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5년 동안 완벽한 부씨 집안의 작은 사모님으로 살아온 임시유. 사랑하는 딸이 태어난 지 한 달이 되는 날, 시유는 마침내 깨달았다. 남편 부여준의 지극한 다정함은 전부 첫사랑에게 향했고, 시유에게 돌아온 건 늘 ‘당신이 이해해’라는 말뿐이었다. 결국 시유는 모두가 보는 앞에서 판을 뒤엎었다. “이혼해. 지난 5년 동안... 나도 참을 만큼 참았어.” 하지만 여준은 차갑게 웃었다. “당신까지 왜 이렇게 속물이 됐어? 입만 열면 이혼이야.” 그때까지만 해도 여준은 몰랐다. 시유가 사라진 뒤, 자신의 세상이 얼마나 허무하게 무너질지. 늘 당연하게 곁에 있던 시유가 없자, 여준의 모든 일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3년 후. 국제 건축 서밋에서 다시 만난 시유는 모두가 주목하는 건축 거장이 되어 있었다. 여준은 수많은 카메라 앞에서 무릎 꿇고 다시 시작하자고 시유에게 애원했다. 하지만 시유는 다른 남자의 팔짱을 낀 채, 미소만 남기고 스쳐 지나갔다. 얼마 뒤 여준에게 도착한 금박 청첩장.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는... 다름 아닌 여준의 친구 품에 기대어 있었다. 핏발 선 눈으로 결혼식장에 뛰어든 여준이 들은 말은 단 하나였다. “부여준, 나는 착하게 사는 데에 너무 지쳤어. 이제 난 나를 위해 살 거야.”
View More영우는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채 괴로운 듯 온몸을 떠는 시유를 바라봤다.걱정스러운 눈빛이 스쳤지만, 지금으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었다.영우가 한숨을 내쉬고 무심코 고개를 들었다.그때 멀지 않은 곳에 가느다란 사람의 실루엣이 보였다.주차장 조명이 어두워 얼굴까지는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하지만 여자인 건 분명했다.입가에는 묘한 미소가 걸려 있었고, 손에는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영우의 머릿속이 다시 한번 새하얘졌다.조금 전 시유 상태를 확인하려고 차 안 조명을 켜 둔 상태였다.만약 저 사람이 계속 그 자리에서 핸드폰을 들고 있었다면, 조금 전 차 안에서 자신과 시유가 실랑이를 벌이던 모습이 전부 찍혔을지도 몰랐다.술에 약을 탄 사람도 저 여자일 가능성이 컸다.영우는 곧장 차 문을 열고 그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하지만 다시 보니 조금 전까지 여자가 서 있던 자리는 텅 비어 있었다.마치 처음부터 아무도 없었던 것처럼.‘내가 잘못 본 건가?’아니었다.얼굴은 보지 못했어도 사람이 서 있었다는 것만큼은 확실했다.영우는 주변을 빠르게 한 바퀴 돌며 여자를 찾아봤다.멀리 캠핑장에서는 여전히 음악 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하지만 끝내 여자를 찾지 못했다.잠시 후 진구가 숨을 몰아쉬며 달려왔다.두 손으로 무릎을 짚은 채 다급하게 욕설부터 내뱉었다.“와, 진짜 미치겠네.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어.”영우가 진구를 힐끗 봤다가 눈을 크게 떴다.진구의 목에는 키스 마크가 잔뜩 남아 있었다.흰 셔츠는 단추가 전부 풀려 있었고 곳곳에 립스틱 자국까지 묻어 있었다.머리도 완전히 헝클어져 있었다.누가 봐도 방금 전까지 한바탕 난리를 겪고 겨우 빠져나온 몰골이었다.두 사람은 잠시 서로를 바라봤다.그러다 동시에 헛웃음을 터뜨렸다.진구가 먼저 입을 열었다.“거봐. 내가 너보다 매력 있다니까. 너는 멀쩡하잖아.”영우가 어이없다는 듯 진구를 노려봤다.“헛소리하지 마. 내가 너보다 힘이 세서 그런 거야. 바로 제압했거든.”진구가 코웃음을 쳤
