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삼촌이라 부르지 마 / Chapter 21 - Chapter 30

All Chapters of 삼촌이라 부르지 마: Chapter 21 - Chapter 30

30 Chapters

제21화

아무도 몰랐다. 지금 이라의 눈앞에 있는 이 차갑고 귀한 남자가 침대 위에서는 얼마나 능숙하고, 얼마나 위험할 만큼 거칠어지는지...예전의 이라는 그런 은후를 미치도록 사랑했다.침대 위에서 은후의 소유욕이 강해질수록... 이라는 은후가 자신을 그만큼 신경 쓰고 있다고 순진하게 믿었다.은후가 더 거칠어질수록... 자신이 은후를 잃지 않을 거라고 여겼다.이라가 깊은 바다 위를 외롭게 떠도는 작은 배라면, 은후는 그 바다 한가운데의 항구 같았다.이라는 은후에게 닻을 내렸다.한때는 은후가 자신의 종착지가 되어 줄 거라 믿었고, 온 힘을 다해 은후를 붙잡으려고 애썼다.하지만 끝내 알게 되었다.달콤했던 꿈은 일단 깨고 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것을.은후는 누구의 항구도 아니었다.이라라는 작은 배는 애초에 어디에도 정박할 수 없는 운명이었다.“술이 취해서 머리까지 멈춘 것도 모자라, 귀도 안 들려?”은후의 맑고 차가운 목소리가 들려오며, 이라의 생각을 현실로 끌어냈다.은후는 어느새 손에 들고 있던 경제 신문을 내려놓고 소파에서 일어나 있었다.이라 앞에 선 은후가 고개를 숙여 이라를 내려다보았다.스무 센티가 넘는 키 차이가 주는 압박감 때문에, 이라는 고개를 들어 은후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얇은 렌즈 너머로 보이는 은후의 호박빛 눈동자는 아름답고도 깊었다.이라가 잠시 멍해졌다.“네?”은후는 이라가 얼빠진 듯한 표정을 짓는 것을 보고 낮게 웃었다.손을 들어 길고 단정한 손끝으로 이라의 이마를 가볍게 톡 건드렸다.“내가 물었잖아.”은후가 말끝을 느리게 끌며 몸을 숙였다. 뜨거운 숨결이 이라의 뺨 위로 스쳤다.“어젯밤에 잘 잤냐고.”익숙한 우드 향이 곧바로 이라를 감쌌다.은후는 가까이 다가와 있었다. 시선이 이라와 같은 높이에 놓였고, 이라는 은후의 호박빛 눈동자 안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또렷하게 볼 수 있었다.남자의 손끝이 가볍게 닿았을 뿐인데, 마치 이라의 마음 한가운데를 건드린 것 같았다.“잘 잤어요.”이라는 은후의
Read more

제22화

은후의 걸음이 멈췄다. 곧게 선 등이 아주 미세하게 굳었다.은테 안경 너머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속을 알 수 없는 눈이었다.목울대가 느리게 한 번 움직였다.한참 뒤, 그가 몸을 돌렸다.막 입을 열려던 찰나, 눈빛이 달라졌다.잠시 누그러졌던 기색은 곧바로 다시 차갑게 굳었다.이라는 손가락으로 핸드폰 화면을 톡톡 누르며, 핸드폰을 향해 한마디 더 말했다.“시간 괜찮으면, 오늘 저녁 같이 먹을래?”말을 마친 이라는 고개를 들어 은후를 바라보았다.눈웃음을 지으며 물었다.“왜요, 삼촌?”“음성메시지?”은후의 차가운 시선이 이라의 손에 들린 핸드폰으로 향했다.이라는 고개를 끄덕였다.웃음은 달콤했다.“제 선배요.”은후는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듯 이라를 바라보았다.살피듯 이라를 몇 초 동안 훑어보더니,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먼저 다이닝 룸으로 향했다.이라는 그 자리에 선 채, 입가의 웃음을 거두지 않았다.평온한 미소 아래에서 심장 소리는 귀가 먹먹할 만큼 크게 울리고 있었다.밝아진 핸드폰 화면 속 채팅창은 텅 비어 있었다....다이닝 룸 안은 유난히 조용했다.가끔 컵과 접시가 맞닿는 소리만 작게 들릴 뿐이었다.이라가 슬쩍 시선을 들었다.맞은편에 앉은 은후는 눈을 내리깐 채, 천천히 아침을 먹고 있었다.통유리창 너머에서 들어온 빛이 은후의 몸 위에 내려앉아, 마치 빛을 얇게 덧입힌 듯 보였다.“입에 안 맞아?”이라가 나이프와 포크를 쥔 채 음식을 입에 가져가지 못하고 있자, 은후가 눈을 들었다.마침 이라의 시선과 마주쳤다.은후의 입가가 살짝 휘었다.“해외에 2년 있다 오더니, 집밥이 낯설어졌나?”눈앞의 식탁에는 정갈하고 풍성한 아침 식사가 차려져 있었다.모두 이라가 예전에 좋아하던 것들이었다.이라가 옅게 웃었다.“그럴 리가요. 그냥 삼촌이랑 이렇게 아침 먹는 게 너무 오랜만이라 조금...”“낯선 거야, 싫은 거야?”은후가 말을 이어받았다.말투에서는 별다른 감정이 느껴지지 않았다.이라는 잠시 말문이 막
Read more

