요. 사모님은 원래 이런 분이 아니잖아요. 요즘 대표님이 중요한 시기에 너무 오랫동안 자리를 비우셨어요.”‘태양파크...’‘이곳은 신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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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성질대로 굴지 말고, 이혼 얘기는 당신 머리 식히고 나중에 다시 해. 당신한테 사흘 줄게.”여준은 차가운 얼굴로 돌아섰고, 문을 세게 닫고 나갔다.커다란 문소리에 깊이 잠들어 있던 딸이 놀라 깼다. 아기의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곧 방 안을 가득 채웠다.여준은 집에 들어온 뒤로 단 한 번도 딸을 보러 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떠날 때조차 이 집에 갓난아기가 있다는 사실을 잊은 사람처럼 행동했다.시유는 아랫입술을 세게 깨물었다. 그리고 눈에는 증오는 더 짙어졌고, 가슴속 고통은 거센 파도처럼 뒤집혔다.결국 밤에 시유는 한숨도 제대로 자지 못했다.새벽에는 다시 두 번이나 일어나 빛나에게 젖을 물렸다.아침이 밝았을 때, 시유는 짙은 다크서클을 달고 온몸이 쑤시는 상태로 겨우 몸을 일으켰다. 그런데 갑자기 시야가 빙글빙글 돌더니, 몸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시유는 그대로 앞으로 고꾸라졌다.“시유야!”마침 문을 열고 들어오던 마리가 그 모습을 보고 기겁했다. 마리는 다급히 달려와 시유를 붙잡았다.“세상에, 왜 이렇게 창백해? 순영 이모님이 그러시던데, 부여준이 어젯밤에 왔다며? 그 인간이 또 너 자극했어?”시유는 흐릿하게 눈을 떴다. 눈앞에는 마리가 수십 명으로 겹쳐 보이는 것 같았다.“마리야... 나 너무 어지러워.”“말하지 마. 병원 가자.”마리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시유를 붙들었다. 부축하고 끌어안아도 시유가 제대로 걷지 못하자, 끝내 시유를 등에 업다시피 했다. 그렇게 겨우 시유를 차에 태웠다.마리는 곧장 병원으로 차를 몰았다.병원에 도착하자, 시유는 다시 응급실로 옮겨졌다.마리는 굳게 닫힌 응급실 문 앞에 서서 속이 타들어 갔다.‘이 바보 같은 애. 임신 때부터 너무 무리해서 몸이 이렇게 망가진 거야.’시유는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다. 해마다 한 번씩 크게 앓곤 했다.마리가 시유를 데리고 병원에 온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런데 시유는 늘 강한 척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이를 악물고 꾹 참았다.어릴 때도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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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여준이 막 꾸짖으려던 참이었다.“윤마리 씨...”말이 채 끝나기도 전, 여준의 시선이 옆으로 움직였다. 시유가 다가오고 있었다. 곧이어 시유의 손등에 붙은 반창고가 눈에 들어오자, 여준의 입술이 살짝 달싹였다. 무슨 말이라도 꺼내려는 듯했다.하지만 여준이 입을 열기도 전에 새나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오빠, 다리에 유리 조각이 박힌 것 같아. 너무 아파!”새나가 치맛자락을 걷어 올렸다. 하얀 종아리에는 콩알만 한 유리 파편이 박혀 있었고, 피가 천천히 배어 나오고 있었다.여준의 눈매가 서늘하게 굳었다. 곧바로 시유에게 향해 있던 시선을 거두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낮춰 상처를 살폈다.