모든 일이 너무 갑작스럽게 벌어졌다.영우의 머릿속이 순간 새하얘졌다.시유의 입술이 코앞까지 다가왔다.조금만 더 가까워지면 그대로 닿을 듯했다.그 순간 영우의 심장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호흡도 완전히 흐트러졌다.당황한 영우는 반사적으로 시유를 밀어내고 두 손을 붙잡았다.아슬아슬했다.정말 조금만 늦었어도 입술이 닿을 뻔했다.영우는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지 못한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마른 침을 삼켰다.시유는 여전히 영우에게 다가가려 했다.영우는 어쩔 수 없이 힘을 조금 더 줘 두 손목을 붙잡아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시유는 정신이 흐릿한지 눈조차 제대로 뜨지 못했다.얼굴은 심하게 붉어져 있었고 몸도 계속 불편한 듯 뒤척였다.두 사람의 거리가 가까워지자 영우는 시유의 체온이 이상할 정도로 높다는 걸 느꼈다.이상했다.아무리 생각해도 정상이 아니었다.술이 약한 사람이라 해도 취하면 보통 잠들거나 토하는 정도였다.이런 증상까지 나타날 리는 없었다.‘설마 우리가 자리를 비운 사이 누가 술잔에 손댄 건가?’그 생각이 든 순간 영우는 곧장 핸드폰을 꺼내 진구에게 전화했다.한편, 다른 마이바흐 안에서는 상황이 더 심각했다.마리는 어느새 진구의 무릎 위에 올라앉아 있었다.의식이 흐릿한 상태로 진구의 얼굴과 목에 마구 입을 맞추며 옷을 잡아당기고 있었다.진구의 흰 셔츠 단추도 이미 여러 개 풀려 있었다.진구는 당황해 마리의 손을 붙잡으려 했지만 좀처럼 뜻대로 되지 않았다.“미치겠네...”진구가 난감한 듯 중얼거렸다.마리를 떼어 놓으려 할수록 오히려 더 달라붙었다.마리는 계속 진구에게 입을 맞추려 했고, 진구 역시 점점 상황이 심상치 않다는 걸 느끼기 시작했다.‘술 좀 마셨다고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까지 변한다고?’진구는 평소 입으로는 가벼운 농담을 잘했지만 실제로 아무렇게나 행동하는 사람은 아니었다.적어도 넘지 말아야 할 선은 확실히 알고 있었다.게다가 마리는 오래 알고 지낸 가까운 사람이었다.이런 상태의 마리를 상대로
마리는 저녁 내내 진구와 술 게임을 하느라 이미 제법 취해 있었다.시유는 웃으며 맞장구친 뒤 마리의 잔에 자기 잔을 부딪쳤다.두 사람은 곧 잔을 비웠다.그런데 잠시 후 시유는 머리가 멍해지는 걸 느꼈다.최근 너무 무리해서 그런가 싶어 의자에 몸을 기댔다.마리 역시 술을 마신 뒤 의자에 축 늘어졌다.이내 정신을 잃은 듯 꼼짝도 하지 않았다.영우와 진구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담배를 피우고 돌아왔다.그런데 자리로 돌아와 보니 두 사람 모두 의자에 축 늘어진 채 잠들어 있었다.진구가 피식 웃었다.“둘 다 술 진짜 약하네. 오늘은 여기서 끝내야겠다.”영우도 손목시계를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시간도 꽤 늦었어.”캠핑장에서 주차장까지는 약 1킬로미터 정도 떨어져 있었다.영우는 두 사람에게 다가가 어깨를 가볍게 흔들어 깨워 봤다.하지만 둘 다 완전히 취한 사람처럼 꼼짝도 하지 않았다.영우가 난감한 듯 눈썹을 올리고 주차장 쪽을 가리켰다.“진구야, 한 명씩 맡아서 데려갈까?”진구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곧장 시유 쪽으로 다가가 부축하려고 허리를 숙였다.그때 영우가 팔을 뻗어 진구를 막았다.영우가 마리 쪽을 눈짓으로 가리켰다.“시유 씨는 내가 데려갈게. 넌 마리 씨 집까지 안전하게 데려다줘.”진구의 입가에 의미심장한 웃음이 번졌다.그가 영우의 어깨를 툭 쳤다.“거봐. 내 말이 맞잖아. 너 아직 분명...”“진구야.”영우가 재빨리 말을 끊었다.표정은 금세 진지해졌다.“쓸데없는 추측 하지 마. 괜히 시유 씨한테 이상한 소문이라도 나면 곤란해.”영우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나는 남자니까 이런저런 오해 좀 받아도 상관없어. 하지만 여자는 한번 안 좋은 소문이 붙으면 오래 따라다닐 수도 있잖아.”진구도 바로 장난기를 거뒀다.“알았어. 앞으로는 그런 농담 안 할게.”진구는 마리 쪽으로 다가가 가볍게 안아 들었다.키가 162센티미터인 마리는 180센티미터가 훌쩍 넘는 진구의 품에 안기자 유난히 작아 보였다.몸이 들