제23화

“응.”은후는 그저 짧게 대답한 뒤, 우아하게 식사를 이어 갔다.분위기는 금세 다시 어색한 정적으로 돌아갔다.이라는 이렇게 밥을 먹다가는 체할 것 같아, 은후를 불렀다.“삼촌.”은후는 블랙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눈도 들지 않은 채 짧게 답했다.“말해.”이라는 잠시 생각하다가 물었다.“증조할머니 건강은 어떠세요?”“늘 비슷하시지.”은후는 커피잔을 내려놓고 이라를 바라보았다.“네 얘기도 몇 번 하셨고.”은후의 할머니 권임순 여사는 이라가 고씨 집안에서 은후를 제외하고 가장 가깝게 지낸 사람이었다. 이라에게 유난히 다정했고, 믿음을 대하듯 이라를 대했다. 친증손녀처럼 아끼는 어른이었다.권 여사가 자신을 언급했다는 말에, 이라는 얼른 물었다.“증조할머니가 제 얘기를 뭐라고 하셨어요?”은후는 느긋하게 이라를 바라보았다. 입가가 희미하게 휘었다.“갈 땐 말도 없이 가는, 정 없는 애라고.”이라의 입가가 살짝 굳었다.‘증조할머니가 그런 말을 했을 리 없었을 것 같은데...’그 말투는 누가 봐도 은후의 것이었다.아침을 먹는 동안 벌써 세 번이나 은후에게 말문이 막힌 이라는... 잔에 남은 우유를 단숨에 들이켰다. 이어 냅킨으로 입가를 가볍게 눌러 닦고 자리에서 일어났다.“저 다 먹었어요. 삼촌은 천천히 드세요.”이라가 막 일어서려던 때, 무언가가 이라 쪽으로 날아왔다.이라는 재빨리 손을 뻗어 받아 냈다.자동차 키였다.“차 한 대 골라 놨어. 택시비를 스무 배씩 올려 부르는 것보다는 편할 거야.”비꼬는 듯 아닌 듯한 은후의 말에, 차 키를 쥔 이라의 손이 미세하게 굳었다.지난밤 보운정에서 일부러 택시 호출 금액을 높인 일까지 은후는 알고 있었다.이라는 고개를 내려 은후를 바라보았다.분명 은후는 앉아 있었고, 높이로 따지면 이라의 시선보다 낮았다.그런데도 여유롭고 빈틈없는 기세는 이라를 쉽게 눌렀다.은후는 그 자리에 앉아 별다른 움직임도 없었다.하지만 모든 것이 은후의 손안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은후는 지나치게 똑
Read more