“상처가 꽤 깊어. 바로 의사한테 빼달라고 해야겠어. 파상풍 주사도 맞아야 하고.”여준은 새나를 밀어주며 망설임 없이 응급실 쪽으로 향했다.시터 두 명은 아이들을 안고 우르르 뒤따라갔다.시유는 소리 없이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얼굴에는 비웃음만 가득했다. 이미 무뎌질 대로 무뎌져, 감각마저 사라진 사람 같았다.마리는 분노로 온몸을 떨며 참지 못하고 소리쳤다.“부 대표는 진짜 미친놈이야? 거기 안 서? 우리 시유가 지금...”말이 끝나기도 전에 시유의 몸이 무너져 내리듯 다시 쓰러졌다.“시유야! 시유야! 선생님! 빨리요! 시유가 또 기절했어요!”마리는 허둥지둥 시유를 받아 안았다. 너무 다급해서 울음이 터질 것 같았다.여준은 모퉁이까지 가다가 그 소리를 듣고 걸음을 멈췄다.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렸다.간호사와 의사가 그쪽으로 달려가고, 시유가 힘없이 마리의 품에 쓰러진 모습을 보자 여준은 곧바로 심상치 않음을 알아차렸다.“새나는 아주머니들이 데리고 가서 상처부터 처치 받게 해. 나는 금방 갈게.”여준은 몸을 돌려 뛰어가려 했다. 하지만 두 걸음도 채 떼기 전에 뒤쪽에서 다급한 외침이 들려왔다.“사모님! 사모님! 정신 차려요! 빨리 눈 떠요!”여준은 홱 고개를 돌렸다. 새나는 긴 의자에 온몸을 젖힌 채 누워 있었고, 의식을 잃은 듯 보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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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하지만 여준이 입을 여는 것만으로도 시유는 심장이 지옥 밑바닥으로 떨어지는 듯했다.“윤마리 씨, 괜히 우리 부부 사이 갈라놓지 마. 시유도 리오 가족이야. 한집안 사람끼리 도울 수 있으면 돕는 거지. 어차피 남는 것도 있잖아.”‘리오... 참 살갑게도 부르는 이름이네.’‘마치 자기 친아들이라도 되는 것처럼...’‘정작 자기 친딸은 태어난 지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출생신고는커녕 이름조차 물어본 적도 없고...’시유는 손등에 꽂힌 링거 바늘을 내려다보며 마음속으로 차갑게 웃었다.“차라리 길고양이한테 먹이로 줄지언정, 네 조카한테는 절대 안 먹여. 꿈도 꾸지 마.”여준의 눈매가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래도 애써 참는 듯 병상 옆에 앉았다.이어 손에 들고 있던 닭곰탕 보온 용기를 한쪽에 내려놓고 뚜껑을 열었다. 국물을 한 그릇 떠서 시유 앞에 내밀었다.“당신 마음 상한 거 알아. 그런데 나도 어쩔 수 없어. 영우가 매일 전화해서 새나랑 리오 꼭 잘 챙겨달라고 부탁해. 형제 같은 친구의 부탁을 받은 거야.”여준은 숟가락으로 국물을 떠 시유의 입가에 가져갔다. 목소리는 조금 더 부드러워졌다.“여보, 영우는 당신도 알잖아. 흔히 볼 수 없는 인재야. 우리 세오름타워도 처음 설계도 나왔을 때 시공 까다로운 부분 몇 군데가 끝까지 정리 안 됐는데, 영우한테 보내자마자 밤새 도면 다시 잡아줘서 최종안까지 갈 수 있었어.”“게다가 당신도 늘 영우의 재능 대단하게 생각했고, 영우가 한 설계도 좋아했잖아.”틀린 말은 아니었다.영우는 시유의 대학 선배였다. 시유보다 세 학번 위였고, 건축대학 안에서도 손에 꼽히는 설계 인재였다. 영우의 설계 실력은 세계적인 거장들과 견주어도 뒤지지 않을 정도였다.그리고 인품 또한 흠잡을 데 없었다. 맑고 반듯한 사람이라는 말이 꼭 어울렸다. 지금 영우는 해외에서 비공개 기반 시설 사업을 맡고 있었고, 개인의 욕심이 아니라 국가 파견으로 A국 지원 사업에 참여하는 중이었다.시유와 영우는 직접 만난 적은 없었다. 여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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