40분 뒤.새나도 캠핑장에 도착했다.입구에 들어서자 어디선가 감미로운 노랫소리가 들려왔다.아까까지 북적이던 캠핑장은 어느새 놀라울 만큼 조용해져 있었다. 사람들은 모두 노래에 귀를 기울인 채 박자에 맞춰 손뼉을 치고 있었다.새나는 걸음을 멈추고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바라봤다.그러나 잔디밭 한가운데 서 있는 두 사람을 발견한 순간, 눈빛이 순식간에 싸늘해졌다.길게 기른 손톱이 손바닥을 아프도록 파고들었다.노래를 부르고 있는 남자는 영우였다.그리고 그 옆에서 함께 노래하는 여자는 다름 아닌 시유였다.두 사람이 부르는 곡은 오래전에 발표됐지만 여전히 풋풋한 설렘이 느껴지는 사랑 노래, ‘내 노래를 너에게 들려주고 싶어’였다.애초에 한 사람씩 장기 자랑을 하자고 제안한 건 마리였다.마리가 춤을 선보인 뒤에는 진구도 흔쾌히 나섰다.진구는 특유의 입담으로 즉석에서 사람들을 웃겼고, 어찌나 능청스러운지 다들 배를 잡고 웃을 정도였다.덕분에 분위기는 한껏 달아올랐다.다음 차례인 영우도 빼지 않고 썰렁한 농담을 하나 던졌다.그 모습을 본 시유는 얼른 기회를 잡았다.우스꽝스러운 표정을 한번 지어 보이고는 슬쩍 자기 차례를 넘기려 했다.하지만 마리와 진구가 가만있을 리 없었다.두 사람이 너무 대충 넘어가려 한다며 불공평하다고 투덜거리더니, 기어이 함께 장기 자랑을 하라고 성화를 부렸다.시유가 어릴 때 배운 건 대부분 호신술이었다.격투기나 태권도라면 몰라도 춤에는 영 소질이 없었다. 그나마 노래는 제법 부르는 편이었다.영우는 시유가 난처해하는 걸 알아차리고 자신이 대신 노래 한 곡을 부르겠다고 나섰다.하지만 진구는 그것도 안 된다며 두 사람이 꼭 함께 불러야 한다고 우겼다.그러고는 그 자리에서 달콤한 사랑 노래까지 골라 버렸다.결국 시유와 영우는 떠밀리다시피 함께 노래를 부르게 됐다.그전까지 두 사람은 서로 노래하는 모습을 본 적도, 노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전혀 몰랐다.그런데 반주가 흘러나오자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평소 함께
시유는 액셀을 깊게 밟아, 두 사람의 신혼집이 있는 단독주택 단지 ‘그림빌’로 차를 몰았다.현관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이 집에서 오래 일한 가사도우미 유민자와 시유가 따로 고용한 시터 장순영이 아이를 어르고 있었다.시유의 새하얗게 질린 낯을 본 두 사람은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났다.“사모님, 어디 편찮으세요?”시유는 억지로 입꼬리를 끌어 올렸다.“괜찮아요. 배가 좀 고파서요. 따뜻하게 닭칼국수 한 그릇만 해 주세요.”장순영의 품에서 아이를 받아 든 시유의 복잡하게 뒤엉킨 마음은, 보드랍고 발그레한 아기 얼굴을 보자 겨
연회장 안.시유의 시선은 눈 한 번 깜빡이지 않은 채 여준에게 박혀 있었다. 여준은 잔뜩 달아오른 얼굴로 술잔을 들고, 새나를 데리고 테이블마다 돌며 인사를 하고 있었다.“제 친구 영우가 해외 현장에 장기 파견을 나가 있어서, 돌아오려면 1년은 더 있어야 합니다. 오늘은 제가 영우 대신 인사도 드리고, 술도 대신 받겠습니다.”“새나는 아직 몸조리 중이라 술도, 찬 음료도 조심해야 합니다. 새나 몫으로 주시는 잔은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시유는 입안으로 넘어간 오렌지 주스가 유난히 차갑고 쓰게 느껴졌다. 가슴 안쪽
“여보, 우리 아기 오늘 태어난 지 한 달 됐잖아. 나랑 아기 데리러 올 수 있어?”임시유는 속싸개에 싸인 딸아이를 품에 안고 있었다. 담담한 목소리였지만, 그 안에는 조심스러운 기대가 희미하게 배어 있었다.수화기 너머에서 부여준의 목소리가 차분하게 들려왔다. 감정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갑자기 일정이 생겼어. 기사한테 당신이랑 아기 태우고 집까지 오라고 할게.]출산할 때도, 산후조리 기간 내내 여준은 회사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시유와 아기의 곁에 없었다.이제 아기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어 조리원에서 퇴원하는 날인데
여준은 난장판이 된 거실을 바라보다가, 힘이 빠진 사람처럼 소파에 주저앉았다. 담배에 불을 붙인 뒤 깊게 한 모금 빨아들였지만, 답답하게 막힌 가슴은 조금도 풀리지 않았다.“이모님, 제가 아내한테 그렇게 못했습니까? 시유가 이렇게까지 화낼 일입니까?”유민자는 바닥에 흩어진 파편을 쓸어 담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이 사모님께 못하신 건 아니에요. 두 분 결혼하고 5년 동안 큰소리 한 번 오가는 걸 못 봤으니까요.”“다만 여자가 아이를 낳고 나면 마음이 많이 흔들릴 수 있어요. 산후 우울감도 올 수 있고요. 이럴 때일수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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