제24화

예전 같았으면 이라는 뛸 듯이 기뻐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두 사람의 사이로... 어떤 명분으로 한집에 머물 수 있을까?무슨 사이로, 어떤 자격으로.한 침대에서 몸을 섞고 살을 맞댔던 사람이... 다시 아무 일 없었다는 듯 평범한 삼촌과 조카 같은 관계로 한 지붕 아래 지낼 수 있을까?감정으로 보나 도리로 보나, 맞지 않았다.게다가 이라는 자신이 은후를 욕심내고 있다는 사실을 부정한 적이 없었다.한집에 있게 되면, 자신이 은후에게 무슨 짓을 할지 알 수 없었다.어쩌면 4년 전보다 더 제멋대로 굴지도 몰랐다.“나 여기서 살 생각 없어.”은후의 목소리는 맑고도 담담했다.이라의 머뭇거리며 굳어진 웃음이... 은후의 눈에는 어쩐지 거슬렸다.은후가 이곳으로 들어올지도 모른다는 말 한마디에 저렇게 놀라다니.예전에는 침대 위에서 눈물까지 글썽이며 은후에게 가지 말라고 매달리던 사람이 누구였더라.이제는 제법 날개가 굳어, 더 멀리 날아갈 수 있게 된 모양이었다.어쩌면 이제 은후가 필요 없어졌을지도 몰랐다.“그럴 줄 알았어요.”이라는 목 안쪽의 메마른 감각을 눌러 삼키며 웃었다.은후의 안경 너머에서 자신을 살피는 시선을 마주했다.“저도 여기 사는 건 좀 그렇죠. 나중에 삼촌이 다른 여자 데려오면 불편할 테니까요.”“배려하는 마음이 아주 깊네.”은후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눈매는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다른 여자 안 와. 얌전히 여기서 지내다가, 집 구하면 그때 나가.”평온한 말투였지만 거절을 허락하지 않는 명령이었다.은후는 말을 마치자마자 몸을 돌려 걸어 나갔다.큰 키의 뒷모습은 현관 쪽에서 들어오는 아침 햇살을 받아 더 곧고 선명해 보였다.더 차갑고, 더 멀게 느껴졌다....붉은 페라리 로마가 넓은 도로 위를 일정한 속도로 달렸다.40분 뒤, 스포츠카는 경울시 중심업무지구의 번화한 거리로 들어섰고, 하늘 높이 솟은 오피스 빌딩 주차장에 멈췄다.엘리베이터가 20층에 도착했다.문이 열리자마자, 이라는 회사 로고를 확인하기도
Read more

제25화

이라는 초연이 조금 전 하던 말을 이어받았다.“그러니까 세아픽처스 쪽에서 우리한테 작가 크레딧을 넘기라는 건가?”어느 업계든 결국은 이름과 돈을 두고 움직인다.세아픽처스 역시 그 두 가지로 이 대본을 쥐고 흔들려는 속셈이었다.역시나 초연이 엄지를 치켜세웠다.“정답. 세아픽처스는 요즘 영상 업계가 어렵다고 하더라. 작품 하나 만들 때마다 손해가 나서 자금 사정이 빠듯하대.”초연은 말을 이었다.“그러다 TC캐피털이 최근 엔터 쪽 투자를 검토 중이라는 얘기를 들은 거지. 박동혁이 그 소리 듣자마자 TC캐피털 대표한테 투자받아 보겠다고 달려든 거고.”초연은 두 손을 펼쳐 보이며 어깨를 으쓱했다.“결과는 너도 알잖아. TC캐피털 대표가 박동혁한테 10분도 안 줬대. 말도 끝까지 안 듣고 나갔다더라.”그 말을 듣자 이라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직접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은후가 박동혁을 어떤 눈으로 보았을지.은후는 원래 그랬다.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나 일에는 쓸데없는 시선 하나 주지 않았다.그 능구렁이 같은 박동혁이 은후 앞에서 망신을 당했다면, 딱히 억울할 일도 아니었다.“왜 웃어?”초연이 문득 고개를 기울이며 이라의 입가를 바라보았다.“아니야.”이라는 얼른 웃음을 거두었다.“계속 말해.”초연은 물을 한 모금 마신 뒤 다시 말했다.“박동혁은 투자를 못 받았고, 다른 작가 팀에서 훨씬 유리한 조건을 제시했대. 대신 우리 대본을 그 팀 이름으로 올리고 싶어 하는 거지.”상대가 원하는 건 분명했다.‘에코’가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둘 중 하나였다.돈을 택하든지, 작가 크레딧을 지키든지.둘 다 가지게 해 줄 생각은 없다는 뜻이었다.이라가 듣고 나서 낮게 웃었다.“그 늙은 여우, 계산 하나는 잘하네.”어느 쪽을 택해도 ‘에코’에게 최선은 아니었다.“그쪽이랑 약속은 잡았어?”이라가 물었다.“오전 10시.”초연이 대답했다.“내가 조금 이따 갈 거야.”“나도 같이 갈게.”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났다.“대본은 내가 썼으
Read more

제26화

‘그렇다면 이라는 왜 이 혼담을 받아들였지?’‘무언가를 대가로 걸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약혼을 받아들여야 했을까?’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은후의 눈매가 가늘어졌다.“서씨 집안 사람들은 이라에게 어떻게 대했지?”“서건오 부부는 2년 전 해외에서 이라 아가씨를 찾아낸 뒤로, 왕래가 아주 잦은 편은 아니었습니다.”“다만 사람들 앞에서는 이라 아가씨에게 꽤 잘해 주는 것처럼 보였습니다.”정훈은 말을 마치고 덧붙였다.“다만 그 부부가 사업에는 꽤 능숙합니다. 눈치도 빠르고, 윗사람 비위 맞추는 데도 익숙한 편입니다.”은후는 손끝의 담뱃재를 가볍게 털었다. 더는 말하지 않았다.옆 좌석에는 누런 크라프트 서류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은후는 그 봉투를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리며 낮게 물었다.“자료는 보냈어?”“이미 서아영 씨 메일로 보냈습니다.”정훈은 말을 마친 뒤, 조심스럽게 한마디를 보탰다.“대표님, 이 자료가 오히려 서씨 쪽과 최씨 집안의 혼담을 더 밀어붙이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만약 이라 아가씨가 정말 약혼을 원하지 않는다면, 대표님께서 이 일에 손대신 걸 알고 원망하지 않을까요?”은후가 정훈을 흘긋 바라보았다.“걔가 너보다 똑똑해.”정훈은 말문이 막힌 채 고개를 숙였다.은후의 입가에는 옅은 웃음이 걸려 있었다.어둡게 가라앉은 시선은 손끝 가까이에 놓인 서류봉투에 머물렀다.“그 자료를 어떻게 써야 진흙탕에서 빠져나올 수 있는지, 이라는 알아.”...오전 10시.이라는 일부러 약속 시간보다 10분 일찍 도착했다.붉은 스포츠카를 세아픽처스 건물 아래에 세우고 안으로 들어갔다.직원은 박동혁 감독이 회의 중이라며,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했다.이라는 옅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응접실에 앉아 조용히 기다렸다.하지만 그 ‘잠시’는 꼬박 한 시간이 다 되었다.직원이 다시 응접실로 들어왔을 때도, 이라의 얼굴에는 초조함이나 짜증이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예의 바른 미소만 여전히 입가에 걸려 있었다.“박 감독님 회의는
Read more

제27화

임히나는 젊고 아름다웠다. 말투는 부드럽고 조용했으며, 대중에게는 ‘국민 첫사랑’으로 불렸다.탄탄한 팬덤을 가진 배우였고, 박동혁이 작품마다 주연으로 캐스팅하는 배우이기도 했다.이라가 쓴 이 대본의 여주인공도 원래는 히나를 염두에 둔 것이었다. 하지만 박동혁은 단번에 거절했다. 작은 회사의 대본은 히나의 몸값과 맞지 않는다는 이유였다.“감독님, 안녕하세요.”이라는 문가를 가볍게 두드려 두 사람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렸다.누군가 들어온 것을 알아차린 두 사람은 곧바로 서로에게서 거리를 뒀다.박동혁은 히나에게 눈짓으로 먼저 나가라는 신호를 보냈다.히나가 사무실을 나간 뒤, 박동혁의 시선이 눈앞의 지나치게 아름다운 여자에게 머물렀다. 눈빛에는 살피는 기색이 섞여 있었다.“강이라 작가?”이라는 곧바로 예의 바른 미소를 지었다. 입가에는 옅은 보조개가 피어났다.이라가 손을 내밀었다.“감독님, 안녕하세요. ‘에코’의 메인 작가 강이라입니다.”이전까지의 협의는 대부분 화상 회의로 진행됐다.그때도 박동혁은 이라에게 예쁘다고, 배우를 해도 되겠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강 작가, 화면보다 실물이 훨씬 낫네. 정말 미인이야.”박동혁은 웃으며 이라의 손을 잡았다.손가락이 이라의 희고 매끈한 손등을 스치듯 지나갔다.“오늘 정신이 너무 없어서 말이야. 오래 기다리게 해서 미안해.”이라는 티 나지 않게 손을 빼냈다. 얼굴의 미소는 그대로였다.“감독님께서 바쁘신 건 이해합니다.”이라는 일을 할 때 늘 예의를 먼저 차렸다.예의를 다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갈 차례였다.“감독님, ‘에코’는 세아픽처스와 진심으로 협업하기를 희망합니다. 대본료도 이미 협의가 끝난 부분이고요. 계약을 앞둔 시점에서 갑자기 금액을 낮추는 건 조금 곤란합니다.”이라의 얼굴은 아름다웠고, 목소리는 차분했다.하지만 부드러운 말투 속에는 쉽게 밀리지 않는 힘이 있었다.그 당당함이 박동혁의 흥미를 더 자극했다.박동혁의 시선이 이라의 몸매를 위아래로 훑었다.이어 웃으며
Read more

제28화

이라는 손끝으로 찻잔을 만지작거렸다.차는 입에 대지도 않았다. 입가에는 옅은 웃음만 걸려 있었다.맑고 밝은 눈동자 속의 웃음은 차갑게 식어 있었다.“감독님, 정말 통도 크고 대담하시네요.”이라가 박동혁의 노골적인 시선을 마주하며 웃었다.“원래 감독님은 사업을 실력으로 하시는 게 아니라, 여자 몸으로 때우시나 봐요.”이라의 손끝이 찻잔을 집어 들었다.잔이 허공에서 살짝 기울어지더니, 안에 담긴 차가 테이블 위로 쏟아졌다. 튄 물방울이 박동혁의 정장을 적셨다.박동혁은 급히 몸을 뒤로 물렸다. 입가의 웃음도 사라졌다.이라는 그를 차갑게 내려다보았다.“그렇게 남의 침대에 올라가 로비하는 걸 좋아하시면, 고 대표 침대에는 감독님이 직접 올라가 보시죠?”이라가 낮게 웃었다.박동혁의 표정이 굳어 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찻잔을 탁자 위에 세게 내려놓은 이라는 자리에서 일어나 나가려 했다.이라가 정말 화가 난 걸 봤지만, 박동혁은 이대로 미인을 보내기 아까웠다.그가 얼른 이라를 불렀다.“강 작가.”이라의 발걸음이 멈췄다.박동혁은 이라의 가느다란 뒷모습을 바라보며 어색하게 웃었다.“농담 좀 한 거잖아. 화낼 것까지 있나? 대본료는 아직 조정할 여지가 있어.”이라가 가볍게 웃으며 몸을 돌렸다.“그래요?”박동혁은 이라의 고운 얼굴에 여전히 미소가 걸려 있는 것을 보고, 다시 한 걸음 다가왔다.이라가 화가 나도 말투가 차분한 것을 보니, 쉽게 밀어붙일 수 있을 것 같았다.“강 작가는 젊고 예쁘고 몸매도 좋잖아. 이런 건 일찍 깨달을수록 본인한테 좋아.”말하며 박동혁은 손을 은근슬쩍 이라의 허리 위로 올렸다.이라의 몸이 굳었다.박동혁은 이라가 움직이지 않자, 더 만만하게 여겼다. 입에서 나오는 말도 점점 선을 넘었다.“임히나도 내가 키운 애야. 내가 그 애를 요즘 뜨는 배우로 만들었듯이, 강 작가도 유명 작가로 만들어 줄 수 있어.”박동혁은 지나치게 가까이 있었다. 숨결이 닿을 때마다 이라는 역겨운 만큼 마음은 서늘해졌다.
Read more

제29화

이라가 말을 마친 뒤, 웃으며 덧붙였다.“세아픽처스 감독이 가정 있는 사람인데, 잘나가는 여배우와 사적으로 부적절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이 얘기 터지면 꽤 시끄러워지겠네요.”그 말에 박동혁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잃을 게 없는 사람은 무서울 게 없거든요.”이라가 눈꼬리를 곱게 접으며 웃었다.“감독님, 한번 해 보죠. 누가 누구를 먼저 지치게 하는지.”박동혁은 이라가 도도하게 걸어 나가는 뒷모습을 노려보았다. 분노로 눈이 벌겋게 달아오른 박동혁은 곧바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법무팀에 연락해. 에코의 강이라 작가 고소할 거야.”박동혁의 목소리가 사납게 내려앉았다.“끝까지 물고 늘어져.”...[뭐라고?][박동혁이 너를 고소하겠다고?]이라가 세아픽처스 건물을 막 나섰을 때, 초연의 전화가 걸려 왔다.대화 내용과 결과를 들은 초연은 핸드폰 너머에서 곧바로 욕을 퍼부었다.[그 인간 진짜 낯짝도 두껍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하더니 속은 그렇게 더러웠어? 먼저 선 넘은 건 자기면서, 이제 와서 우리를 고소하겠다고?]초연은 화를 내면서도 이라를 달랬다.[고소하라 그래. 우리 겁먹을 거 없어. 이라야, 변호사는 내가 알아볼게. 너는 걱정하지 마.]“선배, 내가 일을 망쳤다고 생각 안 해?”이라가 웃었다. 목소리는 조금 부드러워졌다.[내가 왜 널 탓해?]초연이 곧바로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그 늙다리한테 더 당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이지. 그런 저질 회사랑은 협업 안 해도 돼.]초연은 다시 말했다.[일단 회사로 돌아와. 저녁에 내가 괜찮은 데 예약해서 같이 밥 먹자. 놀란 것도 좀 가라앉히고.]“소송 문제는 걱정하지 마. 내가 어떻게든 방법 찾아볼게.”초연이 그렇게 말해 주자, 이라의 마음 한쪽이 따뜻해졌다.이라는 차 옆에 서서 옅게 웃었다.막 대답하려던 순간, 다른 전화가 끼어들었다.저장되지 않은 유선 번호였다.하지만 익숙한 번호였다.이라는 초연에게 잠깐 말한 뒤 전화를 받았다.[이라 아가씨?]상대의 목소리는
Read more

제30화

다짜고짜 쏟아진 욕설에 이라의 웃음이 사라졌다.차가운 눈으로 서민채를 바라보았다.“서민채, 입에 걸레라도 물었어? 입이 왜 그렇게 더러워?”민채는 사람이 오가는 거리에서 이라가 이렇게 거칠게 말할 줄은 몰랐는지, 얌전해 보이던 얼굴 위로 눈썹이 잔뜩 구겨졌다. 얼굴빛이 푸르락붉으락했다.민채 옆에 있던 친구도 이라의 말에 놀란 듯 작게 중얼거렸다.“민채야, 이 사람은 누구야? 말이 왜 저렇게 험해?”이라는 손에 든 차 키를 느긋하게 돌리며 비웃었다.“더 험한 말도 있는데, 들어 볼래?”“강이라.”민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섰다. 화를 억누른 얼굴에는 억지웃음이 걸려 있었다.“네가 이 차를 어떻게 끌고 다니는지, 너도 잘 알잖아. 나는 좋게 말해 주는 거야. 너 이제 결혼할 사람이야. 처신 똑바로 해.”민채의 시선이 스포츠카에서 세아픽처스 로고로 옮겨갔다가, 다시 이라에게 닿았다.그러다 이라가 입은 옷을 알아본 듯 눈빛이 굳었다.그 옷은 서민채가 패션쇼 사진에서만 봤던 옷이었다.이번 시즌에 단 한 벌만 나온 프라이빗 라인의 고급 의상.민채가 오래도록 갖고 싶어 했던 옷이, 지금 이라의 몸에 맞춘 듯 입혀져 있었다.민채는 속으로 냉소했다.확실히 강이라는 남자가 돈을 쓰고 싶게 만드는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분하고 질투가 치밀어 올랐지만, 민채의 얼굴에는 여전히 옅은 미소가 걸려 있었다.“최지범이랑 약혼하기 전에, 밖에서 만나는 남자부터 깨끗하게 정리하는 게 좋을 거야. 최씨 집안에서 네 더러운 일들을 알게 돼서 혼담이 깨지기라도 하면, 우리 아빠가 너 가만 안 둘 테니까.”이라가 그 말을 듣고 알겠다는 듯 웃었다.민채는 차 한 대만 보고, 이라가 세아픽처스 쪽 돈 많은 남자에게 ‘스폰’을 받는다고 제멋대로 상상한 모양이었다.“너 불안하구나?”이라는 하이힐을 신고 몇 걸음 앞으로 다가갔다.민채의 경멸 어린 시선을 마주하며 옅게 웃었다.“내가 최지범이랑 약혼 못 하게 될까 봐 겁나? 그러면 네 아빠가 그 협력 잡으려고 결국 널
Read more
PREV
123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